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성에 대한 진화론의 잘못된 해석

다양성에 대한 진화론의 잘못된 해석


1. 생명체의 다양성에 대한 성경과 진화론의 상반된 해석

진화론의 세 가지 단계 중에 어느 한 단계도 과학적 근거가 없다. 이처럼 진화론의 가정이 허구임에도 불구하고, 확실한 과학적인 근거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생명체의 다양성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은 마치 이 다양성이 진화의 증거인 것처럼 활용하기 때문이다. 성경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동물, 식물 등을 그 “종류”대로 창조하셨다.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모든 동물과 식물들은 그 종류 내에서 다양해졌다. 이런 다양성은 누구나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같은 사람도 피부색이 다르고, 골격형태가 다르다. 같은 말이어도 제주도의 조랑말도 있고, 경주마도 있다. 이런 다양성은 너무나 쉽게 관찰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과학자가 아니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진화론은 이런 다양성이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성경을 믿는다면, 이런 다양성이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자손이 많아지면서 이뤄진 결과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런데 진화론의 주장은 실제적인 사실과 거짓된 해석을 함께 하고 있어서 사람들을 혼동하게 만든다. 진화론이 주장하는 것처럼 “돌연변이”가 있는가? 분명히 있다. 유전자의 돌연변이에 의해 질병이 생기는 것을 우리는 관찰할 수 있다. “자연선택”이 있는가? 그것도 있다. 환경에 따른 유리한 변화가 생명체에 존재한다. 그렇다면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때문에 다양성이 생기는가? 그러나 이 질문의 답은 좀 애매하다. 그러나 질문을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때문에 진화가 되는가라고 한다면 답은 확실히 “그렇지 않다”이다. “돌연변이”와 “자연선택” 때문에 다양성이 생기는 가에 대한 질문에 애매하다고 답한 것은 다양성의 모두를 그렇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일부는 그럴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화론에서 이야기하는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은 과학적으로 관찰되는 것과는 다른 내용(해석, 가설 등)을 포함하고 있다. “돌연변이”와 “자연선택”은 존재하지만, 진화론자들이 이것을 진화의 원인이라고 잘못 주장하고 있다. 즉, 모든 생명체들은 “돌연변이”에 의해 다양해지고, “자연선택”에 의해 그중 가장 환경에 적응한 것이 살아남고, 다른 것들은 멸망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돌연변이”는 있지만, 돌연변이에 의해 생명체가 다양해진다고 이야기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돌연변이”는 유전자의 손실을 가져와 생명체에 문제가 생기게 되는 것이므로, 그것을 다양해진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유전병 환자가 생기는 것을 인류가 다양해져서 질병을 가진 사람도 생긴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생명체의 다양성은 생육하는 과정에서, 유전정보의 결합과 교환이 끊임없이 일어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같은 부모로부터 태어난 자식들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르다. 한 인간이 태어날 때 부모의 유전자를 반반씩 받으면서, 이전에도 없고, 그 후에도 없는 유일한 유전정보를 가진 한 존재가 태어난다.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고는 어떤 사람도 동일한 유전정보를 가진 사람은 없다.

“자연선택”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존재하지만, “자연선택”이라고 진화론자들이 말할 때 전제가 되는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이 실제 생태계 내에서 일어나지는 않는다. 가장 흔히 드는 “자연선택”의 예가 영국의 흰나방과 검은나방의 분포의 변화이다. 환경오염이 심할 때는 검은 나방이 보호색을 띠게 되므로 검은 나방이 많아지고, 환경오염이 개선된 이후에는 흰나방이 많아지는 현상이 실제로 관찰되었다. 자연 환경의 변화는 생명체의 분포에 영향을 주지만, 흰나방이나 검은 나방 어느 한쪽이 멸망하지도 않고(자연도태되지 않고, 적자 생존도 없고), 또한 어느 한쪽이 새로운 생명체로 진화되지도 않는다.

진화론자들이 처음 생각한 것처럼 생태계는 치열한 생존경쟁, 자연도태, 적자생존의 세상이 아니라 균형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육식동물이 초식동물을 잡아먹기도 하는 등 잔인한 약육강식이 이뤄지고 있어 보이지만, 결코 초식동물이 육식동물에 의해 멸망되지도 않고, 또 될 수도 없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육식동물도 함께 멸망될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다양성을 진화로 해석하는 것은 자연계를 보는 잘못된 개념에 의한 것이었다. 진화론 형성에 영향을 끼친 말더스의 “인구론” 등에서 인간 세상도 한정된 식량자원 때문에 치열한 생존경쟁 만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이런 관점은 인류가 식량자원의 부족 때문이 아니라, 죄의 결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는 것을 인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화론자들이 생각하는 생태계는 진화론이 이뤄지는 생태계를 생각하는데, 실제로 생태계는 진화가 일어나기보다는 그 상태가 유지되고 있다. 만약 지구 생태계가 변화된다면 생명체가 진화되기보다는 멸망할 가능성이 훨씬 높을 것이다.


2. 소진화와 대진화

다양성을 진화로 해석하는 진화론자들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소진화”와 “대진화”의 개념에 대한 구별이 필요하다. “소진화”란 종류내의 다양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대진화”란 새로운 종류의 생명체가 출현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같은 사람이 흑인, 백인 등이 되는 것은 “소진화”이고, 원숭이가 진화되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대진화”이다.  대진화가 얼마나 잘못된 가정을 하고 있는지는 이미 전에 기술하였다. 진화론자들은 대진화의 증거를 전혀 제시할 수 없다.  진화론자들이 진화의 증거라고 제시하는 것은 잘못된 해석에 근거한 것이거나, 거짓일 뿐이다.  

그런데 얼핏 들으면 매우 타당한 주장들이 있는데, 그것이 다양성에 대한 주장이다. 진화론자들은 다양성이 “소진화”의 증거라고 주장한다. 또한 “대진화”는 “소진화”의 누적에 의해 일어난 것이기 때문에 대진화도 당연한 것처럼 주장한다. 다양성을 “소진화”로 잘못 해석하고 있을 뿐 아니라, 소진화와 전혀 연관될 수 없는 “대진화”가 소진화의 누적이라는 말로 슬쩍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겉으로 전혀 나타나지 않은 채 긴 세월 속에 누적되어 있다가 (화석의 증거가 없기 때문에 진화론자들은 이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다), 갑자기 유전자의 상당부분이 확 바뀌면서 전혀 다른 새로운 생명체로 변화되었다고 것이다. 유전정보가 이렇게 바뀔 수도 없지만, 무작위적으로 돌연변이에 의해 바뀐다면 거의 대부분의 생명체들이 생명을 유지한 체계가 망가져서 멸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다양성을 소진화로 해석하는 것에 대하여 일부 기독교인들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소진화”라는 말이 진화론을 전제한 것이라면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단지, 진화론을 전제한 것이 아닌 소진화를 “종류내의 유전자의 변화”라고 해석한다면, 다시 말해 다양성과 소진화를 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예를 들어 바이러스의 유전자의 변화를 과학자들이 연구해서, 같은 바이러스 중에서 각 지역마다 조금씩 다른 유전정보를 이용해서, “진화 나무(evolution tree)'를 만든다. 이런 진화나무는 바이러스가 어느 지역부터 퍼졌는지, 어떻게 변화되어 독성이 강해졌는지, 또는 변화되었는지 등을 연구하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러나 이런 ”진화나무“는 진화론과 상관없이 얼마든지 연구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의 족보를 만들듯이 바이러스의 족보를 유전자 검사를 통해 아는 것이다. 사람들의 족보를 보면서 진화된 것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처럼 바이러스의 족보가 곧 진화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바이러스의 족보는 ”진화나무“가 아닌 단지 다양성과 변화를 보여주는 증거로서 거리낌 없이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진화론이 거짓된 이론이라는 것을 확실히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소진화“를 인정하는 것이 곧 진화론을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진화나무“는 일반인들에게 진화론이 당연한 진리인 것을 입증하는 근거처럼 생각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이 소진화를 인정한다는 말할 때 문제가 되는 또 다른 측면은, “소진화”를 인정한다는 말은 같은 종류의 생명체내의 다양성을 우수한 것과 열등한 것으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흑인으로부터 진화되었다고 믿는 진화론자들에게는 백인은 흑인보다 진화된 발전된 존재이고, 흑인은 덜 진화된 열등한 존재라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제는 이런 이야기를 노골적으로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에 하지 않을 뿐이지, 진화론자들이나, 심지어 일반 사람들도 이런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인종차별, 민족 우월주의가 진화론의 산물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이런 생각들을 정당화하기 위해 흑인들의 평균 IQ가 백인들보다 낮다는 것을 부각시키기도 한다. 이런 것이 소진화의 증거처럼 생각되어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것은 같은 우리나라 사람들 중에 어떤 집안은 머리가 좋고, 어떤 집안은 그렇지 않은 경우와 유사한 것이다. IQ가 좋다는 것은 각 사람마다 갖고 있는 여러 종류의 능력 중에 극히 일부에 불과한 것이며, 그것이 사람의 우열을 가를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사람 각자 모두 자신의 고유한 특출한 능력이 있고, 역시 인종별로도 그런 측면이 있을 뿐이다. 인종들 사이에 우열을 가릴 수 없듯이, 같은 종류의 동물들 중에 우열을 가린다는 것은 과학적인 근거를 갖고 있지 못하다.

“소진화”와 “대진화”의 구분을 어떤 진화론자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하나의 진화이지, “소진화”와 “대진화”의 구분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 다양성과 진화를 혼동하게 만들고, 다양성을 진화의 증거로 부각시킬 수 있다. 실제로 진화에 대한 어떤 증거도 갖고 있지 않은 진화론자들 입장에서는 당연한 주장일 수도 있다. 다윈이 진화론은 만들게 된 계기도 갈라파스 군도의 다양한 동물들의 모습 때문이었다. 처음 진화론을 펼칠 때의 주장의 근거가 모두 생명체의 다양성에 불과한 것이었고, 초창기 창조론자와 진화론자들의 논쟁에서 진화론자들이 승리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다양성에 대한 증거들뿐이었다. 진화론이 형성되던 시대에 창조론자들은 생명체의 다양성에 대하여 주의 깊게 보지를 못했기 때문에, 다양성에 대한 풍부한 증거 앞에서 할 말을 잃어버렸던 것이었다.


3. 종과 종류의 구분

소진화와 대진화의 구분, 소진화로 표현되는 잘못된 다양성에 대한 해석 등과 함께 “종”과 “종류”의 서로 다른 것을 이해해야한다. 사람은 한 종이면서 한 종류임에 분명하다. 하나님께서 종류대로 창조하신 가운데 사람을 창조하였고, 과학적으로도 한 “종”으로 분류되어 있다. “종”은 사람들이 만든 구분이고, “종류”는 하나님이 처음 창조하셨을 때 각 동식물들의 조상이 되는 것들이다. 어떤 종류의 동물은 여러 종 또는 속 등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고, 사람처럼 한 종류가 한 종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종류대로”에 대한 과학적 연구가 부족한 상태지만, “종류”의 구분이 뚜렷하다는 것은 동물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종류”의 구별이 뚜렷한 것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과학적인 용어로 이야기하려면 복잡해진다. 예를 들어 같은 개구리라도 하나의 종이 아니다. 개구리에는 참개구리, 옴개구리, 청개구리, 무당개구리 등 여러 가지의 종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런 서로 종이 다르지만 개구리라는 것은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개구리를 “종류대로” 창조하셨을 때 이런 여러 종의 조상이 되는 개구리를 창조하셨을 가능성이 높다. 사람의 경우 다양성이란 같은 종내의 여러 인종을 말하게 되지만, 개구리의 경우는 다양성이란 여러 종을 포함한 것을 말하게 된다. 따라서 “종류”와 “종”이 서로 같은 의미가 될 수도 있고, 다른 의미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차이는 “종”의 정의 자체가 불분명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같은 “종”이란 서로 자손을 번창시킬 수 있는 암수가 존재함을 의미한다. 만약 자손을 낳을 수 없는 암수라면 같은 “종”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과학자들은 같은 다람쥐 중에서 서로 다른 지역에 살고 있는 것끼리는 짝짓기를 하지 않음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이 다람쥐들은 서로 다른 종에 속하게 되는데, 완전히 분리하기는 형태가 너무 같기 때문에 종이 분화되는 전 단계인 “아종”이라고 표현한다. 진화론자들 입장에서는 이런 식의 종의 분화는 진화를 눈앞에서 보여주는 증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런 것은 같은 “종류”내에서 다양해지는 과정일 뿐이지, 돌연변이에 의해 여러 가지가 생기고, 그중에서 자연선택 되어 새로운 종으로 분화되고, 그렇지 않은 것들은 멸종하는 “진화”하고는 거리가 멀다. 진화론자들은 큰 틀이 “종류”에 대한 확고한 기준이 없이, 불분명한 “종”의 개념에 의지하기 때문에 다양성과 진화를 계속 혼동하고 있다. 만약 현재의 “종”의 개념대로 종을 나눈다면, 서로 짝짓기를 할 수 없는 거대한 불독과 작은 치와와는 서로 다른 “종”으로 분류되어야 할 것이다.

18세기 린네가 종의 분류체계를 처음 제안하고 “종의 불변설”을 주장한 것은 성경의 “종류”대로 창조하신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후 과학자들에게 “종류대로 창조”한 것에 대한 개념을 잃어버린 채, 나름대로의 “종”의 정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새로운 “종”이 분화되어 출현하였다고 과학자들이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반면에 “종류대로”의 구분에 대한 연구는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종류 내에서 다양해지다 보면, 분명히 어떤 틀 안에 있지만, 상당히 서로 다른 것들도 생길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좀 우스운 예로, 조선시대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서양인들을 보고 “서양 도깨비”라고 무서워하고, 신기하게 생각했던 것을 보면, 종류내의 다양성이 매우 크게 다른 것으로 인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유전자에 대한 연구의 발전은 앞으로 “종”의 개념이 달라지고, “종류”의 구분이 가능해 질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다. 유전자의 정보의 교환으로 다양해질 수 있는 부분과, 그렇지 못한 변화될 수 없는 큰 틀을 유전적으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정교한 연구를 통해 더 분명하게 하나님이 창조하신 “종류”의 구분을 할 수 있는 날이 속히 오길 기도한다. 아마도 하나님께서 이 일을 할 과학자를 부르시고 계신지도 모르겠다.

진화의 잘못된 점을 설명하면서 창조과학자들이 가끔 “종”과 “종류”를 혼동하여 사용하는 경우가 있다. “종류”를 의미하는 말을 하면서 표현을 “종”이 분화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앞뒤 문맥을 보면 이때 사용한 “종”이라는 개념이 일반 과학자들이 쓰는 개념과는 달리 “종류”을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잘못하면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주의하여야한다.  

소진화와 대진화의 개념에서도 “종”의 정의로 인해 혼란이 야기된다. 어떤 진화론자들은 소진화를 “종”내의 진화로, 대진화를 “속”이상의 수준에서의 진화로 정의하기도 한다. 이런 구분은 “종”이상의 진화를 어떻게 설명하는지 불분명하여 더욱 혼란을 주고 있으며, 어떤 진화론자들은 이런 구분이 잘못되었으며, 진화는 구분할 수 없는 연속선상에 있다고 주장한다. 진화는 과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엄청나게 많은 해석들이 있고, 따라서 진화론자들 사이에 “진화가 이루어졌다”라는 명제 이외에는 서로 다른 주장들이 상당히 많이 있음을 알아야한다.

위에서 저자가 언급한 “소진화”, “대진화”의 개념은 종류내의 다양성을 소진화로, 종류 이상의 변화를 대진화로 기술한 것이다. 따라서 저자의 개념대로라면 대진화는 말도 안 되는 것이지만, 어떤 “종류”내에서 여러 “종”이 포함되어 있다면, “종류”에 대한 틀 없이 “종”만 가지고 주장하는 진화론자들은 종에서 종으로 변화하는 대진화도 과학적 증거가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런 혼란은 성경의 절대 진리를 버린 데에서부터 출발한다. “종류”대로 창조된 생명체들을 “종류”로부터 분류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생각한 종-속-과 등으로 분류를 하고, 그 이후 자신들의 분류를 기준으로, 생명체의 분류체계를 만들다보니, 진화론적인 개념에서 만들어지고, 과학적 사실과 거짓된 해석이 혼란스럽게 함께 하는 분류체계가 될 수밖에 없다.
 

4. 결론

생명체의 다양성은 분명하지만, 이런 다양성은 돌연변이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고,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는 자연선택 때문에 생긴 것도 아니다. 또한 진화론의 주장처럼 더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는 것도 아니다. 생명체의 다양성은 “종류”대로 창조된 생명체가 생육하고 번성하면서 이뤄진 것이다. 그 안에 돌연변이도 자연선택 되는 부분도 있지만, 그것은 일부에 불과한 것이다. 진화론은 다양성이 마치 진화의 증거처럼 주장하고, 이런 “소진화”가 누적되어 “대진화”가 일어났다고 하지만, 다양성은 진화론의 증거가 되지 않는다. 진화론은 항상 사실과 잘못된 해석을 합쳐서 말하고 있고, 자신들이 사실에 근거하기 때문에 잘못된 해석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논리를 편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종류”의 구분을 아직 과학적으로 밝히지 못한 상태에서, 생명체의 분류체계는 진화론에 입각한 분류체계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진화론에 입각한 현재 과학자들의 분류체계인 “종-속-과” 등의 분류는 진화론적 개념을 가지고 있으며, 따라서 이런 개념에 의해 정립된 “종”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보다는 “종류”라는 표현을 명확히 사용해야 혼란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소진화”라는 표현을 “다양성”이라는 표현으로 바꿔서 사용하는 것도 혼란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진화론자들은 성경을 근거한 “종류”의 개념이 비과학적인 믿음에서 출발했다고 주장하겠지만,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세계의 동식물들은 모두 뚜렷한 구분이 있는 것은 누구에게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사실이다. 진화론적 믿음이 없이 동식물들을 관찰하고, 연구하면, 하나님이 창조하신 “종류”의 구분에 대한 과학적 연구결과도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그러나 진화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과, 생명체의 다양성이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신 하나님의 명령의 결과라는 것은 엄청난 연구를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진리의 말씀을 굳게 붙들면, 진화론의 거짓된 해석과 혼란스러운 주장들을 쉽게 분별할 수 있을 것이다.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863

참고 : 3653|3588|3745|439|169|2363|735|2767|495|3139|3071|3069|3373|3265|3338|3178|3850|498|664|2025|2089|695|2157|2169|423|2513|2347|442|3202|3214|3174|3266|3375|3355|3315|3097|3608|3718|3409|3413|3607|3652|3712|3727|3732|3779|3847|3859|3800|3729|3109|3107|192|2334|2114|653|2579|328|3059|654|45|2748|736|730|657|658|659|3012|3391|3360|3593|3591|3426|3341|3293|3841|3586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3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박영민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18-서울중구-0764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5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