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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인류 역사의 회고 2 : 요단강계곡, 인도, 중국, 소아시아, 크레데, 그리스

미디어위원회
2005-07-11

인류 역사의 회고 2 

: 요단강계곡, 인도, 중국, 소아시아, 크레데, 그리스

유종호


요단강계곡의 여리고

나는 세계 문명 발상지에 대해 나중 기회에 계속 언급하려고 한다. 그것은 세상의 기원 중의 하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리고는 예루살렘 동북부 약 15마일 지점 요단강 근처를 중심으로 한 고대문명 지대이다. 이 사람들의 조상은 BC 6,800-5,800경(?)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누루버겐(Rene Noorbergen)은 “잃어버린 종족의 비밀(1977)”이라는 저서에서 “[이 연대]는 과학적인 비평에 노출되면 약간 모호해진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명료한 연대측정방법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여리고의 초기 연대는 세계의 다른 주된 고대문명, 즉 수메르나 이집트 문명의 연대와 비교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말한다.

수메르와 이집트인들이 큰 강 유역을 따라 번창 발전해 갔으나, 요단계곡 지역의 여리고는 1분간에 1천 갤런의 물을 품어내는 용출천(湧出泉)으로부터 풍부한 물을 공급받는 오아시스 인근에서 발전했다. 이 오아시스 주변은 물론이고 근처에 있는 요단강 계곡에서 초기에 정착한 자들은 소, 양, 염소 등을 사육함과 함께 밀, 보리, 편두(扁豆), 무화과, 다른 식량 및 과일 등을 재배했다. 그들은 여기에서 약 2,500-3,000명의 인구를 가진 8에이커 넓이의 도시를 건설했다. 호전적 침입자들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일련의 대규모 석조 성벽과 최소한 1개소 이상의 대형 탑을 건설했다. 그 탑의 규모는 직경 30피트(9m), 높이 20피트(6m) 이상이었다. 이것들이 BC 1,250년 경 여호수아의 양각나팔로 허물어질 수 있었던 성들이다. 가옥들에는 여러 개의 문들이 달린 큰 방이 있었다. 담장들은 흙벽돌로 쌓았고 마루는 고도로 연마한 회반죽(plaster)의 고운 바닥이었다.


인도의 인더스 계곡의 사람들

BC 3,000경에 발흥했던 찬란한 고대문명 가운데 하나는 메소포타미아의 동쪽에 위치한 서북 인도의 인더스 계곡에 있었다. 이 문명을 드라비다 문명이라고 한다. 그들은 하나의 공용어를 사용하였으나, 지금까지도 그들이 무엇을 기록했는지 아무도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언어는 분명코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혼잡케 된 후에 생긴 새로운 언어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이 문명은 1920년에야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때 여러 개의 길게 매몰된 도시 중에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라는 두개의 도시가 우연하게도 발굴되었던 것이다. 하라판이라고 부르는 이 문명의 문화는 아라비아 해로부터 히말라야에 이르렀고, 동쪽 이란에서 갠지스 강 유역까지 미쳤다. 인더스 강 유역의 문명은 최대 규모의 초기 무명 중의 하나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최대의 도시는 모헨조다로였다. 그 도시에는 직사각형 도시구획을 가진 넓은 도로들이 있었다. 집들은 정원과 욕실이 있는 1층과 2층 구조였다. 그들은 많은 현대 도시와 유사한 잘 설계된 하수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위생설비들도 가지고 있었고, 하수도는 관리를 위한 출입구용 맨홀을 구비하였으며, 구운 벽돌을 일렬로 쌓았다. 그들은 구리, 청동, 금, 은 등을 사용했고, 자녀들을 위하여 아름다운 인형도 만들었다. 그들의 예술 작품들은 어떤 문화권에서는 높이 평가받았다. 그들은 욕실, 청동과 구리로 만든 가정용품, 도자기 그리고 보석들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서쪽의 수메르인들과 무역거래를 했다는 증거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지상에 출현하자마자 그들의 문화는 소멸해버린 것 같다. 서쪽과 서북쪽에서 온 아리아인들이 접수해버린 것 같다. 아리안 족은 오늘날 힌두의 조상이다. 드라비다족은 남쪽으로 이동했는데, 요즘도 인도에서 더러 볼 수 있다. 한편 아리안 족은 꽉 막힌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개방된 공간을 선호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문명이 진화하는 대신 파멸로 퇴화하고 멸실되는 예를 본다.


중국

동양에는 BC 4,000-3,000년경 초 자체 언어를 가지고, 사냥도 하며, 채집 생활하는 유랑 족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동남아 쪽으로 올라와서 북향하다가 마침내 중국에 이르게 되었는데, 거기 양자강, 황하 및 다른 강들의 유역에서 그들은 자체 언어를 가지고 진보된 문명생활을 누리고 있는 또 다른 민족을 만나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BC 2,850-2,250년경 역사를 개시하면서 정착했다. 최초 3인의 통치를 삼 황제 시대라 하고, 다음 5인의 통치시대를 오 황제 시대라고 한다. 이 통치자들이 믿기 어려울 만큼 오랫동안 지배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이 나이들은 대홍수 전후의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사람들의 나이에 비추어 보면 결코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계속 논의하겠다. 역사가들은 이들이 어디에서 왔을까하고 질문한다. 중국어는 그 역사가 겨우 1-2천 년 정도로 짧아서 대부분 지금까지도 잔존하고 있지만, 초기의 이런 중국어는 매우 복합적인 표의문자 체계로 발전하였다. 한자는 수천 개의 글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그들은 유럽인들보다도 훨씬 앞서서 움직일 수 있는 활자와 화약을 발달시켰다. 역사학자들은 그들이 그것들을 어디에서 취했을까 하고 질문한다. 그들은 청동의 기구와 항아리들을 주조하는 기술에 능숙해졌다. 그들은 누에를 쳐서 아름다운 비단을 짰고 도자기와 옥 세공품을 만들었고 건축물을 지었다.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은 중국의 문물을 많이 배웠다.


소아시아

중동으로 되돌아가 보면 소아시아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북쪽에 발달된 또 다른 고대문명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카탈 휴(Catal Huyaek)과 엘바 등 두 지역이 어느 정도 발굴되었다. 카탈 휴옉은 팔레스타인의 여리고 이전에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믿어진다. 카탈 휴옉은 타우루스 산맥의 산록에 있는 동부 소아시아에 위치해 있는데, 그들은 BC 6,200-5,400년 사이에 매우 번창했었다고 믿어진다. 그 인근에 있는 화산에서 진하고 단단하며 광택이 있는 암석인 흑요석(黑曜石)이 채취되었는데, 그 속에 여러 가지 인공적 가공품들, 도검류, 거울들, 창날들, 그리고 피혁과 뼈와 목재를 가공하기 위한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벽 전체에다 야생 동물들과 야외 생활 모습을 그렸다. 화가들과 조각가들 이외에도 가정용 주방용품과 석 공예품을 만드는 도공(陶工)들도 있었다. 그들은 또한 정밀한 공구들과 도끼나 망치와 같은 가정용품, 단도나 창끝 등의 무기도 제조했다. 그들에게는 고운 천을 짜는 직공(織工), 양동이 제작자, 금속공(金屬工), 그리고 목공들도 있었다.

엘바 지역의 또 다른 문명은 시리아 북부에 있었다. 1964년에 로마대학교의 책임 하에 이 토루(土壘)의 발굴 작업이 개시되었다. 엘바는 BC 2,400년경 이집트와 동시에 융성했던 제국의 수장(首長)이었고, 수메르는 전성기에 있었다. 엘바는 상업과 미술과 선진 문명으로 인접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엘바는 이집트나 바벨론인들의 몇몇 문헌에도 언급되고 있다. 엘바에서 왕궁과 대형 사원이 발굴되었다. 수메르 문자와 유사한 상형문자(Cuneiform or wedge shaped writing)가 발견되었다. 발굴자들은 14,000개 이상의 음각 토판을 발견했으나, 상형문자로 된 문헌들은 수메르나 기타 어떤 유사한 언어도 아니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다른 언어였는데, 바로 1, 2백 년 전에 발생했던 바벨탑 사건에 의한 언어의 혼잡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 후 100개의 토판사전이 발견되었는데, 그 사전에 엘바어로 된 약 3,000 단어가 수메르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BC 3,000-2,000년 사이의 1, 2백 년 동안에는 엘바는 근동에서 가장 강국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과 무역을 했다. 수천 명에 달하는 금속 노동자, 직조 노동자들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그들 중에 숙련공들은 금도금을 한 아름다운 목제 가구들을 수출하기도 했다. 그들의 몇몇 토판에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에 관하여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그들이 타 지역 사람들과 교류했음이 분명하다.


크레데 섬

소아시아 서쪽에 BC 3,000-2000년 동안에 고도로 발달된 초기 문명이 존재했던 크레데 섬과 그리스가 있다. BC 3,000년경에 고도한 문명이 크레데 섬에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의 위대한 왕 미노스(Minos)를 본따서 미노아 문화라고 부른다. 그들은 크노쏘스 등의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했고, BC 2,200년경 여기에 세워진 한 궁전이 발굴되었는데, 그 면적이 5에이커에 달하고 5층 높이의 규모였다. 궁전은 아름다운 회랑들, 홀들, 어전회의실, 거실, 보물창고, 기타 많은 방들이 있었다. 가장 감탄할만한 것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어느 것보다도 우수한 물이 흐르는 욕실, 수세식 화장실, 배수시설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도관을 통해 물이 흐르고 점검과 보수를 위한 멘 홀들도 있었다. 배수관은 아주 현대적이다.

궁전 벽들 위의 프레스코 화법의 그림들은 그 문화를 만끽하는 귀족들과 귀부인들의 현란한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그림들 속에는 춤추는 여인들, 뛰어오르는 돌고래, 그리고 아름다운 전원 풍경들이 그려져 있다. 미술가들과 숙련공들은 돌과 귀금속에 새긴 조각, 세련된 설계로 금과 도자기를 달걀껍질만큼 엷게 입혀 만든 보물 등 위대한 예술의 걸작품들을 만들었다. 긴 곱슬머리로 재미있게 장식을 한 남녀 귀족들이 생기발랄하게 몇몇씩 모여 서 있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고, 담소도 나누는 그림이 있다. 또한 베일을 쓴 여인들, 곡식 단을 한 아름 안고 나르면서 즐거운 수확의 축제를 벌이는 농부들의 그림들이 있다. 글씨로 가득 찬 토판들이 발견되었다. 이 토판들은 크레데 인들이 작품 체계를 음절로 발전시켰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도 그들의 작품을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이 탄생하기 직전에 한 로마 사가는 그 당시에 크레데인들은 자기네 선조들이 알파벳을 고안했고 페니키아인들만이 그 알파벳을 항해를 통해 더 잘 알려지게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각 가정마다 각자의 직조기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분명히 옷감을 자급자족했음을 뜻한다. 여성들의 옷은 신중하게 몸매에 맞추고 꼼꼼하게 바느질하고 아름답게 자수를 달아서 정교했다.

그들은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모양새가 이상한, 구멍 뚫린 국자, 거르는 체, 그 외에 많은 장치들을 비롯한 수많은 종류의 주방기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훌륭한 항해사와 무역상들이었고 자기들의 상품과 미술품과 문명들을 지중해 동부의 전 지역에 전파했다. 여타의 많은 고대 문명과 마찬가지로 그 문명도 BC 1,500년경에 소멸되고 말았다. 혹자는 “그들의 기원은 불분명하고 그들의 언어는 알 수가 없고 그들의 운명은 모호하다.”라고 썼다. 그러나 성경을 알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단순하고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

BC 3,000년경 미노아 문명이 그리스 쪽으로 북향했는데, 고린도 인근의 미케네에서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에 미케네 문명, 또는 그리스 문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알파벳과 조어법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오늘날 전문적인 영어에 사용하는 수많은 단어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헬라어를 모르면 일반 미국인들에게 많은 영어 단어들은 생소한 단어가 될 수밖에 없다. 한 시사 해설자는 최근에 수세기 전까지만 해도 라틴어와 헬라어가 그랬던 것처럼 영어는 세계의 공용어가 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특히 전문 분야에서 많은 영어 단어들이 헬라어와 라틴어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이 학식이 있고 전문적이며 과학적인 배경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헬라어나 라틴어 어원들의 이런 단어들을 쓰기를 선호한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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