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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고고학은 성경을 지지하는가? 3

미디어위원회
2008-10-08

고고학은 성경을 지지하는가? 3

(Does Archaeology Support the Bible? 3)

Clifford Wilson 


고레스와 메데, 바사에 관한 주요 증거들 

메데(Medes)와 바사(Persians, 페르시아)가 바벨론을 계승했다.

1. 고레스(Cyrus, 키로스)는 메대와 바사를 통치하는 왕이 되었다. 고레스의 이름은 이사야 44:28, 45:1절에 예언적으로 기록되어져 있다.(아래 관련자료 링크 41번 참조). 그는 포로 되었던 사람들을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허락했던 유명한 고레스 칙령(Cyrus Decree)을 내렸다.(대하 36:22,23, 스 1:1-4). 고레스왕의 무덤은 발견되었다.

2. 하나님은 그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하여 이방 나라의 왕을 사용하기까지 하면서, 하나님 백성들의 역사를 주관하셨다. 고레스 실린더(Cyrus Cylinder, 1879년에 발견된 점토로 된 원통 모양의 돌로, BC 539년에 고레스가 바빌론을 정복하였다는 설명이 바빌론 설형문자로 새겨져 있다)는 고레스가 바빌론의 정복자였음을 확인시켜 준다. 

고레스 실린더(Cyrus Cylinder). 이사야는 고레스를 예언적으로 언급하고 있었다.

3. 에스더서에 나타난 바와 같이 일부 유대인들은 바빌론에 남았다. 메대와 파사의 ”변화(변역)함이 없는” 법의 형태가 그곳에서 보여진다.(에 1:19)


에스라와 느헤미야에 관한 주요한 증거들

이때는 바빌론 포로생활 후 귀환하여 이스라엘 땅에 재정착한 시기였다.

1. 엘레판틴 고문서(Elephantine papyri), 사해사본(Dead Sea Scrolls), 욥기 타르굼(Targums of Job) 등은 에스라서가 시사하는 바와 같이 그 당시에는 아람어(Aramaic)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느헤미야가 재건한 성벽의 일부(아래 관련자료 링크 15번 참조)

2. 산발랏(Sanballat)은 느헤미야 보다 훨씬 후대 인물이었다고 많은 저자들에 의해서 주장되기도 하지만, 그는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처럼 사마리아의 총독(Governor of Samaria)이었다.(느 4, 6장). 지금은 여러 명의 산발랏이 알려져 있고, 심지어 복원된 편지들에는 여호하난(Johanan, 느 12:13)이 언급되어져 있기도 한다. 또한 아라비아 사람 게셈(Geshem, 느 6:1)도 알려져 있다.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성경 비판가들의 비평들에도 불구하고, 에스라서와 느헤미야서는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상황들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었다.

3. 산발랏에 관한 편지들은 느헤미야서에 대한 연대 평가를 명확하게 해준다. 느헤미야가 살았던 시대는 아닥사스다(Artaxerxes) II 세 때가 아니라, BC 465-423년 기간을 통치했던 아닥사스다 I 세 때였다. 이것은 구약성경의 연대표가 확립되어진 현대 연구들에 의해서 매우 정확한 것이었음을 보여주었다.


사해사본에 관한 주요 증거들

사해사본(Dead Sea Scrolls)

1. 이 성경 두루마리들은 사해 근처 동굴에서 약 2,000년 동안 묻혀 있다가 1947년에 다시 햇빛을 보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한 분의 메시아, 또는 메시아들(다윗과 같은 왕, 이스라엘 백성들의 위대한 대제사장, 멜기세덱의 반차를 쫓은 대제사장, 모세와 같은 선지자, 그리고 어쩌면 찔리신 메시야)을 갈망하고 있었다. 내가 ”어쩌면 찔리신 메시아(pierced Messiah)라고 말하는 것은, 이것이 매우 작은 단편들로 언급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히브리어에서 미래 시제와 불완전 시제들은 매우 자주 같이 표현되어서, 문맥에 의해서만 결정될 수 있다.  


사해 연안에서 발견된 사해사본의 이사야서 일부분.

이 경우에서 예언은 오실 메시아가 ”찔리게” 될 것이다, 또는 ”찔렸다”라고 말해질 수 있다. 이사야 11:4절에는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리고 NASB(New American Standard Bible)의 이사야 53:5절에서는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라고 기록되어 있다. 두 표현이 다 적절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메시아는 찔렸고, 다가올 심판 때에 메시아를 거부하는 자들은 찔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2. 그 두루마리들은 대부분의 구약성경 사본들을 제공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에스더서를 제외한 구약의 각 권들은 전에 남아있던 히브리어 사본들보다 약 1,000년 더 이른 히브리 성경으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에스더서의 한 기록이 다른 두루마리에서 발견되었다.)  

3. 상당한 빛이 신약성경의 배경과 요한복음의 유대적 본질에 비춰지게 되었다. 예를 들면 ”빛과 어두움”과 같은 대조법은 요한복음과 종말론적 최후의 전쟁을 묘사하고 있는 텍스트인 ”전쟁 두루마리(War Scroll)”에 흔히 나타난다. 그리고 히브리어는 단지 성직자들만의 언어가 아니고, 당시에 통용되는 언어였다.

또한 이사야서의 사해사본은 히브리 철자 ‘타우(tau)’의 옛날 형태를 보여주고 있었다. 이 글자는 두루마리 가장자리에서 ‘X’처럼 보인다. 그것은 이사야 32:1, 42:1,5,19, 44:28, 49:5-7, 55:3,4, 56:1-3, 58:13, 66:5 등에서 11번 나타나 있다. 이미 언급한 대로, 앗시리아 사본과 사해사본(이사야서의 거의 완전한 사본)의 두 기록들은 약 2,000년 동안 인간의 눈에서 완전히 감춰져 있었다. 이 두 자료의 내용 대부분은 겹쳐진다. 그래서 이것은 이사야의 예언들이 진실함을 확증해주었다.

이 사해사본 발견의 중요성 중 하나는 그것들이 1840년대 이래 행해지고 있는 앗시리아의 궁전들을 발굴하는 일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사야서는 앗시리아와 관련된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것은 이사야서의 놀라운 정확성을 확인해주는 것이다. 아마도 사해 두루마리의 발견은 성서고고학과 성경의 타당성에 관한 가장 뛰어난 발견 중의 하나일 것이다.[4] 

*참조 : What is the importance of the Dead Sea Scrolls?
http://christiananswers.net/q-abr/abr-a023.html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에 관한 주요한 증거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을 둘러싼 사건들은 고고학적 발굴들에 의해 사실로 입증되었다.

1. 예수님의 탄생 때에 실시된 인구조사(호적)에 관한 의문들은 중요한 파피루스 문서의 발견으로 해결되었다. 이 문서들은 이집트에서 방부 처리된 신성시 되는 악어들 내부에서 발견되었다. 문서들은 신약시대 직전 및 동안, 또는 직후에 쓰여진 것으로 유대 성직자의 기록들이었다.


인두세(poll tax)의 등록에 관한 한 비문의 일부.

발굴자인 그란펠(Granfell)과 헌트(Hunt)는 그들의 증거가 구레뇨(Quirinius) 총독 때 실시됐던 첫 번째의 인구조사(인두세 등록)였음을 보여준다고 보고했다. (또 다른 비문은 구레뇨가 시리아에서 첫 번째는 시민들의 소요 때 군사령관(군대장관)으로서, 다음에는 시리아의 총독으로서 두 번의 인구조사를 했음을 보여준다.) 아마도 인구조사는 그 민간인들의 소요 사건 때문에 팔레스타인에서는 지연되어졌다.  (아래 관련자료 링크 27번 참조)

2. 그러한 파피루스의 발견들은 우리 주님께서 사용하셨던 말씀들에 많은 빛을 비춰주었다. 그분이 지상 생활을 하실 때의 언어를 사용하셨다는 것은 정말로 사실이다. (막 12:37)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은즉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더라. 백성이 즐겁게 듣더라.”

3. 빌라도(Pilate)는 가이사랴(Caesarea)에서 발견된 비문 때문에 이제 잘 알려져 있다. 존 라이랜즈 파피루스(John Rylands papyrus, AD 125)에는 빌라도 앞에서 행해진 재판의 부분이 기록되어 있는데, 단편적 내용은 요한복음 18:31-33,37,38절에 기록되어 있다.


라이랜즈 파피루스의 양면


신약성경, 초대교회 그리고 초기 기독교와 관련된 주요한 증거들

신약성경의 기록들은 정확한 역사적 문서들임이 검증되었다.

1. 그 이집트의 ”말하는 악어들(talking crocodiles)”로부터 나온 파피루스들은 신약성경이 그 시대의 일상적인 사람들의 언어로 된 놀라운 기록들임을 증명했다. 바울 시대의 일상적 표현들도 또한 바울 서신들 자체에 신뢰성을 더해주고 있다.

2. 소아시아에서 윌리암 람세이(William Ramsay) 경과 그 후계자들의 발견들은 역사적으로 누가와 다른 신약성경 저자들의 실재성을 재확립해주었다. 비판가들에 의해 가장 공격을 많이 받은 성경책들은 모세오경, 에스라/느헤미야, 그리고 누가복음이었다. 이들 각 권들은 믿을만한 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 정확하며 신빙성이 있음이 분명하게 확인되었다.

3. 수많은 증거들은 신약성경 문서들(예컨대 한쪽에는 요 18:31–33, 반대쪽에는 요 18:37–38 부분이 쓰여 있는 라이랜즈 파피루스)과 세속적인 로마 작가들 및 초대교회 교부들의 풍부한 증거들 사이에 연속성이 있음을 보여준다.

*참조 : Paul's Cyprus Travels—What has archaeology revealed?
http://christiananswers.net/q-abr/abr-a020.html


고고학이 성경을 증거하는가?

발굴자들이 성경에 기록된 과거 시대를 밝혀내기 위해 땅을 파내고 있지만, 직접적인 성경적 역사가 밝혀지리라고는 결코 확신할 수 없다. 그러한 발견들은 성경을 공부하는 학생들뿐만 아니라, 성경에 관심 없는 고고학자들도 똑같이 희망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성경의 기록을 신중히 취급해야만 함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성경적 역사와의 연관성은 발굴 연대를 멋지게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발굴자들은 늘 원했으나, 가능하지 않았고 성취되지 않았다. 이런 발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훌륭한 확인들은 되었지만, ”성경을 입증하는 것”에는 오히려 반대가 되었다.  

고고학자들은 학자들이고, 가끔씩 출처가 되는 고문서로서 성경에 관심을 가지는 정도의 일반적인 학문을 하는 사람들이다. 물론 학구적 고고학자들 중에서 일부 헌신된 크리스천들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소수이다. 많은 사람들은 모든 고고학자들이 성경적 역사를 입증하기 위하여 여행에 나섰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실 많은 발굴자들은 성경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주목할 만한 예외들이 있다.


비판가들의 공격에도 불구한 성경의 탁월성

우리는 ”고고학이 성경을 증거한다”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이미 말했었다. 그런 주장은 사실상 고고학을 성경보다 위에 놓여지게 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 확실했던 것처럼 보였던 고고학적 결과가 나중에 오류로 밝혀진다면, 무슨 일이 생기겠는가? 매우 흔히 고고학이 성경의 특별한 사건을 확증해주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그와 같이 고고학이 ”성경을 입증했다.”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은 고고학이 주된 기초가 아니라 지원해주는 것이기 때문에, 제한적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는 수천가지 사실들은 그 증거들을 오래 전에 잃어버렸기 때문에 입증할 수 없다. 그러나 확인이 가능하고 빛이 비춰지는 곳에서, 성경은 모든 문헌들 중에서 세밀한 조사들에 대해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다는 것은 놀랍다. 수많은 공격들에 대한 탁월성, 수많은 비판들을 견디는 능력, 결국 옳은 것으로 증명되는 놀라운 유연성들은 어떠한 학문적 기준 보다도 놀라운 것이다. 성경을 ”논박하는” 외견상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주장들도 세밀한 연구 후에는 재처럼 사라지는 것이다.

거듭거듭 다시 말하건대,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진실임이 입증되어져 왔다. 창세기 1-11장의 탁월성은 확립되었고, 족장들의 배경들은 인정되었다. 모세의 글들은 그의 당대에 쓰여졌고, 여호수아가 지휘한 가나안 정복의 기록은 목격자의 기록이라는 많은 증거들을 가지고 있다. 다윗의 시편은 명백히 그 당대의 산물이었고, 솔로몬에 대한 기록들은 더 이상 ”전설”로 치부될 수 없게 되었다. 솔로몬은 문학적 거인이었고, 막대한 재산을 가진 거부였으며, 하나님 다음의 강력한 통치자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황금시대”를 열어주셨던 것이다.

최근 150년 이상 동안 여러 앗수르 왕궁들의 발굴을 통해, 앗수르 시대는 성경 기록에 대해 극적인 확증을 해주었다. 그러한 발굴들은 지속적으로 구약의 왕들, 예언자들, 백성들, 그리고 사건들의 배경들에 대한 우리들의 이해를 더해주고 있다.

(유대인들의) 바빌론 유수는 여러 가지 면에서 확증되었고, 고레스왕의 칙령은 포로되었던 사람들이 그들의 조국으로 귀환하여 그들의 신앙에 따라 예배드릴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에스라와 느헤미야서는 귀환 이후의 시대를 정확히 나타내고 있었다.

마찬가지로 신약성경의 문서들도 사실에 입각해서 쓰여진, 목격한 증인들의 기록임이 지속적으로 입증되어지고 있다. 왕들과 통치자들과 관리들의 이름들이 정확하게 기록되었고, 칭호들도 주의 깊게 그리고 놀랍도록 정확하게 사용되었다. 지리적 경계들도 돋보이도록 기록되었고, 관습들도 정확하게 다루어졌다. ”진리는 땅에서 솟아나고”(시 85:11)라는 말씀은 참으로 진실이다.  


 

Footnotes

1. N. Osanai, A comparative study of the flood accounts in the Gilgamesh Epic and Genesis, www.answersingenesis.org/go/gilgamesh.
2. There was another Ur to the north, mentioned in the Ebla Tablets. The same name was often used for another city. Woolley’s 'Ur” in the south was Abraham’s city.
3. W.F. Albright, History, Archaeology, and Christian Humanism, McGraw-Hill, New York, 1964, 35.
4. Many other points of interest from the Dead Sea Scrolls are outlined in the book The Stones Still Shout by Clifford Wilson.
5. This acrostic may be photocopied and enlarged.

 

*참고 : A reliable historical record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0_2/j20_2_20-23.pdf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nab/does-archaeology-support-the-bible 

출처 - Answers Magazine, January 24,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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