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의 경로
: 식물에서 발견된 또 하나의 놀라운 경이
(The Root Route)
David F. Coppedge
왜 뿌리(roots)들은 땅으로부터 똑바로 식물을 밀어올리지 않는가? 그것은 단지 한 과학자나 8살짜리 아이만이 물을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그 답은 질문자들이 물었던 것보다 더 놀라운 내용을 가지고 있다. 잔뿌리(root hairs)들은 그들이 뻗어나가는 진로(進路) 주위의 장애물들을 감지하고, 캄캄한 중에서도 단백질과 신호를 발하는 분자들의 복잡한 상호작용에 의해서 열린 통로를 발견한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Science Daily지(2008. 3. 3)에 실렸다.
잔뿌리의 끝에서 RHD2라 불리는 단백질의 생산은 자기강화 사이클(self-reinforcing cycle)에 의해서 조절된다. 장애물들은 그 사이클을 중단시키고 다른 방향으로 자라도록 한다. ”이런 놀라운 시스템은 식물들에게 복잡다단한 환경을 타개하고, 심히 예측불허의 토양까지도 개척할 수 있는 적응성을 제공한다” 라고 영국 노르위치(Norwich)에 있는 존 인네스 센터(John Innes Centre)의 리암 도란(Liam Dolan) 교수가 말했다. ”그것은 또한 묘목들이 일단 자리를 잡으면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자랄 수 있는지를 설명해 준다.”
가장 보잘 것 없는 잡초로부터 가장 키 큰 나무에 이르기까지, 식물들의 생태는 기발한 경이의 연속이다. 그들의 뿌리들은 바위와 같이 단단한 토양을 정복할 수 있고, 그들의 줄기들은 화강암을 부술 수도 있다. 뿌리들은 영양분과 물을 깊은 땅속으로부터 거의 100m 공중에 있는 미국 삼나무(redwood)의 꼭대기 잎까지 뿜어 올린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가능할 수 있을까? 우리는 그 비밀을 이해하는데 겨우 초보자일 뿐이다.
거시적 관점으로 식물을 바라보는 것은 그것의 경이로운 작용들의 대부분을 놓치기 쉽다. 젊은 학생들은 콩으로 과학 실험을 실시하곤 한다. 학생들은 뿌리는 내려가고 줄기는 올라가는 것을 관찰한다. 그것은 완전히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것이 왜 자연스럽게 보여야 하는가? 암석들, 자갈들, 기타 무생물들은 중력의 방향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장애물들의 무더기를 지나 아래쪽으로 돌아서 내려가지 않는다. 생명체는 프로그램 된 경이로운 분자적 기계들의 조절된 작동 및 운행과, 그리고 완벽하게 적응된 구성 물질들을 통하여 에너지를 붙잡아 동력화 함으로서, 자연의 물리법칙들(예로 중력)을 거슬러서 나아갈 수 있다.
학생들은 저가의 현미경으로 식물의 잔뿌리들을 관찰한다. 그들은 거기에서 특이하거나 흥미로운 사항을 발견하지 못할 수 있다. 시차를 두고 촬영하는 카메라로 시간 차원을 추가한다면 약간의 흥미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노 레벨의 고배율 현미경으로 사물들을 관찰할 수 있게 한 현대 생물학의 진보된 기술이 없었다면, 어느 누가 그런 미세한 뿌리털에서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바를 상상할 수 있었겠는가? 포장된 보도 불럭의 틈사이로 자라나는 잡초들은 그것을 분류해 놓은 교과서보다 더 많은 설계된 복잡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 당신의 정원에서 잡초들을 뽑아내고, 깎고, 농약을 칠 때, 죄의식을 갖지 않도록 노력하라.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8/03/the_root_route/
출처 - CEH, 2008. 3. 4.
단풍은 하나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Fall Colors Have a Function)
David F. Coppedge
낙엽수들은 서늘한 가을로 계절이 바뀌면 투자 결정을 해야 한다. 즉 광합성으로 만든 영양분을 일찍부터 뿌리로 보내야할지(이 경우 잎들은 가을 햇빛으로부터 손상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아니면 햇빛 차단제(sunscreen)를 만들기 위해 에너지를 소비할지(이 경우 잎들은 영양분들을 좀 더 오래 만들 수 있어서, 다가올 겨울에 좀 더 많은 영양분들을 뿌리에 저장할 수 있다)를 결정해야 한다.
그 결정 요인은 토양에 있는 질소(nitrogen)의 양이 될 수도 있다고, Geological Society of America(2007. 10. 25) 로부터 한 언론보도는 주장하고 있다. 북캐롤라이나 대학(University of North Carolina)의 대학원생들에 의해서 수행된 연구에 의하면, 질소 성분이 적은 토양에서는 그 투자가 햇빛 차단제를 만드는 쪽으로 기울어진다는 것이다. 그것은 붉은 안토시아닌(reddish anthocyanins)을 만드는 쪽으로 에너지를 쓰게 하고, 이것은 잎들이 더 오랫동안 척박한 토양으로부터 영양분들을 만드는 작업을 수행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질소가 풍부한 토양에서 자라는 나무들은 잎들이 떨어지기 전에 노란 색으로 간단히 바래진다는 것이다.
학생들의 지도교수는 말했다. ”우리가 가을에 보고 있는 아름다운 단풍 색깔들은 단지 사람들의 즐거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나무들의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며, 그들의 삶을 계속 이어가기 위한 것이다.”
지도교수의 말에는 몇 가지 문제점들이 있다. 첫째로, 식물들이 사람처럼 어떤 결정을 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다. 식물들은 무엇을 해야할 지를 결정할 수 있는 뇌(brain)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나무의 생존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사전에 프로그램 된 정교한 메커니즘 때문인 것이다. 나무들은 어떻게 안토시아닌을 제조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을까? 나무들은 어떻게 안토시아닌 분자들이 질소가 부족한 토양에서 더 많은 영양분들을 추출할 수 있도록 허락한다는 것을 미리 알 수 있었을까? 나무들은 생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인가? 물론 아니다. 발견된 메커니즘은 나무의 튼튼함을 위해서 정교하게 설계된 흔적을 가리키는 것이다.
두 번째 문제는 식물의 생존(plant survival)과 사람의 즐거움(human enjoyment) 사이에 이분법적 오류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기능들은 상호 배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또한 흥미로운 철학적 질문들을 일으키고 있다. 왜 사람들은 가을에 아름다운 단풍 색깔들을 즐길 수 있는 것일까? 후손을 만드는 것도 아니고, 양분을 만드는 것도 아닌데, 그러한 나무들의 아름다운 모습은 진화론적으로 무슨 유익이 있는 것인가? 사람들은 식량 근원들의 죽음에 대하여 놀라지 않고 아름다움을 느끼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지도교수는 ”그것은 단지 사람들의 즐거움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함으로서, 단풍을 보는 사람들의 즐거움이 하나의 목적이 될 수도 있음을 열어 놓고 있었다. 그러나 나무에게는 명백히 쓸모없는 것이지만, 사람들에게 아름답게 보여 즐거움을 주는 것이, 어떻게 진화론적으로 가치 있는 일인지를 그녀는 설명했어야만 한다. 진화는 그렇게 낭만적인 것이 아니지 않는가?
이것은 진화론이 우리 삶에서 영혼의 아름다움을 빼앗고 있는 또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가을의 황홀한 단풍 숲을 진화론자들의 생각을 가지고 걷고 있었다면, 아마도 기쁜 마음으로 걸을 수 없을 것이다.
*참조 : Leaves Don’t Fall; They’re Pushed (CEH, 2008. 9. 22)
https://crev.info/2008/09/leaves_don146t_fall_they146re_pushed/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7/10/fall_colors_have_a_function/
출처 - CEH, 2007.10. 27.
세균과 식물들은 네트워크 기술을 알고 있었다.
(Bacteria and Plants Know Network Tech)
David F. Coppedge
Science Daily (2007. 9. 27) 지의 한 기사는 "식물들은 서로 서로에게 경고를 보내는데 사용할 수 있는 대화 시스템(chat systems)들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하고 있다.
딸기(strawberry), 토끼풀(clover), 갈대(reed), ground elder 등과 같은 많은 초본(풀) 식물(herbal plants)들은 자연적으로 네트워크(network, 연락망, 통신망)를 형성한다. 각각의 식물들은 기는줄기(runners)들에 의해서 어떤 기간동안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이 연결은 내부 채널을 통해 식물들 상호 간에 정보를 공유할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 식물들은 무엇에 대하여 대화를 하는가? 위험이다. 그들의 "초기 경고 시스템”은 위험이 다가올 때 대비토록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네트워크를 통해 경고를 받게 되면, 식물은 그들의 화학적 기계적 저항성을 강화시킨다. 그래서 그들은 벌레나 유충들에게 덜 매력적인 식물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심지어 더 작은 생물체들도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을지 모른다. 필립 볼(Phillip Ball)은 Nature (2007. 9. 26) 지에서 "박테리아들은 토양에 전선을 깔고 있을 수도 있다”고 썼다. 믿거나 말거나 ”박테리아들은 토양을 하나의 지질 배터리(geological battery)로 변형시키는 전기적 전선망(webs of electrical wiring)을 싹트게 할 수 있다"고 한 연구팀은 주장했다. 일부 박테리아들은 대사반응 동안에 만들어지는 전자(electrons)들을 분로(shunt)시키는 ”나노 전선(nanowires)"들을 돌출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벤터 연구소(Venter Institute)의 한 지구화학자는 ”우리의 발아래 땅은 미생물들의 대사 시스템에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서 미생물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하나의 초거대한 회로(a gigantic circuit)로서 작동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였다. 만약에 그렇다면, 이 미생물학의 새로운 국면은 너무도 환상적이어서, 어떤 사람들이 받아들이기에는 고통스러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개념이 맞는 것이라면, 그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어떻게 이러한 놀라운 상호 네트워크들이 목표가 없고, 방향이 없고, 무작위적이고, 우연한 돌연변이들로 생겨날 수 있었을까? 그리고 이것은 치열한 생존 경쟁 이야기와는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네트워크 전문가들이 이들 보잘 것 없는 것으로 여겼던 생물체들로부터 일부 기술들을 배우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7/10/bacteria_and_plants_know_network_tech/
출처 - CEH, 2007.10. 1.
진화론적 개념과 어긋난 식물들의 세계 여행
(Plants' International Travel Upsets Evolutionary Idea)
그들은 토양에 뿌리가 내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식물(plants)들은 정말로 돌아다닌다. 그들 중 일부는 전 세계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한 예는 오랫동안 믿어져오던 진화론적 개념을 뒤엎어 버렸다.
무엇보다도, 식물들은 사회적 삶(social life)을 가지고 있었다. The Royal Society(2007. 6. 13) 지에 게재된 논문은 어떻게 식물들이 사회적으로 활동하고, 의사소통을 하는 지에 대해 보고하고 있었다. 캐나다 먹매스터 대학의 더들리(Susan Dudley)와 파일(Amanda File)의 연구에 의하면, 식물들은 인식력과 기억력이 결여되어 있음에도 복잡한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미대륙의 해변에 거주하는 야생화들은 관계가 없는 이웃들 옆에서는 공격적으로 자라지만, 그들 형제들과 토양을 공유할 때는 덜 경쟁적인 것이 발견되었다는 것이다. "식물들은 가족(family) 개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새로운 연구는 식물들이 함께 일하기 위해서 가까운 친척들을 확인할 수 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형제를 알아보는 능력은 동물들 사이에서는 일반적인 것이지만 식물에게도 이런 능력이 있다는 것은 처음 밝혀진 것입니다” 더들리는 말했다.
때때로 식물들은 휴가를 보내기로 결정한다고 National Geographic 기사가 설명했다. 상주하는 위치에서 식물상(flora)들이 자리 잡게 되면, 그들은 바람을 타고 이동하여 먼 거리의 땅에 뿌리를 내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식물들의 장거리 여행은 드물고 무작위적인 것으로 가정되어 왔었다. 그러나 9개의 북극 식물 종들에 관한 유전학적 연구는 그들이 출발점으로부터 1,000km(620 마일) 이상을 여행했음을 가리키고 있었다.
그러한 세계 여행이라는 탈출은 결과적으로 하나의 음모(conspiracy)가 되었다. Science Daily (2007. 6. 16) 지의 보도에 따르면, 케이폭 식물(Kapok plants)들이 남아메리카 대륙에서 대양을 건너 아프리카로 이동할 수 있었다는 것은 한 다윈 이론의 기초를 붕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케이폭 나무(kapok tree, 판야나무)는 이제 생물학자들이 수십 년간 매달려 있었던 한 개념을 뒤엎어버렸다. 그것은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의 열대다우림(rainforests)이 유사한 데, 이것은 두 대륙이 9,600만년 전에 연결되었기 때문이라는 개념이었다." 케이폭 씨앗들이 대양을 건너갈 수 있다는 것이 발견됨으로서, 이제 이 이론은 끌어내려지게 되었다.
대양을 건너 여행할 수 있는 또 다른 씨앗은 맹그로브(mangrove)이다. 무디(Moody)의 영상물 "생명체의 여행(Journey of Life)”은 어떻게 이 식물의 긴 씨앗 꼬투리(seed pods)가 소금기 있는 바다를 횡단하여 잠수함(submarines)처럼 여행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얕은 물에 도착하여, 한쪽 끝은 물에 흠뻑 적셔져서 가라앉고, 모래흙에 수직으로 꼬투리가 심겨지면, 새로운 맹그로브 숲이 시작되는 것이다. 코코넛(coconut)은 또 하나의 세계 순양함(cruiser)이다. 우리는 식물들이 한 장소에서만 고정되어 있다고 유감스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움직이고, 사회적 활동을 하고, 우리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먼 거리를 여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관련기사 : 식물도 제 형제 알아본다. (2007. 6. 15. KBS News)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1373733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7/06/plants146_international_travel_upsets_evolutionary_idea/
출처 - CEH, 2007. 6. 16.
식물의 피보나치 나선들에 대한 설명 찾기
(Seeking Explanations for Plant Fibonacci Spirals)
David F. Coppedge
아티초크(artichoke, 국화과의 다년초)에서의 나선 패턴(spiral patterns)들은 한 물리학자를 숨 막히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선인장(cacti), 해바라기(sunflowers), 딸기(strawberries), 아티초크 등과 같은 식물들은 어떻게 좌형 우형 나선의 기하학적 패턴들을 만들 수 있었을까? 왜 이들 나선들은 피보나치 수열(Fibonacci sequence)이라고 불리는 수학적 규칙들을 따르고 있을까? 한 새로운 이론에 의하면, 그것은 원뿔 형태 위에 지어지는 성분들의 구조에 있어서 최적의 에너지 배열이라는 것이다.
PhysOrg(2007. 5. 1. 사진을 볼 수 있음) 지의 한 논문은 북경대학의 세 명의 물리/수학자들의 이론들을 설명하고 있다. 그들은 원뿔 미세구조 위에 피보나치 나선들을 만들 수 있었다. 그들의 연구는 ”식물의 패턴들은 구 표면과 원뿔 표면 위에 상호 거부적 실재(repulsive entities)에 의해서 모델화될 수도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의 수학적 증명(mathematical proof)에 대한 좋은 이유를 생각해낼 수 없었다.
”구면 위의 패턴들은 이제 톰슨 문제(Thomson problem)라고 불려집니다. 이것은 일반 리스 문제(Generalized Riesz Problem)로 일반화되어 온 것입니다.” 카오(Zexian Cao)는 말했다. ”주어진 한정된 기하학에서 가장 작은 에너지 배열을 발견하기 위한 일반적 방법은 없습니다. 그리고 수치적 해결(numerical solution)은 컴퓨터와 과학자들 모두에게 엄청난 시간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발견한 가장 적은 에너지 해결책이 정말로 가장 적다는 것을 자신이 믿도록 만드는 것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수치적 해결은 증명(proof)으로서 결코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카오는 이 현상을 설명하는 어려움을 물리학에서 '당혹(embarrassment)”이라고 말했다. 또한 최근의 설명은 잎사귀 꼭대기에서 일어나는 수학적 정렬이 어떻게 DNA 속에 암호화되어 들어갈 수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데에 실패했다.
01/21/2003과 11/20/2003의 주석을 보라. 이 논문은 4년 전에 논의되었던 문제점들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7/05/seeking_explanations_for_plant_fibonacci_spirals/
출처 - CEH, 2007. 5. 6.
식물은 훌라후프 모양의 철도로 세포벽을 건설한다.
(Plant Hula-Hoop Railroads Build Cell Walls)
David F. Coppedge
식물의 세포벽(cell walls)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에 관한 오래된 신비가 마침내 풀렸다. 스탠포드 대학의 과학자들은 세포 안쪽의 둘레를 훌라후프 모양의 고리를 따라 움직이는 분자 기계들을 생생하게 묘사하였다. Science 지(9 June, 2006)에 게재된 글에서, 파라데즈(Paradez) 등은 셀룰로오스(cellulose)를 제조하는 기계인 셀룰로오스 신타제(cellulose synthase, CESA)가 원형질막 안쪽을 일주하는 미세소관(microtubules) 위에 철도 차량(rail car)과 같이 올라타고 있는 것을 입증했다. 거기에서 기계들은 외부 쪽으로 복잡한 분자들을 밀어내어 단단한 세포벽을 건설한다는 것이다.
Science 의 같은 이슈에 대한 논평에서[2] 로이드(Clive Lloyd)는 과학적 업적뿐만 아니라 식물 자체에 대해서 매우 놀란 것처럼 보였다 :
”일련의 놀라운 생물학적 변환을 통해서, 녹색 식물들은 이산화탄소를 강철보다 더 강한 셀룰로오스 섬유(cellulose fibers)로 전환시킨다. 이들 중합 포도당(polymeric glucose)의 가느다란 실들은 자라나는 세포 주변을 칭칭 감아, 식물들이 환경으로 더 확장되어질 수 있는 구조적 버팀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섬유들은 단순히 무계획적 방식으로 식물 세포벽 안으로 분비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명령받은 장소에 놓여져서 세포가 계속 확장되도록 하는 것이다. 40년 이상 동안 이들 세포벽에 있는 셀룰로오스 섬유인 미소섬유(microfibrils)들의 정렬이 원형질막의 세포질 쪽으로 매어져있는 세포골격 미세소관(cytoskeletal microtubules)들와 종종 일치한다는 것은 알려져 있었다.... 이러한 일치에도 불구하고, 미세소관들이 셀룰로오스 섬유들의 정렬을 이끄는 메커니즘을 제공한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결코 없었다. 이제 1491 페이지에 있는 그 주제에 관한 이슈에서, 파라데즈 등은[1] 그 증거를 제공하고 있다.”
로이드는 세포를 둘러싸고 있는 테(hoops)들을 셀룰로오스 합성 기계들에게 도로를 제공하고 있는 ”미세소관 철도(microtubule railroad)”라고 묘사했다. 분명 이들 소관들은 아마도 훌라후프 방식처럼 그들 스스로 방향을 수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식물들이 더 큰 힘을 받을 수 있도록 기계들이 셀룰로오스의 교차평행선(cross-hatch) 패턴으로 부착되게 할 것이다.(01/16/2003을 보라).
[1] Paradez, Somerville and Ehrhardt, Visualization of Cellulose Synthase Demonstrates Functional Association with Microtubules, Science, 9 June 2006: Vol. 312. no. 5779, pp. 1491 - 1495, DOI: 10.1126/science.1126551.
[2] Clive Lloyd, Microtubules Make Tracks for Cellulose, Science, 9 June 2006: Vol. 312. no. 5779, pp. 1482 - 1483, DOI: 10.1126/science.1128903.
뾰족한 풀들이 어떻게 하늘로 뻗어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놀라워하거나 박수갈채를 보낸 적이 있는가? 식물들은 단지 우연히 생겨나지 않았다. 식물들이 복잡하고 프로그램된 도구들에 의해서 정렬되지 않았다면, 그리고 명령된 구조로 한 조각씩 건설되지 않았다면, 중력에 대항하여 위쪽으로 자랄 수 없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이러한 건설 과정에 철도들과 놀라운 유기화학물질들로 가득 찬 철도차량이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포벽의 구성성분들이 제조되고, 모여지는 방법은 그 자체가 경이로움이다. 식물이 강철(steel)보다 더 강한 물질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당신은 아는가? 그것은 기체인 이산화탄소(carbon dioxide)로부터 시작하여 놀라운 일련의 생물학적 변환(biological transformations)들을 통하여 만들어진 것이다. 이것은 얼마나 놀라운 창조인가!
(이들 논문에는 이들 경이로운 과정들이 어떻게 진화되었을 것인지에 대해서 어떠한 언급도 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참조 : Lipid rafts: evidence of biosyntax and biopragmatic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3/j20_3_66-70.pdf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6/06/plant_hulahoop_railroads_build_cell_walls/
출처 - CEH, 2006. 6. 9.
식물도 면역계를 가지고 있었다.
(Plants Have an Immune System, Too)
David F. Coppedge
동물들은 혈액 중을 유영하며 순찰하고 있는 군대들이 있어서, 질병과 싸우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식물들은 어떻게 질병과 싸우고 있을까? 식물들도 박테리아에서부터 곰팡이, 벌레들, 그리고 곤충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해충들에 노출되고 있다. 중추신경이나 순환계도 없는 이들 점잖은 녹색 친구들은 침입자들에게 좌지우지되고 있을까? 그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Nature 지(Nov 16, 2006)에서 두 생물학자는 "식물의 면역계(the plant immune system)”에 대해서 기술하였다.[1]
"식물들은 포유동물들과는 달리, 이동하는 방어 세포들과 체세포 적응성 면역계(somatic adaptive immune system)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 논문의 저자들은 쓰고 있다. "대신 그들은 각 세포의 선천성 면역(innate immunity)과 감염부위로부터 발산되는 체계적 신호(systemic signals)들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들 신호들은 특별한 단백질들이 자지 자신의 것인지 외부에서 온 것인지를 구별하는 것을 돕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많은 단백질 부분들이 관여되는 두 분화된(two-branch) 그리고 네 단계(four-stage)의 시스템을 기술하고 있다. 많은 부분들이 아직 이해되지 않고 있지만, 그들의 기술로서 알 수 있는 것은 식물들의 면역계는 매우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잘 작동되고 있음에 틀림없다. 간단히 말해서, "대부분의 식물들은 대부분의 병원균들의 감염에 대해 저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했다.
[1] Jonathan D. G. Jones and Jeffery L. Dangl, The plant immune system, Nature 444, 323-329 (16 November 2006) | doi:10.1038/nature05286.
저자들은 진화론적 언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정말로 불필요한 것이다. 그들은 피자식물(angiosperms)들이 그들을 이용하여 진화한 병원균들과 어떻게 동시에 진화될 수 있었는가에 대해서, 그리고 그들 사이의 진화론적 무기 경쟁이 어떻게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는 지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들의 설명은 사물들이 우연히 생겨났다는 개념을 좋아하는 무신론자들의 필요를 만족시킬 수는 있겠지만, 경험적 증거들에 의한 것이 아니며, 목적론과 유사한 것이었다.
식물과 병원균들은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상호작용 시스템의 부분들이라는 한 신선한 개념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식물들은 생태계에서 그들의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서 번성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식물들의 번성이 견제되지 않는다면, 과도하게 일어날 수도 있다. 병원균은 엔진에 대한 조절기로서, 또는 과속 시의 브레이크처럼 역할을 할 수도 있다. 병원균들은 그들의 역할에 대해서 식물들을 먹이로서 지불받는다.
균형이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전체 개체군은 붕괴된다. 이때 우리는 병원균을 악한 것으로 나쁜 것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개체가 불균형이 되는 이유는 하나의 흥미로운 질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불균형을 생존과 이기적 행동의 투쟁 결과로 보는 진화론적 생각은 생태계에 대한 경험적 연구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것은 과학이 아니라 철학이다. 과학으로서 자격은 이 세계에서 관측된 원인과 결과로부터 얻어진 원리들을 적용할 때 갖게 되는 것이다. 복잡한 기계들과 정보 시스템들을 포함하고 있는 상호작용 시스템을 보게 될 때, 어떤 지성이 그들의 기원과 관련되었다고 추론해볼 수 있다. 그것이 과학이 말하고 있는 전부인 것이다. 생물세계에 대한 더 깊은 이해가 있을수록 지성의 개입은 더욱 분명해 보인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6/11/plants_have_an_immune_system_too/
출처 - CEH, 2006.11. 26.
생명체에 작용하는 동력학 법칙 Ⅰ
이정자
첨단과학이 발달하고 생명체의 신비가 속속 밝혀져 생명체를 복제하기에까지 이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생명체의 여러 가지 현상을 연구하여 전산 처리(시뮬레이션) 한다는 것은 그 현상의 수학적 원리를 알아냄을 뜻한다. 과학자들이 아직 창조와 창조물의 모든 수학적 알고리즘을 알아내지 못하고 있으나, 그러나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질서정연하고 완벽하게 만물을 창조하셨기 때문에, 언젠가는 자연의 모든 현상들의 수학적 표현을 발견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물론 유한(有限)한 존재인 인간에게 능력과 지혜의 한계가 있어 자연의 모든 수학적 알고리즘을 밝히는 것이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주와 만물에 들어있으나 보이지 않는 질서, 또는 밖으로 보이는 수학적 질서를 계속 관찰하고 찾아내게 될 것이다.
IBM 연구원으로 수학에 관계된 많은 상을 받은 바 있는 예일 대학 출신의 피코버(Clifford A. Pickover) 박사는 '하나님(God)이 수학자인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우주라는 천을 수학이라는 베틀로 짜셨다”고 그의 유명한 저서인 '하나님의 베틀(The Loom of God)”에서 말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말을 이렇게 바꾸어 말하고 싶다. 즉 '하나님은 피보나치수열이라는 베틀을 이용하여 생명체를 이루셨다”고 말이다. 생명체를 깊이 들여다볼수록 피보나치수열로 이루어지는 법칙이 거의 모든 생명체와 자연계의 생존 질서에 여러 가지 양상으로 깊이 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공간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두 물질의 위치 상태를 유지하게 하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존재하고 있는 것처럼, 생명체 존재와 형태 안에 다양한 모습으로 피보나치수열로 만들어지는 법칙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피보나치수열
피보나치수열이란 생명체의 일정하고 영원한 번식 현상을 수열로 표현한 것으로 이태리의 유명한 수학자인 피보나치(Leonardo Fibonacci : 1170?~1250?)가 그의 저서에서 생후 한 달이 지난 암수 한 쌍의 토끼가 성숙해지는 두 번째 달부터 시작하여 이 두 마리의 토끼가 매달 새로운 한 쌍을 낳는다고 할 때 얼마나 많이 번식해 나갈 것인가를 제시한 것이다. 처음 어린 1쌍이 한 세대 후에 성숙한 1쌍이 되어 새끼 1쌍을 낳으면 모두 2쌍이 되고 성숙한 1쌍은 계속 1쌍을 더 낳고 미성숙한 1쌍은 어른이 된다. 그러면 3세대 후엔 모두 3쌍이 존재한다.
각 세대별로 모든 쌍의 수를 적어 나가면 1,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이다. 이것을 피보나치수열이라 하고, 여기에 나타난 수들을 피보나치 수라고 한다. 피보나치수열은 단순히 토끼 번식에만 해당하는 수의 나열이 아니다. 이것은 바로, 번식하는 모든 생명체의 개체 수 번식의 끊임없는 증가 과정을 수학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새끼가 일정기간 성숙한 후에 어미가 되고 계속하여 번식을 되풀이하는 것은 생명을 가진 동물의 세대 보존의 기본 원칙이다. 그러므로 모든 살아 있는 생명체는 피보나치수열의 패턴에 따라 원칙적인 번식을 되풀이하게 된다. 물론 한 세대에 여러 쌍의 새끼가 나올 수도 있고 어미나 새끼의 쌍이 중도에 죽을 수도 있지만, 죽음이 없이 영원히 이어지던 자연의 창조질서에 따른 단위 형태의 삶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태초에 창조주가 이 세상을 창조할 때의 생명체의 죽음(삶의 영원한 중도 멈춤이라 할 수 있는)이 없는 무한한 생명, 즉 영생하는 생식(번식)의 기본이 되는 수학적 원리가 바로 피보나치수열로 표현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번식 뿐 아니라, 생명체 개체의 존재 상태나 존재 질서, 존재 이유 등 많은 부분에 피보나치수열의 원리가 적용되고 있다. 앞으로 식물계 또는 동물계에 보이는 여러 가지 현상에 어떻게 그와 같은 법칙이 공통 도구로 적용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식물계
우선 식물의 모양이나 성장에 관한 여러 현상들을 살펴가며 우리는 이 식물에 존재하는 이와 관계된 모든 질서와 조화가 긴 세월을 통해 우연히 식물에 깃든 것이 아니라 식물을 설계한 디자이너의 완벽한 작품임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자기가 살아야 할 자리를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을 지녔기 때문에, 스스로 자유롭게 옮겨 다니며 번식할 수 있게 만들어진 동물보다 오히려 번식에 더욱 충실하게 설계된 식물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꽃잎, 줄기, 불규칙하게 솟아난 것처럼 보이는 나뭇가지들의 모습 등에서 일정한 수학적 패턴을 관찰할 수 있다. 패턴은 다양해 보이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기본적인 원리는 피보나치수열임을 관찰할 수 있다.
영국의 생물학자 다르시 톰슨(D'Arcy Wentworth Thompson 1860-1948)은 이미 식물이 특수한 숫자나 기하학적 나선과 관계가 있다는 것을 관찰했다. 그리고 숫자와 나선들 사이에 깊은 관계가 있다는 것도 관찰하고 연구하였다. 18세기 중반에 수학자들은 솔방울에 나타나는 나선을 연구하였다. 19세기에는 밀집한 씨들이 서로 교차되는 두 집단의 나선을 이루는 것을 근거로 식물의 기하학적 접근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런 관찰은 단순한 관찰에 그쳤다. 20세기 말에 이르러서야 이미 우리에게 잘 알려진 해바라기 씨에 대한 수학적 연구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식물성장에 피보나치수열이 동력학적 제한으로 작용함이 밝혀졌다. 식물에 수학적 패턴이 보이는 이유는 식물이 가지고 있는 단순한 유전적 형질로 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식물의 수학적 패턴은 물리적 세계의 법칙, 즉 자연의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수학적 법칙으로부터 야기된다는 것이다. 물리적인 세계의 내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만유인력의 법칙이 작용하듯 생명체의 세계에는 피보나치수열로 설명될 수 있는 또 다른 식물 창조 법칙이 동력학적으로 피할 수 없게 적용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식물의 배아 발아
식물의 종자에서 싹이 트는 발아 과정을 전자현미경으로 들여다보면 나중에 식물이 자라서 잎이 될 것, 줄기가 될 것, 또는 꽃잎이 될 것들인 원기(primordia)라고 불리는 아주 조그만 것들이 모여 자라남을 볼 수 있다.
그 싹의 끝부분은 둥근 정단(apex)을 이루고 있으며, 정단의 주위에 원기라고 불리는 극히 작은 덩어리가 한개 씩 생겨난다. 성장 후에는 잎이나 줄기나 꽃받침, 꽃잎 등을 이루게 될 이 조그만 원기는 정단의 중심부 가까운 쪽에서 발생해 자라면서 계속 안쪽에서 생기는 원기들로 인해 바깥쪽으로 밀려나게 된다. 정단 주위에 원기들이 발생하는 순서대로 1, 2, 3, … 번호를 붙여보자. 번호의 숫자가 클수록 나중에 발생하는 원기를 의미하게 된다. 원기에 적힌 번호들을 살펴보면 중심부터 점점 넓혀지는 원둘레를 따라가며 원기가 순서대로 발생하지 않고 아무 곳에나 제멋대로 원기들의 발생 번호가 붙여진 것 같은 것을 보게 된다. 그러나 식물이 디자인되었다면 식물의 어느 부분이라도 결코 ‘제멋대로’의 법칙이 성립하는 곳은 없을 것이다. 이제 원기들의 발생 순서에 어떤 법칙이 숨어있는지 살펴보기로 한다.
그림 <원기발생 순서와 이중나선구조>에서 붉은 선으로 이어진 7번째 원기 중심과 정단의 중심과 8번째 원기의 중심을 이은 선은 직각인 90도보다 더 벌어진 일정한 각을 만든다. 이런 현상은 연이어 발생하는 모든 원기들에 공통된다. 항상 n번째와 n+1번째 발생한 원기들이 이루는 일정한 이 각은 137.5도이다. 이 일정한 각을 발산각(divergence angle) 또는 극한개도라 부르며, 어떤 연속한 두 쌍의 번호에 대하여도 동일하게 137.5도를 이룬다. 이 각은 바로 피보나치수로부터 만들어진 특수한 각으로 황금 각(golden angle)이라고 부른다.
황금 각은 이웃한 두개의 피보나치 수들이 이루는 비의 극한값을 360도로 환산하여 만든 각 중에서 180도 보다 작은 쪽의 각을 말한다. 즉 1, 1, 2, 3, 5, 8, 13, … 의 피보나치수열에서 n, n+1 번째 항의 수를 an, an+1 이라 하면
이다.
또 한 가지 원기발생순서도에서 살펴볼 수 것은 이중 나선이다. 모든 발생 원기들을 중심에서부터 바깥쪽을 향하여 왼쪽으로 도는 나선과 오른쪽으로 도는 나선으로 원기들이 하나도 빠지지 않도록 촘촘히 이어보면 이중 나선이 그려지고 이 나선을 생식나선(generative spiral)이라고 부른다.
이어진 하나의 생식나선을 보면 원기들에 적힌 수치들이 일정한 값의 차이를 보임을 알 수 있다. 이 수치의 차이는 왼쪽으로 도는 나선과 오른쪽으로 도는 나선 사이에 차이가 있다. 오른쪽으로 도는 나선의 원기발생 차례 번호는 8, 16, 24, 32, 40, 48 ... 로 이어진다. 그 바로 위의 오른 나선은 3, 11, 19, 27, 35, 43, 51 ... 이다. 원기 발생순서가 어느 나선이나 수 8씩 차이가 난다. 이번에는 왼쪽으로 도는 나선을 따라가 보자. 왼쪽으로 나선을 그리는 원기 발생순서는 1, 14, 27, 40, 53, … 이다. 그 밑으로 그어지는 왼쪽으로 도는 나선은 9, 22, 35, 48, … 로 발생순서가 이어진다. 왼쪽으로 도는 나선에 나타나는 원기 발생순서는 모두 수 13씩 차이가 난다. 8과 13은 연속한 피보나치 수이다.
왜 원기들이 정단 위에서 황금각을 이루며 자라나서 잎이나 줄기나 꽃받침이나 꽃잎을 이룰까? 만약 연속 발생하는 2개의 원기들이 황금각을 이루지 않는다면 어떤 현상이 나타날 것인가를 살펴보기 위해, 정단 위의 연속하는 두 원기들이 137.3도를 유지하는 경우를 가정하고, 또 다른 각(角) 137.6도를 유지한다고 가정한 경우의 예를 들어보자. 즉 발산각이 황금각보다 작은 137.3도라고 가정한 경우와, 발산각이 황금각보다 큰 137.6도인 경우를 가정하여 발산각이 황금각인 경우와 비교해 보면 다음과 같은 모양을 나타내게 된다. 즉 현미경으로 관찰되는 주어진 좁은 공간에 가득하게 원기들이 들어차지 못하고 엉성하게 나열되어 생명체를 유지하기 위한 최대의 효율성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146호, 2006년 7-9월호
식물의 기공들은 독립적으로 개폐된다.
(Plant Pores March to Their Own Beat)
David F. Coppedge
식물들은 열렸다 닫혔다 하는 기공(stomata)이라고 불리는 구멍들을 가지고 있다. 식물 잎 표면에 있는 이들 문들은 침입자들로부터 식물을 보호하고, 주변 상황에 따라 안과 밖으로 가스들과 수증기가 증발할 수 있도록 한다. 많은 식물들의 기공들은 낮 동안에 이산화탄소를 받아들이기 위해 넓게 열려지고, 밤 동안에는 수분의 손실을 막기 위해서 닫혀 진다. 어떤 식물들에서는 그 주기가 뒤바뀌어 있다.
기공들의 개폐는 어떤 종류의 신호처리 체계(signalling system)에 의해서 함께 이루어지는 것처럼 여겨졌었다. 그러나 새로운 연구는 그들이 독립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EurekAlert(2006. 12. 20)는 과학자들이 기공들의 기능에 대한 ‘논리(logic)’를 발견했다고 보고하였다. 레이저를 사용하여, 그들은 흥미 있는 몇몇 사실들을 발견했다 : (1)기공의 열려짐은 포토트로핀-1(phototropin-1)이라고 불리는 감광성 단백질(light-sensitive protein)의 분비에 의해서 시발된다. 그리고 (2)그것은 세포 내부에 도달한 빛의 양(amount of light)에 의존하고 있었다. 몇몇 알려지지 않은 세포 신호들이 잎의 내부와 외부 사이에서 발생한다. 이것은 이제 이해되기 시작하고 있는 영역이다.
핵심은 이들 잎들에 있는 개폐식다리(drawbridges)들의 독립적 작동은 햇빛을 거두어들이는 가장 효율적인 수단을 제공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은 햇빛이 들고, 다른 반은 그늘이 지게 된 한 식물 잎을 숙고해 보라. 단지 반만의 빛을 사용하기 위하여 다른 모든 기공들이 열리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기공의 자발성(stomata autonomy)은 식물들에 이점을 가져다준다. 빛이 쪼여지는 부분의 기공은 열려지고, 그늘 진 이웃 기공은 닫힌 채로 유지된다.”고 논문은 설명한다. ”이러한 행동은 수분의 손실과 CO2 흡수 사이에 균형을 최적화한다.” 연구원들은 포토트로핀-1의 감수성은 빛이 쪼이는 잎에서는 그 문턱치(threshold) 바로 위에 있었고, 그늘진 잎에서는 아래에 있음을 발견하였다.
언론 보도는 이 발견이 ”다른 많은 광-유도성 과정(light-induced processes)들에 의한 세포 신호와 세포 자발성”에 관한 심도있는 연구를 자극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러한 논평들에서 누가 다윈의 냄새가 난다고 하겠는가? 생물체에서 작동되고 있는 ‘논리’는 지적설계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신선한 바람은 연구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을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6/12/plant_pores_march_to_their_own_beat/
출처 - CEH, 2006. 12. 22.
생명체에 작용하는 동력학 법칙 Ⅱ
이정자
지난 창조지의 <생명체에 작용하는 동력학 법칙Ⅰ>에서는 동물의 번식에서 얻어낸 일정 법칙이 식물 성장에 있어 눈에 보이지 않는 배아 발아에도 작용하고 있음을 소개하였다. 이어 이번에는 식물의 외형에 작용하여 우리 눈으로 쉽게 확인 할 수 있는 동일한 법칙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꽃잎과 나뭇잎
꽃잎의 개수는 식물의 92%에 달하는 거의 모든 꽃잎이 3장, 5장, 8장… 으로 되어 있다. 백합꽃이나 붓꽃은 꽃잎이 3장이고, 채송화, 무궁화는 5장, 코스모스는 8장, 금잔화는 13장, 치커리는 21장, 데이지는 34장의 꽃잎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수들은 바로 피보나치수이다. 그 다음엔 나뭇잎을 살펴보자. 꽃잎의 경우보다 엽서(葉序), 즉 잎차례에서 피보나치수열을 더욱 잘 관찰할 수 있다. 잎차례라는 것은 식물의 줄기에 잎이 나와 배열되는 방식을 말한다. 가장 흔한 잎차례인 나선잎차례에서는 계속해서 난 2장의 잎을 줄기를 기준 축으로 하여 수직 위 또는 아래에서 보면 이 2장의 잎은 일정한 각도를 이루고 있는데, 이 각도를 개도(開度)라 한다. 나선잎차례에서 밑에서부터 각 잎이 줄기에 붙어있는 부착점을 차례로 연결하면 나선이 그려지는데, 이를 기초나선이라 한다.
삿갓나물같이 줄기의 한 곳에 여러 개의 잎이 돌려나거나 질경이같이 모여 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식물의 잎차례의 특성은 마주나기이거나 어긋나기이다. 마주나기는 한 곳에 두 개의 잎이 마주나지만, 이 경우에도 어긋나기에서와 같은 법칙을 살펴볼 수 있다. 어긋나기에서 줄기의 특정한 자리에 돋아나는 잎을 기준(0번)으로 하여 그 잎에서부터 몇 바퀴 줄기를 돌아 올라가서 다시 처음 지정했던 특정한 자리의 잎과 줄기 위쪽의 동일한 직렬선(直列線 : orthostichy)에 다른 잎이 처음으로 놓이는 경우, 그 잎을 y번째 잎이라고 하면 여기서 y는 바로 피보나치 수가 된다. 즉, 땅위 줄기 위의 k번째 잎에 대해 k+y번째 위치에 있는 잎이 k번째 잎의 직렬선과 처음으로 만나게 됨을 말한다.
늦은 봄, 낮은 산이나 들에 향기 진한 흰 꽃이 피는 조팝나무 한 가지를 붙잡고 잎이 나온 모습을 관찰해보면, 위 그림과 같은 성질을 관찰할 수 있다.
위의 그림 <조팝나무 가지의 잎차례>는 y = 5 인 경우이다. 그러므로 특정한 시작 위치의 잎의 번호를 0번으로 하고 나무 가지를 돌아 올라가며 잎을 만날 때마다 1번, 2번, … 이라고 번호를 붙여주면, 결국 y번째 잎이 될 때 360도 한 바퀴를 돌아 동일한 직렬선에 오게 되므로, 각 지나온 잎의 벌어진 각도는도가 된다.
이처럼 줄기 위에 잎이 돋아날 때에도 피보나치수열에 의해 잎의 나는 자리와 반복되는 잎의 개수가 결정된다. 조팝나무 뿐 아니라 주위의 많은 나무 가지, 또는 풀(줄기가 길게 올라온)의 잎이 솟아난 모양을 관찰해도 동일한 성질이 발견된다.
소나무나 잣나무와 같은 침엽수의 잎차례에서도 예외 없이 똑같은 법칙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잣나무의 바늘 같은 가느다란 잎은 나뭇가지의 한 점에서 동시에 4잎의 침엽 다발이 자라 나오는데, 이 침엽 다발을 계속 따라가며 관찰하면 한 다발 생성 점의 위치가 나선을 따라 돌아 올라가며 약 27.7도씩 이동하고 정확하게 13번째가 되면 완전한 한바퀴 360도를 돌게 되므로, 특정한 한 다발 자리를 기준으로 시작했던 0번째(그림의 아래쪽 빨간 점)의 침엽다발과 같은 위상(직렬선상)의 나선 위에 침엽 다발(그림의 위쪽의 점)이 자라 나온다. 이렇게 나선을 돌아 올라가며 일정한 각을 유지하여 식물의 잎이 배열되므로, 식물이 자랄 때 위쪽에서 자라는 나중에 돋은 잎이 이미 먼저 자라서 아래쪽에 놓여있는 잎에 쪼이는 햇빛을 가리지 않게 된다.
<잣나무의 주기=13인 잎차례>
식물의 모든 잎들이 자라나는 순서나 시기에 관계없이 사이좋게 동등한 탄소동화작용을 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바로 이 방법이다. 이런 현상은 태양을 골고루 쪼이고 탄소동화작용을 원활히 하기 위해 식물 스스로 정확한 각도를 계산해 원하는 위치에 잎이 솟아났다고 생각할 수 있을까?
많은 식물들이 진화를 계속하고 있는 상태라면, 현재 나무에 따라 주어진 피보나치수를 정확하게 이루고 있는 잎차례는 이제 또 다른 어떤 각도(또는 현상)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바뀌어 가고 있는 것이라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나뭇가지
앞에서 계속 관찰해온 것처럼 식물의 꽃잎이나 나뭇잎에서의 피보나치수열의 적용은 한 두 종류의 식물에서 발견되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거의 모든 식물의 꽃이나 잎에서 발견할 수 있는 수학적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동일한 한 식물체 안에서 꽃잎이나 나뭇잎에만 어떤 특정한 법칙이 작용할 것인가? 만일 그 법칙이 특정한 식물 종류에만 적용되는 법칙이 아니라 자연의 모든 생명체에 적용되는 동력학 법칙이라면, 꽃이나 나뭇잎 뿐 아니라 나뭇가지에도 같은 법칙이 적용됨을 관찰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 나뭇가지의 성장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우선 싹이 터서 처음 가지가 나오면 일정기간 자라야하고 일정기간동안 자란 후에는 곁에서 가지가 터나온다. 그러면 나무는 두 갈래로 갈라져서 자라게 된다.
먼저 자라던 큰 가지는 일정한 시간동안 성장하면 다시 곁가지를 낼 것이고, 그보다 먼저 처음 나왔던 곁가지는 그동안 보다 굵은 성숙한 가지로 자라게 된다. 이런 방식으로 모든 나무는 계속 가지가 뻗고 또 뻗어가며 가지가 무성한 커다란 나무로 성장한다. 이와 같이 가지의 성장 과정은 단순한 피보나치수열을 따른다. 이것을 아래 그림으로 살펴보자.
이와 동일한 법칙은 굵은 가지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물론 새로 돋아나온 잔가지에도 계속 적용된다. 이런 방법으로 가지 모양을 이어 나가는 법칙은 나무 성장에 아주 경제적인 방법이 아닐 수 없다. 물론 환경(주위의 온도, 습도 등)에 따라 가지의 성장의 속도가 다르고 나무 종류에 따라 가지의 돋아나는 수가 다른 예외도 있을 것이나, 기본 성장의 법칙은 동일하다.
나무뿐 아니라 가지를 내는 많은 식물류나 미역과 같은 해조류의 가지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런 해조류의 가지도 무분별하게 퍼져있는 것이 아니다. 물론 종류(種類)에 따라 나름대로 특유의 모양을 가지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조금 굵고 긴 가지(성숙한 가지)에서 일정한 성숙 기간을 지난 후에 보다 가늘고 짧은 가지(미성숙한 가지)가 돋아 나오는 법칙이 반복되는 것이다.
예로부터 자연에 나타나는 수학적 현상, 특히 식물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수학적 현상에 대한 많은 연구가 있었으나, 연구라기보다는 대부분 관찰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20세기 초, 영국의 학자 달시 톰슨(D'Arcy W. Thompson)의 방대한 진화론적 관찰은 오히려 우리에게 창조론적 확신을 갖게 하는 도구가 되고 있다.
1837년 프랑스의 수학자 브라베(Auguste Bravais)와 루이(Auguste Louis) 형제는 자라나는 식물 성장에 나타나는 수학적 특성에 관해 많은 연구를 하였고, 뒤를 이은 수학자나 생물학자가 위에서 언급한 여러 가지 수학적 현상의 원인 규명을 위해 노력하였다. 1979년 수학자 보겔(H. Vogel)은 컴퓨터 모의실험을 통해 생명체 성장에 나타나는 이중나선의 구조가 그려지는 현상이 황금각과 어떻게 관련되는가를 밝혔다. 드디어 1993년 프랑스 수학자 쿠더(Yves Couder)와 두아디(Adrien Douady)가 물리실험을 통해 이중나선이 그려지는 이유를 증명하였다. 자장(磁場)을 띤 접시에 전기 충전된 기름방울을 공중의 똑같은 지점에서 떨어트려 떨어진 방울이 이중나선을 그리는 그들의 연구에 의해 그와 같은 현상은 식물의 유전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연의 동력학적인 현상에 의한 것으로 규명되었다. 생명체 각각의 유전자 차원의 설계가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최대의 효율적 번식을 위한 동력학적 법칙으로 우리의 생명체 세상이 설계된 것이다.
<느티나무 가지의 세대별 성장 모습>
출처 - 창조지, 147호, 2006년 10-12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