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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인류 역사의 회고 1 : 이집트인, 수메르인, 바벨론인들

미디어위원회
2005-07-09

인류 역사의 회고 1

 : 이집트인, 수메르인, 바벨론인들 


       초기 인류의 역사를 상고해보면 우리는 인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설명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인간에 대하여 씌어진 기록들은 겨우 BC 3,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뿐이다. 그리고 BC 3,500에서 BC 2,300년 사이에 존재했던 애굽(이집트)의 첫 번째 왕조 중에서 재위했던 왕들의 목록이 어느 정도 과장됐을 가능성을 감안하면 그보다 짧을 수도 있다. 만일 인류의 역사가 수백만 년이라고 하면 왜 BC 3,500년 이전의 역사기록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어째서 이 무렵부터의 기록들이 전 세계에 걸쳐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많은 언어로 동시에 나타나는가? 기록은 BC 4,000-3,000년에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와 인더스 계곡과 기타 지역에서 동시에 시작되었다. 이런 기록들은 인간이 그때에 이미 고도로 발달되고 문명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초기 이집트인과 다른 지역 사람들의 많은 성취(문명도)들은 오늘날보다도 결코 열등하지 않다. 이렇게 고도로 발달된 사람들이 그 이전의 어떤 곳의 어떤 문명으로부터의 전수도 없이 한꺼번에 갑자기 도약했다는 말인가? 그것은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경 말고는 BC 3,000년 이전의 문명 기록은 없다.


이집트인들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이와 같은 몇몇 문명들이 푸른 하늘에서 갑자기 역사에 나타났다고 생각해 보자. 갑자기 나타났던 문명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문명은 고대 이집트 문명이다. 나는 인간이 수백만 년에 걸쳐 매우 느리게 발달했다는 진화론적 가정을 무시하는 바이며, 거의 믿을 수 없을 만큼 갑자기 온 지구상에 문명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1975년 6월호 86쪽에 케네드 클라크가 방송에서 행한 '태초에: 고대 이집트의 미스터리” 라는 다음의 글을 실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문명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림에 있어 꼭 필요할 것으로 여겨지는데, BC 3,000년과 B.C 2,800년 사이에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나일강 계곡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50만년 동안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 빠져 있다가 200년에 걸쳐서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자신과 주위를 완전히 알아보는 것과 같다. 과학은 수많은 다른 지역에 있었던 문명한 생활에 대해 흥미로운 증거의 단편들을 밝혀내었다. 이집트는 첫 번째의 위대한 문명의 본산이다.”

케네스 클라크가 문명이 이집트와 기타 지역에서 돌연히 출현하였다고 말했지만, 그것보다 앞섰다고 추정되는 수백만 년의 진화 기간에서 '50만년 후”를 떼어낼 수는 없다.

진화론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작가들도 유사한 주장을 한 바 있다. 나는 리오넬 카슨이 기고한 1965년도 판 타임-라이프지 51쪽에서 한 번 더 인용코자 한다.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약 7-8,000년 전에 근동의 이곳저곳에서 문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인간들은 사냥꾼에서 정착민으로 되어갔다. 이제는 쫓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구하지 않고 그 대신 가축을 기르거나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BC 3,200년에서 3,000년 기간의 일이백년 동안에 갑자기 그동안 나일강 유역에 흩어져 살던 부족들이 공식적인 정부를 지배하던 한 강력한 지도자 밑에 통합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계속해서 경이로운 이집트 문명에 관하여 쓰고 있다. 이집트 문명들 즉 여러 왕들, 왕조들, 피라미드, 고도로 발달된 건축술, 스핑크스, 오늘날도 따를 수 없을 정도의 공학적 업적들, 도구들, 기술들, 예술, 과학, 의학, 행정조직 기타 등이 마치 지구의 다른 지역에서 수입해 들여온 것처럼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더욱 가소로운 것은 그 모든 문명들이 먼 혹성이나 외계에서 왔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차차로 설명하는 바와 같이 그 문명들은 바벨탑 사건 때 흩어졌던 고도로 문명된 노아의 후손들에게서 수입되었거나 이입해 온 것들이었다. 그러나 많은 문명들은 대략 BC 1,900년 이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이집트 자체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에게, 암흑시대의 유럽에서, 중남미의 초기 사람들 등에게서 일어났던 바와 같이 퇴보했다는 것은 매우 슬픈 역사적 사실이다. 발달된 문명은 이집트에서 진화된 것이 아니라, 다만 발생했을 뿐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은 미개인들이나 원시인들의 어떤 유물도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집트의 역사는 BC 3,400년경에서 3,200년경에 시작된다. BC 250년경에 살았던 이집트의 승려 매니토(Manetho)의 기록에 따르면, 이집트의 첫 번째 왕은 BC 3,000년경 하부 이집트와 상부 이집트를 하나로 통일한 메네스왕일 것으로 믿어진다. 독일의 사학자들은 메네스의 통치 년대가 BC 5,702~3,623년 기간의 어느 시점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본다. 우리는 이집트 초기 역사 때의 것인 저술과 보존된 기록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세계 최초로 파피루스 갈대로 종이를 만들고 그것에 쓸 잉크를 발명했다. 그들은 표준 자(尺)와 저울로 거리와 무게를 재고, 시간을 계산하고, 땅을 측량하고, 세금을 산정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운하를 건설하고, 관개사업을 일으켜서 나일강 홍수를 인간의 편의를 위하여 활용했다. 기가 막히도록 갑자기 이 사람들은 금, 은, 동, 놋, 터키석, 청금석과 같은 귀금속, 금 세공품, 희귀목 조각품, 상아와 보석, 타조의 깃털장식, 희귀 동물의 가죽, 몰약과 향신료 등을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의약품은 그들의 역사 초기부터 사용했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사람들은 햇볕에 말린 벽돌을 사용했으나, 이집트인들은 놀라우리만큼 갑작스럽게 머나먼 나일강 상류에서 화강암을 켜서 운반해 오기도 했다. 그들의 건축술은 후기의 어느 시대나 다른 지역의 어느 것보다 가장 고상하며 예술적이고 웅장한 왕의 묘와, 피라미드와 기념비석들을 세웠다. 어떤 것들은 비록 선사시대의 구조물들이거나 역사 기록이 보존되기 이전의 것이긴 하지만, 그들의 예술, 미술, 건축물, 예술적인 기념주들과 스핑크스 등은 고대 그리스의 미술가나 조각가들보다 수세기나 앞섰다.


초기시대의 조각가들은 미국 남다코타 주의 블랙 힐스에 있는 대통령들의 얼굴들과 비견될 만큼 거대하게 자기들의 왕의 두상을 바위에다 새겼다. 자기들의 중요한 건축물에는 화려하게 채색하기도 했다. 이들은 그들의 조상들을 통하지 않고 순식간에 역사에 출현한 기술적이고 지능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의 도구들도 고도로 발달된 것들이었다. 많은 역사 기록들을 보면 이 사람들이 거의 맨손으로 화강암과 다른 돌들로 피라미드와 구조물들을 건축했다는 인상을 준다. 그들은 분명코 매우 놀랍도록 발달된 도구들을 사용했다. 이집트인들은 존재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그들이 켜 온 돌들을 자르기 위해 코란덤(鋼玉)이나 젬스톤(貴石)을 이빨처럼 고정시켜서 톱이나 관상(管狀)의 크라운 드릴을 제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들의 기술은 오늘날의 가장 숙련된 사람들 정도로 발달된 것이었다. 오늘날의 사람들을 위하여 많은 지식이 축적되어 왔음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들보다 우수하거나 정교하다고 감히 주장할 수가 없다. 1913년 스미소니언 연구소가 발표한 '공구 발달의 역사”라는 보고서 566쪽에 따르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과학 지식의 퇴보 내지 일실이 생겼다 것이다. 많은 경우에 수백 년이 지나면 발달된 노하우나 지식은 완전히 망각 또는 소멸되어 버리고 만다. 석영석을 자르던 지식과 기술은 20세기에 들어 터널 구축물이 발달될 때까지 망각되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경이로운 능력들은 우리가 그들이 축조한 거대한 파라미드를  바라보았을 때 아주 분명히 드러났다. 그것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수천 년 동안 많은 학자들을 당혹케 했다.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들조차도 맨 처음 그것들을 목격하는 순간 그 앞에 선채로 두려움에 떨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도대체 어떻게 피라미드를 지었단 말인가? 모든 시대의 수학자들은 피타고라스가 생존하기 수천 년 전에 이집트인들이 피타고라스의 기하학의 모든 요소들을 이미 사용하였다는데 대하여 경탄했다.


기자에 있는 대형 피라미드는 바닥 면적이 13에이커나 되는데, 이는 도시에서 3블록에 해당되는 면적이다. 그 정점은 지상에서 481피트(145m) 높이 또는 40층의 건물 높이에 해당한다. 그것은 한 개의 무게가 2-70톤짜리 석회암이나 화강암 2백만 개를 사용하여 201층의 계단을 쌓은 구조로 마무리 되어 있다. 그것은 예수님 당시 이래 영국에 건설된 모든 사원과 교회와 예배당에 들어간 석재보다도 더 많은 양이다. 나폴레옹은 기자에 있는 대형 피라미드 3기는 프랑스의 국경을 따라 높이 10피트(3m) 폭 3피트(0.9m)의 성을 쌓기에 충분하고 만일 일렬로 쌓을 경우에는 미국 대륙을 한번 반 횡단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계산했다. 20년 이내에 2백만 개 이상의 돌덩어리를 켜서 500마일 이상 운반해오고 다듬어서 있어야할 자리에 올려놓았다고 한다면, 매주 7일 매일 12시간씩 하루에 315덩어리씩, 시간당으로는 26덩어리씩을 480피트까지 쌓은 셈이 된다. 이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작업량이며 작업 능률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최첨단 건설 장비를 갖춘 10만 명의 건설인력을 가지고도 같은 기간 동안에 이런 위업을 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진화론자들의 말대로 한다면 소위 선사시대로부터 어떠한 기술의 전수도 없이 갑자기 역사의 무대에 나타난 사람들이 아닌가?


돌덩어리의 양과 작업의 양도 놀라울 뿐만 아니라, 그들의 비범한 건축기술 능력의 정밀성도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그 돌덩어리들이 어찌나 정밀하게 절단되고 연마되었는지 돌 틈에 종이 한 장도 끼울 수 없을 정도이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4면이 정상(頂上)을 향하여 일정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업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기준점이 없기 때문에 작업이 진행되어감에 따른 이 각도를 실측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만일 피라미드의 한쪽 면이 조금만 더 경사져도 다른 면은 어긋나 버릴 것이다. 그 솜씨를 어디에서 점검해 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정밀하다. 이 이집트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짧은 기간에 그렇게도 정확하게 거대한 돌덩어리들을 자르고 연마해서 쌓았을까? 어떤 연구원들은 그레이트 피라미드는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돌을 자를 때는 레이저 광선을 사용하고 돌을 쌓아올릴 때에는 반-중력 장치(anti-gravity devices)를 사용하는 외계에서 온 초능력자의 도움을 받음으로써만 건축이 가능할 정도라고 아주 신중하게 추정하기도 한다. 1986년 12월 4일자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지는 '전문가들, 지능을 측정하는 새로운 방법을 행사하다”라는 한 사설을 실었다. 그 사설의 첫째 번 질문은 '누가 그 피라미드들을 건축했는가? ― 고대 이집트인들인가? 아니면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인가?” 설령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해도 만일 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아니라면, 왜 현재의 우리 인간들보다 더 명석(明晳)해야만 하는가? 그러나 그것은 진화론에 부합되지는 않는다.


그레이트 피라미드 건축의 또 하나의 놀라운 위업은 그 구조의 설계와 건설공정의 감독과 필요한 노동력의 공급이다. 모든 노동자의 숙식문제, 부상자와 질병자의 치료 등은 지금까지 생존했던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능력 있는 기획자의 능력과 생각을 총동원해야만 가능했을 것이다. 피라미드와 관련된 또 다른 위업은 고인의 사체를 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사용된 방부(防腐)기술이다. 이들의 것을 능가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까지는 없다.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자면, 위와 같은 모든 탁월한 위업들과 위대한 성취들을 이룩한 초기 이집트인들이 '원시적인(?)” 조상들의 후예들이라고는 볼 수 없다. 나는 이들이, 우리가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게 될, 바벨탑 사건 때의 고도로 발달된 사람들 중에서 흩어진 조상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여기에 한 가지 관찰이 더 있어야만 한다. 즉 만일 인간이 진화되었다면 이보다 십만 년 전에 일만 명의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빌딩이나 구조물이 어디에 있는가? 최소한 이집트에 몇 채의 선재(先在) 빌딩들이 있어야만 할 것이 아닌가?


수메르인과 바벨론인들

우리가 고려해보아야 할 다음 차례의 현저한 문명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계곡(유역)의 수메르 문명이다. 그들의 역사는 이집트의 역사와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1977년 9월호, 131쪽)는 다음과 같이 썼다.

'왕들의 명단을 살펴보면 제1대 왕조는 대홍수 후에 출범했다.......우울리(영국의 고고학자)는 고도로 발달된 어떤 문명이 제1대 왕조 이전에 이미 존재했음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홍수 전 왕조에 대해서 언급된 왕들의 명단 이외에는, 수메르 인들은 마치 비가 온 후에 싹이 돋아나오는 씨앗과 같이 사막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는 않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물리적 증거가 없다.”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되었는가? 마치 이집트인들이 했던 것과 같이! 수메르인들도 약 BC 3,500년경에 발흥했다. 그들의 문명이 혈거인 또는 적어도 원숭이로부터 점진적으로 진화되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 문명의 시작은 홍수가 난지 수백 년 후에 있었던 바벨탑 사건 후의 어느 때에 발생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들 수메르 인들은 메소포타미아평원(강들 사이라는 의미)에 있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서 현란한 문명을 발전시키며 갑자기 출현했다. 그들은 수많은 수로들을 갖춘 관개(灌漑) 체계를 발전시켰고, 수많은 종류의 채소류, 과일류, 곡식류, 대추야자 등을 재배했다. 그들은 당나귀, 염소, 양들과 같은 가축들을 사육했다.


그들은 상인들, 그리고 도시와 도시 사이를 다니거나 타 지방까지 왕래하는 무역상들, 군인들, 승려들, 통치자들, 자유민과 노예들로 구성된 복합사회를 발전시켰다. 그들은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혼잡케 된 직후인 BC 3,000년 전에 이미 언어를 문자로 기록할 수 있었다. 수천 개의 토판과 비문들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서는 그들의 상거래 내역, 행정, 법률 그리고 종교 등을 다루고 있다. 이 토판들은 그들이 의학, 수학 및 천문학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태양의 운행에 기초한 달력을 창안했다. 그들은 원을 360도로 분할하는 방법도 고안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그것을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신화, 서사시, 설화시(說話, narrative poem), 자기들의 신과 영웅에 대한 찬양 등을 포함한 수천 가지의 문학작품들을 저술했다. 그들은 또한 수많은 주제로 잠언, 우화, 수필 등도 썼다. 그들의 작품 중 흥미있는 것 하나는 길가메쉬 서사시인데, 성경에도 기술되어 있고 세계 수많은 민족들이 그런 것처럼 대홍수에 관해서 읊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창조주로부터, 관련된 지식과 기술을 부여받지 않고는 이런 모든 일들을 몇 년 이내에 이룰 수는 없다. 대영박물관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박물관이 우르의 폐허에서 1919년부터 1929년 사이에 생 땅(virgin soil)까지 파내려가며 3개의 다른 문명대(文明帶)를 발굴해 보았는데, 우르의 초기 역사로부터 우르의 전 역사를 관류(貫流)하여 사람들은 고도의 문화, 재능, 능력, 그리고 문명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장인(匠人)들은 금, 은, 동, 청동, 그리고 석재를 가지고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능숙했다. 그들은 금은과 보석들을 가지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구리와 주석을 가지고 어떻게 청동을 만드는지를 알았는데, 청동은 그들에게 더욱 강인한 금속재료가 되었다. 그들은 청동으로 컵, 항아리, 칼, 헬멧, 전쟁용 도끼, 검, 창, 방패, 전차, 여러 장식물, 주방용품 및 가재도구, 악기 등을 만들었다. 그들은 또한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물레바퀴를 고안했다. 그들은 큰 물건을 이동하기 위해 수레바퀴를 사용했고, 전차에 바퀴를 달아 사용했다. 그들은 섬세한 옷감을 짰고, 석영모래로 유리를 만들었다. 고고학자들은 4,000년 이상이나 오래된 유약을 바른 석 공예품을 발굴해 내었다.


수메르인들과 그들의 후손인 바벨론인들은 그 다음 세대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천문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이 사람들의 초기 문명을 연구해 온 사람들은 바벨론인들이 행성들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이 학자들은 바벨론 인들이 4개의 목성(Jupiter) 위성들과 7개의 토성(Saturn) 위성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이 망원경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나, 만일 어떤 종류의 확대경이 없이는 이런 위성들을 알아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수메르 인들이 번영의 정점에 있을 때에는 그들의 사회는 부유하고 강력하고 복합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최대 작품은 신전이라 부르는 거대한 사원이었다. 그것은 정 사각 기둥과 열주(列柱)들로 장식되었다. 그 사원의 전면은 적, 흑, 백색의 기하학적 모형으로 된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 신전은 여러 층으로 되어있고 500,000평방피트의 넓이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폭 600피트(180m) 장 800피트(240m)의 넓이로서 도시에서 3블록 넓이에 해당하거나 미국 국회의사당만큼의 면적이다. 이것은 워싱턴 DC에 있는 아름답고 잘 건축되고 가장 큰 정부 건물 중의 하나만큼 크고 놀라운 걸작품 건물이다.


이 주인공들이 BC 4,000-3,000년 전에 원숭이 나라에서 별안간 인류의 역사의 무대로 튀어나왔고, 구석기-중석기-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도 아무런 기록된 역사도 남기지 않고, 1-2백년의 짧은 기간에 기적 같은 창조물들을 만들어내고, 기록된 언어를 발전시키지도 않은 채 거대한 건축물들을 지었다고, 진화론자들이 그들의 역사책을 통해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대로 믿는 것은 전적으로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하고 비역사적이다. 만약에 진화론적 추정처럼 수십만 년 또는 수백만 년이라는 연대가 사실이라면, 이 사람들은 그 전의 수만 년 동안에 문학, 수학, 과학, 그리고 발명품들의 발달 없이 1-2백년 사이에 갑자기 이런 성취를 이룰 수는 결단코 없다. 10,000년 20,000년 30,000년 혹은 50,000년 전에 이들이 살았던 어떤 증거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 증거를 확보하려고) 리키(Leakeys) 일당과 인간의 화석 사냥꾼들이 아프리카와 세계 도처에서 수백만 년 전에 살았다고 추정되는 인간의 화석을 찾아 땅 속을 뒤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오직 사냥꾼이나 이삭꾼들과 같이 지구의 여러 곳에 흩어져서 찾아내는 것들은 노아 홍수 때의 석회암으로 덮여 있는 원숭이와 다른 짐승들과 사람들의 화석들뿐이다.


일반적으로 역사책은 지구의 4대 문명이 각기 다른 4곳의 지구 온난 기후대 지역에서 BC 4,000-3,000 경에 발생했다고 말한다. 이 4대 문명발상지는 식량과 쉼터가 쉽게 확보되는 강 유역의 계곡이었다. 즉 이집트의 나일 강 유역, 메소포타미아유역인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계곡, 서북부 인도(메소포타미아의 동쪽)의 인더스 강 유역, 그리고 중국 북부에 위치한 황하유역 등이다. 괄목할만한 또 다른 지역으로는 팔레스타인 평원의 요단강 유역이 거론된다.

 

*참조 : The antediluvian patriarchs and the Sumerian King Lis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53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 유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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