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변설의 등장
(Up With Catastrophism)
by Henry M. Morris
동일과정설의 세기
지난 10년간의 놀라운 발달들 중 하나는 지질학의 해석에 있어서 격변설(catastrophism)의 부활이었다. 지질학의 실제의 창설자들(Steno, Woodward 등)은 격변론자이고, 지구역사의 가장 중요한 지질학적 사건으로 노아의 홍수를 믿는 사람들이었지만, 과거 150년 동안 동일과정설(=균일설)이 지질학의 주된 이론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농학자인 제임스 허튼(James Hutton)과 영국의 변호사인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은 성경의 연대와 격변적인 대홍수를 거부하기 위하여 그들 시대의 사람들에게 무한한 시간(영겁, aeons)을 통한 매우 느린 지질학적 과정을 도입 주장하였다. 줌버그(Zumberge)는 1963년에 그의 널리 사용된 교과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큐비에(Cuvier)와 동시대의 찰스 라이엘 선생은 격변적인 생각에 반대하여 지구의 변화는 오늘날과 동일하게 천천히 똑같은 형태로 점차적으로 변한다고 생각하였다. 라이엘은 "현재는 과거를 아는 열쇠다(the present is the key to the past)" 라고 하면서 과거 지질학적 사고들의 길잡이와 같은 전제를 만들어 선전하기 시작했다. 라이엘의 동일과정설의 기초(요약)는 과거의 지질학적 과정들이 오늘날과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율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1)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격변의 증거들은 암석에 분명히 남아 있었고, 누구도 그것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동일과정설에 의한 현재와 같은 미미한 지질학적 변화율로는 엄청난 지질학적 지각구조와 지층형성, 막대한 양의 화석매몰 등을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줌버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순수한 과학적 입장에서 동일과정설을 변할 수 없는 이론(dogma)으로서 생각하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과거 지질시대의 상황이 오늘날과 달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2)
소수의 지질학자들은(Krynine, Bretz, Dachille 등) 일찌기 지질주상도상에서의 정상적인 격변보다 훨씬 많고 강력한 지질학적 증거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라이엘까지도 지역적 홍수, 화산폭발 등과 같은 것들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전체적인 동일과정설 틀안에서 이것들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지구의 많은 운석충돌 흔적이나 워싱톤의 'scabland' 지역과 같은 현상들에 의해 몇몇 지질학자들은 평범한 격변(ordinary catastrophes)이 전체 이야기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신격변설
최근 격변설의 재등장은 뛰어난 진화론자요 과학사가인 굴드(Stephen Jay Gould)의 뛰어난 몇몇 논문들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굴드는 먼저 자연법칙의 일정불변(uniformity)과 진행률의 일정불변 사이에는 구별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동일과정설은 이중적인 개념(dual concept)이다. 실재적인 동일과정설(substantive uniformitarianism, 물질의 변화률이 일정하다는 가정하에 지질학적 변화를 추정하는 이론)은 거짓이며, 가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숨이 막힌다. 방법적 동일과정설(methodological uniformitarianism, 자연법칙은 장소나 시간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장하는 방법적 원리)은 과학의 정의에 속하며, 지질학에서만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3)
성경적 격변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일한 변화율에 관한 것을 거부하는 것임에도, 자연의 법칙의 동일성을 거부하는 것으로 오해되어 항상 압박을 받고 있음은 흥미롭다. 굴드는 격변론자들이 오랫동안 강조해 왔던 것을 단지 반복하였던 것이다.
최근에 굴드는 19세기에 라이엘과 동료들이 성경적 격변설을 거부하고 동일과정설을 동시대 사람들에게 설득했던 우회적 방법들에 대해서 주의하여 살펴보았을 때 이 사실을 확인했다.
”찰스 라이엘은 직업 변호사였다. 그의 책은 법률가들에 의해서 출판된 소송사건 책들 중의 하나였다. 라이엘은 유일하고 진실된 지질학적 이론으로서 동일과정설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진실로 많은 부분을 컨닝(cunning)에 의지하였다. 먼저 그는 이론을 뒤집기 위해서 허수아비(a straw man)를 세웠다.... 사실 격변론자들은 라이엘l보다 훨씬 많은 명성을 얻고 있는 경험주의자들이었다. 지질학적 기록도 대격변설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였다. 바위들은 부서져 있었고, 뒤틀어져 있었다. 전 동물군들은 전멸되어 있었다. 이러한 실제적인 모습들을 속여넘기기 위하여, 라이엘은 증거들에 대해 그의 상상력을 가미시켰다. 그는 지질학적 기록은 매우 불완전하기 때문에, 우리가 비록 볼 수는 없어도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것들은 고쳐 써 넣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격변론자들은 그들의 시대에 맹목적인 신학자가 아니라 주장이 강한 경험주의자들이었다.”(4)
누구도 오해하지 않기 위하여, 굴드는 창조론자도 아니고 성경적 격변론자도 아님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사실 현대 지질학적 유사격변론자들은 성경과의 전투는 이미 이겼기 때문에 성경적 초자연주의를 지지하는 위험 없이, 지금 그들은 안전하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지질학적 해석으로서 격변설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다. 굴드는 예를 들어 말했다.
”특별한 용어로서 방법론적 동일과정설(methodological uniformitarianism)은 과학이 그 영역에서 초자연적 위치로 토론되어질 때만 유용하다. 왜냐하면 신이 간섭한다면, 법칙이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전제는 무효가 되는 것이다. 오늘날 그러한 용어는 시대착오적이다.”(5)
마찬가지로 동일과정설을 비판한 또 다른 현대 학자는 동일과정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자주 동일과정설은 역사의 반격변론적 시각을 설명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는데 사용되곤 하였다”.(6)
지질학적 격변설을 주장하는 최근 책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주의점을 가지고 그의 결론에 여지를 남겨둘 필요를 느낀다.
”화석기록에 대해 신격변론적(neocatastrophist) 태도를 받아들이는 것은 ~ 쉽고 또한 유혹적이다. 이것은 독한 포도주이고, 노아의 홍수에 대한 모든 것을 비난할 수 있었던 날 이후로 고생물학자들을 중독시켰다. 사실 아직도 많은 책들이 같은 설명을 가지고 괴팍스러운 극단론자들에 의해 출판되어지고 있다. 이 책도 자신의 편견을 지지하여줄 지푸라기라도 찾는 근본주의자들에 의해 읽혀질 것이기 때문에, 모든 나의 경험은 내가 화석기록에서 보았던 것에 대한 흡족한 설명으로 자연선택에 의한 진화론을 부적절한 줄은 알지만 선택할 수 밖에 없도록 유도되는 것이다. 나는 신에 의한 창조, 완전히 가설이 필요없는 여러 창조들을 발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석기록에 매우 이상한 몇몇 모습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7)
또 하나 최근의 책은(8) 지층의 형태학(수력학적 과정에 의한 침식을 강조하고 있다)에 대한 현대적인 연구는 지질학의 격변론의 기초를 세운 우드워드(Woodward)와 몇몇 사람들에 의해 원래 확립되었으며, 그들은 신의 저주에 의한 성경적 지구역사와 완벽하게 일치함을 믿게 되었다는 점을 기록하고 있다. 지질학에 있어서 이러한 진실된 경험적 접근법은 허튼(Hutton)과 몇몇 자연신론적 사람들의 이론인 오래된 지구개념(steady-state earth)의 동일과정설에 의해서 방해를 받았다. 이 책의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흥미있는 논평을 하였다.
”모세의 연대기는 마침내 불신되고, 신적인 권위는 다시 발가벗겨지면서(허튼의 이성주의에 의해), 19세기의 영국 지질학자들은 하천에 의한 논점(issue of fluvialism)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9)
동일과정적 격변설
창조과학자들은 동일과정설은 지질학적 형태들에 관한 어떠한 것도 설명하는데 부적절하다는 것을 수년동안 주장하여왔다.(10) 동일과정설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것은 사실이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더 나아가 현재는 과거의 열쇠(the key)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으며 (a key도 안됨), 지질학적 진행률에 관련해서는 더욱 아니다. 진화론자들과 동일과정설 주장자들이 그렇게 오래도록 절대적으로 부정하였던 이러한 중요한 사실들은 이제는 이들 두 부류들도 공공연히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최근의 경향은 데렉 아거(Derek Ager)에 의해 쓰여진 '층서학적 기록의 본질(The Nature of the Stratigraphical Record)' 라는 책에서 일찍이 언급되었다. 아거 자신은 진화론자요 동일과정설을 믿는 자라고 주장하였지만, 그 책의 주제는 지질학적 형성와 구조의 모든 형태는 몇 종류의 격변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같은 격변에 의해 모든 것이 형성되었다고는 믿지 않았고, 수십억 년의 시간을 골격으로 하는 전형적인 동일과정설과는 분명히 구별된 여러번의 다양한 격변에 의해서, 다른 말로 하면 일종의 동일과정적 격변론(uniformitarian catastrophism)으로 형성되었다고 하였다. 아거 박사는 매우 천천히 만들어졌다는 전통적인 것들을 포함하여 모든 지질학적 형성들에 관한 여러 형태들을 상세히 조사한 후, 모든 지층은 빠르게 형성되었음이 틀림없음을 결론지었다.
”태풍, 홍수, 또는 쯔나미(tsunami, 거대한 해일) 등은 한시간 또는 하루만에 수천 년에 걸쳐 만든 지질학적 과정보다 훨씬 더 큰 과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11)
아거의 이러한 주장은 한 날은 격변시에 수천 년과 같다는 성경과 거의 일치한다. 사실 베드로후서 3장8절의 유명한 말씀은 흔히 창조의 하루를 수천 년의 오랜 기간으로 잘못 해석되어왔다. 그러나 이 말씀은 아거가 의미했던 것을 정확히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일을 성취하시는데 동일과정적 진행률로 제한받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동일과정론적 가정으로 일천 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하루만에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시다. 아거는 계속하였다.
”우리가 층서학적 기록들을 다룰 수천 년이 주어진다면, 우리는 지층으로부터 모든 작업들을 이루어낸 주기적인 격변들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증거들을 다 검사한 후의 아거 책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다시 말하면 지구의 어떤 한 부분의 역사는 군인의 생명과 같아서 오랜 기간의 지루함과 짧은 기간의 공포로 구성되어 있다.”(13)
즉 우리가 지층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격변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품이다. 수십억 년이라고 상상하는 끼어있는 기간(intervening periods)들은 암석 지층에 아무런 기록도 남겨 놓지 않고 있다. 각각의 지층형성들은 신속히 퇴적되었다. 지층사이의 부정합(unconformities)들은 침식기간이나 퇴적이 없었던 기간들이었다.
한 번의 격변, 또는 여러 번의 다중격변?
남아 있는 질문은 무수한 각각의 격변이 실제로 나타난 것인지, 같은 격변들의 부분들을 가지는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지 이다. 아거와 몇몇 사람들이 다투고 있는 것처럼, 만약 우리가 여러 격변들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는 증거들을 실제로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러한 시대들이 실제로 발생하였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측정하기 위해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나 나는 층서학적 기록의 더욱 정확한 그림은 단지 매우 드물게 퇴적층에 하나의 오래된 간격이 있다는 것을 지지한다."(14)
그 간격이 형성되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격변에 대해 수십억 년의 시간을 부여하는 단지 유일한 이유는 진화하는데 필요한 시간의 제공 때문이다. 사실 말하자면 지층은 그들 스스로 복잡하게 상호연결되어 있어서, 연속적인 부분적인 격변들은 전 지구적 격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로 모든 지질시대의 바위들은 똑같이 보인다는 것이다. 즉 모든 시대의 암석에는 모든 종류의 바위, 모든 종류의 광물, 모든 종류의 구조들이 있다. 두 번째로 모든 지층은 시간적인 간격없이 지속적으로 또 다른 지층 위에 쌓여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부정합(unconformity)'은 없다는 사실로 이어진다. 부정합은 두 개의 인접지층 사이에 퇴적 기간사이에 알려지지 않은 시간 간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침식면으로 추정되어 왔다. 한 때는 그러한 부정합이 정말로 세계적으로 분포했다고 믿어졌었다. 층서학의 초기에 부정합은 과장되어서, 무한히 광범위한 지역들 위에 동시대의 지각변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믿어졌었다.(15)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모든 부정합은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있었고, 더 나아가 특별한 시간의 중요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부정합의 단면이 광범위하게 등시적 수평(isochronous horizons)을 이루고 있어, 진정한 연대학적 지층 경계(chronostratigraphic boundaries)가 될 수 없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정합 단위들은 연대학적 층서학의 단위들로 간주되었었다.(16)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간단한 합리적 삼단논법이 다음과 같이 성립될 수 있다. 1)모든 지층의 형성은 신속히 격변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2)모든 지층형성은 퇴적과정의 중단없이 층위에 층을 만들며 형성됐고 3)그리고 지질주상도 전체는 부분들의 합이 아니기 때문에 4)그러므로 전체 지질주상도는 전 세계적으로 격변의 상호연관성을 보이며 연속적으로 빠르게 형성되었다.
지질학의 곤혹
이상에서의 토론은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고 불충분하지만, 현대 지질학자들이 직면한 딜레마를 잘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 역사의 진실된 열쇠로서 창조와 홍수에 대한 기록을 거부하면서, 지질학자들은 일백 년의 기간동안 그들의 해석 법칙으로 동일과정설에 의존하여 왔다. 이제 이 체계는 아주 맞지 않음이 입증됐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새로운 생각으로 신격변론(neo-catastrophism)에 대해 의지하여 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지질학적 형성과정들이, 관측과 측정이 쉽지 않고 현재의 진행과도 어울리지 않는 격변적 현상에 의해 설명되어야만 한다면, 지사학(historical geology)은 과학이 아니고 (not science), 추상적 사색(speculation)인 것이다.
”최근에 지질학적 사고에 있어 격변설(catastrophism)의 회복이 심도있게 일어나고 있다. 이것은 과학적 진리는 하나라는 논리와 모순된다. 만약 격변이 균일한 과정이 아니라면, 과거를 이해하기 위한 합리적인 기초는 없는 것이다. 계시나 가능성만을 가지고 과학을 바벨론적 유산으로 돌이킬려는 사람들에 대해, 우리는 과거에 대한 공정하고 유일한 열쇠는 개연성과 자연과정의 질서라는 것을 주장하여야만 한다. 만약 동일과정이 열쇠가 아니라면, 합리적인 개념의 열쇠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짐을 싸고 집에 가야할 것이다."(17)
이러한 비탄은 만약 우리가 지구역사의 해석에 대해 자연주의적 사색적 격변론에 제한하고 있다면 사실 그럴듯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은 동일과정설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지구의 초기 역사와 기원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실패할 때 가르치고 있는 것이 있다. 암석들은 세계도처에서 물에 의한 격변의 증거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격변이 일어난 원인, 성격, 기간, 결과들이 신성한 영감에 의해 오류없이 쓰여진 성경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의 지질학적 기록 모두는 이 성경의 기록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지질학이라는 과학의 초기 창설자들도 이것을 믿었다. 이제 후세의 지적 후손들은 선조들의 신념으로 돌아갈 시기이다.
References
1 James H. Zumberge, Elements of Geology (New York, 2nd ed., John Wiley and Sons, 1963), p. 200. Zumberge and the writer were graduate students together at the University of Minnesota, in the period 1946-50, in its Department of Geology. He was more favorably inclined toward Biblical catastrophism than were others in the Geology Department and we had a number of good discussions and seemed to have much in common at that time.
2 Ibid., p. 201.
3 Stephen Jay Gould, 'Is Uniformitarianism Necessary?' American Journal of Science, Vol. 263, March 1965, p. 223. This same point had been stressed earlier by the writer (The Twilight of Evolution,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 Co., 1963, pp. 59-64). Gould has been on the geology faculty at Columbia University and is currently Professor of Geology at Harvard.
4 Stephen Jay Gould, 'Catastrophes and Steady-State Earth,' Natural History, February 1975, pp. 16-17.
5 Stephen Jay Gould, 'Is Uniformitarianism Necessary?' p. 227.
6 James W. Valentine, 'The Present is the Key to the Present,' Journal of Geological Education Vol. XIV, April 1966, p, 60.
7 Derek V. Ager, The Nature of the Stratigraphical Record (New York, John Wiley and Sons, 1973), p.19. Ager is Professor and Head of the Department of Geology and Oceanography at the University College of Swansea, England.
8 Gordon L. Davies, The Earth in Decay ¾ A History of British Geomorphology, 1578-1878 (New York, American Elsevier, 1970), 370 pp.
9 R. H. Dott, Jr., Review of 'The Earth in Decay,' Journal of Geology, Vol. 79, September 1971, p. 633.
10. See, for example, The Genesis Flood, by John C. Whitcomb and Henry M. Morris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1961), pp. 200-203, etc., as well as still earlier writings by George McCready Price, Harold W. Clark, and others.
11 D. V. Ager, op. cit. p. 49.
12 Ibid.
13 Ibid., p. 100.
14 Ibid., p. 34.
15 K. Hong Chang, 'Unconformity-Bounded Stratigraphic Units,' Bulletin, Geological Society of America, Vol. 86, November 1975, p. 1545.
16 Ibid., p. 1544.
17 B. W. Brown, 'Induction, Deduction, and Irrationality in Geologic Reasoning,' Geology, Vol. 2, September 1974, p. 456.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www.icr.org/article/up-with-catastrophism/
출처 - ICR, Impact No. 38, 1976
격변설의 등장
(Up With Catastrophism)
by Henry M. Morris
동일과정설의 세기
지난 10년간의 놀라운 발달들 중 하나는 지질학의 해석에 있어서 격변설(catastrophism)의 부활이었다. 지질학의 실제의 창설자들(Steno, Woodward 등)은 격변론자이고, 지구역사의 가장 중요한 지질학적 사건으로 노아의 홍수를 믿는 사람들이었지만, 과거 150년 동안 동일과정설(=균일설)이 지질학의 주된 이론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스코틀랜드의 농학자인 제임스 허튼(James Hutton)과 영국의 변호사인 찰스 라이엘(Charles Lyell, 1797~1875)은 성경의 연대와 격변적인 대홍수를 거부하기 위하여 그들 시대의 사람들에게 무한한 시간(영겁, aeons)을 통한 매우 느린 지질학적 과정을 도입 주장하였다. 줌버그(Zumberge)는 1963년에 그의 널리 사용된 교과서에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격변의 증거들은 암석에 분명히 남아 있었고, 누구도 그것을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동일과정설에 의한 현재와 같은 미미한 지질학적 변화율로는 엄청난 지질학적 지각구조와 지층형성, 막대한 양의 화석매몰 등을 설명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줌버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다.
소수의 지질학자들은(Krynine, Bretz, Dachille 등) 일찌기 지질주상도상에서의 정상적인 격변보다 훨씬 많고 강력한 지질학적 증거들에 대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라이엘까지도 지역적 홍수, 화산폭발 등과 같은 것들의 중요성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의 전체적인 동일과정설 틀안에서 이것들을 포함시켰다. 그러나 지구의 많은 운석충돌 흔적이나 워싱톤의 'scabland' 지역과 같은 현상들에 의해 몇몇 지질학자들은 평범한 격변(ordinary catastrophes)이 전체 이야기가 아니라는 확신을 가지기 시작했다.
신격변설
최근 격변설의 재등장은 뛰어난 진화론자요 과학사가인 굴드(Stephen Jay Gould)의 뛰어난 몇몇 논문들과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굴드는 먼저 자연법칙의 일정불변(uniformity)과 진행률의 일정불변 사이에는 구별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성경적 격변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일한 변화율에 관한 것을 거부하는 것임에도, 자연의 법칙의 동일성을 거부하는 것으로 오해되어 항상 압박을 받고 있음은 흥미롭다. 굴드는 격변론자들이 오랫동안 강조해 왔던 것을 단지 반복하였던 것이다.
최근에 굴드는 19세기에 라이엘과 동료들이 성경적 격변설을 거부하고 동일과정설을 동시대 사람들에게 설득했던 우회적 방법들에 대해서 주의하여 살펴보았을 때 이 사실을 확인했다.
누구도 오해하지 않기 위하여, 굴드는 창조론자도 아니고 성경적 격변론자도 아님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사실 현대 지질학적 유사격변론자들은 성경과의 전투는 이미 이겼기 때문에 성경적 초자연주의를 지지하는 위험 없이, 지금 그들은 안전하게 마음을 열고 그들의 지질학적 해석으로서 격변설이 옳다고 확신하고 있다. 굴드는 예를 들어 말했다.
마찬가지로 동일과정설을 비판한 또 다른 현대 학자는 동일과정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쟁에 유용하게 사용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지질학적 격변설을 주장하는 최근 책의 저자는 다음과 같은 주의점을 가지고 그의 결론에 여지를 남겨둘 필요를 느낀다.
또 하나 최근의 책은(8) 지층의 형태학(수력학적 과정에 의한 침식을 강조하고 있다)에 대한 현대적인 연구는 지질학의 격변론의 기초를 세운 우드워드(Woodward)와 몇몇 사람들에 의해 원래 확립되었으며, 그들은 신의 저주에 의한 성경적 지구역사와 완벽하게 일치함을 믿게 되었다는 점을 기록하고 있다. 지질학에 있어서 이러한 진실된 경험적 접근법은 허튼(Hutton)과 몇몇 자연신론적 사람들의 이론인 오래된 지구개념(steady-state earth)의 동일과정설에 의해서 방해를 받았다. 이 책의 평론가는 다음과 같은 흥미있는 논평을 하였다.
동일과정적 격변설
창조과학자들은 동일과정설은 지질학적 형태들에 관한 어떠한 것도 설명하는데 부적절하다는 것을 수년동안 주장하여왔다.(10) 동일과정설은 모든 것을 설명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것은 사실이다),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더 나아가 현재는 과거의 열쇠(the key)가 아니라는 것이 명백해지고 있으며 (a key도 안됨), 지질학적 진행률에 관련해서는 더욱 아니다. 진화론자들과 동일과정설 주장자들이 그렇게 오래도록 절대적으로 부정하였던 이러한 중요한 사실들은 이제는 이들 두 부류들도 공공연히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최근의 경향은 데렉 아거(Derek Ager)에 의해 쓰여진 '층서학적 기록의 본질(The Nature of the Stratigraphical Record)' 라는 책에서 일찍이 언급되었다. 아거 자신은 진화론자요 동일과정설을 믿는 자라고 주장하였지만, 그 책의 주제는 지질학적 형성와 구조의 모든 형태는 몇 종류의 격변에 의해서 형성되었다고 하였다. 그는 같은 격변에 의해 모든 것이 형성되었다고는 믿지 않았고, 수십억 년의 시간을 골격으로 하는 전형적인 동일과정설과는 분명히 구별된 여러번의 다양한 격변에 의해서, 다른 말로 하면 일종의 동일과정적 격변론(uniformitarian catastrophism)으로 형성되었다고 하였다. 아거 박사는 매우 천천히 만들어졌다는 전통적인 것들을 포함하여 모든 지질학적 형성들에 관한 여러 형태들을 상세히 조사한 후, 모든 지층은 빠르게 형성되었음이 틀림없음을 결론지었다.
아거의 이러한 주장은 한 날은 격변시에 수천 년과 같다는 성경과 거의 일치한다. 사실 베드로후서 3장8절의 유명한 말씀은 흔히 창조의 하루를 수천 년의 오랜 기간으로 잘못 해석되어왔다. 그러나 이 말씀은 아거가 의미했던 것을 정확히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의 일을 성취하시는데 동일과정적 진행률로 제한받으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동일과정론적 가정으로 일천 년이 걸릴 것이라는 것을 하루만에 하실 수 있으신 분이시다. 아거는 계속하였다.
모든 증거들을 다 검사한 후의 아거 책의 결론은 다음과 같다.
즉 우리가 지층에서 실제로 볼 수 있는 모든 것은 격변에 의해 만들어진 생산품이다. 수십억 년이라고 상상하는 끼어있는 기간(intervening periods)들은 암석 지층에 아무런 기록도 남겨 놓지 않고 있다. 각각의 지층형성들은 신속히 퇴적되었다. 지층사이의 부정합(unconformities)들은 침식기간이나 퇴적이 없었던 기간들이었다.
한 번의 격변, 또는 여러 번의 다중격변?
남아 있는 질문은 무수한 각각의 격변이 실제로 나타난 것인지, 같은 격변들의 부분들을 가지는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지 이다. 아거와 몇몇 사람들이 다투고 있는 것처럼, 만약 우리가 여러 격변들 사이에 시간이 흘렀다는 증거들을 실제로 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러한 시대들이 실제로 발생하였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 물어보는 것은 정당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측정하기 위해 남아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간격이 형성되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격변에 대해 수십억 년의 시간을 부여하는 단지 유일한 이유는 진화하는데 필요한 시간의 제공 때문이다. 사실 말하자면 지층은 그들 스스로 복잡하게 상호연결되어 있어서, 연속적인 부분적인 격변들은 전 지구적 격변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증거들을 보여주고 있다. 첫째로 모든 지질시대의 바위들은 똑같이 보인다는 것이다. 즉 모든 시대의 암석에는 모든 종류의 바위, 모든 종류의 광물, 모든 종류의 구조들이 있다. 두 번째로 모든 지층은 시간적인 간격없이 지속적으로 또 다른 지층 위에 쌓여있다. 이것은 세계적으로 '부정합(unconformity)'은 없다는 사실로 이어진다. 부정합은 두 개의 인접지층 사이에 퇴적 기간사이에 알려지지 않은 시간 간격을 나타내는 것으로 침식면으로 추정되어 왔다. 한 때는 그러한 부정합이 정말로 세계적으로 분포했다고 믿어졌었다. 층서학의 초기에 부정합은 과장되어서, 무한히 광범위한 지역들 위에 동시대의 지각변동을 나타내는 것으로 믿어졌었다.(15)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모든 부정합은 매우 제한된 범위에서 있었고, 더 나아가 특별한 시간의 중요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알려져 있다. 부정합의 단면이 광범위하게 등시적 수평(isochronous horizons)을 이루고 있어, 진정한 연대학적 지층 경계(chronostratigraphic boundaries)가 될 수 없다는 피할 수 없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많은 부정합 단위들은 연대학적 층서학의 단위들로 간주되었었다.(16)
이러한 사실들로부터, 간단한 합리적 삼단논법이 다음과 같이 성립될 수 있다. 1)모든 지층의 형성은 신속히 격변적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2)모든 지층형성은 퇴적과정의 중단없이 층위에 층을 만들며 형성됐고 3)그리고 지질주상도 전체는 부분들의 합이 아니기 때문에 4)그러므로 전체 지질주상도는 전 세계적으로 격변의 상호연관성을 보이며 연속적으로 빠르게 형성되었다.
지질학의 곤혹
이상에서의 토론은 많은 부분이 생략되었고 불충분하지만, 현대 지질학자들이 직면한 딜레마를 잘 지적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구 역사의 진실된 열쇠로서 창조와 홍수에 대한 기록을 거부하면서, 지질학자들은 일백 년의 기간동안 그들의 해석 법칙으로 동일과정설에 의존하여 왔다. 이제 이 체계는 아주 맞지 않음이 입증됐다. 그래서 그들은 지금 새로운 생각으로 신격변론(neo-catastrophism)에 대해 의지하여 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지질학적 형성과정들이, 관측과 측정이 쉽지 않고 현재의 진행과도 어울리지 않는 격변적 현상에 의해 설명되어야만 한다면, 지사학(historical geology)은 과학이 아니고 (not science), 추상적 사색(speculation)인 것이다.
이러한 비탄은 만약 우리가 지구역사의 해석에 대해 자연주의적 사색적 격변론에 제한하고 있다면 사실 그럴듯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은 동일과정설보다 더 나쁠 수도 있다. 지구의 초기 역사와 기원에 대한 실제적인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가능성은 전혀 없다. 그러나 모든 것들이 실패할 때 가르치고 있는 것이 있다. 암석들은 세계도처에서 물에 의한 격변의 증거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격변이 일어난 원인, 성격, 기간, 결과들이 신성한 영감에 의해 오류없이 쓰여진 성경에 정확히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의 지질학적 기록 모두는 이 성경의 기록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것이다. 지질학이라는 과학의 초기 창설자들도 이것을 믿었다. 이제 후세의 지적 후손들은 선조들의 신념으로 돌아갈 시기이다.
References
1 James H. Zumberge, Elements of Geology (New York, 2nd ed., John Wiley and Sons, 1963), p. 200. Zumberge and the writer were graduate students together at the University of Minnesota, in the period 1946-50, in its Department of Geology. He was more favorably inclined toward Biblical catastrophism than were others in the Geology Department and we had a number of good discussions and seemed to have much in common at that time.
2 Ibid., p. 201.
3 Stephen Jay Gould, 'Is Uniformitarianism Necessary?' American Journal of Science, Vol. 263, March 1965, p. 223. This same point had been stressed earlier by the writer (The Twilight of Evolution,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Publ. Co., 1963, pp. 59-64). Gould has been on the geology faculty at Columbia University and is currently Professor of Geology at Harvard.
4 Stephen Jay Gould, 'Catastrophes and Steady-State Earth,' Natural History, February 1975, pp. 16-17.
5 Stephen Jay Gould, 'Is Uniformitarianism Necessary?' p. 227.
6 James W. Valentine, 'The Present is the Key to the Present,' Journal of Geological Education Vol. XIV, April 1966, p, 60.
7 Derek V. Ager, The Nature of the Stratigraphical Record (New York, John Wiley and Sons, 1973), p.19. Ager is Professor and Head of the Department of Geology and Oceanography at the University College of Swansea, England.
8 Gordon L. Davies, The Earth in Decay ¾ A History of British Geomorphology, 1578-1878 (New York, American Elsevier, 1970), 370 pp.
9 R. H. Dott, Jr., Review of 'The Earth in Decay,' Journal of Geology, Vol. 79, September 1971, p. 633.
10. See, for example, The Genesis Flood, by John C. Whitcomb and Henry M. Morris (Philadelphia, Presbyterian and Reformed, 1961), pp. 200-203, etc., as well as still earlier writings by George McCready Price, Harold W. Clark, and others.
11 D. V. Ager, op. cit. p. 49.
12 Ibid.
13 Ibid., p. 100.
14 Ibid., p. 34.
15 K. Hong Chang, 'Unconformity-Bounded Stratigraphic Units,' Bulletin, Geological Society of America, Vol. 86, November 1975, p. 1545.
16 Ibid., p. 1544.
17 B. W. Brown, 'Induction, Deduction, and Irrationality in Geologic Reasoning,' Geology, Vol. 2, September 1974, p. 456.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www.icr.org/article/up-with-catastrophism/
출처 - ICR, Impact No. 38, 19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