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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정병갑, 장은성
2005-04-18

자극에 대한 반응을 통하여 알아본 

식물의 신비와 하나님의 창조섭리 

(Perspectives of God's Creation Providence and 

Investigation of Mysterious Responsiveness of Plants to Stimulation)


요 약

식물은 동물보다 훨씬 민감하게 자극에 대하여 반응할 뿐 아니라,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사람과 교감을 나누기도 한다. 자신에게 위해를 가하는 사람을 구분하기도 하며 집안에 침입한 도둑을 알아보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좋은 음악을 들으면 춤을 추기도 하고 병해충에 저항하는 능력이 강해지기도 한다. 식물이 나누는 사랑은 너무 아름답고 은근하고 아기자기해서 식물의 사랑을 닮고 싶어지기까지 한다. 또한 자신의 신체 일부가 잘려지거나 상처를 입게되면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기분이 좋으면 기뻐서 환호성을 지른다. 이처럼 식물이 나타내는 다양한 반응을 통하여 하나님이 얼마나 정교한 생명체를 만드셨는지 인식하고 식물이 보여주는 사랑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아 가는 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Key Words :  자극, 식물의 반응, 좋은 음악, 식물의 사랑, 창조섭리


I.  식물도 생각할 수 있을까?

식물도 생각할 수 있을까? 정원에 탐스럽게 피어난 아름다운 장미꽃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식물에게 음악을 들려주면 잘 자라고 병충해도 없으며 많은 열매를 맺는다고 하는데 과연 사실일까? 이러한 의문은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보았을 것이다.

미국의 Christoper Bird와 Peter Thomkins는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분명한 답을 주었다. 이 두 사람은 식물을 정성들여 키웠다. 때를 따라 물과 거름을 주고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식물에게 다가가서 "잘 잤니? 어제 저녁에 춥지 않았어?” 라고 다정하게 이야기하고 쓰다듬어 주곤 하였다.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 전에는 '잘 자, 좋은 꿈꾸고...” 라고 속삭여 주었다. 외출할 때면 "나 잠시 나갔다 올께. 아마 2시간 내에 돌아올 수 있을 거야” 라고 말을 하고 외출을 한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 3개월 정도 키우게 되면 식물은 자신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느낄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외출하면 돌아올 때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게 된다. 배가 고프면 먹을 것을 달라고 외치게 되고, 목이 마르면 물을 달라고 소리 지르며 어디가 아프면 아프다고 신호를 보내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신호는 사람의 귀로는 들을 수 없고 적절한 측정 창치를 통해서만 들을 수 있는 것이다.

Christoper Bird와 Peter Thomkins는 한 가지 실험을 실시하였다. 식물이 나타내는 미세한 반응을 측정할 수 있는 장치와 그것을 기록할 수 있는 기록계를 연결하였다. 그리고 기록계의 시계와 자신이 가진 시계를 9시 30분으로 정확하게 맞춘 후 수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거리까지 외출을 하였다. 물론 외출할 때 식물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몇 시간 후에 돌아올 것이니 그동안 잘 있으라는 말을 빠뜨리지 않았다.

외출한 후 10시 정각에 횡단보도가 아닌 곳에서 자동차가 다니는 차도로 갑자기 뛰어들어 길을 건넜다. 달리던 자동차 운전자들은 이 사람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급브레이크를 밟게 되고 어떤 운전자들은 화가 나서 욕을 하기도 했을 것이다. 한동안 커피숍에서 앉아서 휴식을 취한 다음 11시에는 낭떠러지에서 갑자기 뛰어 내렸다. 잘못해서 발목을 다칠 우려도 있겠으나 위험을 감수하고 이러한 행동을 하게 되었다. 한동안 길을 돌아다니다 12시에는 안락하고 편안한 자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와서 식물에 연결된 기록장치를 보니 놀라운 반응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였다. 

즉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를 무단 횡단했던 10시에는 식물의 반응이 급격히 증가하였고, 11시 직전까지는 평상시보다 약간 높은 반응을 나타내었다. 그리고 11시에는 10시와 마찬가지로 급격한 반응을 나타냄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12시에는 평상시처럼 조용한 반응을 나타내었다. 즉 자신을 사랑하고 아껴주던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하게 될 때 식물이 그것을 알고 반응을 나타내었음을 알 수 있다. 몇 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사람이 위급한 상황에 처한 사실을 식물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 실로 놀랍고도 신비한 일이다.

그렇다면 식물이 사람을 식별할 수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 위의 두 사람은 또 다른 한 가지 실험을 시도하게 되었다. 식물을 한 그루씩 화분에 심고 역시 정성들여 키운 다음 밀폐된 공간에 두 그루의 식물을 나란히 놓아두고 다섯 사람을 한 사람씩 방안에 들여보냈다. 그리고 각자 식물 앞에 잠깐 동안 서 있다 나오게 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사람에게는 두 식물 중 한 식물을 꺾어 버리도록 하였다.

그리고 남아있는 식물에 전류계를 연결한 다음 그 방에 들어간 사람을 한 사람씩 남아있는 식물 앞에 서게 한 다음 식물을 꺽은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내는 실험을 하였다. 그 결과 다른 사람이 섰을 때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던 식물이 자신의 친구를 꺾어 버린 사람이 섰을 때는 급격한 반응을 나타냄으로서 식물도 사람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처럼 식물이 사람을 알아본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II.  성경속의 식물

우리나라에는 약 5,000여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고 성경에도 많은 식물이 기재되어 있다. 성경 속의 식물 중에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파, 마늘 같은 식물이 있는가 하면, 합환채(창 30:14-15)나 고벨화(아 1:14) 처럼 전문가도 알 수 없는 식물이 있다. 성경에는 약 110-128종의 식물이 기록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으나 정확하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 원전에는 한 가지 이름으로 기록된 식물이 번역본마다 다르게 기록되어 있고, 다른 이름으로 기록된 식물이 실제로는 같은 식물인 것으로 확인된 것도 있으며, 현존하지 않는 식물도 기록되어 있어서 어떤 식물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각 나라마다 자기나라에 있는 비슷한 식물의 이름으로 번역하였기 때문에 엉뚱한 식물로 바뀐 경우도 있다. 우리말 성경은 중국어 성경을 토대로 번역되었기 때문에 중국어 성경에서 사용한 말을 그대로 우리말로 쓰다보니 그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감람나무는 원래 올리브나무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데, 중국어 성경에 감람(橄欖)으로 번역되어 있는 것을 그대로 우리말로 옮겨 적었던 것이다. 그러나 공동번역 성경에는 올리브나무로 바르게 번역되어 있다. 

성경의 무대인 이스라엘과 중동 지방의 기후는 과거 1,000년 동안 거의 바뀌지 않아서, 식물상(vegetation)은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따라서 성서식물 중 현지 자생식물에 관한 연구는 현재 식물상을 토대로 가능하지만 재배식물과 외래 도입종에 대해서는 정확한 동정이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의 식물은 과일나무, 농작물과 정원식물, 야생초본류, 나무종류, 늪지 식물, 광야 식물, 가시나무 종류, 들에 피는 꽃 종류, 향료와 약재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성경에는 식물의 신비에 관한 여러 가지 기록이 있다. 창세기 30-31장에는 야곱과 삼촌 라반 사이의 유전학적 지식에 근거한 속임수(?)가 기록되어 있다. 10년도 넘게 야곱을 부려먹은 라반이 그동안 일한 대가를 주지 않으려 하자, 야곱은 그 동안의 목동생활에서 터득한 유전의 원리를 이용하여 점 있는 양이나 아롱진 염소가 태어나면 자신의 소유로 할 것을 약속한다. 그러나 라반도 약삭빠른 사람이어서 자신의 소유 중에 점 있는 양이나 아롱진 염소를 3일 걸리는 먼 거리로 격리시켜 버렸다. 

그런데 야곱이 보통 꾀가 많은 사람인가? 태어날 때부터 형의 뒤꿈치를 잡고 나오더니 팥죽 한 그릇에 형의 위치를 차지해 버린 꾀쟁이 아닌가? 어쨌든 야곱과 라반 모두 유전의 원리를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10년 이상 실험적으로 연구한 야곱의 실력이 더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야곱은 신풍나무, 버드나무, 살구나무 등의 껍질을 벗긴 나뭇가지를 개울가에 놓아두고 튼튼한 양과 염소들은 아롱지고 점 있는 새끼를 낳게 하여 모두 자신의 재산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나 허약한 양과 염소가 물을 먹을 때는 이 나무들을 치워서 정상적인 색을 가진 양과 염소, 즉 약하고 비실비실한 것들은 모두 라반의 재산이 되게 하였다. 이러한 현상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까? 야곱이 사용한 버드나무, 살구나무, 신풍나무가 어떠한 특징이 있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그리고 신풍나무는 도대체 어떤 나무일까? 이것을 현대 유전학에 적절하게 응용한다면 훌륭한 연구결과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선지자 엘리사가 요단에 이르렀을 때 한 사람이 나무를 베다가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서 물에 떨어졌고, 엘리사가 나뭇가지를 베어 물에 던져서 도끼가 떠오르게 한 사건(열왕기하 6:5-7)도 신비스럽기 그지없다. 어떻게 물 속에 가라앉은 도끼가 나뭇가지를 물에 던졌다고 물위에 뜰 수가 있을까? 과연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일까  그리고 엘리사가 던져 넣은 나무는 무슨 나무일까?  그 나무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특별한 성분이 있는 것일까 ?

이러한 질문에 모두 답할 수는 없다. 그 이유는 현대과학의 수준이 하나님의 능력과 신비에 턱도 없이 부족할 뿐 아니라, 성경은 과학교과서가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에 대하여 세세하게 기록해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의 기록을 과학적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는 과학적인 설명이 많이 있고 이곳에서 힌트를 얻어서 훌륭한 과학적 업적을 쌓은 사람들이 실제로 많이 있다.

성경에는 약 120여 종의 식물이 기록되어 있다. 그 중에는 오늘날 우리가 알 수 있는 식물도 있으나 기록만으로는 알기 힘든 식물도 있고 동일한 식물을 다른 이름으로 기록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모든 식물을 분류해 보면 거의 대부분 풀, 씨 맺는 채소,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 등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러한 식물들 중에는 우리나라에 있는 식물도 있으나, 이스라엘, 시리아, 요르단 등 중동지역에만 서식하는 식물이 있는 반면에,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서식하고 있었으나 현재에는 멸종된 식물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성경 속에 기록된 생물, 특히 식물에 관한 신비한 기록이나 식물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건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기록된 식물과 동물에 대하여 먼저 알게 되면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성경에는 약으로 사용하는 식물, 향료나 맛을 내는데 사용하는 식물, 집을 짓거나 무엇을 만드는데 사용하는 식물 등 다양한 식물에 관한 기록이 있다. 성경 말씀을 잘 이해하고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깨닫기 위해서 이와 관련된 깊은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더 깊은 은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III. 생명나무는 어떠한 나무일까?

1) 성경에 나타난 생명나무 기록

120여종의 식물 중에서 성경에 맨 처음 기록된 식물은 생명나무이고, 맨 마지막에 기록된 식물도 역시 생명나무 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2:9).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하나님이 이 책에 기록된 생명나무와 및 거룩한 성에 참예함을 제하여 버리시리라” (계 22:19).

그런데 이 생명나무는 무엇일까? 실재하는 나무였을까, 아니면 그 의미만 해석해야 하는 대상일까? 에덴동산 중앙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아담과 하와가 따먹고 범죄하여 그에 마땅한 벌을 받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쫓겨난 아담과 하와가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할까 염려되어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 길을 지키게 하셨다 (창 3:22-24).

생명나무가 어떠한 나무였는지 알 수 없지만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은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으면 영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은 영생하지만 육신은 죽을 수밖에 없다. 따라서 생명나무 열매를 따먹고 영생한다는 것은 육신이 영생한다는 말일 것이다. 범죄한 아담과 하와도 육신의 죽음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고 영생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고 계신 하나님께서는 그룹과 화염검으로 생명나무 길목을 지키고 계신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나무는 어떠한 나무일까? 문자 그대로 나무를 일컫는 것일까? 아니면 비유로 다른 의미가 있는 것일까?


2) 생명나무 열매로 영생하는 방법

그렇다면 오늘날 사람이 육신적으로 영생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실제로는 불가능 하지만 이론적으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의학과 생명과학이 급속도로 발달하고 있으므로 발전된 생명공학적 방법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죽지 않는 방법을 개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생한다는 것은 성경적으로 볼 때 생명나무 실과를 따먹는 것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생명공학적 연구는 그리 쉽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전 세계적으로 윤리적, 도덕적 문제로 반대하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 연구를 하는 당사자들 간에도 이를 제지하는 움직임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는 윤리와 도덕적인 문제 때문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반대해야 할 것이다. 아담 이후에 모든 사람은 반드시 죽어야 한다. 그런데 죽지 않으려고 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원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연구 자체가 하나님의 권위에 대한 중대한 도전인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러한 모습을 보시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어떠한 방법을 쓰실지 모르지만 그룹들과 화염검으로 그 길을 막으실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필자는 개인적으로 복제인간의 탄생 및 영생하는 것에 대하여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친히 섭리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IV.  식물의 성생활

20-30 년간 서로 다른 환경에서 살아오던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게 될 때 두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진정한 사랑”일 것이다. 진정한 사랑이란 어떠한 사랑일까? 물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주님 안에서 믿음으로 하나 된 사랑일 것이지만, 육체적이고 인간적인 사랑의 모습은 어떠해야 하는지를 식물의 성생활을 통하여 제시해 보고자 한다.


1) 식물이 보여주는 성생활

식물이 서로 사랑하는 모습은 어떠할까? 식물도 성생활을 할까? 만약 한다면 어떠한 모습일까? 식물도 동물이나 인간처럼 자신의 의지대로 수정을 하고 열매를 맺는 과정에 성생활을 즐기는 것일까? 동물이나 사람의 성생활과 비교하여 식물의 성생활을 통하여 인간이 배울 점은 없을까? 이러한 의문은 오래 전부터 필자가 가져왔던 생각이었고, 문헌연구 결과 많은 식물이 사랑을 동반한 성생활을 해 오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식물은 성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은근하게 기다리며 아기자기한 밀어를 속삭일 뿐 아니라, 사랑을 나누는데 있어서 매우 적극적으로 임한다. 그리고 어떻게 하면 열매를 잘 맺을 수 있을지 하는 점에 성행위의 초점이 맞추어져 있고, 그 과정에는 암술과 수술간의 사랑이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식물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성숙한 시기가 아니면 성생활을 하지 않으며, 인간사회에 있는 강압적인 성행위는 절대 찾아볼 수 없다.

달맞이꽃이나 나팔꽃 등 저녁이나 아침에 피는 꽃도 있지만, 대부분의 꽃은 낮에 피었다가 저녁에는 오므라들기 때문에 식물의 성생활은 밝은 대낮에 이루어지고 있다. 식물의 성생활 과정에는 암술과 수술사이의 긴밀한 협조가 없으면 수정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즉 강제적인 방법으로는 성생활을 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식물에 있어서는 수정이 일어나는 시기에 암술에서 특수한 분비물이 분비되는 등 실제로는 매우 적극적인 성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2) 밤에 피는 꽃과 향락산업

식물 중에는 수술과 암술이 매우 특이한 구조로 서로 격리되어 있어서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수정이 일어날 수 없는 식물도 있다. 쥐방울 덩굴의 꽃은 맨 안쪽의 격리된 방에 암술이 위치하고 있는데, 털이 나있는 좁은 통로에 의하여 수술과 멀리 떨어져 있어서 정상적인 방법에 의하여 수정이 일어날 수 없다. 이 식물은 밤에 활동하는 곤충이 좋아하는 고기 썩는 냄새를 풍기므로 곤충을 유인하게 되고 좁은 통로를 통해서 곤충이 꽃가루를 묻혀서 들어오게 된다. 안쪽의 격리된 방에 들어온 곤충은 먹을 것을 찾지만 아무 것도 없고, 속은 것을 안 곤충이 탈출하기 위하여 발버둥을 치지만 밖으로 빠져나갈 수 없는 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죽게 된다. 곤충들이 탈출하기 위해서 발버둥치는 사이에 꽃은 자신이 목적하는 수정을 끝내게 되는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많은 향락산업이 발달해 있다. 이들 향락산업은 그 활동 시기가 주로 밤이다. 그리고 밖에서 볼 때는 매우 화려하고 사람들이 좋아할 냄새(?)를 풍긴다. 쥐방울 덩굴이 곤충을 유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밤에 활동하는 유흥업소는 자극적이고 향락적인 요소를 내세워서 사람들을 유인하게 된다. 그러나 그곳에 한 번 빠지게 되면 돌아온 탕자의 비유에서처럼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다 탕진하고서야 빠져 나오거나 쥐방울 덩굴의 꽃에 들어간 곤충처럼 영원히 헤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3) 식물의 성생활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

쥐방울 덩굴 같은 식물도 있지만 대개의 식물은 기다림 끝에 은근하고 분위기 있는 성행위 결과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이다. 물달개비는 암술 끝이 3개로 갈라져 있는데, 수술이 첫 번째 암술과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입맞춤(?)을 하여 수정을 하게 되면 두 번째 암술은 오후의 작렬하는 태양아래에서 성행위를 하게 되고, 세 번째 암술은 붉게 타오르는 저녁노을 아래서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다. 꽃 한 송이 내의 암술과 수술 사이의 성생활은 이러한 기다림 끝에 은근하고 분위기 있는 상황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식물의 성행위 목적은 철저하게 열매를 얻기 위한 방향으로 일어나고 있는데, 그 바탕에는 암술과 수술사이의 적극적인 노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이 노력을 사랑(?)이라고 표현 할 수는 없을까 ?

이러한 성생활 결과 열매가 맺히게 되는데 그 과정 역시 빈틈없이 일어나게 된다. 성경에 보면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그 땅의 소산 중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에스골 골짜기에서 포도 한 송이가 달린 가지를 베어 장정 두 사람이 막대기에 꿰어 메고 돌아온(민 13:23) 사건이 기록되어있다. 과연 한 송이를 두 사람이 메고 운반해야 할 정도로 큰 포도송이가 열릴 수 있었을까? 외국의 잘 가꾸어진 자연사 박물관이나 식물 표본관을 방문해 본 사람이라면 콩 한 개가 주먹 만 하였고 콩깍지의 길이가 2미터 정도인 표본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것을 볼 때 가나안 땅의 포도 한 송이도 두 사람이 메고 운반해야 할 정도로 큰 것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V.  자극에 대한 반응을 통하여 알아본 식물의 신비

1) 음악을 좋아하는 식물

식물도 음악을 감상할 줄 알며,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자란 식물은 더 잘 자라고 더 예쁘게 자란다고 말하면 믿을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음악을 듣고 자란 식물은 병에 덜 걸리고 해충의 피해도 적어서 농약을 적게 뿌려도 된다고 하면 더더구나 수긍하기 어려울 것이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자란 채소와 과실은 맛이 더 좋아지고 더 당도가 높으며 인체에 좋은 생리활성물질이 더 많이 생긴다고 말하면 누가 믿을까?

식물과 음악의 관계에 대하여 최초로 관심을 기울인 사람은 다아윈으로서, 1860년대에 미모사에게 나팔소리를 들려주고 잎이 움직이는가를 살펴보았으나 실패했다는 기록이 있다. 1950년대에는 인도의 Singh 교수가 소리굽쇠나 바이올린 음악을 들려준 결과 활발한 원형질운동을 관찰하였다. 또한 미모사에게 인도의 전통음악인 Raga를 들려준 결과 기공수, 표피의 두께, 세포의 크기가 현저히 증가했음을 알아냈다. 지속적인 연구를 통하여 벼의 수확량이 25-60%, 땅콩 수확량이 50% 증가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미국에서는 1968년에 Retellack은 호박덩굴에게 고전음악을 들려준 결과 덩굴이 스피커를 감싸지만, 록큰롤(Rock'n'roll) 음악을 들려주면 스피커와 반대 방향으로 도망가는 현상을 관찰하였다.

또한 농촌진흥청의 이완주 박사는 식물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면 생육이 촉진되고 병해충 발생이 저하되며 오이의 경우 당도가 증가하는 등 재현성 있는 실험결과를 얻었음을 보고하였다. 그리고 식물체내의 화학성분이 변함을 관찰하고, 이러한 좋은 음악을 그린음악(green music)이라고 하여 국내 특허를 얻기도 하였다.

이러한 결과를 종합해 볼 때, 헤비메탈(Heavy metal)이나 록큰롤과 같은 시끄러운 음악보다 고전음악이, 타악기보다는 현악기의 음악을 식물이 더 좋아하며, 2,000Hz 근처의 음파를 좋아한다는 정도가 알려져 있다.


2) 물리적 자극에 대한 식물의 반응

식물체 내에는 평상시에 10-50mv의 약한 전류가 흐르고 있다. 그러나 물리화학적인 자극을 가하면 전류의 흐름이 변화되고 이렇게 나타내는 반응을 검출기를 통해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자극의 종류에 따라서 반응이 다르게 나타나며, 자극의 세기에 따라서도 다른 반응을 보일 뿐 아니라, 같은 자극이라고 하더라도 식물에 따라서 다른 반응을 나타내게 된다. 사람의 눈이나 귀로는 이러한 식물의 반응을 감지할 수 없지만 식물체에 기계장치를 연결하면 식물이 어떠한 반응을 나타내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특히 식물을 유리막대로 건드릴 때와 선풍기 바람을 쏘여줄 때, 처음 식물이 보이는 반응은 큰 차이가 없이 움찔하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풍기 바람에는 더 이상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바람을 즐기는 반면, 유리막대로 건드리는 경우 유리막대를 정지시킬 때까지 계속해서 긴장상태에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식물이 바람과 유리막대 자극을 구별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긴장상태에 있었다면 지구상에 식물이 남아있지 못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자연상태에서 식물은 계속 바람을 맞으면서 살고 있는데, 하루 종일 에너지를 소비하면서 긴장상태에 있다면 결국 생산하는 에너지보다 소비하는 에너지가 많아서 식물은 죽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식물이 없는 지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이 되었을 것이다. 식물이 바람과 다른 자극을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신비한 것인지 모른다. 참으로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가 아닐 수 없다.

 

3) 거짓말 탐지기로 측정한 식물의 반응

2001년 8월부터 1년 간에 걸쳐 부산지방 경찰청에서 운영되고 있는 Stolting 805-000 형 거짓말탐지기인 Galvanometer를 사용하여 베고니아(Begonia semper), 씨클라멘(Cyclamen persicum), 고무나무(Hevea brasiliensis) 등을 사용하여 식물에게 지극한 사랑을 베풀어주고 난 후 이들 식물에게 스트레스성 자극을 가했을 때, 어떠한 변화를 나타내는지에 대하여 연구를 실시하였다.

실험 조건은 1)식물을 구입하여 잘 보살피면서 하루에 1번 이상 식물에게 사랑한다, 잘 지냈느냐, 보고 싶었다, 나는 네가 좋다 등의 말을 하도록 하고, 2)이들 식물을 각각 2개월 이상 정성껏 기른 후에, 3)부산 지방 경찰청으로 옮겨서 다양한 자극을 주고 식물이 나타내는 반응을 거짓말탐지기를 사용하여 측정하였다.

그 결과 베고니아 잎의 일부를 안과 수술용 가위로 자랐을 때 베고니아는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는 듯이 거짓말 탐지기의 바늘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씨클라멘의 잎에 드라이아이스에 넣어서 차갑게 한 알루미늄 막대를 접근하였을 때 베고니아와 유사한 반응을 나타내었다. 반면에 고무나무의 잎을 자르거나 드라이 아이스에 차갑게 한 알루미늄 막대를 접근 시켰을 때, 반응을 나타내기는 하였지만 베고니아와 시클라멘처럼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을 뿐 아니라 반응의 강도도 약한 편이었다. 이는 베고니아와 씨클라멘은 초본인 반면, 고무나무는 목본이기 때문에 자극에 비교적 둔감한 것으로 생각된다.

또한 꽃에 자극을 가하고 잎에서 반응을 측정하였을 때에 더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었고, 꽃에 자극을 가하고 꽃에서 반응을 측정하였을 때에 가장 민감한 반응을 나타내었다. 뿐만 아니라 동물에서 한쪽 다리를 자르는 정도로 큰 줄기를 잘라내게 되면 식물이 아예 반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생식기관인 꽃이 영양기관인 잎보다 더 민감하게 자극에 반응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결과라 할 수 있고, 식물체의 큰 부분을 자르게 되면 일시적으로 기절하는 정도의 반응을 나타내거나 아예 죽은체 하므로서 더 이상의 자극에 반응을 나타내지 않았음을 알 수 있었다.      


VI.  결 론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사는 40년 동안 주식으로 먹었던 만나는 하나님이 자기 백성들을 먹여주신 기적의 양식이다. 만나는 "이것이 무엇이냐” 라는 의미를 지닌 말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기적의 양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직후 더 이상 내리지 않았고, 단지 언약궤 속에 일부 보존되어 있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도 시나이 반도 유목민은 6월경이면 아침 일찍 들에 있는 위성류 아래에 가면 하루에 1kg 정도의 둥글고 흰색의 덩어리를 주워서 여행자들에게 만나라고 판다고 한다. 단맛이 나기 때문에 설탕 대신 사용하기도하며 과자처럼 그냥 먹을 수도 있다.

이 덩어리는 위성류의 줄기와 잎을 갉아먹고 사는 곤충이 나뭇잎 속에 들어있는 질소성분은 흡수하고 함께 포함된 당분은 몸 밖으로 버리는데, 이 당분이 공기와 접촉하면 굳어져서 하얀 덩어리가 되고 이것이 만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곤충은 밤에만 활동하므로 아침 일찍 들에 나가서 만나를 모으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늦게 들에 나가면 개미들이 다 물고 가버리기 때문에 성경에는 "무리가 아침마다 각기 식량대로 거두었고 해가 뜨겁게 쪼이면 그것이 스러졌더라"(출 16:21)고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해석에 대하여는 몇 가지 의문이 있다. 만약에 이러한 해석이 옳다면 가나안 땅에 들어간 다음 날부터 만나가 내리지 않았는데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갑자기 그렇게 많던 곤충이 다 죽은 것인가? 아니면 위성류가 말라죽은 것인가? 그리고 평일에는 이틀 분을 거두게 되면 썩었지만 안식일 전날에는 이틀 분을 거두어도 썩지 않은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또한 얼마나 많은 곤충과 위성류가 있었길래 200만명으로 추정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먹일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의문에 대한 설명은 어디에도 찾아 볼 수 없는 것이다.

성경에는 많은 신비한 기록이 있고 이들 중 많은 기록이 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근거를 바탕으로 일부 기독교인 과학자들은 성경이 지극히 과학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모든 성경기록을 과학으로 설명하려고 한다면 우리의 눈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과학만 보이게 되며 과학이 곧 하나님을 대신하게 된다. 과학은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나 미래에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능력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유치한 수준일 것이다.

식물이 보여주는 신비함은 음악을 알아듣는 정도에서 더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하고 자신을 죽인 범인의 인상착의를 기억하여 수사관에게 진술을 하는 등 실로 신비한 반응을 나타냄을 알 수 있다. 또한 다양한 자극을 주었을 때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고 정확하게 표현함을 알 수 있다.

이처럼 식물이 보여주는 반응은 동물과 인간이 나타내는 반응보다 훨씬 더 예민할 뿐 아니라, 정확하고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세계를 잘 다스리고 가꾸어야 함에 있어서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라도 하찮게 볼 것이 아니라 정성을 다해 사랑하고 따뜻하게 보살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이다. 이름 모를 잡초(사실 모든 식물은 귀한 이름이 있어서 이렇게 말하면 식물들이 서운하겠지만....) 한 포기라도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핑계치 못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정병갑 교수, 장은성 : 고신대학교 생명과학과


참고문헌 

Tompkins P. and C. Bird. 1972. The secret life of plants. Harper & Row Publishers Inc. New York.

양진배, 송태원, 오민석. 1998. Green 음악과 자연음악이 Ethanol 중독 백서의 요산 및 간 대사효소계에 미치는 영향. 한방재활학회지 8(2):480-503

이완주, 이근영, 윤성중, 이동우, 방혜선. 1997. 음악에 의한 식물 생육 촉진 및 성분함량의 변화. 한국정신과학회지 1(2):31-36.

이완주. 1995. 동식물 생육을 촉진시키는 그린음악.  연구와 지도 36(1):27-29. 

이완주. 1997. 그린음악. 서울, 농촌진흥청 잠사곤충 연구소.

이완주. 1997. 음악 들으며 자란 식물은 더 잘 자라고 예쁘게 자란다. 서울, 월간조선 1997년 1월호

임은희. 1994. 음악 속에 숨은 의학. 서울, 청암.

차윤정. 2000. 식물은 왜 바흐를 좋아할까? 중앙 M & B.


 

*참조 :  Venus flytrap : Ingenious mechanism still baffles Darwinist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340/



출처 - 창조과학학술대회 논문집, 2004. 11. 27.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577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5-02-22

튀겨나감의 성공 

: 균류들의 놀라운 분산 방법 

(Splashing success)

Rodney McQueen 


      그들은 균류(fungi, 곰팡이와 버섯류)들인데, 아마도 당신은 그것에 대해 모를 것이다. 그들의 키는 단지 수 밀리미터에 불과하나, 조그만 생명체들의 덩어리 안에 놀랄만한 하나의 우주가 들어있다. 그들은 컵 모양(cup-shaped)의 형태이고, 그 안에는 작고 단단한 납작콩 모양의 ‘알(eggs)’들이 깔끔하게 정렬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그들이 ‘새둥지버섯(bird’s-nest fungi)‘ 라고 불려지는 이유이다.

1790년까지는 그들은 현화식물(flowering plants)로서 생각되었다. 그리고 작은 알들은 씨(seeds)라고 생각했었다.1 1951년에 이르러서야 브로디(Brodie) 라는 사람에 의해서 어떻게 알들이 둥지에서 날아 나가는지가 밝혀졌다2 (이상하지요? 보통 알들은 깨어 나와야 날아다닐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이 알들은 정말 날아간다. 1940년대에, 균류들을 연구하는 어느 헌신적인 과학자가 Juneberry 관목 아래의 땅에 이 작은 둥지의 일부를 알들이 들어있는 채로 놓아두었다. 약 한 달 후에 그는 알들의 일부가 없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 셜록 홈즈 탐정처럼 잘 조사해본 결과, 그는 많은 알들이 약 3인치(7.5cm) 길이의 실에 매달려 둥지 위의 나뭇잎에 붙어 있음을 발견했다. 

어떻게 거기로 날아갔는지가 수수께끼였고, 브로디가 그것을 풀었다. 그러나 이것을 설명하기 전에 먼저 이 작은 알집과 알에 대하여 간단히 살펴보자. 알집은 사실은 Basidiomycete (담자균류, 네 가지의 주요 균류 중의 하나) 라는 균류의 열매(fruiting bodies)이다. 알들은 소피자(peridioles)들이고, 어떤 담자균류에서 포자를 보관하는 특별한 종류의 방이다. 소피자 안에는 대량의 균류의 씨앗(seeds)들인 담자포자(basidiospores)들이 들어있다. 컵마다 여러 개의 소피자들이 있고, 이들은 소피자자루(funiculus)라고 불리는 가늘고 긴 연결체로 인해 컵 안쪽에 붙어있다. 이 소피자자루는 매우 잘 늘어나는데, 축축할 때 잡아 늘이면 8인치 까지도 늘어난다. 그런 상태에서 소피자자루의 끝인 부착기(hapteron)는 매우 접착성이 있어서 어디에든 잘 들러붙는다. 이 사실이 소피자가 둥지에서 날아간 방법에 관한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

오랫동안, 이 매력적인 균류를 연구했던 많은 사람들은 소피자가 균체 자체의 폭발력에 의해 공기 중으로 흩어진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그냥 해보는 공상이 아닌데, 그 이유는 실제로 그러한 균류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수의 실험에도 불구하고 그런 폭발 메커니즘은 발견되지 않았다.

일부 연구자들은 동물들의 역할이 있었는지를 생각했다. 동물들이 소피자 둥지를 가볍게 스치고 지나며 소피자를 달고 갔을까? 그러나 균류들을 정밀하게 검사한 결과 그러한 가능성은 없었다. 컵의 모양과 소피자의 정교한 부착으로 미루어 보아, 포자 분산(spore dispersal)을 위한 정확하고 정교한 메커니즘이 있음이 틀림없었다.1

브로디는 다른 사람들이 추측했었던 데로 이들의 분산 방법을 발견하였다. 새둥지버섯의 컵은 정확한 기하학적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튀겨내는 접시(splash-cups)로서 작용하는 것이었다. 즉, 폭우 시에 초당 약 6m의 속도로 빗방울이 떨어지면, 소피자(peridioles)들은 대략 1m의 거리를 튀겨나가도록 만들어져 있었다. 당구공을 칠 때 친 당구공의 운동량이 맞은 당구공으로 전달되듯이, 빗방울의 운동량 일부가 소피자에 전달되어 이렇게 튀겨나가는 것이었다.  

튀겨나가는 힘은 주머니(purse)라 불려지는 소피자자루 부분이 터지고 소피자자루 끈과 부착기(hapteron)를 분리시키는 원인이 되어진다. 축축하고 접착성이 있는 부착기는 공기 중을 날아가며 어디에든 닿기만 하면 들러붙게 된다. 들러붙은 후에는 부착된 끈(cord)이 탄성으로 인해 늘어졌다 수축했다를 반복하며 들러붙은 물체에 감긴다. 이 과정은 매우 빨리 일어난다. 

그 다음 소피자는 부착된 곳에 매달려 있다가 껍질이 터지거나 동물에 먹혀서 포자를 퍼뜨리게 된다. 동물에 먹히는 경우에 이 포자들은 아무런 피해 없이 동물들의 소화기관을 통과한 후, 동물의 배변물 위에서 자라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이들 균류의 디자인에 대해 기적적으로 이루어진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어느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새둥지버섯은 경제적으로는 아무 가치가 없지만, 식물학자들에게는 대단히 매혹적인 존재이다. 이 종들의 대다수가 물의 튀김으로 포자를 분산시키는 방법으로 기막히게 적응한 것은, 경이로운 진화의 완벽성을 보여주고 있다. 모든 특징들은 이 기능에 맞춰져 있다. 둥지가 부착되어진 모양, 둥지의 외관, 컵 벽면의 각도와 두께, 물론 놀라운 소피자의 꼬리도 포함하여, 이 모든 것들은 성공적으로 포자들이 분산될 가능성을 증가시키고 있다” 1 

진화론자들의 믿음은 확실히 대단한 믿음이다. 사실, 이 균류의 기막힌 설계는 이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를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Encyclopedia of Mushrooms, Dickinson and Lucas, p. 33.

2. Introductory Mycology, Alexopolous, p. 527.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9/i3/success.asp 

출처 - Creation 19(3):44–45, June 1997.

손기철
2004-12-10

불가능한 현상 '생명수의 비밀'


     진화론적 입장에서 보면 흔히들 식물은 동물이 가지고 있는 특성, 즉 움직임이 없고 또한 해부학적으로 덜 복잡하기 때문에 동물보다 진화가 덜 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덜 복잡하다는 것이 열등을 의미하는 것일까?

 식물은 그 구조적 단순함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적응력으로 동물이 살지 못하는 곳에까지 분포하고 있다. 단순한 구조임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강한 생명력을 보인다는 것은 식물이 오히려 동물보다 진화되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진화론적 생태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생존이기 때문이다

생존에 있어 중요한 환경 요인 중의 하나는 물이다. 진화론자들도 태초의 생명체는 물에서 발생하였을 것이라고 가정하듯이 물이란 생명체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다. 동물은 말할 것도 없이 식물에 있어서도 모든 반응은 바로 세포 내의 물에서 일어나며, 또한 식물체가 자란다는 것은 바로 식물체가 많은 물을 함유하여 세포를 크게 한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식물체의 종류도 다양하거니와 자라나는 그 높이도 다양하다. 1983년판 기네스북에 의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무는 캘리포니아 레드우드 국립공원에 있는 세쿼이아(Sequoia sempervirens)로 기록되어 있다. 이 나무의 높이는 1970년에 111.6 미터로 측정되었다 뿌리로부터 계산한다면 대략 120미터가 넘는 꼭대기의 잎까지 수분이 운반된다고 볼 수 있다.

도대체 어떤 메커니즘에 의해서 수분이 이렇게 높은 곳까지 운반될 수 있을까? 가장 높은 곳의 잎이 하루에 한 번씩 물을 배급받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공급하에서 생리, 생화학작용을 하며 동시에 증산작용을 한다니 놀랍기 그지없다.

그렇다고 식물체가 물을 최정상까지 끌어올리기 위해 엄청난 에너지를 투입하는 것도 아니다. 이 지구상의 대기압은 1기압이므로 가장 좋은 흡입펌프를 사용할지라도 물을 10.3 미터 이상은 끌어올리지 못한다.

세쿼이아의 경우 지상으로부터 꼭대기까지 물을 끌어올리려면 기본적으로 10.83기압의 압력이 필요하고, 수분 운반경로의 내부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상당한 압력을 더 가해야만 흐름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흐름에 대한 저항을 극복하기 위해서 물을 끌어올리는 만큼의 압력이 필요하다고 가정하면 전체적으로 약 22기압의 압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구표면의 대기압에서는 물이 나무꼭대기까지 밀려 올라가지 않는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여기에 바로 창조주의 놀라운 섭리가 숨겨져 있다. 바로 생명수의 비밀인 것이다.

줄기의 도관 내 물의 상승기제에 관해서는 증산작용, 응집력, 부착력 그리고 장력의 복합설(TACT forces)로 설명할 수 있다. 잎의 엽육세포에서 증산(식물체의 표면으로부터 물이 증발되는 것)이 일어나면 흡수력(수분 퍼텐셜)이 증가되는데, 흡수력은 세포를 통과하여 도관에까지 이르러 도관 내의 물을 빨아들인다. 뿌리의 경우 삼투현상에 의해서 물이 흡수된다. 일단 뿌리 속에 들어간 물은 뿌리의 살아 있는 세포의 피층을 통하거나 혹은 그 세포들 사이로 또는 세포벽을 따라 이동하며, 마침내 뿌리의 유관 속의 세포로 들어간다.


100미터 나무 위로 수분 이동은 이론상 불가능,

대기압에서 물만의 예외적인 특성

도관(물이 통과하는 관. 흔히 목질부라 함) 세포는 죽어 있어 세포질이 없으며, 잎에서 뿌리까지 이어지는 관으로 되어 있고 그 안에는 하나로 이어지는 수주(물기둥)가 있다. 도관 내에서 물분자와 물분자 사이의 응집력은 대단히 크며, 도중에서 끊어지는 일이 없다. 이러한 힘은 바로 물의 수소결합에 기인된 것이다. 또한 도관벽과 물분자와의 흡착력도 크며 물기둥이 미끄러져 내려가는 일도 없다. 따라서 물이 잎세포와 주위 공기 사이에 의해 일어나는 증산작용의 결과로 빨려 올라가면 도관 안에서 물기둥 상태로 끌려 올라가게 된다. 이것을 응집력설이라 하며, 도관에서 물이 상승하는 것은 증산류에 의해 잃은 물을 채우기 위해 물이 계속해서 목부로 나아갈 때 응집력으로 상승하게 된다.

응집력설에 대한 신빙성은 줄기의 경우 밤과 같이 증산작용이 낮을 때는 부풀어 있고, 증산이 왕성한 낮에는 도관 속에 형성되는 엄청난 장력에 의해서 오목해지므로 도관으로부터 물이 빨려 올라가고 있음이 확인된다.

화학의 법칙에는 예외가 없다. 또한 모든 생명체는 바로 이러한 화학의 법칙에 의해서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다. 모든 화합물은 분자량이 적을수록 어느 점과 끓는 점이 낮아지는 것이 원칙이다. 즉 분자량이 적을수록 낮은 온도에서 액체로 존재하는 법인데, 물(H2O)만은 바로 이 자연법칙의 이단자인 것이다.

황화수소(H2S)는 분자량이 34로써 섭씨 -60도와 -82도 사이에서 액체로 존재한다. 그렇다면 분자량이 18인 물은 섭씨 -91도와 -100도의 범위 내에서 액체로 존재해야 한다. 즉, 화학의 법칙에 따르자면 물은 우리가 생활하는 온도에서 기체로 존재하여야 한다. 만약 지구의 모든 물이 수증기로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물이 없었더라면 생명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은 0~100도에서 액체로 존재한다. 이 불가사이에 의해서 90퍼센트 이상의 수분을 가진 식물이 지구상에 생존하는 것이다.

너무나 하찮은 물에서조차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이 보여짐은 창조론을 부인할 수 없게 한다. 상온에서 액체로 존재하는 물은 세상에서 가장 값이 싸고 구하기 쉽고 유동성이 좋으며 화학적으로 안정하다. 더욱이 엄청난 표면장력, 그리고 수소결합의 특성, 극성용매의 성격, 가장 높은 비열 등 오직 물만이 가지는 예외적인 특성으로 1백 미터가 넘는 식물에게까지 생명수를 보급할 수 있는 것이다.


물은 한마디로 경이의 물질이다. 우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길로 만드신 놀라운 창조물질 중의 하나임을 증거하는 것은 우리 주위에 너무나도 많다. 즉 물은 지구라는 이 행성의 4분의 3이나 되는 표면을 덮고 있다. 이 4분의 3이라는 분포 상태는 현상태의 온도와 기후 조건에 필수불가결한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물의 특성이 없다면 기온의 대격변이 일어나 생물에게 전반적인 파멸을 미칠 것이다.

우리는 흔히들 만물이 우연에 의해서 스스로 그렇게 만들어진 자연(自然)의 법칙에 의해서 주관되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자의 눈에 비친 세상은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 그렇게 만드신 참자연에 의해서 움직이고 있다. 또한 그분이 주관하시는 세상이기에 만물의 질서와 규칙이 수학공식과 같이 획일적으로 운용되거나 법칙 일변도로만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애적인 요소가 자연의 곳곳마다 신성과 능력으로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다.

과학으로 풀 수 없는 기적이란 바로 이것에 연유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물도 마찬가지이다. 태초부터 우리의 과학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사랑으로 지으신 물이 있었기에 모든 생명체가 살 수 있었고 하찮은 나무에 있어서도 아무런 에너지 투입 없이 1백 미터 이상의 높은 곳까지 물이 이동될 수 있는 것이다.

식물은 토양에 뿌리를 박고 그 속에 생명수를 빨아 올려 살면서 이 세상의 지체적(肢體的)인 사명을 다하고 있다. 우리의 지체적인 사명은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요 7:38)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 4:14)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렘 2:13)

예수에게 우리 삶의 뿌리를 내리고 그분이 주시는 값없는 생명수를 마시자.



출처 - 신비한 생물 창조섭리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352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4-12-01

상상을 초월하는 종자들의 생명여행

손기철 


     인간이 자식을 낳아 번성하듯 식물 또한 자식을 낳아 번식한다. 그러나 식물은 이동할 수 없기 때문에 자식을 인간이나 동물처럼 하나 둘 낳는 것이 아니라, 매해 수백, 수천, 심지어는 수백만 개의 종자를 생산하며, 이들은 여행을 한다. 바로 생명의 여행인 것이다.

만약 식물체가 스스로 종자를 만든 다음 그 종자를 자기 발밑에만 떨어뜨린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종자가 자라나기 시작하면 공간, 물, 영양분, 햇볕에 대하여 서로 경쟁을 하게 된다. 따라서 자원에 대한 어린 식물들의 이러한 상호경쟁은 결국 죽음과 결핍증을 초래하고 만다.

실제로 한 지역에는 많은 식물을 자라게 할 자원이 풍부하지 못하다. 종자의 산포(散布)만이 같은 종 내의 심각한 경쟁을 감소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또한 이러한 산포는 종자를 널리 퍼뜨림으로써 본래의 조건보다 오히려 좋은 환경으로 인도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많은 식물들은 특이한 형태의 과실이나 종자를 생산해내며, 특별한 전파방식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 볼 수 있다. 과연 이것만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과학적 해답일까?

과실이나 종자의 산포는 특별한 매개물 없이 환경에 의해서 스스로 산포하는 것도 있으나, 대부분의 식물들은 그들 스스로 종자를 산포하는 대신 바람, 물, 동물, 심지어 인간까지도 매개물로 이용한다.

많은 과(科)의 과실들은 때때로 환경과 상호작용하여 상당한 물리적인 힘으로 종자들을 방출한다. 예를 들어 아메리카 풍년화의 낭(囊)은 건조해짐에 따라 낭이 폭발적으로 터져서 종자가 12미터 이상을 날아간다. 몇몇 콩과식물인 봉숭아의 종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왜성겨우살이는 항온동물이 가까이 왔을 때 그 열에 반응하여 종자를 격렬하게 산포하며, 그 힘이 너무 세어 동물의 표피에 맞으면 자국을 남기기도 한다.

필라리라는 식물의 종자 산포는 마치 지혜를 가진 것처럼 매우 신비하다 과실의 각 심피는 둘로 분리되어 중심선으로부터 밖으로 구부러진다. 각각의 작은 과실은 기부(基部)에 존재하는 하나의 작은 종자를 포함하고 있으며, 다른 쪽의 끝에는 길고 얇은 부리처럼 생긴 것이 있는데, 이것은 습도의 변화에 민감하다. 습도가 증가하는 밤에는 부리가 비교적 곧으나 햇볕이 있으면 나사모양으로 꼬인다. 그렇게 꼬임으로써 뽀족한 종자는 땅 속으로 드릴처럼 뚫고 들어가 스스로 심겨진다.

난과(蘭科)와 석남과(石南科)의 식물은 먼지 무게 정도로 가볍고 미세한 종자를 생산하여 바람에 의해서 널리 이동되어진다. 단풍나무과의 익과(翊科 ․ 단풍 속의 식물의 열매처럼 익상채로 날아 흩어지는 것)는 구부러진 날개를 가지고 있어서 나무에서 떨어질 때 돌면서 떨어진다. 바람이 세차게 불 때는 이들 익과가 10킬로미터 정도까지 날아간다.

우리가 흔히 아는 민들레의 경우도 자세히 조사하면 놀랍기 짝이 없다. 작은 과실은 깃털을 가지고 있어서 낙하산같이 이동된다. 만약 공중 수분도가 높거나 비가 많이 오면 과실은 이동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깃털을 접어둔다. 그 후 날씨가 맑아 건조해지면 과실은 다시 깃털을 활짝 펴서 미풍에도 날아가게 되는 것이다.

한편 잡초의 일종인 텀블워드는 가을철에 일정하게 자라 종자가 어느 정도 성숙하면 밑둥지가 바람에 의해 부러지고, 그 때부터 바람에 의해 구르며 긴 여행을 시작한다. 여행 중 어떤 물체에 부딪힐 때마다 종자를 흩뿌리는 것이다.

수매(水媒, 물에 의한 여행)하는 식물종자나 과실의 경우는 조직의 일부분에 공기를 포획하거나 조직 자체가 공기를 넣기에 적당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예를 들어 골풀의 경우는 공기가 들어가 부풀려진 주머니로 둘러싸인 종자를 갖고 있는데, 이 주머니는 종자가 뜨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또한 물에 떠 있는 동안 흡수를 방지하기 위해서 표면에 왁스물질을 지니는 것도 있다.

어떤 과실은 특히 대양해류에 의한 여행에 적합한데, 이들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코코넛이다. 이 코코넛은 수년에 걸려 수백 킬로미터를 이동하기도 한다. 열대 바다에 새로 생긴 환초에서 어김없이 코코넛이 자생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새의 소화기관 거쳐야만 발아(發芽) 되는 씨앗

모든 생명체, 환경을 매개로 전파


동물 산포에 대해 과일과 종자가 적응하는 경우는 무수히 많다. 조류, 포유류, 개미류 심지어 인간까지도 모두 여행 매체로 작용한다. 해변에 서식하는 조류는 발밑의 진흙에 부착된 종자를 아주 멀리 떨어진 곳까지 운반하며, 다른 새들과 포유류는 과일을 먹는데 그 과일의 종자는 상처가 나지 않은 채 그 동물들의 소화관을 통과해 지나간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러한 처리를 받지 않으면 아예 발아하지 않는 것도 있다.

청어치와 딱따구리 그리고 그 밖의 새들은 견과류와 과일을 운반하고, 날아가는 도중에 그것들을 떨어뜨린다. 많은 종자들은 동물과 조류의 털이나 깃털 속에 붙는다. 갈퀴덩굴 속의 식물과 개자리, 그리고 도꼬마리는 털 또는 등산객의 양말 속에 걸리기 수운 작은 고리들로 뒤덮여 있다.

유니콘 식물(북미산의 초본)의 커다란 씨 꼬투리에는 약 15센티미터 길이의 두 개의 크고 구부러진 고리가 있다. 이것들은 우연히 과일을 밟는 사슴이나 그 밖의 동물들의 털에 걸리게 되며, 동물이 움직임에 따라서 흩어 진다.

금낭화, 연령초와 그 밖의 몇몇 식물들은 종자에 개미를 유인하는 오일이 함유된 돌출물을 가지고 있다. 조사에 따르면, 일련의 단일 개미 집단에 의해서 3만6천개 이상의 종자들이 개미집으로 옮겨지고, 그곳에서 개미들은 먹이를 얻기 위해서 그 돌출물을 벗겨내지만 종자 자체는 손상시키지 않는다고 한다.


이렇듯 전 세계에 걸친 생명의 전파와 여행은 오늘도 진행되고 있다. 도대체 생명의 번성은 어째서 일어날까. 번성이란 진화론이 말하는 것처럼 우연에 의해 생긴 생명체가 환경과의 관계로 만들어진 수동적인 결과인가. 수동적인 번성이라면 이렇게 다양하고 정교한 생명여행의 양식은 도대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왜 모든 생물체는 스스로의 생명을 보존하는 것 대신에 번식하는 법을 배웠을까.

실제로 종족번식이란 자신의 죽음으로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거룩한 작업이다. 그렇다면 사랑과 희생과 이타주의가 용납되지 않고 철저한 약육강식과 자연선택에 기반을 둔 진화가 과연 이러한 방향의 진화를 택할 수 있을까.

같은 서식처, 같은 환경에서 사는 식물들이 수없이 다양하고 독특한 생명여행 양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과실과 종자의 놀라운 생명여행은 자신의 종족번식을 위하여 서서히 진화되어 온 것이 아니라, 온 세상을 풍성하게 하고 모든 생물에게 식물을 주기 위한 이미 계획된 섭리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보시기에 아름다운 세상을 꾸미기 위해서, 하나님의 명령인 음식물로 그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 땅끝까지 여행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혼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과 모든 생명체가 조화하고 협력하여 선을 이루어야 한다. 이 놀라운 창조의 비밀을 보라. 지구상의 모든 동물이 먹으면 먹을수록,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바람이 불고 비가 오면 올수록, 식물종자의 생명여행은 더욱 신비스럽게 일어나고 있다. 우리 인간도 “말씀의 씨앗”으로 신비한 생명여행에 동참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신비한 생물 창조섭리 - 조정일 외.

Headlines
2004-07-26

식물들의 높은 지능

(Plants Rate High in IQ)


      Anthony Trewavas의 Nature 지 2002년 2월 21일자1 글에 의하면, 식물들은 우리의 존경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으며, 매우 세련되었으며 영리하다는 것이다.

 ”수 세기 동안, 식물들은 수동적인 생물체로 간주되어 왔습니다. 그들은 스트레스에 반응하여 단지 일시적으로 성장이 정지되는 정도로만 생각되어 왔습니다. 식물들은 눈에 보이는 운동성이 없기 때문에, 행동이나 지능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식물들은 지구상에 있는 생물체 량의 99%를 차지하고 있으며, 모든 지형을 점령하고 있습니다. 식물들의 성공과 그들을 바라보는 일반적인 시각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최근 연구에 의하면 식물들의 행동은 매우 복잡하다는 사실이 밝혀지기 시작했습니다. 식물들이 수동적이라는 생각은 산산 조각나고 있으며, 그들은 놀랄 만큼 동적이라는 것입니다. 식물 지능에 대한 연구에 많은 과학적 노력들이 기울여지고 있습니다.” 

Trewavas는 식물들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관한 진화론적 기원을 풀기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음을 기술했다. 그는 몇몇 식물들의 예를 들면서, 식물들은 환경을 평가하고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이며, 최근 식물들 간의 의사소통(communication)에 관한 현장 연구가 진행되고 있는데, 지능(intelligence)을 운동성과 관련하여 판단하는 우리의 생각이 적절한지 의문이 든다는 것이다. 식물들은 중추신경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현명하게 행동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말한다. 

”어떻게 뇌(brain)도 없으면서, 그러한 지능적인 행동들을 계산해낼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얻기 위한 도전이 시작되었고, 밝혀질 날이 다가오고 있다.”   


소프트웨어가 지적(intelligent)인가? 산업용 로봇과 자동화 기계들에 입력되어 있는 소프트웨어는 매우 복잡하다. 당신은 조종사 없이 자동비행 장치로 항공기가 운항된다는 말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매우 지적이라고 결론내릴 수 있다. 그러면 그것들은 스스로 우연히 생겨났는가? 식물들은 인간이 일찍이 직면했던 것 중에서 가장 복잡한 몇몇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가지고 있다. 식물들은 그들 자신의 암호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없다. 저자가 기술한 몇몇 예들은 흥미롭다. 그러나 저자는 식물을 만든 조물주보다, 오히려 피조물인 식물을 경외하고 있다.2   


1) http://www.nature.com/cgi-taf/DynaPage.taf?file=/nature/journal/v415/n6874/full/415841a_fs.html

2)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로마서 1:25)

 

*참조 : Leaves Don’t Fall; They’re Pushed (Headlines, 2008. 9. 22)
http://creationsafaris.com/crev200809.htm#20080922a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creationsafaris.com/crev0202.htm

출처 - CEH, 2002. 2. 2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782

참고 : 6402|6391|6309|6269|6236|6200|6114|6057|6056|6053|6050|6024|6004|5978|5956|5938|5933|5855|5823|5788|5778|5856|5775|5774|5772|5763|5757|5754|5746|5736|5735|5700|5692|5679|5665|5663|5657|5656|5654|5574|5571|5554|5529|5526|5524|5478|5477|5475|5432|5430|5426|5391|5363|5362|5356|5352|5345|5341|5292|5242|5165|5137|5123|5089|5046|5024|5023|4854|4830|4712|4708|4574|4556

손기철
2004-07-26

아로마테라피 

(aromatherapy : 향기요법)


      최근 들어 허브식물(herbal plant)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인 불안과 긴장된 마음을 이완시키고,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향기를 이용해 병을 치료하는 아로마테라피(aromatherapy:향기요법)가 유행 되고 있다. 방향성 식물에서 추출한 100%의 자연성분인 정유(essential oils)는 그 식물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힘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물질이며,다양한 종류의 나무,풀,꽃,뿌리 등에서 추출되어 그 종류만도 수백여 종에 이른다. 이러한 정유성분의 대부분은 휘발성을 가지고 있으며,항염(anti-inflammation) 및 방부(antiseptic)효과 외에 다양한 생체기능 조절능력을 가지고 있어,어떤 향은 신체와 정신기능을 진정 또는 이완시켜주는 반면 다른 오일은 오히려 자극시켜주고 활성화시켜 준다. 실제 의학적인 예로 정유는 신경정신과 질환인 불안증,우울증,불면증에서부터 피부과 질환인 여드름,습진 그리고 노화성 피부,여성질환,순환기 장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아로마의 성분이나 효과들은 의학적으로 아직 약 30%정도만 밝혀진 상태이다. 최근 이러한 에센셜 오일의 실제적 효과검증을 위해 배합 오일향이 인체의 각성 및 항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바 있는데,남녀 대학생을 대상으로 흡입 전후간 스트레스 및 상태, 특성, 불안,뇌파(EEG),혈압 및 맥박 등이 비교조사 되었다. 결과에 따르면,레몬,바질,로즈마리로 구성된 자극오일(stimulating oils)은 스트레스 감소와 동시에 각성(arousal)을 유도하였으며,뇌파에서 특히,좌뇌 두정엽과 측두엽의 알파파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나 기억력 증진에 적용하면 좋을 것으로 판단되는 결과를 보였다.
한편,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결과는 남성에게만 적용되어지며,여성에게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라벤더,마조람,클라라 세이지로 구성된 진정오일(sedating oil)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명백한 효과를 보였으며,또한 수축기 혈압을 유의하게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진정오일은 항스트레스 오일로써 적당한 것으로 판단되고,특히 고혈압 환자에게 적합할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몇 가지 실험들을 조합해 볼 때,정유성분의 짧은 흡입에도 불구하고 인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사용되는 오일의 배합에 따라 매우 구체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현재 무분별하게 대중요법적으로 남용되고 있는 오일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정확한 검증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성경에도 향유에 대한 표현이 많으며,일반적으로 기름이라고만 표현되거나,향료로 혹은 향유로 열거되어진다(구약 46개,신약 11개 구절). 성경에서의 사용은 인간과 물건을 정결케 하고 (출30:26-29,레14:51),보배로운 분을 예배할 때나(출30:7-10,요11:2,마26:6-10),하나님의 치유 (약5:14)시 사용되었던 것으로 전인적인 치유에 사용되었다. 지금은 단지 육체적인 치유에만 급급하지만,영혼의 치유에 사용되었던 향유의 의미를 새로이 묵상해 볼 때이다.

 

출처 - 기독공보 2003.11. 8.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525

참고 :

이웅상
2004-07-26

창조의 신비 27. 식물잎의 기공 개폐 다 못밝혀


      식물의 잎은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재료로 탄수화물을 합성하는 장소다.이것을 우리는 광합성 혹은 탄소동화작용이라고 부르며 정확하게는 잎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속에 있는 엽록체에서 일어나게 된다.

잎의 단면을 잘라보면 맨 위층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을 상피조직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엽록체를 거의 갖고 있지 않은 투명한 세포들이다.그리하여 광합성이 주로 일어나는 밑의 책상조직과 갯솜조직이라는 잎속 깊숙이 빛이 투과해 들어가도록 한다.

반면에 잎의 맨 밑층을 구성하는 표피세포에는 광합성에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공기 중으로부터 흡수하는 수많은 작은 기공들이 있다.광합성을 활발히 하기 위해서는 이 기공을 활짝 열어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기공은 이산화탄소만이 아니라 동시에 뿌리에서 흡수한 물도 공기중으로 증산시키는 중요한 통로다.물이 충분할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가물 때는 기공의 열리고 닫히는 예민한 기작이 식물의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면 과연 이러한 기공은 어떻게 광합성을 하지 않는 밤에는 닫히고, 반대로 낮에는 열리며, 또한 낮일지라도 수분이 부족한 경우에는 수시로 닫히게 되는 것일까.

기공은 구조적으로 공변세포라는 두개의 세포로 형성되어 있어 세포에 물이 많이 삼투해 들어오게 되면 부피가 커지면서 얇은 세포벽으로 된 세포의 바깥쪽이 부풀면서 기공은 열리게 되고,물이 빠져나가 세포의 부피가 줄면 기공은 다시 닫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해가 뜨고 광합성이 시작되면 공변세포 내에 당의 농도가 높아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삼투압이 높아져 물은 더욱 빨리 공변세포로 흡수되어 기공을 열게 한다.

역으로 밤에는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되고,이미 합성된 당은 공변세포로부터 다른 저장기관으로 운반되어 녹말로 저장되므로 공변세포의 삼투압은 떨어져 물은 오히려 빠져나가 기공은 닫히게 되고 만다.그러나 낮일지라도 가뭄으로 물의 흡수가 줄어들게 되면 공변세포의 삼투압은 떨어지면서 기공을 닫아 물의 소비를 줄이게 된다.

비록 기공을 담음으로써 이산화탄소가 부족해 광합성을 못하더라도 생명유지에 더 중요한 물을 지키기 위해서다.그러나 기공은 완전히 닫히고 열리기도 하지만 수분부족의 정도에 따라 기공을 일부만 열기도 한다.

즉 식물은 기공을 일부만 열음으로써 발생되는 수분손실과 광합성을 일부 수행함으로써 생기는 득실을 계산하여 최고의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절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 작은 기공이 수많은 환경요인에 따라 수시로 열리고 닫히는 기작이 얼마나 정교하고 복잡한지 아직도 과학자들은 다 밝히지 못하고 있다.

기공은 또한 식물의 종류에 따라 특이한 형태와 배열을 갖고 있다.일반적으로 쌍떡잎식물들은 신장 양의 기공을 갖고 있는 반면 외떡잎 식물들은 아령을 두 개 겹쳐놓은 모양의 바벨형을 갖고 있다.이러한 특이한 구조와 기능을 갖고 있는 기공이 어떻게 저절로 진화되어 생겨날 수 있겠는가.

식물의 잎 하나만을 보아도 하나님의 창조의 놀라운 질서와 섭리가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출처 - 국민일보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73

참고 : 5772|5775|5788|5823|5855|5933|5938|5956|5978|6024|6050|6053|6056|6057|6114|6200|6236|6269

이웅상
2004-07-26

하나님이 창조하신 겨울 - 식물은 어떻게 겨울을 지낼까?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입고 난방을 하면서 겨울을 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물들은 오히려 옷을 벗듯이 잎을 떨구고 겨울을 난다. 과연 식물이 잎을 떨구는 이유는 무엇이며, 또 어떤 방법으로 겨울을 나는지 생각해 보자. 

그림 1) 단풍은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에 잠시 나타나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대부분의 식물 잎 속의 양분은 줄기와 뿌리로 이동하고 잎자루나 잎 몸의 기부에 이층(離層)이라고 하는 특수한 세포층이 형성된다. 이 때부터 엽록소의 합성은 중단되고 안토시아닌이 합성되면서 붉은 색을 띄게 되고 뒤에 이 이층이 발달되어 잎은 떨어지게 된다. 즉 단풍은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에 잠시 나타나는 것이다.  여름에는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합성하기 위해 많은 잎이 필요했지만, 겨울에는 얼기 쉬운 잎을 떨구고 대신 봄에 잎이 될 조직을 여러 겹의 세포로 쌓아 얼지 않도록 겨울눈을 만들어 지내게 된다. 


은행나무 같은 식물은 안토시아닌을 생성하지 않는다. 그러면 왜 은행나무잎은 가을이 되면 노랗게 되는 것일까? 모든 식물들은 광합성을 위하여 엽록소뿐만 아니라 카로틴과 크산토필이란 노란 색을 띈 물질도 가지고 있다. 초봄에 막 싹이 튼 어린잎이나 콩나물과 같이 빛을 받지 못한 잎이 노란 색을 띄는 이유는 바로 이런 색소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햇빛을 받으면 금방 엽록소가 생겨 녹색으로 변하므로 노란색은 눈에 잘 띄지 않게 된다. 하지만 가을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면 나뭇잎의 엽록소 생성이 중단되고 이미 생성된 엽록소는 파괴되면서 녹색에 가려졌던 노란 색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황엽의 단풍으로 가을을 수놓게 된다.

일부 식물은 날씨가 추워지면 엽록소와 카로틴을 모두 분해한 후 카로틴만을 새로 합성해 노란 단풍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어떤 식물들은 엽록소가 파괴된 후 생성된 안토시아닌과 카로틴이 섞여 밝은 오렌지색의 단풍을 만들기도 한다. 반면에 참나무 같은 식물은 황갈색의 단풍을 갖게 되는데 이들은 잎에 탄닌이란 물질을 갖고 있어 엽록소가 분해된 후 카로틴과 탄닌의 색이 혼합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식물은 단풍이 들게 하고 잎을 떨어뜨리는 시기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식물들이 낮의 길이와 온도를 감지하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낙엽기는 장일(長日)에 의하여 늦어지고 단일(短日)에 의하여 촉진된다. 즉 가을에 낮의 길이가 일정시간 이하로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식물은 겨울준비에 들어가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 중에서 가로등이 잘 비취는 잎은 그렇지 못한 어두운 부분에 비해 오랜 동안 달려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온도도 낙엽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떡갈나무의 일종은 가을이 되어 단일이 되면 자연환경 하에서는 낙엽이 되지만 온실에서는 낙엽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감지하고 조절하는 데는 피토크롬이란 물질과 에틸렌, 앱시스산이란 호르몬이 관여하며 아직도 과학자들이 다 밝히지 못한 복잡한 과정이 있음을 추측할 뿐이다.

   그러면 낙엽을 떨군 후에 식물은 어떤 방법으로 혹독한 겨울을 지내기 위해 준비하는지 생각해 보자.

  식물체 수준에서의 대표적인 냉해의 증상은 생장과 물질대사의 감소를 들 수 있다. 낮은 기온은 식물의 생장을 감소시켜 식물의 생활사를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연장시킴으로 많은 식물들이 제대로 씨앗을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냉해의 진행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세포막의 인지질이 액화상태에서 고형화되면서 막에 결합되어 있는 효소들이 비활성화된다. 결국 미토콘드리아의 막에 있는 호흡효소들이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호흡률이 떨어지고, 뿌리의 세포막에 있는 이온을 흡수하는 단백질들이 기능을 잃게 되어 이온의 흡수와 물의 흡수가 줄어들게 된다.

그러므로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식물들은 세포막의 투과도를 증가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냉해의 초기 반응은 세포막이 고형화 됨으로 투과도가 감소하고 막에 결합된 효소의 활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세포막의 투과도를 높이는 방법 중 하나는 세포막의 인지질에 불포화 지방산의 양을 높이는 것이다. 불포화 지방산이 갖고 있는 탄소와 탄소사이의 이중결합은 지방산의 탄소사슬을 꺾이게 만들어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 함으로 세포막의 투과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세포의 투과도를 높이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세포막에 Cholesterol(콜레스테롤) 같은 물질을 끼어 넣는 방법이다.

  낮은 온도에서 식물의 광합성 중 효소반응인 암반응은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그러나 광화학반응인 명반응은 온도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식물은 환원된 NADPH를 축적하게 되고 결국 순환 광인산화반응에 의해 ATP를 다량 생산하게 된다. ATP의 다량 축적은 ATP만을 필요로 하는 단백질의 합성을 촉진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축적된 수용성 단백질은 빙점을 낮추게 되어 영하의 날씨에도 얼지 않게 된다. 순수한 물은 0oC 에서 얼기 시작하나, 이 순수한 물에 용질을 많이 녹일수록 빙점은 낮아지게 된다. 세포는 고형물과 액체상태의 물질이 혼합되어 있는 혼합체이므로 빙점은 항상 0oC 보다 낮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세포가 얼기 시작할 때는 이미 상당히 온도가 빙점이하로 낮아진 상태이며 세포의 빙점은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림 2)식물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겨울을 난다.

식물세포는 실제로 빙핵에 의해서 얼기 시작한다. 빙핵은 얼음 결정이나 다른 고형물질로서 주위로부터 얼음결정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이후로는 신속하게 빙점이하로 냉각되어 모든 용액을 얼게 한다. 세포 내에서 물은 대개 -10℃ 이내에 얼기 시작하지만 조건에 따라 -38℃까지도 얼지 않고 냉각될 수 있다.
 
결빙으로 인한 식물의 피해는 세포가 얼었다 녹으면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먼저 얼기 시작한 세포 밖으로 세포내의 물이 증발되면서 세포의 부피는 감소하게 되고, 세포막은 수축하기 시작한다. 이 상태는 혐수성에 의해 결합되어 있는 인지질과 세포막에 있는 물질들을 세포 밖으로 떨어져 나가게 한다. 이런 상태의 세포가 녹게 되면 세포막이 파괴되어 세포내 물질들을 잃고 죽게 된다. 그러나 추위에 강한 식물들은 지질과 세포막에서 떨어져 나온 물질들을 세포 내에 저장해 두었다가 세포가 녹을 때 세포막에 재결합하게 함으로 세포막의 파괴를 막게 된다.


 이상과 같은 빙점이하의 온도에서 일어나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 식물들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겨울을 준비한다.

첫째, 식물은 용질(당, 유기산, 아미노산, 단백질 등)을 세포에 축적함으로 빙점을 낮추게 된다. 그러나 이 방법만으로는 극히 낮은 온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 그래서 둘째로 휴면아를 통해 혹독한 겨울을 난다. 휴면아는 가을에 기온이 5oC정도로 떨어지면서 형성되는 것으로 -40oC 정도에서도 견딜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휴면아를 형성함으로 -20~-30oC정도의 기온에도 세포는 얼지 않고 겨울을 나게 된다. 휴면아에 어떠한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아직도 분명치 않지만 일반적으로 휴면아는 거의 순수한 물을 포함하고 있어 빙핵의 결핍으로 낮은 온도에서도 결빙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간동안 휴면아를 제외한 다른 조직들은 세포간 결빙으로 인해 탈수현상을 감수하며 겨울을 나게 된다.

 

그러나 일부 식물의 휴면하고 있는 가지를 액체질소(-196oC)에 처리해도 다음 해의 생장에 별 피해가 없는 현상을 이 둘째 방법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 경우 식물은 아마도 세포막과 세포내 소기관 그리고 거대분자들 주위에 얇은 물로 보호막을 형성한 다음 세포내의 모든 결빙할 수 있는 물을 세포 밖으로 축출함으로 세포 안에는 얼음이 형성되지 못하도록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듯 식물들은 과학이 다 밝히지 못한 방법, 하나님이 창조하신 신비하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혹독한 겨울을 나고 봄에 새 잎을 내는 것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준비하지 않은 채 죄악 가운데 멋대로 살아가는 인간을 향해 지혜롭게 겨울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식물들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창조자 되심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128호 [2001. 11~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93

참고 : 6402|6391|6309|6269|6236|6200|6114|6057|6056|6053|6050|6024|6004|5978|5956|5938|5933|5855|5823|5788|5778|5856|5775|5774|5772|5763|5757|5754|5746|5736|5735|5700|5692|5679|5665|5663|5657|5656|5654|5574|5571|5554|5529|5526|5524|5478|5477|5475|5432|5430|5426|5391|5363|5362|5356|5352|5345|5341|5292|5242|5165|5137|5123|5089|5046|5024|5023|4854|4830|4712|4708|4574|4556

미디어위원회
2004-07-26

한치 오차도 없는 수정

손기철 


       꽃 피는 식물의 생식에 관하여 알아보자. 대부분의 경우 꽃의 구조는 꽃받침과 꽃잎 그리고 생식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수술과 암술로 이루어져 있다. 식물의 생식수단으로 수분(受粉)과 수정(受精)은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식물의 생식에도 신비로움과 놀라운 섭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수술과 암술의 세포나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상호인식현상(recognition phenomena)이다.

수분이란 화분(꽃가루)이 암술의 주두(柱頭)로 이동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화분이 발아하고, 형성되어진 화분관은 암술머리를 뚫고 암술대를 따라 점점 신장되어 씨방까지 이른다. 이때 화분관 내에서는 정핵과 영양핵이 형성된다. 신장한 화분관은 씨방으로 들어간 후 난핵을 가진 배주를 향하여 계속 자라게 된다. 화분관이 마침내 배낭이라는 곳으로 들어갈 때 화분관은 두 개의 정핵을 방출하게 되며 이것에 의해 중복수정이 이루어진다. 즉 정핵 중 하나는 난핵과 결합하여 배를 형성하고 다른 하나는 극핵과 결합하여 배유를 만든다는 것이다.


       잡종은 모두 불임(不妊)… 형질보전의 섭리

       진정한 신종(新種) 탄생은 '절대불가, 판명


동물의 경우는 배를 형성하고 완전한 생명체가 밖으로 나오기까지 모체의 태를 통하여 양분을 공급받지만 식물의 경우는 처음부터 모체와 분리된 배유라는 곳에서 양분을 만들고, 배가 성장하여 스스로 광합성을 하기 전까지 양분을 공급한다. 이것만 보아도 동물과 식물은 처음부터 완전히 다르게 설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암술머리에서부터 배낭까지의 길이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0.2~10 센티미터 정도이다.

결국 식물에 있어 정상적인 수정이란 앞서 설명한 이러한 모든 과정이 한치의 틀림도 없이 단계적으로 수행되는 것을 말한다. 언급한 정상적 진행과는 달리 교잡이 안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흔히 불화합성이라고 부른다. 이 불화합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자신의 수술과 암술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경우(자가불화합성)와 식물의 종이나 속이 다르기 때문에 교잡이 안 되는 경우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자가불화합성을 오늘날 피자(被子)식물의 다양함을 설명하는 근본원리로 생각하고 있다. 즉 백악기(지질학상 7천만년 전에서 1억7천만년 전의 기간)에 피자식물의 갑작스런 출현의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 식물체가 자가수정을 억제하는 기구를 확립하고 그 전부터 존재하던 나자(裸子)식물에서 보다 훨씬 효율적인 타가수분의 기구를 증진시켰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타가수정에 의한 엄청난 식물간의 유연성이 오늘날 볼 수 있는 많은 수의 피자식물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로로 갑자기 피자식물이 출현하였는가, 최초에는 어떻게 해서 자가불화합성 기구가 생겨났는가, 오늘날에도 자가수분을 하는 피자식물의 수가 많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식물에 있어 진화의 배반일 수밖에 없다.

수분에 있어 자가화합성과 불화합성에 대한 기구(機構)는 옛날에는 단지 경험상으로만 터득된 사실이나 최근 들어 많은 연구로부터 진전을 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연구에서 명확히 얻은 것은 화분관이 난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수많은 문(門)들이 있으며 차례로 각 문마다 서로 독특한 암호를 주고받거나 열쇠가 있어야만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최소한 다음과 같은 과정들이 순차적으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되어야만 한다.

① 화분은 주두(암술머리)에서 수화(水化)되어야 한다(즉 암술머리에 있는 물을 흡수하여야 함).

② 화분은 발아되어야 하며 화분관을 형성해야 한다.

③ 화분관은 계속적으로 신장해야 한다.

④ 화분관은 암술머리를 뚫고 들어가 암술대 속의 경로를 따라 신장해야 한다.

⑤ 화분관은 씨방까지 도달하여야 한다.

⑥ 화분관은 밑씨로 들어가야 한다.

⑦ 화분관은 정핵을 배낭 안으로 방출시켜야 한다.

⑧ 마침내 정자와 난세포는 상호화합해야 한다.

불임이란 위에서 언급한 과정 중의 하나가 정상적으로 행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각 단계를 모두 성공적으로 완수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정자와 암술 조직 사이의 정교한 화학적 물리적인 상호신호 및 인식체계에 의존된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현화(顯花)식물에 있어 생식과정이 점차적이고 우연한 과정들에 의해서 진화되어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수정이 만약 진화에 의해 일어났다면 그야말로 수정에 필요한 수천 개의 돌연변이가 그것도 동시에 일어나야만 가능할 것이다.

프랑스의 한 식물학자의 정의에 따르면 종이란 '같은 모양의 개체가 대를 통하여 연연히 영속하는 계열’이다. 즉, 자신의 종을 지키려고 다른 종과의 수정은 허락하지 않는다. 단지 규정된 범주 내에서만 유성생식을 하며 스스로의 개체와 환경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특성을 지키고자 한다. 경우에 따라 종간이나 속간 잡종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인간의 지혜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한편 그러한 잡종은 거의 불임이 되고 만다. 이것 또한 자신의 형질을 지키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인 것이다.

오늘날 주위를 바라보자. 동식물에 있어 수많은 종들이 환경의 변화(그것이 자연적이든 혹은 인위적인 변화이든 간에)에 의해 멸종된다는 보도를 접한다. 또한 수많은 식물들이 멸종, 오늘날 단지 화석으로만 발견될 뿐 단 한 번이라도 자연상태에서 새로운 종이 탄생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탄생이 아닌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가끔 들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미 태초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창조물을 우리가 발견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가끔 분자생물학을 이용한 생물체의 변형이나 새로운 종을 만들었다는 보도가 학계에서 발표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수많은 과학자가 시간과 지혜를 짜내어 만든 것임을 왜 모르는가? 하찮은 식물 하나를 변형시키는 데도 그러한데 하물며 모든 생물이 어찌 그냥 우연과 긴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한 진화되어 갈 수 있단 말인가.

진화론의 근본인 동일과정설을 적용해 보자. 오늘의 변화는 과거를 알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식물의 멸종과 진화에 의한 새 창조의 비율을 생각해 보자. 오늘날의 비율이 그 당시의 비율과 같다면 오늘날 이렇게 많은 식물의 다양함은 분명 거짓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멸종의 속도가 진화에 의한 창조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전 지구에 걸쳐 식물의 다양함은 태초부터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미디어위원회
2004-07-26

최대의 에너지공장 광합성

손기철 


       태초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나가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새가 날고 인간이 움직이고 말하며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누구나가 의심 없이 태양에서 오는 빛에너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태양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가장 진화된 생명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광합성 작용을 하는 식물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은 식물이 가장 진화된 생명체라고 믿지 않는다.

왜 다른 생명체는 태양에너지를 직접 이용하는 쪽으로 진화되지 않았을까. 흔히들 이미 만들어 놓은 것에서부터 에너지를 취하는 형태로 진화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만든 것을 취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여러 기관들이 진화되어야만 한다. 식물에는 없는 입과 식도, 위장, 그리고 배설기관들... 거추장스럽고 때마다 아우성치며 지니고 다니기에 불편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따라서 이미 있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억지로 만들어가며 진화되었다는 것은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진화론적 과학으로는 도무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처음부터 명백히 구분되어 졌다 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답일 것이다. 이 놀라운 생명에너지의 비밀은 가장 작은 수은전지보다 천만 배나 작은 보이지 않는 식물세포 세계의 광합성 공장에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을 먹여 살리는 지상 최대의 공장이 주인도 없으며, 소음 하나 없다니 참으로 기적 중의 기적이다.

식물은 태양에너지를 그냥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전환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때 과학자들은 식물이 모든 먹이와 영양분을 흙으로부터 흡수하여 살아가는 것으로 알았다. 그 뒤에는 물이 주원인이라고도 했다. 물이 식물 생체 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식물 성장의 골격을 이루는 것은 광합성을 통한 탄소의 유기화로 밝혀졌다. 식물은 태양을 향하여 녹색을 띤 잎을 벌리고 엽록소로 햇빛의 에너지를 받고 기공을 통하여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뿌리에서 흡수한 물로써 광합성을 하고 있다. 광합성의 결과 탄수화물인 당이 합성되고 동시에 물 분해의 결과로 산소가 방출된다.

 

동물들은 엽록체 없어 태양에너지 이용 못해, 진화 따른다면 ‘녹색인간' 존재했어야


잎에는 물이나 양분을 보급하는 엽맥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으며, 뒷면에는 이산화탄소, 산소, 그리고 수증기가 출입하는 기공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 수는 1 mm2당 20~200 개, 크기도 식물의 종에 따라 다양하다. 기공의 뚜껑 역할을 하는 공변세포는 외부환경에 따라 팽압이 변하여 개폐가 자동적으로 조절된다. 녹색 잎의 단면을 살펴보면 광합성은 조직 중 흔히 책상조직과 해면조직을 포함하는 엽육세포에서 일어나며, 세포 내에 핵을 포함한 여러 소기관 중 엽록체라 불리는 곳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비한 과정이 일어난다.

하나의 엽세포는 대략 60개 정도의 엽록체를 지니며 이 엽록체는 빛의 방향과 강도에 따라 그 방향을 자유롭게 바꾸기도 한다. 엽록체는 빈대떡을 포개어 놓은 것과 같은 그라나와 그 외의 부분인 스트로마로 이루어져 있다.

광합성의 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빛이 필요한 반응(명반응)과 그렇지 않은 반응(암반응)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명반응은 그라나의 틸라코이드막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이 곳에는 빛을 흡수하는 클로로필이라는 녹색을 띠는 색소와 여러 복잡한 분자가 어우러져 광계를 이루고 있다.

이 광계의 반응센터에 충분한 에너지가 흡수되면 전자전달계 분자들을 통과하여 빛에너지가 최초의 화학에너지로 변환되고, 이 과정에서 생명체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인 ATP와 NADPH가 만들어진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빛에너지에 의해서 생체 내 자유에너지(일할 수 있는 에너지)가 높아진다는 뜻이다. 엽록체의 스트로마라는 곳에서는 바로 이 에너지를 이용해서 이산화탄소를 고정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탄수화물을 만드는 암반응이 일어난다. 탄소고정계에서는 이 화학에너지를 사용하여 많은 효소가 연속적인 작업을 통해 당을 합성한다.

식물계의 삶이란 바로 이러한 광합성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탄수화물과 산소, 그리고 뿌리에서 흡수한 양분을 가지고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호흡 과정을 통해서 생장과 발육에 필요한 에너지와 모든 골격을 이루는 DNA, 지질, 단백질 등을 만들어낸다.

한편 그 결과로 생긴 물과 이산화탄소는 다시 대기 중으로 방출되어진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타가영양체는 이들 유기물(식물이 만들어 놓은 거대분자들인 탄수화물, DNA, 지질, 단백질 등)을 섭취하고 광합성으로 방출된 산소를 흡수하여 호흡함으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식물의 광합성이야말로 생물권(biosphere)을 성립시키는 핵심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직물 원료, 재목, 고무, 섬유, 유지, 연료 등 사람을 위한 모든 생산물은 바로 이 광합성이라는 신비로운 과정을 통하여 생산되어진다.

대자연의 법칙은 생각할수록 너무나 신비하다. 동물은 움직여 활동함으로써 그들의 먹이를 얻을 수 있도록 계획되었고,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은 광합성으로 그들의 식량을 조달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동물은 식물을 먹어야 하고, 그 대신 식물은 대자연으로부터 광합성의 특수비법을 제공받았다. 결국 창조적 안목으로 볼 때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처음부터 계획된 공생원리에 의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고차원적인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모든 책을 살펴 보라. 최초의 광합성 생명체가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엽록체가 어떤 진화적 경로를 거쳐 발달하였으며,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기적이 어떤 진화적 경로를 거쳐 발생되었는가 등의 질문에 속시원한 답을 해주는 책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것은 모두가 가정에서 출발되었음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관찰하고 알고 있는 지식은 진화론이란 틀에 끼워 맞추기 위해서 듬성듬성 연결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다음과 같은 사실은 광합성이 진화된 것이 아니라 창조되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 진화론적으로 살펴볼 때 전 지구의 생명의 핵심을 단지 하찮은 식물의 잎에 맡긴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 어떠한 연구 결과도 광합성 기구의 생성 및 진화에 대한 합리적인 유추를 주지 못하며, 화학합성 다음에는 광합성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엄청난 과학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 광합성 기구가 진화되어 왔다면 현재 녹색인간(이마나 몸 전체의 세포에 엽록체를 함유하고 있어 태양전지 시계처럼 태양광만 쪼이면 음식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디

에서도 녹색인간은 커녕 녹색동물도 없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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