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에 대해 배워야할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 중 일부는 우리 자신의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좋은 고세균
과학자들은 고세균(Archaea, 고균)이라는 미생물을 가장 원시적 생명체로, 온천과 같은 극한적 환경에 서식하는 생물(extremophiles)로 여기고 있었다. 이제 새롭게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우리 몸 속에도 수많은 고세균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여기에 왔으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Science(2017. 11. 24) 지는 사람 생태계에 살고 있는 이 개척자들로 인해 피곤해하고 있었다. "신체의 고세균에 대한 조사는 다른 미생물 손님을 밝혀냈다"고 엘리자베스 펜니시(Elizabeth Pennisi)는 말했다.
아마도 가장 고대의 생명체로 여겨지고 있던 고세균을 생각하면, 온천, 알칼리성 호수, 폐수 처리장과 같은 극한의 장소에서 살아갈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이 미생물은 때때로 인간의 코, 폐, 내장, 피부에 많은 수로 있다고, 지난 주에 미생물학자들은 보고했다.
mBio 지에 게재된 그들의 조사는, 자연적으로 인체에 서식하면서 건강과 질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미생물들을 찾기 위한, 많은 논의를 거친 미생물군유전체(microbiome)를 구성하는 박테리아 이외의 것들을 찾기 위한 조사의 일부였다 (see p. 982). 프랑스 클레르몽페랑에 있는 클레르몽 오베르뉴(Clermont Auvergne) 대학의 분자생물학자인 장 프랑수아 브루에르(Jean-François Brugère)는 "사람에서 이처럼 풍부한 고대의 고세균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사람의 미생물은 박테리아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연구자는 그녀가 본 모든 곳에서, 심지어 병원과 우주선의 "클린" 방에서도, 놀랄 만큼 풍부한 고세균들을 발견했다. 그녀는 인체를 살펴보기 시작했고, 사람의 피부, 폐, 코, 내장에서 고세균들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고세균들이 우리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들의 "조직 특이성"(선호하는 위치)은 건강한 상호작용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한 연구원은 "이러한 다양성은 우리 몸 내부와 표면에 있었으며,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라며 경탄했다.
좋은 바이러스
고세균 보다 작을 지라도,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s)라 불리는 유익한 바이러스가 인체의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박테리오파지는 박테리아를 먹는다. 즉각적으로, 그것은 좋은 소리처럼 들린다. Science(2017. 11. 24) 지에서 죠지아(Giorgia Guglielmi)는 "손님인 박테리오파지는 사람의 건강을 지켜주나요?"라고 묻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환영받는 손님이다. 그들의 발견에 대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
박테리오파지, 또는 단순히 파지로 알려진 이 바이러스는 제1차 세계대전 병사들의 배설물에서, 박테리아를 죽이고 있는 것이 발견된 지 1세기 만에, 인체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지 몰라서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다. 파지는 바다에서부터 토양까지 모든 곳에서 발견되어왔다. 이제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매일 장(intestines)을 통해 최대 300억 마리의 파지를 흡수하고 있다.
건강한 사람의 몸에 고세균과 파지가 넘쳐난다는 사실은 그들이 어떻게든 우리를 돕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일부 보건 단체들은 더 많은 파지를 섭취하면, 기생충을 통제하거나, 다른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몇 가지 흥미진진한 성공 사례가 있지만, 파지 치료(phage therapy)가 신뢰할 수 있는 치료법이 되기에는 아직 길이 멀다"고 죠지아는 주의를 주고 있었다. 신체의 "파지옴(phageome)"을 분류하는 작업도 시작되었다. 파지는 점막에서 가장 풍부하게 나타나는데, 그곳은 환경에 노출되어 유해한 박테리아가 축적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새로운 연구 결과는 파지들이 우리의 조직으로 퍼져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몇몇 연구는 우리의 작은 손님들이 유익한 기능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
만약 파지가 우리의 조직 안으로 들어와 있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그들은 거기에서 무엇을 하는가? 단지 일부 연구만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2004년 다브로스카(Dąbrowska)의 연구팀은 특정 종류의 파지가 암세포 막에 결합하여, 생쥐에서 종양의 성장과 확산을 억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몇 년 후 다브로스카의 지도교수이며 파지 전문가인 Andrzej Górski는 파지가 마우스 면역계 내로 주입됐을 때, T 세포 증식과 항체 생성을 촉진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생쥐에서 파지는 이식된 장기 조직을 면역계가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다.
파지는 또한 염증을 감소시키고, 면역계를 조절할 수 있다. "파지옴"이 우리 몸에서 하는 일을 이해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초기 징후는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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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생리학 분야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이 기사들 중 어떤 것도 진화를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고세균 생물학이나, 파지 생물학의 어떤 것도 진화론과 상관없는 것으로 보인다. 폴 넬슨(Paul Nelson)의 말처럼, 우리는 지적설계에 의한 접근을 제안한다. "무언가가 작동되고 있다면, 그것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윈의 안경을 벗고, 이 새로운 연구 분야를 살펴보라. 한 요소도 제거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y complex,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에 대한 추가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 살균 바이러스 ‘파지’ 비밀 밝혀 : 매일 300억 마리 유입, 병원균의 세포막 공격 방어 (2017. 11. 22. ScienceTimes)
과학, 특히 자연과학의 연구결과들과 주장들은 성경의 해석에 영향을 미쳐왔고, 성경의 해석에 의해 다양한 신학들이 형성되어왔다.
유신진화창조론적 관점에서 창조와 관련된 성경본문을 해석하게 되면 다음과 같이 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믿는다.(성경)
생물들은 진화해왔다고 믿는다.(진화론 과학)
하나님께서 생물들이 진화해 가도록 창조하셨다고 믿게 된다.(유신진화론)
생물 진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지구는 오래 되었고, 따라서 우주도 오래 되었다.
창세기 1장의 기록에 따르면, 땅에 기는 것보다 조류가 먼저 출현하고, 땅에 기는 것과 짐승들과 사람이 같은 날 출현한다. 최초의 사람은 유인원을 거치지 않고 흙으로 직접 창조되었다. 최초의 여성은 유인원을 거치지 않고 아담 갈비뼈로 직접 창조되었다.
진화론에 따르면, 하루 사이에 생물들이 이렇게 갑자기 진화할 수 없으며, 아담과 하와는 유인원에서 진화한 존재이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의 하루는 실제 24시간일 수 없으며, 생물출현순서도, 지구와 우주천체들의 출현순서도 맞지 않다. 그러므로 성경 기록을 골격가설로 해석하게 된다.
이 시대의 과학과 성경 해석 간의 갈등의 주제는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각각을 지지하는 것으로 주장하는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들과 성경의 본문 해석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학적 이해가 신학자들의 성경 해석에 실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예를 들어본다.
에드워드 영(E. J. Young)은 “땅의 연대는 얼마나 될까? 인간의 연대는 얼마나 될까? 오늘날 거의 보편적으로 가르쳐지는 바에 의하면 인간의 연대는 수백만 년이고 땅의 연대도 수백만 년이다. 성경은 솔직히 인간의 태고성의 주제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연대를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E. J. Young, 「창세기 1·2·3장 강의」, 서세일 역(서울: 한국로고스연구원, 1998), 48.).
고든 웬함(Gordon J. Wenham )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날이니라”에서 “날”(םוי)은 24시간의 기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었다는 언급이 있고,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열거되고 있으며,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내용은 한 주간 동안의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기록한 것이다. 다른 데서 “날”은 “때”를 나타내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창조 톨레도트의 “~째 날이니라”에서 “날”은 문맥상으로 하루를 의미한다. 여기서 고든 웬함은 창세기 1장의 “날”이나 시편 90편 4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하루 같다”는 등의 본문들을 들어서, 과학적 이론과 성경적 계시를 관련시키려고 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창세기 기록자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Gordon J. Wenham, Genesis 1-15 vol. 1, Word Biblical Commentary (Waco, TX: Word Books, 1987), 16.).
베스트만은 이것을 두고 창세기 기록자가 창조활동의 시간을 날의 개념에 입각하여 구분 지으려고 한 것이라고 여기며, 고든 웬함은 여기에 동의한다(Gordon J. Wenham, Genesis 1-15 vol. 1, Word Biblical Commentary (Waco, TX: Word Books, 1987), 19.). 창세기 기록자는 하루가 빛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둠으로 끝나든 어둠으로 시작하여 빛으로 이어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날”의 해석에는 문자적인 24시간의 하루로 보는 견해(L. Berkhof,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 Wm. B. Eerdman Pub. Co., 1958), 155.), 긴 시대로 보는 견해(F. Davidson, The New Bible Commentary Vol. I (London : The Inter Varsity Fellowship, 1954), 77.), 창조과정의 지질학적 시대로 보는 견해(2세기경의 요세푸스, 이레니우스, 3세기경의 오리겐 등도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최종진, 「구약성서개론」(서울: 도서출판 소망사, 1998), 119.),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긴 시간 간격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J. P. Free, Archaeology and Bible History (Wheaton : Scripture Press, 1962), 21을 참조할 것. 그는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를 루시퍼의 타락의 결과로 본다. Herman Bavink는 이 혼돈의 기간이 얼마든지 오랜 시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Herman Bavink, Our Reasonable Faith (Grand Papids : Wm. B. Eerdman Pub. Co., 1956), 172.), 문학적 표현기법으로 보는 견해(Young, 「창세기 1·2·3장 강의」, 71, 최종진, 「구약성서개론」, 120.), 하루를 환상(vision)으로 보는 견해(J. D. Douglas는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여섯 가지 환상들로 하나님의 창조활동을 보여주신 것을 하루하루로 기록한 것이라고 제안한다. Douglas, New Bible Dictionary I (Grand Rapids : Eerdmans, 1965), 270-72.)
등이 있다.
특히 지구와 우주의 시간의 문제에 대하여 신학자들의 성경 해석은 다음과 같이 아주 다양하다.
결국 성경해석의 문제로 귀결되며,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에 대하여 성경해석을 왜 이렇게 하는 것인지 또는 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세계는 무에서 말씀으로 창조되었다.
창세기 1장의 하루의 길이.
므두셀라는 실제로 969년을 사셨는가?
창세기 5, 11장과 마태복음의 족보 생략 여부.
다음의 내용들은 2015년 뉴스앤조이에 기고했던 원고의 내용을 요약하였음을 밝힌다.
창조과학회는 공식적으로 우주와 지구의 연대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긴 연대가 아니라 매우 짧은 연대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짧은 연대가 과학적으로 몇 년인지는 현재의 과학수준에서는 알 수 없다. 빅뱅이 아닌,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에 의해 우주가 탄생한 후 우주의 연대가 얼마나 지났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한국창조과학회회는 우주의 연대 자체에 대하여 과학적으로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지만, 빅뱅에 의한 우주탄생은 과학적 허구가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매우 젊다는 주장에 대하여, 100억 광년 크기의 우주를 보고 있는 지금 그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빅뱅에 의해 100억 광년 크기의 우주가 되었다는 주장은 하나의 이론일 뿐이며,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여러 가정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관찰되는 우주는 빅뱅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높은 질서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아무리 먼 곳에 있는 은하도 이미 성숙한 완벽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우주의 빅뱅이론도 계속 변해서 최근에는 가속 팽창하는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모르는 물질(dark matter)과 모르는 에너지(dark energy)로 96%를 설명해야 한다.
우주에 대한 연구가 증대되면서 우주는 기존의 우주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구조물 등이 발견되고 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관찰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만, 우주가 팽창한다고 해서 과거 한 번의 대폭발로 시간, 공간, 물질, 생명, 질서가 나왔다는 주장은 참으로 수긍이 가지 않는 단지 가설에 불가하다. 우주는 신비하다. 우주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를 우리에게 아직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 신비 앞에서 다만 하나님의 창조의 놀라우신 능력과 지혜를 만나게 될 뿐이다.
사실, 젊은 연대를 주장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과학적인 연구결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다. 그리고 과학적인 발견들 가운데서도 젊은 연대를 지지하는 많은 연구결과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연대를 지지하는 과학적인 연구결과들 역시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 가정(assumptions)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지구와 우주의 기원연대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들은 실제 나이를 알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 세계의 시작상태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과학적 연구는 이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는 지금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동일과정설에 입각한 가정들을 설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연과학적 연구결과들은 가정 하에 겉보기 나이(apparent age)를 측정해낼 수 있는데 이는 사용하는 시계와 가정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여 수십억 년~수천 년까지 매우 다양한 결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이 세계의 시작은 자연과학연구가 설정하는 가정들과는 매우 다르다. 창1:14-19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광명체(마오르, lights)들을 ‘하늘’에 두셨다고 하시지 않고 ‘하늘의 궁창’에 두셨다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늘’보다 더 구체적인 공간적 위치를 알려주시려는 의도를 가지고 계심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늘의 궁창’은 땅과 인접하고 있는 공간으로서 공기가 있어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대기권에 해당하는 특별한 공간이며(창1:7,8,), 이는 하늘에 속해 있으면서 땅과 인접하여 있기 때문에 ‘땅위 하늘의 궁창’(창1:20)이라고 부르는 공간이다.[1]
창 1:14-19에서 ‘광명체들’을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으며,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를 의미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창조된 천체의 빛들이 모두 하늘의 궁창에 위치하여, 창조된 넷째 날 그 즉시로 그 빛들은 땅을 비추었다는 것이다.
이는 창세기의 시간해석 차원에서 보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별빛이라 하더라도 그 빛은 창조된 그 날 즉시 땅을 비추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만약 실제로 수억 광년 멀리 떨어져서 창조된 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별로부터 나오는 빛이 지구에 도달하기 위하여 수억 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계, 우주의 천체들이 존재하기 시작한 처음부터 그 빛은 지구의 땅을 비추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수억 광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별빛이 관찰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수억 년 전부터 그 별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아담에게 태아기, 유아기, 소년기가 없이 청년 또는 성년으로 시작되었던 것처럼 태양계와 우주의 모든 천체들도 성숙하고 완전한 모습으로 갑자기 생겨나서 완벽하게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2] 세계의 시작은 과학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있으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는 것이 창세기 1장의 내용이다. 이것이 성경적인 창조신학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초과학적으로 시작된 세계의 기원에 대한 연대는 과학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측정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3]
또한 연대측정을 위하여 다양한 시계(방사성동위원소,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등)를 사용하는데, 시간측정을 위해서는 이 시계들이 일정한 속도로 가야한다. 그런데 이 시계들이 일정하게 가기 위해서는 대기 중의 방사성탄소의 비율 등 대기의 조성 비율이나 온도, 지구자기장의 세기 등의 변인들이 안정된 상태로 지속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잘 알 수 없으며, 오히려 지층과 화석 그리고 지구자기장의 세기에 대한 관찰들에 의하면 과거 지구의 환경조건들이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는 수많은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자연과학이라는 도구는 지구와 우주의 실제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없으며, 다만 일정한 가정 하에 값을 구하는 것이며, 그것이 과학적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실제 세계(real world)는 그러한 가정들과는 달리 선악과사건, 노아홍수, 바벨탑사건을 거치면서 환경은 범지구적인 범위를 넘어 우주적으로 격변이 있어왔음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지구와 우주의 실제나이에 대하여는 하나님만 알고 계시며 자연과학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으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성경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동일한 성경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다양한 주석, 해석, 주장들을 할 수 있으며, 특히 성경에 기록된 시간에 대하여는 다양한 주석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성경연대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이해하려고 하는 것일까? 성경은 기원의 연대를 충분히 구체적으로 알려주려고 의도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성경기록에 의한 기원의 연대는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오직 성경을 통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II. 성경은 기원의 연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려고 의도하고 있을까?
2.1.성경기록상의 시간의 연속성
창세기 시작 절(창 1:1)에도, 창세기의 마지막 절(창 50:26)에도 공히 시간이 기록되어있다. 특히, 창세기 1장은 시간기록으로 편만해 있다. 첫 단어는 “태초에”(베레쉬트)라는 ‘시간’을 가리키는 단어다. 이 단어는 동시에 성경의 첫 단어이기도 하며, 창세기의 히브리어 제목이기도 하다.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1장에 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태초’, ‘낮’, ‘밤’, ‘저녁’, ‘아침’, ‘첫째 날’(또는 하루), ‘둘째 날’, ‘셋째 날’, ‘사계절’, ‘1년’,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이라는 ‘시간 단위’들로 구성된 자세한 시간의 얼개 위에 순서대로 기록한다.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기록자는 극소수의 특정한 사람들과 관련하여서만 시간을 명시한다. 예를 들면, 아담이 130세에 셋을 낳았다고 기록한다(창 5:3). 하지만 셋을 낳은 후 800년 동안이나 자녀들을 낳았다고 기록하면서도 셋 이후에 태어난 수많은 자녀들에 대하여는 단 한 사람도 이름이나 시간을 기록하지 않는다(창 5:4). 셋도 105세에 에노스를 낳은 후에 807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다고 기록하지만 에노스 이외에는 이름이나 시간을 기록하지 않는다(창 5:6-8).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에는 한 세대에 한 사람씩을 선택하여 해당 아들의 이름과 그를 낳은 나이를 통해 시간들을 빠짐없이 연속적으로 기록함으로써 ‘태초’로부터(창 1:1) 요셉이 죽은 시간까지(창 50:26) 이어지도록 기록한다. 그렇다면 기록자는 시간 기록을 통하여 그 사건이 발생했던 시간을 후대의 독자들 즉 우리에게 알려주기를 의도했던 것일까? 웬함은 “그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역사적인 문제들에 빠지게 된다. 많은 고대인들은 태고에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장수했다고 생각했다. 창세기 5장은 그러한 개념들을 반영하며, 인류 역사가 아주 먼 과거 속으로 소급하고 있음을 반영한다.”라고 한다.[4]
영(E. J. Young)은 “땅의 연대는 얼마나 될까? 인간의 연대는 얼마나 될까? 오늘날 거의 보편적으로 가르쳐지는 바에 의하면 인간의 연대는 수백만 년이고 땅의 연대도 수백만 년이다. 성경은 솔직히 인간의 태고성의 주제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연대를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5]
그렇다면 창세기 기록자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일어났던 순서만을 알려주려고 의도했던 것일까? 하지만 성경은 단순히 순서만을 알려주는 것으로는 지나치게 자세하게 시간을 기록한다. 그렇다면 그 의도는 무엇일까? 누군가가 사건을 말할 때 시간을 말하는 것은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다. 만약 단지 족보만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만 있었다면 창세기 10장이나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과 같이 이름만을 기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 계보, 셈 계보에는 특별하게도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 아들을 낳은 나이를 통해 자세하고 정확한 시간을 기록하며, 이삭과 야곱의 출생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시간을 기록한다. 그리고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간 시간과 애굽에 체류한 시간, 그리고 애굽에서 나온 시간을 출애굽기를 거쳐 열왕기의 솔로몬왕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시간을 전한다. 이러한 실제로부터 성경은 창1:1의 ‘태초’로부터 끊임없이 연속적인 시간을 전하고자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게 된다.
2.2.연대에 관련된 기록들에 위치한 문학적 장치들
2.2.1. 창세기 1장 1절과 5절 사이의 시간
첫째, 본문의 내부적 관계를 살펴보면, 히브리성서 맛소라 텍스트 최종편집자가 보여주는 본문의 구조에서 분명하고 질서정연한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 히브리성서 맛소라 텍스트(BHS)에 따르면, “~째 날이니라” 뒤에는 항상 문단나누기 표기(페투하)가 배치되어 있다(창1:5,8,13,19,23,31). 그러므로 맛소라 텍스트의 최종편집자의 의도는 하루 단위로 문단을 나눈 것으로 보이고, 이는 곧 창세기 기자의 의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분명하고 통일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통일된 형식은 기록자의 의도적인 구성으로 보인다. 문단구분 표식 페투하의 배치에 의하면, 창세기 1장 1-5절이 하나의 문단을 이루는 구조로서 하루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창세기 1장 2절은 창세기 1장 1-5절이 이루고 있는 하나의 문단 내에 배치되어 있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고 맛소라 본문 창세기 최종편집자의 의도적인 구문론적 구상이라면, 그리고 그것은 최초 창세기 기록자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잘 전달하고 있다고 받아들인다면[6], 창세기 1장 2절은 창조 주간의 맨 첫날에 대한 서술의 일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7] 따라서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는 긴 시간 간격이 존재하지 않는다.[8] 창세기 1장 1절이 창조 주간의 처음 하루에 포함되는 활동이며 동시에 이는 태초에 있었던 창조 사역의 시작이므로 태초의 창조사역에 대한 선포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전체 서술에 있어서,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라는 서술이 의미하는 위치적인 기능과 범주는 창세기 1장 1절에 창조된 '천지' 가운데 '지'(그 땅)의 상태에 대한 설명으로서[9], 창세기 1장 1절에 언급한 그 땅에 대하여 묘사에 해당한다.[10] ‘그 땅’ 즉 첫 날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했던 것은[11] 이틀 후에 물 밖으로 나와야 할 땅이 아직도 물속에 있었기 때문에 '혼돈'했다고 묘사한 것이며, 앞으로 식물들과 생명체들로 가득 채워져야 할 땅이 아직은 아무 것도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공허'했다고 묘사한 것이다.[12]
둘째,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2-3장을 통하여 아담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며 그 이전에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기록한다. [13] 아울러 이 기록은 창세기 2장 17절과 로마서 5장 17절과 6장 23절을 상호 대조함으로써 죽음이 죄의 대가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즉 죽음과 고통은 선악과 사건 이후에 생겨난 ‘죄의 대가’이다.[14] 그런데 간격이론은 아담이 창조되기도 전에 이미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생물들의 죽음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셋째,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1장에 창조의 과정을 낮, 밤, 저녁, 아침, 날 등 시간과 함께 세세하게 기록하였고, 아담 계보와 셈 계보에서는 아들을 낳은 나이와 수명까지 시간에 대하여 면밀하게 기록하였다. 창세기 전반에 걸쳐 창세기 기록자는 이렇게 상세하게 시간을 기록한다는 사실을 깊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창세기 기록자가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의 심판과 재창조 사이의 장구한 시간을 감추어 놓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창세기 전체적으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시간의 상세도에 비추어 볼 때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2.2.2.창세기 1장의 하루
창세기 1장의 ‘엿새’는 은유적 의미의 시간인지, 아니면 문자적 의미의 24시간 하루의 연속으로서의 엿새를 의미하는 것인지와 관련하여 본문의 내부적 관계를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창세기 1장의 모든 “~째 날이니라” 앞에 배치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고”는 창세기 기록자가 창세기 1장의 하루가 24시간 하루임을 전달하기 위해 채택한 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둘째, 창세기 기록자는 ‘첫째 날’을 수식하면서 의미를 한정해 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의 바로 앞에 저녁과 아침을 설명하고 정의하는 낮과 밤의 정의(definition)를 배치하였다. 이로써 낮과 밤은 일몰과 일출에 의한 문자적 의미의 저녁과 아침임을 한정해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셋째,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1장 5절의 ‘첫째 날’에 대한 기록에 있어서 원어 단어를 서수 ‘첫째’(리숀)가 아닌 기수 ‘하나’(에하드) 즉 ‘하루’(one day)라고 기록함으로써 여기서 ‘하루’라는 시간단위가 창조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렇게 창조되고 정의된 하루가 이후부터 계속되고 있음을 보도한다. 그러므로 본문의 구조 속에 나타나 있는 기록자의 의도를 반영한 장치들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 창세기 1장 “~째 날”에 대한 문학적 장치들>
넷째, 창세기 1장 14-19절의 하나의 문단 내에는 낮, 밤, 저녁, 아침, 넷째 날, 계절, 날, 해, 넷째 날 등 여러 시간단위들을 공존하도록 배치함으로써 기록자는 ‘넷째 날’이 24시간 하루임을 분명히 한다.
다섯째, 창세기 기록자는 천체들이 창조된 바로 그 날부터 천체의 빛들은 지구의 이 땅을 비추면서 우주의 천체들과 지구의 공존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함으로써 수억 년 이상 멀리 떨어져 보이는 별빛 문제에 대하여 창조신학에 따른 시공간적 이해를 제공한다.
여섯째, 창세기 기록자는 태양이 만들어진 넷째 날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하루를 여전히 동일하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로 묘사함으로써 창세기 1장의 엿새가 모두 각각 동일한 24시간 하루임을 강조한다.
일곱째, 기록자는 히브리성서 맛소라 텍스트(BHS)의 문단 구분을 통해서도 창세기 1장의 엿새가 모두 각각 동일한 하루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여덟째, 하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출 20:8~11에서 7일째 안식일로 지켜야 하는 날이 ‘우리의 하루’ 이므로 동일 문단 내 서술된 6일 또한 ‘문자적 24시간이 하루인 6일’이다.[15] 만약 이스라엘사람들이 24시간 하루 동안으로 지킨 이 안식일이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안식일을 범한 데 대한 엄중한 벌을 내리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벌은 엄중해서 죽이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출 31:15). 그러므로 안식일인 일곱째 날은 24시간 하루임이 틀림없으며, 따라서 동일한 문장 내에 위치하고 있는 엿새 또한 24시간 하루의 연속된 엿새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아울러, 출애굽기 31장 15-17절에서도 동일하게 안식일 규례를 주시면서 31장 17절에서 그 이유를 말씀하시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안식일을 지켰으며 그것은 24시간 하루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엿새 동안이란 24시간 하루의 연속된 엿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16]
아홉째, 창세기 1장의 그 날들은 헤아려졌으며, 성경에서 이렇게 헤아려진 경우에는 24시간 하루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는 150회에 걸쳐 이러한 경우가 기록되어 있다.[17]
열째, 만일 창세기 1장의 하루가 어떤 다른 긴 시간을 의미한다면 그것을 의미하는 분명한 단어들로 다른 문장을 만들지 못했을 리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여섯 단계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엿새라고 말씀하셨다. 창세기 기록자가 창조주간의 엿새를 긴 시간에 걸친 여섯 단계로 이해하고서도 엿새라고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세오경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그는 창세기 1장에서 뿐만 아니라 출애굽기 20장 11절과 31장 17절에서도 엿새 동안 이라고 기록하였다. 모세는 창세기 1장에서만 하루라는 단어를 다른 곳과 달리 어떤 긴 기간의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의 “~째 날”은 문자적인 의미의 24시간 하루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2.2.3.창세기 5장과 11장의 긴 수명들
창세기 5장의 아담계보 기록 구조는 “A가 x세에 B를 낳았고, A가 B를 낳은 후 y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가 x+y세를 살고 죽었다.”라는 일정한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다음과 같은 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에노스는 게난을 90세에 낳았다(창 5:9). 게난을 낳은 나이를 10의 1로 줄이면 9세가 되고, 1개월을 1살로 계산하면 만 7.5세에 낳은 것이 된다. 게난은 마할랄렐을 70세에 낳았다(창 5:12). 이것은 7세가 되어서도 안 되고 5.8세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마할랄렐은 65세에 야렛을 낳았다(창 5:15). 짧은 한 문단 내에 65세에 자식을 낳은 사실과 895세를 살았다는 사실을 연결시켜 서술하고 있는 것은 창세기 기록자의 전략이다. 즉 95세가 믿기지 않아서 10분의 1로 줄이거나, 1개월을 한 살로 해석을 시도해보면 65세에 자식을 낳은 것과 조화될 수 없어 다른 어떤 해석도 불가하도록 장치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18]
야렛은 에녹을 162세에 낳았다(창 5:18). 에녹은 므두셀라를 65세에 낳았다(창 5:21). 므두셀라는 라멕을 187세에 낳았다(창 5:25). 라멕은 노아를 182세에 낳았다(창 5:28). 그리고 노아는 500세가 되어서야 야벳과 셈과 함을 낳았다(창 5:32). 아들을 낳은 나이를 모두 나열해 놓아도 아무런 수열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야 말로 들쭉날쭉 할 뿐이다. 그것은 실제로 아들을 낳은 나이들이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구조는 나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도록 배치한 엄격한 장치로서 기능한다. 창세기 기록자가 아담 계보의 모든 족보를 이러한 구조로 족보를 기록한 것은 의도적인 문학적 장치로서, 시간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의도에 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담 계보의 시간, 나이와 수명은 구문론적 관점에서 본문의 내부적인 상관관계를 고려할 때 문자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게 된다.
아울러, 노아홍수 사건에 대한 기록은 사건 발생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연월일을 세심하게 기록하였다. 그것은 노아 600세 되는 해 2월 17일이었다고 기록했다(창7:11). 방주에 타기 시작(2월 10일)한지 일주일이 지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며(2월 17일), 40일 동안 줄곧 비가 내렸고(3월 27일까지), 150일 동안 물이 땅에 넘쳤으며, 150일 후에 물이 줄어들었고(2월 17일에 시작하여 5개월 동안), 7월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10월 1일에 산봉우리가 보였고, 40일 후에(11월 11일) 까마귀를 내보냈고 비둘기도 내보냈으나 있을 곳이 없어서 다시 돌아왔으며, 7일 후에(11월 18일) 비둘기를 보냈더니 감람나무 잎을 물고 왔고, 또 7일 후에(11월 25일) 비둘기를 보냈더니 돌아오지 않았고, 노아 601세 1월 1일에 땅에 물이 걷힌 것을 확인하였고, 2월 27일에 땅이 말랐다. 이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에서 내렸다.
기록자는 이 사건의 시간에 대하여 매우 높은 관심을 가지고 정확히 전달하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만약 실제로 그 시간들이 아니라고 가정해본다면 시간들을 기록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기록해서도 안 된다. 만약 정확한 시간이 아니라면 시간적인 모호성을 그대로 남겨둔 채로 얼마든지 충분히 사건을 보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자세하게 시간을 기록한 데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보는 타당하다. 그것은 시간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기록된 그대로의 사실성 즉 실제로 그대로 일어났다는 문자적 해석을 뒷받침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자세한 노아 계보의 이 숫자들은 노아가 600세 되던 해라는 시간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나이는 아담 계보에서 노아가 500세에 아들을 낳았다는 기록과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노아 계보의 자세한 시간기록이 보도의 사실성을 강변하고 있는 것은 아담 계보의 나이 역시 문자적으로 해석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셈 계보에서도 본문의 구성을 살펴보면, 자식을 낳은 나이와 함께 이후 몇 년을 더 살면서 자녀들을 낳았는지를 일정한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그것은 수명이 문자적인 의미로만 해석되도록 지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즉 “에벨은 34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430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고”(창 11:16-17)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464세를 산 수명을 다른 의미로 줄여서 해석해보려 한다면 34세에 아들을 낳을 나이를 함께 줄여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도록 방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문자적인 의미의 나이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형식을 문학적 장치로 볼 때, 이는 시간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기록자의 의도에 의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노아홍수를 기점으로 하여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사람의 수명이 갑자기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900대의 나이로부터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대 아담부터 10대 노아까지는 900수를 누렸고, 노아(10대)의 아들 셈은 600세를 살았다(창 5:3-31, 11:10-11). 이후 438, 433, 464세를 살았으며 바벨탑사건이 있었던 때인 벨렉(15대)은 239세, 이후 239, 230, 148세, 19대 데라는 205세를 살았다(창 11:12-32). 이렇게 나이의 점진적인 축소가 이어지면서 기록되어 있는 구조는 아담 계보와 셈 계보에 기록된 수명을 어떤 비율로도 축소할 수 없으며 다만 문자적인 해석만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19]
III. 결론
과학사와 신학 해석사라는 제목으로 출발하여, 방대한 주제 가운데 시간의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았으며, 이는 결국 성경 해석의 문제이므로 연대문제에 대한 성경 본문 해석을 제시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해석의 성경적 타당성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으며, 그 결과, 성경은 많은 문학적 장치들을 사용하여 자세하고 끊임없는 시간을 기록함으로써 창1:1의 ‘태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끝으로 창조과학회 회원들 가운데도 연대문제에 대하여 이와는 다른 다양한 의견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임을 밝힌다.
Footnotes
[1]이는 노아홍수를 겪으면서 달라졌기 때문에, 지금의 지구환경과는 다르다. 따라서 궁창을 지금의 대기권이라고 할 수는 없다.
[2]Wenham, Genesis 1-15, 6. 창세기 1장에는 승인 관용구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7회(4, 10, 12, 18, 21, 25, 31절) 사용되었다. 이는 모든 것이 완벽한 상태로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3]Eugine H. Merril, 「구약의 역사적 개요」, 김인환 역(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1997), 56을 참조할 것.
[4]Gordon J. Wenham, Genesis 1-15 vol. 1, Word Biblical Commentary (Waco, TX: Word Books, 1987), 134.
[5]E. J. Young, 「창세기 1·2·3장 강의」, 서세일 역(서울: 한국로고스연구원, 1998), 48. 영은 창세기 1장의 엿새는 사건이 발생한 연대기적 순서를 의미하고 있지만 그 시간의 길이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6]창세기의 내용이 창세기라는 이름으로 최종적인 편집을 거치기 전에 기록한 최초의 창세기 기록자와 지금 우리에게 전달된 창세기의 최종편집자는 다르겠지만, 그 의도와 의미의 전달에 왜곡이 없으며, 성경 전체를 공시적 관점에서 상호보완적으로 바라보고 최종편집자를 창세기 기록자와 동일시한다.
[14]창세기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로마서 5장 17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15]Hasel, "The ‘Days’ of Creation in Genesis 1: Literal ‘Days’ or Figurative ‘Periods/Epochs’ of Time", 5-38.
[16]Schmidt, Die Schouml der Priesterschrift. 2d Ed.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67), 5, 68. “Considerations Based on Pentateuchal Sabbath Passages." Hasel, "The ‘Days’ of Creation in Genesis 1: Literal ‘Days’ or Figurative ‘Periods/Epochs’ of Time", 5-38.
[17]Hasel, "The ‘Days’ of Creation in Genesis 1: Literal ‘Days’ or Figurative ‘Periods/Epochs’ of Time", 5-38. Geisler, 「성경의 난해한 문제들」, 42.
[18]Geisler, 「성경의 난해한 문제들」, 51-52.
[19]Ibid. 아담 계보와 셈 계보가 이어지고 있는데, 그 수명은 점진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기록해놓았다. 따라서 아담의 나이를 93세로 10분의 1로 하게 되면 아브라함의 할아버지 나홀의 수명은 15세(14.8세)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줄여서 해석할 수 없게 된다.
창조과학 단체(CMI 등)들은 창조론에 대한 입장을 비판하는 일부 기독교인들로부터 간혹 질문을 받는다. 심지어 어떤 기독교인들은 진화론(그리고 수십억 년의 지구 연대)을 수용하지 않고, 창조론을 믿는 것이 성경적 기독교 신앙에 유해한 것이라고 편지를 보내오고 있다. 한 독자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
당신들이 행하고 있는 기독교의 신뢰성에 대한 손상은 막대하다. 당신들은 지적인 사람들에게 찌라시 수준의 저급한 과학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고 있다. 당신들은 현대 생물학의 근간이 되고 있는 진화론과 현대 지질학에서 잘 확립된 사실들을 믿지 않고, 창세기 1장과 로마서 8:19-22절에 대해서 불합리하고 부정확한 해석을 하고 있다. 올바른 성경적 해석은 애매하거나 모호한 단어와 구절들을 명확한 단어와 구절들이 제공하는 빛을 사용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 ‘날(day)’이라는 단어는 명확하게 "시대(era)"를 의미한다. 창세기 1장의 같은 단어에 대해서 다른 의미를 발명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성경 구절의 문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올바른 해석에 도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사람들에 관하여 사람에게 말한 것이다. 어떤 종류의 하나님이 사람의 죄로 인해서 강아지와 화분에 있는 식물에 벌을 내리시는가? 당신들이 말하고 있는 파괴하고 심판하시는 기독교의 신을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경배하겠는가? 당신의 저지르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엄청난 해악을 하나님이 용서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
CMI의 리타 코스너(Lita Cosner)가 대답했다 :
나는 조금 혼란스럽다. 당신은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에 손상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화가 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크리스천은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지를 묻고 싶다.
우리는 사람들의 여러 이론들보다, 성경이 더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어떤 주장이 잘 확립된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다를 때에는, 크리스천이라면 성경의 말씀을 따르기로 결정하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당신이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크리스천은 무엇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하는가? 성경인가? 사람들의 이론인가?
창세기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소설이 아니라 성경의 기록에 기초한 것이다. 예수님의 시기부터 크리스천들은 성경 창세기를 기록된 그대로 해석해왔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신약성경의 저자들도 창세기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하셨기 때문이다. (The use of Genesis in the New Testament을 보라). 수십억 년의 오래된 지구 연대는 동일과정설적 지질학(uniformitarian geology)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장구한 지구 연대를 가리키는 구절은 성경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을 세속적 지질학에 꿰어 맞추기 위한 타협적인 시도들이 생겨났다. (Six Days? Really?을 보라).
창세기 2:4절에 나오는 ‘날(day)’이라는 히브리 단어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서 사용된 날이라는 단어는 서수들로 수식되어 있고, "저녁과 아침"이라는 단어와 같이 쓰여 있기 때문에, 정상적 길이의 하루라는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출애굽기 20:11절의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라는 말씀은 무엇이 되겠는가?
하나님은 사람의 죄 때문에 강아지를 벌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동물들도 모든 피조물과 같이 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성경적 창조론자만이 동물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에 대한 논리적인 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God create over billions of years?을 보라).
성경에 기록된 창조를 믿는 것이 사람들의 믿음을 손상시키는 일이 아니다. 크리스천들은 성경의 기록이 첫 구절부터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들의 믿음에 대한 강한 용기와 담력을 얻는 것이다. 진화론은 수많은 반대 증거들로 인해 붕괴되어 가고 있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적 믿음 체계이다. 나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진화론과 동일과정설적 지질학(장구한 지구 연대)에 타협해버린 믿음에 대해서, 그리고 크리스천이라면 믿음의 기초를 어디에 두고 있어야하는 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수억 수천만 년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질환과 같다. 그리고 생물학적 진화론은 하나의 증상과 같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질환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다루려하고 있다.
필자가 35년의 사역을 해오면서 내린 몇 가지 결론이 있다.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생물학적 진화는 거부하고 있지만, 지구의 나이에 대해서는 진정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다윈의 진화론을 거부함으로써, 성경의 권위에 관한 타협의 문을 닫았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십억 년의 지구 연대를 허락함으로써, 이들 기독교 지도자들은 "타협의 문"을 계속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그 문이 좀 더 크게 열리도록 밀어낼 것이다. 이러한 타협은 교회에서 성경의 권위에(그리고 문화 전반에 걸쳐)대한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이다. 이러한 손상은 교회 내로 도덕적 상대주의를 허락하여 교회를 황폐화시킬 것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진화론을 거부하고 창조론을 주장해서라기 보다, 젊은 지구의 나이를 주장함으로써 더 자주 공격받고 비난당한다. 예를 들어, 2010년 한 언론 매체는 “AiG를 비롯한 창조과학 단체들은 성경을 믿는 많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지구의 나이를 단지 6,000년 정도로 믿고 있다”라고 보도하고 있었다.[1]
2010년에 Vanity Fair magazine의 한 글은 창조박물관에 대해 비난하며, “과학은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임을 증명해왔다. 창조과학자들은 목청을 높여 지구의 나이는 대략 6000년 정도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이것은 컴퓨터와 1천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에 맞서서 체스 게임을 두는 것과 같다.”[2]
ABC TV의 굿모닝 아메리카는 창조박물관 개관(2007년 5월) 때에 이렇데 보도했다 : “거의 모든 자연사 박물관들은 공룡들은 인간이 출현하기 수천만 년 전에 멸종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창조박물관은 하나님이 공룡을 창조하셨고, 인간과 함께 동시대를 살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연대 문제는 세속 과학에서 왜 그렇게도 중요한 문제일까? 왜냐하면, 수억 수천만 년의 시간이 없다면, 생물학적 진화론을 제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구한 시간은 하나님 없이 생물체를 설명하려는 그들의 시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들이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
1. 성경은 수억 년 또는 수백만 년에 대한 어떠한 힌트도 주지 않는다. 당신이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읽는다면, 성경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6일 동안에 창조하셨음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 창세기에 기록된 족장들의 연대를 계산해보면, 태초 이후로 역사는 단지 대략 6천년 정도 지났음이 명백하다.
2. 사람들이 고안해낸 모든 연대측정 방법들은 오류 가능성이 있다. 그것들은 잘못된 가정들에 기초하고 있다. 진정한 신뢰할 수 있는 연대측정 방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두신 역사적 기록인 성경이다.
3. 장구한 연대와 타협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수억 수천만 년의 시간을 도입시킬 때에, 사망, 질병, 가시, 고통, 질병, 육식...등은 아담의 범죄 이전부터 있었으며 이러한 악한 것들이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궁극적으로 지구와 우주의 나이 문제는 오류에 빠지기 쉬운 죄 많은 사람의 생각이 권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오류에 빠지기 쉬운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성경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판단해야 하는가?
많은 목회자들과 기독교대학과 신학대학의 교수들은 세속적 과학에 의해서 오래된 지구의 나이를 받아들이도록 협박당하고 있다. 만약 수십억 년의 지구 나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비지성적이고 비과학적인 사람들로 비난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개 학문적 자존심의 문제이다.
세속적 과학이 이러한 협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수십억 년의 지구 나이는 하나님 없이 우주와 생물체들을 설명하는 세속적 과학자들이 믿고 있는 진화론이라는 종교의 기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은 진화론을 지지하기 위해서 수십억 년의 장구한 연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타협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생물학적 진화론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질학적 진화론 및 천문학적 진화론(수십억 년의 연대)도 거부해야할 필요가 있다. 교회와 크리스천 문화를 손상시키고 있는 이 타협의 문을 닫아버릴 많은 크리스천들이 필요하다. 성경의 권위가 도전을 받으면서, 서구의 성경적 기독교가 붕괴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수억 수천만 년이라는 개념은 교회에 침입한 하나의 질병과 같다. 생물학적 진화론은 단지 하나의 증상에 불과하다.
Footnotes
1. “Holy row creates headache for modern day Noah’s ark,” Laurie Goodstein, The Age, Dec. 7, 2010. Back
2. “Roll Over, Charles Darwin!” A.A. Gill, Vanity Fair, February 2010 Back
미네소타 대학의 한 연구에 의하면, 수십억 년의 지구 나이에 대한 학생들의 믿음과 인간이 진화되었다는 믿음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cienceDaily, 2010. 3. 11)
연구자들은 생물학 입문 과정에 있는 400 명의 학생들에게 진화론에 대한 지식, 정치적 및 종교적 견해, 고등학교 과학교육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좌파적 성향의 학생들은 오래된 지구 연대를 더 믿고 있었으며, 진화론과 더 친숙해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우파적 성향의 학생들은 젊은 지구 연대를 믿는 경향이 있었으며, 진화론을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2009. 5. 16일자 News to Note에서 이것과 같은 결과를 보여주는 조사를 보고했었다.)
연구책임자인 미네소타 대학의 생물학자인 코트너(Sehoya Cotner)는 이렇게 논평했다. “중서부의 고등학교 생물 교사 4명 중 1명은 창조론이 지구상 생물들의 기원에 대한 하나의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것은 허락될 수 없는 것이다.”(그녀는 “헌법은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리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덧붙이고 있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학생들의 믿음, 태도, 경험 등을 반영하고 있는 조사 결과에서 수십억 년의 지구 연대, 진화론적 믿음, 정치적으로 좌파적 성향 등이 상호 관련성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거기에 분명한 상호관계가 있다고 가정해 볼 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타협적인 태도는(특별히 장구한 지구의 나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후에 비성경적인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미끄러운 경사로에 들어서는 일이라는 것이다. 미네소타 대학의 조사결과 자체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화제가 되고 있는 ‘이미 떠나버렸다(Already Gone)’ 연구는 (기독교를 떠난 젊은이들에 대한 보고) 이것을 강하게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백히 말씀하고 있는 그대로를 의미한다는 원리를 포기하는 순간, 그 사람은 과학(즉 자연주의적 과학)에 입각하여 성경을 재해석해야 한다고 쉽게 결정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곧 성경의 모든 부분들에서 유행하는 반기독교적 개념들이 혼합되어지는 것이다.
바이러스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완전히 부정적이다. 그러나 바이러스 요법(virus therapy)을 통한 치료 가능성은 대중들의 선입견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MIT Technology Review, 2009. 1. 22)
MIT의 Technology Review 지는 척수(spinal cord) 손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 강력한 돌파구를 갖게 되었다고 보도하였다. 그것은 척수 조직들의 재생을 돕기 위해서 유전공학적으로 바이러스들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버클리 대학의 생물공학자인 성욱(Seung-Wuk Lee)은 바이러스들이 신체 조직들을 지지하고 조직이 정확하게 기능하도록 하는 화학 신호들을 제공하는 조직 골격구조(tissue scaffolds)들을 대체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바이러스들은 자기복제(self-replicating)와 자기조립(self-assembling)을 하기 때문에, 적절한 특성들을 발현하도록 설계되었던 조직 골격구조들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성욱은 M13이라 불리는 박테리아파지 바이러스(bacteriophage virus, 세균은 감염시키나 동물 세포들은 감염시키지 않는)를 연구하고 있는데, 이 바이러스는 길고, 가늘어 신체의 자연적 조직 골격구조를 이루는 단백질 섬유들과 유사하다. 실험실에서 성욱과 동료인 안나(Anna Merzlyak)는 M13을 신경 전구세포(neural-progenitor cells)를 함유하는 용액에 주입하였다. 바이러스들은 뉴런과 유사한 섬유 가닥들을 만들어내면서 자신들이 액체상태의 결정처럼 정렬하였다. 심지어 자기장은 더 복잡한 정렬을 하도록 바이러스들이 확산되는 것을 도와줄 수 있었다.
성욱의 다음 단계는 M13을 살아있는 동물에서 실험하여 동물의 면역계 반응을 모니터링 하는 것이다. 만약 그 실험이 성공한다면, M13은 손상된 척수조직을 재생하는 척추 손상 요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Oldest tuberculosis claim : Was TB part of the original very-good creation?)
by Tas Walker
한 국제 연구팀이 터키 서부에서 출토된 50만 년 전의 것이라고 주장되는 인간의 두개골에서 결핵(tuberculosis)의 증거를 찾아냈다는 것이다.[1] 그것은 인간의 결핵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거로 주장되고 있었다. 그 전까지 결핵은 이집트와 페루로부터 나온 수천 년 전의 미라들에서만 확인됐었다.
.지금은 완전히 인간인 것으로 판명된 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의 두개골
미국, 터키, 독일인들로 이루어진 연구팀은 오른쪽 눈구멍 바로 뒤쪽의 뼈를 따라 일직선상으로 된 아주 작은 1~2mm의 손상들을 발견했다. 미국의 형질인류학 잡지(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는 2007년 12월 7일자 판에서 그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보고에 따르면, 두개골의 위치와 모습으로 보아 뇌를 둘러싸고 있는 뇌막을 파괴시키는 결핵성 연뇌막염(Leptomeningitis tuberculosa)이라고 부르는 결핵의 한 형태로 진단되었다.
결핵은 전염성이 강하고 치명적인 병이다. 결핵은 가장 흔하게는 폐를 공격하지만, 신경계, 순환계, 그리고 관절 등을 포함하여 몸의 다른 부위들도 공격한다. 과거에 결핵은 사람들을 열, 흉통, 기침, 각혈 등으로 사람들을 소진시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소모성 질환이라고 불렸다.
무비판적으로 이 50만 년을 받아들이는 오래된 연대를 믿는 크리스천들에게 (그들은 날-연대 이론, 간격 이론, 점진적 창조론, 구조가설 등과 같은 여러 이론들을 고안하여 성경 속으로 수억 수천만 년을 끼워 넣는다), 이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화석은 하나의 딜레마를 생겨나게 한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신 후 ‘심히 좋았더라(very good)’고 선언하실 때에, 결핵도 포함되어 있었는가?
오랜 연대를 일단 받아들이게 되면, 최초의 남자와 여자가 있기 오래 전에(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기 오래 전에) 결핵이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 이 인간 두개골이 50만 년이 되었다고 말하는 연대측정을 거부하거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의 신학적 의미를 빠져나갈 길을 찾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각혈을 하게하고 신체를 안으로부터 소모시키는 결핵이 그다지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와 같이 고통스럽고 쇠약을 가져오는 질병의 창조가 하나님의 속성과 충돌되지 않는다고 왜곡시키는 것이다. 아니면, 오래된 연대를 믿고 있는 신학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것처럼[2], 호모 에렉투스는 (전 세계 여러 곳의 증거들이 인간이었음을 가리킴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없는, 인간이 아닌, 아담 이전의 종족이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해야할 안전하고 분별력 있는 기준은 하나님의 명백한 말씀이다.
두개골 위에는 어떠한 연대도 새겨져 있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 두개골은 필시 언어의 혼잡 이후 바벨탑으로부터 멀리 이주한 인간들 중 하나의 것으로, 홍수 이후의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의 나이는 4,500년 미만일 것이다.
우리는 질병과 고통과 결핵이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셨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것들은 인간의 범죄 이후 하나님이 이 땅에 내리셨던 저주의 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언젠가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질병과 고통과 각혈을 파하실 것이다. 성경을 의심하지 말고, 오래된 연대를 의심하라.
2. The progressive creationist camp, as mostly epitomized by the teachings of Hugh Ross, founder of the long-age ministry Reasons to Believe. Because they accept such long-age ‘dating’, and teach that Adam was only created tens of thousands of years ago at most, even obvious human fossils must be ‘reinterpreted’ as ‘soulless hominids’.
사도 바울은 여러 서신을 통해 이단사설의 출현에 대해 경고하면서 이를 분별할 수 있도록 아는 일에 힘쓰라고 하였다(갈 1:6-12, 벧후 2:1, 3:3-7, 요일 4:1). 그리고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이단사설은 항상 공교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곤 한다. 얼른 들으면 복음적이며 합리적인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적 교리에서 벗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배후 세력은 사탄이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책략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단사설이 성경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도 우리처럼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진리를 탐구하지만, 찾는 길이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과의 싸움은 항상 긴장되고 치열하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바른 복음을 지킬 수 있으며, 진다면 복음이 혼잡 되고, 많은 영혼이 지옥으로 향하게 된다. 이처럼 중요한 싸움에서 이기려면 냉철한 이성으로 성경에 근거한 이론을 개발해야 한다.
교회사에는 수많은 이단사설들이 있었다. 이단의 주제는 주로 창조론, 기독론, 종말론이었다. 현재는 종말론이 기증을 부리지만, 초대교회 시대에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기독론이 많았다. 그러나 니케아(325년), 콘스탄티노플(381년), 에베소(431년, 449년), 칼케돈(451년) 등의 여러 종교회의에서 삼위 하나님이 동일본질로 한 분이라는 삼위일체론을 확립함으로써 오늘의 전통신학이 확립되었다. 천지창조에 대해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전통복음에 대치되는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을 해야 한다. 전통복음이란 아담의 범죄로 고통과 죽음이 왔고, 죽음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영원한 생명을 되돌려 주시려고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셨고, 삼일 만에 창조주의 능력으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성도들에게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이러한 교리를 부인하거나 이상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비 복음적이며 이단적이다. 지금은 복음수호를 위한 교단 차원의 종교회의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창조 논쟁은 원시역사(창1-11), 특히 창세기 1장의 해석 차이에 기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표이론으로 문자적 6일 창조설(문자적 24시간설), 제목설, 간격설(재창조설), 날-연대설(날-시대설), 점진적 창조론(진행적 창조론), 골격가설(비유설) 등이 있다. 문자적 6일 창조설과 제목설을 제외한 나머지 이론들은 서로 공통점이 많다. 그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긴 연대를 설정한다는 점이다. 그들 대부분은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했고, 우주는 빅뱅으로 탄생했다고 믿지만, 일부에서는 긴 연대만 믿고 진화론을 부정한다. 이처럼 많은 창조론이 창조와 진화를 포함하므로, 이들에 대한 바른 정의와 분류작업이 필요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창조론적 주장이 많으면 xx창조론, 진화론적 내용이 많으면 xx진화론으로 분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점진론적 창조론”은 사실상 창조론이 아닌 “점진적 진화론”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신 진화론의 일종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비록 휴 로스가 반틸(Howard Van Till)의 유신진화론을 비판했다 할지라도 말이다.
2. 점진적 창조론(진행적 창조론)
점진적 창조론은 캐나다의 천문학자 휴 로스(Hugh Ross)를 필두로 데이비스 영(Davis A. Young)과 로버트 뉴먼(Robert Newman) 등이 주장한 이론이다. 휴 로스가 토코아폴스 대학(Toccoa Falls College)에서 행한 강의시리즈(Staley Lecture Series, March 18-20, 1997)를 그의 웹사이트(http://www.reasons.org)에서 발췌한 내용에 근거해 정리한 점진적 진화론의 핵심적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원료인 시간, 공간, 물질을 만드신 후, 자연법칙에 따라 운행이 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즉, 우주만물이 자연법칙에 따라 장기간에 서서히, 점진적으로 오늘의 질서로 발전(진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계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법칙뿐이며, 창조주는 자연계의 운행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진화론의 뿌리인 자연주의 이론을 대변하는 말이다. 진화론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필요에 따라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신종의 탄생을 돕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빅뱅설을 수용한다. 우주는 120-150억 년 전에 빅뱅에 의해 형성된 후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가 팽창함에도 불구하고 대기의 수소농도가 일정한 것은 수소가 계속 생성되기 때문이라는 호일(Fred Hoyle) 등의 정상상태이론(steady state theory 1948)도 지지한다.
셋째는 창세기에 나오는 대홍수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국한된 국지홍수였다고 주장한다. 로스는 토코아 폴스 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만일 한 번의 홍수가 지구상의 모든 지질학적 증거와 화석을 남겼다면, 노아는 일 년 동안 135m 길이의 방주에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을 태웠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넷째는 하나님이 진화론적 방법으로 장기간에 서서히 질서도를 높여 오늘의 우주만물이 형성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물의 점진적 진화와 원숭이로부터 사람의 진화 등을 모두 수용한다.
다섯째로, 오랜 지구연대를 주장한다. 영(Davis A. Young)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은 날에 대해 24시간을 지칭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므로,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고 지구과학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지질학자로서 수십억 년의 사고방식에 익숙하므로 창세기의 날-연대 개념을 지지한다.... 창세기 1장을 비유로 보는 견해는 과학자들에게 속박으로부터 큰 자유를 준다.”(1)
여섯째로, 아담 이전에 살던 사람들과 동물들이 아담의 범죄 이전에 죽었다고 말한다. 로스는 토코아폴스 대학의 강연에서 찬조 강사들을 앞세워 아담의 탄생 이전에 동물들이 질병이 없이 장수를 하다가 죽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론은 성경의 전통교리와는 거리가 먼 위험한 사상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기록하신 성경이 깊이 연구해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이라면 이는 잘못된 일이다. 누구나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하셨다고 믿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지 않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간다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굳이 문자적인 명료성을 버리고 현대과학이론에 맞추려는 태도는 성경보다 과학지식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역사를 보면, 과학이론은 항상 불완전하며, 지속적으로 보완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성경은 영원불변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성경 내용이 과학이론과 상치되듯이 보일지라도 억지로 두 이론을 조화시키려고 짜깁기를 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초과학적 기록임을 인정해야 하며, 창조과학자를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로 매도해선 안 된다. 문자대로 믿지 않고 과학이론에 맞추어 성경을 해석하려는 자세야말로 잘못될 소지가 많다. 이제 점진론적 창조론이 성경적으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진화론적 방법과 자연계의 불간섭에 대해
성경에는 하나님이 진화론적 방법인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점진적으로 우주만물과 생물들을 창조하셨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그저 하나님이 명하시매 존재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는 표현이 10번이나 나온다(창 1:3, 6, 9, 11, 14, 20, 22, 24, 26, 29). 창조주가 명령하시면 즉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창조주의 전지전능성에 근거한다. 말씀으로 표현된 창조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요 1:1-3, 롬 11:36, 골 1:15-17, 시 33:6,9). 이처럼 우주만물은 예수님의 명령으로 즉시 창조된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것이 단순히 나타난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3)
하나님은 창조주간 동안 “보시기에 좋았더라(good, towb)”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히브리어 토브는 “좋다, 기쁘다, 즐겁다, 선하다, 올바르다”는 뜻으로, 창세기 1장에 7회나 나온다(창 1:4, 10, 12, 18, 21, 25, 31). 만일 하나님이 물고기와 새가 탄생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생물의 재료인 원소나 가스가 생성되었다면, 어떻게 이들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으셨을까?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같은 종류의 원소뿐이었다면, 왜 각종 생물을 만드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생물을 마치 보고 계시듯 말씀하셨다는 말인가? 더구나 사람의 육체를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인간이 아메바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어떻게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는 말인가? 그것도 수억 년에 걸쳐서. 그리고 그토록 불완전하고 미완성적인 모습이 보시기에 좋으셨다는 말인가? 모든 생물이 원소나 아메바 형태였다면 하나님이 각종 생물을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창조기간에 만드신 우주만물과 모든 생물들이 지금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고 믿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하나님이 자연계를 자연법칙에 따라 운행되도록 만드신 것은 옳은 지적이지만, 하나님은 자연법칙도 관장하고 계신다. 자연법칙을 이용해 지금도 우주만물을 운행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이사야와 욥기에서 하나님이 자연계를 직접 관장하시는 내용을 피력하신 것을 다음 구절에서 알 수 있다.
“너희는 눈을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 하시나니” (사 40:26-29)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뢰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하고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욥 38:25-27)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한 자가 누구냐” (욥 38:41)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7)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히 1:3)
(2) “욤”의 해석에 근거한 오랜 지구 연대에 대해
창조의 6일을 나타내는 “날”의 히브리어 “욤”(yom)은 창세기 1장에 모두 7회(창 1:5, 8, 13, 19, 23, 31, 2:2), 구약 전체에서는 2,000여 회가 나오는데, 대부분 24시간의 하루를 나타낸다. 예외적인 경우는 특수한 상황, 예컨대 “여호와의 날”과 같은 경우에만 국한된다. 더구나 창조 6일의 첫째, 둘째와 같은 서수(序數)적 표현일 경우는 항상 “24시간의 하루”를 나타낼 뿐이다.(2) 창조의 날들은 모두 서수로 표현되어 있으므로 “24시간의 하루”를 의미한다. 더 나아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xx날이니라”고 하여 24시간의 하루임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복수형인 야밈(yamim)의 경우는 “날” 외에 “기간”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구약에 총 700회가 등장하지만, 항상 “6일간”(출 20:11)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문자적인 기간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3, 4) 문자적 해석에 반대한 로버트 뉴먼(Robert C. Newman) 등도 긴 기간을 의미하는 기수적 “욤”에 대한 어떠한 명백한 사례도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5)
더구나 창조의 7일간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지구가 고정된 우주의 빛을 축으로 하여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일어나는 24시간의 하루임을 의미한다. 창조 제1일의 빛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아닌 창조된 빛이었다. 왜냐하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3)라고 빛의 피조성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빛이 만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면 밤에도 비취었을 것이므로 밤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통적인 유대기독교의 해석도 하나님이 문자적 하루의 한 주간에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것으로 고백한다.(6)
창조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신 내용 중에도 창조기간이 6일이었음을 여러 곳에서 명백하게 선언하신 바 있으며, 시편 기자도 순간창조를 노래한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출 20:11a)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출 31:17b)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김으로 이루었도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 33:6,9)
이처럼 우주만물의 6일 창조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에 근거하며, 6일이 넘는 긴 기간을 설정하려는 어떠한 이론도 성경구절과 상충되게 마련이다. 예컨대 창조 6일설은 믿으면서도 지구가 창세기 1장 2절에 이미 창조된 상태이므로 불특정한 오랜 연대에 탄생했으리라는 긴 지구연대설, 6일을 6기간으로 보려는 날-연대설, 창세기 1장 1절과 3절 사이에 긴 지질학적 기간을 설정하는 간격설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6일 창조설이 현대과학의 증거와 상치된다면, 과학이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거나, 긴 연대를 나타내는 증거를 발생시킨 원인을 대홍수와 같은 격변의 과정 등에서 추적하는 것이 성경적 자세라 생각된다. 그 이유는 성경이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물리학자 러셀 험프리(Russel Humphreys)는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연대측정법의 90% 이상이 젊은 지구를 지지한다고 했다.(7) 태양이 창조된 4일을 전후한 날의 길이가 다르다는 주장도 배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창조 6일에 대한 성경의 표현들이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조주 자신이 6일간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출 20:11, 31:17b).(8)
지구과학의 초석을 놓았던 지질학자들은 대부분 젊은 지구와 전 세계적인 홍수를 믿었다는 사실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층서학을 수립한 스테노(Nicolas Steno), 고생물학의 창시자인 우드워드(John Woodward), 영국자연사의 아버지인 래이(John Ray) 등이 대표적인 분들이다.(8-1)
최근에는 미국의 ICR이 추진했던 RATE 프로젝트의 결과 일부를 연구자의 일원인 스넬링(A. Snelling) 박사가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2005년)에서 발표한 바 있다. 그는 7년간의 연구 결과 암석에는 한때 가속화 되었던 핵붕괴의 흔적이 함유되어 있었으며, 진화론자들이 이용하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한 지구연대측정법에서 전제하는 “균일한 붕괴율”을 입증할 증거가 없고, 모든 암석들은 젊은 지구연대를 지지한다고 밝혔다.(9) 그 밖에 젊은 지구에 대한 증거들은 미국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Science)에서 과학교사의 지침서로 펴낸 <Teaching About Evolution and the Nature of Science> 책을 반박한 사르파티(J. Sarfati, 2006)의 <진화론에 대한 반박>에 잘 정리되어 있다.(10)
(3) 빅뱅설에 대해
빅뱅설은 아인슈타인(A. Einstein, 1915)의 일반상대성원리에 기초한 것으로, 1920년대의 프리드만(A. Fridman)과 르메트르(G. Lematre)의 우주 팽창설, 허블(Edwin Hubble 1929)의 적색편이설, 1940년대 가모프(G. Gamov)의 우주배경온도설, 최근의 초 팽창이론(inflation theory) 등이 보강되어 확립된 우주형성 이론이다.(11) 핀 홀 크기의 우주가 계란 크기가 되었을 때 폭발했다는 것이다. 가스덩어리가 사방으로 분산․냉각되면서, 50억 년 전에 태양계가, 46억 년 전에 지구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자연계의 법칙 중 열역학법칙은 150여 년간 지속된 권위 있는 법칙이다. 물질과 에너지는 서로 전환되지만 총량은 항상 일정하다는 제1법칙과, 자연계의 모든 작용은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제2법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열역학 제2법칙은 부정적인 영향(예: 가용에너지의 소멸)과 더불어 긍정적인 영향(예: 소화, 호흡)도 끼친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세계는 질서도가 가장 높은 상태였지만, 아담의 범죄로 자연계의 쇠퇴는 가속화 또는 확산된 듯하다.(12) 사람을 비롯한 생물의 노화는 더 촉진되었고, 토지는 저주를 받아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내게 되었다. 우주계도 풀리는 시계태엽처럼 열사상태를 향해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빅뱅설과 “팽창하는 우주론”에서는 우주가 항상 질서도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쪽으로만 진화한다고 하므로 열역학 제2법칙과 대치된다.
빅뱅설은 우주계란(有)에서 우주(有)가 형성되었다는 질적 변화를 다룬 이론이므로, 우주의 기원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최근에는 빅뱅설에 대한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 이 이론에 대한 신뢰성이 흔들리고 있다. 이 이론의 강력한 지지자인 호킹(S. Hawking) (13)도 이 이론의 핵심인 블랙홀설이 잘못되었다고 2005년에 공식 취소한 바 있다.
창세기가 말하는 우주(時空物)는 무에서 창조(creatio ex nihilo)되었다(창 1:1). 성경에는 총 420회의 하늘(shamayim)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세 하늘로 구분할 수 있다. 셋째하늘(三層天)은 하나님이 계신 시공을 초월한 곳으로(계 4:1-2, 겔 6:1, 사 6:1), 창조 첫날 창조된 듯하다(욥 38:6-7, 골 1:16). 천군(왕하 6:17, 계 19:14)과 천사(단 7:10, 느 9:6, 욥 1:6, 벧후 3:13, 계 5:11, 9:16, 21:1)가 있으며, 사도 바울이 이끌려갔던 곳이기도 하다(고후 12:1-4). 일층천은 생물들이 사는 대기권이다(창 1:8, 20, 시 74:13-14). 창조 초기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안개만 자욱한 아열대성 기후였다(창 1:6-9).(14) 이층천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휘트콤과 해리스(R.L. Harris) 등은 해와 달과 별들이 떠 있는 외기권(창 1:14-17)으로 해석한다.(15),(16) 그러나 필자는 삼층천에서 쫓겨난 악령들의 공간(유1:6, 겔 28:12-19, 눅 10:18, 계 12:7,12-13)으로 생각된다.(17)
성경이 증언하는 바는 지구가 빅뱅설의 주장처럼 태양(protosun)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첫째 날 창조되었고 무에서 창조된 것이다(창 1:1). 지구는 태양이나 행성들보다 3일 앞서 만들어진 것이다. 원시지구의 모습은 혼돈하고 공허했다(unformed and unfilled, tohu wabohu, 창 1:2). 따라서 창세기 1장 2절은 에드워드 영(Edward Young)이나 휘트콤 등이 주장하듯이 다음처럼 번역하는 것이 복음주의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땅은 아직 형체를 갖추지 않았고 채워지지 않았다 (And the earth was unformed and unfilled)” (19)
(4) 생물의 창조에 대해
모든 생물은 “종류대로”(after its kind, miyn) 창조되었다. “종류”에 대한 히브리 원어 “민(miyn)”은 “같은 어미에서 유래된 생명체”로, 창세기 1장에 10회나 등장한다(창 1:11, 12×2, 21×2, 24×2, 25×3). 이처럼 하나님은 식물(창 1:12), 물고기와 새(창 1:21), 육지동물(창 1:24-25)을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으며,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다. 이는 생물이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화했을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말이다.
식물학자이면서 벌게이트 성경에 능통했던 린네(Carl von Linneus 1707-1778)는 불후의 명저인 <자연의 체계>에서 동식물과 광물의 이명분류법(二名分類法)을 확립한 창조과학자이다. 그는 “종류”를 생물학 용어인 “종”(種 species)으로 부르면서, 종류와 종은 같은 개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창조주는 계에서 문을, 문에서 강을, 강에서 목을 만드셨다. 그리고 목으로부터 종을 만드셨다. 단, 종은 불변하도록”이라고 했다. 이러한 “종의 불변설”은 다윈의 진화론이 출현하기 전까지 생물학의 주된 이론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만 학문이 발전하면서 “종”에 대한 개념과 분류기준이 여러 번 바뀌었다. 이에 따라 한 종이 다른 종으로 편입된 것을 흡사 진화라도 한 듯이 오도해서는 안 된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말한 “종”은 명백히 “침팬지가 사람으로 바뀌는 종류의 변화”를 의미한 것이다. 린네가 의미한 “종의 불변설”은 그러한 “종류의 불변”을 의미한 것이다. 진화론자들의 언어유희에 휘말려선 안 된다.
(5) 인간의 창조에 대해
사람은 다른 생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엄한 존재이다. 육체는 다른 생물처럼 흙으로 지음 받았지만,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 넣어진 특별한 존재이다(창 2:7). 그 생기 때문에 기도하고, 예배드리며, 만물을 다스리는 책임과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창 2:15)
이처럼 사람은 원숭이나 침팬지와 같은 “선재하는 존재”(preexistence)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니다. 유신진화론자인 허언(Walter Hearn)은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한 것은 비유라 했고,(20) 미국의 헨리 시포드(Henry W. Seaford, 1958), 훌러 신학대학 총장 에드워드 카넬(Edward J. Carnell, 1959), 암스테르담 대학의 이안 리버(Ian Lever, 1958) 등은 아담이 유인원에서 진화했고, 창조기사는 비유라고 했다. 영국성공회의 신부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04)에서는 98%가 원숭이로부터의 진화를, 2%만이 창세기의 기록처럼 흙에서 창조되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로마가톨릭의 요한바오로2세는 교황청과학원에 보낸 서신(1999)에서, 아담은 하나님이 흙에서 직접 창조된 것이 아니라 선재(先在)하는 존재(유인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창조하신 것이라고 하면서, 진화론을 가설이 아닌 정설(단순한 가설 이상)로 선언했다. 그는 “교황칙서가 출판된 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의도나 조작이 없이 독자연구의 결과들이 일치된 사실 자체가 이 이론(진화론)을 지지하는 중요한 증명이 되었다”(21)고 하면서 진화론은 더 이상 가설이 아닌 정설이라고 하였다. 더 나아가 “인간의 육체가 기존의 생명체(유인원)에서 기인했다 하더라도 영혼은 하느님께서 곧 바로 창조하신 것”이라고 육체의 진화를 기정사실화 했다.(22) 그러나 그의 뒤를 이은 베네틱토16세는 사견이긴 하지만, 지적설계(知的設計)를 지지하는 발언(2006)을 한 바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6) 육식(肉食)의 허용과 육식동물의 기원에 대해
하나님은 창조 시에 동물과 사람에게 복을 주셨으며(창 1:22,28) 동물에게는 푸른 풀을, 사람에게는 씨 맺는 채소나 씨가진 열매를 식물(食物)로 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29-30)
만일 창조하신 순간부터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사냥했다면, 자연계에는 초식동물들의 비명소리로 “보시기에 좋거나 복 받은 세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이 육식을 하게 된 것은 노아홍수 후의 일이다(창 9:2-3). 아담의 타락으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면서 사람과 동물들은 에덴에서 추방되었고, 급기야 노아가족을 제외한 전 인류가 대홍수로 멸절되었다. 세상은 더 이상 하나님 보시기에 복 받을 대상이 아닌 상태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대홍수 후 하나님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동물을 먹도록 허용하셨고, 동물들에게는 자기 목숨을 보존하도록 사람을 보면 피하도록 만드신 것이다.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었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창 9:2-3)
육식동물의 출현시점에 대해서는 미국의 ICR은 아담의 타락 후부터로 추측하지만, 필자는 대홍수 후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점진론적 창조론자나 진화론자들은 육식동물이 처음부터 육식을 한 것으로 추리한다.
(7) 아담의 범죄 이전의 동물과 사람의 죽음에 대해
아담의 범죄 이전에 살았다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아담이 범죄 하기 이전에 죽었다는 주장은 성경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구원의 교리를 근본부터 허무는 이단적 사설이다. 창세기의 핵심은 하나님이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만물의 영장인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우리에게 고통과 죽음이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만물의 영장인 아담의 죄 때문에 온 우주에 고통과 죽음, 황폐함이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얻었음이니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창 3:17-19)
“이러므로 한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만일 휴 로스의 주장대로 아담의 범죄 이전에 죽음이 왔다면, 이는 성경의 교리를 뒤엎는 위험한 사상이 된다. 아담은 우주의 창조 시에 창조되었으며(막 10:6), 그보다 먼저 탄생한 인간은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성경은 모든 만물과 피조물이 고통하며 죽게 된 것은 아담의 범죄에 기인한다고 증언한다. 그래서 피조물들이 고통으로 탄식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한다(롬 8:19-23).
그러나 언젠가 천년왕국시대에는 “악한 짐승이 빈들에 평안히 거하며”(겔 34:25, 호 2:18, 사 35:9),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해 받음이나 상함이 없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사 11:6-9). 그리고 영생을 잃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후에 창조주의 능력으로 부활하심으로써 영생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롬 5:17-21). 이 교리를 부인한다면 기독교의 기본교리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8) 창조의 순서에 대해
6일 창조의 순서는 점진론자를 포함한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순서와 맞지 않는다. 그들은 빅뱅으로 우주가 창조되었고 태양(50억 년 전)에서 지구(46억 년 전)가 탄생했으며, 생물은 지상에서 37억 년 전부터 출현하다가 캄브리아기 때에 여러 종류가 폭발적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생물의 출현순서는 어패류와 식물이 먼저 탄생했고, 어류에서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를 거쳐 인간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에 의하면 지구가 태양보다 3일 전에 탄생했고(창 1:2,14-18), 식물이 동물보다 먼저 탄생했다(창 1:11-12). 물고기와 조류(창 1:20-22)는 같은 날 창조되었고, 그 뒤를 이어 육상동물과 사람이 같은 날 창조되었다(창 1:24-28).
휴 로스는 토코아폴스 대학 강연에서 “인류는 우주의 나이가 어느 정도 지났을 때만 존재할 수 있다. 만약 우주가 너무 늙거나 젊다면 생물은 불안정해질 것이다. 생명체는 우주가 120-179억년 정도일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추측에 근거한 가설일 뿐이다.
(9) 인류문화의 발전에 대해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문화가 유인원의 오랜 구석기와 신석기시대를 거쳐 청동기와 철기시대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호모하빌리스(260만 년 전)의 올도완(Oldowan stone age), 호모에렉투스(15만-150만년 전)의 아슐리언(Achulian sone age), 네안데르탈인(8-25만년 전)의 무스테리언(Mousterian stone age)을 거쳐 청동기, 금속 병용기, 철기시대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류의 역사가 6천 여 년(BC 4175년?)으로 매우 짧으며, 인류문명은 아담의 7대손 라멕(검무가․창)과 8대손인 야발(육축), 유발(수금․퉁소), 두발가인(동철기계) 때에 이미 철기문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라멕(창 4:16-22)이 태어난 시점은 아담의 같은 7대손인 에녹처럼 아담의 나이가 622세 경 전후로 추정된다(창 2-19). 즉, 아담으로부터 600여 년이 지난 시점에 인류는 이미 철기문화를 가졌다는 이야기이다.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는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창 4:20-22)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내가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창 4:23)
이러한 문화의 발전은 노아 때에는 2만 톤이 넘는 방주를 만들기에 이르렀다(창 6:14-16, 22), 그러나 대홍수로 모든 문물이 완전히 파괴되었고(창 7:23-24), 그 후(4천5백여년 전)에 다시 신․구석기를 거쳐 청동기와 철기시대가 병존하다가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인류 최초의 도시문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10) 국부(지역적) 홍수론에 대해
휴 로스는 전 지구적인 노아홍수를 부인하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국한된 국부홍수론(local flood theory)을 주장하지만, 성경은 명백히 전 지구적인 대홍수를 증언한다.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창 7:19-20)
대홍수 후, 방주가 정박한 곳은 아라랏 산이었다(창 8:4). 아라랏 산은 최고봉이 5,140 m에 이르는 매우 높은 산으로, 이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이룬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의 땅”으로, 지금의 이라크 지역이다. 만일 노아의 홍수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국한된 홍수였다면, 어떻게 방주가 높은 아라랏 산으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겠는가? 방주는 키가 없는 그저 떠 있도록 설계된 배가 아닌가?
로스는 대학 강연에서 “지구상의 물의 총량은 산들을 덮기에 필요한 양의 22%에 불과하다....(창조론자들은) 하나님이 40일간 9,000m 높이의 산들을 침식시켜 해수면 아래로 끌어 내리셨다가 그 후 12개월 동안 이 산들을 다시 솟아나도록 하셨다고 설명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지적이다. 창조론자들은 그 누구도 대홍수 때 고산들을 해수면 아래로 끌어 내렸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홍수 이전에는 모든 산이 완만한 높이를 가졌던 것으로 추리한다. 그리고 홍수 중기부터 물을 빼기 위해 오늘날의 깊은 해구와 그에 상응하는 고산준령들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한다. 그 이유는 현재 자연계 물의 97%는 바다에 있고, 나머지 3%는 강, 하천, 수증기, 구름 등으로 존재한다. 독일학자들이 조사한 바로는 옛날에는 지중해의 해수면이 지금보다 2,430m가 낮았고, 세계최저 해저는 5,500m에서 11,034m로 낮아지고, 세계 최고봉은 875m에서 8,882m로 상승한 것으로 보고했다.(23) 이 밖에 성경적 증거로는 예수님(마 24:37-39, 눅 17:27)과 베드로(벧후 2:5, 3:6)가 노아의 홍수 외에 어떠한 국지적 홍수도 거론하지 않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1) 지층과 화석의 형성에 대해
점진론자들은 지층과 화석이 동일과정설이 말하듯이 장기간에 서서히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구를 뒤덮은 대홍수의 물이 150일 후부터 빠지기 시작했는데(창 8:1-3), 물이 빠지려면 먼저 땅 속에 물이 들어갈 공간이 생겨야 한다. 그래서 창조과학자들은 대홍수 후기부터 지구가 오대양 육대주로 갈라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리한다. 오늘날의 지형이 대홍수 후기에 모두 완성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마도 대홍수 후(post Flood catastrophism) 일정 기간 크고 작은 지진과 화산이 뒤따르면서 지층이 안정되었을 것이다.(24, 25) 그 과정에서 빙하기와 해빙기가 나타나면서 오늘날의 지형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옷으로 덮음 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시 104:6-8)
또한 지난 1980년 5월에는 미국 시애틀 근교에서 폭발한 세인트 헬렌스 산은 불과 며칠 새에 새로운 지층과 화석 및 토탄과 계곡을 만들었다. 지층이나 화석은 결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 아님을 실물로 보여준 증거라 할 수 있다. 전 세계 지표의 80% 이상이 퇴적암이며, 화석은 대부분 퇴적암에 들어있다는 사실은 대홍수에 의한 지층과 화석의 형성이론을 뒷받침한다. 퇴적암은 물에 실려 온 흙과 자갈이 격변적인 충격(고온, 고압, 순간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점진론자들이 진정으로 복음을 탐구한다면, 다음과 같은 베드로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벧후 3:6)
(12) 진화론의 붕괴 가능성
언젠가 오래된 지구론을 포함한 진화론이 잘못된 것으로 확인된다면, 그들은 무엇이라 항변할 것인가? 그러한 조짐은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 지질학자인 에이거(Derek Ager, 1976)는 오래된 지구론이 현대 지질학 이론에 부합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신격변설(neocatastrophism)을 주장했다. 그는 지층과 화석은 장기간에 점진적이 아닌 짧은 시간에 빠르고 광범위하게 형성됐다고 했다.(26) 위스콘신 대학의 지질학자 로버트 닽(Robert H. Dott, 1982)은 ASEPM (American Society of Economic Paleontologists and Mineralogists)에 보낸 회장서신에서 “나는 퇴적암의 기록이 동일과정이 아닌 일시적인 대규모 사건의 기록이라는 점을 당신들에게 확신시키고자 한다. 내 이야기는 일시적 사건이 예외 없이 전 지구적이었다는 것이다”고 했다.(27) 이러한 격변적 견해에는 시카고 대학의 지질학 교수인 데이비드 라우프(David Raup, 1983), 지구교육저널의 편집인 제임스 쉬(James Shea, 1982), 콜로라도 대학의 지질학 교수인 카우프만(Erle Kauffman, 1987) 등이 가세하고 있다.
20세기의 대표적 진화론자 중 하나인 하버드 대학의 굴드(Stephene J. Gould)도 시카고 진화론학술대회(1980)에서 동일과정설에 근거한 점진적 진화론을 비판하고, 대안으로 단속평형설을 제시한 바 있는데, 도브잔스키도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였다. 그는 화석기록을 보면 점진적 형태변화나 중간종이 발견되지 않으며, 모든 생물들은 각 단계에서 단속적으로 완전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모든 생물들이 점진적 진화를 하는 것이 아니며, 신종은 5천년이나, 5만년 단위로 갑작스럽게 출현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또 다른 허구를 만든 것이다.
3. 맺음말
우리가 어떤 이론을 지지하거나 타협하는 이유는 그 이론의 사실성(과학성)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이론은 대부분 애매성과 불가지성을 내포한다. 인간의 추리와 인식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론은 학자들의 추리의 상한선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과학이론을 절대시해서는 안 된다. 이는 창조과학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항은 성경과 상치되는 이론에 대해서는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성경내용을 현대이론에 맞추려고 억지로 풀려다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교회들에 대해 이단사설을 분별해 대처할 것을 여러 번 경계하였다. 특히 목회자 디모데에게는 다음과 같이 부탁했다.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게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쫒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니라” (딤전 4:1-2)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딤전 4:7)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딤전 6:20-21a)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딤후 2:15-16)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 3:13-14)
바울은 거짓교사들이 성도들을 괴롭히는 교회들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골로새 교회에게는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 2:8)고 했고, 에베소 교회에게는 “우리가 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 4: 13-14)고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교회에 열심히 다녔으나 심판 날에 하나님으로부터 “불법을 행한 자”라고 책망을 받는 자들일 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려는 열심이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면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바에야 바르게 믿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르는 일이 없도록 항상 겸손하고 열린 자세를 갖도록 하자.
참고문헌
(1) Davis A. Young: Creation and the Flood, An Alternative to Flood geology and Thei- stic Evolutionism, pp.18-22, 82, 91, 87, 113, Baker Book House, Grand Rapids, 1977.
(2) John C. Whitcomb: The Early Earth, Revised Edition, pp.28-29, 1988.
(3) Robert E. Kofal, Kelly L. Segrave: The Creation Explanation, pp.321-322, Harold Shaw Publishers, Wheaton, Il., 1981.
(4) Robert L. Thomas: New American Standard Exhaustive Concordance of the Bible, pp 277ff, Holman Publishing Co., Nashville, 1981.
(5) Robert C. Newman, Herman J. Eklelman: Genesis One and the Origin of the Earth, pp.6, 7, InerVasity Press, Downers Grove, Il., 1977.
(13) Stephen W. Hawking; (현정준 역): 시간의 역사, 삼성이데아, 서울, 1989.
(14) Joseph C. Dillow: The Waters Above: Earth's Pre-Flood Vapor Canopy, Rev. Ed, Moody Press, Chicago, Il. 1982 and reviewed by J.C. Whitcomb, D.B. Young in Grace Theological Journal 3(1), pp.123-132, 1982.
(15) J.C. Whitcomb: op.cit., pp.53-56.
(16) R. Laird Harris: The Bible and Cosmology, Bulletin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5(1), pp.11-17, 1962.
(17) 임번삼: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상), p.119, 한국창조과학회, 서울, 2002.
(18) Arthur C. Custance: Without Form and Void, 1970.
(19) 임번삼: ibid, pp.198-200.
(20) Ed. by Russhell L. Mixter; Evolution and the Christian Thought Today, Edermans, Grand Rapids, p.69, 1959.
(21) Ted Peters(김흡영외 역): 과학과 종교, 새로운 조명, p.260, 동연출판, 서울, 2002
(22) Ted Peters(김흡영외 역): ibid, p.262.
(23) Werner Gitt: Das Biblische Zeugnis der Schoepfung(Wissen und Leben 4), pp.116- 120, Hanssler-Verlag, Neuhausen-Stuttgart, 1985.
(How could Adam have named all the animals in a single day?)
by Andrew Kulikovsky
창세기를 기록된 그대로 해석하기를 부정하는 성경비평가들과 타협적 교인들은 몇몇 유언비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나는 만약 창조주간의 6일이 일상적인 날(day)이었다면, 창세기 1장과 2장에 기록된 사건들이 모두 완료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으리라는 것이다. 특히 그러한 짧은 시간에 아담이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회의론자들은 말한다. 어떻게 아담은 12 시간보다도 적은 시간 내에 수백만 종들의 이름을 지을 수 있었는가?
중요한 점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실제의 종들의 수를 독단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메이(May)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실적 단계에서, 생물 분류상 하나의 목(order) 안에 오늘날 지구상에 분류된 2백만 종(species)의 동식물 중에서 (전체 생물종의 수는 5백만에서 5천만 종으로 평가) 얼마나 많은 수가 들어가는지를 알지 못한다.” [1]
무심결에 읽는 독자들에게 즉각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아담은 동물들의 이름을 짓기 위해 밖으로 나가 찾아다니지 않았다. 창세기 2:19절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아담에게 동물들을 이끌어 오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둘째, 많은 비평가들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아담이 이름을 지어야하는 생물 종들이 수백만이라 하더라도, 실제 수는 거의 확실히 이들의 단지 일부분인 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성경은 아담이 모든 육축(livestock, 히브리어로 behemah)과 공중의 새(birds of the air, 히브리어로 op hassamayim)와 들의 모든 짐승(beasts of the field, 히브리어로 chayyah hassadeh)들에게 이름을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이것은 아담이 바다 물고기, 다른 바다 생물들, 곤충들, 딱정벌레, 거미들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알려진 2백만의 생물종들 중의 98%는 무척추동물이다. 여기에는 해면동물들, 벌레들, 연체동물, 곤충 등의 다양한 생물 종들이 포함된다. 남은 2%가 척추동물이고, 이들의 수는 대략 4만 종이다.[2] 이 숫자에서도 25,000 종의 바다 척추동물들과[3], 4000 종의 양서류들은[4] 제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창세기 2;20절에 기록된 동물의 범주에는 분명히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의 분화(speciation)가 창조 이후에 진행되어왔다고 가정한다면, 남은 11,000 종의 척추동물들은 훨씬 적은 수의 원래 생물 종(proto-species)에서 분화된 후손들일 수 있는 것이다. 각각은 분류학자들이 속(genus)[5] 이라 부르는(더 위의 그룹인 과(family)일 수도 있는[6]) 그룹의 조상되는 동물들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창세기에서 종류(kind)[7] 라고 불려지고 있다. 많은 속들(genera)은 수십 개 또는 수백 개의 종들(species)을 포함하고 있다. 아담은 단지 2천여 종의 이들 원래 종들에게 이름을 지었을 것이고, 이 일은 수 시간이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담이 2500 여의 원래 생물 종(속)들에게 5초마다 한 종씩 이름을 지었다면, 그 일을 끝마치는데 매 시간 마다 5분씩의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대략 3시간 45분이 걸렸을 수 있다).
아담 앞에 모든 동물들을 이끌어내신 하나님의 목적은, 단지 아담으로 하여금 동물들의 이름을 짓기 위함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이들 창조된 동물들과는 아담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래서 어떠한 동물도 그의 육체적, 정서적, 지적, 영적 동반자(companion)로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References
1. May, R.M., How many species are there on Earth? Science 241:1441, 1988.
2. David Burnie, ‘Animal’, Microsoft® Encarta® Online Encyclopedia 2002, <http://encarta.msn.com>.
3. James W. Orr, ‘Fish’, Microsoft® Encarta® Online Encyclopedia 2002, <http://encarta.msn.com>.
4. David Burnie, ‘Vertebrate’, Microsoft® Encarta® Online Encyclopedia 2002, <http://encarta.msn.com>.
5. Woodmorappe, J, Noah’s Ark: A Feasibility Study, ICR, El Cajon, CA, USA, 1996. This tabulates all the creatures on the Ark by assuming that the kind corresponded to today’s genera. But this is to be as generous to the sceptics as possible, and even then there would be only 16,000 animals on the Ark as obligate passengers.
6. Batten, D., Ligers and Wholphins? What next? Creation 22(3):28–33, 2000. This points out several examples of fertile hybrids between members of different genera with a family. This means that they are really a single polytypic species, and supports identification of the kind with today’s families.
7. Williams, P.J., What does min mean?, CEN Tech. J. 11(3): 344-352, 1977.
AiG (Answers in Genesis)은 창세기의 연대기를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서 창조는 수천 년 전에 이루어졌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교회 비평가들은 오늘날 크게 선전되고 있는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젊은 지구 견해를 개신교의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 교회들에 의한 최근의 발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여러 교회 아버지들과 다른 고대의 권위자들은 젊은 지구라는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 글들을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 아버지들와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베버(Mark Van Bebber)와 테일러(Paul Taylor)가 쓴 Hugh Ross (오래된 지구 신봉자)에 대한 반박글에서 볼 수 있듯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 글에서는 그들이 말했다고 주장되는 것 대신에 실제 무슨 말을 했는지를 잘 분석해 놓고 있다. (교회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은 어떤 창조론을 믿고 있었는가?을 보라).
문제는 창조 시 날들과 시간(days and time)에 관한 하나의 평범한 문장을,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을 펴면서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침묵으로부터의 주장인 것이다. 창조의 날들(Creation days)과 시간에 대한 명백한 문장을 특별하지 않은 것들을 찬성하기 위하여 무시하는 것은 나쁘다. 올바른 해석은 평범한 구절들을 특별한 구절에 의해 해석하는 것이다. 같은 방법론으로, 수백 년 후의 미래에 AiG의 저자들이 쓴 글들이 성경의 날들과 시간 척도에 대한 분명한 문장들을 무시하였으며, 어떤 입장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날들과 시간 척도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고 말해질 수 있을까?
어거스틴(Augustine)이 창조의 날들을(그리고 다른 여러 문장에서) 비유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오래된 지구 믿음을 멀리서 지지했다고 말해질 수 없다. (그는 히브리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날들(days)을 순간(instant)으로 압축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오래된 연대를 믿는 사람이라고 주장되는 것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게다가 고대의 연대기들이 연구되면서, 많은 문화(성경에 직접 기초하지 않은)들에서 창조의 연대는 수천 년에 불과함을 증언(선언)하고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진실한 학자들 중에는 누구도 오늘날의 유행인 오래된 지구를 믿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오래된 연대에 대한 믿음은 현대적인 발명품임이 분명하다.
다음은 1879년에 출판된 성경에 대한 영(Young)의 분석 색인(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으로부터 발췌한 것이다. ‘창조(Creation)’ 아래에, 영은 1830년 윌리암 헤일즈(William Hales) 박사에 의해서 여러 출처로부터 수집된 창조의 시점을 목록화하여 놓았다. 헤일즈 박사는 연대학(chronology)의 전문가였다.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창조의 시점이 9,000년을 넘지 않았다. 비기독교 자료나 비유대인 자료(인도, 중국, 기독교 전파이전의 그리스, 바빌로니아....등)로부터의 여러 자료들 모두에서, 창조의 시점은 수천 년 전이었음을 선언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더군다나, 가톨릭 또는 개신교 학자들이 모두 이것에 동의하고 있다. 진지한 연대학자는 누구도 오래된 지구를 믿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표에 올라와 있는 학자들 대부분은 고대의 기록들을 꼼꼼하게 서로 비교해보고 맞춰보며 평생을 연구하여 세계(world)의 연대를 결정했던 것이다. (이것들 중 많은 것들이 오늘날에는 이용되지 않는다). 이 학자들은 이들 연대들을 주사위를 던져서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문에 대한 주의 깊은 이러한 전통을 무시해버리는 것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오만인 것이다.
우리는 이 연대문제의 중요성에 다시 한번 밑줄을 그어야만 한다. 오래된 지구 옹호자들도 지구가 수십억 년 되었다는 것은 최근의 주장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 오래된 연대는 오로지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radioactive dating)에 기초하고 있다.
같은 방법으로 화석화된 죽은 동물의 연대를 사람이 출현하기 수억 년 전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들 화석들은 격변과 고통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암과 관절염도 화석들에서 보여질 수 있다). (Genesis: the Curse을 보라). 그래서 오래된 지구 틀에서는, 이러한 죽음과 고통들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기 이전에, 그리고 모든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very good)고 말씀하시기(창1:31) 이전에,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피조물들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 죄악과 나쁜 것들이 생겨났고, 죽음의 저주는 그 결과로 임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다 (창세기 3:17–19, 로마서 8:20–22 등). 그리고 이러한 세상의 진실된 역사 때문에,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첫번째 아담의 (로마서 5:12, 고린도전서 15:21-22, 45) 죄많은 후손들을 위하여 죽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것이다. 아니, 오래된 지구 개념과 성경을 결합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사실상 복음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의 시점 (Date of Creation)
(1879년에 쓰여진 성경에 대한 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8판(1939년 발행) 중에서 ‘창조(Creation)' 아래의 항목)
헤일즈 박사는 그의 작업에서 “연대기와 지리, 역사, 그리고 예언의 새로운 분석 (A New Analysis of Chronology and Geography, History and Prophecy)” (1830년 발행, vol.1, p.210) 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모든 연대기들의 체계는 대부분 두 가지의 중요한 시점을, 즉 세계의 창조(Creation of the World)와 그리스도의 탄생(Nativity of Christ)을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다른 종속적인 시대, 연대, 기간들이 조정되어 왔다.”
그는 B.C. 6984 년부터 시작하여, BC 3616 년까지 120개의 창조 시점들에 대한 연대들을 목록화하였는데, 이 결과는 다른 권위있는 문헌들에 의해서 제시된 것들이었다. 그는 목록이 300여 개로 늘어날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창조 시점을 BC 5411 년으로 보았다. 흔히 채택된 창조 시점은 어셔(Ussher), 스팬하임(Spanheim), 칼멭(Calmet), 블레어(Blair) 등이 생각하였던 BC 4004년 이었는데, 이 연대는 영어 성경인 킹제임스 번역본(KJV)에서 사용되었다.
다음의 연대들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편집, 출판 연도, 또는 다른 출처에 의한 정보 등의 표시는 AiG 에 의해서 추가되었다).
창조 시점의 출처 (Source of Creation Date)
근거 (Authority)
연대(BC)
알퐁소 10세 (Alfonso X, Spain, 1200s)
Muller
6984
알퐁소 10세 (Alfonso X, Spain, 1200s)
Strauchius, Gyles 1632–1682[1]
6484
인도 (India)
Gentil (프랑스 천문학자,1760)
6204
인도 (India)
Arab records
6174
바빌로니아 (Babylonia)
Bailly, John Silvain (프랑스 천문학자, 1736–1793)
6158
중국 (China)
Bailly
6157
디오게네스(Diogenes Laertius, 그리스, 3세기)
Playfair
6138
이집트 (Egypt)
Bailly
6081
70인역 (Septuagint, LXX) [2]
Albufaragi
5586
요세프스 (Josephus, 1세기, 유대인)
Playfair
5555
70인역, 알렉산드리아(Septuagint, Alexandrine)
Scaliger, Joseph (프랑스 고전학자, 1540–1609)
5508
페르시아 (Persia)
Bailly
5507
악숨의 연대기(Chronicle of Axum, Abyssinian)
Bruce (1700s)
5500
요세프스 (Josephus)
Jackson
5481
잭슨 (Jackson)
5426
헤일즈 (Hales)
5411
요세프스 (Josephus)
Hales
5402
인도 (India)
Megasthenes (그리스 역사학자, 340–282 BC)[3]
5369
탈무디스트 (Talmudists)
Petrus Alliacens
5344
70인역, 바티칸 (Septuagint, Vatican)
5270
베드 (Bede, 673–735)
Strauchius
5199
요세프스 (Josephus)
Univ. Hist.
4698
사마리아본 계산(Samaritan Computation)
Scaliger
4427
사마리아본 (Samaritan text)
Univ. Hist.
4305
히브리(맛소라)본 (Hebrew (Masoretic) text)
4161
플레이페어, 워커 (Playfair and Walker)
4008
어셔, 스팬하임, 칼멭, 블레어 등
(Ussher, Spanheim, Calmet, Blair, etc.)
4004
케플러 (Kepler, 천문학자, 1571–1630)
Playfair
3993
페타비우스 (Petavius, 프랑스, 1583–1652)
3984
멜란크톤 (Melanchthon, 종교개혁가, 1500s)
Playfair
3964
루터 (Luther, 종교개혁가, 1500s)
3961
라이트풋 (Lightfoot)
3960
코넬리우스 (Cornelius a Lapide)
Univ. Hist.
3951
스칼리져, 이삭슨 (Scaliger, Isaacson)
3950
스트라우키우스 (Strauchius)
3949
벌가 유대인 계산 (Vulgar Jewish computation)
Strauchius
3760
랍비 립만 (Rabbi Lipman, 1579–1654)
Univ. Hist.
3616
1. Brevarium Chronologicum Book IV, 3rd edition, 1699 in English.
2. The Greek translation of the Old Testament originally published in Egypt BC.
3. A Greek historian from Iona, he was Ambassador to India for King Seleucus I. He published Indika in four books.
건강은 좋은 바이러스와 미생물에 달려있다.
(Health May Depend on Good Viruses and Microbes)
David F. Coppedge
인체에 대해 배워야할 것이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우리의 가장 친한 친구 중 일부는 우리 자신의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을 수도 있다.
좋은 고세균
과학자들은 고세균(Archaea, 고균)이라는 미생물을 가장 원시적 생명체로, 온천과 같은 극한적 환경에 서식하는 생물(extremophiles)로 여기고 있었다. 이제 새롭게 밝혀진 사실에 의하면 우리 몸 속에도 수많은 고세균들이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여기에 왔으며, 그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Science(2017. 11. 24) 지는 사람 생태계에 살고 있는 이 개척자들로 인해 피곤해하고 있었다. "신체의 고세균에 대한 조사는 다른 미생물 손님을 밝혀냈다"고 엘리자베스 펜니시(Elizabeth Pennisi)는 말했다.
아마도 가장 고대의 생명체로 여겨지고 있던 고세균을 생각하면, 온천, 알칼리성 호수, 폐수 처리장과 같은 극한의 장소에서 살아갈 것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러나 이 미생물은 때때로 인간의 코, 폐, 내장, 피부에 많은 수로 있다고, 지난 주에 미생물학자들은 보고했다.
mBio 지에 게재된 그들의 조사는, 자연적으로 인체에 서식하면서 건강과 질병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른 미생물들을 찾기 위한, 많은 논의를 거친 미생물군유전체(microbiome)를 구성하는 박테리아 이외의 것들을 찾기 위한 조사의 일부였다 (see p. 982). 프랑스 클레르몽페랑에 있는 클레르몽 오베르뉴(Clermont Auvergne) 대학의 분자생물학자인 장 프랑수아 브루에르(Jean-François Brugère)는 "사람에서 이처럼 풍부한 고대의 고세균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라고 말했다. “사람의 미생물은 박테리아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연구자는 그녀가 본 모든 곳에서, 심지어 병원과 우주선의 "클린" 방에서도, 놀랄 만큼 풍부한 고세균들을 발견했다. 그녀는 인체를 살펴보기 시작했고, 사람의 피부, 폐, 코, 내장에서 고세균들을 발견했다. 지금까지 고세균들이 우리의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들의 "조직 특이성"(선호하는 위치)은 건강한 상호작용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한 연구원은 "이러한 다양성은 우리 몸 내부와 표면에 있었으며, 우리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라며 경탄했다.
좋은 바이러스
고세균 보다 작을 지라도, 박테리오파지(bacteriophages)라 불리는 유익한 바이러스가 인체의 건강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박테리오파지는 박테리아를 먹는다. 즉각적으로, 그것은 좋은 소리처럼 들린다. Science(2017. 11. 24) 지에서 죠지아(Giorgia Guglielmi)는 "손님인 박테리오파지는 사람의 건강을 지켜주나요?"라고 묻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들은 환영받는 손님이다. 그들의 발견에 대한 배경은 다음과 같다 :
박테리오파지, 또는 단순히 파지로 알려진 이 바이러스는 제1차 세계대전 병사들의 배설물에서, 박테리아를 죽이고 있는 것이 발견된 지 1세기 만에, 인체 내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지 몰라서 새로운 주목을 받고 있다. 파지는 바다에서부터 토양까지 모든 곳에서 발견되어왔다. 이제 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은 매일 장(intestines)을 통해 최대 300억 마리의 파지를 흡수하고 있다.
건강한 사람의 몸에 고세균과 파지가 넘쳐난다는 사실은 그들이 어떻게든 우리를 돕고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일부 보건 단체들은 더 많은 파지를 섭취하면, 기생충을 통제하거나, 다른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제안했다. "몇 가지 흥미진진한 성공 사례가 있지만, 파지 치료(phage therapy)가 신뢰할 수 있는 치료법이 되기에는 아직 길이 멀다"고 죠지아는 주의를 주고 있었다. 신체의 "파지옴(phageome)"을 분류하는 작업도 시작되었다. 파지는 점막에서 가장 풍부하게 나타나는데, 그곳은 환경에 노출되어 유해한 박테리아가 축적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새로운 연구 결과는 파지들이 우리의 조직으로 퍼져나갈 수 있음을 보여준다. 몇몇 연구는 우리의 작은 손님들이 유익한 기능을 갖고 있을 수 있다는 단서를 제공해주고 있다 :
만약 파지가 우리의 조직 안으로 들어와 있다면, 그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하는가? 그들은 거기에서 무엇을 하는가? 단지 일부 연구만이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2004년 다브로스카(Dąbrowska)의 연구팀은 특정 종류의 파지가 암세포 막에 결합하여, 생쥐에서 종양의 성장과 확산을 억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몇 년 후 다브로스카의 지도교수이며 파지 전문가인 Andrzej Górski는 파지가 마우스 면역계 내로 주입됐을 때, T 세포 증식과 항체 생성을 촉진시킬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생쥐에서 파지는 이식된 장기 조직을 면역계가 공격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었다.
파지는 또한 염증을 감소시키고, 면역계를 조절할 수 있다. "파지옴"이 우리 몸에서 하는 일을 이해하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지만, 초기 징후는 긍정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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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 생리학 분야에서 해야 할 일이 많다. 이 기사들 중 어떤 것도 진화를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고세균 생물학이나, 파지 생물학의 어떤 것도 진화론과 상관없는 것으로 보인다. 폴 넬슨(Paul Nelson)의 말처럼, 우리는 지적설계에 의한 접근을 제안한다. "무언가가 작동되고 있다면, 그것은 우연히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다윈의 안경을 벗고, 이 새로운 연구 분야를 살펴보라. 한 요소도 제거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y complex,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에 대한 추가적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관련기사 : 살균 바이러스 ‘파지’ 비밀 밝혀 : 매일 300억 마리 유입, 병원균의 세포막 공격 방어 (2017. 11. 22. ScienceTimes)
http://www.sciencetimes.co.kr/?news=%EC%82%B4%EA%B7%A0-%EB%B0%94%EC%9D%B4%EB%9F%AC%EC%8A%A4-%ED%8C%8C%EC%A7%80-%EB%B9%84%EB%B0%80%EC%9D%84-%EB%B0%9D%ED%9E%88%EB%8B%A4
출처 : CEH, 2017. 11. 30.
주소 : https://crev.info/2017/11/health-may-depend-good-viruses-microbes/
번역 : 미디어위원회
과학사와 신학 해석사
(시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김홍석 구약학 박사
I. 서론
과학, 특히 자연과학의 연구결과들과 주장들은 성경의 해석에 영향을 미쳐왔고, 성경의 해석에 의해 다양한 신학들이 형성되어왔다.
유신진화창조론적 관점에서 창조와 관련된 성경본문을 해석하게 되면 다음과 같이 된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고 믿는다.(성경)
생물들은 진화해왔다고 믿는다.(진화론 과학)
하나님께서 생물들이 진화해 가도록 창조하셨다고 믿게 된다.(유신진화론)
생물 진화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에, 지구는 오래 되었고, 따라서 우주도 오래 되었다.
창세기 1장의 기록에 따르면, 땅에 기는 것보다 조류가 먼저 출현하고, 땅에 기는 것과 짐승들과 사람이 같은 날 출현한다. 최초의 사람은 유인원을 거치지 않고 흙으로 직접 창조되었다. 최초의 여성은 유인원을 거치지 않고 아담 갈비뼈로 직접 창조되었다.
진화론에 따르면, 하루 사이에 생물들이 이렇게 갑자기 진화할 수 없으며, 아담과 하와는 유인원에서 진화한 존재이다.
따라서 창세기 1장의 하루는 실제 24시간일 수 없으며, 생물출현순서도, 지구와 우주천체들의 출현순서도 맞지 않다. 그러므로 성경 기록을 골격가설로 해석하게 된다.
이 시대의 과학과 성경 해석 간의 갈등의 주제는 크게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각각을 지지하는 것으로 주장하는 자연과학적 연구 결과들과 성경의 본문 해석들이 공존하고 있다.
이러한 자연과학적 이해가 신학자들의 성경 해석에 실제로 어떻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예를 들어본다.
에드워드 영(E. J. Young)은 “땅의 연대는 얼마나 될까? 인간의 연대는 얼마나 될까? 오늘날 거의 보편적으로 가르쳐지는 바에 의하면 인간의 연대는 수백만 년이고 땅의 연대도 수백만 년이다. 성경은 솔직히 인간의 태고성의 주제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연대를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E. J. Young, 「창세기 1·2·3장 강의」, 서세일 역(서울: 한국로고스연구원, 1998), 48.).
고든 웬함(Gordon J. Wenham )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날이니라”에서 “날”(םוי)은 24시간의 기본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에 대하여는 의심의 여지가 거의 없다.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었다는 언급이 있고, 첫째 날부터 일곱째 날까지 열거되고 있으며, 일곱째 날에 하나님께서 안식하셨다는 내용은 한 주간 동안의 하나님의 창조 활동을 기록한 것이다. 다른 데서 “날”은 “때”를 나타내는 매우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지만 창조 톨레도트의 “~째 날이니라”에서 “날”은 문맥상으로 하루를 의미한다. 여기서 고든 웬함은 창세기 1장의 “날”이나 시편 90편 4절 “주의 목전에는 천년이 하루 같다”는 등의 본문들을 들어서, 과학적 이론과 성경적 계시를 관련시키려고 하는 것은 위험한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창세기 기록자의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Gordon J. Wenham, Genesis 1-15 vol. 1, Word Biblical Commentary (Waco, TX: Word Books, 1987), 16.).
베스트만은 이것을 두고 창세기 기록자가 창조활동의 시간을 날의 개념에 입각하여 구분 지으려고 한 것이라고 여기며, 고든 웬함은 여기에 동의한다(Gordon J. Wenham, Genesis 1-15 vol. 1, Word Biblical Commentary (Waco, TX: Word Books, 1987), 19.). 창세기 기록자는 하루가 빛으로부터 시작하여 어둠으로 끝나든 어둠으로 시작하여 빛으로 이어지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날”의 해석에는 문자적인 24시간의 하루로 보는 견해(L. Berkhof,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 Wm. B. Eerdman Pub. Co., 1958), 155.), 긴 시대로 보는 견해(F. Davidson, The New Bible Commentary Vol. I (London : The Inter Varsity Fellowship, 1954), 77.), 창조과정의 지질학적 시대로 보는 견해(2세기경의 요세푸스, 이레니우스, 3세기경의 오리겐 등도 이러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최종진, 「구약성서개론」(서울: 도서출판 소망사, 1998), 119.),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 긴 시간 간격이 존재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J. P. Free, Archaeology and Bible History (Wheaton : Scripture Press, 1962), 21을 참조할 것. 그는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를 루시퍼의 타락의 결과로 본다. Herman Bavink는 이 혼돈의 기간이 얼마든지 오랜 시간이 될 수 있다고 한다. Herman Bavink, Our Reasonable Faith (Grand Papids : Wm. B. Eerdman Pub. Co., 1956), 172.), 문학적 표현기법으로 보는 견해(Young, 「창세기 1·2·3장 강의」, 71, 최종진, 「구약성서개론」, 120.), 하루를 환상(vision)으로 보는 견해(J. D. Douglas는 창세기 1장은 하나님께서 여섯 가지 환상들로 하나님의 창조활동을 보여주신 것을 하루하루로 기록한 것이라고 제안한다. Douglas, New Bible Dictionary I (Grand Rapids : Eerdmans, 1965), 270-72.)
등이 있다.
특히 지구와 우주의 시간의 문제에 대하여 신학자들의 성경 해석은 다음과 같이 아주 다양하다.
결국 성경해석의 문제로 귀결되며, 여기서는 다음과 같은 주제들에 대하여 성경해석을 왜 이렇게 하는 것인지 또는 해야만 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논의하고자 한다.
세계는 무에서 말씀으로 창조되었다.
창세기 1장의 하루의 길이.
므두셀라는 실제로 969년을 사셨는가?
창세기 5, 11장과 마태복음의 족보 생략 여부.
다음의 내용들은 2015년 뉴스앤조이에 기고했던 원고의 내용을 요약하였음을 밝힌다.
창조과학회는 공식적으로 우주와 지구의 연대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긴 연대가 아니라 매우 짧은 연대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짧은 연대가 과학적으로 몇 년인지는 현재의 과학수준에서는 알 수 없다. 빅뱅이 아닌, 하나님의 초월적 창조에 의해 우주가 탄생한 후 우주의 연대가 얼마나 지났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한국창조과학회회는 우주의 연대 자체에 대하여 과학적으로는 다양한 의견을 존중하지만, 빅뱅에 의한 우주탄생은 과학적 허구가 매우 많다고 생각한다.
지구와 우주의 나이가 매우 젊다는 주장에 대하여, 100억 광년 크기의 우주를 보고 있는 지금 그것은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빅뱅에 의해 100억 광년 크기의 우주가 되었다는 주장은 하나의 이론일 뿐이며, 많은 문제를 안고 있고, 여러 가정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관찰되는 우주는 빅뱅으로 설명하기에는 너무나 높은 질서도를 가지고 있다. 또한 아무리 먼 곳에 있는 은하도 이미 성숙한 완벽한 형태를 가지고 있다. 우주의 빅뱅이론도 계속 변해서 최근에는 가속 팽창하는 우주를 설명하기 위해 모르는 물질(dark matter)과 모르는 에너지(dark energy)로 96%를 설명해야 한다.
우주에 대한 연구가 증대되면서 우주는 기존의 우주원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구조물 등이 발견되고 있다. 우주가 팽창하고 있다는 관찰은 사실일 가능성이 높지만, 우주가 팽창한다고 해서 과거 한 번의 대폭발로 시간, 공간, 물질, 생명, 질서가 나왔다는 주장은 참으로 수긍이 가지 않는 단지 가설에 불가하다. 우주는 신비하다. 우주는 자신이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를 우리에게 아직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 신비 앞에서 다만 하나님의 창조의 놀라우신 능력과 지혜를 만나게 될 뿐이다.
사실, 젊은 연대를 주장하는 결정적인 근거는 과학적인 연구결과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성경이다. 그리고 과학적인 발견들 가운데서도 젊은 연대를 지지하는 많은 연구결과들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연대를 지지하는 과학적인 연구결과들 역시 동일과정설(uniformitarianism) 가정(assumptions)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실제 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지구와 우주의 기원연대에 대한 자연과학적 연구들은 실제 나이를 알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이 세계의 시작상태를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연과학적 연구는 이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하여는 지금의 상태에 이르기까지 동일과정설에 입각한 가정들을 설정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자연과학적 연구결과들은 가정 하에 겉보기 나이(apparent age)를 측정해낼 수 있는데 이는 사용하는 시계와 가정에 따라서 매우 다양하여 수십억 년~수천 년까지 매우 다양한 결과를 보여준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이 세계의 시작은 자연과학연구가 설정하는 가정들과는 매우 다르다. 창1:14-19에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광명체(마오르, lights)들을 ‘하늘’에 두셨다고 하시지 않고 ‘하늘의 궁창’에 두셨다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늘’보다 더 구체적인 공간적 위치를 알려주시려는 의도를 가지고 계심을 전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늘의 궁창’은 땅과 인접하고 있는 공간으로서 공기가 있어서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대기권에 해당하는 특별한 공간이며(창1:7,8,), 이는 하늘에 속해 있으면서 땅과 인접하여 있기 때문에 ‘땅위 하늘의 궁창’(창1:20)이라고 부르는 공간이다.[1]
창 1:14-19에서 ‘광명체들’을 ‘하늘의 궁창’에 있어 ‘땅을 비추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으며, ‘아침이 되고 저녁이 되니 이는 넷째 날이니라’를 의미론적 관점에서 바라보면, 창조된 천체의 빛들이 모두 하늘의 궁창에 위치하여, 창조된 넷째 날 그 즉시로 그 빛들은 땅을 비추었다는 것이다.
이는 창세기의 시간해석 차원에서 보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별빛이라 하더라도 그 빛은 창조된 그 날 즉시 땅을 비추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만약 실제로 수억 광년 멀리 떨어져서 창조된 별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별로부터 나오는 빛이 지구에 도달하기 위하여 수억 년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니라, 태양계, 우주의 천체들이 존재하기 시작한 처음부터 그 빛은 지구의 땅을 비추면서 시작되었다. 따라서 수억 광년 멀리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는 별빛이 관찰된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수억 년 전부터 그 별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는 마치 아담에게 태아기, 유아기, 소년기가 없이 청년 또는 성년으로 시작되었던 것처럼 태양계와 우주의 모든 천체들도 성숙하고 완전한 모습으로 갑자기 생겨나서 완벽하게 기능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한다.[2] 세계의 시작은 과학적으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있으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는 것이 창세기 1장의 내용이다. 이것이 성경적인 창조신학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초과학적으로 시작된 세계의 기원에 대한 연대는 과학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측정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다.[3]
또한 연대측정을 위하여 다양한 시계(방사성동위원소, 방사성탄소 연대측정 등)를 사용하는데, 시간측정을 위해서는 이 시계들이 일정한 속도로 가야한다. 그런데 이 시계들이 일정하게 가기 위해서는 대기 중의 방사성탄소의 비율 등 대기의 조성 비율이나 온도, 지구자기장의 세기 등의 변인들이 안정된 상태로 지속되어야 하는데 실제로는 잘 알 수 없으며, 오히려 지층과 화석 그리고 지구자기장의 세기에 대한 관찰들에 의하면 과거 지구의 환경조건들이 지금과는 매우 달랐다는 수많은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다.
따라서 자연과학이라는 도구는 지구와 우주의 실제나이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없으며, 다만 일정한 가정 하에 값을 구하는 것이며, 그것이 과학적인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 의하면, 실제 세계(real world)는 그러한 가정들과는 달리 선악과사건, 노아홍수, 바벨탑사건을 거치면서 환경은 범지구적인 범위를 넘어 우주적으로 격변이 있어왔음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지구와 우주의 실제나이에 대하여는 하나님만 알고 계시며 자연과학으로는 그것을 알 수 없으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오직 성경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동일한 성경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다양한 주석, 해석, 주장들을 할 수 있으며, 특히 성경에 기록된 시간에 대하여는 다양한 주석들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성경연대를 문자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왜 그렇게 이해하려고 하는 것일까? 성경은 기원의 연대를 충분히 구체적으로 알려주려고 의도하고 있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성경기록에 의한 기원의 연대는 무엇인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하여 오직 성경을 통해서 논의해 보고자 한다.
II. 성경은 기원의 연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려고 의도하고 있을까?
2.1.성경기록상의 시간의 연속성
창세기 시작 절(창 1:1)에도, 창세기의 마지막 절(창 50:26)에도 공히 시간이 기록되어있다. 특히, 창세기 1장은 시간기록으로 편만해 있다. 첫 단어는 “태초에”(베레쉬트)라는 ‘시간’을 가리키는 단어다. 이 단어는 동시에 성경의 첫 단어이기도 하며, 창세기의 히브리어 제목이기도 하다.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1장에 이 세계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태초’, ‘낮’, ‘밤’, ‘저녁’, ‘아침’, ‘첫째 날’(또는 하루), ‘둘째 날’, ‘셋째 날’, ‘사계절’, ‘1년’, ‘넷째 날’, ‘다섯째 날’, ‘여섯째 날’이라는 ‘시간 단위’들로 구성된 자세한 시간의 얼개 위에 순서대로 기록한다.
성경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하지만 기록자는 극소수의 특정한 사람들과 관련하여서만 시간을 명시한다. 예를 들면, 아담이 130세에 셋을 낳았다고 기록한다(창 5:3). 하지만 셋을 낳은 후 800년 동안이나 자녀들을 낳았다고 기록하면서도 셋 이후에 태어난 수많은 자녀들에 대하여는 단 한 사람도 이름이나 시간을 기록하지 않는다(창 5:4). 셋도 105세에 에노스를 낳은 후에 807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다고 기록하지만 에노스 이외에는 이름이나 시간을 기록하지 않는다(창 5:6-8).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5장과 11장의 족보에는 한 세대에 한 사람씩을 선택하여 해당 아들의 이름과 그를 낳은 나이를 통해 시간들을 빠짐없이 연속적으로 기록함으로써 ‘태초’로부터(창 1:1) 요셉이 죽은 시간까지(창 50:26) 이어지도록 기록한다. 그렇다면 기록자는 시간 기록을 통하여 그 사건이 발생했던 시간을 후대의 독자들 즉 우리에게 알려주기를 의도했던 것일까? 웬함은 “그것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면, 우리는 역사적인 문제들에 빠지게 된다. 많은 고대인들은 태고에는 사람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장수했다고 생각했다. 창세기 5장은 그러한 개념들을 반영하며, 인류 역사가 아주 먼 과거 속으로 소급하고 있음을 반영한다.”라고 한다.[4]
영(E. J. Young)은 “땅의 연대는 얼마나 될까? 인간의 연대는 얼마나 될까? 오늘날 거의 보편적으로 가르쳐지는 바에 의하면 인간의 연대는 수백만 년이고 땅의 연대도 수백만 년이다. 성경은 솔직히 인간의 태고성의 주제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연대를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말한다.[5]
그렇다면 창세기 기록자는 단지 과거의 사건이 일어났던 순서만을 알려주려고 의도했던 것일까? 하지만 성경은 단순히 순서만을 알려주는 것으로는 지나치게 자세하게 시간을 기록한다. 그렇다면 그 의도는 무엇일까? 누군가가 사건을 말할 때 시간을 말하는 것은 시간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다. 만약 단지 족보만을 알려주기 위한 목적만 있었다면 창세기 10장이나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과 같이 이름만을 기록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담 계보, 셈 계보에는 특별하게도 아담으로부터 아브라함까지 아들을 낳은 나이를 통해 자세하고 정확한 시간을 기록하며, 이삭과 야곱의 출생에 이르기까지 자세히 시간을 기록한다. 그리고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간 시간과 애굽에 체류한 시간, 그리고 애굽에서 나온 시간을 출애굽기를 거쳐 열왕기의 솔로몬왕에 이르기까지 끊임없는 시간을 전한다. 이러한 실제로부터 성경은 창1:1의 ‘태초’로부터 끊임없이 연속적인 시간을 전하고자 의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하게 된다.
2.2.연대에 관련된 기록들에 위치한 문학적 장치들
2.2.1. 창세기 1장 1절과 5절 사이의 시간
첫째, 본문의 내부적 관계를 살펴보면, 히브리성서 맛소라 텍스트 최종편집자가 보여주는 본문의 구조에서 분명하고 질서정연한 형식을 발견할 수 있다. 히브리성서 맛소라 텍스트(BHS)에 따르면, “~째 날이니라” 뒤에는 항상 문단나누기 표기(페투하)가 배치되어 있다(창1:5,8,13,19,23,31). 그러므로 맛소라 텍스트의 최종편집자의 의도는 하루 단위로 문단을 나눈 것으로 보이고, 이는 곧 창세기 기자의 의도를 반영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분명하고 통일된 형태를 보여주고 있으며, 이러한 통일된 형식은 기록자의 의도적인 구성으로 보인다. 문단구분 표식 페투하의 배치에 의하면, 창세기 1장 1-5절이 하나의 문단을 이루는 구조로서 하루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창세기 1장 2절은 창세기 1장 1-5절이 이루고 있는 하나의 문단 내에 배치되어 있다. 이것이 우연이 아니고 맛소라 본문 창세기 최종편집자의 의도적인 구문론적 구상이라면, 그리고 그것은 최초 창세기 기록자의 의도를 왜곡하지 않고 잘 전달하고 있다고 받아들인다면[6], 창세기 1장 2절은 창조 주간의 맨 첫날에 대한 서술의 일부에 해당하는 것으로 볼 수 있게 된다.[7] 따라서 창세기 1장 1절과 2절 사이에는 긴 시간 간격이 존재하지 않는다.[8] 창세기 1장 1절이 창조 주간의 처음 하루에 포함되는 활동이며 동시에 이는 태초에 있었던 창조 사역의 시작이므로 태초의 창조사역에 대한 선포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전체 서술에 있어서, 창세기 1장 2절의 ‘혼돈과 공허’라는 서술이 의미하는 위치적인 기능과 범주는 창세기 1장 1절에 창조된 '천지' 가운데 '지'(그 땅)의 상태에 대한 설명으로서[9], 창세기 1장 1절에 언급한 그 땅에 대하여 묘사에 해당한다.[10] ‘그 땅’ 즉 첫 날의 땅이 혼돈하고 공허했던 것은[11] 이틀 후에 물 밖으로 나와야 할 땅이 아직도 물속에 있었기 때문에 '혼돈'했다고 묘사한 것이며, 앞으로 식물들과 생명체들로 가득 채워져야 할 땅이 아직은 아무 것도 채워지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공허'했다고 묘사한 것이다.[12]
둘째,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2-3장을 통하여 아담으로 말미암아 죽음이 들어왔으며 그 이전에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았음을 분명히 기록한다. [13] 아울러 이 기록은 창세기 2장 17절과 로마서 5장 17절과 6장 23절을 상호 대조함으로써 죽음이 죄의 대가임이 더욱 분명해진다. 즉 죽음과 고통은 선악과 사건 이후에 생겨난 ‘죄의 대가’이다.[14] 그런데 간격이론은 아담이 창조되기도 전에 이미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생물들의 죽음이 존재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된다.
셋째,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1장에 창조의 과정을 낮, 밤, 저녁, 아침, 날 등 시간과 함께 세세하게 기록하였고, 아담 계보와 셈 계보에서는 아들을 낳은 나이와 수명까지 시간에 대하여 면밀하게 기록하였다. 창세기 전반에 걸쳐 창세기 기록자는 이렇게 상세하게 시간을 기록한다는 사실을 깊이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창세기 기록자가 창세기 1장 2절에 하나님의 심판과 재창조 사이의 장구한 시간을 감추어 놓았다고 해석하는 것은 창세기 전체적으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는 시간의 상세도에 비추어 볼 때도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2.2.2.창세기 1장의 하루
창세기 1장의 ‘엿새’는 은유적 의미의 시간인지, 아니면 문자적 의미의 24시간 하루의 연속으로서의 엿새를 의미하는 것인지와 관련하여 본문의 내부적 관계를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창세기 1장의 모든 “~째 날이니라” 앞에 배치된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고”는 창세기 기록자가 창세기 1장의 하루가 24시간 하루임을 전달하기 위해 채택한 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둘째, 창세기 기록자는 ‘첫째 날’을 수식하면서 의미를 한정해 주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의 바로 앞에 저녁과 아침을 설명하고 정의하는 낮과 밤의 정의(definition)를 배치하였다. 이로써 낮과 밤은 일몰과 일출에 의한 문자적 의미의 저녁과 아침임을 한정해 주는 기능을 수행한다.
셋째, 창세기 기록자는 창세기 1장 5절의 ‘첫째 날’에 대한 기록에 있어서 원어 단어를 서수 ‘첫째’(리숀)가 아닌 기수 ‘하나’(에하드) 즉 ‘하루’(one day)라고 기록함으로써 여기서 ‘하루’라는 시간단위가 창조되었음을 알려준다. 그리고 이렇게 창조되고 정의된 하루가 이후부터 계속되고 있음을 보도한다. 그러므로 본문의 구조 속에 나타나 있는 기록자의 의도를 반영한 장치들의 기능을 다음과 같이 도식화할 수 있다.
< 창세기 1장 “~째 날”에 대한 문학적 장치들>
넷째, 창세기 1장 14-19절의 하나의 문단 내에는 낮, 밤, 저녁, 아침, 넷째 날, 계절, 날, 해, 넷째 날 등 여러 시간단위들을 공존하도록 배치함으로써 기록자는 ‘넷째 날’이 24시간 하루임을 분명히 한다.
다섯째, 창세기 기록자는 천체들이 창조된 바로 그 날부터 천체의 빛들은 지구의 이 땅을 비추면서 우주의 천체들과 지구의 공존이 시작되었다고 기록함으로써 수억 년 이상 멀리 떨어져 보이는 별빛 문제에 대하여 창조신학에 따른 시공간적 이해를 제공한다.
여섯째, 창세기 기록자는 태양이 만들어진 넷째 날 이전이나 그 이후에도 하루를 여전히 동일하게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로 묘사함으로써 창세기 1장의 엿새가 모두 각각 동일한 24시간 하루임을 강조한다.
일곱째, 기록자는 히브리성서 맛소라 텍스트(BHS)의 문단 구분을 통해서도 창세기 1장의 엿새가 모두 각각 동일한 하루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다.
여덟째, 하젤이 지적한 바와 같이, 출 20:8~11에서 7일째 안식일로 지켜야 하는 날이 ‘우리의 하루’ 이므로 동일 문단 내 서술된 6일 또한 ‘문자적 24시간이 하루인 6일’이다.[15] 만약 이스라엘사람들이 24시간 하루 동안으로 지킨 이 안식일이 하나님의 의도가 아니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약속하신대로 안식일을 범한 데 대한 엄중한 벌을 내리셨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벌은 엄중해서 죽이라고 명하셨기 때문이다(출 31:15). 그러므로 안식일인 일곱째 날은 24시간 하루임이 틀림없으며, 따라서 동일한 문장 내에 위치하고 있는 엿새 또한 24시간 하루의 연속된 엿새로 보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아울러, 출애굽기 31장 15-17절에서도 동일하게 안식일 규례를 주시면서 31장 17절에서 그 이유를 말씀하시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 쉬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안식일을 지켰으며 그것은 24시간 하루였다. 그러므로 여기서 엿새 동안이란 24시간 하루의 연속된 엿새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16]
아홉째, 창세기 1장의 그 날들은 헤아려졌으며, 성경에서 이렇게 헤아려진 경우에는 24시간 하루를 의미한다. 구약성경에는 150회에 걸쳐 이러한 경우가 기록되어 있다.[17]
열째, 만일 창세기 1장의 하루가 어떤 다른 긴 시간을 의미한다면 그것을 의미하는 분명한 단어들로 다른 문장을 만들지 못했을 리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여섯 단계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엿새라고 말씀하셨다. 창세기 기록자가 창조주간의 엿새를 긴 시간에 걸친 여섯 단계로 이해하고서도 엿새라고 기록하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모세오경이라는 맥락에서 볼 때, 그는 창세기 1장에서 뿐만 아니라 출애굽기 20장 11절과 31장 17절에서도 엿새 동안 이라고 기록하였다. 모세는 창세기 1장에서만 하루라는 단어를 다른 곳과 달리 어떤 긴 기간의 의미로 사용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의 “~째 날”은 문자적인 의미의 24시간 하루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2.2.3.창세기 5장과 11장의 긴 수명들
창세기 5장의 아담계보 기록 구조는 “A가 x세에 B를 낳았고, A가 B를 낳은 후 y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A가 x+y세를 살고 죽었다.”라는 일정한 양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러한 구조는 다음과 같은 문학적 장치로 기능한다.
에노스는 게난을 90세에 낳았다(창 5:9). 게난을 낳은 나이를 10의 1로 줄이면 9세가 되고, 1개월을 1살로 계산하면 만 7.5세에 낳은 것이 된다. 게난은 마할랄렐을 70세에 낳았다(창 5:12). 이것은 7세가 되어서도 안 되고 5.8세가 되어서는 더욱 안 된다. 마할랄렐은 65세에 야렛을 낳았다(창 5:15). 짧은 한 문단 내에 65세에 자식을 낳은 사실과 895세를 살았다는 사실을 연결시켜 서술하고 있는 것은 창세기 기록자의 전략이다. 즉 95세가 믿기지 않아서 10분의 1로 줄이거나, 1개월을 한 살로 해석을 시도해보면 65세에 자식을 낳은 것과 조화될 수 없어 다른 어떤 해석도 불가하도록 장치해 놓은 것으로 보인다.[18]
야렛은 에녹을 162세에 낳았다(창 5:18). 에녹은 므두셀라를 65세에 낳았다(창 5:21). 므두셀라는 라멕을 187세에 낳았다(창 5:25). 라멕은 노아를 182세에 낳았다(창 5:28). 그리고 노아는 500세가 되어서야 야벳과 셈과 함을 낳았다(창 5:32). 아들을 낳은 나이를 모두 나열해 놓아도 아무런 수열도 발견되지 않는다. 그야 말로 들쭉날쭉 할 뿐이다. 그것은 실제로 아들을 낳은 나이들이기 때문이다.
즉 이러한 구조는 나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도록 배치한 엄격한 장치로서 기능한다. 창세기 기록자가 아담 계보의 모든 족보를 이러한 구조로 족보를 기록한 것은 의도적인 문학적 장치로서, 시간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의도에 의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므로 아담 계보의 시간, 나이와 수명은 구문론적 관점에서 본문의 내부적인 상관관계를 고려할 때 문자적으로 해석될 수밖에 없게 된다.
아울러, 노아홍수 사건에 대한 기록은 사건 발생 시간을 알려주기 위해 연월일을 세심하게 기록하였다. 그것은 노아 600세 되는 해 2월 17일이었다고 기록했다(창7:11). 방주에 타기 시작(2월 10일)한지 일주일이 지나고 비가 내리기 시작했으며(2월 17일), 40일 동안 줄곧 비가 내렸고(3월 27일까지), 150일 동안 물이 땅에 넘쳤으며, 150일 후에 물이 줄어들었고(2월 17일에 시작하여 5개월 동안), 7월 17일에 방주가 아라랏산에 머물렀다. 10월 1일에 산봉우리가 보였고, 40일 후에(11월 11일) 까마귀를 내보냈고 비둘기도 내보냈으나 있을 곳이 없어서 다시 돌아왔으며, 7일 후에(11월 18일) 비둘기를 보냈더니 감람나무 잎을 물고 왔고, 또 7일 후에(11월 25일) 비둘기를 보냈더니 돌아오지 않았고, 노아 601세 1월 1일에 땅에 물이 걷힌 것을 확인하였고, 2월 27일에 땅이 말랐다. 이에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방주에서 내렸다.
기록자는 이 사건의 시간에 대하여 매우 높은 관심을 가지고 정확히 전달하려는 의도가 분명해 보인다. 만약 실제로 그 시간들이 아니라고 가정해본다면 시간들을 기록할 필요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기록해서도 안 된다. 만약 정확한 시간이 아니라면 시간적인 모호성을 그대로 남겨둔 채로 얼마든지 충분히 사건을 보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자세하게 시간을 기록한 데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고 보는 타당하다. 그것은 시간을 알려줄 뿐만 아니라 기록된 그대로의 사실성 즉 실제로 그대로 일어났다는 문자적 해석을 뒷받침하는 것이 된다.
그런데 이렇게 자세한 노아 계보의 이 숫자들은 노아가 600세 되던 해라는 시간으로부터 시작되며, 이 나이는 아담 계보에서 노아가 500세에 아들을 낳았다는 기록과 맞물려 있다. 그러므로 노아 계보의 자세한 시간기록이 보도의 사실성을 강변하고 있는 것은 아담 계보의 나이 역시 문자적으로 해석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다.
셈 계보에서도 본문의 구성을 살펴보면, 자식을 낳은 나이와 함께 이후 몇 년을 더 살면서 자녀들을 낳았는지를 일정한 형식으로 기록하였다. 그것은 수명이 문자적인 의미로만 해석되도록 지시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즉 “에벨은 34세에 벨렉을 낳았고 벨렉을 낳은 후에 430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고”(창 11:16-17)라는 형식을 취함으로써, 464세를 산 수명을 다른 의미로 줄여서 해석해보려 한다면 34세에 아들을 낳을 나이를 함께 줄여야 하기 때문에 그러한 시도를 하지 않도록 방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문자적인 의미의 나이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러한 구조적 형식을 문학적 장치로 볼 때, 이는 시간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한 기록자의 의도에 의한 것으로 평가된다.
또한, 노아홍수를 기점으로 하여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데, 사람의 수명이 갑자기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900대의 나이로부터 점진적으로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1대 아담부터 10대 노아까지는 900수를 누렸고, 노아(10대)의 아들 셈은 600세를 살았다(창 5:3-31, 11:10-11). 이후 438, 433, 464세를 살았으며 바벨탑사건이 있었던 때인 벨렉(15대)은 239세, 이후 239, 230, 148세, 19대 데라는 205세를 살았다(창 11:12-32). 이렇게 나이의 점진적인 축소가 이어지면서 기록되어 있는 구조는 아담 계보와 셈 계보에 기록된 수명을 어떤 비율로도 축소할 수 없으며 다만 문자적인 해석만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장치로 기능하고 있다.[19]
III. 결론
과학사와 신학 해석사라는 제목으로 출발하여, 방대한 주제 가운데 시간의 문제에 대하여 살펴보았으며, 이는 결국 성경 해석의 문제이므로 연대문제에 대한 성경 본문 해석을 제시하였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해석의 성경적 타당성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았으며, 그 결과, 성경은 많은 문학적 장치들을 사용하여 자세하고 끊임없는 시간을 기록함으로써 창1:1의 ‘태초’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정확한 시간을 알려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끝으로 창조과학회 회원들 가운데도 연대문제에 대하여 이와는 다른 다양한 의견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것이 사실임을 밝힌다.
Footnotes
[1]이는 노아홍수를 겪으면서 달라졌기 때문에, 지금의 지구환경과는 다르다. 따라서 궁창을 지금의 대기권이라고 할 수는 없다.
[2]Wenham, Genesis 1-15, 6. 창세기 1장에는 승인 관용구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7회(4, 10, 12, 18, 21, 25, 31절) 사용되었다. 이는 모든 것이 완벽한 상태로 시작되었음을 의미한다.
[3]Eugine H. Merril, 「구약의 역사적 개요」, 김인환 역(서울: 총신대학교출판부, 1997), 56을 참조할 것.
[4]Gordon J. Wenham, Genesis 1-15 vol. 1, Word Biblical Commentary (Waco, TX: Word Books, 1987), 134.
[5]E. J. Young, 「창세기 1·2·3장 강의」, 서세일 역(서울: 한국로고스연구원, 1998), 48. 영은 창세기 1장의 엿새는 사건이 발생한 연대기적 순서를 의미하고 있지만 그 시간의 길이는 알 수 없다고 말한다.
[6]창세기의 내용이 창세기라는 이름으로 최종적인 편집을 거치기 전에 기록한 최초의 창세기 기록자와 지금 우리에게 전달된 창세기의 최종편집자는 다르겠지만, 그 의도와 의미의 전달에 왜곡이 없으며, 성경 전체를 공시적 관점에서 상호보완적으로 바라보고 최종편집자를 창세기 기록자와 동일시한다.
[7]김두석. “창세기 1장 1절과 2, 3절과의 관계 연구”, 「칼빈논단」, (2002): 133-158, 136-137, 150-151, 153과 Young, 「창세기 1·2·3장 강의」, 23-27, 31-33, 43을 참조할 것.
[8]왕대일은 창세기 2:3과 2:4의 구분에 있어서도 유대인들의 독법과 정경상의 형태를 따르는데, 이때 ‘페투하’의 단락 표기를 근거로 삼는다. 왕대일, 「구약신학」(서울: 도서출판 성경학연구소, 2003), 343.
[9]Young, 「창세기 1·2·3장 강의」,33.
[10]Archer, 「성경 난제 백과사전」, 황영철 역(서울 : 생명의말씀사, 1993), 87-89 및 Keil & Delitzsch, 「구약해석 창세기」, 고영민 역(서울; 기독교문화사, 1987), 48-50.
[11]Rad, 「창세기」, 50-51.
[12]Keil & Delitzsch, 「구약해석 창세기」, 48-50.
[13]Boice, 「창세기강해I」, 문동학 역(서울: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1993), 78-79.
[14]창세기 2장 17절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로마서 5장 17절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로마서 6장 23절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15]Hasel, "The ‘Days’ of Creation in Genesis 1: Literal ‘Days’ or Figurative ‘Periods/Epochs’ of Time", 5-38.
[16]Schmidt, Die Schouml der Priesterschrift. 2d Ed. (Neukirchen-Vluyn: Neukirchener Verlag, 1967), 5, 68. “Considerations Based on Pentateuchal Sabbath Passages." Hasel, "The ‘Days’ of Creation in Genesis 1: Literal ‘Days’ or Figurative ‘Periods/Epochs’ of Time", 5-38.
[17]Hasel, "The ‘Days’ of Creation in Genesis 1: Literal ‘Days’ or Figurative ‘Periods/Epochs’ of Time", 5-38. Geisler, 「성경의 난해한 문제들」, 42.
[18]Geisler, 「성경의 난해한 문제들」, 51-52.
[19]Ibid. 아담 계보와 셈 계보가 이어지고 있는데, 그 수명은 점진적으로 줄어들고 있는 현상을 기록해놓았다. 따라서 아담의 나이를 93세로 10분의 1로 하게 되면 아브라함의 할아버지 나홀의 수명은 15세(14.8세)가 되어야 하기 때문에 그렇게 줄여서 해석할 수 없게 된다.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하나님의 창조를 믿는 것이
기독교의 신뢰성을 손상시키는 일인가?
(Does creation damage Christianity’s credibility?)
Lita Sanders
창조과학 단체(CMI 등)들은 창조론에 대한 입장을 비판하는 일부 기독교인들로부터 간혹 질문을 받는다. 심지어 어떤 기독교인들은 진화론(그리고 수십억 년의 지구 연대)을 수용하지 않고, 창조론을 믿는 것이 성경적 기독교 신앙에 유해한 것이라고 편지를 보내오고 있다. 한 독자는 이렇게 쓰고 있었다 :
당신들이 행하고 있는 기독교의 신뢰성에 대한 손상은 막대하다. 당신들은 지적인 사람들에게 찌라시 수준의 저급한 과학을 받아들일 것을 강요하고 있다. 당신들은 현대 생물학의 근간이 되고 있는 진화론과 현대 지질학에서 잘 확립된 사실들을 믿지 않고, 창세기 1장과 로마서 8:19-22절에 대해서 불합리하고 부정확한 해석을 하고 있다. 올바른 성경적 해석은 애매하거나 모호한 단어와 구절들을 명확한 단어와 구절들이 제공하는 빛을 사용하여 해석하는 것이다. 창세기 2장에서 ‘날(day)’이라는 단어는 명확하게 "시대(era)"를 의미한다. 창세기 1장의 같은 단어에 대해서 다른 의미를 발명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마찬가지로, 성경 구절의 문맥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올바른 해석에 도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사람들에 관하여 사람에게 말한 것이다. 어떤 종류의 하나님이 사람의 죄로 인해서 강아지와 화분에 있는 식물에 벌을 내리시는가? 당신들이 말하고 있는 파괴하고 심판하시는 기독교의 신을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경배하겠는가? 당신의 저지르고 있는 기독교에 대한 엄청난 해악을 하나님이 용서하실 수 있기를 바란다.
CMI의 리타 코스너(Lita Cosner)가 대답했다 :
나는 조금 혼란스럽다. 당신은 우리가 기독교 세계관에 손상을 끼치고 있기 때문에 화가 난다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크리스천은 어떤 사람을 의미하는 지를 묻고 싶다.
우리는 사람들의 여러 이론들보다, 성경이 더 신뢰할 수 있는 기록이라고 믿는 사람들이다. 어떤 주장이 잘 확립된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의 가르침과 다를 때에는, 크리스천이라면 성경의 말씀을 따르기로 결정하는 사람들 아니겠는가? 당신이 이 말에 동의할 수 없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크리스천은 무엇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고 살아가야한다고 생각하는가? 성경인가? 사람들의 이론인가?
창세기에 대한 우리의 해석은 소설이 아니라 성경의 기록에 기초한 것이다. 예수님의 시기부터 크리스천들은 성경 창세기를 기록된 그대로 해석해왔다. 왜냐하면 예수님과 신약성경의 저자들도 창세기의 기록을 그대로 인용하셨기 때문이다. (The use of Genesis in the New Testament을 보라). 수십억 년의 오래된 지구 연대는 동일과정설적 지질학(uniformitarian geology) 등장하면서 시작됐다. 장구한 지구 연대를 가리키는 구절은 성경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성경을 세속적 지질학에 꿰어 맞추기 위한 타협적인 시도들이 생겨났다. (Six Days? Really?을 보라).
창세기 2:4절에 나오는 ‘날(day)’이라는 히브리 단어는 다양한 의미로 사용될 수 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에서 사용된 날이라는 단어는 서수들로 수식되어 있고, "저녁과 아침"이라는 단어와 같이 쓰여 있기 때문에, 정상적 길이의 하루라는 의미를 강하게 전달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출애굽기 20:11절의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라는 말씀은 무엇이 되겠는가?
하나님은 사람의 죄 때문에 강아지를 벌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동물들도 모든 피조물과 같이 죄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사실 성경적 창조론자만이 동물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고통에 대한 논리적인 답을 할 수 있는 것이다. (God create over billions of years?을 보라).
성경에 기록된 창조를 믿는 것이 사람들의 믿음을 손상시키는 일이 아니다. 크리스천들은 성경의 기록이 첫 구절부터 신뢰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그들의 믿음에 대한 강한 용기와 담력을 얻는 것이다. 진화론은 수많은 반대 증거들로 인해 붕괴되어 가고 있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적 믿음 체계이다. 나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진화론과 동일과정설적 지질학(장구한 지구 연대)에 타협해버린 믿음에 대해서, 그리고 크리스천이라면 믿음의 기초를 어디에 두고 있어야하는 지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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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on: Why it Matters
출처 : CMI
주소 : http://creation.com/creation-damage-credibility
번역 : 미디어위원회
교회 내로 침투한 수억 수천만 년이라는 질병
(The “Disease” of Millions of Years)
by Ken Ham
수억 수천만 년이라는 개념은 일종의 질환과 같다. 그리고 생물학적 진화론은 하나의 증상과 같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질환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증상을 다루려하고 있다.
필자가 35년의 사역을 해오면서 내린 몇 가지 결론이 있다.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은 생물학적 진화는 거부하고 있지만, 지구의 나이에 대해서는 진정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목회자와 신학자들은 다윈의 진화론을 거부함으로써, 성경의 권위에 관한 타협의 문을 닫았다고 그들은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수십억 년의 지구 연대를 허락함으로써, 이들 기독교 지도자들은 "타협의 문"을 계속 열어놓고 있는 것이다. 그 문이 완전히 닫히지 않는다면, 다음 세대의 기독교 지도자들은 그 문이 좀 더 크게 열리도록 밀어낼 것이다. 이러한 타협은 교회에서 성경의 권위에(그리고 문화 전반에 걸쳐)대한 치명적인 손상을 입힐 것이다. 이러한 손상은 교회 내로 도덕적 상대주의를 허락하여 교회를 황폐화시킬 것이다.
창조과학자들은 진화론을 거부하고 창조론을 주장해서라기 보다, 젊은 지구의 나이를 주장함으로써 더 자주 공격받고 비난당한다. 예를 들어, 2010년 한 언론 매체는 “AiG를 비롯한 창조과학 단체들은 성경을 믿는 많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는 지구의 나이를 단지 6,000년 정도로 믿고 있다”라고 보도하고 있었다.[1]
2010년에 Vanity Fair magazine의 한 글은 창조박물관에 대해 비난하며, “과학은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 년임을 증명해왔다. 창조과학자들은 목청을 높여 지구의 나이는 대략 6000년 정도라고 떠들어대고 있다. 이것은 컴퓨터와 1천명의 노벨상 수상자들에 맞서서 체스 게임을 두는 것과 같다.”[2]
ABC TV의 굿모닝 아메리카는 창조박물관 개관(2007년 5월) 때에 이렇데 보도했다 : “거의 모든 자연사 박물관들은 공룡들은 인간이 출현하기 수천만 년 전에 멸종했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러나 창조박물관은 하나님이 공룡을 창조하셨고, 인간과 함께 동시대를 살았다고 가르치고 있다...”
연대 문제는 세속 과학에서 왜 그렇게도 중요한 문제일까? 왜냐하면, 수억 수천만 년의 시간이 없다면, 생물학적 진화론을 제안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구한 시간은 하나님 없이 생물체를 설명하려는 그들의 시도에 절대적으로 필요하기 때문이다.
크리스천들이 이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
1. 성경은 수억 년 또는 수백만 년에 대한 어떠한 힌트도 주지 않는다. 당신이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읽는다면, 성경은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6일 동안에 창조하셨음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 창세기에 기록된 족장들의 연대를 계산해보면, 태초 이후로 역사는 단지 대략 6천년 정도 지났음이 명백하다.
2. 사람들이 고안해낸 모든 연대측정 방법들은 오류 가능성이 있다. 그것들은 잘못된 가정들에 기초하고 있다. 진정한 신뢰할 수 있는 연대측정 방법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준비해두신 역사적 기록인 성경이다.
3. 장구한 연대와 타협한 기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 안으로 수억 수천만 년의 시간을 도입시킬 때에, 사망, 질병, 가시, 고통, 질병, 육식...등은 아담의 범죄 이전부터 있었으며 이러한 악한 것들이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궁극적으로 지구와 우주의 나이 문제는 오류에 빠지기 쉬운 죄 많은 사람의 생각이 권위가 있는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권위가 있는지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과거에 대한 오류에 빠지기 쉬운 사람의 생각을 받아들여야 하는가? 아니면, 성경의 절대적 권위에 도전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판단해야 하는가?
많은 목회자들과 기독교대학과 신학대학의 교수들은 세속적 과학에 의해서 오래된 지구의 나이를 받아들이도록 협박당하고 있다. 만약 수십억 년의 지구 나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은 비지성적이고 비과학적인 사람들로 비난당하는 것이다. 그것은 대개 학문적 자존심의 문제이다.
세속적 과학이 이러한 협박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수십억 년의 지구 나이는 하나님 없이 우주와 생물체들을 설명하는 세속적 과학자들이 믿고 있는 진화론이라는 종교의 기초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무신론자들과 불가지론자들은 진화론을 지지하기 위해서 수십억 년의 장구한 연대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타협한 기독교 지도자들은 생물학적 진화론만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지질학적 진화론 및 천문학적 진화론(수십억 년의 연대)도 거부해야할 필요가 있다. 교회와 크리스천 문화를 손상시키고 있는 이 타협의 문을 닫아버릴 많은 크리스천들이 필요하다. 성경의 권위가 도전을 받으면서, 서구의 성경적 기독교가 붕괴되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다. 수억 수천만 년이라는 개념은 교회에 침입한 하나의 질병과 같다. 생물학적 진화론은 단지 하나의 증상에 불과하다.
Footnotes
1. “Holy row creates headache for modern day Noah’s ark,” Laurie Goodstein, The Age, Dec. 7, 2010. Back
2. “Roll Over, Charles Darwin!” A.A. Gill, Vanity Fair, February 2010 Back
출처 : AiG. 2012. 5. 21.
주소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u/disease-millions-of-years
번역 : IT 사역위원회
오래된 지구 연대를 믿는 것은
진화론을 수용하는데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Students’ Perceptions of Earth’s Age
Influence Acceptance of Human Evolution)
AiG News
미네소타 대학의 한 연구에 의하면, 수십억 년의 지구 나이에 대한 학생들의 믿음과 인간이 진화되었다는 믿음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cienceDaily, 2010. 3. 11)
연구자들은 생물학 입문 과정에 있는 400 명의 학생들에게 진화론에 대한 지식, 정치적 및 종교적 견해, 고등학교 과학교육 등에 관한 설문조사를 실시하였다. 그 결과 정치적으로 좌파적 성향의 학생들은 오래된 지구 연대를 더 믿고 있었으며, 진화론과 더 친숙해 있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우파적 성향의 학생들은 젊은 지구 연대를 믿는 경향이 있었으며, 진화론을 신뢰하지 않고 있었다. (2009. 5. 16일자 News to Note에서 이것과 같은 결과를 보여주는 조사를 보고했었다.)
연구책임자인 미네소타 대학의 생물학자인 코트너(Sehoya Cotner)는 이렇게 논평했다. “중서부의 고등학교 생물 교사 4명 중 1명은 창조론이 지구상 생물들의 기원에 대한 하나의 설득력 있는 설명이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것은 허락될 수 없는 것이다.”(그녀는 “헌법은 학교에서 창조론을 가리키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라는 말을 인용하면서 덧붙이고 있었다).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학생들의 믿음, 태도, 경험 등을 반영하고 있는 조사 결과에서 수십억 년의 지구 연대, 진화론적 믿음, 정치적으로 좌파적 성향 등이 상호 관련성이 있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거기에 분명한 상호관계가 있다고 가정해 볼 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타협적인 태도는(특별히 장구한 지구의 나이를 받아들이는 것은) 후에 비성경적인 진화론을 받아들이는 미끄러운 경사로에 들어서는 일이라는 것이다. 미네소타 대학의 조사결과 자체가 그것을 입증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화제가 되고 있는 ‘이미 떠나버렸다(Already Gone)’ 연구는 (기독교를 떠난 젊은이들에 대한 보고) 이것을 강하게 가리키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을 명백히 말씀하고 있는 그대로를 의미한다는 원리를 포기하는 순간, 그 사람은 과학(즉 자연주의적 과학)에 입각하여 성경을 재해석해야 한다고 쉽게 결정해 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곧 성경의 모든 부분들에서 유행하는 반기독교적 개념들이 혼합되어지는 것이다.
For more information:
Where did the idea of “millions of years” come from?
Get Answers: Creation Compromises, Young Age Evidence
출처 : AiG News, 2010. 3. 13.
주소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10/03/13/news-to-note-03132010
번역 : IT 사역위원회
손상된 신경을 재건하는 바이러스
(A Virus That Rebuilds Damaged Nerves)
AiG News
바이러스들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완전히 부정적이다. 그러나 바이러스 요법(virus therapy)을 통한 치료 가능성은 대중들의 선입견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MIT Technology Review, 2009. 1. 22)
MIT의 Technology Review 지는 척수(spinal cord) 손상을 입은 환자를 치료하는 데에 강력한 돌파구를 갖게 되었다고 보도하였다. 그것은 척수 조직들의 재생을 돕기 위해서 유전공학적으로 바이러스들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캘리포니아-버클리 대학의 생물공학자인 성욱(Seung-Wuk Lee)은 바이러스들이 신체 조직들을 지지하고 조직이 정확하게 기능하도록 하는 화학 신호들을 제공하는 조직 골격구조(tissue scaffolds)들을 대체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을 희망하고 있었다. 바이러스들은 자기복제(self-replicating)와 자기조립(self-assembling)을 하기 때문에, 적절한 특성들을 발현하도록 설계되었던 조직 골격구조들을 대체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성욱은 M13이라 불리는 박테리아파지 바이러스(bacteriophage virus, 세균은 감염시키나 동물 세포들은 감염시키지 않는)를 연구하고 있는데, 이 바이러스는 길고, 가늘어 신체의 자연적 조직 골격구조를 이루는 단백질 섬유들과 유사하다. 실험실에서 성욱과 동료인 안나(Anna Merzlyak)는 M13을 신경 전구세포(neural-progenitor cells)를 함유하는 용액에 주입하였다. 바이러스들은 뉴런과 유사한 섬유 가닥들을 만들어내면서 자신들이 액체상태의 결정처럼 정렬하였다. 심지어 자기장은 더 복잡한 정렬을 하도록 바이러스들이 확산되는 것을 도와줄 수 있었다.
성욱의 다음 단계는 M13을 살아있는 동물에서 실험하여 동물의 면역계 반응을 모니터링 하는 것이다. 만약 그 실험이 성공한다면, M13은 손상된 척수조직을 재생하는 척추 손상 요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AiG News, 2009. 1. 31.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answers/news-to-know/news-to-note-january-31-2009/
번역 : IT 사역위원회
가장 오래된 결핵이라는 주장
: 결핵도 보시기에 심히 좋으셨던 창조의 한 부분인가?
(Oldest tuberculosis claim : Was TB part of the original very-good creation?)
by Tas Walker
한 국제 연구팀이 터키 서부에서 출토된 50만 년 전의 것이라고 주장되는 인간의 두개골에서 결핵(tuberculosis)의 증거를 찾아냈다는 것이다.[1] 그것은 인간의 결핵에 대한 가장 오래된 증거로 주장되고 있었다. 그 전까지 결핵은 이집트와 페루로부터 나온 수천 년 전의 미라들에서만 확인됐었다.
.지금은 완전히 인간인 것으로 판명된 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의 두개골
미국, 터키, 독일인들로 이루어진 연구팀은 오른쪽 눈구멍 바로 뒤쪽의 뼈를 따라 일직선상으로 된 아주 작은 1~2mm의 손상들을 발견했다. 미국의 형질인류학 잡지(American Journal of Physical Anthropology)는 2007년 12월 7일자 판에서 그에 관한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보고에 따르면, 두개골의 위치와 모습으로 보아 뇌를 둘러싸고 있는 뇌막을 파괴시키는 결핵성 연뇌막염(Leptomeningitis tuberculosa)이라고 부르는 결핵의 한 형태로 진단되었다.
결핵은 전염성이 강하고 치명적인 병이다. 결핵은 가장 흔하게는 폐를 공격하지만, 신경계, 순환계, 그리고 관절 등을 포함하여 몸의 다른 부위들도 공격한다. 과거에 결핵은 사람들을 열, 흉통, 기침, 각혈 등으로 사람들을 소진시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소모성 질환이라고 불렸다.
무비판적으로 이 50만 년을 받아들이는 오래된 연대를 믿는 크리스천들에게 (그들은 날-연대 이론, 간격 이론, 점진적 창조론, 구조가설 등과 같은 여러 이론들을 고안하여 성경 속으로 수억 수천만 년을 끼워 넣는다), 이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 화석은 하나의 딜레마를 생겨나게 한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이브를 창조하신 후 ‘심히 좋았더라(very good)’고 선언하실 때에, 결핵도 포함되어 있었는가?
오랜 연대를 일단 받아들이게 되면, 최초의 남자와 여자가 있기 오래 전에(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기 오래 전에) 결핵이 이 세상에 존재했었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기독교인들은 하나의 선택을 해야 한다. 이 인간 두개골이 50만 년이 되었다고 말하는 연대측정을 거부하거나,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의 신학적 의미를 빠져나갈 길을 찾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그래서 각혈을 하게하고 신체를 안으로부터 소모시키는 결핵이 그다지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그와 같이 고통스럽고 쇠약을 가져오는 질병의 창조가 하나님의 속성과 충돌되지 않는다고 왜곡시키는 것이다. 아니면, 오래된 연대를 믿고 있는 신학자들이 흔히 주장하는 것처럼[2], 호모 에렉투스는 (전 세계 여러 곳의 증거들이 인간이었음을 가리킴에도 불구하고) 영혼이 없는, 인간이 아닌, 아담 이전의 종족이라고 말해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택해야할 안전하고 분별력 있는 기준은 하나님의 명백한 말씀이다.
이 화석은 신학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연대적 문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연구원들은 화석의 나이를 측정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철학에 기초하여 화석의 나이를 추정했던 것이다. 그들은 이미 진화론을 믿고 있기 때문에, 그들의 믿음과 적합한 연대측정 결과를 나타내줄 것으로 예측되는 연대측정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How can the radiometric dates of millions and billions of years old be so wrong?을 보라)
두개골 위에는 어떠한 연대도 새겨져 있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 두개골은 필시 언어의 혼잡 이후 바벨탑으로부터 멀리 이주한 인간들 중 하나의 것으로, 홍수 이후의 것일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의 나이는 4,500년 미만일 것이다.
우리는 질병과 고통과 결핵이 하나님이 태초에 창조하셨던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런 것들은 인간의 범죄 이후 하나님이 이 땅에 내리셨던 저주의 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언젠가 예수님은 다시 오셔서 질병과 고통과 각혈을 파하실 것이다. 성경을 의심하지 말고, 오래된 연대를 의심하라.
References
1. Most ancient case of tuberculosis found in 500,000-year-old human; points to modern health issues, Physorg.com, 7 December 2007; www.physorg.com/news116230398.html.
2. The progressive creationist camp, as mostly epitomized by the teachings of Hugh Ross, founder of the long-age ministry Reasons to Believe. Because they accept such long-age ‘dating’, and teach that Adam was only created tens of thousands of years ago at most, even obvious human fossils must be ‘reinterpreted’ as ‘soulless hominids’.
*참조 : 성경의 모순으로 주장되는 것들 - 병원균과 질병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5615&t=board
성경의 모순으로 주장되는 것들 - 송곳니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5658&t=board
성경의 모순으로 주장되는 것들 - 흡혈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5637&t=board
성경의 모순으로 주장되는 것들 - 생물 독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5628&t=board
출처 : Creation, 2008. 1. 18.
주소 :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499/
번역 : IT 사역위원회
점진적 창조론에 대한 성경적 비판
임번삼
1. 들어가는 말
사도 바울은 여러 서신을 통해 이단사설의 출현에 대해 경고하면서 이를 분별할 수 있도록 아는 일에 힘쓰라고 하였다(갈 1:6-12, 벧후 2:1, 3:3-7, 요일 4:1). 그리고 다른 복음을 전한다면 저주를 받는다고 했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 할지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이단사설은 항상 공교한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곤 한다. 얼른 들으면 복음적이며 합리적인 듯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성경적 교리에서 벗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의 배후 세력은 사탄이지만, 그런 주장을 하는 학자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사탄의 책략에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단사설이 성경을 탐구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들도 우리처럼 같은 하나님을 믿고, 같은 진리를 탐구하지만, 찾는 길이 다를 뿐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과의 싸움은 항상 긴장되고 치열하다. 이 싸움에서 이겨야 바른 복음을 지킬 수 있으며, 진다면 복음이 혼잡 되고, 많은 영혼이 지옥으로 향하게 된다. 이처럼 중요한 싸움에서 이기려면 냉철한 이성으로 성경에 근거한 이론을 개발해야 한다.
교회사에는 수많은 이단사설들이 있었다. 이단의 주제는 주로 창조론, 기독론, 종말론이었다. 현재는 종말론이 기증을 부리지만, 초대교회 시대에는 예수님의 정체성에 대한 기독론이 많았다. 그러나 니케아(325년), 콘스탄티노플(381년), 에베소(431년, 449년), 칼케돈(451년) 등의 여러 종교회의에서 삼위 하나님이 동일본질로 한 분이라는 삼위일체론을 확립함으로써 오늘의 전통신학이 확립되었다. 천지창조에 대해 다양한 이론이 있지만, 전통복음에 대치되는 주장에 대해서는 비판을 해야 한다. 전통복음이란 아담의 범죄로 고통과 죽음이 왔고, 죽음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영원한 생명을 되돌려 주시려고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셨고, 삼일 만에 창조주의 능력으로 죽음에서 부활하시어 성도들에게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이러한 교리를 부인하거나 이상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것은 비 복음적이며 이단적이다. 지금은 복음수호를 위한 교단 차원의 종교회의가 필요한 시점이라 생각한다.
창조 논쟁은 원시역사(창1-11), 특히 창세기 1장의 해석 차이에 기인한 것이 대부분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대표이론으로 문자적 6일 창조설(문자적 24시간설), 제목설, 간격설(재창조설), 날-연대설(날-시대설), 점진적 창조론(진행적 창조론), 골격가설(비유설) 등이 있다. 문자적 6일 창조설과 제목설을 제외한 나머지 이론들은 서로 공통점이 많다. 그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긴 연대를 설정한다는 점이다. 그들 대부분은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했고, 우주는 빅뱅으로 탄생했다고 믿지만, 일부에서는 긴 연대만 믿고 진화론을 부정한다. 이처럼 많은 창조론이 창조와 진화를 포함하므로, 이들에 대한 바른 정의와 분류작업이 필요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창조론적 주장이 많으면 xx창조론, 진화론적 내용이 많으면 xx진화론으로 분류하는 것이 합리적이라 생각한다. 이런 관점에서 “점진론적 창조론”은 사실상 창조론이 아닌 “점진적 진화론”으로 분류하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신 진화론의 일종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말이다. 비록 휴 로스가 반틸(Howard Van Till)의 유신진화론을 비판했다 할지라도 말이다.
2. 점진적 창조론(진행적 창조론)
점진적 창조론은 캐나다의 천문학자 휴 로스(Hugh Ross)를 필두로 데이비스 영(Davis A. Young)과 로버트 뉴먼(Robert Newman) 등이 주장한 이론이다. 휴 로스가 토코아폴스 대학(Toccoa Falls College)에서 행한 강의시리즈(Staley Lecture Series, March 18-20, 1997)를 그의 웹사이트(http://www.reasons.org)에서 발췌한 내용에 근거해 정리한 점진적 진화론의 핵심적 주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하나님이 우주만물의 원료인 시간, 공간, 물질을 만드신 후, 자연법칙에 따라 운행이 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즉, 우주만물이 자연법칙에 따라 장기간에 서서히, 점진적으로 오늘의 질서로 발전(진화)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계를 지배하는 것은 자연법칙뿐이며, 창조주는 자연계의 운행에 일체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사실상 진화론의 뿌리인 자연주의 이론을 대변하는 말이다. 진화론과 다른 점이 있다면, 필요에 따라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신종의 탄생을 돕는다는 것이다.
둘째로 빅뱅설을 수용한다. 우주는 120-150억 년 전에 빅뱅에 의해 형성된 후 계속 팽창하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가 팽창함에도 불구하고 대기의 수소농도가 일정한 것은 수소가 계속 생성되기 때문이라는 호일(Fred Hoyle) 등의 정상상태이론(steady state theory 1948)도 지지한다.
셋째는 창세기에 나오는 대홍수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국한된 국지홍수였다고 주장한다. 로스는 토코아 폴스 대학에서 행한 연설에서 “만일 한 번의 홍수가 지구상의 모든 지질학적 증거와 화석을 남겼다면, 노아는 일 년 동안 135m 길이의 방주에 지구상의 모든 생물종을 태웠어야 한다”고 비판했다.
넷째는 하나님이 진화론적 방법으로 장기간에 서서히 질서도를 높여 오늘의 우주만물이 형성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따라서 생물의 점진적 진화와 원숭이로부터 사람의 진화 등을 모두 수용한다.
다섯째로, 오랜 지구연대를 주장한다. 영(Davis A. Young)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성경은 날에 대해 24시간을 지칭한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으므로, 크리스천 과학자들은 이를 받아들이고 지구과학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지질학자로서 수십억 년의 사고방식에 익숙하므로 창세기의 날-연대 개념을 지지한다.... 창세기 1장을 비유로 보는 견해는 과학자들에게 속박으로부터 큰 자유를 준다.”(1)
여섯째로, 아담 이전에 살던 사람들과 동물들이 아담의 범죄 이전에 죽었다고 말한다. 로스는 토코아폴스 대학의 강연에서 찬조 강사들을 앞세워 아담의 탄생 이전에 동물들이 질병이 없이 장수를 하다가 죽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이론은 성경의 전통교리와는 거리가 먼 위험한 사상이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기록하신 성경이 깊이 연구해야만 알 수 있는 내용이라면 이는 잘못된 일이다. 누구나 읽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록하셨다고 믿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지 않다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모두 지옥에 간다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굳이 문자적인 명료성을 버리고 현대과학이론에 맞추려는 태도는 성경보다 과학지식을 더 신뢰하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연과학의 역사를 보면, 과학이론은 항상 불완전하며, 지속적으로 보완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성경은 영원불변한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이다. 따라서 성경 내용이 과학이론과 상치되듯이 보일지라도 억지로 두 이론을 조화시키려고 짜깁기를 해서는 안 된다. 성경은 초과학적 기록임을 인정해야 하며, 창조과학자를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로 매도해선 안 된다. 문자대로 믿지 않고 과학이론에 맞추어 성경을 해석하려는 자세야말로 잘못될 소지가 많다. 이제 점진론적 창조론이 성경적으로 어떻게 잘못되었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1) 진화론적 방법과 자연계의 불간섭에 대해
성경에는 하나님이 진화론적 방법인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점진적으로 우주만물과 생물들을 창조하셨다는 기록이 전혀 없다. 그저 하나님이 명하시매 존재하게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을 뿐이다. 창세기 1장에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라 하시매 그대로 되니라”는 표현이 10번이나 나온다(창 1:3, 6, 9, 11, 14, 20, 22, 24, 26, 29). 창조주가 명령하시면 즉시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는 창조주의 전지전능성에 근거한다. 말씀으로 표현된 창조의 주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한다(요 1:1-3, 롬 11:36, 골 1:15-17, 시 33:6,9). 이처럼 우주만물은 예수님의 명령으로 즉시 창조된 것이다. 과거에 있었던 것이 단순히 나타난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히 11:3)
하나님은 창조주간 동안 “보시기에 좋았더라(good, towb)”고 여러 번 말씀하셨다. 히브리어 토브는 “좋다, 기쁘다, 즐겁다, 선하다, 올바르다”는 뜻으로, 창세기 1장에 7회나 나온다(창 1:4, 10, 12, 18, 21, 25, 31). 만일 하나님이 물고기와 새가 탄생하라고 명령하셨는데 생물의 재료인 원소나 가스가 생성되었다면, 어떻게 이들이 하나님의 보시기에 좋으셨을까? 그리고 모든 생명체가 같은 종류의 원소뿐이었다면, 왜 각종 생물을 만드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아직 나타나지도 않은 생물을 마치 보고 계시듯 말씀하셨다는 말인가? 더구나 사람의 육체를 만드시고 코에 생기를 불어넣었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인간이 아메바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어떻게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다는 말인가? 그것도 수억 년에 걸쳐서. 그리고 그토록 불완전하고 미완성적인 모습이 보시기에 좋으셨다는 말인가? 모든 생물이 원소나 아메바 형태였다면 하나님이 각종 생물을 창조하실 때마다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신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창조기간에 만드신 우주만물과 모든 생물들이 지금의 모습으로 창조되었다고 믿지 못할 이유는 무엇인가?
또한 하나님이 자연계를 자연법칙에 따라 운행되도록 만드신 것은 옳은 지적이지만, 하나님은 자연법칙도 관장하고 계신다. 자연법칙을 이용해 지금도 우주만물을 운행하고 계시는 분이시다. 이사야와 욥기에서 하나님이 자연계를 직접 관장하시는 내용을 피력하신 것을 다음 구절에서 알 수 있다.
“너희는 눈을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느니라...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 하시나니” (사 40:26-29)
“누가 폭우를 위하여 길을 내었으며 우뢰의 번개 길을 내었으며 사람 없는 땅에 사람 없는 광야에 비를 내리고 황무하고 공허한 토지를 축축하게 하고 연한 풀이 나게 하였느냐” (욥 38:25-27)
“까마귀 새끼가 하나님을 향하여 부르짖으며 먹을 것이 없어서 오락가락할 때에 그것을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한 자가 누구냐” (욥 38:41)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골 1:17)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히 1:3)
(2) “욤”의 해석에 근거한 오랜 지구 연대에 대해
창조의 6일을 나타내는 “날”의 히브리어 “욤”(yom)은 창세기 1장에 모두 7회(창 1:5, 8, 13, 19, 23, 31, 2:2), 구약 전체에서는 2,000여 회가 나오는데, 대부분 24시간의 하루를 나타낸다. 예외적인 경우는 특수한 상황, 예컨대 “여호와의 날”과 같은 경우에만 국한된다. 더구나 창조 6일의 첫째, 둘째와 같은 서수(序數)적 표현일 경우는 항상 “24시간의 하루”를 나타낼 뿐이다.(2) 창조의 날들은 모두 서수로 표현되어 있으므로 “24시간의 하루”를 의미한다. 더 나아가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xx날이니라”고 하여 24시간의 하루임을 명시하고 있다. 다만 복수형인 야밈(yamim)의 경우는 “날” 외에 “기간”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구약에 총 700회가 등장하지만, 항상 “6일간”(출 20:11)이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문자적인 기간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다.(3, 4) 문자적 해석에 반대한 로버트 뉴먼(Robert C. Newman) 등도 긴 기간을 의미하는 기수적 “욤”에 대한 어떠한 명백한 사례도 발견할 수 없다“고 했다.(5)
더구나 창조의 7일간마다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는 지구가 고정된 우주의 빛을 축으로 하여 자전과 공전을 하면서 일어나는 24시간의 하루임을 의미한다. 창조 제1일의 빛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가 아닌 창조된 빛이었다. 왜냐하면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창 1:3)라고 빛의 피조성을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그 빛이 만일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라면 밤에도 비취었을 것이므로 밤이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전통적인 유대기독교의 해석도 하나님이 문자적 하루의 한 주간에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것으로 고백한다.(6)
창조의 주체이신 하나님이 모세에게 직접 말씀하신 내용 중에도 창조기간이 6일이었음을 여러 곳에서 명백하게 선언하신 바 있으며, 시편 기자도 순간창조를 노래한다.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출 20:11a)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출 31:17b)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이 되었으며, 그 만상이 그 입김으로 이루었도다.... 저가 말씀하시매 이루었으며 명하시매 견고히 섰도다” (시 33:6,9)
이처럼 우주만물의 6일 창조는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에 근거하며, 6일이 넘는 긴 기간을 설정하려는 어떠한 이론도 성경구절과 상충되게 마련이다. 예컨대 창조 6일설은 믿으면서도 지구가 창세기 1장 2절에 이미 창조된 상태이므로 불특정한 오랜 연대에 탄생했으리라는 긴 지구연대설, 6일을 6기간으로 보려는 날-연대설, 창세기 1장 1절과 3절 사이에 긴 지질학적 기간을 설정하는 간격설 등이 그것이다.
따라서 6일 창조설이 현대과학의 증거와 상치된다면, 과학이론의 불완전성을 인정하거나, 긴 연대를 나타내는 증거를 발생시킨 원인을 대홍수와 같은 격변의 과정 등에서 추적하는 것이 성경적 자세라 생각된다. 그 이유는 성경이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물리학자 러셀 험프리(Russel Humphreys)는 우리가 사용하는 모든 연대측정법의 90% 이상이 젊은 지구를 지지한다고 했다.(7) 태양이 창조된 4일을 전후한 날의 길이가 다르다는 주장도 배제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창조 6일에 대한 성경의 표현들이 모두 동일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창조주 자신이 6일간 우주만물을 창조하셨다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출 20:11, 31:17b).(8)
지구과학의 초석을 놓았던 지질학자들은 대부분 젊은 지구와 전 세계적인 홍수를 믿었다는 사실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층서학을 수립한 스테노(Nicolas Steno), 고생물학의 창시자인 우드워드(John Woodward), 영국자연사의 아버지인 래이(John Ray) 등이 대표적인 분들이다.(8-1)
최근에는 미국의 ICR이 추진했던 RATE 프로젝트의 결과 일부를 연구자의 일원인 스넬링(A. Snelling) 박사가 한국창조과학회 학술대회(2005년)에서 발표한 바 있다. 그는 7년간의 연구 결과 암석에는 한때 가속화 되었던 핵붕괴의 흔적이 함유되어 있었으며, 진화론자들이 이용하는 방사성 동위원소의 반감기를 이용한 지구연대측정법에서 전제하는 “균일한 붕괴율”을 입증할 증거가 없고, 모든 암석들은 젊은 지구연대를 지지한다고 밝혔다.(9) 그 밖에 젊은 지구에 대한 증거들은 미국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Science)에서 과학교사의 지침서로 펴낸 <Teaching About Evolution and the Nature of Science> 책을 반박한 사르파티(J. Sarfati, 2006)의 <진화론에 대한 반박>에 잘 정리되어 있다.(10)
(3) 빅뱅설에 대해
빅뱅설은 아인슈타인(A. Einstein, 1915)의 일반상대성원리에 기초한 것으로, 1920년대의 프리드만(A. Fridman)과 르메트르(G. Lematre)의 우주 팽창설, 허블(Edwin Hubble 1929)의 적색편이설, 1940년대 가모프(G. Gamov)의 우주배경온도설, 최근의 초 팽창이론(inflation theory) 등이 보강되어 확립된 우주형성 이론이다.(11) 핀 홀 크기의 우주가 계란 크기가 되었을 때 폭발했다는 것이다. 가스덩어리가 사방으로 분산․냉각되면서, 50억 년 전에 태양계가, 46억 년 전에 지구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자연계의 법칙 중 열역학법칙은 150여 년간 지속된 권위 있는 법칙이다. 물질과 에너지는 서로 전환되지만 총량은 항상 일정하다는 제1법칙과, 자연계의 모든 작용은 엔트로피(무질서도)가 증가하는 방향으로 진행한다는 제2법칙으로 구성되어 있다. 열역학 제2법칙은 부정적인 영향(예: 가용에너지의 소멸)과 더불어 긍정적인 영향(예: 소화, 호흡)도 끼친다.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신 세계는 질서도가 가장 높은 상태였지만, 아담의 범죄로 자연계의 쇠퇴는 가속화 또는 확산된 듯하다.(12) 사람을 비롯한 생물의 노화는 더 촉진되었고, 토지는 저주를 받아 엉겅퀴와 가시덤불을 내게 되었다. 우주계도 풀리는 시계태엽처럼 열사상태를 향해 진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빅뱅설과 “팽창하는 우주론”에서는 우주가 항상 질서도가 낮은 상태에서 높은 쪽으로만 진화한다고 하므로 열역학 제2법칙과 대치된다.
빅뱅설은 우주계란(有)에서 우주(有)가 형성되었다는 질적 변화를 다룬 이론이므로, 우주의 기원에 대한 근본적인 해답이 될 수 없다. 더구나 최근에는 빅뱅설에 대한 많은 문제가 제기되고 있어 이 이론에 대한 신뢰성이 흔들리고 있다. 이 이론의 강력한 지지자인 호킹(S. Hawking) (13)도 이 이론의 핵심인 블랙홀설이 잘못되었다고 2005년에 공식 취소한 바 있다.
창세기가 말하는 우주(時空物)는 무에서 창조(creatio ex nihilo)되었다(창 1:1). 성경에는 총 420회의 하늘(shamayim)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세 하늘로 구분할 수 있다. 셋째하늘(三層天)은 하나님이 계신 시공을 초월한 곳으로(계 4:1-2, 겔 6:1, 사 6:1), 창조 첫날 창조된 듯하다(욥 38:6-7, 골 1:16). 천군(왕하 6:17, 계 19:14)과 천사(단 7:10, 느 9:6, 욥 1:6, 벧후 3:13, 계 5:11, 9:16, 21:1)가 있으며, 사도 바울이 이끌려갔던 곳이기도 하다(고후 12:1-4). 일층천은 생물들이 사는 대기권이다(창 1:8, 20, 시 74:13-14). 창조 초기에는 비가 내리지 않았고, 안개만 자욱한 아열대성 기후였다(창 1:6-9).(14) 이층천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다. 휘트콤과 해리스(R.L. Harris) 등은 해와 달과 별들이 떠 있는 외기권(창 1:14-17)으로 해석한다.(15),(16) 그러나 필자는 삼층천에서 쫓겨난 악령들의 공간(유1:6, 겔 28:12-19, 눅 10:18, 계 12:7,12-13)으로 생각된다.(17)
성경이 증언하는 바는 지구가 빅뱅설의 주장처럼 태양(protosun)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첫째 날 창조되었고 무에서 창조된 것이다(창 1:1). 지구는 태양이나 행성들보다 3일 앞서 만들어진 것이다. 원시지구의 모습은 혼돈하고 공허했다(unformed and unfilled, tohu wabohu, 창 1:2). 따라서 창세기 1장 2절은 에드워드 영(Edward Young)이나 휘트콤 등이 주장하듯이 다음처럼 번역하는 것이 복음주의적 해석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땅은 아직 형체를 갖추지 않았고 채워지지 않았다 (And the earth was unformed and unfilled)” (19)
(4) 생물의 창조에 대해
모든 생물은 “종류대로”(after its kind, miyn) 창조되었다. “종류”에 대한 히브리 원어 “민(miyn)”은 “같은 어미에서 유래된 생명체”로, 창세기 1장에 10회나 등장한다(창 1:11, 12×2, 21×2, 24×2, 25×3). 이처럼 하나님은 식물(창 1:12), 물고기와 새(창 1:21), 육지동물(창 1:24-25)을 각기 “종류대로” 만드셨으며, “보시기에 좋았다”고 하셨다. 이는 생물이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화했을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말이다.
식물학자이면서 벌게이트 성경에 능통했던 린네(Carl von Linneus 1707-1778)는 불후의 명저인 <자연의 체계>에서 동식물과 광물의 이명분류법(二名分類法)을 확립한 창조과학자이다. 그는 “종류”를 생물학 용어인 “종”(種 species)으로 부르면서, 종류와 종은 같은 개념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창조주는 계에서 문을, 문에서 강을, 강에서 목을 만드셨다. 그리고 목으로부터 종을 만드셨다. 단, 종은 불변하도록”이라고 했다. 이러한 “종의 불변설”은 다윈의 진화론이 출현하기 전까지 생물학의 주된 이론이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다만 학문이 발전하면서 “종”에 대한 개념과 분류기준이 여러 번 바뀌었다. 이에 따라 한 종이 다른 종으로 편입된 것을 흡사 진화라도 한 듯이 오도해서는 안 된다. 다윈이 <종의 기원>에서 말한 “종”은 명백히 “침팬지가 사람으로 바뀌는 종류의 변화”를 의미한 것이다. 린네가 의미한 “종의 불변설”은 그러한 “종류의 불변”을 의미한 것이다. 진화론자들의 언어유희에 휘말려선 안 된다.
(5) 인간의 창조에 대해
사람은 다른 생물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존엄한 존재이다. 육체는 다른 생물처럼 흙으로 지음 받았지만,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 넣어진 특별한 존재이다(창 2:7). 그 생기 때문에 기도하고, 예배드리며, 만물을 다스리는 책임과 능력을 갖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1:27)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 2:7)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창 2:15)
이처럼 사람은 원숭이나 침팬지와 같은 “선재하는 존재”(preexistence)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니다. 유신진화론자인 허언(Walter Hearn)은 창조주가 인간을 창조한 것은 비유라 했고,(20) 미국의 헨리 시포드(Henry W. Seaford, 1958), 훌러 신학대학 총장 에드워드 카넬(Edward J. Carnell, 1959), 암스테르담 대학의 이안 리버(Ian Lever, 1958) 등은 아담이 유인원에서 진화했고, 창조기사는 비유라고 했다. 영국성공회의 신부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2004)에서는 98%가 원숭이로부터의 진화를, 2%만이 창세기의 기록처럼 흙에서 창조되었다고 답변했다고 한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현상이 아닐 수 없다.
더 나아가 로마가톨릭의 요한바오로2세는 교황청과학원에 보낸 서신(1999)에서, 아담은 하나님이 흙에서 직접 창조된 것이 아니라 선재(先在)하는 존재(유인원)에게 생기를 불어넣어 창조하신 것이라고 하면서, 진화론을 가설이 아닌 정설(단순한 가설 이상)로 선언했다. 그는 “교황칙서가 출판된 후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 의도나 조작이 없이 독자연구의 결과들이 일치된 사실 자체가 이 이론(진화론)을 지지하는 중요한 증명이 되었다”(21)고 하면서 진화론은 더 이상 가설이 아닌 정설이라고 하였다. 더 나아가 “인간의 육체가 기존의 생명체(유인원)에서 기인했다 하더라도 영혼은 하느님께서 곧 바로 창조하신 것”이라고 육체의 진화를 기정사실화 했다.(22) 그러나 그의 뒤를 이은 베네틱토16세는 사견이긴 하지만, 지적설계(知的設計)를 지지하는 발언(2006)을 한 바 있어 다행스럽게 생각한다.
(6) 육식(肉食)의 허용과 육식동물의 기원에 대해
하나님은 창조 시에 동물과 사람에게 복을 주셨으며(창 1:22,28) 동물에게는 푸른 풀을, 사람에게는 씨 맺는 채소나 씨가진 열매를 식물(食物)로 주셨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또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식물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창 1:29-30)
만일 창조하신 순간부터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사냥했다면, 자연계에는 초식동물들의 비명소리로 “보시기에 좋거나 복 받은 세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사람이 육식을 하게 된 것은 노아홍수 후의 일이다(창 9:2-3). 아담의 타락으로 이 세상에 죄가 들어오면서 사람과 동물들은 에덴에서 추방되었고, 급기야 노아가족을 제외한 전 인류가 대홍수로 멸절되었다. 세상은 더 이상 하나님 보시기에 복 받을 대상이 아닌 상태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대홍수 후 하나님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동물을 먹도록 허용하셨고, 동물들에게는 자기 목숨을 보존하도록 사람을 보면 피하도록 만드신 것이다.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었음이라.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창 9:2-3)
육식동물의 출현시점에 대해서는 미국의 ICR은 아담의 타락 후부터로 추측하지만, 필자는 대홍수 후부터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점진론적 창조론자나 진화론자들은 육식동물이 처음부터 육식을 한 것으로 추리한다.
(7) 아담의 범죄 이전의 동물과 사람의 죽음에 대해
아담의 범죄 이전에 살았다는 사람들과 동물들이 아담이 범죄 하기 이전에 죽었다는 주장은 성경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며, 구원의 교리를 근본부터 허무는 이단적 사설이다. 창세기의 핵심은 하나님이 우주만물과 인간을 창조하셨으며, 만물의 영장인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어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써 우리에게 고통과 죽음이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만물의 영장인 아담의 죄 때문에 온 우주에 고통과 죽음, 황폐함이 오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한 나무실과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네가 얼굴에 땀을 흘려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얻었음이니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창 3:17-19)
“이러므로 한사람(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롬 5:12)
만일 휴 로스의 주장대로 아담의 범죄 이전에 죽음이 왔다면, 이는 성경의 교리를 뒤엎는 위험한 사상이 된다. 아담은 우주의 창조 시에 창조되었으며(막 10:6), 그보다 먼저 탄생한 인간은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발견할 수 없다. 성경은 모든 만물과 피조물이 고통하며 죽게 된 것은 아담의 범죄에 기인한다고 증언한다. 그래서 피조물들이 고통으로 탄식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고대하고 있다고 말한다(롬 8:19-23).
그러나 언젠가 천년왕국시대에는 “악한 짐승이 빈들에 평안히 거하며”(겔 34:25, 호 2:18, 사 35:9),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사자가 소처럼 풀을 먹을 것이며.... 해 받음이나 상함이 없는,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한 세상”이 될 것이다(사 11:6-9). 그리고 영생을 잃은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우리 대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후에 창조주의 능력으로 부활하심으로써 영생의 첫 열매가 되신 것이다(롬 5:17-21). 이 교리를 부인한다면 기독교의 기본교리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8) 창조의 순서에 대해
6일 창조의 순서는 점진론자를 포함한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순서와 맞지 않는다. 그들은 빅뱅으로 우주가 창조되었고 태양(50억 년 전)에서 지구(46억 년 전)가 탄생했으며, 생물은 지상에서 37억 년 전부터 출현하다가 캄브리아기 때에 여러 종류가 폭발적으로 나타났다고 말한다. 생물의 출현순서는 어패류와 식물이 먼저 탄생했고, 어류에서 양서류, 파충류, 조류, 포유류를 거쳐 인간이 탄생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세기에 의하면 지구가 태양보다 3일 전에 탄생했고(창 1:2,14-18), 식물이 동물보다 먼저 탄생했다(창 1:11-12). 물고기와 조류(창 1:20-22)는 같은 날 창조되었고, 그 뒤를 이어 육상동물과 사람이 같은 날 창조되었다(창 1:24-28).
휴 로스는 토코아폴스 대학 강연에서 “인류는 우주의 나이가 어느 정도 지났을 때만 존재할 수 있다. 만약 우주가 너무 늙거나 젊다면 생물은 불안정해질 것이다. 생명체는 우주가 120-179억년 정도일 때에만 존재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는 추측에 근거한 가설일 뿐이다.
(9) 인류문화의 발전에 대해
진화론자들은 인간의 문화가 유인원의 오랜 구석기와 신석기시대를 거쳐 청동기와 철기시대로 발전했다고 말한다. 호모하빌리스(260만 년 전)의 올도완(Oldowan stone age), 호모에렉투스(15만-150만년 전)의 아슐리언(Achulian sone age), 네안데르탈인(8-25만년 전)의 무스테리언(Mousterian stone age)을 거쳐 청동기, 금속 병용기, 철기시대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인류의 역사가 6천 여 년(BC 4175년?)으로 매우 짧으며, 인류문명은 아담의 7대손 라멕(검무가․창)과 8대손인 야발(육축), 유발(수금․퉁소), 두발가인(동철기계) 때에 이미 철기문화가 있었다고 말한다. 라멕(창 4:16-22)이 태어난 시점은 아담의 같은 7대손인 에녹처럼 아담의 나이가 622세 경 전후로 추정된다(창 2-19). 즉, 아담으로부터 600여 년이 지난 시점에 인류는 이미 철기문화를 가졌다는 이야기이다.
“아다는 야발을 낳았으니 그는 장막에 거하여 육축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고 그 아우는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었으며 씰라는 두발가인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두발가인의 누이는 나아마였더라”(창 4:20-22)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내가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창 4:23)
이러한 문화의 발전은 노아 때에는 2만 톤이 넘는 방주를 만들기에 이르렀다(창 6:14-16, 22), 그러나 대홍수로 모든 문물이 완전히 파괴되었고(창 7:23-24), 그 후(4천5백여년 전)에 다시 신․구석기를 거쳐 청동기와 철기시대가 병존하다가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인류 최초의 도시문명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10) 국부(지역적) 홍수론에 대해
휴 로스는 전 지구적인 노아홍수를 부인하고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국한된 국부홍수론(local flood theory)을 주장하지만, 성경은 명백히 전 지구적인 대홍수를 증언한다.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창 7:19-20)
대홍수 후, 방주가 정박한 곳은 아라랏 산이었다(창 8:4). 아라랏 산은 최고봉이 5,140 m에 이르는 매우 높은 산으로, 이곳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을 이룬다. 메소포타미아는 “두 강 사이의 땅”으로, 지금의 이라크 지역이다. 만일 노아의 홍수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국한된 홍수였다면, 어떻게 방주가 높은 아라랏 산으로 물결을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겠는가? 방주는 키가 없는 그저 떠 있도록 설계된 배가 아닌가?
로스는 대학 강연에서 “지구상의 물의 총량은 산들을 덮기에 필요한 양의 22%에 불과하다....(창조론자들은) 하나님이 40일간 9,000m 높이의 산들을 침식시켜 해수면 아래로 끌어 내리셨다가 그 후 12개월 동안 이 산들을 다시 솟아나도록 하셨다고 설명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지적이다. 창조론자들은 그 누구도 대홍수 때 고산들을 해수면 아래로 끌어 내렸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대홍수 이전에는 모든 산이 완만한 높이를 가졌던 것으로 추리한다. 그리고 홍수 중기부터 물을 빼기 위해 오늘날의 깊은 해구와 그에 상응하는 고산준령들이 나타난 것으로 해석한다. 그 이유는 현재 자연계 물의 97%는 바다에 있고, 나머지 3%는 강, 하천, 수증기, 구름 등으로 존재한다. 독일학자들이 조사한 바로는 옛날에는 지중해의 해수면이 지금보다 2,430m가 낮았고, 세계최저 해저는 5,500m에서 11,034m로 낮아지고, 세계 최고봉은 875m에서 8,882m로 상승한 것으로 보고했다.(23) 이 밖에 성경적 증거로는 예수님(마 24:37-39, 눅 17:27)과 베드로(벧후 2:5, 3:6)가 노아의 홍수 외에 어떠한 국지적 홍수도 거론하지 않았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1) 지층과 화석의 형성에 대해
점진론자들은 지층과 화석이 동일과정설이 말하듯이 장기간에 서서히 형성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지구를 뒤덮은 대홍수의 물이 150일 후부터 빠지기 시작했는데(창 8:1-3), 물이 빠지려면 먼저 땅 속에 물이 들어갈 공간이 생겨야 한다. 그래서 창조과학자들은 대홍수 후기부터 지구가 오대양 육대주로 갈라지기 시작한 것으로 추리한다. 오늘날의 지형이 대홍수 후기에 모두 완성되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마도 대홍수 후(post Flood catastrophism) 일정 기간 크고 작은 지진과 화산이 뒤따르면서 지층이 안정되었을 것이다.(24, 25) 그 과정에서 빙하기와 해빙기가 나타나면서 오늘날의 지형이 완성된 것으로 보인다.
“옷으로 덮음 같이 땅을 바다로 덮으시매 물이 산들 위에 섰더니 주의 견책을 인하여 도망하며 주의 우뢰 소리를 인하여 빨리 가서 주의 정하신 처소에 이르렀고 산은 오르고 골짜기는 내려갔나이다” (시 104:6-8)
또한 지난 1980년 5월에는 미국 시애틀 근교에서 폭발한 세인트 헬렌스 산은 불과 며칠 새에 새로운 지층과 화석 및 토탄과 계곡을 만들었다. 지층이나 화석은 결코 오랜 기간에 걸쳐 형성되는 것이 아님을 실물로 보여준 증거라 할 수 있다. 전 세계 지표의 80% 이상이 퇴적암이며, 화석은 대부분 퇴적암에 들어있다는 사실은 대홍수에 의한 지층과 화석의 형성이론을 뒷받침한다. 퇴적암은 물에 실려 온 흙과 자갈이 격변적인 충격(고온, 고압, 순간적)으로 형성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점진론자들이 진정으로 복음을 탐구한다면, 다음과 같은 베드로의 경고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벧후 3:6)
(12) 진화론의 붕괴 가능성
언젠가 오래된 지구론을 포함한 진화론이 잘못된 것으로 확인된다면, 그들은 무엇이라 항변할 것인가? 그러한 조짐은 이미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영국의 대표적 지질학자인 에이거(Derek Ager, 1976)는 오래된 지구론이 현대 지질학 이론에 부합하지 않음을 지적하면서 신격변설(neocatastrophism)을 주장했다. 그는 지층과 화석은 장기간에 점진적이 아닌 짧은 시간에 빠르고 광범위하게 형성됐다고 했다.(26) 위스콘신 대학의 지질학자 로버트 닽(Robert H. Dott, 1982)은 ASEPM (American Society of Economic Paleontologists and Mineralogists)에 보낸 회장서신에서 “나는 퇴적암의 기록이 동일과정이 아닌 일시적인 대규모 사건의 기록이라는 점을 당신들에게 확신시키고자 한다. 내 이야기는 일시적 사건이 예외 없이 전 지구적이었다는 것이다”고 했다.(27) 이러한 격변적 견해에는 시카고 대학의 지질학 교수인 데이비드 라우프(David Raup, 1983), 지구교육저널의 편집인 제임스 쉬(James Shea, 1982), 콜로라도 대학의 지질학 교수인 카우프만(Erle Kauffman, 1987) 등이 가세하고 있다.
20세기의 대표적 진화론자 중 하나인 하버드 대학의 굴드(Stephene J. Gould)도 시카고 진화론학술대회(1980)에서 동일과정설에 근거한 점진적 진화론을 비판하고, 대안으로 단속평형설을 제시한 바 있는데, 도브잔스키도 이러한 견해에 동의하였다. 그는 화석기록을 보면 점진적 형태변화나 중간종이 발견되지 않으며, 모든 생물들은 각 단계에서 단속적으로 완전한 형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모든 생물들이 점진적 진화를 하는 것이 아니며, 신종은 5천년이나, 5만년 단위로 갑작스럽게 출현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또 다른 허구를 만든 것이다.
3. 맺음말
우리가 어떤 이론을 지지하거나 타협하는 이유는 그 이론의 사실성(과학성)을 믿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과학이론은 대부분 애매성과 불가지성을 내포한다. 인간의 추리와 인식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론은 학자들의 추리의 상한선을 넘지 못한다. 따라서 과학이론을 절대시해서는 안 된다. 이는 창조과학에도 적용되는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사항은 성경과 상치되는 이론에 대해서는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이다. 성경내용을 현대이론에 맞추려고 억지로 풀려다 멸망에 이르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교회들에 대해 이단사설을 분별해 대처할 것을 여러 번 경계하였다. 특히 목회자 디모데에게는 다음과 같이 부탁했다.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게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쫒으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을 하는 자들이니라” (딤전 4:1-2)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딤전 4:7)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딤전 6:20-21a)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인정된 자로 자신을 하나님 앞에 드리기를 힘쓰라. 망령되고 헛된 말을 버리라 저희는 경건치 아니함에 점점 나아가나니” (딤후 2:15-16)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딤후 3:13-14)
바울은 거짓교사들이 성도들을 괴롭히는 교회들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골로새 교회에게는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이것이 사람의 유전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좇음이요 그리스도를 좇음이 아니니라”(골 2:8)고 했고, 에베소 교회에게는 “우리가 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엡 4: 13-14)고 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교회에 열심히 다녔으나 심판 날에 하나님으로부터 “불법을 행한 자”라고 책망을 받는 자들일 것이다. 진리를 탐구하려는 열심이 자신을 파멸로 이끈다면 이보다 더 큰 불행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바에야 바르게 믿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성경을 억지로 풀다가 멸망에 이르는 일이 없도록 항상 겸손하고 열린 자세를 갖도록 하자.
참고문헌
(1) Davis A. Young: Creation and the Flood, An Alternative to Flood geology and Thei- stic Evolutionism, pp.18-22, 82, 91, 87, 113, Baker Book House, Grand Rapids, 1977.
(2) John C. Whitcomb: The Early Earth, Revised Edition, pp.28-29, 1988.
(3) Robert E. Kofal, Kelly L. Segrave: The Creation Explanation, pp.321-322, Harold Shaw Publishers, Wheaton, Il., 1981.
(4) Robert L. Thomas: New American Standard Exhaustive Concordance of the Bible, pp 277ff, Holman Publishing Co., Nashville, 1981.
(5) Robert C. Newman, Herman J. Eklelman: Genesis One and the Origin of the Earth, pp.6, 7, InerVasity Press, Downers Grove, Il., 1977.
(6) J.C. Whitcome: op.cit., p.32.
(7) http://www.kacr.or.kr/library/interview.asp?no= 930.
(8) H.C. Leopold: Exposition of Genesis, pp.51- 53, The Warburg Press, Columbus, OH, 1942.
(8-1) Henry Morris, John Morris; Science, Scri- pture and the Young Earth, pp.23-24,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San Diego, 1989.
(9) Andrew Snelling: Rocks Contain Evidence for Accelerated Decay and a Young Earth, 2005년도 한국창조과학회학술대회논문집, 1-38, 경상대학교, 2005.
(10) Jonathan Sarfati: Refuting Evolutionism, 8th printing, Master Books, pp.103-115, 2005.
(11) Lee Strobel(홍종락 역): 창조설계의 비밀, pp.131-135, 두란노서원, 서울, 2005.
(12) Jonathan Sarfati: Refuting Evolutionism 2, 4th printing, pp 215-216, Master Books, 2005.
(13) Stephen W. Hawking; (현정준 역): 시간의 역사, 삼성이데아, 서울, 1989.
(14) Joseph C. Dillow: The Waters Above: Earth's Pre-Flood Vapor Canopy, Rev. Ed, Moody Press, Chicago, Il. 1982 and reviewed by J.C. Whitcomb, D.B. Young in Grace Theological Journal 3(1), pp.123-132, 1982.
(15) J.C. Whitcomb: op.cit., pp.53-56.
(16) R. Laird Harris: The Bible and Cosmology, Bulletin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5(1), pp.11-17, 1962.
(17) 임번삼: 잃어버린 생명나무를 찾아서(상), p.119, 한국창조과학회, 서울, 2002.
(18) Arthur C. Custance: Without Form and Void, 1970.
(19) 임번삼: ibid, pp.198-200.
(20) Ed. by Russhell L. Mixter; Evolution and the Christian Thought Today, Edermans, Grand Rapids, p.69, 1959.
(21) Ted Peters(김흡영외 역): 과학과 종교, 새로운 조명, p.260, 동연출판, 서울, 2002
(22) Ted Peters(김흡영외 역): ibid, p.262.
(23) Werner Gitt: Das Biblische Zeugnis der Schoepfung(Wissen und Leben 4), pp.116- 120, Hanssler-Verlag, Neuhausen-Stuttgart, 1985.
(24) Creation, 16(3), 22-23, 1996.
출처 : 창조 147호, 2006년 10-12월호
어떻게 아담은 단 하루 만에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었을까?
(How could Adam have named all the animals in a single day?)
by Andrew Kulikovsky
창세기를 기록된 그대로 해석하기를 부정하는 성경비평가들과 타협적 교인들은 몇몇 유언비어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하나는 만약 창조주간의 6일이 일상적인 날(day)이었다면, 창세기 1장과 2장에 기록된 사건들이 모두 완료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으리라는 것이다. 특히 그러한 짧은 시간에 아담이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것은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회의론자들은 말한다. 어떻게 아담은 12 시간보다도 적은 시간 내에 수백만 종들의 이름을 지을 수 있었는가?
중요한 점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실제의 종들의 수를 독단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메이(May)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실적 단계에서, 생물 분류상 하나의 목(order) 안에 오늘날 지구상에 분류된 2백만 종(species)의 동식물 중에서 (전체 생물종의 수는 5백만에서 5천만 종으로 평가) 얼마나 많은 수가 들어가는지를 알지 못한다.” [1]
무심결에 읽는 독자들에게 즉각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몇 가지 요소들이 있는데, 이것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아담은 동물들의 이름을 짓기 위해 밖으로 나가 찾아다니지 않았다. 창세기 2:19절에는 분명히 하나님이 아담에게 동물들을 이끌어 오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둘째, 많은 비평가들이 주장을 하고 있는 것처럼, 아담이 이름을 지어야하는 생물 종들이 수백만이라 하더라도, 실제 수는 거의 확실히 이들의 단지 일부분인 소수에 불과했을 것이다. 성경은 아담이 모든 육축(livestock, 히브리어로 behemah)과 공중의 새(birds of the air, 히브리어로 op hassamayim)와 들의 모든 짐승(beasts of the field, 히브리어로 chayyah hassadeh)들에게 이름을 주었다고 기록하고 있음에 주목하라.
이것은 아담이 바다 물고기, 다른 바다 생물들, 곤충들, 딱정벌레, 거미들에게 이름을 주지 않았다는 것을 가리킨다. 사실, 알려진 2백만의 생물종들 중의 98%는 무척추동물이다. 여기에는 해면동물들, 벌레들, 연체동물, 곤충 등의 다양한 생물 종들이 포함된다. 남은 2%가 척추동물이고, 이들의 수는 대략 4만 종이다.[2] 이 숫자에서도 25,000 종의 바다 척추동물들과[3], 4000 종의 양서류들은[4] 제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창세기 2;20절에 기록된 동물의 범주에는 분명히 적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종의 분화(speciation)가 창조 이후에 진행되어왔다고 가정한다면, 남은 11,000 종의 척추동물들은 훨씬 적은 수의 원래 생물 종(proto-species)에서 분화된 후손들일 수 있는 것이다. 각각은 분류학자들이 속(genus)[5] 이라 부르는(더 위의 그룹인 과(family)일 수도 있는[6]) 그룹의 조상되는 동물들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은 창세기에서 종류(kind)[7] 라고 불려지고 있다. 많은 속들(genera)은 수십 개 또는 수백 개의 종들(species)을 포함하고 있다. 아담은 단지 2천여 종의 이들 원래 종들에게 이름을 지었을 것이고, 이 일은 수 시간이면 쉽게 처리할 수 있는 일이었을 것이다. (아담이 2500 여의 원래 생물 종(속)들에게 5초마다 한 종씩 이름을 지었다면, 그 일을 끝마치는데 매 시간 마다 5분씩의 휴식시간을 포함하여, 대략 3시간 45분이 걸렸을 수 있다).
아담 앞에 모든 동물들을 이끌어내신 하나님의 목적은, 단지 아담으로 하여금 동물들의 이름을 짓기 위함만이 아니었다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이들 창조된 동물들과는 아담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그래서 어떠한 동물도 그의 육체적, 정서적, 지적, 영적 동반자(companion)로서 역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References
1. May, R.M., How many species are there on Earth? Science 241:1441, 1988.
2. David Burnie, ‘Animal’, Microsoft® Encarta® Online Encyclopedia 2002, <http://encarta.msn.com>.
3. James W. Orr, ‘Fish’, Microsoft® Encarta® Online Encyclopedia 2002, <http://encarta.msn.com>.
4. David Burnie, ‘Vertebrate’, Microsoft® Encarta® Online Encyclopedia 2002, <http://encarta.msn.com>.
5. Woodmorappe, J, Noah’s Ark: A Feasibility Study, ICR, El Cajon, CA, USA, 1996. This tabulates all the creatures on the Ark by assuming that the kind corresponded to today’s genera. But this is to be as generous to the sceptics as possible, and even then there would be only 16,000 animals on the Ark as obligate passengers.
6. Batten, D., Ligers and Wholphins? What next? Creation 22(3):28–33, 2000. This points out several examples of fertile hybrids between members of different genera with a family. This means that they are really a single polytypic species, and supports identification of the kind with today’s families.
7. Williams, P.J., What does min mean?, CEN Tech. J. 11(3): 344-352, 1977.
출처 : Creation 27, no 3 (June 2005): 27-28.
주소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002/1112animals.asp
번역 : IT 사역위원회
어느 믿음이 최근의 탈선인가?
: 오래된 지구 또는 젊은 지구?
(Which is the recent aberration?
Old-Earth or Young-Earth Belief?)
by Don Batten
AiG (Answers in Genesis)은 창세기의 연대기를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서 창조는 수천 년 전에 이루어졌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교회 비평가들은 오늘날 크게 선전되고 있는 수십억 년의 연대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젊은 지구 견해를 개신교의 근본주의자(fundamentalist) 교회들에 의한 최근의 발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여러 교회 아버지들과 다른 고대의 권위자들은 젊은 지구라는 견해를 지지하지 않는 글들을 썼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교회 아버지들와 종교개혁자들에 대한 그들의 주장은, 베버(Mark Van Bebber)와 테일러(Paul Taylor)가 쓴 Hugh Ross (오래된 지구 신봉자)에 대한 반박글에서 볼 수 있듯이 잘못되었음이 밝혀지고 있다. 그 글에서는 그들이 말했다고 주장되는 것 대신에 실제 무슨 말을 했는지를 잘 분석해 놓고 있다. (교회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은 어떤 창조론을 믿고 있었는가?을 보라).
문제는 창조 시 날들과 시간(days and time)에 관한 하나의 평범한 문장을,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주장을 펴면서 잘못 해석하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침묵으로부터의 주장인 것이다. 창조의 날들(Creation days)과 시간에 대한 명백한 문장을 특별하지 않은 것들을 찬성하기 위하여 무시하는 것은 나쁘다. 올바른 해석은 평범한 구절들을 특별한 구절에 의해 해석하는 것이다. 같은 방법론으로, 수백 년 후의 미래에 AiG의 저자들이 쓴 글들이 성경의 날들과 시간 척도에 대한 분명한 문장들을 무시하였으며, 어떤 입장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날들과 시간 척도에 대해 어떠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았었다고 말해질 수 있을까?
어거스틴(Augustine)이 창조의 날들을(그리고 다른 여러 문장에서) 비유로 사용했다 하더라도, 오래된 지구 믿음을 멀리서 지지했다고 말해질 수 없다. (그는 히브리 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날들(days)을 순간(instant)으로 압축하려고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가 오래된 연대를 믿는 사람이라고 주장되는 것과 정반대되는 것이다.
게다가 고대의 연대기들이 연구되면서, 많은 문화(성경에 직접 기초하지 않은)들에서 창조의 연대는 수천 년에 불과함을 증언(선언)하고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진실한 학자들 중에는 누구도 오늘날의 유행인 오래된 지구를 믿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오래된 연대에 대한 믿음은 현대적인 발명품임이 분명하다.
다음은 1879년에 출판된 성경에 대한 영(Young)의 분석 색인(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으로부터 발췌한 것이다. ‘창조(Creation)’ 아래에, 영은 1830년 윌리암 헤일즈(William Hales) 박사에 의해서 여러 출처로부터 수집된 창조의 시점을 목록화하여 놓았다. 헤일즈 박사는 연대학(chronology)의 전문가였다. 그것들 중 어느 것도 창조의 시점이 9,000년을 넘지 않았다. 비기독교 자료나 비유대인 자료(인도, 중국, 기독교 전파이전의 그리스, 바빌로니아....등)로부터의 여러 자료들 모두에서, 창조의 시점은 수천 년 전이었음을 선언하고 있음을 주목하라.
더군다나, 가톨릭 또는 개신교 학자들이 모두 이것에 동의하고 있다. 진지한 연대학자는 누구도 오래된 지구를 믿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표에 올라와 있는 학자들 대부분은 고대의 기록들을 꼼꼼하게 서로 비교해보고 맞춰보며 평생을 연구하여 세계(world)의 연대를 결정했던 것이다. (이것들 중 많은 것들이 오늘날에는 이용되지 않는다). 이 학자들은 이들 연대들을 주사위를 던져서 만들어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학문에 대한 주의 깊은 이러한 전통을 무시해버리는 것은 오늘날 현대인들의 오만인 것이다.
우리는 이 연대문제의 중요성에 다시 한번 밑줄을 그어야만 한다. 오래된 지구 옹호자들도 지구가 수십억 년 되었다는 것은 최근의 주장임을 인정하고 있다. 이 오래된 연대는 오로지 방사성동위원소 연대측정(radioactive dating)에 기초하고 있다.
같은 방법으로 화석화된 죽은 동물의 연대를 사람이 출현하기 수억 년 전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들 화석들은 격변과 고통의 증거를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어 암과 관절염도 화석들에서 보여질 수 있다). (Genesis: the Curse을 보라). 그래서 오래된 지구 틀에서는, 이러한 죽음과 고통들은 하나님이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시기 이전에, 그리고 모든 것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very good)고 말씀하시기(창1:31) 이전에, 진행되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가 피조물들에게 명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면서 죄악과 나쁜 것들이 생겨났고, 죽음의 저주는 그 결과로 임하게 되었다고, 성경은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다 (창세기 3:17–19, 로마서 8:20–22 등). 그리고 이러한 세상의 진실된 역사 때문에,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가 첫번째 아담의 (로마서 5:12, 고린도전서 15:21-22, 45) 죄많은 후손들을 위하여 죽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던 것이다. 아니, 오래된 지구 개념과 성경을 결합시키려는 모든 시도는 사실상 복음을 훼손하고 있는 것이다.
창조의 시점 (Date of Creation)
(1879년에 쓰여진 성경에 대한 Young’s Analytical Concordance 8판(1939년 발행) 중에서 ‘창조(Creation)' 아래의 항목)
헤일즈 박사는 그의 작업에서 “연대기와 지리, 역사, 그리고 예언의 새로운 분석 (A New Analysis of Chronology and Geography, History and Prophecy)” (1830년 발행, vol.1, p.210) 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종교적이거나 세속적인 모든 연대기들의 체계는 대부분 두 가지의 중요한 시점을, 즉 세계의 창조(Creation of the World)와 그리스도의 탄생(Nativity of Christ)을 기준으로 채택하고 있다. 이것을 기준으로 하여 다른 종속적인 시대, 연대, 기간들이 조정되어 왔다.”
그는 B.C. 6984 년부터 시작하여, BC 3616 년까지 120개의 창조 시점들에 대한 연대들을 목록화하였는데, 이 결과는 다른 권위있는 문헌들에 의해서 제시된 것들이었다. 그는 목록이 300여 개로 늘어날 수도 있음을 인정했다. 그는 창조 시점을 BC 5411 년으로 보았다. 흔히 채택된 창조 시점은 어셔(Ussher), 스팬하임(Spanheim), 칼멭(Calmet), 블레어(Blair) 등이 생각하였던 BC 4004년 이었는데, 이 연대는 영어 성경인 킹제임스 번역본(KJV)에서 사용되었다.
다음의 연대들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편집, 출판 연도, 또는 다른 출처에 의한 정보 등의 표시는 AiG 에 의해서 추가되었다).
창조 시점의 출처 (Source of Creation Date)
근거 (Authority)
연대(BC)
알퐁소 10세 (Alfonso X, Spain, 1200s)
Muller
6984
알퐁소 10세 (Alfonso X, Spain, 1200s)
Strauchius, Gyles 1632–1682[1]
6484
인도 (India)
Gentil (프랑스 천문학자,1760)
6204
인도 (India)
Arab records
6174
바빌로니아 (Babylonia)
Bailly, John Silvain (프랑스 천문학자, 1736–1793)
6158
중국 (China)
Bailly
6157
디오게네스(Diogenes Laertius, 그리스, 3세기)
Playfair
6138
이집트 (Egypt)
Bailly
6081
70인역 (Septuagint, LXX) [2]
Albufaragi
5586
요세프스 (Josephus, 1세기, 유대인)
Playfair
5555
70인역, 알렉산드리아(Septuagint, Alexandrine)
Scaliger, Joseph (프랑스 고전학자, 1540–1609)
5508
페르시아 (Persia)
Bailly
5507
악숨의 연대기(Chronicle of Axum, Abyssinian)
Bruce (1700s)
5500
요세프스 (Josephus)
Jackson
5481
잭슨 (Jackson)
5426
헤일즈 (Hales)
5411
요세프스 (Josephus)
Hales
5402
인도 (India)
Megasthenes (그리스 역사학자, 340–282 BC)[3]
5369
탈무디스트 (Talmudists)
Petrus Alliacens
5344
70인역, 바티칸 (Septuagint, Vatican)
5270
베드 (Bede, 673–735)
Strauchius
5199
요세프스 (Josephus)
Univ. Hist.
4698
사마리아본 계산(Samaritan Computation)
Scaliger
4427
사마리아본 (Samaritan text)
Univ. Hist.
4305
히브리(맛소라)본 (Hebrew (Masoretic) text)
4161
플레이페어, 워커 (Playfair and Walker)
4008
어셔, 스팬하임, 칼멭, 블레어 등
(Ussher, Spanheim, Calmet, Blair, etc.)
4004
케플러 (Kepler, 천문학자, 1571–1630)
Playfair
3993
페타비우스 (Petavius, 프랑스, 1583–1652)
3984
멜란크톤 (Melanchthon, 종교개혁가, 1500s)
Playfair
3964
루터 (Luther, 종교개혁가, 1500s)
3961
라이트풋 (Lightfoot)
3960
코넬리우스 (Cornelius a Lapide)
Univ. Hist.
3951
스칼리져, 이삭슨 (Scaliger, Isaacson)
3950
스트라우키우스 (Strauchius)
3949
벌가 유대인 계산 (Vulgar Jewish computation)
Strauchius
3760
랍비 립만 (Rabbi Lipman, 1579–1654)
Univ. Hist.
3616
1. Brevarium Chronologicum Book IV, 3rd edition, 1699 in English.
2. The Greek translation of the Old Testament originally published in Egypt BC.
3. A Greek historian from Iona, he was Ambassador to India for King Seleucus I. He published Indika in four books.
출처 : Creation 24 (1):24–27, 2002
주소 : https://creation.com/old-earth-or-young-earth-belief
번역 : IT 사역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