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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연대문제

젊은 지구

젊은 지구(The Young Earth) 9장. 

암석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1)


     (늘 말하는 바와 같이) 나는 지구가 젊다는 것을 과학적으로 입증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사실은 입증할 수도 없지만), 오래된 지구 모델(old-earth model)보다는 젊은 지구 모델(young-earth model)에 훨씬 더 적합한 중요한 증거들을 제시하고자 하는 것이다. 실제로 어떤 증거들은 오래된 지구 모델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증거의 저울추는 젊은 지구 모델 쪽으로 기울고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관찰되지 않은 과거를 보는 사고방식이며, 이제 그것을 제시하겠다. 지구의 나이와 알려지지 않은 과거 사건들의 연대에 대한 상세한 정보는 오로지 성경으로부터만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나의 일관된 주장이다. 암석, 화석, 일련의 동위원소, 물리적 계(界)들은 성경만큼 명확하게 말해주지 못한다. 자연 속에 진실이 있지만, 어떻게 그것을 알아낼 수 있는가? 여러 가지 면에 있어서 그런 방법들은 연대와 관련하여 내재적인 한계를 가지고 있다. 전제되어진 가정들에 의존하는 한 가지 모델보다는, 여러 가지 모델을 사용하여 보다 적절한 해석을 할 수 있다.

 

보다 올바른 해석을 위해서는 우선 창세기로 돌아가야만 하며, 여기서 전체 모델을 얻을 수 있고 올바른 사고를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후에 물리적인 증거들을 모델에 맞추어 해석해야 한다. 성경적 모델에 비추어 보면, 화석을 포함한 암석들은 대체적으로 노아의 홍수에 의해 퇴적된 것이다. 화석들은 창조주간 동안 창조된 생물들의 자손들이 노아의 홍수 때 (예외적인 것도 있음) 죽어버린 유기체의 흔적인 것이다.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들은 과거에 대한 잘못된 가정들로 인해 오류로 얼룩져있는데, 이는 주로 물리적 계가 전 지구적인 대홍수의 파괴적 특성으로 인해 급격하게 변화되었기 때문이며, 또한 그 가정(assumptions)들이 창조의 가능성을 부인했기 때문이다. 성경이 모든 세부적인 사항들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의 가르침에 맞추어 해석해 나갈 때 과거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가능해진다.


진화론자들은 또 같은 사고방식을 추종하며, 다른 사상 체계 즉, 자연주의, 진화론, 그리고 동일과정설의 사상 체계만을 신봉할 뿐이다. 과거에 대한 이러한 학설들은 입증할 수 없는 가정들을 기초로 하고 있을 뿐이며, 자료에 의해 만족스러운 지지도 받고 있지 못하다. 당연히 그들은 경이로운 전 세계적인 창조 사건은 부인한다. 그러나 만약에 창조와 대홍수가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것들은 반드시 과거를 다루는 견해 속에 포함되어야 한다. 역사를 복원하려고 시도하기도 전에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을 신봉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지구의 나이가 뭐 그리 중요한가?  


“이렇게 알기 힘든 것을 굳이 밝히려고 애쓸 필요가 있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다. '암석의 나이를 알아내는데 그렇게 몰두할 필요가 있는가? 그리고 암석의 나이 문제를 잊어버리면 되는 것 아닌가? 이제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갈 길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이런 식의 논의나 질문은 매우 영적인 것처럼 들릴지도 모르나, 그것은 구실(도피, 타협)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당면한 전투에 참전하지도 않고,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는 그리스도인이 너무나도 많다. 이것은 사실상 적의 영향권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을 포기하거나 적에게 넘겨준 것이나 다름이 없다.


기독교에 적대적인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지배하는 전쟁의 전선(battlefront)들로는 대중매체, 텔레비전, 정치, 학문, 사법제도, 공교육 등이 있으며, 이 모든 것을 망쳐놓는데 ‘과학’이 많은 역할을 하였다. 모두 이길 수 있었던 전투였으며, 이길 수 있는 전투가 아직도 남아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인본주의자들 보다 훨씬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며, 물적인 증거는 분명히 우리 편이다. 전투의 피해는 막을 수 있다.


특히 자연과학 분야에서 그러하다. 창조론은 과학적 모델로써 진화론을 훨씬 능가한다. 진화론은 단지 상대를 억압함으로써 살아남아 있을 뿐이다. 조롱, 인신 공격, 관료적 정책, 그리고 법정 판결 등이 진화론자들의 전술이다. 진화론이 살아남아 있는 이유는 거의 전적으로 창조에 대한 신빙성 있는 이야기를 들어본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진 지식은 그들이 가르침을 받았던 것들 뿐이다.


창조론의 주창자들조차도 문제의 철학적 특성을 인식하고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이러한 논쟁은 보통 ‘나의 증거’ 대 ‘너의 증거’ 수준으로 귀착되어 버리는데, 실상은 모든 증거들은 해석되어져야 하고, 또한 거의 모든 증거들은 둘 중에 하나의 모델에 속할 수 있다. 논쟁은 ‘나의 가정에 기초한 나의 해석’ 대 ‘너의 가정에 기초한 너의 해석’이 되어야 하며, 일련의 가정과 해석의 합리성에 대한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물론, 우리는 결코 상황적인 증거를 직접적인 증거로 혼동해서는 안 된다.


창조와 젊은 지구에 대한 적절한 제시로, 입법 기능을 가진 모든 위원회, 학교 경영진, 두뇌집단에 대해 확실하게 승리할 수 있음을 주장한다고 생각하지 말라. 이러한 전투 현장 대부분에는 자신이 교전중(交戰中)이며, 어느 편에 서있는지를 인식하고 있는 사람들이 침투해있다. 그들은 창조론자들이 타석에 서지도 못하게 규칙을 만들어 놓고는 일방적인 득점으로 승리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렇지만 적어도 지역적, 개인적 수준에서는 승산이 있으며 싸워볼 가치가 있다. 이후 수 페이지에 걸쳐 나는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이 왜 전투에 참여하지 않으면 안 되는지, 몇 가지 명확한 이유를 밝혀보겠다. 왜냐하면 전투란 남자와 여자, 소년과 소녀, 과학자와 보통 사람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마음과 정신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러 전선에서 싸워야 하고, 왕의 군사들은 모두 중요한 역할을 감당해야한다. 영생의 문제가 위기에 처해져 있는 것이다.


과학 전선 (科學 戰線; Scientific Battlefront)


하나님이 과학을 제정하셨으며, 각 사람이 참여하도록 명령을 받았다는 사실을 한번쯤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해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더라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하나님이 창조를 마치셨을 때, 그는 아담에게 책임을 주셨다. 아담은 땅을 정복하고 땅과 땅위의 모든 것들을 다스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창세기 1:28). 신학자들은 이것을 통치명령이라고 부르고, 아담과 그의 후손에게 대를 이어 주어진 것으로 해석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 1:28)

위의 구절에서 사용된 단어 중 두 개의 동사를 주목해보자. ‘정복하다 (subdue)‘ 라는 동사는 살아있는 모든 것뿐 아니라, 땅과 땅의 기능 및 작용에 대한 진지한 조사, 연구를 내포한다. 우리는 이러한 이해 과정을 ‘과학 (science)’ 이라고 부른다. 인류는 그 다음 명령을 수행하기 위하여 창조를 완전히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창조물을 ‘다스리다 (have dominion over)’ 라는 동사는 ‘기술 (technology)'의 현대적 범주에 속하며, 우리의 지식을 이용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를 창조물을 다스리는 청지기로 삼으셨다. 우리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물을 보살피고, 관리하고, 보호하고, 이용해야 한다.


자주 인본주의자들은 (위의 용어들로 인해) 그리스도인들이 환경을 파괴하고 종의 생태균형을 깨트리고 있다는 주장을 하곤 한다. 그러한 일에 무감각한 그리스도들이 있기는 하지만, 성경에는 환경을 남용하라는 어떠한 구절도 찾아 볼 수 없다.


실제 그리스도인들이 환경문제를 활동적으로 이끌어가야 한다. 최근 몇 년 동안 인본주의자들은 이러한 하나님께 명령받은 활동에 관하여 배타적인 주장을 해왔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을 젊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이용하고 있다. 그들은 환경운동을 자연숭배로 왜곡하고, 뉴 에이지(New Age)와 관련된 수많은 사악한 것들을 환경운동에 끌어들이고 있다. 그리고 창조물에 대한 하나님이 명령하신 온전한 관심과 배려에 수많은 비논리적 이론들을 첨가했다. 현대 환경론자들은 인간을 창조물의 청지기가 아니라, 적으로 본다. 진화는 대자연과 시간을 힘입어 만들어진 창조자이다. 그리스도인은 현대 환경운동의 범신론적 자연숭배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단지 그들만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창조물을 지혜롭게 돌보기를 기대하신다.


창조의 섭리를 이해해야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죄 값을 갚아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과 같이 창조주이신 하나님을 마땅히 찬양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약에 내가 그의 창조의 위업과 주권적 보호에 대해 시간을 내어 찬양하지 않았다면, 나의 기도 생활은 굉장히 힘들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양이 많아 들어 있다. 우리가 감히 어떻게 그것들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요한계시록 4:11)

게다가 그분은 많은 예언 및 역사적 사실에 관련이 있는 성경 말씀을 특별한 시기와 장소, 사건에 연관 지음으로써 당신의 약속을 확인시켜주신다.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한복음 3:12)

땅의 일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을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늘의 일을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믿을 수 있겠는가. 우리는 과학과 역사의 사실을 조사 확인할 수 있으며, 그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신뢰할 수 있는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반면에, 그분의 말씀이 과학적으로 역사적으로 옳지 않다면, 그분의 모든 말씀이 옳지 않은 것이다. 그분 자신이 말씀하신 대로 성취가 없는 예언자는 거짓 예언자인 것이다 (신명기 18:20-22 참조).


하나님의 창조의 권능과 위업에 온전히 감사드리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창조 사역에 대해 올바르게 알아야 한다. 이것은 그의 창조 사역을 온전하고도 올바르게 연구하고 이해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런 연후에 우리는 알고, 찬양할 수 있고, 창조물을 돌보고, 그의 명령에 복종함으로써 그에게 영광을 돌릴 수 있다.


이해하라고 하는 명령에는 창조물 이상의 것이 포함되어 있고, 또한 젊은 지구 문제에까지 확장된다. 우리의 적은 진화론을 주무기로 사용하고 있다. 또한 지구의 나이가 많다는 견해는 진화론적 사고의 모든 영역을 뒷받침해 준다. 성경의 젊은 지구 가르침을 핑계로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창조론자들은 창조론 대 진화론의 논쟁을 중단하고 지구의 나이를 무시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지만, 지구가 생성된 지 오래되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진화를 증명해주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인 것이다. 지구가 오래되었다는 견해는 성경의 오류를 분명히 증명함으로서, 창조에 대한 성경적 교리도 오류인 것으로 증명하게 되는 것이다. 양쪽 다 지구의 나이를 성경의 가장 취약한 가르침으로 여기고 있다. 우리는 이 가르침을 더욱 강화하고 옹호해야 할 것이다.


창조와 뉴에이지 (New Age)


오늘날 많은 세속주의자들은 모호한 뉴에이지 사상에 호의적이 되면서, 엄격한 자연주의를 버렸다. 과학자들까지도 목적성 없이 무기물질에 가해지는 자연적 작용에 의해서는 절대로 복잡한 세포가 만들어질 수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대거 다윈의 진화론을 떠나고 있다. 그들은 매우 복잡한 유전정보가 우연한 돌연변이에 의해 어떻게 개선이 되는지에 대해 논쟁하는데 지쳐버렸다.


무기력한 자연이라는 느낌을 피하기 위하여 뉴에이지 신봉자들은, 자연은 살아있고 활력이 넘치며, 이런 일들을 의도적으로 행하고 있다고 믿기로 했다. 그래서 그들은 전에 하나님께 속했던 속성들을 자연에게 돌리며 (다른 사람들보다 더 공개적으로), 자연을 숭배한다. 그들은 생명체에 보이는 경이로운 설계를 인식하고 있으며, 틀림없이 배후에 초월적인 어떤 존재가 있음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 존재는 가이아 (Gaia; 그리스 신화에서 땅의 여신), 혹은 대지의 여신 (Mother Earth) 이다. 그들도 다윈의 진화론에 대해서 비판적인 것은 창조론자들과 마찬가지이다. 그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어리석은 것을 택한 사람과 논리적으로 따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뉴에이지 주창자들과는 창조론 대 진화론의 논쟁은 거의 효과가 없다. 그러나 지구의 나이가 돌파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구의 나이가 그렇게 많지 않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줌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을 반대하는 자신들의 철학에 덜 집착하게 될지도 모른다.


성경 전선 (聖經 戰線)


내가 1984년 오크라호마 대학 교수직을 떠나 창조과학연구소(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에 합류했을 당시에, 창조과학연구소는 시설에 비해 그 규모가 꽤 컸었다. 남은 공간이라곤 창조과학연구소 도서관의 책을 쌓아두는 방뿐이었는데, 그곳엔 1700년대부터 1800년대에 나온 수천 권의 신학서적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이 책들은 창조론과 진화론의 형성과 변화에 관심을 가졌던 한 수집가가 창조과학연구소에 기증한 것들이었다. 이 책들은 자연주의적 진화론이 창조론 대신하여 보편적 상식으로 자리 잡았던 수 십 년의 기간동안 기독교 지도자들의 생각을 말해주고 있었다. 상습적인 책벌레인 나는 그 중 많은 책들을 읽었으며, 거의 다 훑어보았다.


예외는 있었겠지만, 1700 년대에는 서구의 신학자들과 과학자들 대부분은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며 창조론자들이었다. 그런데 1800 년대 말쯤에는 신학자들과 과학자들 대부분이 창조, 노아의 홍수, 젊은 지구설을 (특히 과학과 역사와 관련해서) 거부하고, 성경에는 오류가 있으며 신뢰할 수 없다는 견해를 받아들이게 된다.


세속적 학문 환경에서 지질학을 공부한 관계로 나는 1700년대 말에 제임스 허튼과 1800년대 초에 찰스 라이엘 두 사람이 균일설(uniformity, 동일과정설)과 또한 그 결과인 오래된 지구를 주창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속주의자들은 1859 년에 다윈이 성경에 대한 신뢰를 완벽히 말살시키는데 길을 열어준 공로로 이 두 사람을 떠받들고 있었다. 지도자급 과학자들 대다수는 이러한 견해를 거부하고, 성경은 진리이며 또한 과학적이라고 옹호하였다. 그런데 1800년대 말쯤에는 그런 목소리들이 거의 모두 잠잠해지고 말았다. 무엇이 대세를 바꾸어 놓았을까?


나는 업무상 독서를 통하여 답을 얻게 되었는데, 성경에 대한 반대를 주도한 사람들이 오히려 그리스도인인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1800년대 초를 시작으로 신학자들은 처음에는 오래된 지구 사상을, 다음에는 노아의 홍수 대신에 균일론을 주저하지 않고 받아들였다. 그들은 다윈보다 오래 전에 진화론적 사상에 흥미를 느끼고 집적거리기까지 하였다. 그 당시에 성경을 진리로 믿는 과학자들은 신학자들이 반대하는 가운데 성경 말씀을 옹호하려고 노력하는 어려운 처지에 있었다.


창세기가 역사적인 사실이라는 확신은 점차적으로 사라졌고, 한 세대 후에 다윈이 진화론의 이론을 주창했을 때는 과학자들까지도 그의 함정에 빠져, 과학자거나 신학자거나 더 이상 창조론을 인정하는 학자는 극소수에 불과했던 것이다.


부연하여 이야기하자면, 지금도 상황은 별로 달라지지 않고 있다. 현대 창조론의 부활도 신학자들이 아닌 과학자들과 평신도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대체로 신학교에서 교육받은 신학자들은 성경적이고 과학적인 창조론에 반대하거나, 관심이 없다. 성경이 창조론과 젊은 지구를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아는 데는 신학교의 학위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사실은 날-시대 이론, 골격가설, 유신론적 진화론, 국지적 홍수설과 같은 여러 가지 성경말씀과 왜곡된 교리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신학교 교육이 필요할지 모른다. 역사적, 문자적인 창세기의 견해를 체계적으로 고수하는 좋은 신학교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끼고 있는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별로 없다. 대부분은 창세기를 우화적으로 해석하기를 선호하며, 진화론이나 오래된 지구 사상을 그들의 신학 이론에 기꺼이 끼워 넣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자유주의 신학자들이나 신복음주의자들이 가장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젊은 지구 견해이다. ‘근본주의’ 신학자들까지도 지질학적 연대에 성경을 맞추기 위해 소위 ‘간격이론’을 수용한다. 역사적으로 제일 먼저 폐기된 성경 말씀이 지구의 나이에 관한 것이었으며, 그 다음은 노아의 홍수, 그 다음은 창조인 것이다. 오늘날에는 그 순서가 바뀌었다. 진화론이 이제는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기 때문에, 창조론을 다시 받아들이는 그리스도인이 많아 졌지만, 아직도 오래된 지구와 국지적 홍수설은 그대로 고집하고 있다. (과학적으로 훨씬 더 옳은) 성경적인 세계관으로 완전히 되돌아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성경의 무오성 문제도 많은 점에서 논쟁 중에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을만한가? 시간과 장소와 족보를 말할 때 거기에 의미 있는 정보가 들어 있는가? 오래된 지구를 옹호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성경 구절들을 무시하거나 우화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일차적인 예로 성경의 홍수를 살펴보자. 성경은 노아의 홍수가 전 지구상의 사건이었으며, 홍수 이전의 세계와 노아의 방주에 오르지 않은 땅 위에 사는 모든 것들을 멸망되었다고 가르치고 있다. 예를 들어, 창세기 7 장의 다음 구절을 살펴보자.


“홍수가 땅에 사십 일을 있었는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물이 더 많아져 땅에 창일하매 방주가 물위에 떠 다녔으며 물이 땅에 더욱 창일하매 천하에 높은 산이 다 덮였더니 물이 불어서 십 오 규빗이 오르매 산들이 덮인지라 땅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육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 죽었더라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짐승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홀로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만 남았더라 물이 일 백 오십 일을 땅에 창일하였더라” (창세기 7: 17-24)

 

더 이상 무슨 말로 전 지구적 홍수가 있었다는 것을 더 분명히 밝힐 수 있겠는가? 이러한 성경의 분명한 의도에도 불구하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진화론적 사상을 추종해왔으며, 노아의 홍수라는 것이 있었다고 하면 그것은 국지적 사건, 즉 메소포타미아 강 유역에 국한된 사건이었을 것이며, 전 지구적인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지구상의 암석과 화석들과는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이 구절에서 쓰인 ‘모두’ 또는 ‘다’ 라고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가 가끔 제한된 뜻으로 쓰이는 경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그런 단어는 상황에 비추어 이해되어야 하며, 여기서는 전 지구적 의미의 ‘모두’ 또는 ‘다’를 뜻하고 있는 것이다.


“땅위에 ....생물이 다.......; .......땅에 ......모든 것과 모든 사람.....육지에 있어 코로 생물의 기식을 호흡하는 것은 다......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모두’ 또는 ‘다’가 가끔 제한된 뜻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정말 불충분하다. 국지적 홍수설을 옹호하기 위해서는 전부를 포함하는 홍수의 성격이 거듭 거듭 반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경우에 ‘모두’ 또는 ‘다’가 ‘어떤’ 이란 뜻으로 한정되어 있음을 보여주어야만 한다.


전 지구적 홍수만을 의미한다고 말할 수 있는 다른 구절들이 또한 많이 있다. “모든 혈육 있는 .....땅과 함께 (with the earth) 멸하리라.“ (창6:13)  (여기서 땅은 어떤 지역이 아니라 행성 지구를 의미함에 주의하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창6:17) (이 구절에서 천하는 온 세상에 있는 대기를 가리킨다는 점에 주의하라). 동물들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 씩 나아와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고 (창6:20) 하셨는데, 홍수가 한 지역에만 있었다면, 이 어찌 쓸데없는 명령이 아닌가. 이런 예는 끝없이 들 수 있다. 노아의 홍수는 전 지구를 덮었던 것이다! 전 지구를!  똑같은 가르침을 신약에서 예수님과 베드로도 되풀이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마태복음 24:37-39)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3:6-7)

예수님과 베드로 두 분 다 과거 노아 시대에 온 세상을 심판한 사실에 근거해서 온 세상에 올 미래의 심판에 대해 가르치셨다. 노아의 홍수가 한 지역에만 있었고, 지구의 많은 지역에서 최소한 몇 사람이라도 살아남았다면, 앞으로 임할 심판은 어떤 것이겠는가? 이 또한 국지적인 것이 아닐까? 어떤 죄인들은 제외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이렇듯 국지적 홍수설(the local Flood idea, 지역적 홍수설)은 신학상의 혼란을 야기한다.


노아의 홍수는 전 지구를 뒤덮었을 뿐만 아니라, 산을 덮어버린, 일년이 넘는 대홍수였기 때문에 이러한 대재난은 금세기의 홍수들을 훨씬 능가하는 어마어마한 속도, 규모, 강도로 지질학적 변화들을 만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축소해서 생각한다 해도, 모든 홍수가 그랬던 것만큼은 엄청난 일을 행했을 것이다. 어떤 지역이 침식되어 침식되어져 나온 물질들은 다른 곳에 퇴적물로 다시 쌓였다. 퇴적물에는 홍수로 죽은 식물과 동물들이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노아의 홍수가 성경에 기록된 대로였다면, 후세에 화석을 지니고 있는 퇴적암들은 노아 홍수의 결과인 것이다.


대홍수에 의해 만들어진 퇴적지층들은 평온하고 서서히 진행되는 균일한 과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격변적으로 갑자기 형성되었다는 증거들을 보여줄 것이다. 퇴적지층은 균일론자들이 주장하듯이 일부 한 지역이 아니라, 광대한 지역에 분포하는 경우도 흔히 있었을 것이다. 퇴적과 마찬가지로 침식도 어마어마한 규모로 일어났을 것이다. 우리가 알아 본 바에 의하면, 진화론자인 나의 동료 학자들도 이러한 격변적 변화들을 인식하고 인정하고 있었으며, 그들 대부분 스스로를 ‘신격변론자’ 라고 부르고 있다. 근본적으로 다른 (뭔가 격변적인) 무엇인가가, 전 지구적인 (노아 시대의 홍수와 같은) 무엇인가가 과거에 일어났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도 많은 진화론자들이 진실된 역사를 잘못 해석하여, 암석과 화석들을 진화와 오래된 지구의 증거로 잘못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로 암석과 화석들이 생겨났다면, 진화와 오래된 지구 견해의 증거가 될 여지는 거의 없다.


오래된 지구와 진화를 둘 다 믿고 있든지, 또는 그 중 하나만 믿기로 작정한 현대 복음주의자들은 전 지구적이며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사건으로서의 홍수는 부인해야한다. 그들 대부분은 노아의 홍수가 국지적인 홍수였다고 주장한다. 나머지 몇몇 사람들은 조용한 홍수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제 자체를 무시해버릴 지도 모른다. 어떤 경우든 분명한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하는 것인데, 이 가르침은 신약의 많은 가르침의 기초가 되는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사람들을 향한 효과적인 사역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진리로 믿는 믿음을 회복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런 상황이 몇 년 전 창조과학연구소(ICR)에서 있었던 한 사건에 의해 극적으로 증명되었다. 내가 창조과학연구소 자매학교인 크리스챤 헤리티지 대학(Christian Heritage College, CHC)에서 학생들에게 성서과학 변증론을 가르치고 있을 때였다. 나는 노아의 홍수에 대해서 가르쳤고, 또한 오래된 지구 관점을 자신들의 성서관(聖書觀)에 수용하고 있던 사람들이 전 지구적 사건인 노아의 홍수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을 (즉, 그들이 오래된 지구 사상을 알고 있으며 그 사상을 수용한다면) 지속적으로 어떻게 바꿔가야 하는지에 대해 가르쳤다. 암석과 화석을 오래된 연대의 증거로 삼으려는, 오래된 지구 신봉자들이 전 지구상에 지질학적으로 중대한 영향을 미친 노아의 홍수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이 역사적으로 또 논리적으로 왜 불가능한 지를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노아의 홍수가 역사적 사실이라면, 그 홍수에 의해 전 세계의 화석을 함유한 암석들 대부분이 퇴적되어 생성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오래된 지구 사상을 고수하려면, 노아의 대홍수는 국지적인 것이거나, 미미한 것이어야만 하고, 암석과 화석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다는 결론이 나와야 한다는 것이었다. 

 

노아 시대의 대홍수 기본요점 

 

온 지구에 영향을 미친, 산을 덮는 대홍수는 세계의 화석을 지닌 퇴적암의 대부분을 퇴적했을 것이다.

 

노아의 홍수 사건을 부인하는 자연주의자들은 암석과 화석들에 대해 잘못 해석하고 있다.

 

 

노아의 홍수가 온 지구에 일어난 사건이라면 암석과 화석들에 남아 있을 것이다. 진화나 오랜 지구에 대한 증거가 발견되지 않는다. 

 

어느 날 수업이 끝난 후, 나는 그리스도인 학자 두 사람으로부터 “젊은 지구관에 대한 토론을 하기 위해 며칠 후 창조과학연구소를 방문하겠다” 는 통지를 받았다. 한 분은 천문학자이며 빅뱅과 오래된 지구 지지자인 휴즈 로스(Hugh Ross) 박사로 창조과학연구소에 ‘성경적 대결’ 을 하러 오겠다고 공언했다. 그는 젊은 지구론을 가르치는 잘못에 대해 우리와 ‘맞서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의 의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또 한 분은 철학자이며 신학자인 노먼 가이슬러(Norman Geisler) 박사로 역시 오래된 지구 지지자이며, 휴즈 로스 박사를 도우러 오는 것으로 꼭 창조과학연구소와 대결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 토론에 참석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며 우리는 진지하게 받아들였다. 그들이 올 때 창조과학연구소 과학자들 모두와 함께 관심있는 크리스챤 헤리티지 대학 교수진들이 참석하도록 배려했다. 우리에게 잘못이 있다면 그것을 알고 싶었고 우리 생각을 바로잡고 싶었다.


그들이 오기 전날 나는 학생들에게 그들이 오래된 지구 사상을 고수하려 한다면, 이 학자들은 성경 말씀에 대한 믿음과 함께 오래된 지구에 대한 확신을 동시에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지적 홍수설이나 조용한 홍수설을 지지할 거라고 미리 말해 두었다.


그 ‘대결’은 몇 시간이나 걸렸으며, 그 다음날도 계속되었다. 그 동안에 로스 박사는 우리를 설득하여 빅뱅 이론,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법,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지구가 젊다고 생각하는 많은 창조론자들이 신봉함)과, 판구조론(시간적으로 다른 맥락에서 이긴 하나 이것도 지구가 젊다고 생각하는 많은 창조론자들이 신봉함)을 받아들이게 하려 했다. 심지어 로스 박사는 자기의 구원이 빅뱅과 오래된 우주 개념에 아주 깊이 근거하고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성경 창세기 이야기야말로 그가 빅뱅과 오래된 우주론 (그가 이미 진리로 ‘알고’ 있었던 이론들)에 맞출 수 있는 유일한 종교적인 기록이었던 것이다.


가이슬러는 이러한 어떤 특별한 견해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서도 완고하게 오래된 지구론을 신봉했다. 심지어 그는 네안데르탈인이 인간을 닮은 동물로 현대인보다 뇌가 크고, 말할 수 있으며, 종교적 의미가 담긴 장례를 치렀지만, 영혼이 없다는 등의 로스 박사의 견해들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했다. 가이슬러는 네안데르탈인이 틀림없이 아담의 후손이라 했으나, 로스 박사는 네안데르탈인 훨씬 이후 아담이 창조되었을 때에야 사람의 영혼이 생겼다고 주장하였다. 그 근거는 네안데르탈인 화석의 방사성동위원소 연대가 과도하게 크다는 것이었다.


다음에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하였다. 노아의 홍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것은 큰 홍수였지만, 중동 지역만을 휩쓴 홍수였다고 그는 거리낌 없이 말하였다. 그러나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는 덮치지 않았고, 이 지역들에 살던 것들은 익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은 결코 덮치지 않았으며, 이미 살고 있던 인디언들에게 영향을 주지도 않았으고, 그랜드 캐니언의 탄생 원인이 되지도 않았다는 것이었다. 세속적인 지질학적 해석과 방사성 동위원소 연대측정에 의하면 그랜드 캐니언은 수백만년 전에 생겼다는 것이었다. 로스 박사가 보기에는 노아가 볼 수 있는 한계 내에서는 모든 지역이 홍수로 뒤덮혔기 때문에 전 세계적인 홍수로 확실히 생각하였지만, 국지적 대홍수였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암석과 화석은 지질학적으로 수백만년 된 것이라고 증명되었기 때문에, 대홍수에 의해 퇴적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순간에 가이슬러 박사가 끼어들어 로스 박사의 말을 정정했다. 그는 성경이 전 지구적이고 전 세계적인 대홍수를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는 젊은 지구를 지지하는 창조론자들이 생각하는 지질작용은 일어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그 홍수가 홍수 시대 이전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을 멸망시켰음에는 틀림없지만, 지구상에 지질학적인 흔적은 별로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이 불어 세상을 뒤덮고, 지상에 살아있는 모든 것을 익사시키고는, 물이 그냥 빠져버렸다는 것이다. 암석도 화석도 남기지 않고! 규모가 훨씬 작은 오늘날의 국지적 홍수도 굉장한 지질작용을 일으키는데, 어떻게 그런 견해를 가질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가 인정하듯 훨씬 규모가 크고 역동적인 홍수가 어떻게 지질작용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러자 그는 조용한 홍수(tranquil flood)를 주장했다.

이 문제를 다루는 올바른 방법은 성경의 저자를 하나님으로서 인정하고 성경의 진실됨을 받아들임으로서, 읽는 자들이 성경을 이해하도록 의도하신 하나님 뜻을 이해하며, 우리의 생각과, 연구와, 자료들의 해석을 통해 진리의 하나님께 순복하는 것이다. 우리들은 이전의 가정들을 다시 생각해 보고, 역사관을 세상 과학자들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향하도록 정해야 한다. 우리는 모든 과학자들의 견해를 (우리 자신들의 의견도 포함해서) 성경말씀에 따라 판단해야 할 것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로마서 12:2)  라고 성경은 명령하고 있다.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데살로니가전서 5:21). 일단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연구 활동을 인도하시도록 하는데 성공하게 되면, 과학은 좀더 바람직하고 좀더 우수하게 될 것이다.



번역 - 한국창조과학회 광주지부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223

참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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