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창조설계

손기철
2004-07-26

아로마테라피 

(aromatherapy : 향기요법)


      최근 들어 허브식물(herbal plant)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인 불안과 긴장된 마음을 이완시키고, 감정을 조절하기 위해 향기를 이용해 병을 치료하는 아로마테라피(aromatherapy:향기요법)가 유행 되고 있다. 방향성 식물에서 추출한 100%의 자연성분인 정유(essential oils)는 그 식물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힘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물질이며,다양한 종류의 나무,풀,꽃,뿌리 등에서 추출되어 그 종류만도 수백여 종에 이른다. 이러한 정유성분의 대부분은 휘발성을 가지고 있으며,항염(anti-inflammation) 및 방부(antiseptic)효과 외에 다양한 생체기능 조절능력을 가지고 있어,어떤 향은 신체와 정신기능을 진정 또는 이완시켜주는 반면 다른 오일은 오히려 자극시켜주고 활성화시켜 준다. 실제 의학적인 예로 정유는 신경정신과 질환인 불안증,우울증,불면증에서부터 피부과 질환인 여드름,습진 그리고 노화성 피부,여성질환,순환기 장애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아로마의 성분이나 효과들은 의학적으로 아직 약 30%정도만 밝혀진 상태이다. 최근 이러한 에센셜 오일의 실제적 효과검증을 위해 배합 오일향이 인체의 각성 및 항스트레스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바 있는데,남녀 대학생을 대상으로 흡입 전후간 스트레스 및 상태, 특성, 불안,뇌파(EEG),혈압 및 맥박 등이 비교조사 되었다. 결과에 따르면,레몬,바질,로즈마리로 구성된 자극오일(stimulating oils)은 스트레스 감소와 동시에 각성(arousal)을 유도하였으며,뇌파에서 특히,좌뇌 두정엽과 측두엽의 알파파를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나 기억력 증진에 적용하면 좋을 것으로 판단되는 결과를 보였다.
한편,놀라운 사실은 이러한 결과는 남성에게만 적용되어지며,여성에게는 효과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는 사실이다. 라벤더,마조람,클라라 세이지로 구성된 진정오일(sedating oil)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는 명백한 효과를 보였으며,또한 수축기 혈압을 유의하게 떨어뜨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진정오일은 항스트레스 오일로써 적당한 것으로 판단되고,특히 고혈압 환자에게 적합할 것으로 밝혀졌다. 다른 몇 가지 실험들을 조합해 볼 때,정유성분의 짧은 흡입에도 불구하고 인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사용되는 오일의 배합에 따라 매우 구체적인 효과를 미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현재 무분별하게 대중요법적으로 남용되고 있는 오일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앞으로 정확한 검증이 필수적이라 하겠다.

성경에도 향유에 대한 표현이 많으며,일반적으로 기름이라고만 표현되거나,향료로 혹은 향유로 열거되어진다(구약 46개,신약 11개 구절). 성경에서의 사용은 인간과 물건을 정결케 하고 (출30:26-29,레14:51),보배로운 분을 예배할 때나(출30:7-10,요11:2,마26:6-10),하나님의 치유 (약5:14)시 사용되었던 것으로 전인적인 치유에 사용되었다. 지금은 단지 육체적인 치유에만 급급하지만,영혼의 치유에 사용되었던 향유의 의미를 새로이 묵상해 볼 때이다.

 

출처 - 기독공보 2003.11. 8.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525

참고 :

이웅상
2004-07-26

창조의 신비 27. 식물잎의 기공 개폐 다 못밝혀


      식물의 잎은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와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재료로 탄수화물을 합성하는 장소다.이것을 우리는 광합성 혹은 탄소동화작용이라고 부르며 정확하게는 잎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속에 있는 엽록체에서 일어나게 된다.

잎의 단면을 잘라보면 맨 위층을 구성하고 있는 세포들을 상피조직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엽록체를 거의 갖고 있지 않은 투명한 세포들이다.그리하여 광합성이 주로 일어나는 밑의 책상조직과 갯솜조직이라는 잎속 깊숙이 빛이 투과해 들어가도록 한다.

반면에 잎의 맨 밑층을 구성하는 표피세포에는 광합성에 필요한 이산화탄소를 공기 중으로부터 흡수하는 수많은 작은 기공들이 있다.광합성을 활발히 하기 위해서는 이 기공을 활짝 열어 많은 이산화탄소를 흡수해야 한다.

그러나 이 기공은 이산화탄소만이 아니라 동시에 뿌리에서 흡수한 물도 공기중으로 증산시키는 중요한 통로다.물이 충분할 때는 별 문제가 되지 않지만 가물 때는 기공의 열리고 닫히는 예민한 기작이 식물의 생사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그러면 과연 이러한 기공은 어떻게 광합성을 하지 않는 밤에는 닫히고, 반대로 낮에는 열리며, 또한 낮일지라도 수분이 부족한 경우에는 수시로 닫히게 되는 것일까.

기공은 구조적으로 공변세포라는 두개의 세포로 형성되어 있어 세포에 물이 많이 삼투해 들어오게 되면 부피가 커지면서 얇은 세포벽으로 된 세포의 바깥쪽이 부풀면서 기공은 열리게 되고,물이 빠져나가 세포의 부피가 줄면 기공은 다시 닫히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해가 뜨고 광합성이 시작되면 공변세포 내에 당의 농도가 높아지게 되고 이렇게 되면 삼투압이 높아져 물은 더욱 빨리 공변세포로 흡수되어 기공을 열게 한다.

역으로 밤에는 광합성을 할 수 없게 되고,이미 합성된 당은 공변세포로부터 다른 저장기관으로 운반되어 녹말로 저장되므로 공변세포의 삼투압은 떨어져 물은 오히려 빠져나가 기공은 닫히게 되고 만다.그러나 낮일지라도 가뭄으로 물의 흡수가 줄어들게 되면 공변세포의 삼투압은 떨어지면서 기공을 닫아 물의 소비를 줄이게 된다.

비록 기공을 담음으로써 이산화탄소가 부족해 광합성을 못하더라도 생명유지에 더 중요한 물을 지키기 위해서다.그러나 기공은 완전히 닫히고 열리기도 하지만 수분부족의 정도에 따라 기공을 일부만 열기도 한다.

즉 식물은 기공을 일부만 열음으로써 발생되는 수분손실과 광합성을 일부 수행함으로써 생기는 득실을 계산하여 최고의 생명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조절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이 작은 기공이 수많은 환경요인에 따라 수시로 열리고 닫히는 기작이 얼마나 정교하고 복잡한지 아직도 과학자들은 다 밝히지 못하고 있다.

기공은 또한 식물의 종류에 따라 특이한 형태와 배열을 갖고 있다.일반적으로 쌍떡잎식물들은 신장 양의 기공을 갖고 있는 반면 외떡잎 식물들은 아령을 두 개 겹쳐놓은 모양의 바벨형을 갖고 있다.이러한 특이한 구조와 기능을 갖고 있는 기공이 어떻게 저절로 진화되어 생겨날 수 있겠는가.

식물의 잎 하나만을 보아도 하나님의 창조의 놀라운 질서와 섭리가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출처 - 국민일보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73

참고 : 5772|5775|5788|5823|5855|5933|5938|5956|5978|6024|6050|6053|6056|6057|6114|6200|6236|6269

이웅상
2004-07-26

하나님이 창조하신 겨울 - 식물은 어떻게 겨울을 지낼까?


     날씨가 추워지면 사람들은 두꺼운 옷을 입고 난방을 하면서 겨울을 난다. 그러나 대부분의 식물들은 오히려 옷을 벗듯이 잎을 떨구고 겨울을 난다. 과연 식물이 잎을 떨구는 이유는 무엇이며, 또 어떤 방법으로 겨울을 나는지 생각해 보자. 

그림 1) 단풍은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에 잠시 나타나는 것이다

가을이 되면 대부분의 식물 잎 속의 양분은 줄기와 뿌리로 이동하고 잎자루나 잎 몸의 기부에 이층(離層)이라고 하는 특수한 세포층이 형성된다. 이 때부터 엽록소의 합성은 중단되고 안토시아닌이 합성되면서 붉은 색을 띄게 되고 뒤에 이 이층이 발달되어 잎은 떨어지게 된다. 즉 단풍은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을 준비하기 위한 과정에 잠시 나타나는 것이다.  여름에는 광합성을 통해 영양분을 합성하기 위해 많은 잎이 필요했지만, 겨울에는 얼기 쉬운 잎을 떨구고 대신 봄에 잎이 될 조직을 여러 겹의 세포로 쌓아 얼지 않도록 겨울눈을 만들어 지내게 된다. 


은행나무 같은 식물은 안토시아닌을 생성하지 않는다. 그러면 왜 은행나무잎은 가을이 되면 노랗게 되는 것일까? 모든 식물들은 광합성을 위하여 엽록소뿐만 아니라 카로틴과 크산토필이란 노란 색을 띈 물질도 가지고 있다. 초봄에 막 싹이 튼 어린잎이나 콩나물과 같이 빛을 받지 못한 잎이 노란 색을 띄는 이유는 바로 이런 색소 때문인 것이다. 그러나 햇빛을 받으면 금방 엽록소가 생겨 녹색으로 변하므로 노란색은 눈에 잘 띄지 않게 된다. 하지만 가을이 되어 기온이 떨어지면 나뭇잎의 엽록소 생성이 중단되고 이미 생성된 엽록소는 파괴되면서 녹색에 가려졌던 노란 색이 드러나게 된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황엽의 단풍으로 가을을 수놓게 된다.

일부 식물은 날씨가 추워지면 엽록소와 카로틴을 모두 분해한 후 카로틴만을 새로 합성해 노란 단풍을 만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어떤 식물들은 엽록소가 파괴된 후 생성된 안토시아닌과 카로틴이 섞여 밝은 오렌지색의 단풍을 만들기도 한다. 반면에 참나무 같은 식물은 황갈색의 단풍을 갖게 되는데 이들은 잎에 탄닌이란 물질을 갖고 있어 엽록소가 분해된 후 카로틴과 탄닌의 색이 혼합되어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 식물은 단풍이 들게 하고 잎을 떨어뜨리는 시기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은 식물들이 낮의 길이와 온도를 감지하고 반응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낙엽기는 장일(長日)에 의하여 늦어지고 단일(短日)에 의하여 촉진된다. 즉 가을에 낮의 길이가 일정시간 이하로 짧아지고 기온이 떨어지면 식물은 겨울준비에 들어가는 것이다. 단적인 예로, 가로수로 심은 은행나무 중에서 가로등이 잘 비취는 잎은 그렇지 못한 어두운 부분에 비해 오랜 동안 달려 떨어지지 않는다.

또한 온도도 낙엽에 영향을 미친다. 예를 들면 떡갈나무의 일종은 가을이 되어 단일이 되면 자연환경 하에서는 낙엽이 되지만 온실에서는 낙엽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자연환경을 감지하고 조절하는 데는 피토크롬이란 물질과 에틸렌, 앱시스산이란 호르몬이 관여하며 아직도 과학자들이 다 밝히지 못한 복잡한 과정이 있음을 추측할 뿐이다.

   그러면 낙엽을 떨군 후에 식물은 어떤 방법으로 혹독한 겨울을 지내기 위해 준비하는지 생각해 보자.

  식물체 수준에서의 대표적인 냉해의 증상은 생장과 물질대사의 감소를 들 수 있다. 낮은 기온은 식물의 생장을 감소시켜 식물의 생활사를 완성하는데 걸리는 시간을 연장시킴으로 많은 식물들이 제대로 씨앗을 형성하지 못하게 된다. 냉해의 진행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세포막의 인지질이 액화상태에서 고형화되면서 막에 결합되어 있는 효소들이 비활성화된다. 결국 미토콘드리아의 막에 있는 호흡효소들이 기능을 상실하게 되어 호흡률이 떨어지고, 뿌리의 세포막에 있는 이온을 흡수하는 단백질들이 기능을 잃게 되어 이온의 흡수와 물의 흡수가 줄어들게 된다.

그러므로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식물들은 세포막의 투과도를 증가시켜야 한다. 왜냐하면 냉해의 초기 반응은 세포막이 고형화 됨으로 투과도가 감소하고 막에 결합된 효소의 활성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세포막의 투과도를 높이는 방법 중 하나는 세포막의 인지질에 불포화 지방산의 양을 높이는 것이다. 불포화 지방산이 갖고 있는 탄소와 탄소사이의 이중결합은 지방산의 탄소사슬을 꺾이게 만들어 많은 공간을 차지하게 함으로 세포막의 투과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세포의 투과도를 높이는 또 다른 방법으로는 세포막에 Cholesterol(콜레스테롤) 같은 물질을 끼어 넣는 방법이다.

  낮은 온도에서 식물의 광합성 중 효소반응인 암반응은 급격히 감소하게 된다. 그러나 광화학반응인 명반응은 온도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낮은 온도에서 식물은 환원된 NADPH를 축적하게 되고 결국 순환 광인산화반응에 의해 ATP를 다량 생산하게 된다. ATP의 다량 축적은 ATP만을 필요로 하는 단백질의 합성을 촉진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축적된 수용성 단백질은 빙점을 낮추게 되어 영하의 날씨에도 얼지 않게 된다. 순수한 물은 0oC 에서 얼기 시작하나, 이 순수한 물에 용질을 많이 녹일수록 빙점은 낮아지게 된다. 세포는 고형물과 액체상태의 물질이 혼합되어 있는 혼합체이므로 빙점은 항상 0oC 보다 낮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세포가 얼기 시작할 때는 이미 상당히 온도가 빙점이하로 낮아진 상태이며 세포의 빙점은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게 된다.


그림 2)식물은 여러 가지 다양한 방법으로 겨울을 난다.

식물세포는 실제로 빙핵에 의해서 얼기 시작한다. 빙핵은 얼음 결정이나 다른 고형물질로서 주위로부터 얼음결정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이후로는 신속하게 빙점이하로 냉각되어 모든 용액을 얼게 한다. 세포 내에서 물은 대개 -10℃ 이내에 얼기 시작하지만 조건에 따라 -38℃까지도 얼지 않고 냉각될 수 있다.
 
결빙으로 인한 식물의 피해는 세포가 얼었다 녹으면서 나타나기 시작한다. 먼저 얼기 시작한 세포 밖으로 세포내의 물이 증발되면서 세포의 부피는 감소하게 되고, 세포막은 수축하기 시작한다. 이 상태는 혐수성에 의해 결합되어 있는 인지질과 세포막에 있는 물질들을 세포 밖으로 떨어져 나가게 한다. 이런 상태의 세포가 녹게 되면 세포막이 파괴되어 세포내 물질들을 잃고 죽게 된다. 그러나 추위에 강한 식물들은 지질과 세포막에서 떨어져 나온 물질들을 세포 내에 저장해 두었다가 세포가 녹을 때 세포막에 재결합하게 함으로 세포막의 파괴를 막게 된다.


 이상과 같은 빙점이하의 온도에서 일어나는 피해를 막기 위해서 식물들은 다음과 같은 다양한 방법으로 겨울을 준비한다.

첫째, 식물은 용질(당, 유기산, 아미노산, 단백질 등)을 세포에 축적함으로 빙점을 낮추게 된다. 그러나 이 방법만으로는 극히 낮은 온도로부터 자신을 보호할 수 없다. 그래서 둘째로 휴면아를 통해 혹독한 겨울을 난다. 휴면아는 가을에 기온이 5oC정도로 떨어지면서 형성되는 것으로 -40oC 정도에서도 견딜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본격적으로 겨울이 시작되기 전에 휴면아를 형성함으로 -20~-30oC정도의 기온에도 세포는 얼지 않고 겨울을 나게 된다. 휴면아에 어떠한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는지는 아직도 분명치 않지만 일반적으로 휴면아는 거의 순수한 물을 포함하고 있어 빙핵의 결핍으로 낮은 온도에서도 결빙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기간동안 휴면아를 제외한 다른 조직들은 세포간 결빙으로 인해 탈수현상을 감수하며 겨울을 나게 된다.

 

그러나 일부 식물의 휴면하고 있는 가지를 액체질소(-196oC)에 처리해도 다음 해의 생장에 별 피해가 없는 현상을 이 둘째 방법만으로는 설명할 수가 없다. 이 경우 식물은 아마도 세포막과 세포내 소기관 그리고 거대분자들 주위에 얇은 물로 보호막을 형성한 다음 세포내의 모든 결빙할 수 있는 물을 세포 밖으로 축출함으로 세포 안에는 얼음이 형성되지 못하도록 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렇듯 식물들은 과학이 다 밝히지 못한 방법, 하나님이 창조하신 신비하고도 다양한 방법으로 혹독한 겨울을 나고 봄에 새 잎을 내는 것이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준비하지 않은 채 죄악 가운데 멋대로 살아가는 인간을 향해 지혜롭게 겨울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식물들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창조자 되심을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출처 - 창조지, 제 128호 [2001. 11~12]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893

참고 : 6402|6391|6309|6269|6236|6200|6114|6057|6056|6053|6050|6024|6004|5978|5956|5938|5933|5855|5823|5788|5778|5856|5775|5774|5772|5763|5757|5754|5746|5736|5735|5700|5692|5679|5665|5663|5657|5656|5654|5574|5571|5554|5529|5526|5524|5478|5477|5475|5432|5430|5426|5391|5363|5362|5356|5352|5345|5341|5292|5242|5165|5137|5123|5089|5046|5024|5023|4854|4830|4712|4708|4574|4556

손기철
2004-07-26

한치 오차도 없는 수정


       꽃 피는 식물의 생식에 관하여 알아보자. 대부분의 경우 꽃의 구조는 꽃받침과 꽃잎 그리고 생식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수술과 암술로 이루어져 있다. 식물의 생식수단으로 수분(受粉)과 수정(受精)은 모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이러한 식물의 생식에도 신비로움과 놀라운 섭리가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수술과 암술의 세포나 조직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상호인식현상(recognition phenomena)이다.

수분이란 화분(꽃가루)이 암술의 주두(柱頭)로 이동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화분이 발아하고, 형성되어진 화분관은 암술머리를 뚫고 암술대를 따라 점점 신장되어 씨방까지 이른다. 이때 화분관 내에서는 정핵과 영양핵이 형성된다. 신장한 화분관은 씨방으로 들어간 후 난핵을 가진 배주를 향하여 계속 자라게 된다. 화분관이 마침내 배낭이라는 곳으로 들어갈 때 화분관은 두 개의 정핵을 방출하게 되며 이것에 의해 중복수정이 이루어진다. 즉 정핵 중 하나는 난핵과 결합하여 배를 형성하고 다른 하나는 극핵과 결합하여 배유를 만든다는 것이다.

잡종은 모두 불임(不妊)… 형질보전의 섭리

진정한 신종(新種) 탄생은 '절대불가, 판명

동물의 경우는 배를 형성하고 완전한 생명체가 밖으로 나오기까지 모체의 태를 통하여 양분을 공급받지만 식물의 경우는 처음부터 모체와 분리된 배유라는 곳에서 양분을 만들고, 배가 성장하여 스스로 광합성을 하기 전까지 양분을 공급한다. 이것만 보아도 동물과 식물은 처음부터 완전히 다르게 설계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암술머리에서부터 배낭까지의 길이는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0.2~10 센티미터 정도이다.

결국 식물에 있어 정상적인 수정이란 앞서 설명한 이러한 모든 과정이 한치의 틀림도 없이 단계적으로 수행되는 것을 말한다. 언급한 정상적 진행과는 달리 교잡이 안 되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흔히 불화합성이라고 부른다. 이 불화합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자신의 수술과 암술이 서로 화합하지 못하는 경우(자가불화합성)와 식물의 종이나 속이 다르기 때문에 교잡이 안 되는 경우이다.

진화론자들은 이러한 자가불화합성을 오늘날 피자(被子)식물의 다양함을 설명하는 근본원리로 생각하고 있다. 즉 백악기(지질학상 7천만년 전에서 1억7천만년 전의 기간)에 피자식물의 갑작스런 출현의 중요한 열쇠가 되는 것이 식물체가 자가수정을 억제하는 기구를 확립하고 그 전부터 존재하던 나자(裸子)식물에서 보다 훨씬 효율적인 타가수분의 기구를 증진시켰기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이러한 타가수정에 의한 엄청난 식물간의 유연성이 오늘날 볼 수 있는 많은 수의 피자식물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경로로 갑자기 피자식물이 출현하였는가, 최초에는 어떻게 해서 자가불화합성 기구가 생겨났는가, 오늘날에도 자가수분을 하는 피자식물의 수가 많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그것은 식물에 있어 진화의 배반일 수밖에 없다.

수분에 있어 자가화합성과 불화합성에 대한 기구(機構)는 옛날에는 단지 경험상으로만 터득된 사실이나 최근 들어 많은 연구로부터 진전을 보게 되었다. 이와 같은 연구에서 명확히 얻은 것은 화분관이 난자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수많은 문(門)들이 있으며 차례로 각 문마다 서로 독특한 암호를 주고받거나 열쇠가 있어야만 지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최소한 다음과 같은 과정들이 순차적으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되어야만 한다.

① 화분은 주두(암술머리)에서 수화(水化)되어야 한다(즉 암술머리에 있는 물을 흡수하여야 함).

② 화분은 발아되어야 하며 화분관을 형성해야 한다.

③ 화분관은 계속적으로 신장해야 한다.

④ 화분관은 암술머리를 뚫고 들어가 암술대 속의 경로를 따라 신장해야 한다.

⑤ 화분관은 씨방까지 도달하여야 한다.

⑥ 화분관은 밑씨로 들어가야 한다.

⑦ 화분관은 정핵을 배낭 안으로 방출시켜야 한다.

⑧ 마침내 정자와 난세포는 상호화합해야 한다.

불임이란 위에서 언급한 과정 중의 하나가 정상적으로 행해지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각 단계를 모두 성공적으로 완수하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것은 정자와 암술 조직 사이의 정교한 화학적 물리적인 상호신호 및 인식체계에 의존된다. 얼마나 놀라운 사실인가.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현화(顯花)식물에 있어 생식과정이 점차적이고 우연한 과정들에 의해서 진화되어질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수정이 만약 진화에 의해 일어났다면 그야말로 수정에 필요한 수천 개의 돌연변이가 그것도 동시에 일어나야만 가능할 것이다.

프랑스의 한 식물학자의 정의에 따르면 종이란 '같은 모양의 개체가 대를 통하여 연연히 영속하는 계열’이다. 즉, 자신의 종을 지키려고 다른 종과의 수정은 허락하지 않는다. 단지 규정된 범주 내에서만 유성생식을 하며 스스로의 개체와 환경에 대한 자신의 독특한 특성을 지키고자 한다. 경우에 따라 종간이나 속간 잡종도 만든다. 그러나 그것은 엄연히 인간의 지혜에 의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지, 자연에 의해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한편 그러한 잡종은 거의 불임이 되고 만다. 이것 또한 자신의 형질을 지키도록 하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신비인 것이다.

오늘날 주위를 바라보자. 동식물에 있어 수많은 종들이 환경의 변화(그것이 자연적이든 혹은 인위적인 변화이든 간에)에 의해 멸종된다는 보도를 접한다. 또한 수많은 식물들이 멸종, 오늘날 단지 화석으로만 발견될 뿐 단 한 번이라도 자연상태에서 새로운 종이 탄생되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탄생이 아닌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가끔 들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은 이미 태초에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신 창조물을 우리가 발견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가끔 분자생물학을 이용한 생물체의 변형이나 새로운 종을 만들었다는 보도가 학계에서 발표된다. 그러나 실제로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 수많은 과학자가 시간과 지혜를 짜내어 만든 것임을 왜 모르는가? 하찮은 식물 하나를 변형시키는 데도 그러한데 하물며 모든 생물이 어찌 그냥 우연과 긴 시간에 의해 만들어지고 또한 진화되어 갈 수 있단 말인가.

진화론의 근본인 동일과정설을 적용해 보자. 오늘의 변화는 과거를 알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오늘날의 식물의 멸종과 진화에 의한 새 창조의 비율을 생각해 보자. 오늘날의 비율이 그 당시의 비율과 같다면 오늘날 이렇게 많은 식물의 다양함은 분명 거짓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멸종의 속도가 진화에 의한 창조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기 때문이다. 전 지구에 걸쳐 식물의 다양함은 태초부터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1/a13/a13o8.htm 

출처 - 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1

참고 :

손기철
2004-07-26

최대의 에너지공장 광합성


       태초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나가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새가 날고 인간이 움직이고 말하며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내는 근본적인 에너지는 어디에서 오는가? 누구나가 의심 없이 태양에서 오는 빛에너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 태양에너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가장 진화된 생명체는 무엇일까? 그것은 광합성 작용을 하는 식물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은 식물이 가장 진화된 생명체라고 믿지 않는다.

왜 다른 생명체는 태양에너지를 직접 이용하는 쪽으로 진화되지 않았을까. 흔히들 이미 만들어 놓은 것에서부터 에너지를 취하는 형태로 진화하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미 만든 것을 취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여러 기관들이 진화되어야만 한다. 식물에는 없는 입과 식도, 위장, 그리고 배설기관들... 거추장스럽고 때마다 아우성치며 지니고 다니기에 불편한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따라서 이미 있는 것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것을 억지로 만들어가며 진화되었다는 것은 아전인수격 해석이다. 진화론적 과학으로는 도무지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이다. 누군가에 의해서 처음부터 명백히 구분되어 졌다 라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답일 것이다. 이 놀라운 생명에너지의 비밀은 가장 작은 수은전지보다 천만 배나 작은 보이지 않는 식물세포 세계의 광합성 공장에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을 먹여 살리는 지상 최대의 공장이 주인도 없으며, 소음 하나 없다니 참으로 기적 중의 기적이다.

식물은 태양에너지를 그냥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전환하여 사용하고 있다. 한때 과학자들은 식물이 모든 먹이와 영양분을 흙으로부터 흡수하여 살아가는 것으로 알았다. 그 뒤에는 물이 주원인이라고도 했다. 물이 식물 생체 중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식물 성장의 골격을 이루는 것은 광합성을 통한 탄소의 유기화로 밝혀졌다. 식물은 태양을 향하여 녹색을 띤 잎을 벌리고 엽록소로 햇빛의 에너지를 받고 기공을 통하여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뿌리에서 흡수한 물로써 광합성을 하고 있다. 광합성의 결과 탄수화물인 당이 합성되고 동시에 물 분해의 결과로 산소가 방출된다.

 

동물들은 엽록체 없어 태양에너지 이용 못해, 진화 따른다면 ‘녹색인간' 존재했어야

잎에는 물이나 양분을 보급하는 엽맥이 거미줄처럼 뻗어 있으며, 뒷면에는 이산화탄소, 산소, 그리고 수증기가 출입하는 기공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 수는 1 mm2당 20~200 개, 크기도 식물의 종에 따라 다양하다. 기공의 뚜껑 역할을 하는 공변세포는 외부환경에 따라 팽압이 변하여 개폐가 자동적으로 조절된다. 녹색 잎의 단면을 살펴보면 광합성은 조직 중 흔히 책상조직과 해면조직을 포함하는 엽육세포에서 일어나며, 세포 내에 핵을 포함한 여러 소기관 중 엽록체라 불리는 곳에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비한 과정이 일어난다.

하나의 엽세포는 대략 60개 정도의 엽록체를 지니며 이 엽록체는 빛의 방향과 강도에 따라 그 방향을 자유롭게 바꾸기도 한다. 엽록체는 빈대떡을 포개어 놓은 것과 같은 그라나와 그 외의 부분인 스트로마로 이루어져 있다.

광합성의 기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데 빛이 필요한 반응(명반응)과 그렇지 않은 반응(암반응)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명반응은 그라나의 틸라코이드막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이 곳에는 빛을 흡수하는 클로로필이라는 녹색을 띠는 색소와 여러 복잡한 분자가 어우러져 광계를 이루고 있다.

이 광계의 반응센터에 충분한 에너지가 흡수되면 전자전달계 분자들을 통과하여 빛에너지가 최초의 화학에너지로 변환되고, 이 과정에서 생명체가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인 ATP와 NADPH가 만들어진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빛에너지에 의해서 생체 내 자유에너지(일할 수 있는 에너지)가 높아진다는 뜻이다. 엽록체의 스트로마라는 곳에서는 바로 이 에너지를 이용해서 이산화탄소를 고정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탄수화물을 만드는 암반응이 일어난다. 탄소고정계에서는 이 화학에너지를 사용하여 많은 효소가 연속적인 작업을 통해 당을 합성한다.

식물계의 삶이란 바로 이러한 광합성 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 탄수화물과 산소, 그리고 뿌리에서 흡수한 양분을 가지고 미토콘드리아에서 일어나는 호흡 과정을 통해서 생장과 발육에 필요한 에너지와 모든 골격을 이루는 DNA, 지질, 단백질 등을 만들어낸다.

한편 그 결과로 생긴 물과 이산화탄소는 다시 대기 중으로 방출되어진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타가영양체는 이들 유기물(식물이 만들어 놓은 거대분자들인 탄수화물, DNA, 지질, 단백질 등)을 섭취하고 광합성으로 방출된 산소를 흡수하여 호흡함으로써 살아가는 것이다. 따라서 식물의 광합성이야말로 생물권(biosphere)을 성립시키는 핵심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직물 원료, 재목, 고무, 섬유, 유지, 연료 등 사람을 위한 모든 생산물은 바로 이 광합성이라는 신비로운 과정을 통하여 생산되어진다.

대자연의 법칙은 생각할수록 너무나 신비하다. 동물은 움직여 활동함으로써 그들의 먹이를 얻을 수 있도록 계획되었고, 움직일 수 없는 식물들은 광합성으로 그들의 식량을 조달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그러나 동물은 식물을 먹어야 하고, 그 대신 식물은 대자연으로부터 광합성의 특수비법을 제공받았다. 결국 창조적 안목으로 볼 때 지구상의 모든 생물들은 처음부터 계획된 공생원리에 의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고차원적인 비밀이 숨어 있는 것이다.

여러분 주위에 있는 모든 책을 살펴 보라. 최초의 광합성 생명체가 어떻게 생성되었으며, 엽록체가 어떤 진화적 경로를 거쳐 발달하였으며,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기적이 어떤 진화적 경로를 거쳐 발생되었는가 등의 질문에 속시원한 답을 해주는 책이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것은 모두가 가정에서 출발되었음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가 관찰하고 알고 있는 지식은 진화론이란 틀에 끼워 맞추기 위해서 듬성듬성 연결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다음과 같은 사실은 광합성이 진화된 것이 아니라 창조되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 진화론적으로 살펴볼 때 전 지구의 생명의 핵심을 단지 하찮은 식물의 잎에 맡긴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 어떠한 연구결과도 광합성 기구의 생성 및 진화에 대한 합리적인 유추를 주지 못하며, 화학합성 다음에는 광합성일 것이라는 추측을 하는 엄청난 과학적 오류를 범하고 있다.

▲ 광합성 기구가 진화되어져 왔다면 현재 녹색인간(이마나 몸 전체의 세포에 엽록체를 함유하고 있어 태양전지 시계처럼 태양광만 쪼이면 음식 없이 살 수 있는 인간)이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어디

에서도 녹색인간은커녕 녹색동물도 없다는 사실이다.

 

*참조 : Green power (photosynthesis) : God’s solar power plants amaze chemists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476/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1/a13/a13o7.htm

출처 - 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0

참고 : 1902|1903|4454|1553|380|4433|4407|4358|4225|4105|4113|4034|3854|3758|4830|4854|5432

손기철
2004-07-26

생명 존재의 신비 '광합성' 

: 산소발생설은 비과학적이며 모순덩어리


      식물은 빛에너지를 이용한 광합성 공장을 가동시킴으로써 그 결과 산소를 발생시킨다. 식물은 광합성에 의해서 만들어진 탄수화물을 다시 산소를 이용해 산화시켜(호흡하면서) 에너지를 만들고 골격을 형성하면서 생명을 유지한다. 이러한 호흡은 비단 식물뿐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호흡하는 모든 생명체에서 일어나는 가장 중요한 과정이다.

이 세상에 산소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아마 어떠한 생명체도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렇듯 산소는 생명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이지만, 파장이 짧은 빛이나 다른 흥분된 고에너지 분자와 결합하면 무차별적인 유해산소 형태(흔히 활성산소종이라 함)로 변하여 생체를 파괴하는 무서운 물질로 변하고 만다.

특히 빛을 가장 잘 흡수하는 엽록체는 산소와 반응하기 쉬우며 따라서 조금이라도 시간적 공간적 그리고 환경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에 놓이게 되면 활성산소종은 유전물질인 DNA나 단백질 그리고 세포를 이루는 세포막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여 파괴시킨다. 따라서 모든 생명체는 산소에 의해서 살지만 이 산소 때문에 죽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에 들어서는 생물의 노화나 암에도 유해산소가 치명적이라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모든 생명체는 이러한 산소독성을 피하기 위해 정교한 보호기제들을 가지고 있으며 식물체 또한 정교한 방어기제를 살아있는 동안에 가동시킨다. 즉 세포는 이러한 피해를 주는 활성산소종을 중화시키거나 분해하는 특수한 효소를 가지고 있으며 엽록체 내에 있는 카로티노이드나 비타민 E, 비타민 C 등과 같은 항산화제는 우선적으로 산소의 공격을 당하면 먼저 산화됨으로써 방어작용을 한다. 또한 식물체는 광합성 작용시 광호홉(C2 경로)이라는 진화론적으로는 전혀 납득이 가지 않는 경로를 가동시킨다.

광호홉(photorespiration)이라는 것은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반적 호흡과는 달리 광합성의 명반응 동안 발생된 산소와 ATP 및 NADPH 라는 에너지가 이미 만들어진 탄수화물을 엽록체 퍼록시좀 그리고 미토콘드리아를 거치면서 다시 이산화탄소로 전화시키는 것으로 에너지 측면에서 볼 때 사치적이고 낭비적인 경로이다.

 

산소발생설은 비과학적이며 모순덩어리

유해 파장 걸러주는 오존층 없으면 치명적

일반적으로 고등식물의 대부분(C2 식물)이 광호흡을 한다는 것은 비정상적인 과정이라고 생각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광호흡은 잠재적으로 유해한 활성산소종의 형성을 막거나 억제하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예를 들어 강한 광선 하에서 온도가 높을 때 일순간 광합성 속도는 빨라지나 곧이어 식물체는 지나친 증산작용을 막기 위해서 기공을 닫게 되고 마침내 이산화탄소의 고갈을 초래한다. 따라서 탄수화물을 만들어내는 캘빈 회로(합성과정 혹은 암반응)는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게 된다. 이 경우 식물체는 과도한 빛에너지에 의해서 명반응에서 많은 에너지를 생성하나 이산화탄소의 결핍으로 말미암아 탄소의 합성과정은 일어나지 못하게 되고 빛에너지는 계속적으로 엽록소에 차게 된다. 한편 세포 내 발생된 산소는 방출되지 못하므로 활성산소종이 발생되어 세포가 파괴될 위기에 처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서 식물에는 합성반응(암반응) 중 가장 중요한 효소인 루비스코가 기묘하게 작용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즉 세포 내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비율이 온도의 영향에 의해 산소가 높아지면 루비스코라는 효소는 이산화탄소를 고정하는 캘빈 회로(C3)를 작동시키지 않고 산소와 결합하여 광호홉경로(C2)를 작동시키게 한다. 이로 인하여 명반응에서 생성된 과잉에너지가 소비되고 이에 따라 지나친 산소가 소모되는 것이다.

하나의 소기관이 아니라 엽록체, 포록시좀 그리고 미토콘드리아의 여러 소기관들을 거치면서 일어나는 놀라운 자체방어를 어찌 진화의 산물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만약 광호흡 경로가 진화의 산물이라면 이것이 진화되기 전의 식물체는 어떻게 살아났을까?

태초의 원시대기에 산소가 없었다면 처음부터 식물이나 인간이 살 수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태초의 대기에 산소가 있었느냐 없었느냐 하는 문제는 성경말씀이 거짓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이것은 흔히 과학자들이 따지는 원시대기의 산화성 혹은 환원성에 관하여 논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명의 기원에 관한 중요한 논제이다. 대부분의 전공서적에 있는 전통적 진화론자들의 견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까지의 과학적 사실은 산화성 대기 중에선 중요한 생화학적 화합물의 합성이 일어나지 않으며 또한 안정하지 못하다. 생명의 탄생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환원성 물질이 원시대기의 구성분으로 존재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생명의 기원에 대한 진화론적 이론들은 대부분 원시대기가 환원성이었던 것으로 가정한다. 그러나 이는 원시지구 자체에 관한 연구의 결과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유기물의 형성에 유리한 조건으로 선택된 데에 불과하다. 원시대기는 지구상에 있어서 화학진화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므로 보다 정확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 부분을 자세히 읽어보면 진화론자들조차도 태초의 대기상태는 과학적 증명이 아니라 진화론적 가정에서 출발한다고 진술하고 있다. 진화론자들은 태초의 원시대기는 환원성이며 산소가 없다고 한다. 최초의 산소는 수증기가 분해되거나 광합성 세포에 의해 발생됐다고 본다. 그러나 광합성을 하는 생물은 이산화탄소를 물과 결합시켜 에너지를 만드는 반면 호흡을 하기 위해서 똑같은 양의 산소를 흡수한다. 따라서 그것이 사실이라면 현재 공기의 21퍼센트를 차지하는 산소는 어디에서 생겨났는가?

산소가 없던 태초의 대기에는 오존층이 없으므로 자외선 및 고에너지의 파장을 지닌 복사선이 지구 표면까지 도달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최초의 분자들이 서로 반응하여 화학진화, 단분자에서 고분자 물질로, 그것도 무질서에 질서로 변화할 수 있었을까? 최초의 물을 분해하여 산소를 발생시키는 광합성 박테리아나 식물들이 진화해 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모든 생물들은 지금의 수천 배에 달하는 위험에 직면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엄청난 에너지를 지닌 빛이 발생된 산소와 결합하여 무서운 유해산소를 발생시키고 마침내 체내의 모든 분자들이 파괴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오늘날 식물들이 과거의 생물들에서 계속적으로 진화된 것이라면 유해산소를 효율적으로 방어하기 위해 오늘날 식물들에서 볼 수 있는 기제보다 훨씬 복잡하고 정교한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것이 어디에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유해산소 억제기제들과 광호홉경로(C2)는 진화의 산물인가? 아니면 퇴화의 산물인가? 초기의 대기 상태를 오늘날과 같은 상태로 가정하지 않으면 생명체가 살아날 가망성은 전혀 없을 것이다.

태초부터 모든 생물이 존재하였으며, 산소를 이용한 호홉작용을 하였다는 성경적 사실이 우리의 지적 교만에 상치되는 것 외에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적 지식에 위배되는 것이 무엇인가?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사40:26)


출처 - 도서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79

참고 :

이웅상
2004-07-26

태양 에너지와 식물 생리학 (성경에 나타난 광합성의 원리)


       생태계의 가장 중요한 생산자인 녹색식물들은 어디서 어떻게 영양분을 얻어 성장하고 열매를 맺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소비자들에게 에너지를 공급해줄 수 있는 것인가. 1630년까지 생물학자들은 식물이 뿌리를 박고 있는 토양으로부터 모든 영양분을 흡수하는 것으로 생각해 왔다. 결국 식물이 성장함에 따라 토양은 점차로 소모되는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1963년에 식물학자인 헬몬트(Van Helmont)는 식물이 자신의 유기물질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지, 토양으로부터 단순히 흡수하는 것이 아님을 실험을 통해 입증하였다. 그는 200파운드의 토양을 화분에 채운 뒤 버드나무를 심었다. 5넌 후에 이 버드나무의 무게는 성장으로 인해 164파운드로 늘어났으나, 토양의 무게는 단지 2온스밖에 줄지 않았다. 이 실험으로 헬몬트는 식물을 성장시키는 요인은 그가 준 물에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늘날 우리는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유기물들이 다양한 물질대사를 통해 만들어지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러나 세포의 70% 이상이 물로 되어 있음을 감안할 때, 식물의 성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물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은 과학자들이 이 사실을 밝히기 전에 이미 물의 중요성을 다양하게 설명하고 있다. 에스겔 31장4~5절에 '물들이 그것을 기르며 깊은 물이 그것을 자라게 하며 강들이 그 신긴 곳을 둘러 흐르며 보의 물이 들의 모든 나무에까지 미치매 그 나무가 물이 많으므로 키가 들의 모든 나무보다 높으며 굵은 가지가 번성하며 가는 가지가 길게 빼어났고”라고 말씀하고 있다. 즉 물에 의하여 식물의 키와 굵기가 성장할 뿐만 아니라 가지의 수와 길이도 물에 의해 자라고 있음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이사야 44장14절에도 '나무를 심고 비에 자라게도 하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비가 식물 성장의 주 요인임을 밝힌 구절이다.

물만으로 식물의 성장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헬몬트에 이어, 1772년 프리스트리(Joseph Priestley)는 식물이 탁한 공기를 맑게 정화시켜 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1779년에 인겐하우츠(Jan Ingenhousz)는 식물이 해가 비치는 동안만 탁한 공기를 정화시킬 수 있으며, 정화 정도는 일조량에 비례한다는 사실을 밝혀내게 되었다. 빛이 없이는 오히려 공기를 더욱 탁하게 만들뿐이다. 이렇게 해서 생물학자들은 빛이 식물에 어떻게 이용되는지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1782년에 스위스의 목사였던 세너비어(Jean Senebier)는 광합성에 이산화탄소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밝혀냈으며, 이어서 1796년에 인겐하우츠(Jan Ingenhousz)는 식물이 흡수한 이산화탄소는 식물의 영양분으로 이용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1804년에 이르러서야 스위스의 과학자 소셔(Nicholas Heodore de Saussure)에 의해서 광합성의 전반적인 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 밝혀졌다. 소셔는 식물에 빛을 쪼여준 결과 증가된 식물의 양은 공기로부터 소모된 이산화탄소의 양보다 크다는 것을 관찰하게 되었으며, 이 차이는 바로 물 때문에 생긴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렇게 하여 광합성 원리의 대략적인 윤곽이 이산화탄소에 물과 태양에너지가 첨가되어 산소와 탄수화물이 생성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이때까지 생물학자들은 광합성의 결과 생성되는 산소는 이산화탄소가 분해되면서 생겨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1930년대에 들어와 영국의 생화학자인 힐(Robin Hill)에 의해 산소는 이산화탄소가 아니라, 물이 분해되어 생성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1961년에 이르러 캘빈(Melvin Calvin)은 식물이 어떻게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물과 이산화탄소를 재료로 탄수화물을 합성하는가에 대해 그 과정을 생물학적으로 확실히 밝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하여 과학자들은 물 외에도 태양에너지가 식물의 성장에 필요한 주 요인임을 알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보다 약 3400여년 전에 '그 땅이 여호와께 복을 받아 하늘의 보물인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과 태양이 결실케 하는 보물과...' (신33:13~14) 라고 말씀하셨다. 즉 이슬과 땅 아래 저장한 물(지하수) 이외에 또 태양이 식물 성장에 필수적 요건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서 태양은 식물의 성장뿐만 아니라 결실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가르쳐주고 있다.

식물이 물과 햇빛으로 자란다는 것은 이미 살펴본 학자들의 연구로 알게 되었지만, 어떻게 정한 시기에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되는지를 밝혀내기 위해서는 오랜 시일에 걸친 학자들의 또 다른 연구가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도 결국 햇빛에 의해 조절된다는 것은 1920년에 이르러 가너(W. W. Garner)와 알라드(H. A. Allard)의 연구로 비로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즉 식물은 낮과 밤의 길이가 변하는 것을 감지하여 일년 중 정해진 때에 개화한다는 광주기(光週期)에 관한 이론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비록 성경이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려는 목적을 가진 과학서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창조원리와 자연의 질서를 운행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많은 성경구절에서 우리는 과학을 수천년 앞선 진리들을 자연스럽게 발견하게 되고, 그분의 말씀 앞에 또 다시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6

참고 : 1902|1903|4454|1553|380|4433|4407|4358|4225|4105|4113|4034|3854|3758|4830|4854|5432

손기철
2004-07-26

진화론은 식물의 광합성을 설명하지 못한다


     지금까지 아무런 비판이나 의심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 왔던 진화론적 결과들이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 창조론적 입장에서 자연계, 그 예로 지구상 생물의 80퍼센트를 차지하는 식물을 살펴보자. 우리는 자연을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할까? 지금까지 우리는 모든 자연을 특히 식물을 진화론적인 측면에서 생각하고 연구하고 보아왔다. 즉 모든 식물은 우연에 의해서 생겨났으며, 적응과 돌연변이, 그리고 자연도태와 양육강식에 의한 진화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의 근본은 실용주의적 혹은 이기주의적(egoism), 그리고 자기 보존적인 것이며, 자연을 인간중심적으로 보는 관점이다. 이에 비하여 창조론적인 사고방식은 자연이 처음부터 한 설계자에 의해서 만들어진 완벽한 피조물로서 조화, 균형, 그리고 질서 속에서 서로 상호화합하여 아름다움을 유지해 가는 것으로, 하나님의 성품인 이타주의와 자기 희생적 상리상생(相利相生)으로 보는 관점이다. 

식물은 진화론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너무나 많은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것은 우리가 관찰하는 식물의 외관적인 면뿐만 아니라, 내면적인 면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우선 외관적인 면에서 몇 가지만 관찰해보자.

 

꽃은 '생존' 보다 아름다움이 더 큰 존재 이유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창:1143).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창 1 :29).

이 지구상에는 수없이 많은 아름다운 꽃들이 존재한다. 들 위나 산야에 피는 이름 모를 꽃들에서부터 우리가 정원과 실내에서 재배하는 화초에 이르기까지 오늘날 어떠한 과학적 방법도 그 자연의 아름다운 색을 흉내내지 못한다. 또한 꽃은 갖가지 아름다운 색깔과 다양한 형태를 지니며. 종류에 따라 향기와 꿀까지 지니고 있다. 

꽃은 왜 피는가? 너무나 당연한 질문일지 모르겠다. 진화론적으로 꽃은 종족번식을 위한 수단으로 암술과 수술이라는 배우체를 만들며, 수분과 수정을 통하여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 따라서 꽃은 수분을 해주는 벌과 나비 등 많은 충매들을 유인하기 위해서 각기 독특한 아름다운 색과 다양한 형태들로 진화되어져 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지 수분만이 목적이라면 색깔과 형태, 그리고 향기에 있어 그렇게 다양함이 필요할까? 

꽃은 색깔과 형태에 있어 매개체와 상호 진화해왔다고 한다. 그렇다면 같은 매개체를 이용하는 꽃들의 색과 형태의 다양함은 어떻게 설명되어질 수 있는가? 또한 매개체를 이용하지 않는 수많은 꽃들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굳이 생존만을 위한 것이라면 지나쳐도 너무 지나친 치장이다. 또한 단지 바람에 의해서 전파번식 되는 그러한 식물들은 왜 꽃을 가지기 위한 방향으로 진화되지 않았을까?

 

과실, 식물체의 잉여영양분 저장소 

과실을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꽃으로부터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꽃피는 식물은 열매를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다. 대부분 열매란 자방이 성숙한 것으로 그 속에 씨를 가지고 있다. 열매 중에는 아몬드와 같이 딱딱한 것도 있고, 사과나 배와 같이 신선한 과실도 있다. 과실은 왜 생겨나는 것일까? 진화론적인 사고방식으로 씨는 새로운 종자이고, 나머지 우리가 먹는 부분은 자손번식을 위한 영양분을 저장한 것이라고 한다. 나무에 달린 과실은 때가 되어 땅에 떨어지면 그 영양분을 이용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킨다. 단지 과실의 존재가치가 번식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수많은 과일이 각기 아름다운 색깔, 맛, 향기는 왜 생겨나며, 그리고 필요 이상의 풍성한 영양분은 왜 간직하는 것일까? 생존과 적응만이 목적이라면 각각의 독특성과 다양함을 지닐 이유가 없다. 사실 과실이란 식물체가 자기의 생명유지와 성장을 위한 필요성을 다 채운 다음, 또 다른 목적을 위한 잉여 영양분의 저장소인 것이다. 

가을날의 단풍을 보라. 얼마나 아름다운 색의 조화를 이루는가? 황홀할 지경이다. 이러한 조화와 아름다움이 우연히 생긴다는 말인가? 흔히들 우리는 추위가 오기 전에 나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 엽록소를 파괴하고, 영양분을 체내에 보관하며, 그러한 일련의 과정의 산물로서 단풍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실제로 단풍의 색을 내기 위해서는 화청소(anthocyanin)라 불리는 일종의 플라보노이드 계통의 물질들이 새로 합성되어야 한다.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러한 생합성을 하는 이유는 자기 보존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진화론으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광합성은 생물권 성립의 핵심 

이제는 내면적인 면에서 생각해보자. 태초에서부터 지금까지 이 세상의 모든 생명체가 살아나가는 원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누구나가 의심없이 태양에서 오는 빛에너지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생명체는 그 빛에너지를 그냥 이용할 수 없으며,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전환한 후에야 사용할 수 있다. 이때 빛에너지를 화학에너지로 바꾸는 최초의 기작이 바로 녹색의 식물체가 행하는 광합성이다. ”식물이 일광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에 벋어가며”(욥816). 식물은 태양을 향하여 녹색을 띤 잎을 벌리고, 태양 에너지를 받고, 기공을 통하여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뿌리에서 흡수한 물을 사용해 광합성을 하며, 그 결과 모든 생명체의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합성하고 동시에 산소를 발생시킨다. 

광합성! 이 놀라운 생명 에너지의 비밀은 가장 작은 수은 전지보다 천만 배나 더 작은 보이지 않는 식물세포 세계의 소공장에서, 태초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그리고 소음없이 일어나고 있다. 세상을 먹여 살리는 지상 최대의 공장에 주인이 없으며, 소음하나 없다니 참으로 기적 중의 기적이다. 따라서 식물의 광합성이야말로 생물권(biosphere)을 성립시키는 핵심인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직물원료, 재목, 고무, 섬유, 유지, 연료 등 사람을 위한 모든 생산물은 바로 이 광합성이라는 신비스러운 과정을 통하여 생산되어진 것이다. 현재 우리는 아직도 광합성에 대해서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다.

 

이타주의와 상리상생의 창조질서 회복해야 

20세기 말 현재 눈부신 과학의 발달로 말미암아 인간이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 누릴수록, 지구의 생물권은 몸살을 앓게 되었으며. 마침내 오늘날에는 그 정도가 심화되어 위기의식까지 고조되고 있는 실정이다.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는 이상적인 기후변화와 더불어 대기오염이나 산성비, 이산화탄소의 증가에 의한 지구의 온난화 및 이상기후 발생, 오존층 파괴에 의한 유해 자외선 량의 증가 등으로 말미암아 생태계의 파괴가 점차 진행 중에 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러한 점에서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땅을 정복하라”(창 1:27,28) 라는 말씀을 올바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오늘날 인간은 땅을 지배하라는 하나님의 신적 위임을 마치 우리 인간에게만 귀속된 속성으로 잘못 판단하여, 인간이 피조물이기를 (자연과 화합하기를), 과학의 발전이라는 이름 아래, 스스로 포기함으로 마침내 인간과 환경과의 바른 관계를 상실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사실은 그동안 우리가 과학의 물밑에서 움직이는 진화론적인 사고방식 즉, 개인화, 소유화, 전문화되어지는 과정 속에서 전체 관계성에 대한 통찰을 잃어버렸음을 의미한다. 동시에 오늘날 환경보호론자와 범신론자들에 의해 주장되는 인간만의 행복과 건강만을 위한 생태계의 보호 및 환경보호에 대한 기독교인의 경각심을 일깨우는 것이기도 하다. 진정한 에덴동산은 인간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운 곳으로 모든 생물체가 협력하는 곳에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앞에서 언급한 모든 식물에 관한 신비를 단 몇 줄의 하나님 말씀으로 확연히 깨달을 수 있다. 창세기 1장 11-12, 29절과 2장 9절의 말씀으로부터 1)하나님은 식물체를 처음부터 각기 그 종류대로 만드셨으며, 2)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울 정도로 조화, 균형, 질서와 다양함을 갖춘 식물들을 만드셨으며, 3)식물들이 인간이나 동물들의 식물(음식물)이 되도록 만드셨으며, 나아가 4)인간 혼자가 아니라, 식물과 동물이 상호 공존하여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살 수 있도록 만드셨다는 것이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1/a13/a13o3.htm 

출처 - 기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5

참고 :

손기철
2004-07-26

식물의 창조섭리


1. 에덴동산을 그리워하는 성도

과학의 발달로 인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인간의 생활수준을 급격히 향상시켰을 뿐만 아니라 생활방식에도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이로 인해 의식주 해결이 생활의 중심이 되었던 소위 '생리적' 생활양식이, 경제적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되자 '삶의 질'에 대한 관심이 보다 높아진 '사회적' 생활양식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약간의 여유만 있어도 도시를 탈출할려고 노력하며, 지금 생활하는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삶의 재충전의 기회를 가질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일련의 행동의 내면적인 의미는 무엇일까? 몇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오늘날 우리의 삶은 이미 우리가 저질러 놓은 산업화와 도시화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미해결된 생활환경문제로 신음하고 있다. 대기오염, 수질오염, 쓰레기, 범죄, 녹지의 감소, 정신과 육체의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적 범죄 등으로 우리 생활주변의 '환경의 질'은 '삶의 질'을 항상 위협하고 있는 '이카루스(Icarus)'적 삶을 살고 있는 실정이다.

 

2. 식물의 창조와 이해

1) 창조의 시기

[개역](창 1:11) 하나님이 가라사대 땅은 풀과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과목을 내라 하시매 그대로 되어 [개역](창 1:12) 땅이 풀과 각기 종류대로 씨 맺는 채소와 각기 종류대로 씨 가진 열매 맺는 나무를 내니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았더라 [개역](창 1:13)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셋째 날이니라

2) 음식물로 주심

[개역](창 1:29)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개역](창 1: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 식물을 통한 자연의 아름다움

[개역](창 1:31)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개역](창 2:1)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니라

4) 삶의 환경

[개역](창 2: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고 [개역](창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5) 생명체의 에너지원(광합성)

욥 8:16, 식물이 일광을 받고 푸르러서 그 가지가 동산에 벋어가며, 이 지구상의 모든 기식하는 생명체를 먹여 살리는 기작은 바로 녹색의 잎이에 일어나는 광합성이라는 것입니다. 과학자들이 이 광합성의 기작을 알게된 것은 채 100년도 되지 않습니다. 즉, 이산화탄소와 물이 태양광선을 받아 잎에서 우리가 먹는 탄수화물을 만들고 산소를 방출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욥기 8장에 이미 광합성의 신비에 관해서 말씀하고 계십니다.

 

3. 식물의 치료효과

 자연을 우리의 유익만을 위해서 마음대로 훼파하고 정복해도 되는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지금까지 우리가 자연에 행했던 모든 일에 대한 반대급부로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후, 오존층 파괴, 지진과 홍수 등 환경파괴의 벌을 혹독히 받고 있다. 더욱이, 우리는 실내에서 생활하는 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sick building syndrome'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실내에 식물을 둔다면 얼마나 많은 유익이 있는지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실내볼륨의 약 5-10%정도의 식물만 두면, 겨울철에는 습도를 20-30%까지 높일 수 있으며, 여름철과 겨울철 각각 실내온도를 약 3도 정도 떨어뜨리거나 올릴 수 있다. 또한 식물체는 광합성을 할 때 공해물질을 동시에 흡수하여 어떤 공기 청정기보다 효과적이다. 더욱이 최근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컴퓨터나 TV에서 발생되는 유해 전자파를 제거하는데 다른 어떤 기기보다도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졌다. 한편, 식물이나 원예활동은 단지 육체적인 면뿐만아니라 정신적인 면에도 많은 영향을 미쳐, 이것을 통한 치료, 재활, 회복, 그리고 삶의 질을 높이는 원예치료(horticultural therapy)라는 학문이 국내외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예를 들어 창밖으로 식물을 볼 수 있는 입원실과 그렇지 않고 단순히 건물만을 볼 수 있는 입원실에서 수술한 환자가 회복되는 것을 비교해 보면 두통, 아픔, 불평, 회복기간 등 모든 면에서 식물을 본 환자가 나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욱이 최근의 연구에 의하면 식물을 볼 때, 뇌파의 델파파가 감소되고 알파파가 증가되어져 단순히 식물을 보는 것만으로도 치료적인 효과를 볼 수 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식물은 과거 우리가 생각했던 것처럼 단순히 덜 진화된 하찮은 생명체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우리 인간에게 준 최고의 선물인 것이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심신의 불균형과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이 주신 식물의 소중함을 알고 원예생활의 즐거움을 맛보자. 왜냐하면 그것이야말로 이땅에 에덴동산과 에덴마음의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4. 식물은 그리스도인에게 왜 중요한가?

1) 사람들이 산소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지내듯이 대부분의 사람들이 식물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먹거리외의 역할을 생각해 보신적이 있나요?

2)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계의 자연, 그 자연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식물임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환경관련 연구단체에서는 식물을 통한 환경회복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우리 인간의 유익만을 위해서 자연을 파괴한 결과로서, 환경오염과 이상기후와 같은 여러 가지 재난을 받고 있습니다.

3) 비그리스도인은 진화론을 믿고 있지만, 진화론(원숭이들이 살던 숲속)을 믿든 창조론(에덴의 동산)을 믿든 간에 우리 인간 삶의 시작은 녹색의 동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따라서,  현대인의 모든 정신적, 육체적 불균형은 궁긍적으로 녹색을 잃어버린 삶을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녹색은 치유의 색이며, 하나님이 우리인간에게 주신 최초의 색이라는 사실입니다.

4) 천지창조 6 일중 제 3일째 육지를 만들고 식물을 지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인간의 자유의지에 사용한 도구가 바로 생명나무라는 점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창조하신 최초의 생명체는 바로 식물입니다. 이 식물을 우리가 어떻게 잘 활용하는가가 하나님의 나라를 그분이 보시기에 아름답게 만들 수 있는 관건이 되는 것입니다.

 5) 21세기를 향한 오늘 시점에서 지구의 환경보전에 가장 책임을 지며 이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타락시 인간뿐만아니라 피조계 전부가 타락되었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인만이 올바른 환경관을 가지고 이 피조세계를 회복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6) 인간이 세상에 대해서 오감을 통하여 배우는 첫 대상이 바로 식물이라는 것입니다.

 

5. 결론

자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보존 즉 생존일 것이다. 왜 모든 생물체는 진화되어와야 하는가? 진화의 결과로 얻어지는 득이 무엇인가? 진화론의 핵심은 바로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화론적으로 태초의 한 하등생물을 생각해 보자.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가에 대해서는 접어두고, 왜 이 생물체는 고등한 생물체로 진화해야만 하는 것일까? 진화하지 않아도 엄연히 생존하는데 말이다. 아메바에게는 생의 목적도 사랑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더 편하게 더 잘 살아야 한다는, 과학의 발달이라는 가면을 쓴 인간의 탐욕을 슬그머니 진화론에 끼여넣어 모든 생명체에게 확대적용하는 것은 왜일까? 오늘날 수없이 많은 생물체를 보고, 그것의 복잡함을 따져서 우리는 진화의 서열을 정한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사실은 오늘날은 진화가 잘된 생물체만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등생물까지도 엄연히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우기 그것도 서로 직,간접으로 상리상생하면서 말이다. 어느 생물체가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자연과의 관계 즉, 생존만이 중요하다면, 아메바가 가장 진화된 생물일 것이다. 가장 단순하면서도 최상의 적응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으니까 말이다. 진화론은 하등에서 고등으로 진화의 필연성에 대한 답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1/a13/a13o2.htm

출처 - 교육원교재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14

참고 : 6402|6391|6309|6269|6236|6200|6114|6057|6056|6053|6050|6024|6004|5978|5956|5938|5933|5855|5823|5788|5778|5856|5775|5774|5772|5763|5757|5754|5746|5736|5735|5700|5692|5679|5665|5663|5657|5656|5654|5574|5571|5554|5529|5526|5524|5478|5477|5475|5432|5430|5426|5391|5363|5362|5356|5352|5345|5341|5292|5242|5165|5137|5123|5089|5046|5024|5023|4854|4830|4712|4708|4574|4556|4457|4454|4433|4408|4407|4358|4325|4225|4059|4034|3953|3921|3861|3854|3758|3711|3183|3158

손기철
2004-07-26

식물의 신비 (1)


     식물은 진화론적인 사고방식으로는 도저히 풀 수 없는 많은 수수께끼를 지니고 있다. 이것은 관찰되는 식물의 외관뿐 아니라 내적인 면에 있어서도 그렇다. 이 지구상에 수없이 많은 꽃들이 존재한다. 그 꽃들은 갖가지 아름다운 색깔과 다양한 형태를 지니며, 종류에 따라 향기와 꿀도 있다. 그러나 어떤 과학기술로도 산야에 피는 이름 모를 꽃에서부터 우리가 정원과 실내에서 재배하는 화초에 이르기까지 자연의 아름다움을 흉내내지 못한다. 

꽃은 왜 피는가? 진화가설은 꽃이 종족번식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암술과 수술이라는 배우체를 만들며, 수분과 수정을 통하여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 따라서 꽃은 수분을 해주는 벌과 나비 등 많은 충매들을 유인하기 위해 각각 독특한 아름다운 색과 다양한 형태로 진화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단지 수분만이 목적이라면 색깔, 형태 그리고 향기가 그렇게 다양할 필요가 있을까?

진화론자들은 꽃은 색깔과 형태에 있어 매개체와 상호 진화해 왔다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같은 매개체를 이용하는 꽃이 색깔과 형태가 다양한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환경에 적응하도록 진화되어 왔다면 같은 장소에서 자라는데, 어떤 식물은 일년생이고 어떤 식물은 다년생이 되는가? 또한 매개체를 이용하지 않는 수많은 꽃들의 아름다움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겠는가? 바람에 의해 전파번식되는 식물들은 왜 꽃을 피우는 방향으로 진화되지 않았을까? 

과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진화론자들은 꽃에서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꽃피는 식물은 열매를 가진다고 생각하며 그 속의 씨는 새로운 종자이고 나머지 우리가 먹는 부분은 자손을 번식하기 위한 영양분을 저장한 것이라고 한다. 나무에 달린 과실은 때가 되어 땅에 떨어지면 그 영양분을 이용해 새로운 생명체를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실의 존재가치가 단지 번식이 목적이라면 수많은 과일의 아름다운 색깔, 맛과 향기는 왜 생겨나며 필요이상의 풍성한 영양분은 왜 간직하는 것일까? 생존과 적응만이 목적이라면 각각의 독특성과 다양함을 지닐 이유가 없을 것이다. 과실이란 식물체가 생명유지와 성장을 위한 필요성을 다 채울 뿐 아니라, 또 다른 목적-동물의 영양-을 위한 잉여영양분의 저장소인 것이다. 

식물은 크게 꽃, 열매, 잎, 줄기, 뿌리 등으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으며, 수많은 식물들은 모두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삶을 영위하고있다. 진화론자들은 식물의 다양함은 환경에 따른 적응과 변이의 결과라고 말한다. 예를 들어 고구마는 뿌리가 진화한 것이고, 감자는 줄기가 진화한 것이며, 완두는 잎이 진화하여 덩굴손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왜 감자는 줄기가, 고구마는 뿌리가 진화되어야 하는가? 그리고 같은 환경에 사는 식물들이 잎과 줄기, 뿌리 그리고 열매가 서로 다른 것은 어떻게 해명해야 하는가? 우리가 흔히 알뿌리 식물이라고 부르는 것들을 생각해 보자. 이러한 식물들은 양분을 저장하는 독특한 땅속 저장기관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같은 환경속에서도 어떤 것은 뿌리가, 어떤 것은 잎이, 어떤 것은 줄기가 변형되어 저장기관을 형성한다. 형태 또한 다양하기 그지 없다. 우리가 먹는 마늘, 양파에서부터 백화, 수선화, 달리아, 글라디올러스 등의 조화를 생각해보라. 이런 것을 어떻게 진화론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흔히 환경에 맞게 변화되어 왔다고 한다. 차후에 구체적으로 다루겠지만 우리는 적응과 진화를 엄격히 구별해야 한다. 환경에 적응할 수는 있으나, 그 변화가 축적되어 새로운 종으로 변화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가을의 단풍은 아름다운 색의 조화로 우리에게 황홀감을 준다. 이러한 조화와 아름다움이 우연히 생겨난 것일까? 진화론자들은 나무가 추위가 오기 전에 자신의 생존을 위해 엽록소를 파괴하고, 영양분을 체내에 보관하며, 그러한 과정의 산물로서 단풍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단풍의 색을 내기 위해서는 당이 잎속에 축적되어야 하며, 카로틴과 크산토필, 그리고 화청소라 불리는 일종의 플라보노이드 계통의 물질이 새로 합성되어야 한다. 이러한 생합성을 하는 이유를 자기보존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진화가설로는 설명할 길이 없다.

나뭇잎의 떨어짐은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생명과 토양의 비옥함을 위한 자기희생이며, 떨어진 나뭇잎은 토양 속에 있는 수많은 미생물들에 의해 다시 식물체가 이용할 수 있는 무기물로 분해되고, 지력의 밑거름이 된다. 이러한 모든 상호관계는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의해 처음부터 설계된대로 완벽한 조화와 질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창세기 1장 11-13절, 29-30절 그리고 2장 9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각기 그 종류대로 만드셨으며, 하나님이 보시기에 아름다울 정도로 조화, 균형, 질서와 다양함을 갖춘 식물들을 만드셨으며, 식물이 인간이나 동물의 음식물이 되도록 만드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알의 종자가 죽어서 완전한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일련의 과정과 들에 핀 백합화의 아름다움을 보노라면 하찮은 식물에게까지 미치는 그분의 놀라운 사랑과 섭리를 알 수 있다. 창조주의 섭리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그분의 경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다면, 어찌 이와 같은 조화와 균형과 질서, 그리고 한치 오차없는 통합성과 합리성이 자연계에 편재할 수 있는가? 

모든 것에 확신과 믿음으로 일관해 온 과학자들일지라도 자연만물의 증거자료를 분석종합하여볼 때 과학적 탐구로는 지혜의 존재 그 자체는 알 길이 없으나, 놀라운 지혜의 손길은 의심할 수 없으며,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보여 주셨던 보이지 않는 그분, 그 사실을 우리의 유추적인 논리로서도 넉넉히 알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롬1:20) 이다. 

과학이란 하나님의 활동을 관찰하고 그를 통해 좀더 그분을 알고, 그분의 놀라운 사랑을 체험하는 활동이라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지구상에 사는 사람중 약 20%는 쌀을 주식으로 한다. 아시아의 경우 약 6천년 전부터 쌀이 경작되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모든 식물 중 쌀만큼 지속적으로 우리의 모든 노력을 경주한 것도 없을 것이다. 즉 가장 오랜 동안, 가장 인위적이고, 가장 극단적인 처리를 한 식물이라면 벼를 들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수천년 간, 증산과 품질향상을 위해 일반 재배법의 개선에서부터 방사선처리까지 모든 방법을 다 시도해 왔다. 그러나 얻은 것은 무엇인가. 키가 크든 작든, 잘 생겼든 못 생겼든, 또는 생산량이나 저항성이 크든 작든 간에 결국 쌀을 얻었을 뿐이다. 

자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의 보존, 즉 생존이다. 그런데 왜 모든 생물체가 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는가? 진화의 결과 얻어지는 이득이 무엇인가?

진화가설의 핵심 주장은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진화가설대로 태초의 한 하등동물을 생각해보자.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가는 접어두고, 진화하지 않아도 생존하는데 이 생물체는 고등한 생물체로 진화해야 하는가?

아메바에게는 생의 목적도 사랑이라는 것도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소위 과학의 발달이라는 가면을 쓴 인간의 탐욕을 슬그머니 진화가설에 끼워 넣어 모든 생명체에게 확대하는 것은 왜일까? 

오늘날 수없이 많은 생물체를 보고, 그것의 복잡함을 따져서 진화의 서열을 정한다. 그러나 여기 중요한 점은 오늘날 진화가 잘된 생물체만이 사는 것이 아니라, 하등생물까지도 엄연히 자신의 생활을 영위하고 있다는 것이다. 더욱이 그것도 서로 직, 간접으로 상리상생하면서 말이다.

어느 생물체가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의 관계, 즉 생존만이 중요하다면 아메바가 가장 진화된 생물일 것이다. 왜냐하면 가장 단순하면서도 최상의 적응으로(가장 경제적으로) 생명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진화가설은 필연성에 대한 해답을 전혀 주지 못하고 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우연에 의해서, 몇 개의 원소가 모여 분자가 되고, 그것이 마침내 하나의 독립세포로 이루어졌다는, 순전히 물질론적인 진화가설로는, 무목적성 생명체인 아메바가 선택압에 의해서 최상의 생명체로 진화되어 왔다고 말할 수 밖에 없는데, 그것으로 인간이 가지는 생명체 내부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삶에 대한 성스러운 명령을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렇다면 인간이나 돌이나 다를 바가 무엇인가?

둘 다 분해해보면 똑같은 재료요, 더 따져보면 똑같은 분자나 원자로 이루어진 것 아닌가! 진화가설은 삶에 대한 성스러운 명령(인생의 목적)에 대해서는 이처럼 아무것도 말해줄 수 없는 것이다. (계속)

 


출처 - 창조지 제 101호 [1997. 1~2]

구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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