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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역학 제 2 법칙과 생명의 기원에 관해서

열역학 제 2 법칙과 생명의 기원에 관해서


프롤로그 

다음과 같은 글이 과학동아 최근호에 실렸다고 한다. 

<< 생명탄생은 2법칙 위반인가?

자연적인 변화의 방향을 가르쳐주는 제2법칙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보면 놀라운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우주의 에너지는 일정하지만 변화는 계속되기 때문에 결국은 엔트로피가 더 이상 증가할 수 없는 극도의 혼란한 상황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더 이상의 자연적인 변화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열죽음이라고 부르는 우주의 종말이다. 그리고 보면 제2법칙은 인간을 포함한 우주 전체가 종말을 향해서 무거운 행진을 거듭하고 있다는 암울한 예언 같다. 그러나 사람을 비롯한 생명체의 출현은 열역학으로 볼 때 불가사의한 현상이다. 생명체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많은 수의 분자가 정확하게 배열되어야만 한다. 따라서 생명체의 탄생은 제2법칙에 위배되는 현상이다. 오히려 모든 것이 자연으로 흩어져버리는 죽음이 더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보인다. 제2법칙에 문제가 있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다만 제2법칙은 모든 것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평형상태에만 적용되는 것임을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변화가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어서 고전적인 열역학이 적용되는 평형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평형에서 아주 멀리 떨어진 경우에는 그 특성이 평형상태와 아주 달라서 전혀 기대할 수 없는 현상이 일어난다. 우주에 흩어져 있는 엔트로피가 다시 감소하면서 뜻밖의 질서가 나타날 수가 있다는 얘기다. 1977년에 노벨화학상을 수상한 일리야 프리고진이 밝혀낸 무산 구조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일정한 에너지를 가지고 있지만 평형상태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 있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에너지가 옮겨 다니면서 우주의 질서가 무너지고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자연적인 변화가 일어난다. 하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우주의 무질서가 흩어져 사라지면서 엔트로피가 오히려 감소하고 그 결과로 새로운 질서가 나타나기도 한다. 그런 과정에서 나타나는 것이 일시적인 혼돈인 카오스다. 결국 현대의 열역학은 우리의 우주는 혼돈의 상태를 거치면서 새로운 질서, 즉 생명을 탄생시키면서 끊임없이 진화할 것이라는 밝은 예언을 하고 있는 것이다. >>

이 글은 너무 짧아서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아채기도 쉽지 않고 과연 그러한지 판단해보기도 어렵다. 그냥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는 있을지 몰라도 이해하고 판단해 보기 위해서는 좀 더 자세한 얘기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이 글은 중요한 점을 착각 또는 혼동하고 있다. 그럼 이 문제를 좀 더 자세히 생각해 보기로 하자.

 

열역학 법칙들 

열역학은 평형상태를 다룬다. 이 말은 열역학이 평형에 주로 관심을 둔다는 뜻이지 비평형상태에서는 열역학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예를 들어 열역학 제 1 법칙은 에너지 보존 법칙인데 비평형상태에서는 에너지가 보존되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또 제 2 법칙의 한 형태는 '열은 온도가 낮은 쪽에서 온도가 높은 쪽으로 저절로 흘러가지 않는다'(Clausius)는 것인데 비평형상태에서라고 해서 온도가 낮은 쪽에서 높은 쪽으로 열이 저절로 흘러갈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다. (에어컨이나 냉장고를 예로 들려고 하지 않기를 바란다. 이 경우들에는 전기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경우들에서 제 2 법칙이 성립됨은 잘 알려져 있다.) 열역학 법칙들은 비평형상태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즈음에서 '열역학은 평형상태를 다룬다'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명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화학 반응을 예로 들자면, 두 용액을 섞어서 반응을 시킬 경우 열역학은 반응이 평형에 도달했을 때 어떤 상태가 될지 예측할 수는 있지만 얼마나 빨리 평형에 도달할지는 알 수 없다. 즉 평형에 도달하기 전의 상태(당연히 비평형상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열역학은 평형과 관계가 없는 개념(예컨대 반응 속도)은 다루지 않는다. 더 나아가 일부 열역학적 양들은 비평형 상태에서는 정의되지 않는다. 이렇게 말하면 마치 열역학 법칙들이 비평형상태에 대해서는 아무 제한도 가하지 않는 것처럼 들릴지 모르겠다. 그러나 계(system)는 비평형상태에서도 나중에 평형에 도달하였을 때의 결과가 열역학 법칙을 따르도록 행동할 수 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비평형상태도 열역학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이런 의미에서 과학동아에 실린 글이 마치 비평형상태에서는 계가 제 2 법칙의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운 것처럼 되어있는 것은 잘못이라고 하겠다. 뒤에 살펴보겠지만 프리고진의 업적도 비평형상태에서 제 2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힌 것은 절대로 아니다.

 

엔트로피 

특히 제 2 법칙, 즉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이 비평형상태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고 얘기하는 것은 그야말로 어불성설이다. 왜냐하면 엔트로피는 평형상태가 유지되거나 연속적인 평형상태를 통해 변할 때(reversible process)에는 변하지 않으며 오직 비평형상태를 통과할 때(irreversible process)에만 증가하기 때문이다. 비평형상태야말로 엔트로피 증가의 원천인 것이다. 단연코 엔트로피는 감소하지 않는다. 국부적으로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 있으나 더 큰 주변부의 엔트로피 증가가 동반될 수 밖에 없어서 전체적으로 보면 언제나 엔트로피는 감소할 수 없다.

자, 여기서 중요하고도 몹시 어려운 질문을 던져야만 하겠다. 엔트로피란 무엇인가? 엔트로피는 온도와 같은 열역학적 양들과는 달리 직관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몹시 어렵다. (내 생각에는 '직관적' 이해는 거의 불가능하다.) 여기에 수식으로 된 엔트로피의 정의를 쓰는 것은 전혀 쓸 데 없는 일일 것이다. 아마도 그것은 거의 아무런 직관적인 생각도 불러일으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엔트로피가 온도와 열량같은 것을 통하여 정의된다는 점은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엔트로피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널리 알려져 있는 한 견해가 있다. 이것은 계의 엔트로피란 것이 그 계의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 견해는 볼쯔만으로부터 유래한 것으로서 확률적인 해석을 기반으로 한다. 여기서 그 자세한 것은 다룰 필요가 없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볼쯔만의 견해, 즉 '볼쯔만의 질서원리'는 열역학으로부터 도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단지 '엔트로피란 무엇인가'에 대한 볼쯔만의 답이었다.

정리하면 이렇다. 여기 '엔트로피, 즉 무질서도는 증가한다' 라는 문장이 있다고 하자. 이 문장은 둘로 나눌 수 있는데 '엔트로피는 증가한다'와 '엔트로피는 무질서도이다'가 그것이다. 여기서 전자가 열역학 제 2 법칙이며 후자는 볼쯔만의 질서원리이다. '엔트로피는 증가한다'라는 것은 전적으로 열역학적인 표현이지만 '무질서도가 증가한다'는 꼭 그렇지는 않다. 과학동아의 글은 이 둘을 구분하는데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무산구조 

여기서는 일리야 프리고진의 업적을 소개해야 할텐데 먼저 필자의 무식함을 고백해야 겠다. 나는 프리고진의 업적에 대해서 잘 알지는 못한다. 다만 대략적인 윤곽만을 짐작할 뿐이다. 그러나 내가 이제 쓸 내용에 대해서 크게 오해하고 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볼쯔만의 질서원리는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많은 경우에 적용될 수 있었고 열역학과도 잘 조화되는 것 같았다. 그 성공을 보여주듯 볼쯔만의 묘비에는 질서원리를 나타내는 유명한 수식이 적혀있다고 한다. 엔트로피는 진실로 무질서한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생각되어져왔다.

그러나 프리고진은 질서원리에 반기를 들었다. 그는 열역학의 세 단계를 말하는데 평형상태, 평형에 가까운 상태,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가 그것이다. 프리고진에 따르면 평형상태와 평형에 가까운 상태에서는 질서원리가 대체로 옳지만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는 꼭 그렇지는 않다. 질서원리의 성공은 열역학이 주로 평형상태에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는 엔트로피의 증가가 오히려 질서를 생성할 수도 있다는 것인데 무산 구조(dissipative structure)가 그것으로서 dissipative란 말은 엔트로피가 증가함을 내타내 주고 있다.

대류 현상을 예로 들 수 있겠다. 물이 담긴 주전자를 가열한다고 해 보자. 이 경우 엔트로피는 물론 증가한다. 그러나 주전자 속의 물은 대류하기 시작하는데 즉 물분자들이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인다. 가열하기 전에는 물분자들이 온갖 방향으로 움직였을 텐데 대류가 일어남으로써 물분자들은 더욱 질서있게 일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프리고진은 일련의 더 복잡한 예들을 들고 있다.

과학동아의 글로 되돌아가자. 그 글은 엔트로피가 무질서도임을 은연중에 가정하고 질서가 생성될 수 있다는 것을 엔트로피가 감소할 수 있다고 해석해 버렸다. 프리고진은 제 2 법칙을 수호하고 질서원리를 공격하였는데 과학동아의 글은 그것을 반대로 해버리고 말았다.

 

생명의 기원 

사실 중요한 문제는 이것이다. 생명탄생은 제 2 법칙 위반인가? 전통적으로 창조론자들은 자발적인 생명탄생은 제 2 법칙 위반이고 따라서 불가능하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대해 프리고진은 엔트로피가 반드시 무질서도를 의미하지는 않으므로 생명탄생이 제 2 법칙과 모순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러한가?

나는 프리고진에 견해에 대한 창조론자들의 반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전적으로 필자의 무지의 소치이다.) 따라서 여기서는 전적으로 개인적인 견해를 피력하고자 한다.

생명이 자발적으로 발생하려면, 위에서 한 얘기들에 따르면, 그것은 무산 구조에만 의존하여야 한다. 그러나 앞에서 얘기했듯이 무산 구조는 엔트로피가 증가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것이고 다시 평형으로 돌아가게 되면 질서원리가 다시 타당해지므로 무산 구조가 만들어지기 전보다 더 무질서하게 된다. 따라서 생명발생을 위해서는 계속해서 평형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필요가 있다.

화학에서 무산 구조의 예로 가장 많이 얘기되는 것은 진동 반응(oscillating reaction)이고 그 가장 대표적인 예는 Belousov-Zhabotinsky반응이다. 이 반응은 용액의 색깔이 주기적으로 변하는 특징이 있다. 나는 화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BZ반응을 평범한 시험관에서 실험해 본 일이 있다. 그러나 색깔이 두세 번 변하고는 평형상태에 도달하고 말았다. 이 반응을 실제로 연구할 때에는 평형에 도달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여러 장치가 반응용기에 붙어있다. 계속해서 평형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것이다.

지속적으로 평형에서 떨어진 상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들이 있는가? 있다. 바로 생명이 그것이다. 평형이란 생명체에게 곧 죽음을 뜻한다. 생명체의 수많은, 그리고 매우 정교한 조직들이 자신의 몸을 평형으로부터 떨어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 작동하고 있다. 이렇게 평형에서 떨어진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매우 정교하고 잘 짜여진 조건들이 필요하다. 게다가 단지 그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점점 더 질서있는 구조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특히 생명이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잘 짜여진 구조가 생기기 위해서는 참으로 상상하기도 어려운 조건들이 필요할 것이다. 우연에 의해서 이러한 일이 일어날 확률은 그야말로 무지하게 작을 것이다. 잘라 말해서 그것은 불가능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무산 구조는 '생명발생은 제 2 법칙 위반이다'라는 논증의 구조를 허물었으나 생명탄생 자체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창조론자들이 제 2 법칙을 거명해서 생명발생의 불가능성을 주장하는 데에는 열역학 법칙들이 잘 정립되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것 같다. 그것이 어떤 열역학적인 추론으로 도출되었다기 보다는 확률론적인 추론이 질서원리와 맞물려 열역학 법칙과 연결된 것에 불과하다. 즉 애초에 이것은 확률의 문제이지 열역학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에필로그 

<< "모든 돼지는 죽는다"

     "소크라테스는 돼지이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죽는다" >> 

이 논증은 잘못된 추론으로부터 옳은 결론을 이끌어낸 예이다. 몹시 우스꽝스럽게 보일 테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이 추론을 한 사람은 특이한 언어 체계를 가지고 있어서 '돼지'라고 말할 때 사실은 '인간'을 의미하였을지도 모른다. 또는 인간과 돼지를 같은 종류로 보고 (사실 돼지의 내장은 인간의 내장과 매우 비슷하다고 한다) 그것을 한데 묶어 '돼지'라고 불렀을지도 모른다. 또는 그리스인을 매우 싫어하는 민족으로서 그에게 '돼지'란 곧 '그리스인'을 의미하였을 수도 있다. 어찌 되었건 그는 소크라테스가 죽을 운명을 가진 어떤 집단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간파하였다. 그의 잘못된, 또는 정확하지 않은 추론은 그의 결론을 직접적으로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기는 하나, 그의 결론은 그가 올바로 간파한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그쳐서는 안된다. 추론의 잘못을 바로잡고 정확하지 않은 부분을 다듬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가 간파한 사실이 올바르다는 사실을 보여주어야 한다.

생명발생의 불가능성에 대한, 기존의 제 2 법칙에 따른 논증은 다소 잘못된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경우 '엔트로피'라는 말이 마치 '돼지'라는 말처럼 작용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 논증을 다듬고 빼야 할 것은 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역학 제 2 법칙을 사용하여 논증을 하는 것은 경우에 따라서는 전혀 소득이 없을 뿐만 아니라 무식하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이 논증에서 열역학 제 2 법칙을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다. 다만 불가능성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 열역학 제 2 법칙을 언급하는 것은 효과적일 수도 있다.

요컨대 소크라테스가 돼지이냐, 그렇지 않으면 무엇이냐 하는 것을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올바른 추론이 된다. (추론의 올바름과 결론의 올바름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그가 돼지이건 아니건 간에, 결국 죽었다.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3/a31/a31o8.htm

출처 - 창조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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