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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손기철
2004-07-26

식물의 신비 (1)


     식물은 진화론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많은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관찰되는 식물의 외관뿐 아니라 내적인 면에 있어서도 그렇다. 이 지구상에 수없이 많은 꽃들이 존재한다. 그 꽃들은 갖가지 아름다운 색깔과 다양한 형태를 지니며, 종류에 따라 향기와 꿀도 있다. 그러나 어떤 과학기술로도 산야에 피는 이름 모를 꽃에서부터 우리가 정원과 실내에서 재배하는 화초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흉내내지 못한다. 

꽃은 왜 피는가? 진화가설은 꽃이 종족번식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술과 수술이라는 배우체를 만들며, 수분과 수정을 통하여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 따라서 꽃은 수분을 해주는 벌과 나비 등 많은 충매들을 유인하기 위해 각각 독특한 아름다운 색과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지 수분만이 목적이라면 색깔, 형태 그리고 향기가 그렇게 다양할 필요가 있을까?

진화론자들은 꽃은 색깔과 형태에 있어 매개체와 상호 진화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같은 매개체를 이용하는 꽃이 색깔과 형태가 다양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되어 왔다면 같은 장소에서 자라는데, 어떤 식물은 일년생이고 어떤 식물은 다년생이 되는가? 또한 매개체를 이용하지 않는 수많은 꽃들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바람에 의해 전파번식되는 식물들은 왜 꽃을 피우는 방향으로 진화되지 않았을까? 

과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화론자들은 꽃에서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꽃피는 식물은 열매를 가진다고 생각하며 그 속의 씨는 새로운 종자이고 나머지 우리가 먹는 부분은 자손을 번식하기 위한 영양분을 저장한 것이라고 한다. 나무에 달린 과실은 때가 되어 땅에 떨어지면 그 영양분을 이용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실의 존재가치가 단지 번식이 목적이라면 수많은 과일의 아름다운 색깔, 맛과 향기는 왜 생겨나며 필요이상의 풍성한 영양분은 왜 간직하는 것일까? 생존과 적응만이 목적이라면 각각의 독특성과 다양함을 지닐 이유가 없을 것이다. 과실이란 식물체가 생명유지와 성장을 위한 필요성을 다 채울 뿐 아니라, 또 다른 목적-동물의 영양-을 위한 잉여영양분의 저장소인 것이다. 

식물은 크게 꽃, 열매, 잎, 줄기, 뿌리 등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수많은 식물들은 모두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삶을 영위하고있다. 진화론자들은 식물의 다양함은 환경에 따른 적응과 변이의 결과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고구마는 뿌리가 진화한 것이고, 감자는 줄기가 진화한 것이며, 완두는 잎이 진화하여 덩굴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왜 감자는 줄기가, 고구마는 뿌리가 진화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같은 환경에 사는 식물들이 잎과 줄기, 뿌리 그리고 열매가 서로 다른 것은 어떻게 해명해야 하는가? 우리가 흔히 알뿌리 식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이러한 식물들은 양분을 저장하는 독특한 땅속 저장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같은 환경속에서도 어떤 것은 뿌리가, 어떤 것은 잎이, 어떤 것은 줄기가 변형되어 저장기관을 형성한다. 형태 또한 다양하기 그지 없다. 우리가 먹는 마늘, 양파에서부터 백화, 수선화, 달리아, 글라디올러스 등의 조화를 생각해보라. 이런 것을 어떻게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흔히 환경에 맞게 변화되어 왔다고 한다. 차후에 구체적으로 다루겠지만 우리는 적응과 진화를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환경에 적응할 수는 있으나, 그 변화가 축적되어 새로운 종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가을의 단풍은 아름다운 색의 조화로 우리에게 황홀감을 준다. 이러한 조화와 아름다움이 우연히 생겨난 것일까? 진화론자들은 나무가 추위가 오기 전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 엽록소를 파괴하고, 영양분을 체내에 보관하며, 그러한 과정의 산물로서 단풍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단풍의 색을 내기 위해서는 당이 잎속에 축적되어야 하며, 카로틴과 크산토필, 그리고 화청소라 불리는 일종의 플라보노이드 계통의 물질이 새로 합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생합성을 하는 이유를 자기보존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진화가설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나뭇잎의 떨어짐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생명과 토양의 비옥함을 위한 자기희생이며, 떨어진 나뭇잎은 토양 속에 있는 수많은 미생물들에 의해 다시 식물체가 이용할 수 있는 무기물로 분해되고, 지력의 밑거름이 된다. 이러한 모든 상호관계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의해 처음부터 설계된대로 완벽한 조화와 질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창세기 1장 11-13절, 29-30절 그리고 2장 9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각기 그 종류대로 만드셨으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울 정도로 조화, 균형, 질서와 다양함을 갖춘 식물들을 만드셨으며, 식물이 인간이나 동물의 음식물이 되도록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알의 종자가 죽어서 완전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일련의 과정과 들에 핀 백합화의 아름다움을 보노라면 하찮은 식물에게까지 미치는 그분의 놀라운 사랑과 섭리를 알 수 있다. 창조주의 섭리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그분의 경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어찌 이와 같은 조화와 균형과 질서, 그리고 한치 오차없는 통합성과 합리성이 자연계에 편재할 수 있는가? 

모든 것에 확신과 믿음으로 일관해 온 과학자들일지라도 자연만물의 증거자료를 분석종합하여볼 때 과학적 탐구로는 지혜의 존재 그 자체는 알 길이 없으나, 놀라운 지혜의 손길은 의심할 수 없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보여 주셨던 보이지 않는 그분, 그 사실을 우리의 유추적인 논리로서도 넉넉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1:20) 이다. 

과학이란 하나님의 활동을 관찰하고 그를 통해 좀더 그분을 알고, 그분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는 활동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지구상에 사는 사람중 약 20%는 쌀을 주식으로 한다. 아시아의 경우 약 6천년 전부터 쌀이 경작되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모든 식물 중 쌀만큼 지속적으로 우리의 모든 노력을 경주한 것도 없을 것이다. 즉 가장 오랜 동안, 가장 인위적이고, 가장 극단적인 처리를 한 식물이라면 벼를 들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수천년 간, 증산과 품질향상을 위해 일반 재배법의 개선에서부터 방사선처리까지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해 왔다. 그러나 얻은 것은 무엇인가. 키가 크든 작든, 잘 생겼든 못 생겼든, 또는 생산량이나 저항성이 크든 작든 간에 결국 쌀을 얻었을 뿐이다. 

자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보존, 즉 생존이다. 그런데 왜 모든 생물체가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진화의 결과 얻어지는 이득이 무엇인가?

진화가설의 핵심 주장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화가설대로 태초의 한 하등동물을 생각해보자.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는 접어두고, 진화하지 않아도 생존하는데 이 생물체는 고등한 생물체로 진화해야 하는가?

아메바에게는 생의 목적도 사랑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소위 과학의 발달이라는 가면을 쓴 인간의 탐욕을 슬그머니 진화가설에 끼워 넣어 모든 생명체에게 확대하는 것은 왜일까? 

오늘날 수없이 많은 생물체를 보고, 그것의 복잡함을 따져서 진화의 서열을 정한다. 그러나 여기 중요한 점은 오늘날 진화가 잘된 생물체만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등생물까지도 엄연히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도 서로 직, 간접으로 상리상생하면서 말이다.

어느 생물체가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의 관계, 즉 생존만이 중요하다면 아메바가 가장 진화된 생물일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단순하면서도 최상의 적응으로(가장 경제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화가설은 필연성에 대한 해답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우연에 의해서, 몇 개의 원소가 모여 분자가 되고, 그것이 마침내 하나의 독립세포로 이루어졌다는, 순전히 물질론적인 진화가설로는, 무목적성 생명체인 아메바가 선택압에 의해서 최상의 생명체로 진화되어 왔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것으로 인간이 가지는 생명체 내부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삶에 대한 성스러운 명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이나 돌이나 다를 바가 무엇인가?

둘 다 분해해보면 똑같은 재료요, 더 따져보면 똑같은 분자나 원자로 이루어진 것 아닌가! 진화가설은 삶에 대한 성스러운 명령(인생의 목적)에 대해서는 이처럼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는 것이다. (계속)

 


출처 - 창조지 제 101호 [1997. 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3

참고 : 5772|5775|5788|5823|5855|5933|5938|5956|5978|6024|6050|6053|6056|6057|6114|6200|6236|6269

David Catchpoole
2004-05-14

유연한 식물들 

(Pliable plants)


      많은 식물들은 가혹한 조건 속에서도 견딜 수 있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여러 종의 열대성 박쥐들은 살아있는 큰 나뭇잎으로 텐트와 같은 피난처를 만든다. 박쥐들은 어떤 부위에서 나뭇잎을 깨물어 측면을 무너뜨려서, 자신과 새끼들을 보호하는 보금자리를 만든다.

이러한 텐트들은 살아있는 나무의 잎들로 만들어짐으로서, 그것들은 오랜 기간 지속되기 때문에, 박쥐들은 끊임없이 새로운 보금자리를 만들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나뭇잎들은 수분의 공급이 상당부분 차단되었으면서도, 어떻게 건강하게 살아있을 수 있을까?

코스타리카의 박쥐를 사용하여 여러 식물 종들의 나뭇잎을 연구한 연구자들은1 나뭇잎들의 수분 공급 도관들이 박쥐의 건축학적 이상한 행동으로 손상을 받았을 때라도, 몇몇 수분 공급 요소들이 남아있는 한2, 물 공급은 잎을 유지하는데 적절한 것을 발견하였다.

이것이 그렇게 되어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성경적 견해에 의하면, 그것은 하나님이 사람과 동물의 먹이로 정하신 것들은(창세기 1:29-30) 정기적으로 가지가 잘라지고, 뜯어 먹혀지고, 씹어 먹혀지고, 짓밟혀진다 해도 견딜 수 있도록 되어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식물들이 햇빛 에너지를 변환시켜 동물들의 먹이와 과일로 변환시키고 있을 뿐만 아니라, 동시에 부산물로 호흡할 수 있는 공기를 제공하고 있다는 사실은 전체 설계자가 우리들에게 남겨 놓은 것이라는 것이(로마서 1:20)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모든 것들은 우연히, 그리고 경쟁력이 원동력이 되어 생겨나게 되었다는 확실치 않은 추론적인 이야기(speculative story)로 이와 같은 것들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그래서 한 종이 다른 종에게 제공되는 어떠한 '봉사(service)‘도 어느 정도는 자신에게 유익이 됨이 틀림없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위에서의 ‘박쥐 텐트’의 경우, 연구자들은 식물의 ‘진화론적 이점’을 규명하려고 노력하기 때문에, 식물들도 유익한 점이 있었다고 제안한다. 그 제안은 박쥐에 의해서 눌려져 무너진 잎사귀들은 대신 바람과 강한 비에 손상을 적게 입었을 것이라는 것이다.

살아있는 생명체들이 엄청나게 복잡하다는 증거들이 끝없이 증가하고 있는데도, 이러한 우리 주변의 모든 세계들을 모두 우연히 저절로 생겨나게 되었다는 절름발이적 시도들로만 설명하려고 한다. 그러나 과학자들이 생명의 신비를 탐구하면 할수록, 더 많은 정교함과 복잡성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3

이것은 하늘과 땅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드신 여호와 하나님 한 분의 설계자가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를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신실하신 분이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편91:1)

  

References and notes

1. Lincoln, T., Greensleaves, Nature 410(6826):318, 2001, reporting on a paper by Cholewa E., Vonhof, M.J., Bouchard, S., Peterson, C.A., Fenton, B., The pathways of water movement in leaves modified into tents by bats, Biological Journal of the Linnean Society72(2):179–191, 2001.

2. The complexity of the leaf vein system is striking, described as having ‘an apparent hierarchy of some five conducting elements.’  Ref. 1.

3. For example, recent research has overturned the traditional scientific view that plant water-conducting tubes (xylem vessels), being composed of dead cells, function merely as pipes, passively supplying water to thirsty leaves.  Instead, researchers have uncovered a (previously unsuspected) sophisticated water transport regulation system, able to change flow rates both rapidly (within seconds) and reversibly, and which frequently repairs breaks in its water column.  Zwieniecki, M.A., Melcher, P.J. and Holbrook, N.M., Hydrogel control of xylem hydraulic resistance in plants, Science 291(5506):1059–1062, 200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4/i1/plantdesign.asp

출처 - Creation 24(1):56, December 2001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006

참고 :

손기철
2004-01-20

단풍과 낙엽


     이 가을에 삶의 숲속길을 걸어가며 숲속의 삶을 머릿속에서 그려본다. 단풍과 낙엽! 단풍은 우리들에게 지난 여름을 되돌아보며 마지막 화려함을 뽐내는 정열의 색이지만,낙엽의 파스텔풍색은 못내 아쉬웠던 일들의 추억들을 되새기며,새로운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색이다. 또한,낙엽과 단풍의 색조는 혹독하고 검은 겨울을 담담히 맞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순화(acclimatization)시켜주는 색이기도 한다.


녹색잎에서부터,오렌지색,붉은색,노란색,갈색에 이르는 단풍은 여름에서 겨울로 계절이 바뀌는 시기에 잎에서 일어나는 일종의 생화학 반응의 결과로서,밤의 길이와 계절의 변화와 같은 다양한 요소들에 의해서 잎에 있는 색소의 분해와 합성에 영향을 받는다. 봄ㆍ여름 동안에는 식물체가 좋은 환경하에서 생장에 필요한 에너지를 공급받기 위해서 광합성을 왕성히 하게 되는데,이때 잎에 녹색을 띠게하는 엽록소(chlorophyll)라는 색소(pigment)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또한,녹색에 가리워 잘 나타나지 않지만 노란색을 나타내는 카로티노이드(carotenoid)와 같은 색소도 존재한다. 한편,가을이 되어 광과 기온이 떨어지면 식물체의 활력이 감소되고,결국 광합성도 점차적으로 감소된다. 이러한 결과로 녹색색소인 엽록소는 분해ㆍ소실되어지고 대신에 카로티노이드 색소들이 발현하여 노란색의 단풍이 생기게 된다.

이와 더불어 식물체는 축적된 에너지를 이용하여 플라보노이드의 일종인 안토시아닌(anthocyanine)과 탄닌(tannin)을 합성하게 되는데,이 색소가 바로 다양한 단풍색을 내는 주원료가 된다.

흔히들 단풍과 낙엽은 추위가 오기 전에 나무가 자신의 생존을 위한 체내 영양분을 만들기 위해서 엽록소를 파괴하고,그러한 일련의 과정의 산물로서 단풍이 들고,겨울이 오면 얼어죽지 않기 위해서 낙엽이 든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좀더 자세히 관찰하면 식물은 아름다운 단풍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에너지를 들여 카로티노이드와 화청소(anthocyanin)라 불리는 일종의 플라보노이드 계통의 물질을 합성한다. 또한 단풍잎이 낙엽으로 되지 않으면 땅은 점점 더 메말라 아무것도 살 수 없게 된다. 따라서,단풍색이 아무런 이유없이 합성되는 것과 낙엽이 단지 얼어죽지 않기 위해서 떨어진다는 식의 자기보존적이고,자기중심적인 진화론은 설득력이 없다.

창조론적으로 볼 때 낙엽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생명과 토양의 비옥함을 위한 자기희생이며,토양속에 있는 수많은 미생물들에 의해 다시 식물체가 이용할 수 있는 무기물로 분해되고 지력의 밑거름이 된다. 결국,낙엽 그 자체로는 죽음이지만, 그것은 영원한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위한 기초를 놓는 것으로,많은 식물들에게 생명(영양분)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현상인 것이다. 자연의 평범한 현상에서도 역동적으로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본다 (롬1:20-21). 얼었던 땅이 녹고 뿌리가 물을 흡수하는 것은 마치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와 같다 (요7:37-38). 따뜻한 봄을 지나 여름에 녹엽이 우거진다는 것은 그분이 주시는 능력으로 아름다움과 풍성함 가운데 거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욥8:16). 예수님에 비유하면,녹색잎은 공생애의 사역이고,단풍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나귀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구속사의 마지막 장면과 같으며 (마21:1-11),낙엽은 십자가의 사건인 것이다. 한편,인간에 비유하면,녹색잎이 구원의 감격이라면 단풍은 성령님으로 인한 성숙의 아름다움이요,낙엽은 사역의 순종이다.

가을은 준비의 계절이다. 구원의 기쁨만으로 들떠 있을 때가 아니라, 성숙의 겸손으로 그분의 고통을 함께 나누기 위한 준비와 결단의 계절이다 (롬8:17). 주님은 일꾼이 필요하며 (마9:36-38),우리의 준비를 원하신다 (마25:1-13).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의 임재와 성령님의 교통하심과 기름부으심이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고후13:13). 이 가을! 성령님과 친밀함으로 단풍처럼 아름답게 준비하여,부르실 때 언제든지 낙엽처럼 순종하자.

 

*참조 : Leaves Don’t Fall; They’re Pushed (Headlines, 2008. 9. 22)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9.htm#20080922



출처 - 기독공보 2003.11.29.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539

참고 :

손기철
2004-01-16

하나님이 창조하신 꽃


    우리가 본다는 것은 크게 나누어 형태,질감,색채로 구분되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중 형태란 결국 색채의 차이에 의해서 우리에게 지각되는 것이기 때문에,이런 의미에서 볼 때 자연은 수많은 색의 복사원(radiation source)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러한 색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색이 미치는 심리적,정신적 작용의 영향력을 간과하고 있으나,우리 삶에 의식 혹은 무의식 측면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로,시각은 오감의 약 87퍼센트를 차지하는 가장 중요한 자극 수용체이다.

한편,우리는 이러한 복사에너지를 어떻게 지각하여 느낄 수 있는 것일까? 색채는 우리가 정확히 판단하고 언어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객관적 대상이기보다는 오히려 주관적,심리적이며,즉흥적인 기분에 의해 좌우되는 경향이 짙은 대상이다. 예를 들어,우리가 장미를 생각하면,금방 눈앞에 빨간 장미를 그려볼 수 있지만,실제로는 실외에서 보는 장미색과 실내에서의 색은 다르며,실내에서도 백열등 혹은 형광등 하에서 보는 색이 틀리며,또한 깜깜한 곳에서 보는 색이 틀리기 때문이다. 더욱이,시각을 통하지 않고 우리가 꿈속에서 빨간 장미를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라.

결국,이러한 사실은 어떤 색채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색채를 나타내는 대상물질뿐만 아니라,색을 띄게 하는 근원 즉,빛과 그것을 지각하는 인간 모두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인간은 어떤 대상을 통해서 다양한 색채를 인식해 왔을까? 당연히 자연일 것이며,녹색의 바탕 위에 그려진 수많은 다양한 모양을 가진 꽃들의 향연을 통해서 일 것이다. 산과 들에 피는 이름 모를 꽃 색들에서부터 정원과 실내에서 재배하는 화초의 색에 이르기까지,봄에 피는 꽃에서부터 가을의 단풍에 이르기까지,이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꽃 색들이 존재한다. 흔히 계절적 변화를 인식하고 적응하는 것은 춥거나 더운 환경변화에 의한 것으로 생각하지만,실제로는 자연의 색채변화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인류가 타락하기 전 자연의 수많은 꽃들을 바라보며 가장 먼저 지각된 느낌은 무엇일까? 아름다움이 아닐까 여겨진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꽃이라는 의미를 생각하면 아름다움이라는 단어와 직결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도대체, 아름다움의 근원은 무엇인가? 미학자들의 주장에 따르면,아름다움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그것을 지각하는 인간의 본질적 능력이 형상화된 것이라고 한다. 즉,아름다움을 느낀 다는 것은 이 대상 속에 인간의 본질적인 능력이 직간접적인 방법을 통해서 형상적으로 체현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들어,과학적 발견의 극치는 바로 아름다움과 일치한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거시세계에서부터 미시세계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질에 존재하는 조화,다양성 속의 통일성과 통일성 속의 다양성,균형,질서 등이 아름다움으로 체험되기 때문이다. 꽃이야말로 미학과 과학적 지식을 종국적으로 연결시킬 수 있는 아름다움의 근원적 발로이며,하나님의 창조섭리인 것이다 (창 1:31).



출처 - 기독공보 2003.11.15.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527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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