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의 창조주 하나님 – 이 시대에 꼭 만나야 하는 하나님
이 은 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한국창조과학회 전임 회장
욥기는 참 어렵다.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큰 복을 받은 사람이 갑자기 재물과 자녀를 모두 잃어버리는 엄청난 재난을 당하는 것도 받아들여지기 힘든데,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고난을 하나님의 시험(test)이라고 해석하면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신다. 아브라함도 시험하셨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시험하셨다.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도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으셨음을 마태복음이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 4:1)”
하나님은 왜 우리를 시험하실까? 첫째는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을 드러내시고자 시험하시며(대하 32:31), 둘째는 우리를 단련시키시기 위해 시험하신다(시 66:10). 하나님의 시험은 세상에서 보는 시험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들은 대부분 시험을 싫어한다. 자신의 실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시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시험이 있어야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고, 더 노력할 수 있는 것처럼 영적 시험을 통해 자신이 드러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단련을 받는 것이다.
고난이 왔을 때 이것을 하나님의 시험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은 고난을 헤쳐가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고난을 하나님의 시험문제로 인식하는 순간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 때문에 힘든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가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난을 시험이라고 인식할 때, 이것은 계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내할 수 있고, 시험을 통과하면 그에 따른 영광이 뒤따름을 알기 때문에 소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거장들에게 주신 시험문제는 너무나 어려운 것 같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도 “하나님이 너무 하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창세기를 읽어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이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은 자신의 후손을 통해 창대한 민족이 나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이삭을 제물로 바쳐도 다시 살아날 수밖에 없다고 믿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통해 부활의 믿음을 갖게 되는 영적 도약이 있었고, 하나님의 예비하심도 경험하였다.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신 욥에게 주어진 시험문제도 난이도가 매우 높다. 그럼에도 욥은 거의 정답에 가까운 고백을 한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욥은 자신의 몸에 심각한 피부병이 생겼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런데 욥은 정말 정답을 말한 것일까?
욥은 하나님을 절대적 주권자로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분이라는 것은 잘 알았지만, 자신을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그 축복도 거두어가실 수 있다고 두려워했던 것 같다. 욥은 자신의 아들들의 생일잔치가 끝나면 반드시 제사를 드렸다.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엄청난 고난을 당한 욥에게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 욥은 자신이 태어난 것을 저주하고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했다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께 범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 따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고통을 주실 바에는 왜 나를 태어나게 하셨나요?”
욥은 하나님에 대하여 매우 제한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다시 빼앗아가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욥의 축복을 거두어가셨나? 정확하게 말하면 욥이 받은 축복을 모두 파괴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사탄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의 허락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을 거두어가심을 의미하는 것이지, 축복을 빼앗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같은 것 같지만 이 두가지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탄이 하나님께 욥에 대하여 공격할 때 하는 말을 먼저 들어봐야 한다. 사탄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루심 때문이 아니니이까?”라고 질문한다. 사탄은 하나님께 두 가지 질문을 하며 도전한다. 첫째는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조건적이라는 도전이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욥을 보호하고 계시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욥에게 닥친 진정한 시험은 고난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 이해하고 있느냐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당연히 축복해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지 않으셔도 하나님이시다. 사탄의 도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탄의 주장은 사실이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을 경험한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다면 축복의 선물도 지킬 수 없다는 사탄의 주장도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을 거둠으로써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셨다. 또한 이런 참혹한 결과 속에서도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은 욥을 통해 우리에게도 욥에게 주었던 시험문제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셨다.
우리들은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께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라고 묻지만, 욥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다. 욥은 고난 이후 하나님을 만나고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욥은 어떤 하나님을 만났을까? 욥은 자신의 고난이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변론하다, 자신은 의롭고 하나님은 불의한 것처럼 감정적인 주장을 펼친다. 하나님께서는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자”라고 욥을 꾸짖으시며 나타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땅과 바다, 사망과 흑암, 별들과 동물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까마귀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이야기하신다. 욥이 만난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창조주 하니님이셨다. 그런데 욥의 반응은 떨떠름하다(욥40:4).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능력으로 제어할 수 없는 창조물 중의 으뜸 되는 베헤못과 모든 교만한 자들의 왕인 리워야단에 대하여 말씀하시자, 욥은 진정 회개한다(욥40:1-6). 무엇이 욥의 마음을 바꾼 것일까? 아마도 공룡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동물로부터 이미 사람들을 보호하고 계신 하나님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 나의 축복을 다시 빼앗으신 것이 아니라, 그 축복 자체가 특별한 은혜였으며, 지금도 그 은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난과 고통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다시 만났기 때문에 욥에게 놀라운 회복과 위로가 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에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 특별한 은혜가 사라져가며,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의 시험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자초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은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정해야한다.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의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으신다. 고난의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난의 이유를 분석하는데 집중하지 말고, 이미 주셨던, 또한 지금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축복보다 고난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 집중하라고 권면한다. 우리는 욥과 같은 믿음이 없지만, 우리의 작은 신음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고난의 자리에서 만나야 한다. 그런 만남을 통해 내가 하는 하나님보다 더 크신 하나님, 내가 기대하는 사랑보다 더 큰 은혜와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야한다. 욥처럼 회개를 통해 새로운 믿음으로 새로운 축복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길을 가야한다. 고난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믿는다. 이 시대에 주어진 하나님의 시험문제에 욥보다 더 바른 답을 제출하는 우리들이 되길 기도하며 소망한다.
*참조 : 창세기와 욥기에 기록된 기후와 일치되는 고고학적 발굴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85&bmode=view
욥기 38장에 기록된 ‘바다의 샘’이 확인되었다.
http://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893&bmode=view
바다 샘들의 발견과 성경의 정확성
http://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895&bmode=view
수영을 했던 스피노사우루스 공룡은 욥기 41장의 리워야단인가?
http://creation.kr/Dinosaur/?idx=3984593&bmode=view
욥기 41장의 리워야단은 어떤 동물일까?
http://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894&bmode=view
리워야단의 몸통 갑옷의 비밀
http://creation.kr/BiblenScience/?idx=1288900&bmode=view
욥기에 기록된 매와 독수리로부터 배우는 교훈
http://creation.kr/animals/?idx=1291218&bmode=view
욥의 십자가
http://creation.kr/Faith/?idx=1293818&bmode=view
출처 : 온누리신문 (2020. 8. 26)
욥기의 창조주 하나님 – 이 시대에 꼭 만나야 하는 하나님
이 은 일
고려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한국창조과학회 전임 회장
욥기는 참 어렵다. 욥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며 큰 복을 받은 사람이 갑자기 재물과 자녀를 모두 잃어버리는 엄청난 재난을 당하는 것도 받아들여지기 힘든데,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그렇게 하도록 허락하셨다는 것은 더욱 이해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고난을 하나님의 시험(test)이라고 해석하면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다. 하나님은 우리를 시험하신다. 아브라함도 시험하셨고,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도 시험하셨다. 예수님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신 것도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으셨음을 마태복음이 기록하고 있다.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마 4:1)”
하나님은 왜 우리를 시험하실까? 첫째는 우리의 마음에 있는 것을 드러내시고자 시험하시며(대하 32:31), 둘째는 우리를 단련시키시기 위해 시험하신다(시 66:10). 하나님의 시험은 세상에서 보는 시험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우리들은 대부분 시험을 싫어한다. 자신의 실력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시험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이런 시험이 있어야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고, 더 노력할 수 있는 것처럼 영적 시험을 통해 자신이 드러나고, 그런 과정을 통해 단련을 받는 것이다.
고난이 왔을 때 이것을 하나님의 시험문제라고 인식하는 것은 고난을 헤쳐가는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고난을 하나님의 시험문제로 인식하는 순간 고난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난 때문에 힘든 자신의 마음에 집중하지 않고 그 상황에서 어떻게 반응하는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인가에 더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난을 시험이라고 인식할 때, 이것은 계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인내할 수 있고, 시험을 통과하면 그에 따른 영광이 뒤따름을 알기 때문에 소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적 거장들에게 주신 시험문제는 너무나 어려운 것 같다.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시험도 “하나님이 너무 하신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창세기를 읽어보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적으로 순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히브리서 11장은 아브라함이 순종할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그것은 아브라함은 자신의 후손을 통해 창대한 민족이 나올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기 때문에, 이삭을 제물로 바쳐도 다시 살아날 수밖에 없다고 믿은 것이다. 아브라함은 이 시험을 통해 부활의 믿음을 갖게 되는 영적 도약이 있었고, 하나님의 예비하심도 경험하였다. 하나님께서 칭찬하시고 자랑스러워하신 욥에게 주어진 시험문제도 난이도가 매우 높다. 그럼에도 욥은 거의 정답에 가까운 고백을 한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 1:21).” 욥은 자신의 몸에 심각한 피부병이 생겼어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런데 욥은 정말 정답을 말한 것일까?
욥은 하나님을 절대적 주권자로서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분이라는 것은 잘 알았지만, 자신을 축복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든지 그 축복도 거두어가실 수 있다고 두려워했던 것 같다. 욥은 자신의 아들들의 생일잔치가 끝나면 반드시 제사를 드렸다.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염려하였기 때문이다. 또한 엄청난 고난을 당한 욥에게 친구들이 찾아왔을 때, 욥은 자신이 태어난 것을 저주하고 내가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했다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께 범죄하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 따지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이런 고통을 주실 바에는 왜 나를 태어나게 하셨나요?”
욥은 하나님에 대하여 매우 제한된 이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다시 빼앗아가는 분이라고 고백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욥의 축복을 거두어가셨나? 정확하게 말하면 욥이 받은 축복을 모두 파괴한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탄이다. 그래도 하나님께서 사탄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기 때문이 아닌가?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님의 허락은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을 거두어가심을 의미하는 것이지, 축복을 빼앗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같은 것 같지만 이 두가지는 전혀 다른 의미이다. 이런 미묘한 차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사탄이 하나님께 욥에 대하여 공격할 때 하는 말을 먼저 들어봐야 한다. 사탄은 “욥이 어찌 까닭 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주께서 그와 그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울타리로 두루심 때문이 아니니이까?”라고 질문한다. 사탄은 하나님께 두 가지 질문을 하며 도전한다. 첫째는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무조건적인 것이 아니라, 조건적이라는 도전이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특별히 욥을 보호하고 계시는 것은 공평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쩌면 욥에게 닥친 진정한 시험은 고난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어떤 분으로 이해하고 있느냐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을 믿으면 당연히 축복해주실 것이라고 믿는다. 이런 믿음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지 않으셔도 하나님이시다. 사탄의 도전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하나님을 믿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안타깝지만 이런 사탄의 주장은 사실이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구원을 경험한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하나님을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없다면 축복의 선물도 지킬 수 없다는 사탄의 주장도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욥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보호하심을 거둠으로써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지를 보여주셨다. 또한 이런 참혹한 결과 속에서도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은 욥을 통해 우리에게도 욥에게 주었던 시험문제를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도록 하셨다.
우리들은 고난이 닥치면 하나님께 “왜 이런 일이 생겼습니까?”라고 묻지만, 욥은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였다. 욥은 고난 이후 하나님을 만나고 “귀로만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욥은 어떤 하나님을 만났을까? 욥은 자신의 고난이 자신의 죄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변론하다, 자신은 의롭고 하나님은 불의한 것처럼 감정적인 주장을 펼친다. 하나님께서는 “무지한 말로 생각을 어둡게 하는자”라고 욥을 꾸짖으시며 나타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창조하신 땅과 바다, 사망과 흑암, 별들과 동물에 대하여 말씀하시면서 까마귀 새끼를 위하여 먹이를 마련하시는 하나님의 돌보심을 이야기하신다. 욥이 만난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사랑이 풍성하신 창조주 하니님이셨다. 그런데 욥의 반응은 떨떠름하다(욥40:4).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능력으로 제어할 수 없는 창조물 중의 으뜸 되는 베헤못과 모든 교만한 자들의 왕인 리워야단에 대하여 말씀하시자, 욥은 진정 회개한다(욥40:1-6). 무엇이 욥의 마음을 바꾼 것일까? 아마도 공룡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동물로부터 이미 사람들을 보호하고 계신 하나님을 깊이 깨달았기 때문인 것 같다. 하나님께서 나의 축복을 다시 빼앗으신 것이 아니라, 그 축복 자체가 특별한 은혜였으며, 지금도 그 은혜를 누리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고난과 고통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다시 만났기 때문에 욥에게 놀라운 회복과 위로가 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 대한민국에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 주셨다. 그 특별한 은혜가 사라져가며,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 이런 일은 하나님의 시험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자초한 일이지만, 그럼에도 우리들은 하나님께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를 정해야한다. 하나님은 욥에게 고난의 이유를 설명해주지 않으신다. 고난의 이유를 아는 것이 중요하지 않고 고난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고난의 이유를 분석하는데 집중하지 말고, 이미 주셨던, 또한 지금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고 말한다. 무엇보다 축복보다 고난보다 더 크신 하나님께 집중하라고 권면한다. 우리는 욥과 같은 믿음이 없지만, 우리의 작은 신음도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고난의 자리에서 만나야 한다. 그런 만남을 통해 내가 하는 하나님보다 더 크신 하나님, 내가 기대하는 사랑보다 더 큰 은혜와 사랑을 주시는 하나님을 만나야한다. 욥처럼 회개를 통해 새로운 믿음으로 새로운 축복의 길을 갈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그런 길을 가야한다. 고난 가운데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느냐가 한국교회와 대한민국의 미래가 달려있다고 믿는다. 이 시대에 주어진 하나님의 시험문제에 욥보다 더 바른 답을 제출하는 우리들이 되길 기도하며 소망한다.
*참조 : 창세기와 욥기에 기록된 기후와 일치되는 고고학적 발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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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38장에 기록된 ‘바다의 샘’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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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샘들의 발견과 성경의 정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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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했던 스피노사우루스 공룡은 욥기 41장의 리워야단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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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 41장의 리워야단은 어떤 동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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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워야단의 몸통 갑옷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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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기에 기록된 매와 독수리로부터 배우는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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욥의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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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온누리신문 (2020. 8.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