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과학과 에너지 공학
인류는 에너지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여 사용해 왔다. 석기시대의 발달한 사냥 기술이 수렵자원의 고갈을 초래하자, 농경문화와 이에 적합한 효율적인 에너지 기구인 신석기 시대를 낳았다. 로마시대에는 정복을 통해 획득한 막대한 잉여 에너지인 노예들의 육체노동력의 한계가 오자, 수력을 이용한 분쇄 기술의 개발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원을 활용했다. 이후 유럽에서는 난방으로 사용하던 목재 에너지의 고갈을 경험한다. 영국 등지에서 땅속의 검은흙을 연료로 사용하게 되고, 시기 적절하게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다. 이제 인류는 땅속에 간직되어 있던 화석연료의 고갈과 이들 사용으로 인한 환경의 악화의 이중고를 겪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물질에서 바로 에너지를 획득하는 핵에너지의 사용은 방사능이라는 위험요소를 던져주고 있다.
현재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이 고대시대의 80명의 노예를 거느리고 살던 귀족과 같은 수준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에너지 과소비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에너지 문제는 소수의 과학자 집단에서 논의되는 고유한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두가 고민하는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에너지의 기본법칙
열로부터 유용한 일을 얻어내고자 하는 노력은 에너지의 총량이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 1법칙의 장미빛 향기를 맡으며 끊임없이 시도되었으나, 고립계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 2법칙에 의해 늘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공학은 한마디로 열적 자원을 개발하고, 유용한 일을 얻어내는 기구를 개발하되 이를 극대화하며 환경오염이 되는 엔트로피의 발생을 극소화하고자 하는 공학이다. 이 공학의 한 끝자락은 오늘날의 고도 문명사회를 유지하는데 절대 필요한 유용한 일의 개발이라는 실용적인 부분에 걸쳐 있으나, 다른 한 끝자락은 질서와 무질서라는 지극히 철학적인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 부분은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에 등장하여 진화론을 궁지에 빠지게 하던 아주 믿음직한 이론이었다.
질서와 무질서
우리의 언어로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을 표현하면, 어떻게 무질서에서 질서가 나왔는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인류가 알고자하는 고상한 몇 안 되는 문제중에 지극히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도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보이는 생물계의 질서를 논하는 지극히 어려운 문제를 떠나서도, 우리는 종종 창틀에 낀 성애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기하학적 모양, 들의 꽃, 가뭄 때 갈라진 논바닥의 균열, 마구잡이로 종이를 꾸겨 놓은 듯한 산하(山河)의 뻗어 달림, 가을 하늘에 촘촘히 흩뿌려진 새털구름 등을 바라보면서도 질서와 무질서를 생각하게 되고 시민들은 노래할 것이다.
최근, 과학의 발달은 질서와 무질서의 해석이라는 명제에 드디어 발을 딛기 시작했다. 기상학자인 로렌츠가 발견한 대기순환의 간단한 비선형 동역학 방정식이 보여주는 혼돈(chaos)의 해석을 통해, 기묘한 끌개(strange attractor)의 해석은 결정론적 혼돈이라는 개념을 던져 주었다. 우리가 경험한 많은 종류의 혼돈 중에 상당수가 그 배후에 매우 간단한 결정론적인 지배 방정식에 따른다는 것이다.
사실 뉴튼 역학 이후의 결정론적 세계관은 하나님의 존재를 초기조건으로 제한하는 오류를 던져 주었다. 그러나 chaos의 특징인 '재빠른 초기조건의 망각'은 초기로 제한된 하나님을 재빨리 망각하는 자연을 묘사하여 지극히 위험한 세계관을 던져줄 소지가 있다.
또 다른 도전은 일리아 프리고진(Ilya Prigogine)으로 대표되는 브뤼쉘 연구소팀의 주장인 자기조직(Self organization)에 관한 연구이다. 이들은 선형열역학에서는 엔트로피의 증가가 무질서의 증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론을 펼치고 있다. 이들 연구가 완벽한 상태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들을 조합하면 지극히 진화론적인 사고의 일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간섭하시는 하나님
위의 사고과정에 하나님의 설 곳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자. 먼저 대류 운동을 보기를 들자. 이것은 일리아 프리고진(Ilya Prigogine)도 즐겨 그의 이론에 예로 드는 것이다. 아침마다 커피물을 덮히다 보면 물이 빙빙 도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이 대류이다. 물이라는 분자는 지능이 없으므로 협동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열이 가해지면 제멋대로 충돌할 것이다. 이러한 멋대로 충돌에 의한 에너지의 전달을 전도(conduction)이라 부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도는 혼돈의 상태이고 대류는 질서의 상태이다. 왜냐하면 우리 육안으로 흐름을 관찰하려면 적어도 1몰 정도의 물분자가 단체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능없는 1몰의 물분자가 단체행동을 할 확률은 1 / 6.023×1023 이다. 따라서 이것은 기적이다. 우리는 매일아침 기적을 바라보는 것이다. 무엇이 거의 0의 확률을 1의 확률로 바꾸었을까? 그것은 물분자 하나하나에 간섭한 중력이다. 이 간섭자로 말미암아 물분자는 멋대로 충돌하기 보다 단체행동을 한 것이다.
최근 Yorke 등의 과학자는 혼돈을 제시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이것은 미래 계통공학(system engineering)에 큰 공헌을 할 것이 기대된다. 혼돈을 간직한 계통을 설계하고 이를 제어하므로, 하나의 계통에서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융통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제어라는 것은 목표치와 현 상태의 오차를 감지하고 이를 끊임없이 수정하는 행동이다. 즉 끊임없는 간섭이 혼돈계를 질서계로 바꾸어 준다. 일리아 프리고진은 자신의 이론에 제시한 비평형 엔트로피의 작용을 이 혼돈의 제어라는 언어로 다시 표현해야 마땅하다.
제어를 하고자 하는 경우, 원하는 목표치(최적상태)를 알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간섭해야 한다. 따라서 혼돈에서 질서의 창출은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
즉, 질서의 상태를 설계하셨고 이것이 혼돈으로 갖지 않도록 끊임없이 간섭하고 계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유용한 일의 획득
문제를 돌려서, 우리 피부에 와 닿는 현실 문제인 유용한 일의 획득이라는 공학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에너지 변환 시에 우리는 엔트로피를 발생시키게 되고, 이것은 지구환경을 심히 훼손시킨다. 따라서 에너지 소비절약과 고효율의 에너지 변환장치 개발이 급선무이다. 고효율의 에너지 변환장치는 결국 단위 에너지당 엔트로피의 생산이 작은 방향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큰 영향을 받는다.
에너지 형태 | 단위 에너지당 엔트로피 |
중 력 회 전 에 너 지 궤 도 운 동 에 너 지 핵 반 응 천 체 의 내 부 열 태 양 관 선 화 학 반 응 지 구 폐 열 마 이 크 로 파 우 주 선 | 0 0 0 10-6 10-3 1 1-10 10~100 104 |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중력, 회전에너지, 궤도 운동에너지 등은 엔트로피 생성이 무시할 만 하다. 이 부분은 수력발전의 경우와 같이 중력과 회전에너지의 결합으로 구현되었다. 큰 저수지의 필요로 주변의 기후 변동과 수몰지역 문제가 있고, 거의 개발한 곳을 다 개발한 상태여서 청정에너지의 개발 여지가 많지 않다.
핵반응을 이용한 에너지는 핵분열과 핵융합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안전성의 증대가 관건이 되고 폐기물의 경우는 다른 에너지 변환 장치에 비해 작은 편이다.
태양열의 이용은 경제성 문제가 크고 단위 면적당 에너지 집적률이 낮아,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있다. 풍력의 경우 돌풍성 바람에 대한 대책과 회전익에서 발생하는 소음공해 등의 해결이 필요하다. 간략히 살펴보아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가 그리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미래의 에너지는 중력?회전에너지?궤도 운동에너지가 조합된 특이한 변환장치에 의해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궤도 운동의 경우. 이체문제(two-body problem)의 경우는 궤적을 예측할 수 있으나, 삼체문제(three-body problem)만 되어도 질량의 비율에 따라 카오스적 궤도가 형성된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해?달?지구 그리고 그 속에 넣을 에너지 변환기구의 상관 관계에 관심을 둬야 한다.
이러한 엔트로피의 생성을 최소화하는 기구의 개발과 함께, 에너지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어 가는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청지기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가이아 이론과 같이 지구를 숭배하는 적그리스도(anti-Christ)적인 사고를 물리칠 책임 또한 막중하다.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3/a31/a31c2.htm
출처 - 창조지, 제 90호 [1994. 4~6]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1
참고 :
창조과학과 에너지 공학
인류는 에너지 위기 때마다,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에너지 자원을 개발하여 사용해 왔다. 석기시대의 발달한 사냥 기술이 수렵자원의 고갈을 초래하자, 농경문화와 이에 적합한 효율적인 에너지 기구인 신석기 시대를 낳았다. 로마시대에는 정복을 통해 획득한 막대한 잉여 에너지인 노예들의 육체노동력의 한계가 오자, 수력을 이용한 분쇄 기술의 개발을 통해 새로운 에너지원을 활용했다. 이후 유럽에서는 난방으로 사용하던 목재 에너지의 고갈을 경험한다. 영국 등지에서 땅속의 검은흙을 연료로 사용하게 되고, 시기 적절하게 산업혁명 시대를 맞는다. 이제 인류는 땅속에 간직되어 있던 화석연료의 고갈과 이들 사용으로 인한 환경의 악화의 이중고를 겪는 위기에 봉착해 있다. 물질에서 바로 에너지를 획득하는 핵에너지의 사용은 방사능이라는 위험요소를 던져주고 있다.
현재 우리는 한사람 한사람이 고대시대의 80명의 노예를 거느리고 살던 귀족과 같은 수준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에너지 과소비 시대를 살고 있다. 이제 에너지 문제는 소수의 과학자 집단에서 논의되는 고유한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을 살아가는 모두가 고민하는 문제로 자리잡고 있다.
에너지의 기본법칙
열로부터 유용한 일을 얻어내고자 하는 노력은 에너지의 총량이 일정하다는 열역학 제 1법칙의 장미빛 향기를 맡으며 끊임없이 시도되었으나, 고립계에서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열역학 제 2법칙에 의해 늘 한계를 경험할 수밖에 없었다.
에너지 공학은 한마디로 열적 자원을 개발하고, 유용한 일을 얻어내는 기구를 개발하되 이를 극대화하며 환경오염이 되는 엔트로피의 발생을 극소화하고자 하는 공학이다. 이 공학의 한 끝자락은 오늘날의 고도 문명사회를 유지하는데 절대 필요한 유용한 일의 개발이라는 실용적인 부분에 걸쳐 있으나, 다른 한 끝자락은 질서와 무질서라는 지극히 철학적인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이 부분은 오랫동안 논의되어온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에 등장하여 진화론을 궁지에 빠지게 하던 아주 믿음직한 이론이었다.
질서와 무질서
우리의 언어로 진화론과 창조론의 논쟁을 표현하면, 어떻게 무질서에서 질서가 나왔는가를 설명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문제는 인류가 알고자하는 고상한 몇 안 되는 문제중에 지극히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고도의 복잡성과 다양성을 보이는 생물계의 질서를 논하는 지극히 어려운 문제를 떠나서도, 우리는 종종 창틀에 낀 성애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기하학적 모양, 들의 꽃, 가뭄 때 갈라진 논바닥의 균열, 마구잡이로 종이를 꾸겨 놓은 듯한 산하(山河)의 뻗어 달림, 가을 하늘에 촘촘히 흩뿌려진 새털구름 등을 바라보면서도 질서와 무질서를 생각하게 되고 시민들은 노래할 것이다.
최근, 과학의 발달은 질서와 무질서의 해석이라는 명제에 드디어 발을 딛기 시작했다. 기상학자인 로렌츠가 발견한 대기순환의 간단한 비선형 동역학 방정식이 보여주는 혼돈(chaos)의 해석을 통해, 기묘한 끌개(strange attractor)의 해석은 결정론적 혼돈이라는 개념을 던져 주었다. 우리가 경험한 많은 종류의 혼돈 중에 상당수가 그 배후에 매우 간단한 결정론적인 지배 방정식에 따른다는 것이다.
사실 뉴튼 역학 이후의 결정론적 세계관은 하나님의 존재를 초기조건으로 제한하는 오류를 던져 주었다. 그러나 chaos의 특징인 '재빠른 초기조건의 망각'은 초기로 제한된 하나님을 재빨리 망각하는 자연을 묘사하여 지극히 위험한 세계관을 던져줄 소지가 있다.
또 다른 도전은 일리아 프리고진(Ilya Prigogine)으로 대표되는 브뤼쉘 연구소팀의 주장인 자기조직(Self organization)에 관한 연구이다. 이들은 선형열역학에서는 엔트로피의 증가가 무질서의 증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이론을 펼치고 있다. 이들 연구가 완벽한 상태라고 말할 수는 없으나, 이들을 조합하면 지극히 진화론적인 사고의 일관성을 발견하게 된다.
간섭하시는 하나님
위의 사고과정에 하나님의 설 곳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자. 먼저 대류 운동을 보기를 들자. 이것은 일리아 프리고진(Ilya Prigogine)도 즐겨 그의 이론에 예로 드는 것이다. 아침마다 커피물을 덮히다 보면 물이 빙빙 도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 이것이 대류이다. 물이라는 분자는 지능이 없으므로 협동할 능력이 없다. 따라서 열이 가해지면 제멋대로 충돌할 것이다. 이러한 멋대로 충돌에 의한 에너지의 전달을 전도(conduction)이라 부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전도는 혼돈의 상태이고 대류는 질서의 상태이다. 왜냐하면 우리 육안으로 흐름을 관찰하려면 적어도 1몰 정도의 물분자가 단체행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지능없는 1몰의 물분자가 단체행동을 할 확률은 1 / 6.023×1023 이다. 따라서 이것은 기적이다. 우리는 매일아침 기적을 바라보는 것이다. 무엇이 거의 0의 확률을 1의 확률로 바꾸었을까? 그것은 물분자 하나하나에 간섭한 중력이다. 이 간섭자로 말미암아 물분자는 멋대로 충돌하기 보다 단체행동을 한 것이다.
최근 Yorke 등의 과학자는 혼돈을 제시하는 기법을 개발했다. 이것은 미래 계통공학(system engineering)에 큰 공헌을 할 것이 기대된다. 혼돈을 간직한 계통을 설계하고 이를 제어하므로, 하나의 계통에서 다양한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융통성을 부여하는 것이다. 제어라는 것은 목표치와 현 상태의 오차를 감지하고 이를 끊임없이 수정하는 행동이다. 즉 끊임없는 간섭이 혼돈계를 질서계로 바꾸어 준다. 일리아 프리고진은 자신의 이론에 제시한 비평형 엔트로피의 작용을 이 혼돈의 제어라는 언어로 다시 표현해야 마땅하다.
제어를 하고자 하는 경우, 원하는 목표치(최적상태)를 알고 있어야 하며, 이를 위해 간섭해야 한다. 따라서 혼돈에서 질서의 창출은 하나님을 필요로 한다.
즉, 질서의 상태를 설계하셨고 이것이 혼돈으로 갖지 않도록 끊임없이 간섭하고 계신 하나님을 의미한다.
유용한 일의 획득
문제를 돌려서, 우리 피부에 와 닿는 현실 문제인 유용한 일의 획득이라는 공학적인 측면을 살펴보자. 에너지 변환 시에 우리는 엔트로피를 발생시키게 되고, 이것은 지구환경을 심히 훼손시킨다. 따라서 에너지 소비절약과 고효율의 에너지 변환장치 개발이 급선무이다. 고효율의 에너지 변환장치는 결국 단위 에너지당 엔트로피의 생산이 작은 방향의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 큰 영향을 받는다.
에너지 형태
단위 에너지당 엔트로피
중 력
회 전 에 너 지
궤 도 운 동 에 너 지
핵 반 응
천 체 의 내 부 열
태 양 관 선
화 학 반 응
지 구 폐 열
마 이 크 로 파 우 주 선
0
0
0
10-6
10-3
1
1-10
10~100
104
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중력, 회전에너지, 궤도 운동에너지 등은 엔트로피 생성이 무시할 만 하다. 이 부분은 수력발전의 경우와 같이 중력과 회전에너지의 결합으로 구현되었다. 큰 저수지의 필요로 주변의 기후 변동과 수몰지역 문제가 있고, 거의 개발한 곳을 다 개발한 상태여서 청정에너지의 개발 여지가 많지 않다.
핵반응을 이용한 에너지는 핵분열과 핵융합 두 가지로 분류되는데, 안전성의 증대가 관건이 되고 폐기물의 경우는 다른 에너지 변환 장치에 비해 작은 편이다.
태양열의 이용은 경제성 문제가 크고 단위 면적당 에너지 집적률이 낮아, 넓은 면적을 필요로 하는 문제가 있다. 풍력의 경우 돌풍성 바람에 대한 대책과 회전익에서 발생하는 소음공해 등의 해결이 필요하다. 간략히 살펴보아도 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가 그리 쉽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어쩌면 미래의 에너지는 중력?회전에너지?궤도 운동에너지가 조합된 특이한 변환장치에 의해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궤도 운동의 경우. 이체문제(two-body problem)의 경우는 궤적을 예측할 수 있으나, 삼체문제(three-body problem)만 되어도 질량의 비율에 따라 카오스적 궤도가 형성된다. 따라서 우리는 더욱 해?달?지구 그리고 그 속에 넣을 에너지 변환기구의 상관 관계에 관심을 둬야 한다.
이러한 엔트로피의 생성을 최소화하는 기구의 개발과 함께, 에너지의 무분별한 사용으로 말미암아 파괴되어 가는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자 하는 청지기로서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가이아 이론과 같이 지구를 숭배하는 적그리스도(anti-Christ)적인 사고를 물리칠 책임 또한 막중하다.
번역 -
링크 - http://www.kacr.or.kr/databank/document/data/amazement/a3/a31/a31c2.htm
출처 - 창조지, 제 90호 [1994. 4~6]
구분 - 2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41
참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