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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렌 브레츠 2 : 그리고 거대한 화산용암지대(scabland)에 대한 논쟁

하렌 브레츠  2 

: 그리고 거대한 화산용암지대에 대한 논쟁

(J Harlen Bretz 

And The Great Scabland Debate) 

Sean D. Pitman


      1940년 6월 18일이 되자 상황은 브레츠에 대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시애틀 워싱턴에 있는 미국과학발전 협의회(American Association for the Advancement of Science)에서 주관한 태평양의 제4기 지질학 (Quaternary Geology of the Pacific) 이라는 제목의 한 학술대회에 수로가 난 화산용암 지대(Channeled Scablands)에 대한 비격변적 기원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많은 논문들이 제출되었다. 또한 대회 후에 현장 탐사여행이 조직되었는데, 예일 대학의 리차드 플린트(Richard Foster Flint)가 비격변적 모델에 대한 증거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안하였다. 브레츠는 현장 탐사여행뿐만 아니라, 회의에도 참석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아마도, 그는 그렇게 오랜 시간동안 계속해서 공개적으로 조롱당하는 것에 지쳐했을 것이다.


어쨌든, 플린트는 하천의 매적작용(aggradation, 퇴적작용으로 지표면이 평탄화되는 작용)과 절개(incision)와 더불어 빙하성 유수평원(proglacial outwash, 빙하가 녹은 물이 하천을 이뤄 모래와 자갈을 운반하여 빙하연변이나 그 전방에 층상으로 퇴적시킨 것)에 대한 그의 복잡한 논점의 멋진 줄거리를 이야기했다. 플린트는 화산용암 지대의 범람 사주의 표면 형태가 ‘다양한 개석(dissection) 상태에 있는 짝을 이루지 않는 유수침식으로 인한 단구(terrace, 계단식 대지)’의 모습이라고 대담하게 제안했다. 이어서 호지(E. T. Hodge)는 하천얼음에 의한 복잡한 둑 형성과 도수(diversion, 하천이 유로를 바꾸는 과정)와 관련된 빙식작용을 포함하는 그의 시나리오를 제시했다. 그 때 앨리슨(I. S. Allision)은 플린트의 '메우기(fill)' 가설을 자신의 ‘얼음 메움(ice-jam)'이라는 동일과정적 가설과 비교함으로써 플린트에 맞섰다. 마침내, 그 학술대회의 8명의 연사 중의 한 명이었던 파디(Pardee)가 ‘미졸라 빙하호수 내의 연흔(ripple marks, 물결무늬)’에 대해 온화하게 말했다.2 

 

 

 

 

 

겸손한 태도로 파디는 몬타나 대초원(Montana prairie) 지역에서 발견되는 명백하고 특이한 물 흐름 층(current beds)들을 형성한 물의 기원이 미졸라 호수라는 그의 이전 이론뿐만 아니라, 몬타나 북서쪽에 있는 카마스 대초원(Camas Prairie)에 최고 15m 높이에 150m 정도의 공간을 차지하는 거대한 ‘연흔(물결무늬) 자국(ripple marks)’들도 설명했다. 그는 계속해서 미졸라 호수에는 약 2,000 km3의 물이 있었으며, 한때 이 호수의 가장 자리를 빙하 댐이 막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들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는 빙하댐이 매우 급격한 상태에서 붕괴되었음을 강하게 제시하는 호수 분지 내의 심하게 침식된 수축(constriction) 현상들, 흐르는 물에 의해 운반된 거대한 암설사주(huge bars), 그리고 거대한 물 흐름에 의한 연흔 자국들을 포함한 확실한 증거들을 제시했다. 2, 3, 5, 6 


파디는 계속해서 이것이 일어난 방식은, 얼음 댐이 물을 막고 있다가 물이 충분히 깊어져 얼음 댐을 들어올리게 되자, 막혔던 물이 거의 상상할 수 없는 힘으로 분출하게 되었고, 호수는 단지 48시간 만에 완전히 비게 되었다고 제안하였다. 그는 코딜레란 빙하(Cordilleran Glacier)의 바깥쪽 부분이 클락 포크강(Clark Fork River)을 막았던 실제적 마개(plug)나 댐이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 얼음 댐에 의해 약 600m 깊이에 대략 3000 평방마일(7,700 km2)에 달하는 미졸라 호수(해발 1,245 m)가 형성되었다.얼음 댐이 파괴되었을 때, 미졸라 호수로부터 500 입방마일의 물이 시속 80~96 km의 속도(또는 시간당 9.46 입방 마일의 양)로 돌진했는데, 그것은 600m 높이의 물 벽이 태평양으로 들어가면서 줄곧 엄청난 힘으로 덮쳐버렸음을 의미한다.4 

 

오늘날 이 거대한 유량의 물은 아이다호의 북쪽에 있는 래쓰드럼(Rathdrum) 대초원을 가로질러 시속 75km로 이동하는 각각 최대 180m 깊이에 달하는 3개의 거대한 흐름으로 나뉘어 워싱턴 동부로 돌진했다고 여겨진다.5 이러한 규모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기 위해서, 이 물 흐름은 오늘날 전 세계에 있는 모든 강물들의 흐름보다 10배나 더 큰 규모였다. 이 범람이 스포케인 계곡(Spokane Valley)을 가로질러, 그리고 황토를 덮고 있는 용암대지를 가로질러 밖으로 격렬하게 분출되었을 때, 그것은 다수의 십자꼴이나 ‘구부러진(bradded)’ 수로 뿐만이 아니라, 폭 32km의 체니-팔루스 트랙(Cheney-Palouse Tract), 폭 22km의 크랩 크릭 수로(Crab Creak Channel), 그리고 80km 길이의 그랜드 쿨리(Grand Coulee)를 깎아냈다. 서쪽의 호스 헤븐 구릉(Horse Heaven Hills)과 남쪽으로 블루 산맥(Blue Mountains)에 의해 막혔을 때, 물은 콜롬비아 강이 태평양쪽인 서쪽으로 향하는 와룰라 갭(Walula Gap, 와룰라 협곡)까지 질주했다. 이 협곡은 너무나 좁아서 많은 양의 물이 충분히 빠른 속도로 흘러갈 수 없었기 때문에, 홍수는 아이다호의 루이스톤(Lewiston)를 지나 스네이크 강(Snake River) 상류까지 역행했다. 하지만, 결국 물은 태평양 쪽으로 빠졌고, 그 길을 따라 오리건의 윌리암에트 계곡(Willamette Valley)을 범람시켰다. 이 시간 동안 포틀랜드는 약 120m의 물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 5


물론, 엄청난 양의 범람수(flood waters)의 기원에 대한 파디의 증거는 브레츠가 필요로 했던 바로 그것이었다. 이 증거는 브레츠가 어디엔가 틀림없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했던 물에 의한 격변의 원인과 근원을 확신시키는 데 충분하였다. 그러한 격변의 결과를 뒷받침하는 모든 정보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준비되어 왔기 때문에, 나머지는 모두 다 맞아 떨어졌던 것이다. 그렇지만 흥미롭게도 파디 자신은 미졸라 호수와 워싱턴 주의 수로가 난 화산용암 지대의 명백한 연관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파디는 브레츠가 그 점을 말하도록 관대하게 남겨두었다고 몇몇 사람들은 생각했다. 2 


1952년에, 브레츠는 다시 화산용암 지대로 현장 조사를 하러가서, 상세한 지도, 항공사진, 그리고 퇴적학적 정보들을 포함하는 훨씬 더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돌아왔다. 그 후 1956년 논문에서, 브레츠는 격변적인 홍수에 대한 가장 확증적인 증거는 사주(bar) 표면 위에 있는 거대한 물의 흐름에 의한 수류 연흔(current ripple)의 존재로 드러난다고 결론을 내렸다. 이 연흔(물결무늬)은 최대 30미터 높이의 사주가 거대한 물의 흐름에 의해 완전히 침수되었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거대한 수류 연흔의 수많은 예들은 플린트가 전형적인 하안 단구(river terrace)로 해석했던 같은 사주에서도 발견되었다. 그것이 폭로됨에 따라, 미졸라 호수의 거대한 수류 연흔에 대한 파디의 인정에 뒤이어, 15개 이상의 화산용암 지대의 연흔 현장에 대한 브레츠의 증거자료들과, 연흔이 나있는 100개 이상의 지역들에 대한 베이커(Baker)와 눔메달(Nummedal)의 확인이 있었다. 그러한 모습들은 정말로 엄청난 격변적 속도로 흐르는 매우 깊은 물에 의해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것들이었다. 이것은 지질학자들이 브레츠 주장의 타당성을 인정하고 고통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던 괴로운 시작이었다.2


브레츠의 뛰어난 연구는 오랜 세월에 걸쳐 힘들게 이뤄졌으나, 최종적으로 수용될 때까지 그는 수십 년 동안 커다란 반대와 싸워야만 했었다. 마침내 1979년, 지질학계에서는 브레츠에게 권위있는 ‘영예의 메달(Penrose Medal)’ (지질학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영예)을 시상함으로써 공개적으로 브레츠의 연구를 인정하였다.3 브레츠가 90세 후반이 되었을 때, 50년 이상 주장해왔던 워싱턴주 동부의 수로가 난 화산용암 지대(Channeled Scablands)의 형성에 대한 그의 ‘제정신이 아닌(insane)’ 격변적 모델에 대한 전반적인 수용이 마침내 실현되었던 것이다. 

*하렌 브레츠의 묘비 :  ”J HARLEN BRETZ, 격변적인 홍수가 자연의 펼쳐진 드라마에 때때로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었음을 우리에게 끈기있게 가르쳤던 사람”

 

1. Allen, J. E., Burns, M., Sargent, S. C., Cataclysms on The Columbia, Timber Press, (1986), Samuel Strok book review for Geology 103 at Bellevue Community College - Winter, 2003

2. Baker, V., Joseph Thomas Pardee and the Spokane Flood Controversy, GSA Today, 5:(9), September 1995

https://www.geosociety.org/gsatoday/archive/5/9/pdf/i1052-5173-5-9-sci.pdf

3. Helfferich, C., Boulders, Braids, and J Harlen Bretz, Alaska Science Forum, Article #1160, November 17, 1993

https://www.gi.alaska.edu/alaska-science-forum/boulders-braids-and-j-harlan-bretz

6. Newman, J., Missoula Floods, Oregon Field Guide, Episode 1001, 2002-2004

https://www.worldcat.org/ko/title/oregon-field-guide-1001-missoula-flood/oclc/639350936


* 참조 : Field studies in the Columbia River basalt, Northwest USA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557

Can welded tuffs form underwater?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6_2/j16_2_114-117.pdf

Continental Flood basalts indicate a pre-Mesozoic Flood/post-Flood boundary

https://dl0.creation.com/articles/p061/c06117/j10_1_114-127.pdf


번역 - 창조과학회 대구지부

주소 - https://www.detectingdesign.com/harlenbretz.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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