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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진화론은 식물의 광합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진화론은 식물의 광합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손기철 


     지금까지 아무런 비판이나 의심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던 진화론적 결과들이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창조론적 입장에서 자연계, 그 예로 지구상 생물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식물을 살펴보자.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까지 우리는 모든 자연을 특히 식물을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생각하고 연구하고 보아왔다. 즉 모든 식물은 우연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적응과 돌연변이, 그리고 자연도태와 양육강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근본은 실용주의적 혹은 이기주의적(egoism), 그리고 자기 보존적인 것이며, 자연을 인간중심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에 비하여 창조론적인 사고방식은 자연이 처음부터 한 설계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완벽한 피조물로서 조화, 균형, 그리고 질서 속에서 서로 상호화합하여 아름다움을 유지해 가는 것으로, 하나님의 성품인 이타주의와 자기 희생적 상리상생(相利相生)으로 보는 관점이다. 

식물은 진화론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관찰하는 식물의 외관적인 면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외관적인 면에서 몇 가지만 관찰해보자.

 

꽃은 '생존' 보다 아름다움이 더 큰 존재 이유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창:1143).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 1 :29).

이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꽃들이 존재한다. 들 위나 산야에 피는 이름 모를 꽃들에서부터 우리가 정원과 실내에서 재배하는 화초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어떠한 과학적 방법도 그 자연의 아름다운 색을 흉내내지 못한다. 또한 꽃은 갖가지 아름다운 색깔과 다양한 형태를 지니며. 종류에 따라 향기와 꿀까지 지니고 있다. 

꽃은 왜 피는가? 너무나 당연한 질문일지 모르겠다. 진화론적으로 꽃은 종족번식을 위한 수단으로 암술과 수술이라는 배우체를 만들며, 수분과 수정을 통하여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 따라서 꽃은 수분을 해주는 벌과 나비 등 많은 충매들을 유인하기 위해서 각기 독특한 아름다운 색과 다양한 형태들로 진화되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지 수분만이 목적이라면 색깔과 형태, 그리고 향기에 있어 그렇게 다양함이 필요할까? 

꽃은 색깔과 형태에 있어 매개체와 상호 진화해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같은 매개체를 이용하는 꽃들의 색과 형태의 다양함은 어떻게 설명되어질 수 있는가? 또한 매개체를 이용하지 않는 수많은 꽃들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굳이 생존만을 위한 것이라면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치장이다. 또한 단지 바람에 의해서 전파번식 되는 그러한 식물들은 왜 꽃을 가지기 위한 방향으로 진화되지 않았을까?

 

과실, 식물체의 잉여영양분 저장소 

과실을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꽃으로부터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꽃피는 식물은 열매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 열매란 자방이 성숙한 것으로 그 속에 씨를 가지고 있다. 열매 중에는 아몬드와 같이 딱딱한 것도 있고, 사과나 배와 같이 신선한 과실도 있다. 과실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진화론적인 사고방식으로 씨는 새로운 종자이고, 나머지 우리가 먹는 부분은 자손번식을 위한 영양분을 저장한 것이라고 한다. 나무에 달린 과실은 때가 되어 땅에 떨어지면 그 영양분을 이용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킨다. 단지 과실의 존재가치가 번식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수많은 과일이 각기 아름다운 색깔, 맛, 향기는 왜 생겨나며, 그리고 필요 이상의 풍성한 영양분은 왜 간직하는 것일까? 생존과 적응만이 목적이라면 각각의 독특성과 다양함을 지닐 이유가 없다. 사실 과실이란 식물체가 자기의 생명유지와 성장을 위한 필요성을 다 채운 다음, 또 다른 목적을 위한 잉여 영양분의 저장소인 것이다. 

가을날의 단풍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이루는가? 황홀할 지경이다. 이러한 조화와 아름다움이 우연히 생긴다는 말인가? 흔히들 우리는 추위가 오기 전에 나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엽록소를 파괴하고, 영양분을 체내에 보관하며, 그러한 일련의 과정의 산물로서 단풍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단풍의 색을 내기 위해서는 화청소(anthocyanin)라 불리는 일종의 플라보노이드 계통의 물질들이 새로 합성되어야 한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러한 생합성을 하는 이유는 자기 보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광합성은 생물권 성립의 핵심 

이제는 내면적인 면에서 생각해보자. 태초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나가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누구나가 의심없이 태양에서 오는 빛에너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생명체는 그 빛에너지를 그냥 이용할 수 없으며,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전환한 후에야 사용할 수 있다. 이때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최초의 기작이 바로 녹색의 식물체가 행하는 광합성이다. ”식물이 일광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에 벋어가며”(욥816). 식물은 태양을 향하여 녹색을 띤 잎을 벌리고, 태양 에너지를 받고, 기공을 통하여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사용해 광합성을 하며, 그 결과 모든 생명체의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합성하고 동시에 산소를 발생시킨다. 

광합성! 이 놀라운 생명 에너지의 비밀은 가장 작은 수은 전지보다 천만 배나 더 작은 보이지 않는 식물세포 세계의 소공장에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그리고 소음없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을 먹여 살리는 지상 최대의 공장에 주인이 없으며, 소음하나 없다니 참으로 기적 중의 기적이다. 따라서 식물의 광합성이야말로 생물권(biosphere)을 성립시키는 핵심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직물원료, 재목, 고무, 섬유, 유지, 연료 등 사람을 위한 모든 생산물은 바로 이 광합성이라는 신비스러운 과정을 통하여 생산되어진 것이다. 현재 우리는 아직도 광합성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이타주의와 상리상생의 창조질서 회복해야 

20세기 말 현재 눈부신 과학의 발달로 말미암아 인간이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 누릴수록, 지구의 생물권은 몸살을 앓게 되었으며. 마침내 오늘날에는 그 정도가 심화되어 위기의식까지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이상적인 기후변화와 더불어 대기오염이나 산성비, 이산화탄소의 증가에 의한 지구의 온난화 및 이상기후 발생, 오존층 파괴에 의한 유해 자외선 량의 증가 등으로 말미암아 생태계의 파괴가 점차 진행 중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서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땅을 정복하라”(창 1:27,28) 라는 말씀을 올바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인간은 땅을 지배하라는 하나님의 신적 위임을 마치 우리 인간에게만 귀속된 속성으로 잘못 판단하여, 인간이 피조물이기를 (자연과 화합하기를), 과학의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 포기함으로 마침내 인간과 환경과의 바른 관계를 상실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우리가 과학의 물밑에서 움직이는 진화론적인 사고방식 즉, 개인화, 소유화, 전문화되어지는 과정 속에서 전체 관계성에 대한 통찰을 잃어버렸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오늘날 환경보호론자와 범신론자들에 의해 주장되는 인간만의 행복과 건강만을 위한 생태계의 보호 및 환경보호에 대한 기독교인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진정한 에덴동산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곳으로 모든 생물체가 협력하는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모든 식물에 관한 신비를 단 몇 줄의 하나님 말씀으로 확연히 깨달을 수 있다. 창세기 1장 11-12, 29절과 2장 9절의 말씀으로부터 1)하나님은 식물체를 처음부터 각기 그 종류대로 만드셨으며, 2)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울 정도로 조화, 균형, 질서와 다양함을 갖춘 식물들을 만드셨으며, 3)식물들이 인간이나 동물들의 식물(음식물)이 되도록 만드셨으며, 나아가 4)인간 혼자가 아니라, 식물과 동물이 상호 공존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드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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