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있는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 성경에서 반복되고 있는 ”I am ...”
Dr. Henry Morris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요한복음 11:25).
주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사실이 없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이 있다면, 한 번쯤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호된 꾸중을 하실 때, 그들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놀라운 진술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한복음 8:56). 그리고 그들이 그 확증을 대라고 요구하자, 예수님은 이어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요한복음 8:58)고 하셨다.
스스로의 신성(神性)을 언명하는 예수님의 주장이 하도 대담해서 그들은 이를 신성모독이라고 단정하고, 당장에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고 대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든 '숨어' 몸을 피하셨다.(59절).
만약에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예수님의 주장은 당연히 신성모독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한 죄에 대한 벌은 모세 율법에 의하면 사형에 해당한다.(레위기 24:16). 예수님은 이 대목에서 스스로를, 모세가 불꽃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던, 바로 그 분이라고 실질적으로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NIV) 라고 하셨다 (출애굽기 3:14). 즉, 하나님은 시간은 물론 공간과 물질을 초월하여 영원히 자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그 분이라고 주장하셨던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님과 아브라함이 서로 만났다고 하고, 아브라함이 그의 때를 보고 기뻐하였다고 하신 예수님의 주장은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는가? 아브라함의 시대는 모세의 시대보다도 수 세기나 먼저 있었지 않았는가!
이 주장은 아마, ”여호와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육화(肉化) 이전에]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셨던 바로 그 중요한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창세기 15:1).
이것은 낯설고 적의(敵意)마저 흉흉한 남의 땅에서 외로운 아브라함에게 보호자가 되고 부양자가 되겠노라 약속하실 때, 하나님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라고 하신 최초의 엄청난 자기 주장의 말씀이다.
성경 안에서 ”나는 …이다 (I am)”라 하신 이 최초의 주장이 있은 이후, 나타난 빈도를 주목하여보면 매우 흥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 나타나는 빈도가 7 회씩을 한 묶음으로 중첩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설계한 결과로 보기보다는 성경의 저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렇게 설계한 것 같다. (이것은 물론 나의 독단적인 계산에 근거한 가정이 정확하다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진 추론이다).
예컨대, 창세기 안에 ”나는 … 이다 (I am)” 라는 말씀이 일곱 번 기록되어 있다. 그 첫 번째가 창세기 15장 1절의 말씀으로서 이미 위에서 언급되었다. 두 번째는 창세기 15장 7절의 말씀으로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단순히, ”나는 여호와다 (I am the Lord)” 라고 하셨다. 이 'Lord' 라는 단어는 물론 히브리어 'Yahweh' (혹은 Jehovah)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본질적으로 'I am' 또는 'The One Whom Is (스스로 있는 자)'를 뜻한다.
그 다음에 ”나는 … 이다 (I am)” 라는 구절이 출애굽기에서는 21번 (3×7) 보인다. 그 속에는, 위에서 언급된바 있는,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I am that I am)” (KJV) (출애굽기 3:14) 도 포함되어 있다.
경이로운 책, 시편에는 ”나는 … 이다 (I am)”가 7번 보이는데, 그 말의 뜻은 육화된 그리스도의 미래의 고난을 예언적으로 슬프게 말하고 있다. 그 예가 아래와 같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I am a worm, and no man)” (시편 22:6).
”나는 가난하고 궁핍하오나 (I am poor and needy)” (시편 40:17).
”내가 내 형제에게는 객이 되고 (I am....a stranger unto my brethren)” (시편 69:8).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I am full of heaviness)” (시편 69:20).
”나는 가난하고 슬프오니 (I am poor and sorrowful)” (시편 69:29).
”내가 밤을 세우니 지붕 위에 외로운 참새 같으니이다 (I....am as a sparrow alone upon the house top)” (시편 102:7).
”내가 풀의 쇠잔함 같으니이다 (I am withered like grass)” (시편 102:11).
이 예들은 모두 시편에 있는 말씀으로서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있어서) 특별히 메시아적인 시편(詩片)들인 것은 이 구절들이 그렇게 신약에서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언서에서는 ”나 여호와는” 이라는 진술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이사야서의 뒷부분(40장-66장) 안에는 35(7×5) 번에 걸쳐 그와 같은 주장이 보인다. 첫 번째는 이사야 41장 4절의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가 그것이다. 마지막 번째는 이사야 60장 16절의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이다. 그러나 이사야서의 뒷부분의 주제와는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사야서 앞부분에서는 ”나는…이다 (I am)” 라는 구절이 없다.
에스겔에서는 70번이나 (이 보다 더 많이 들어있는 단일 책은 없다) 그 위대한 주장이 들어있다. 예레미아에서는 이 주장이 21번 들어있다. 그 다음, 선지자들의 비교적 작은 소예언서들 속에는 21번에 걸쳐서 ”나는…이다 (I am)”의 주장이 들어있다. 전체 예언서들을 총 망라하고 보면, 총 154번(22×7)이나 하나님이 이 엄청난 ”나는…이다 (I am)” 주장을 언명하고 있는 셈이다.
구약성경 안에서 마지막으로 그런 주장을 한 곳은 말라기 3장 6절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 여호와는 변치 아니하니… (I am the Lord, I change not …)”라고 적절하게 당신의 영원하심을 재삼 새겨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위대하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 (I am)”, 즉 자존의 하나님이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우리 개개인의 구주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똑같은 그 위대한 ”나 스스로 있는 자 (I am)” 되심을 우리들에게 계시하셨다는 사실을 언제나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가장 아름답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쓰인 ”나는 … 이다 (I am)” 라는 구절이 보이는 곳은 요한복음이다. 이 복음서에는 7번 보인다.
”…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 (요한복음 6:35, 48, 51).
”… 나는 세상의 빛이니 … ” (요한복음 8:12).
”… 나는 양의 문이니 … ” (요한복음 10:7, 9)
”… 나는 선한 목자라 …” (요한복음 10:11, 14).
”…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 (요한복음 11:25).
”…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요한복음 14:6).
” 내가 참 포도나무요 … ” (요한복음 15:1, 5)
이와 같은 주장들을 듣고 보았던 사람이 어떻게 그 주장들을 신성(神性)을 나타내는 주장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 자신이 아니고서는 그 누가 스스로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글쎄…, 어쩌면 미친 사람이나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는지…?! 이도 아니라면, 뻔뻔스러운 사기꾼 같은 족속이 그럴 수 있을까? 어쨌든 간에 그 주장들이 진실이 아닌 다음에야 정직하고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런 주장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선택의 기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미친 사람이나 사기꾼으로 믿든지, 아니면 그를 진정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믿는가의 기로이다. 그 둘 중 택일하여야 할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의 내용이 육화되신 분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진실로 유일한 분이시다. 누구라도 이 7 가지 위대한 ”나는…이다 (I am)” 주장들 하나하나를 꼼꼼히 음미해본다면, 이 결론에 이를 것이다.
옛 사도신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very God of very God)” 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다(created all things by Jesus Christ)고 기록되어 있다.(에베소서 3:9). 그리고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사도행전 17:28). 더욱이 그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로새서 1:20).
요한복음 11:25-26절에 있는 놀랄만한 주장을 주목하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
죽음은 언제나 인간에게는 엄청난 원수로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정말 참기 어려운 비극이요 슬픔이다. 대개 사람이라면 너나없이 가능한한 장수를 위해 애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그의 생명을 되돌려줄 수 있으며, 그리고 영원히 그의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신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한 말이라면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주장인가!
그렇지만 그는 장사한지 사흘만에 무덤에서 되살아나 죽음을 물리침으로써 그에게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셨던 것이다. 결국 그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 즉 자존하시는 존재다! 그러므로 그는 용서와 구원을 구하기 위하여 그에게로 오는 사람에게 주신 약속을 조금도 빠트리지 않고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한복음 14:19) 하고 말하신다.
요한계시록에도 그 위대한 ”나는 … 이다 (I am)” 주장이 일곱 번 나타난다. 그리고 이 뜻으로 쓰인 중요한 구절들 가운데 하나는 그의 부활과 관련이 있다.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요한계시록 1:18).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이렇게 묻고 계신다. 오래 전에 마르다가 그녀의 동생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할 때, 예수님이 마르다를 보고 물으셨던 질문이다(요한복음 1:26). 이것을 보고,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어느 누가 감히 의심할 수 있겠는가! (텅 비었던 무덤, 부활 이후 수없이 많은 나타나심, 제자들의 변화, 그리고 또한 2000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그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변화된 수많은 신도들의 간증 등... 그 증거들은 수없이 많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도 또한 많다. 그런데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 없이 보내야하는 영겁의 시간이 을씨년스럽게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If you believe not that I am He [그러나 원전에는 'He' 로 되어있지 않았다; 예수는 'I am' 이라고 말씀했다 로 되어있다.]” (요한복음 8:24).
요한계시록에 있는 나머지 6 번의 ”나는…이다 (I am)” 구절도 역시 그 분의 영원하신 존재, 즉 영원에서 영원까지 존재하심을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아래 열거된 예문을 주목해보라.
”…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 (요한계시록 1:8).
”…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처음이요 나중이니…” (요한계시록 1:11)
”…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요한계시록1:17).
”…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처음과 나중이라…” (요한계시록 21:6).
”…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요한계시록 22:13).
”…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요한계시록 22:16).
우리가 우리의 영원한 영혼을 내맡긴 영광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오래 전에 자기 믿음을 위해 순교한 한 사람의 위대한 종교적인 스승 이상의 존재이시다. 그 분은 죽음을 영원히 이기시고 살아서 천국에 있는 그 분의 보좌에 앉아 계신다. 그 분은 우리의 위대한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구세주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시고, 왕이시다.
*Henry Morris - CreationWiki
https://creationwiki.org/Henry_Morri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
출처 - ICR
스스로 있는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 성경에서 반복되고 있는 ”I am ...”
Dr. Henry Morris
주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주장한 사실이 없다고 생각하는 '크리스천들'이 있다면, 한 번쯤 그리스도가 예루살렘 성전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호된 꾸중을 하실 때, 그들에게 말씀하신 예수님의 놀라운 진술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요한복음 8:56). 그리고 그들이 그 확증을 대라고 요구하자, 예수님은 이어서,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요한복음 8:58)고 하셨다.
스스로의 신성(神性)을 언명하는 예수님의 주장이 하도 대담해서 그들은 이를 신성모독이라고 단정하고, 당장에 돌을 들어 예수님을 치려고 대들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어떻게든 '숨어' 몸을 피하셨다.(59절).
만약에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예수님의 주장은 당연히 신성모독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훼방한 죄에 대한 벌은 모세 율법에 의하면 사형에 해당한다.(레위기 24:16). 예수님은 이 대목에서 스스로를, 모세가 불꽃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의 이름을 물었던, 바로 그 분이라고 실질적으로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이름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NIV) 라고 하셨다 (출애굽기 3:14). 즉, 하나님은 시간은 물론 공간과 물질을 초월하여 영원히 자존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를 그 분이라고 주장하셨던 것이다!
그렇지만 예수님과 아브라함이 서로 만났다고 하고, 아브라함이 그의 때를 보고 기뻐하였다고 하신 예수님의 주장은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는가? 아브라함의 시대는 모세의 시대보다도 수 세기나 먼저 있었지 않았는가!
이 주장은 아마, ”여호와의 말씀이 [그리스도의 육화(肉化) 이전에]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셨던 바로 그 중요한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창세기 15:1).
이것은 낯설고 적의(敵意)마저 흉흉한 남의 땅에서 외로운 아브라함에게 보호자가 되고 부양자가 되겠노라 약속하실 때, 하나님이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라고 하신 최초의 엄청난 자기 주장의 말씀이다.
성경 안에서 ”나는 …이다 (I am)”라 하신 이 최초의 주장이 있은 이후, 나타난 빈도를 주목하여보면 매우 흥미있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 나타나는 빈도가 7 회씩을 한 묶음으로 중첩된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설계한 결과로 보기보다는 성경의 저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그렇게 설계한 것 같다. (이것은 물론 나의 독단적인 계산에 근거한 가정이 정확하다는 전제 하에서 이루어진 추론이다).
예컨대, 창세기 안에 ”나는 … 이다 (I am)” 라는 말씀이 일곱 번 기록되어 있다. 그 첫 번째가 창세기 15장 1절의 말씀으로서 이미 위에서 언급되었다. 두 번째는 창세기 15장 7절의 말씀으로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은 단순히, ”나는 여호와다 (I am the Lord)” 라고 하셨다. 이 'Lord' 라는 단어는 물론 히브리어 'Yahweh' (혹은 Jehovah)라는 단어다. 이 단어는 본질적으로 'I am' 또는 'The One Whom Is (스스로 있는 자)'를 뜻한다.
그 다음에 ”나는 … 이다 (I am)” 라는 구절이 출애굽기에서는 21번 (3×7) 보인다. 그 속에는, 위에서 언급된바 있는, 모세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I am that I am)” (KJV) (출애굽기 3:14) 도 포함되어 있다.
경이로운 책, 시편에는 ”나는 … 이다 (I am)”가 7번 보이는데, 그 말의 뜻은 육화된 그리스도의 미래의 고난을 예언적으로 슬프게 말하고 있다. 그 예가 아래와 같다.
이 예들은 모두 시편에 있는 말씀으로서 (그리스도를 언급하고 있어서) 특별히 메시아적인 시편(詩片)들인 것은 이 구절들이 그렇게 신약에서 인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예언서에서는 ”나 여호와는” 이라는 진술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예컨대 이사야서의 뒷부분(40장-66장) 안에는 35(7×5) 번에 걸쳐 그와 같은 주장이 보인다. 첫 번째는 이사야 41장 4절의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가 그것이다. 마지막 번째는 이사야 60장 16절의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 네 구속자,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 이다. 그러나 이사야서의 뒷부분의 주제와는 다른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사야서 앞부분에서는 ”나는…이다 (I am)” 라는 구절이 없다.
에스겔에서는 70번이나 (이 보다 더 많이 들어있는 단일 책은 없다) 그 위대한 주장이 들어있다. 예레미아에서는 이 주장이 21번 들어있다. 그 다음, 선지자들의 비교적 작은 소예언서들 속에는 21번에 걸쳐서 ”나는…이다 (I am)”의 주장이 들어있다. 전체 예언서들을 총 망라하고 보면, 총 154번(22×7)이나 하나님이 이 엄청난 ”나는…이다 (I am)” 주장을 언명하고 있는 셈이다.
구약성경 안에서 마지막으로 그런 주장을 한 곳은 말라기 3장 6절인데, 이것은 하나님이 모든 사람들에게 ”나 여호와는 변치 아니하니… (I am the Lord, I change not …)”라고 적절하게 당신의 영원하심을 재삼 새겨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은 위대하신 ”나는 스스로 있는 자 (I am)”, 즉 자존의 하나님이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우리 개개인의 구주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를 똑같은 그 위대한 ”나 스스로 있는 자 (I am)” 되심을 우리들에게 계시하셨다는 사실을 언제나 반드시 기억하고 있어야 한다.
그런데 가장 아름답게 인간적인 모습으로 쓰인 ”나는 … 이다 (I am)” 라는 구절이 보이는 곳은 요한복음이다. 이 복음서에는 7번 보인다.
이와 같은 주장들을 듣고 보았던 사람이 어떻게 그 주장들을 신성(神性)을 나타내는 주장들이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예를 들어보자, 하나님 자신이 아니고서는 그 누가 스스로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글쎄…, 어쩌면 미친 사람이나 그런 주장을 할 수 있을는지…?! 이도 아니라면, 뻔뻔스러운 사기꾼 같은 족속이 그럴 수 있을까? 어쨌든 간에 그 주장들이 진실이 아닌 다음에야 정직하고 바른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절대로 그런 주장을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선택의 기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미친 사람이나 사기꾼으로 믿든지, 아니면 그를 진정으로 길이요, 진리요, 생명으로 믿는가의 기로이다. 그 둘 중 택일하여야 할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야말로 하나님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의 내용이 육화되신 분이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진실로 유일한 분이시다. 누구라도 이 7 가지 위대한 ”나는…이다 (I am)” 주장들 하나하나를 꼼꼼히 음미해본다면, 이 결론에 이를 것이다.
옛 사도신경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의 참 하나님(very God of very God)” 이라고 기록되어 있었다. 하나님은 영원부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만물을 창조하셨다(created all things by Jesus Christ)고 기록되어 있다.(에베소서 3:9). 그리고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사도행전 17:28). 더욱이 그는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로새서 1:20).
요한복음 11:25-26절에 있는 놀랄만한 주장을 주목하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
죽음은 언제나 인간에게는 엄청난 원수로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으면 정말 참기 어려운 비극이요 슬픔이다. 대개 사람이라면 너나없이 가능한한 장수를 위해 애쓴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사람이 죽은 다음에도 그의 생명을 되돌려줄 수 있으며, 그리고 영원히 그의 생명을 보전할 수 있다고 주장하신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한 말이라면 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주장인가!
그렇지만 그는 장사한지 사흘만에 무덤에서 되살아나 죽음을 물리침으로써 그에게는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해 보이셨던 것이다. 결국 그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 즉 자존하시는 존재다! 그러므로 그는 용서와 구원을 구하기 위하여 그에게로 오는 사람에게 주신 약속을 조금도 빠트리지 않고 지킬 수 있는 것이다. 그는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요한복음 14:19) 하고 말하신다.
요한계시록에도 그 위대한 ”나는 … 이다 (I am)” 주장이 일곱 번 나타난다. 그리고 이 뜻으로 쓰인 중요한 구절들 가운데 하나는 그의 부활과 관련이 있다.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요한계시록 1:18).
”이것을 네가 믿느냐?” 예수님은 오늘날에도 이렇게 묻고 계신다. 오래 전에 마르다가 그녀의 동생 나사로의 죽음을 슬퍼할 때, 예수님이 마르다를 보고 물으셨던 질문이다(요한복음 1:26). 이것을 보고, 그리스도가 죽음을 이길 수 있다는 확실한 증거를 어느 누가 감히 의심할 수 있겠는가! (텅 비었던 무덤, 부활 이후 수없이 많은 나타나심, 제자들의 변화, 그리고 또한 2000년 동안 면면히 이어져온 그에 대한 신앙을 통하여 변화된 수많은 신도들의 간증 등... 그 증거들은 수없이 많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사람들도 또한 많다. 그런데 불신자들에게는 하나님 없이 보내야하는 영겁의 시간이 을씨년스럽게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너희가 만일 내가 그인 줄 믿지 아니하면 너희 죄 가운데서 죽으리라” ('If you believe not that I am He [그러나 원전에는 'He' 로 되어있지 않았다; 예수는 'I am' 이라고 말씀했다 로 되어있다.]” (요한복음 8:24).
요한계시록에 있는 나머지 6 번의 ”나는…이다 (I am)” 구절도 역시 그 분의 영원하신 존재, 즉 영원에서 영원까지 존재하심을 중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아래 열거된 예문을 주목해보라.
우리가 우리의 영원한 영혼을 내맡긴 영광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오래 전에 자기 믿음을 위해 순교한 한 사람의 위대한 종교적인 스승 이상의 존재이시다. 그 분은 죽음을 영원히 이기시고 살아서 천국에 있는 그 분의 보좌에 앉아 계신다. 그 분은 우리의 위대한 창조주이시며,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구세주이시며, 우리의 영원한 주님이시고, 왕이시다.
*Henry Morris - CreationWiki
https://creationwiki.org/Henry_Morri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icr.org
출처 - IC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