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전학과 고고학 사이의 줄다리기
: 창세기 10장, 11장의 기록과 바벨 이후 인류의 분산
(The Tug of War Between Genetics and Archaeology)
by Troy Lacey
요약
바벨탑 이후 빙하기와 빙하기 이후 초기 기간 동안에 유럽에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졌다. 한때 단일 문화로 여겨졌던 벨 비커 문화(Bell Beaker culture)는 이제는 유럽을 지배했던 독특한 도자기 스타일을 가졌던 두 개의 별개의 문화로 밝혀졌다. 이것은 정복, 무역, 또는 문화적 동화를 통해 이루어졌을까? 고고학(archaeology)과 유전학(genetics)은 이 주제에 대해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글에서는 데이터들을 검토하고, 창세기 10장의 민족들의 표(Table of Nations)가 이 주제에 대한 독특한 통찰력을 어떻게 제공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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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우리의 탐구에서 고고학과 유전학 분야는 종종 상충되는 경우가 많으며, 간단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드물게 서로를 보완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Nature 지에 실린 논문과 기사는 고고학적 발견과 유전자 연구 사이의 때때로 불안한 휴전을 강조하고 있었다.[1] 이 두 분야의 충돌은 때때로 다른 결론으로 이어지거나, 유적지의 역사에 대해 이전에 갖고 있던 생각을 뒤집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비커 문화(Beaker culture)에 관한 위의 논문과 기사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간단히 보기
∙유럽은 빙하기와 빙하기 이후 초기에 이주의 물결에 휩싸였다.
∙이주와 침입을 했던 벨 비커(Bell Beaker) 집단은 두 개의 다른 집단으로 구성되었다.
∙일부 지역은 유라시아 벨 비커 민족의 정복을 피했고, 다른 지역은 거의 완전히 전멸하고 대체되었다.
∙창세기 10장과 11장은 유전학적 및 고고학적 데이터와 잘 연관되며 타당하다.
고분, 뼈, 벨 비커
오래된 전통적 고고학 연구에서 도자기의 종류나 양식(pottery types or styles)은 종종 한 문명의 연대를 측정하거나(방사성탄소 연대측정과 함께) 문명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였다. 이후 고고학적 사고의 변화로 인해, 이러한 포괄적인 주장이 축소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도자기 유형을 특정 문화와 연관시키는 경우가 많다. 도자기 유형의 변화는 특정 유적지의 문화가 점령되어 변화했거나, 토착 문화가 새로운 스타일을 채택했거나 발명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잉글랜드 남서부, 스톤헨지(Stonehenge)에서 약 30km 떨어진 아베베리(Avebury) 마을 근처에는 최대 46명의 유해들이 묻혀있던 긴 무덤(long barrow, 언덕이나 언덕 아래에 파묻어 놓은 무덤)이 있다.[2] 일반적으로 BC 3600년 전으로 추정되는[3] 이 지역은 BC 2450년까지 지속적으로 점령된 것으로 여겨졌었다. 거의 천 년 동안 사람들이 무덤으로 돌아와 도자기와 구슬 등을 기념품으로 가져갔다는 증거가 있다.[4]
이 시기(BC 2750~2500년 경으로 평가되는)[5]에는 동유럽에서 새로운 도자기 양식이 등장했고, 이 새로운 종 모양의 도자기 양식(이하 벨 비커<Bell Beaker>라고 표기)은 중부, 서부, 북부 유럽을 휩쓸고 영국까지 점령했다.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이주 영향인지, 아니면 문화적 접촉/교역 영향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앞에서 언급한 웨스트 케넷 긴 무덤(West Kennet Long Barrow)과 유럽 전역의 매장된 유해 시료에서 채취한 대규모 유전자 프로젝트가 그 해답을 밝혀주었다.
.독일 베를린의 포르-운드 프뤼게시히테 박물관(Museum für Vor- und Frühgeschichte, 선사 및 초기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벨 비커(Bell Beaker) 문화권의 도자기들. <Image by Alfons Åberg, via Wikimedia Commons>.
죽은 사람은 이야기를 들려준다(하지만 그들의 연대는 아니다)
벨 비커 문화(Bell Beaker culture)는 포르투갈 리스본(Lisbon) 인근 유적지에서 가장 오래된 연대(BC 2700년 경)의 벨 비커 도자기가 나왔기 때문에[6], 이베리아 반도(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기원했다는 가설이 있었다.[7] 그러나 다른 고고학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벨 비커 문화의 동유럽 기원을 얌나 또는 얌나야 문화(Yamna or Yamnaya culture)로 추정했다.[8] 최근 Nature 지의 논문은 둘 다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9]
Nature 지 논문의 저자들은 136곳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BC 4700~800년 사이로 추정되는 고대 유럽인 400명의 새로운 DNA 염기서열 데이터를 분석했다.[10] 이 중 266명은 벨 비커 문화(BC 2750~1800년경)와 관련된 개인들이었고, 174명은 벨 비커 문화 전후로 추정되는 다른 문화권에서 발굴된 개인들이었다.[11] 후자 그룹 중 118명은 영국에 묻힌 개인이었고, 51명은 벨 비커 이전, 67명은 벨 비커 이후였다. 데이터를 정제하고, 다른 알려진 고대 유전체 세트 및 현대 개인과 결합한 후, 3,500명 이상의 표본 크기를 확보했다.[12]
이 유전자 데이터는 이베리아 벨 비커인 그룹과 동유럽 또는 유라시아 벨 비커인 그룹이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유라시아 벨 비커와 관련된 개인들은 세 가지 주요 유전적 요소를 갖고 있었는데, 하나는 유럽 수렵채집인(European hunter-gatherers)의 특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레반트(Levant-이라크,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와 아나톨리아(Anatolia-터키) 사람들에서 보여지는 특성을, 다른 하나는 이란 사람에서 극대화되고 대초원 개체군(현재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폴란드, 체코, 헝가리 일부 포함)에서는 적게 갖고 있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그들[유라시아 벨 비커 민족]의 조상은 중석기시대 서유럽 수렵채집인, 북서부 아나톨리아 신석기시대 농경민, 초기 청동기시대 대초원 인구가 혼합된 것으로 모델링됐으며, 이중 처음 두 집단은 초기 신석기시대 유럽인의 조상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칠리아를 제외한 이베리아 이외의 지역에서는 우리가 표본으로 추출한 비커 혼합체와 관련된 개체의 대부분이 대초원 집단 조상으로부터 상당 부분 파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베리아에서는 분석 대상 32명 중 8명만이 그러한 조상을 갖고 있었다.[13]
그들의 연구 결과는 벨 비커 혼합체와 관련된 개체의 기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뒷받침했으며, 이베리아 관련 벨 비커 그룹이 유라시아 혼합체와 섞여 있는 것을 식별할 수 없었다. 이는 특정 출처에서 비롯된 하나의 "비커 민족"이라는 생각을 불식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베리아의 개인들은 동유럽 및 중부 유럽의 사람들과 조상을 거의 공유하지 않았다.
벨 비커 이전과 이후의 영국인의 데이터를 조사했을 때, 훨씬 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유라시아 벨 비커 그룹은 초기 영국인들을 거의 완전히 대체했다. 수백 년 만에 인구의 90% 이상이 벨 비커인이 된 것이었다. 유전자 분석은 또한 벨 비커 민족의 "영국 침략"이 네덜란드에서 온 것으로 강력하게 시사했다.[14] 유라시아 벨 비커에게는 일반적이지만, 초기 영국인에게는 없는 특정 대립유전자(특정 염색체의 동일한 지점에 있는 유전자 변이체)를 통해 연구자들은 벨 비커 이후 영국인의 밝은 피부 색소 침착과 눈 색깔의 증가를 추적할 수 있었다.[15]
도자기는 도자기고, 사람은 사람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법과 데이터가 인류의 이주와 문화적 상호작용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그리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고고학자, 유전학자,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짧은 인용문에서 이러한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
"고고학자의 절반은 고대 DNA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절반은 고대 DNA가 악마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독일 뮌헨의 루드비히 막시밀리안(Ludwig-Maximilians) 대학에서 유전학자 및 분자생물학자와 긴밀히 협력하며 몇 년 전 두 분야 간의 가교 역할을 위해 설립된 연구소의 연구원인 필립 스톡하머(Philipp Stockhammer)는 말한다. 그는 이 기술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고고학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고고학자들은 분자적 접근 방식이 뉘앙스의 영역(the field of nuance)을 빼앗아 갔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생물학과 문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부당하고 심지어 위험한 가정을 하는 광범위한 DNA 연구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고고학자 마크 밴더 린든(Marc Vander Linden)은 "그들은 마치 모든 것을 정리한 듯한 인상을 준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약간 짜증나게 한다."[16]
저자인 유웬 캘러웨이(Ewen Callaway)는 그의 Nature 지 글에서 당면한 몇 가지 문제를 언급하고 있었다. 고고학자들에게 이주(migrations)는 항상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정복을 통한 문화와 도자기 및 기타 유물의 교체가 고고학 기록에 나타나는 것일까? 아니면 문화가 섞이면서 더 나은 도구/도구를 제공하거나 모방을 촉발하는 문화 간의 교역이 더 나은 설명일까?
연구자들은 유전학을 통해 이러한 질문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위치한 하버드 의과대학의 인구 유전학자인 데이비드 라이히(David Reich) 박사는 "유전학이 특히 잘하는 것은 인구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17]
라이히 박사는 일부 유전자 연구에도 참여했으며, 2018년 Nature 지의 기고 저자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현대 독일인과 북유럽인의 유전체를 조사하여, 그들의 유전체에 얌나야(Yamnaya) 조상이 생존해 있다는 결론을 내린 2015년 Nature 지의 두 논문 중 하나에도 참여했다. 이러한 유사성은 유럽 동쪽 가장자리에서 중앙 유럽으로 대규모 이주가 있었음을 시사한다.[18]
이들 Nature 지 논문들을 모두 종합해보면, 아마도 무역을 통해 서로 다른 민족 집단(이베리아 및 동유럽) 간에 도자기 스타일을 공유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초기 영국인이 벨 비커 민족으로 90% 교체된 시기와 일치하는 영국 정복으로 인해, 도자기 스타일이 변화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다양한 조상을 가진 대규모 민족 집단들이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이주한 것도 지적했다. 이 그룹들은 먼 거리를 이동했지만, 폭발적으로 이동했다. 캘러웨이(Callaway)의 논문은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오늘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대초원에서 이주해온 목축인들의 유입은 구덩이 고분과 같은 얌나야 문화 유물 및 관습과 연관되어 약 4,500~5,000년 전에 중부 및 서유럽의 유전자 풀(the gene pool)의 대부분을 대체했다. 이는 신석기시대 도자기, 매장 양식 및 기타 문화적 표현이 사라지고, 북부 유럽과 중부 유럽 전역에 분포하는 코드웨어 문화(Corded Ware cultural, 매듭무늬토기 문화, 또는 전부문화, Battle Axe culture)의 유물들이 출현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러한 결과는 고고학계에 충격을 주었다"라고 크리스티안센(Kristiansen,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은 말한다.[19]
벨 비커, 또는 바벨탑 이후 성경적 이주?
그렇다면 성경적 관점에서 이 연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리고 세속적인 중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는 성경적 연대기에서 어디에 부합할까? 두 벨 비커 그룹과 유라시아 벨 비커 혼합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유전자 그룹의 이주 패턴이 바벨탑 사건 이후의 이야기 및 연대기와 일치할까?
우선 세속적 이야기는 이들 유라시아 인류가 중석기 시대 수렵채집인으로서 시작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 다음 신석기 시대 목동과 초보적인 농경민으로 발전하여, 이제 막 영구적인 마을에 정착하고 도자기를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금속 도구와 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에 농경민으로 발전했다. 이 시기는 지역에 따라 다르며, 북유럽은 일반적으로 남유럽, 중동, 터키의 시기보다 뒤쳐져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에서는 세속적 연대 틀로 BC 12,000년에서 BC 600년까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인간은 농부(창세기 2:15, 4:2)였으며[20], 목동이었고(창세기 4:2, 20), 금속 가공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켜(22절), 악기를 만들고(21절) 도시를 건설하여 살았다(17절). 사실 이러한 기술은 창조 후 7세대 만에 개발되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홍수 이후와 바벨 이후 세상에서 '석기 시대'는 없었고, 야금, 목축, 농경, 도시화가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이 모든 것들은 홍수 이후에 상당히 빠르게 시작되었지만, 빙하기와 홍수와 바벨로 인한 초기 기술적 좌절과 리셋으로 인해, 일부 그룹, 특히 북유럽의 일부 그룹은 한동안 기술적으로 퇴보했던 것을 볼 수 있다.[21]
유럽의 역사는 대홍수 이후 그리고 바벨탑 사건 이후 한 그룹의 사람들의 역사이다. 그리고 적절한 시간 틀을 고려하면, 위의 서술은 유전학[22] 및 고고학[23] 데이터들과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 다음 섹션에서는 이베리아(Iberia)에 정착한 민족 그룹으로 시작하여, 러시아 및/또는 우크라이나 대초원을 떠나, 중앙 및 북부 유럽을 침략하기 전에, 얌나(또는 얌나야) 민족을 구성한 사람들을 살펴보겠다.
바디 호지(Bodie Hodge)는 그의 책 '바벨탑(Tower of Babel)'에서 여러 족보들, 지도들, 역사를 수집하여, 창세기 10장(민족들의 표<the Table of Nations>라 불려짐)과 창세기 11장을 비교했다. 그는 성경에 언급된 지파, 민족, 국가, 고대 및 현대 국가의 지명과 성경의 이름을 동일시하려고 시도했다. 인류가 우라르투(Urartu, 아라랏 산맥) 지역(현재의 튀르키예, 아르메니아, 조지아, 이라크, 이란, 아제르바이잔 일부 포함)에 거주하게 된 창세기 9장의 홍수 이후 성경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는 인류가 바벨(일반적으로 이라크 남부와 관련됨)에 모여 하나님의 명령대로 땅을 채우기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후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민족들을 흩으셨다(창세기 11:7~9).
성경과 역사 기록에 따르면, 유럽은 주로 노아의 장남 야벳의 후손들이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창세기 10:21). 그러나 일부 함족 조상(Hamitic ancestry)도 있었는데, 그들의 후손들 대부분은 튀르키예 일부 지역에 정착한, 함의 손자인 헷(Heth, 15절)의 후손들인 헷 족속(Hittites, 헷 또는 히타이트 족속)들이었다. 그리고 2018년 Nature 지 논문에서 논의된 데이터와 성경 및 고대 역사 기록 사이에는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다.
창세기 : 문화들을 이해하는 열쇠
바디 호지는 이베리아인에 대한 기록을 야벳의 아들들, 주로 두발(Tubal, 그림 8)[24] 뿐만 아니라, 고멜과 고멜의 아들 리밧(Ripath, 그림 2)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25] 이 그룹은 상당히 가까운 시간 간격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다른 지역에 정착한 후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다. 원래 형제들에 의해 설립되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인구 집단은 비슷한 유전적 프로필을 가졌을 것이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베리아 반도는 당시 사람들이 이주한 가장 먼 서쪽 지역이었으며, 고멜에서 유래된 창시자(founders)들은 이전에 프랑스, 갈라티아(튀르키예), 루마니아에 정착해 있었기 때문에, 이베리아인들은 유럽 역사에서 훨씬 후대까지 전쟁과 침략의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완충지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주 지도
이 지도들은 창세기 10장의 민족들의 표(the Table of Nations)에 따라 노아의 아들 야벳, 함, 셈의 후손들 중 일부의 분포를 보여준다*.
야벳의 후손들
그림 1. 고멜(Gomer)의 아들 아스그나스(Ashkenaz)의 이주.
그림 2. 고멜과 그의 아들 리밧(Riphath)의 이주.
그림 3. 야완(Javan)의 후손들의 이주.
그림 4. 야벳의 아들 마대(Madai)와 셈의 아들 엘람(Elam)의 후손들의 이주.
그림 5. 마곡(Magog)의 후손들의 이주.
그림 6. 메섹(Meshech)의 후손들의 이주.
그림 7. 고멜의 아들 도갈마(Togarmah)의 이주.
그림 8. 두발(Tubal)의 후손들의 이주.
셈의 후손들
그림 9. 아람(Aram)의 후손들의 이주.
함의 후손들
그림 10. 가나안(Canaan)의 이주.
그림 11. 함의 아들 구스(Cush)의 이주.
<* 이미지 제공: 바디 호지(Bodie Hodge). 노아 아들들의 나이와 거주 지역에 따라 지도가 표시되었다.>
이제 유라시아 대초원(Eurasian Steppe)으로 눈을 돌리면 여러 민족들이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멜의 아들 도갈마(Togarmah)와 그의 후손들은 튀르키예,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의 대부분에 정착했다(그림 7).[26] 야벳의 아들 마곡(Magog)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헝가리의 대부분에 정착했고(그림 5),[27] 야벳의 다른 아들 메섹(Meshech)도 러시아, 핀란드, 조지아의 일부 지역에 정착했다(그림 6).[28] 그러나 유라시아에는 특히 중국, 몽골, 시베리아(동부 스텝 지역 대부분) 일부에 정착한 가나안의 두 아들, 즉 신 족속(Sinites)과 하맛 족속(Hamathites)(창 10:17-18) 등의 함족 조상(Hamitic ancestry)들도 많이 있었다. 또한 함의 아들 구스(Cush))로부터 유전적 유입이 있었는데, 그 후손 중 일부는 인도 북부에 정착했다(그림 11).[29] 마지막으로 페르시아(Persia, 이란 Iran, 그림 4)에 정착한 엘람(Elam)과 박트리아(Bactria-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및 타지키스탄, 그림 9)에 정착한 아람(Aram)을 통해 이 지역에도 셈족의 조상들이 있었다.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위의 민족들과 유라시아 대초원의 벨 비커 그룹(the Bell Beaker group)에 대한 유전자 연구를 비교해 보면, 몇 가지 놀라운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세 개의 다른 유전자 그룹(셈족, 함족, 야벳족)은 성경과 세속 역사에서 이들이 이주한 것으로 기록된 지역(서부 및 동부 대초원, 레반트, 터키, 이란,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같은 "교차로" 국가)에서 유래했다. 이베리아 벨 비커 그룹의 고립과 구별은 성경적 세계관에서도 이해가 되는데, 특히 여러 세대에 걸쳐 다른 민족 집단과 결혼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텝 벨 비커(Steppe Bell Beaker) 민족이 서쪽으로 이동해오면서 결국 뒤늦게 유전적 상호작용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스텝 벨 비커 그룹의 영국 침공이다. 유전학은 매우 짧은 기간에 거의 완전한 인구 교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성경적 증거와 다시 한 번 매우 잘 일치한다. 영국은 이베리아처럼 야벳의 아들과 손자 두발, 고멜, 리밧에 의해 처음에 정착한 것으로 보이지만, 나중에 스페인 남부 일부에 정착한 야벳의 아들 야완(Javan)이 지브롤터(Gibraltar) 해협을 거쳐 영국 남부 일부에 정착한 해안 이동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림 3).[31] 이베리아처럼 영국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한동안 침략의 방해를 받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이러한 해안 이주가 영국인의 DNA에 추가되었다는 사실은 Nature 지 논문에서도 언급되었다 :
프랑스 남부와 영국의 신석기인은 중부 유럽 초기 신석기인보다 이베리아 초기 신석기인과 훨씬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아일랜드의 신석기 유전체에 대한 이전 분석 결과와 일치한다. 혼합 그래프 프레임워크(an admixture graph framework)에서 신석기시대 인구와 중석기시대 서유럽 수렵 채집인을 모델링은 이러한 결과를 재현해주고 있으며, 수렵채집인의 혼합 비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결과는 영국 신석기시대 인구의 조상 중 일부가 대서양 연안을 따라 퍼져 나간 이주민에게서 유래했음을 시사한다.[32]
벨 비커 이후 영국인과 네덜란드 인구(위에서 언급한)의 유전적 친화성은 바벨탑 사건 이후 사람들의 이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야벳의 손자 아스그나스(Ashkenaz)는 처음에는 튀르키예(Turkey)로 이주했다가 북쪽으로 이동하여, 흑해 연안 지역(루마니아, 몰도바, 우크라이나)에 정착하여, 일부 함족 및 셈족을 정복하거나 혼합되었다(그림 1).[33] 이후 서쪽으로 눈을 돌려 중부 및 서유럽 대부분을 정복하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중세 독일에서 유대인의 이름은 아스그나스(Ashkenaz 아슈케나즈)이며, 독일 또는 중부 유럽 혈통의 유대인은 여전히 아슈케나지(Ashkenazi 아슈케나즈 땅에 사는 유대인)로 불린다. 그리고 아스그나스의 손자 인가본(Ingaevon) 또는 증손자 이스타에본(Istaevon)이 독일 북부에 정착한 후, 덴마크와 네덜란드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그 연관성을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후 아스그나스(Ashkenaz, Suevus)로부터 8대까지는 스웨덴을 식민지로 삼고 영국을 정복했다. [34] 역사학자 제임스 앤더슨(James Anderson)에 따르면, 이 시기는 BC 1900~1652년 사이로, 북유럽의 빙하기 말기와 빙하기 이후 초기에 딱 들어맞는다.[35]
세속적 고고학과 역사의 재구성에서 지배적인 진화론적 가정을 버리고, 실제 성경과 세속 족보를 연구해보면, 이주, 식민지화, 무역/문화적 상호작용, 유전자 데이터의 시기가 상당히 잘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 10장과 11장을 읽을 때 우리는 (이 특별한 경우) 바벨-이후 유라시아인(post-Babel Eurasians)으로 추적할 수 있는 진정한 역사와 민족들을 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창세기 10장에 기록된 민족들의 표(또는 열국의 표)는 실제로 바벨 이후 민족 집단(과 그들의 이주)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며, 벨 비커의 연구에서 지적됐듯이 이베리아인의 경우처럼 "이동은 사람이 아니라, 토기(pots)가 했지만“[36], 인구 교체가 90% 이상인 영국에서는 때때로 이동을 한 것은 사람이었다. 바벨(그리고 창세기 10장)은 이러한 차이를 설명해준다.
Footnotes
1. Ewen Callaway, “The Battle for Common Ground,” Nature, March 28, 2018, https://www.nature.com/magazine-assets/d41586-018-03773-6/d41586-018-03773-6.pdf; and Iñigo Olalde et al., “The Beaker Phenomenon and the Genomic Transformation of Northwest Europe,” Nature 555 (March 8, 2018): 190–196, doi:10.1038/nature25738.
2. “History of West Kennet Long Barrow,” English Heritage, http://www.english-heritage.org.uk/visit/places/west-kennet-long-barrow/history/.
3. The conventional dating is based on anthropological evolutionary assumptions and radiocarbon dating methods which also have built-in assumptions. All of the supposed stone age, bronze age and iron age time periods are post-Flood, and most are post-Babel. In Eurasia as this article is dealing with, we are looking at dates of c. 2200–1700 BC.
4. Ewen Callaway, “The Battle for Common Ground,” Nature 555 (2018): 573.
5. See footnote 3.
6. See footnote 3.
7. João Luís Cardoso, “Absolute Chronology of the Beaker Phenomenon North of the Tagus Estuary: Demographic and Social Implications,” Trabajos de Prehistoria 71, No. 1, (2014): 73, doi:10.3989/tp.2014.12124.
8. “Bell Beaker Culture,” Indo-European.info, https://indo-european.info/wiki/index.php/Bell_Beaker_culture.
9. Olalde et al., “The Beaker Phenomenon and the Genomic Transformation of Northwest Europe,” 190–192.
10. See footnote 3.
11. See footnote 3.
12. Olalde et.al, “The Beaker Phenomenon and the Genomic Transformation of Northwest Europe,” 190.
13. Ibid., 191.
14. Ibid., 193.
15. Ibid., 194.
16. Ewen Callaway, “The Battle for Common Ground,” 574.
17. Ibid.
18. Wolfgang Haak et al., “Massive Migration from the Steppe Was a Source for Indo-European Languages in Europe,” Nature 522 (June 11, 2015): 207, doi:10.1038/nature14317 (Abstract).
19. Ewen Callaway, “The Battle for Common Ground,” 575.
20. All Scripture references are from NKJV unless otherwise noted.
21. David Menton and John UpChurch, “Who Were Cavemen?,” Answers 7, no. 2 (2012), https://answersingenesis.org/human-evolution/cavemen/who-were-cavemen/.
22. Georgia Purdom, “How Are Cavemen Different?,” Answers 7, no. 2 (2012), https://answersingenesis.org/human-evolution/cavemen/how-are-cavemen-different/.
23. Andrew Snelling and Mike Matthews, “When Did Cavemen Live?,” Answers 7, no. 2 (2012), https://answersingenesis.org/human-evolution/cavemen/when-did-cavemen-live/.
24. Bodie Hodge, Tower of Babel (Green Forest Arkansas: Master Books, 2014), 169–171.
25. Ibid., 149–151.
26. Ibid., 157–159.
27. Ibid., 160–163.
28. Ibid., 173–174.
29. Ibid., 129–131.
30. Ibid., 133–134.
31. Ibid., 165–168.
32. Olalde, et al., “The Beaker Phenomenon and the Genomic Transformation of Northwest Europe,” 192.
33. Hodge, Tower of Babel, 151–155.
34. Ibid.
35. James Anderson, Royal Genealogies (Westminster Hall, England, 1732), 441–442, https://archive.org/details/AndersonJRoyalGenealogiesOrTheGenealogicalTablesOfEmperorsKingsAndPrincesTo1732 (PDF).
36. Ewen Callaway, “The Battle for Common Ground,” 576.
*참조 : 노아의 16명의 손자 : 고대의 지명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남아있다.
https://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381&bmode=view
고대 요르단의 잊혀진 왕국들 : 고고학으로 확인되고 있는 암몬, 모압, 에돔 족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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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사의 연대기적 틀 - 1부 : 문제점, 자료, 및 방법론 ; 고대 근동 및 이집트 역사는 크게 부풀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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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적 연대가 성경적 연대와 충돌할 때 : 방사성탄소 연대와 나무 나이테 연대의 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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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는 신격화된 함이다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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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는 신격화된 함이다 : 2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page=1#16067923
바벨탑 사건과 민족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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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 전설인가, 역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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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류에 대한 DNA 분석은 바벨탑의 인류 분산을 확증하고 있었다.
https://creation.kr/Genesis/?idx=1289139&bmode=view
가나안 인의 DNA 분석은 성경의 정확성을 입증했다.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289005&bmode=view
Y-염색체 연구는 창세기 시간 틀을 확증하고 있다.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2881356&bmode=view
인류는 3 조상 가족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유전자 연구는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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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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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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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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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홍수 후 인류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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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석기시대와 타제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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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굴인과 동굴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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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명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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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세기의 역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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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iG, Answers, May 5, 2018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archaeology/tug-war-between-genetics-and-archaeology/
번역 : 미디어위원회
유전학과 고고학 사이의 줄다리기
: 창세기 10장, 11장의 기록과 바벨 이후 인류의 분산
(The Tug of War Between Genetics and Archaeology)
by Troy Lacey
요약
바벨탑 이후 빙하기와 빙하기 이후 초기 기간 동안에 유럽에 대규모 이주가 이루어졌다. 한때 단일 문화로 여겨졌던 벨 비커 문화(Bell Beaker culture)는 이제는 유럽을 지배했던 독특한 도자기 스타일을 가졌던 두 개의 별개의 문화로 밝혀졌다. 이것은 정복, 무역, 또는 문화적 동화를 통해 이루어졌을까? 고고학(archaeology)과 유전학(genetics)은 이 주제에 대해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보였다. 이 글에서는 데이터들을 검토하고, 창세기 10장의 민족들의 표(Table of Nations)가 이 주제에 대한 독특한 통찰력을 어떻게 제공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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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역사를 이해하려는 우리의 탐구에서 고고학과 유전학 분야는 종종 상충되는 경우가 많으며, 간단하게 일치하지 않는다. 하지만 드물게 서로를 보완하는 경우도 있다.
최근 Nature 지에 실린 논문과 기사는 고고학적 발견과 유전자 연구 사이의 때때로 불안한 휴전을 강조하고 있었다.[1] 이 두 분야의 충돌은 때때로 다른 결론으로 이어지거나, 유적지의 역사에 대해 이전에 갖고 있던 생각을 뒤집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비커 문화(Beaker culture)에 관한 위의 논문과 기사에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간단히 보기
∙유럽은 빙하기와 빙하기 이후 초기에 이주의 물결에 휩싸였다.
∙이주와 침입을 했던 벨 비커(Bell Beaker) 집단은 두 개의 다른 집단으로 구성되었다.
∙일부 지역은 유라시아 벨 비커 민족의 정복을 피했고, 다른 지역은 거의 완전히 전멸하고 대체되었다.
∙창세기 10장과 11장은 유전학적 및 고고학적 데이터와 잘 연관되며 타당하다.
고분, 뼈, 벨 비커
오래된 전통적 고고학 연구에서 도자기의 종류나 양식(pottery types or styles)은 종종 한 문명의 연대를 측정하거나(방사성탄소 연대측정과 함께) 문명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였다. 이후 고고학적 사고의 변화로 인해, 이러한 포괄적인 주장이 축소되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도자기 유형을 특정 문화와 연관시키는 경우가 많다. 도자기 유형의 변화는 특정 유적지의 문화가 점령되어 변화했거나, 토착 문화가 새로운 스타일을 채택했거나 발명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잉글랜드 남서부, 스톤헨지(Stonehenge)에서 약 30km 떨어진 아베베리(Avebury) 마을 근처에는 최대 46명의 유해들이 묻혀있던 긴 무덤(long barrow, 언덕이나 언덕 아래에 파묻어 놓은 무덤)이 있다.[2] 일반적으로 BC 3600년 전으로 추정되는[3] 이 지역은 BC 2450년까지 지속적으로 점령된 것으로 여겨졌었다. 거의 천 년 동안 사람들이 무덤으로 돌아와 도자기와 구슬 등을 기념품으로 가져갔다는 증거가 있다.[4]
이 시기(BC 2750~2500년 경으로 평가되는)[5]에는 동유럽에서 새로운 도자기 양식이 등장했고, 이 새로운 종 모양의 도자기 양식(이하 벨 비커<Bell Beaker>라고 표기)은 중부, 서부, 북부 유럽을 휩쓸고 영국까지 점령했다. 고고학자들 사이에서는 이것이 이주 영향인지, 아니면 문화적 접촉/교역 영향인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앞에서 언급한 웨스트 케넷 긴 무덤(West Kennet Long Barrow)과 유럽 전역의 매장된 유해 시료에서 채취한 대규모 유전자 프로젝트가 그 해답을 밝혀주었다.
.독일 베를린의 포르-운드 프뤼게시히테 박물관(Museum für Vor- und Frühgeschichte, 선사 및 초기 역사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벨 비커(Bell Beaker) 문화권의 도자기들. <Image by Alfons Åberg, via Wikimedia Commons>.
죽은 사람은 이야기를 들려준다(하지만 그들의 연대는 아니다)
벨 비커 문화(Bell Beaker culture)는 포르투갈 리스본(Lisbon) 인근 유적지에서 가장 오래된 연대(BC 2700년 경)의 벨 비커 도자기가 나왔기 때문에[6], 이베리아 반도(스페인과 포르투갈)에서 기원했다는 가설이 있었다.[7] 그러나 다른 고고학자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았고, 벨 비커 문화의 동유럽 기원을 얌나 또는 얌나야 문화(Yamna or Yamnaya culture)로 추정했다.[8] 최근 Nature 지의 논문은 둘 다 부분적으로는 사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9]
Nature 지 논문의 저자들은 136곳의 유적지에서 발굴된 BC 4700~800년 사이로 추정되는 고대 유럽인 400명의 새로운 DNA 염기서열 데이터를 분석했다.[10] 이 중 266명은 벨 비커 문화(BC 2750~1800년경)와 관련된 개인들이었고, 174명은 벨 비커 문화 전후로 추정되는 다른 문화권에서 발굴된 개인들이었다.[11] 후자 그룹 중 118명은 영국에 묻힌 개인이었고, 51명은 벨 비커 이전, 67명은 벨 비커 이후였다. 데이터를 정제하고, 다른 알려진 고대 유전체 세트 및 현대 개인과 결합한 후, 3,500명 이상의 표본 크기를 확보했다.[12]
이 유전자 데이터는 이베리아 벨 비커인 그룹과 동유럽 또는 유라시아 벨 비커인 그룹이 분리되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놀라운 결과를 보여주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유라시아 벨 비커와 관련된 개인들은 세 가지 주요 유전적 요소를 갖고 있었는데, 하나는 유럽 수렵채집인(European hunter-gatherers)의 특성이었고, 다른 하나는 레반트(Levant-이라크, 이스라엘,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와 아나톨리아(Anatolia-터키) 사람들에서 보여지는 특성을, 다른 하나는 이란 사람에서 극대화되고 대초원 개체군(현재의 러시아,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폴란드, 체코, 헝가리 일부 포함)에서는 적게 갖고 있는 특성을 나타내고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그들[유라시아 벨 비커 민족]의 조상은 중석기시대 서유럽 수렵채집인, 북서부 아나톨리아 신석기시대 농경민, 초기 청동기시대 대초원 인구가 혼합된 것으로 모델링됐으며, 이중 처음 두 집단은 초기 신석기시대 유럽인의 조상에 기여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칠리아를 제외한 이베리아 이외의 지역에서는 우리가 표본으로 추출한 비커 혼합체와 관련된 개체의 대부분이 대초원 집단 조상으로부터 상당 부분 파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베리아에서는 분석 대상 32명 중 8명만이 그러한 조상을 갖고 있었다.[13]
그들의 연구 결과는 벨 비커 혼합체와 관련된 개체의 기원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뒷받침했으며, 이베리아 관련 벨 비커 그룹이 유라시아 혼합체와 섞여 있는 것을 식별할 수 없었다. 이는 특정 출처에서 비롯된 하나의 "비커 민족"이라는 생각을 불식시키는 것으로 보인다. 이베리아의 개인들은 동유럽 및 중부 유럽의 사람들과 조상을 거의 공유하지 않았다.
벨 비커 이전과 이후의 영국인의 데이터를 조사했을 때, 훨씬 더 놀라운 결과가 나타났다. 유라시아 벨 비커 그룹은 초기 영국인들을 거의 완전히 대체했다. 수백 년 만에 인구의 90% 이상이 벨 비커인이 된 것이었다. 유전자 분석은 또한 벨 비커 민족의 "영국 침략"이 네덜란드에서 온 것으로 강력하게 시사했다.[14] 유라시아 벨 비커에게는 일반적이지만, 초기 영국인에게는 없는 특정 대립유전자(특정 염색체의 동일한 지점에 있는 유전자 변이체)를 통해 연구자들은 벨 비커 이후 영국인의 밝은 피부 색소 침착과 눈 색깔의 증가를 추적할 수 있었다.[15]
도자기는 도자기고, 사람은 사람이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데이터를 해석하는 방법과 데이터가 인류의 이주와 문화적 상호작용에 대한 정확한 그림을 그리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어려움이 있다. 고고학자, 유전학자, 다양한 분야의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은 짧은 인용문에서 이러한 갈등을 보여주고 있다 :
"고고학자의 절반은 고대 DNA가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머지 절반은 고대 DNA가 악마의 작품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독일 뮌헨의 루드비히 막시밀리안(Ludwig-Maximilians) 대학에서 유전학자 및 분자생물학자와 긴밀히 협력하며 몇 년 전 두 분야 간의 가교 역할을 위해 설립된 연구소의 연구원인 필립 스톡하머(Philipp Stockhammer)는 말한다. 그는 이 기술이 만병통치약은 아니지만, 고고학자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이를 무시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부 고고학자들은 분자적 접근 방식이 뉘앙스의 영역(the field of nuance)을 빼앗아 갔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생물학과 문화 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부당하고 심지어 위험한 가정을 하는 광범위한 DNA 연구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고고학자 마크 밴더 린든(Marc Vander Linden)은 "그들은 마치 모든 것을 정리한 듯한 인상을 준다"라고 말했다. "그것은 약간 짜증나게 한다."[16]
저자인 유웬 캘러웨이(Ewen Callaway)는 그의 Nature 지 글에서 당면한 몇 가지 문제를 언급하고 있었다. 고고학자들에게 이주(migrations)는 항상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정복을 통한 문화와 도자기 및 기타 유물의 교체가 고고학 기록에 나타나는 것일까? 아니면 문화가 섞이면서 더 나은 도구/도구를 제공하거나 모방을 촉발하는 문화 간의 교역이 더 나은 설명일까?
연구자들은 유전학을 통해 이러한 질문을 다른 각도에서 살펴볼 수 있다. 매사추세츠주 보스턴에 위치한 하버드 의과대학의 인구 유전학자인 데이비드 라이히(David Reich) 박사는 "유전학이 특히 잘하는 것은 인구의 변화를 감지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17]
라이히 박사는 일부 유전자 연구에도 참여했으며, 2018년 Nature 지의 기고 저자이기도 하다. 또한 그는 현대 독일인과 북유럽인의 유전체를 조사하여, 그들의 유전체에 얌나야(Yamnaya) 조상이 생존해 있다는 결론을 내린 2015년 Nature 지의 두 논문 중 하나에도 참여했다. 이러한 유사성은 유럽 동쪽 가장자리에서 중앙 유럽으로 대규모 이주가 있었음을 시사한다.[18]
이들 Nature 지 논문들을 모두 종합해보면, 아마도 무역을 통해 서로 다른 민족 집단(이베리아 및 동유럽) 간에 도자기 스타일을 공유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초기 영국인이 벨 비커 민족으로 90% 교체된 시기와 일치하는 영국 정복으로 인해, 도자기 스타일이 변화했음을 시사한다. 또한 다양한 조상을 가진 대규모 민족 집단들이 유라시아 대초원에서 이주한 것도 지적했다. 이 그룹들은 먼 거리를 이동했지만, 폭발적으로 이동했다. 캘러웨이(Callaway)의 논문은 다음과 같은 점을 강조하고 있었다.
오늘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대초원에서 이주해온 목축인들의 유입은 구덩이 고분과 같은 얌나야 문화 유물 및 관습과 연관되어 약 4,500~5,000년 전에 중부 및 서유럽의 유전자 풀(the gene pool)의 대부분을 대체했다. 이는 신석기시대 도자기, 매장 양식 및 기타 문화적 표현이 사라지고, 북부 유럽과 중부 유럽 전역에 분포하는 코드웨어 문화(Corded Ware cultural, 매듭무늬토기 문화, 또는 전부문화, Battle Axe culture)의 유물들이 출현한 시기와 일치한다. "이러한 결과는 고고학계에 충격을 주었다"라고 크리스티안센(Kristiansen,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은 말한다.[19]
벨 비커, 또는 바벨탑 이후 성경적 이주?
그렇다면 성경적 관점에서 이 연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리고 세속적인 중석기, 신석기, 청동기 시대는 성경적 연대기에서 어디에 부합할까? 두 벨 비커 그룹과 유라시아 벨 비커 혼합체를 구성하는 다양한 유전자 그룹의 이주 패턴이 바벨탑 사건 이후의 이야기 및 연대기와 일치할까?
우선 세속적 이야기는 이들 유라시아 인류가 중석기 시대 수렵채집인으로서 시작한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런 다음 신석기 시대 목동과 초보적인 농경민으로 발전하여, 이제 막 영구적인 마을에 정착하고 도자기를 만드는 법을 배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금속 도구와 무기를 개발하기 시작한 청동기 시대에 농경민으로 발전했다. 이 시기는 지역에 따라 다르며, 북유럽은 일반적으로 남유럽, 중동, 터키의 시기보다 뒤쳐져 있다. 일반적으로 유럽에서는 세속적 연대 틀로 BC 12,000년에서 BC 600년까지로 보고 있다.
그러나 성경에 따르면, 인류 역사가 시작될 때부터 인간은 농부(창세기 2:15, 4:2)였으며[20], 목동이었고(창세기 4:2, 20), 금속 가공 기술을 빠르게 발전시켜(22절), 악기를 만들고(21절) 도시를 건설하여 살았다(17절). 사실 이러한 기술은 창조 후 7세대 만에 개발되었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홍수 이후와 바벨 이후 세상에서 '석기 시대'는 없었고, 야금, 목축, 농경, 도시화가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이 모든 것들은 홍수 이후에 상당히 빠르게 시작되었지만, 빙하기와 홍수와 바벨로 인한 초기 기술적 좌절과 리셋으로 인해, 일부 그룹, 특히 북유럽의 일부 그룹은 한동안 기술적으로 퇴보했던 것을 볼 수 있다.[21]
유럽의 역사는 대홍수 이후 그리고 바벨탑 사건 이후 한 그룹의 사람들의 역사이다. 그리고 적절한 시간 틀을 고려하면, 위의 서술은 유전학[22] 및 고고학[23] 데이터들과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 다음 섹션에서는 이베리아(Iberia)에 정착한 민족 그룹으로 시작하여, 러시아 및/또는 우크라이나 대초원을 떠나, 중앙 및 북부 유럽을 침략하기 전에, 얌나(또는 얌나야) 민족을 구성한 사람들을 살펴보겠다.
바디 호지(Bodie Hodge)는 그의 책 '바벨탑(Tower of Babel)'에서 여러 족보들, 지도들, 역사를 수집하여, 창세기 10장(민족들의 표<the Table of Nations>라 불려짐)과 창세기 11장을 비교했다. 그는 성경에 언급된 지파, 민족, 국가, 고대 및 현대 국가의 지명과 성경의 이름을 동일시하려고 시도했다. 인류가 우라르투(Urartu, 아라랏 산맥) 지역(현재의 튀르키예, 아르메니아, 조지아, 이라크, 이란, 아제르바이잔 일부 포함)에 거주하게 된 창세기 9장의 홍수 이후 성경 이야기를 시작으로, 우리는 인류가 바벨(일반적으로 이라크 남부와 관련됨)에 모여 하나님의 명령대로 땅을 채우기를 거부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 후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시고, 민족들을 흩으셨다(창세기 11:7~9).
성경과 역사 기록에 따르면, 유럽은 주로 노아의 장남 야벳의 후손들이 정착한 것으로 보인다(창세기 10:21). 그러나 일부 함족 조상(Hamitic ancestry)도 있었는데, 그들의 후손들 대부분은 튀르키예 일부 지역에 정착한, 함의 손자인 헷(Heth, 15절)의 후손들인 헷 족속(Hittites, 헷 또는 히타이트 족속)들이었다. 그리고 2018년 Nature 지 논문에서 논의된 데이터와 성경 및 고대 역사 기록 사이에는 흥미로운 유사점이 있다.
창세기 : 문화들을 이해하는 열쇠
바디 호지는 이베리아인에 대한 기록을 야벳의 아들들, 주로 두발(Tubal, 그림 8)[24] 뿐만 아니라, 고멜과 고멜의 아들 리밧(Ripath, 그림 2)에서 유래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25] 이 그룹은 상당히 가까운 시간 간격으로 이베리아 반도의 다른 지역에 정착한 후 결혼했을 가능성이 높다. 원래 형제들에 의해 설립되었기 때문에, 서로 다른 인구 집단은 비슷한 유전적 프로필을 가졌을 것이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이베리아 반도는 당시 사람들이 이주한 가장 먼 서쪽 지역이었으며, 고멜에서 유래된 창시자(founders)들은 이전에 프랑스, 갈라티아(튀르키예), 루마니아에 정착해 있었기 때문에, 이베리아인들은 유럽 역사에서 훨씬 후대까지 전쟁과 침략의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있는 완충지대를 형성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주 지도
이 지도들은 창세기 10장의 민족들의 표(the Table of Nations)에 따라 노아의 아들 야벳, 함, 셈의 후손들 중 일부의 분포를 보여준다*.
야벳의 후손들
그림 1. 고멜(Gomer)의 아들 아스그나스(Ashkenaz)의 이주.
그림 2. 고멜과 그의 아들 리밧(Riphath)의 이주.
그림 3. 야완(Javan)의 후손들의 이주.
그림 4. 야벳의 아들 마대(Madai)와 셈의 아들 엘람(Elam)의 후손들의 이주.
그림 5. 마곡(Magog)의 후손들의 이주.
그림 6. 메섹(Meshech)의 후손들의 이주.
그림 7. 고멜의 아들 도갈마(Togarmah)의 이주.
그림 8. 두발(Tubal)의 후손들의 이주.
셈의 후손들
그림 9. 아람(Aram)의 후손들의 이주.
함의 후손들
그림 10. 가나안(Canaan)의 이주.
그림 11. 함의 아들 구스(Cush)의 이주.
<* 이미지 제공: 바디 호지(Bodie Hodge). 노아 아들들의 나이와 거주 지역에 따라 지도가 표시되었다.>
이제 유라시아 대초원(Eurasian Steppe)으로 눈을 돌리면 여러 민족들이 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고멜의 아들 도갈마(Togarmah)와 그의 후손들은 튀르키예,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 카자흐스탄의 대부분에 정착했다(그림 7).[26] 야벳의 아들 마곡(Magog)은 러시아, 우크라이나, 헝가리의 대부분에 정착했고(그림 5),[27] 야벳의 다른 아들 메섹(Meshech)도 러시아, 핀란드, 조지아의 일부 지역에 정착했다(그림 6).[28] 그러나 유라시아에는 특히 중국, 몽골, 시베리아(동부 스텝 지역 대부분) 일부에 정착한 가나안의 두 아들, 즉 신 족속(Sinites)과 하맛 족속(Hamathites)(창 10:17-18) 등의 함족 조상(Hamitic ancestry)들도 많이 있었다. 또한 함의 아들 구스(Cush))로부터 유전적 유입이 있었는데, 그 후손 중 일부는 인도 북부에 정착했다(그림 11).[29] 마지막으로 페르시아(Persia, 이란 Iran, 그림 4)에 정착한 엘람(Elam)과 박트리아(Bactria-아프가니스탄, 우즈베키스탄 및 타지키스탄, 그림 9)에 정착한 아람(Aram)을 통해 이 지역에도 셈족의 조상들이 있었다.
창세기 10장에 나오는 위의 민족들과 유라시아 대초원의 벨 비커 그룹(the Bell Beaker group)에 대한 유전자 연구를 비교해 보면, 몇 가지 놀라운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세 개의 다른 유전자 그룹(셈족, 함족, 야벳족)은 성경과 세속 역사에서 이들이 이주한 것으로 기록된 지역(서부 및 동부 대초원, 레반트, 터키, 이란, 인도와 아프가니스탄 같은 "교차로" 국가)에서 유래했다. 이베리아 벨 비커 그룹의 고립과 구별은 성경적 세계관에서도 이해가 되는데, 특히 여러 세대에 걸쳐 다른 민족 집단과 결혼하지 않았다. 그러나 스텝 벨 비커(Steppe Bell Beaker) 민족이 서쪽으로 이동해오면서 결국 뒤늦게 유전적 상호작용이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스텝 벨 비커 그룹의 영국 침공이다. 유전학은 매우 짧은 기간에 거의 완전한 인구 교체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것은 성경적 증거와 다시 한 번 매우 잘 일치한다. 영국은 이베리아처럼 야벳의 아들과 손자 두발, 고멜, 리밧에 의해 처음에 정착한 것으로 보이지만, 나중에 스페인 남부 일부에 정착한 야벳의 아들 야완(Javan)이 지브롤터(Gibraltar) 해협을 거쳐 영국 남부 일부에 정착한 해안 이동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그림 3).[31] 이베리아처럼 영국은 지리적 위치 때문에 한동안 침략의 방해를 받지 않은 상태로 남아있었다. 이러한 해안 이주가 영국인의 DNA에 추가되었다는 사실은 Nature 지 논문에서도 언급되었다 :
프랑스 남부와 영국의 신석기인은 중부 유럽 초기 신석기인보다 이베리아 초기 신석기인과 훨씬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아일랜드의 신석기 유전체에 대한 이전 분석 결과와 일치한다. 혼합 그래프 프레임워크(an admixture graph framework)에서 신석기시대 인구와 중석기시대 서유럽 수렵 채집인을 모델링은 이러한 결과를 재현해주고 있으며, 수렵채집인의 혼합 비율이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리의 결과는 영국 신석기시대 인구의 조상 중 일부가 대서양 연안을 따라 퍼져 나간 이주민에게서 유래했음을 시사한다.[32]
벨 비커 이후 영국인과 네덜란드 인구(위에서 언급한)의 유전적 친화성은 바벨탑 사건 이후 사람들의 이동을 보면 알 수 있다. 야벳의 손자 아스그나스(Ashkenaz)는 처음에는 튀르키예(Turkey)로 이주했다가 북쪽으로 이동하여, 흑해 연안 지역(루마니아, 몰도바, 우크라이나)에 정착하여, 일부 함족 및 셈족을 정복하거나 혼합되었다(그림 1).[33] 이후 서쪽으로 눈을 돌려 중부 및 서유럽 대부분을 정복하고 정착하기 시작했다.
흥미롭게도 중세 독일에서 유대인의 이름은 아스그나스(Ashkenaz 아슈케나즈)이며, 독일 또는 중부 유럽 혈통의 유대인은 여전히 아슈케나지(Ashkenazi 아슈케나즈 땅에 사는 유대인)로 불린다. 그리고 아스그나스의 손자 인가본(Ingaevon) 또는 증손자 이스타에본(Istaevon)이 독일 북부에 정착한 후, 덴마크와 네덜란드로 퍼져나간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그 연관성을 더욱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이후 아스그나스(Ashkenaz, Suevus)로부터 8대까지는 스웨덴을 식민지로 삼고 영국을 정복했다. [34] 역사학자 제임스 앤더슨(James Anderson)에 따르면, 이 시기는 BC 1900~1652년 사이로, 북유럽의 빙하기 말기와 빙하기 이후 초기에 딱 들어맞는다.[35]
세속적 고고학과 역사의 재구성에서 지배적인 진화론적 가정을 버리고, 실제 성경과 세속 족보를 연구해보면, 이주, 식민지화, 무역/문화적 상호작용, 유전자 데이터의 시기가 상당히 잘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 10장과 11장을 읽을 때 우리는 (이 특별한 경우) 바벨-이후 유라시아인(post-Babel Eurasians)으로 추적할 수 있는 진정한 역사와 민족들을 보고 있다고 확신할 수 있다. 창세기 10장에 기록된 민족들의 표(또는 열국의 표)는 실제로 바벨 이후 민족 집단(과 그들의 이주)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며, 벨 비커의 연구에서 지적됐듯이 이베리아인의 경우처럼 "이동은 사람이 아니라, 토기(pots)가 했지만“[36], 인구 교체가 90% 이상인 영국에서는 때때로 이동을 한 것은 사람이었다. 바벨(그리고 창세기 10장)은 이러한 차이를 설명해준다.
Footnotes
1. Ewen Callaway, “The Battle for Common Ground,” Nature, March 28, 2018, https://www.nature.com/magazine-assets/d41586-018-03773-6/d41586-018-03773-6.pdf; and Iñigo Olalde et al., “The Beaker Phenomenon and the Genomic Transformation of Northwest Europe,” Nature 555 (March 8, 2018): 190–196, doi:10.1038/nature25738.
2. “History of West Kennet Long Barrow,” English Heritage, http://www.english-heritage.org.uk/visit/places/west-kennet-long-barrow/history/.
3. The conventional dating is based on anthropological evolutionary assumptions and radiocarbon dating methods which also have built-in assumptions. All of the supposed stone age, bronze age and iron age time periods are post-Flood, and most are post-Babel. In Eurasia as this article is dealing with, we are looking at dates of c. 2200–1700 BC.
4. Ewen Callaway, “The Battle for Common Ground,” Nature 555 (2018): 573.
5. See footnote 3.
6. See footnote 3.
7. João Luís Cardoso, “Absolute Chronology of the Beaker Phenomenon North of the Tagus Estuary: Demographic and Social Implications,” Trabajos de Prehistoria 71, No. 1, (2014): 73, doi:10.3989/tp.2014.12124.
8. “Bell Beaker Culture,” Indo-European.info, https://indo-european.info/wiki/index.php/Bell_Beaker_culture.
9. Olalde et al., “The Beaker Phenomenon and the Genomic Transformation of Northwest Europe,” 190–192.
10. See footnote 3.
11. See footnote 3.
12. Olalde et.al, “The Beaker Phenomenon and the Genomic Transformation of Northwest Europe,” 190.
13. Ibid., 191.
14. Ibid., 193.
15. Ibid., 194.
16. Ewen Callaway, “The Battle for Common Ground,” 574.
17. Ibid.
18. Wolfgang Haak et al., “Massive Migration from the Steppe Was a Source for Indo-European Languages in Europe,” Nature 522 (June 11, 2015): 207, doi:10.1038/nature14317 (Abstract).
19. Ewen Callaway, “The Battle for Common Ground,” 575.
20. All Scripture references are from NKJV unless otherwise noted.
21. David Menton and John UpChurch, “Who Were Cavemen?,” Answers 7, no. 2 (2012), https://answersingenesis.org/human-evolution/cavemen/who-were-cavemen/.
22. Georgia Purdom, “How Are Cavemen Different?,” Answers 7, no. 2 (2012), https://answersingenesis.org/human-evolution/cavemen/how-are-cavemen-different/.
23. Andrew Snelling and Mike Matthews, “When Did Cavemen Live?,” Answers 7, no. 2 (2012), https://answersingenesis.org/human-evolution/cavemen/when-did-cavemen-live/.
24. Bodie Hodge, Tower of Babel (Green Forest Arkansas: Master Books, 2014), 169–171.
25. Ibid., 149–151.
26. Ibid., 157–159.
27. Ibid., 160–163.
28. Ibid., 173–174.
29. Ibid., 129–131.
30. Ibid., 133–134.
31. Ibid., 165–168.
32. Olalde, et al., “The Beaker Phenomenon and the Genomic Transformation of Northwest Europe,” 192.
33. Hodge, Tower of Babel, 151–155.
34. Ibid.
35. James Anderson, Royal Genealogies (Westminster Hall, England, 1732), 441–442, https://archive.org/details/AndersonJRoyalGenealogiesOrTheGenealogicalTablesOfEmperorsKingsAndPrincesTo1732 (PDF).
36. Ewen Callaway, “The Battle for Common Ground,” 576.
*참조 : 노아의 16명의 손자 : 고대의 지명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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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 전설인가, 역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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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류에 대한 DNA 분석은 바벨탑의 인류 분산을 확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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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AiG, Answers, May 5, 2018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archaeology/tug-war-between-genetics-and-archaeology/
번역 : 미디어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