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설치한 모이통이 벌새의 극적인 진화를 초래했는가?
불과 몇 세대 만에 부리 크기와 모양이 극적으로 변한 이유는?
(Humans Cause Stuff to Happen to Hummingbirds)
by John D. Wise, PhD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어떤 일이 어떻게,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설명이 다를 뿐이다.
벌새의 "진화"?
"인간의 뇌는 마치 다윈주의를 오해하고 믿기 어렵게 만들도록 특별히 설계된 것 같다." -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 중에서.
새 모이통은 캘리포니아 벌새의 극적인 진화를 가져왔다.(Science, 2025. 5. 21).
플로리다의 버마비단뱀(Burmese pythons)과 캘리포니아의 벌새(hummingbirds)는 그들 개체군의 전체적 특성에 변화를 겪었다. 버마비단뱀 개체군은 영하의 기온으로, 많은 개체가 추위에 더 강해져서, 북쪽으로 서식지를 확장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러한 북쪽으로의 확장은 벌새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
새 모이통(bird feeders)은 수많은 뒷마당 새들을 관찰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도구이자, 새들의 편리한 식사 장소이다. 하지만 미국 서부에 흔히 서식하는 애나스벌새(Anna’s hummingbird, 안나의 벌새)에게 모이통은 진화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이번 주 Global Change Biology(2025. 5. 21) 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인공 모이통 덕분에 벌새들은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북부 주의 끝까지 서식지를 확장할 수 있었다. 또한 벌새 자체의 변화도 촉진했다. 불과 몇 세대 만에 벌새의 부리 크기와 모양이 극적으로 변했다.
Creation Evolution Headlines에 내가 이전에 기고한 글은 2010년대 플로리다에서 버마비단뱀의 급속한 진화에 관한 것이었다. 제니와 나는 그 글에 대해 재미있는 쇼츠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보실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진화론 선전가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실패한 이론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버마비단뱀 관련 기사를 직접 인용하면서, 캘리포니아의 애나스벌새 개체군에 "뭔가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만약 뭔가 일어나는 일이 진화론을 입증한다면, 논쟁은 끝났다. 창조론자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해 오지 않았는가? 안 그런가?
과정 형이상학과 신앙
아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우리의 설명이 다르다. 창조론자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설계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진화론자들은 모든 것들이 그저 우연히 일어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를 과정 형이상학(process metaphysics)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거기에 상대주의적 진리 개념을 주장하기 위해서, 다소 특이한 "추가" 개념인 유물론(materialism)을 덧붙인다.[1] 이러한 의견 차이는 과학적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문제이다. 경험적으로 우리는 같은 데이터를 다룬다.

.벌새 알. 이 작은 알들 안에는 멋진 비행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유전정보가 담겨 있다. (출처: DFC)
여러분 중 일부와 내가 곤경에 처할 수도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과학은 이 문제를 결코 어느 한쪽에 유리하게 해결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단순한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방금 말씀드린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겠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의견 불일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만약 "과학"이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다면, 과학은 그 질문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해결할 것이다. 라틴어 'scientia'가 '지식'을 의미하듯이 말이다. 지식이 절대적일 때, 그것은 완전하며, 완전한 지식은 역사의 모든 영역을 포괄할 것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문제는 아예 질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질문은 절대적이지 않고, 불완전한 수준에서만 존재하며, 바로 이것이 우리 인간이 과학을 수행하는 공간이 된다.
무지함을 인정했던 소크라테스의 지혜
서양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통찰은 (내가 모든 인간 지혜의 궁극적 원천이라고 믿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외하고) 플라톤의 『변론(Apology)』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이 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목숨을 건 재판에서 거짓 고발에 맞서 자신을 변호하고 있었다. 그는 아테네의 "현자" 중 한 명에게 질문하면서 깨달은 사실을 이야기한다. 늘 그렇듯이,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자신이 전문가라고 주장하고 있던 사람에게 그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그는 소크라테스에게 화를 내었고,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그래서 나는 물러나서 생각했다. “나는 이 사람보다 더 현명하다. 우리 둘 다 어떤 가치있는 것을 모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뭔가를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을 때, 나는 내가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만큼은, 그보다 약간 더 현명할 가능성이 크다.”[2]
소크라테스의 지혜는 자신의 한계, 즉 무지를 인식하는 데 있었다. 그의 실천적 지혜는 지식을 주장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상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3]
잠언의 저자는 훨씬 더 간결하게 말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거늘..."(잠 1:7)
증거와 신앙
소크라테스와 솔로몬의 요점은 우리 인간은 불완전하고, 부분적인 지역에 거주하며, 과학적 열망이 우리를 온전한 지식, 즉 엄밀히 말하면 과학으로 이끈다는 것이다.[4] 이러한 절대적 진실에 대한 믿음이 인간 학문으로서 과학의 기초인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자 근거는 우리 자신의 무지, 불완전한 이해, 온전한 지식 앞에서의 우리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겉모습을 가장하고 있는 과학에 대한 회의주의(skepticism)가 있다. 과학자가 되어 창조를 부정하는 것은 회의주의가 아니라, 편견과 무지, 확신으로의 비판 없는 후퇴이다.
진화론적 믿음은 우리가 이전에도 말했듯이 (그리고 여기에서도 말했듯이) 과학이라는 프로젝트 전체를 훼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한 믿음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칼턴 대학(Carleton University)의 동물 행동학자 로슬린 데이킨(Roslyn Dakin)은 새로운 논문은 "진화가 실제로 진행되는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었다.
이것은 전혀 증거를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진화론자들이 다른 신앙적 가정(postulate)을 갖고 있으며, 그들이 그러한 (무신론적) 신앙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이다.[5] 나는 무신론자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이러한 주장을 지겹도록 듣는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터무니없는 주장들이지만, 그들은 정색하며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보다 마법에 대한 믿음이 더 합리적이고 증거적으로 뒷받침될 수 있다.
‘만물 우연 발생의 법칙’에 근거하여, 어떤 것이 진화되었다는 설명은[6] 과학이 아니라, 신앙인 것이다. 이러한 진부한 그들의 주장을 알고 있다면, 오늘날 범람하는 진화론적 선전들의 홍수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신앙은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가?[7]
견고한 기초 위에 믿음을 세우라
우리 창조론자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참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분이 진리이시기에, 우리가 창조론자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분은 거짓말하실 수 없다.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에 그것을 믿을 수는 있지만, 알 수는 없다. 우리는 진리를 믿는다. 우리는 존재하심을 믿는다. 우리는 지식을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진리이신 분과 다른 모든 신적 속성들을 알 수 있다. 그분께서 우리를 그분을 알 수 있도록 초대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권위(authority)에 대한 호소일까? 분명 그럴 것이다! 이것은 권위, 즉 과학(지식이라는 본래 의미에서의)과 진리 그 자체에 대한 호소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의로움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순전한 인간적 지식은 진리 그 자체의 엄청난 순수함과 비교하면 '더러운 누더기'에 불과하다.
도킨스가 처음에 인용한 내용에 대한 답변으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요약한 내용으로 마무리하겠다(요한복음 4:22; 시편 100: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이런 종류의 토론이 마음에 드신다면 '실낙원 : 악의 기계(Paradise Lost: The Machinery of Evil)'를 읽어보라.
Footnotes
[1] In fact, this only delays their problem by pushing it from their consciousness, because either the substance of the universe is absolute, or it is not. If it is absolute, then an absolute being exists. This is the starting place for the Western God (“tell them I AM sent you.”) If it is relative, then they must still answer, relative to what?
[2] Plato’s “Apology” in The Trial and Death of Socrates, p. 25. Hacket: 2000.
[3] Ibid. Pp. 25-26.
[4] Toward God.
[5] The blindness isn’t universal, but there aren’t many secularists willing to look this truth honestly in the face. Jean-Paul Sartre, Anthony Flew and Thomas Nagel among philosophers, for instance. It was Sartre that revealed my own lie to myself on this point. As we mentioned last week, from C.S. Lewis, this is a “radical disease in their whole style of thought.”
[6] And of course, it does explain it. It provides a rationalized story that accounts for the facts, but it leaves the question of whether it is fiction or true history unanswered.
[7] Their common response when forced to answer is that it is based on the evidence. However, there is no such thing as “evolutionary evidence.” This sort of thing is only born through faith. Evidence does rationally point outside itself to a cause, but it does not by itself specify the cause. That’s why God reveals Himself to us as THE Cause, the Creator.
*참조 : 형질 변이와 종 분화는 무작위적 돌연변이가 아니라, 내장된 대립유전자에 의해서 일어난다.
https://creation.kr/Variation/?idx=17316410&bmode=view
도마뱀의 색깔 변화는 사전에 구축되어 있었다 : 1주일 만에 일어나는 변화는 진화론적 설명을 거부한다.
https://creation.kr/NaturalSelection/?idx=1757451&bmode=view
급속한 진화(변화)는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확증하고 있다.
https://creation.kr/Variation/?idx=1290470&bmode=view
종의 다양성은 여전히 진화론의 수수께끼이다.
https://creation.kr/Variation/?idx=24659082&bmode=view
새로운 유전자 없이 적응하는 방법 : 아홀로틀 도롱뇽과 흰파리에서 놀라운 발견
https://creation.kr/Mutation/?idx=10971754&bmode=view
초파리의 계절에 따른 빠른 유전적 변화 : “적응 추적”은 진화가 아니라, 설계를 가리킨다.
https://creation.kr/Variation/?idx=11298959&bmode=view
후성유전학 메커니즘 : 생물체가 환경에 적응하도록 하는 마스터 조절자
https://creation.kr/Variation/?idx=16436574&bmode=view
후성유전학 : 진화가 필요 없는 적응
https://creation.kr/Variation/?idx=13222062&bmode=view
동굴에 사는 장님 물고기가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1백만 년(?) 전에 퇴화되었다는 눈이 한 세대 만에 갑자기 생겨났다?
https://creation.kr/Mutation/?idx=1289771&bmode=view
연속환경추적 : 공학에 기초한 생물들의 적응 모델
https://creation.kr/Variation/?idx=17131600&bmode=view
오징어에서 작동되고 있는 연속환경추적(CET)
https://creation.kr/animals/?idx=16200071&bmode=view
연어, 구피, 동굴물고기에서 보여지는 연속환경추적(CET)
https://creation.kr/Variation/?idx=12975031&bmode=view
시클리드 물고기에 내재되어 있는 적응형 유전체 공학.
http://creation.kr/Variation/?idx=3759191&bmode=view
▶ 종의 분화
https://creation.kr/Topic401/?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777108&t=board
▶ 핀치새
https://creation.kr/Topic401/?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776377&t=board
▶ 새로 밝혀진 후성유전학
https://creation.kr/Topic401/?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776421&t=board
출처 : CEH, 2025. 6. 13.
주소 : https://crev.info/2025/06/humans-hummingbirds/
번역 : 미디어위원회
사람이 설치한 모이통이 벌새의 극적인 진화를 초래했는가?
불과 몇 세대 만에 부리 크기와 모양이 극적으로 변한 이유는?
(Humans Cause Stuff to Happen to Hummingbirds)
by John D. Wise, PhD
어떤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다만 어떤 일이 어떻게,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설명이 다를 뿐이다.
벌새의 "진화"?
"인간의 뇌는 마치 다윈주의를 오해하고 믿기 어렵게 만들도록 특별히 설계된 것 같다." - 리처드 도킨스(Richard Dawkins),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 중에서.
새 모이통은 캘리포니아 벌새의 극적인 진화를 가져왔다.(Science, 2025. 5. 21).
플로리다의 버마비단뱀(Burmese pythons)과 캘리포니아의 벌새(hummingbirds)는 그들 개체군의 전체적 특성에 변화를 겪었다. 버마비단뱀 개체군은 영하의 기온으로, 많은 개체가 추위에 더 강해져서, 북쪽으로 서식지를 확장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이러한 북쪽으로의 확장은 벌새에게도 일어나고 있다. 이 기사는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
새 모이통(bird feeders)은 수많은 뒷마당 새들을 관찰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도구이자, 새들의 편리한 식사 장소이다. 하지만 미국 서부에 흔히 서식하는 애나스벌새(Anna’s hummingbird, 안나의 벌새)에게 모이통은 진화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이번 주 Global Change Biology(2025. 5. 21) 지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인공 모이통 덕분에 벌새들은 남부 캘리포니아에서 북부 주의 끝까지 서식지를 확장할 수 있었다. 또한 벌새 자체의 변화도 촉진했다. 불과 몇 세대 만에 벌새의 부리 크기와 모양이 극적으로 변했다.
Creation Evolution Headlines에 내가 이전에 기고한 글은 2010년대 플로리다에서 버마비단뱀의 급속한 진화에 관한 것이었다. 제니와 나는 그 글에 대해 재미있는 쇼츠를 만들었다. 여기에서 보실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진화론 선전가들이 이런 이야기들을 이용해 자신들의 실패한 이론을 뒷받침하는 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버마비단뱀 관련 기사를 직접 인용하면서, 캘리포니아의 애나스벌새 개체군에 "뭔가가 일어났다"는 것이다.
만약 뭔가 일어나는 일이 진화론을 입증한다면, 논쟁은 끝났다. 창조론자들은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부정해 오지 않았는가? 안 그런가?
과정 형이상학과 신앙
아니다, 어떤 일이 일어나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다만, 어떻게, 그리고 왜 일어나는지에 대한 우리의 설명이 다르다. 창조론자들은 하나님이 이 세상 안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도록 설계했다고 주장하는 반면, 진화론자들은 모든 것들이 그저 우연히 일어나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이를 과정 형이상학(process metaphysics)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거기에 상대주의적 진리 개념을 주장하기 위해서, 다소 특이한 "추가" 개념인 유물론(materialism)을 덧붙인다.[1] 이러한 의견 차이는 과학적 문제가 아니라, 철학적 문제이다. 경험적으로 우리는 같은 데이터를 다룬다.
.벌새 알. 이 작은 알들 안에는 멋진 비행체를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유전정보가 담겨 있다. (출처: DFC)
여러분 중 일부와 내가 곤경에 처할 수도 있는 부분이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가 이해하는 과학은 이 문제를 결코 어느 한쪽에 유리하게 해결할 수 없다. 이 문제는 단순한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신앙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제 방금 말씀드린 내용을 제대로 설명하겠다. 바로 이것이 우리의 의견 불일치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만약 "과학"이 절대적인 의미를 지닌다면, 과학은 그 질문을 해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로 해결할 것이다. 라틴어 'scientia'가 '지식'을 의미하듯이 말이다. 지식이 절대적일 때, 그것은 완전하며, 완전한 지식은 역사의 모든 영역을 포괄할 것이다. 창조론과 진화론의 문제는 아예 질문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질문은 절대적이지 않고, 불완전한 수준에서만 존재하며, 바로 이것이 우리 인간이 과학을 수행하는 공간이 된다.
무지함을 인정했던 소크라테스의 지혜
서양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통찰은 (내가 모든 인간 지혜의 궁극적 원천이라고 믿는 하나님의 말씀을 제외하고) 플라톤의 『변론(Apology)』에 나오는 소크라테스의 유명한 말이 될 수 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목숨을 건 재판에서 거짓 고발에 맞서 자신을 변호하고 있었다. 그는 아테네의 "현자" 중 한 명에게 질문하면서 깨달은 사실을 이야기한다. 늘 그렇듯이, 소크라테스의 질문은 자신이 전문가라고 주장하고 있던 사람에게 그가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함을 보여주었다. 당연히 그는 소크라테스에게 화를 내었고, 소크라테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그래서 나는 물러나서 생각했다. “나는 이 사람보다 더 현명하다. 우리 둘 다 어떤 가치있는 것을 모를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모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뭔가를 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 있을 때, 나는 내가 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생각하는 만큼은, 그보다 약간 더 현명할 가능성이 크다.”[2]
소크라테스의 지혜는 자신의 한계, 즉 무지를 인식하는 데 있었다. 그의 실천적 지혜는 지식을 주장할 때 신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사실상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3]
잠언의 저자는 훨씬 더 간결하게 말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거늘..."(잠 1:7)
증거와 신앙
소크라테스와 솔로몬의 요점은 우리 인간은 불완전하고, 부분적인 지역에 거주하며, 과학적 열망이 우리를 온전한 지식, 즉 엄밀히 말하면 과학으로 이끈다는 것이다.[4] 이러한 절대적 진실에 대한 믿음이 인간 학문으로서 과학의 기초인 것이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자 근거는 우리 자신의 무지, 불완전한 이해, 온전한 지식 앞에서의 우리의 유한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겉모습을 가장하고 있는 과학에 대한 회의주의(skepticism)가 있다. 과학자가 되어 창조를 부정하는 것은 회의주의가 아니라, 편견과 무지, 확신으로의 비판 없는 후퇴이다.
진화론적 믿음은 우리가 이전에도 말했듯이 (그리고 여기에서도 말했듯이) 과학이라는 프로젝트 전체를 훼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화론자들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 대한 믿음을 끊임없이 드러내고 있다.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칼턴 대학(Carleton University)의 동물 행동학자 로슬린 데이킨(Roslyn Dakin)은 새로운 논문은 "진화가 실제로 진행되는 모습"을 아름답게 보여주고 있다고 덧붙이고 있었다.
이것은 전혀 증거를 보여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내가 반대하는 것은 진화론자들이 다른 신앙적 가정(postulate)을 갖고 있으며, 그들이 그러한 (무신론적) 신앙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이다.[5] 나는 무신론자들과 이야기할 때마다 이러한 주장을 지겹도록 듣는다. 진화론자들의 주장은 내가 본 것 중 가장 터무니없는 주장들이지만, 그들은 정색하며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주장보다 마법에 대한 믿음이 더 합리적이고 증거적으로 뒷받침될 수 있다.
‘만물 우연 발생의 법칙’에 근거하여, 어떤 것이 진화되었다는 설명은[6] 과학이 아니라, 신앙인 것이다. 이러한 진부한 그들의 주장을 알고 있다면, 오늘날 범람하는 진화론적 선전들의 홍수 속에서 기독교인들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신앙은 무엇에 기초하고 있는가?[7]
견고한 기초 위에 믿음을 세우라
우리 창조론자들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참이라고 말씀하셨고, 그분이 진리이시기에, 우리가 창조론자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한다. 그분은 거짓말하실 수 없다. 우리는 유한하기 때문에 그것을 믿을 수는 있지만, 알 수는 없다. 우리는 진리를 믿는다. 우리는 존재하심을 믿는다. 우리는 지식을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진리이신 분과 다른 모든 신적 속성들을 알 수 있다. 그분께서 우리를 그분을 알 수 있도록 초대하시기 때문이다. 이것이 권위(authority)에 대한 호소일까? 분명 그럴 것이다! 이것은 권위, 즉 과학(지식이라는 본래 의미에서의)과 진리 그 자체에 대한 호소이다.
하나님 앞에서의 우리의 의로움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순전한 인간적 지식은 진리 그 자체의 엄청난 순수함과 비교하면 '더러운 누더기'에 불과하다.
도킨스가 처음에 인용한 내용에 대한 답변으로, 우리는 성경 말씀을 요약한 내용으로 마무리하겠다(요한복음 4:22; 시편 100:3) :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이런 종류의 토론이 마음에 드신다면 '실낙원 : 악의 기계(Paradise Lost: The Machinery of Evil)'를 읽어보라.
Footnotes
[1] In fact, this only delays their problem by pushing it from their consciousness, because either the substance of the universe is absolute, or it is not. If it is absolute, then an absolute being exists. This is the starting place for the Western God (“tell them I AM sent you.”) If it is relative, then they must still answer, relative to what?
[2] Plato’s “Apology” in The Trial and Death of Socrates, p. 25. Hacket: 2000.
[3] Ibid. Pp. 25-26.
[4] Toward God.
[5] The blindness isn’t universal, but there aren’t many secularists willing to look this truth honestly in the face. Jean-Paul Sartre, Anthony Flew and Thomas Nagel among philosophers, for instance. It was Sartre that revealed my own lie to myself on this point. As we mentioned last week, from C.S. Lewis, this is a “radical disease in their whole style of thought.”
[6] And of course, it does explain it. It provides a rationalized story that accounts for the facts, but it leaves the question of whether it is fiction or true history unanswered.
[7] Their common response when forced to answer is that it is based on the evidence. However, there is no such thing as “evolutionary evidence.” This sort of thing is only born through faith. Evidence does rationally point outside itself to a cause, but it does not by itself specify the cause. That’s why God reveals Himself to us as THE Cause, the Creator.
*참조 : 형질 변이와 종 분화는 무작위적 돌연변이가 아니라, 내장된 대립유전자에 의해서 일어난다.
https://creation.kr/Variation/?idx=17316410&bmode=view
도마뱀의 색깔 변화는 사전에 구축되어 있었다 : 1주일 만에 일어나는 변화는 진화론적 설명을 거부한다.
https://creation.kr/NaturalSelection/?idx=1757451&bmode=view
급속한 진화(변화)는 진화론을 부정하고, 창조론을 확증하고 있다.
https://creation.kr/Variation/?idx=1290470&bmode=view
종의 다양성은 여전히 진화론의 수수께끼이다.
https://creation.kr/Variation/?idx=24659082&bmode=view
새로운 유전자 없이 적응하는 방법 : 아홀로틀 도롱뇽과 흰파리에서 놀라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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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파리의 계절에 따른 빠른 유전적 변화 : “적응 추적”은 진화가 아니라, 설계를 가리킨다.
https://creation.kr/Variation/?idx=11298959&bmode=view
후성유전학 메커니즘 : 생물체가 환경에 적응하도록 하는 마스터 조절자
https://creation.kr/Variation/?idx=16436574&bmode=view
후성유전학 : 진화가 필요 없는 적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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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에 사는 장님 물고기가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1백만 년(?) 전에 퇴화되었다는 눈이 한 세대 만에 갑자기 생겨났다?
https://creation.kr/Mutation/?idx=1289771&bmode=view
연속환경추적 : 공학에 기초한 생물들의 적응 모델
https://creation.kr/Variation/?idx=17131600&bmode=view
오징어에서 작동되고 있는 연속환경추적(CET)
https://creation.kr/animals/?idx=16200071&bmode=view
연어, 구피, 동굴물고기에서 보여지는 연속환경추적(CET)
https://creation.kr/Variation/?idx=12975031&bmode=view
시클리드 물고기에 내재되어 있는 적응형 유전체 공학.
http://creation.kr/Variation/?idx=3759191&bmode=view
▶ 종의 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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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치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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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밝혀진 후성유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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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EH, 2025. 6. 13.
주소 : https://crev.info/2025/06/humans-hummingbirds/
번역 : 미디어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