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과 임호텝은 동일 인물이었을까? 1
(Could Joseph and Imhotep have been the same person?)
by gospelclips
곡물저장고는 요셉임을 확증하는 홀마크(Hall mark)이다.
요셉이 4000년 전에 이집트에 살았었다면, 예상되는 증거는 이집트의 주요 도시들에서 지하에 건설된 곡물저장고(grain silos)들일 것이다.
곡물저장고는 이집트 제3왕조로 거슬러 올라가, 임호텝이 설계했던 조세르 복합단지(Djoser Complex)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사실 계단식 피라미드(Step Pyramid)는 원래 곡물을 저장하는데 사용되었던 통로 위쪽으로 만들어졌다. 이 단지는 곡물저장 및 유통센터인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의 바로 조세르(Djoser, Netjerikhet 네체리케트)가 죽었을 때, 그는 이 곡물저장고에 묻혔고, 일련의 마스타바(Mastabas)가 위쪽으로 세워져서 계단식 피라미드가 되었다. (*마스타바(Mastabas) :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됐던 왕과 귀족의 직사각형 형태의 분묘)

‘기근 석비(Famine Stele)’는 조세르와 네체리케트가 동일인이라는 것을 확인해줄 뿐만 아니라, 조세르가 세습 군주였으며, 그 땅을 제사장들에게 맡겼음을 확인해준다. 기근 석비는 임호텝이 18세에 조세르 앞에 나와서 그의 꿈을 해석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임호텝이 7년 간의 기근에서 어떻게 이집트를 구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과 역사적 기록은 요셉과 임호텝이 동일 인물이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만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 430년 동안 있었고, 출애굽이 제13왕조 때에 일어났다면, 이집트 표준 연대기와의 불일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무덤으로 개조된 원래의 곡물저장고 위에 지어졌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단지(Step Pyramid complex)에는 12개의 통로(shafts)가 있는데, 구덩이 바닥으로 연결된 터널들을 통해 접근할 수 있고, 중앙의 열린 계단 통로와 연결되어있는 곡물저장소(grain storage bins)인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계단식 피라미드의 중심에는 아래에 내려가는 비슷한 치수의 수직 통로가 있다. 그 통로는 분명히 피라미드보다 앞서 있었다. 수직통로에 대한 접근은 바닥 주변의 터널로 연결된 폐쇄된 계단 통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것은 원래 곡물저장고였던 것처럼 보인다. 환기가 문제가 되었을 것이고, 환기가 더 잘 되는 저장고가 가동되면서, 일반 저장고로 버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버려진 저장고는 기근 5년 째에 사망했던 바로의 매장실로 사용되었다. 그 속에 바로의 석관이 놓여진 후, 화려한 석회암으로 둘러쌓았고, 화강암 석판으로 봉인되었다. 마스타바(Mastaba)는 단단한 석회암 블록들을 사용하여 그 위에 지어졌다. 바로의 3명의 아내와 11명의 딸을 묻기 위해 연속적으로 마스타바가 추가되었다. 그 결과 계단식 피라미드가 탄생했다.
이집트에서 가장 출중했던 총리(Visier)가 다름 아닌 성경의 요셉이라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요셉(야곱의 아들)은 구약성경의 핵심 인물로서, 이집트 바로의 총리(vizier, sage/viceroy, 현자/총독)가 되었으며, 이 시기 동안 7년 간의 기근으로부터 고대 이집트를 구하는 책임을 맡았다. 요셉은 기근의 기간 동안 저장해 놓았던 곡식을 팔아 이집트의 모든 땅(제사장들의 땅 제외)을 얻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요셉은 바로를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겨우 30세의 나이였고, 이집트를 구하고 모든 땅을 샀을 때는 44세였다. 그는 110세까지 살았고, 이집트 왕실 묘역에 매장되는 것을 허가받았다. 성경은 요셉이 기근으로부터 그의 형제 가족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요셉의 일가가 이집트에 입국한 지 430년 후에 일어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2백만 명 이상으로 성장하도록 보호할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의 생애의 마지막 66년 동안의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요셉의 지위와 업적을 감안할 때, 성경 밖의 이집트 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에서도 그의 존재에 대한 증거들이 발견될 것이 예상된다.(See Evidence for the Israelite Sojourn in Egypt). 이집트 역사에서 요셉의 정체성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일부 학자들은 그를 이집트 제3왕조의 네체리케트(Netjerikhet, 조세르(Djoser)로도 불려짐) 때의 총리였던 임호텝과 동일시하고 있다.
임호텝은 아마도 이집트 역사상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총리로, 최초의 피라미드 즉, 조세르 피라미드 또는 계단식 피라미드(Step Pyramid)를 설계했던 사람이다. 이 피라미드는 아래로 내려가는 하나의 커다란 수직 통로가 있고, 그 단지(complex)에는 곡물을 저장하는 데 사용됐던 것으로 보이는 많은 유사한 구조들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요셉과 연관지을 수 있다. 또한 임호텝은 7년의 기근에서 이집트를 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see Famine Stele). 임호텝은 기둥들이 있는 최초의 건축물을 설계했고, 많은 문학 작품을 썼으며, 보존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죽은 지 수백 년 후에, 그의 전설은 너무나 커져서,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순례자들은 치유되기를 바라며, 그의 무덤에 미라로 만들어진 동물들을 가져왔다.

이집트의 가장 뛰어났던 총리가 다름 아닌 성경의 요셉이라는 사실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요셉이 이집트 전체를 구하고, 이집트의 모든 땅을 사들였다면, 매우 뛰어난 총리로 기록되어있을 것이 예상된다. 임호텝은 곡물저장고를 건설하여 7년간의 기근으로부터 이집트를 구했고, 그의 바로인 조세르(네체리케트)는 세습되는 왕국의 군주로 등극했다.
이집트 제3왕조의 수레 수수께끼가 쉽게 설명된다.
성경은 요셉이 애굽 온 땅을 순찰하기 전에 수레(chariot, 전차)를 수여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셉과 임호텝이 동일인이었다면, 이것은 이집트 제3왕조와 같은 초기부터 이집트에 수레가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제3왕조에서는 바로와 그의 총리(vizier)와 같은 고위관리만이 여행을 위한 수레를 제공받았다. 제3왕조의 수레는 말이 끌지 않았으며, 일단의 하인들에 의해서 운반되었다.

성경에 수레로 번역된 히브리어 '메르카바(merkabah)'는 '전차' 또는 '타는 자리(riding seat, 승석)'로 번역될 수 있다. 말이 끄는 전차와 사람이 운반하는 수레는 구분되지 않았다. 요셉의 시대인 제3왕조에는 바퀴가 달리고 말이 끄는 전차가 없었기 때문에, 이 단어는 '승석'으로 번역되는 것이 더 적절했을 것이다.

말이 끄는 바퀴가 달린 전차는 군사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제12왕조 후반 ~ 제13왕조까지 도입되지 않았다. 제12왕조와 제13왕조의 전차 대부분은 출애굽 당시 홍해에서 유실되었다. 물론 1978년 와이어트가 홍해 바닥에서 발견한 전차 바퀴가 제12왕조와 제13왕조 시대의 것이라는 것은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힉소스(제15 왕조) 이전에는 말이 끄는 전차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피라미드 시대는 요셉으로 시작되어 모세로 끝났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어떻게 거대한 단단한 석회암 블록을 잘라내고, 바퀴가 발명되기 전에 어떻게 그 돌들을 운반하고, 제자리로 들어 올릴 수 있었던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건설된 첫 번째 피라미드는 곡물 저장 및 유통 센터로 보이는, 이집트 사카라(Saqqara) 단지의 일부인, 조세르(네체리케트)의 계단식 피라미드였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자체가 원래 곡물저장고(grain silo)로 사용되었던 통로 위에, 바로의 무덤으로 개조되어 건축된 것이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단단한 석회암 블록으로 만들어진, 겹겹이 쌓아 올려진 일련의 마스타바(Mastaba)이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네체르케트의 3명의 아내와 11명의 딸을 묻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네체르케트의 석관은 계단식 피라미드 수직통로 아래에 있는 연단에 놓여졌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성경의 요셉인 것으로 보이는 임호텝에 의해 설계되었다. 요셉과 입호텝은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지만, 그들이 생존 시기에 대한 추정 연대 사이의 불일치로 인해서 동일 인물로 간주되지 않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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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식 피라미드는 이후 왕조에서 바로를 매장하는 표준이 되었다. 요셉이 이집트 제3왕조의 임호텝이었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한 명 이상의 바로를 섬겼을 것이며, 제4왕조까지 살았을 것이다.
기자(Giza)의 거대한 피라미드들은 사카라의 첫 번째 피라미드의 크기를 훨씬 능가하며, 거기에는 그 당시의 기술로 어떻게 거대한 돌들을 제자리에 올릴 수 있었는지 전문가들이 여전히 궁금해하고 있다.
제12왕조는 테베(Thebes)에 기반을 둔 제11왕조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제11왕조는 멤피스(Memphis)에 기반을 둔 제6왕조와 동시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집트 고왕국(Old Kingdom)을 바로 뒤이어 중왕국(Middle Kingdom)이 이어졌다. 제1중간기(First Intermediate Period) 같은 것은 없었다.
제12왕조의 피라미드는 짚(straw)을 보강재로 포함하는 진흙벽돌(mudbricks)들로 만들어졌다. 각 피라미드에는 크기가 약 60cm×30cm×15cm인 수백만 개의 진흙 벽돌들이 있다. 따라서 제12왕조의 피라미드는 중심부는 진흙벽돌로 만들어졌고, 외벽부는 석회암으로 만들어졌는데, 제12왕조에 이르러 채석된 돌들의 공급 부족에 기인한 것이다. 오랜 세월 후에 외벽 석회암들이 떨어져나갔고, 내부의 진흙벽돌이 노출되었다.
역설적으로, 최초로 건설된 피라미드인 제3왕조와 제4왕조의 피라미드(고왕국 피라미드)는 제12왕조(중왕국 피라미드)의 피라미드보다 세월의 시험을 더 잘 견뎌냈다. 이것은 고왕국 피라미드는 단단한 석회암 블록으로 완전히 만들어졌고, 중왕국 피라미드는 외벽부만 석회암으로 만들어졌고, 내부는 주로 진흙벽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제12왕조의 바로는 자신들의 피라미드를 위한 진흙벽돌을 만들기 위해서 대규모 노예들의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Exodus) 당시 약 200만 명에 이르렀다. 제12왕조의 7개 피라미드들은 200여년에 걸쳐 지어졌다. 플린더스 페트리(Flinders Petrie)는 제13왕조 시기에 카훈(Kahun) 마을에서 노예들이 갑작스럽게 대규모로 탈출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카훈 마을은 제12왕조 때에 피라미드 건축 노동자들이 살았던 셈족 노동자의 마을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이 제13왕조에 일어났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제12대 왕조 때 노예로 있었을 것이고, 피라미드 건설을 위한 진흙벽돌을 만드는 임무도 맡았을 것이다. 제13왕조의 출애굽 이후에 더 이상 피라미드는 건설되지 않았다.
첫 번째 피라미드가 이스라엘인 요셉(임호텝)에 의해 설계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제12왕조의 마지막 피라미드가 지어질 때까지 이집트에서 노예로 있었다면, 피라미드 시대(Pyramid age)는 이스라엘인의 이집트 체류와 일치할 것이다! 따라서 피라미드 시대는 BC 1900년부터 BC 1500년까지 400년에 걸쳐 있었다.
이스라엘인이 이집트에 체류했다는 증거(Evidence for the Israelite Sojourn in Egypt)를 참조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체류 기간(430년)과 이집트 왕조와의 관계.

.이집트 왕조와 이스라엘 역사와의 관계.
요셉은 수종 드는 의원에게 지시를 했다. 그는 방부처리 기술을 개발했고, 그의 명칭 중 하나는 프타의 아들(Son of Ptah)이었다.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창세기 50:2)
임호텝(요셉)은 많은 의학 저술을 남겼고,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여겨졌다. 그리스인들은 그를 치유의 신으로 여겼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Ptolemaic dynasty)의 순례자들은 그의 죽음 이후 1000년이 넘도록, 치유되기를 희망하면서 임호텝에게 제물(미라화 된 동물)을 가져오곤 했다. 임호텝의 무덤과 연결된 화랑(Ibis Galleries)의 항아리에서 수천 개의 미라화된 따오기(ibis)가 발견되었다. 무덤에는 북쪽을 향해 놓여있는 빈 석관(empty sarcophagus)이 놓여있었다. 이 석관은 북쪽을 향해 있었는데, 이것은 임호텝이 태양신 '라(Ra)'가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인 야훼를 숭배했음을 가리킨다. 출애굽 당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 그의 뼈를 가져갔기 때문에, 그의 석관은 비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오기 화랑(Ibis Galleries)에서 석관과 함께 발견된 조세르의 각인이 새겨져 있는 항아리들. 임호텝의 이름과 명칭이 새겨져있는 조세르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상. 무덤에서 발견된 빈 석관.
요셉은 이집트 역사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다. 네체리케트는 제18왕조 때까지 그의 총리를 따라 바로 조세르(Pharaoh Djoser), 요셉의 바로(Pharaoh of Joseph, or Zozer in Greek)로 알려졌다.
요셉은 7년의 기근에서 이집트를 구하고, 바로를 위해 이집트의 온 땅을 사들였다. 그는 이집트 역사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성경은 요셉이 그의 생애 마지막 66년 동안의 일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그가 110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애굽 왕실의 장례를 받았다고 말한다.
요셉은 이집트 제3왕조의 바로 네체리케트의 총리이자, 사카라에 있는 계단식 피라미드(곡물 저장 및 유통 센터)의 설계자였던 임호텝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7년의 기근에서 이집트를 구한 후에도, 제3왕조와 제4왕조의 바로들을 계속 섬겼고, 따라서 라(Ra) 땅의 가장 좋은 지역(고센)에 정착하여 그 수가 급증하고 있었던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
요셉(임호텝)은 네체리케트가 기근 5년차에 죽었을 때, 바로를 장례하는 책임자였다. 요셉(임호텝)은 자신이 만든 첫 번째 곡물저장고에 네체리케트를 묻기로 결정했다. (그 저장고는 환기 문제로 곡물저장고로 계속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곡물저장고는 네체르케트의 석관을 놓을 훌륭한 무덤으로 만들어졌다. 요셉(임호텝)은 저장고 바닥에 연단(platform)을 만들고, 저장고를 화려한 석회암으로 장식하고, 석관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미 많이 있던 연결 터널은 네체리케트의 장례 그릇과 보물들을 놓아두는 화랑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요셉(임호텝)은 화강암 석판으로 무덤을 봉인한 다음, 그 위를 단단한 석회암으로 마스타바를 만들었다. 이전의 마스타바는 이보다 훨씬 작았고, 바로가 묻혀 있는 곳에 작은 통로들이 있는, 진흙벽돌로 만들어진 구조물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요셉은 네체르케트의 3명의 아내와 11명의 딸들을 묻기 위해 단단한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마스타바를 네체르케트의 마스타바에 더 많이 추가했다. 마스타바는 처음에는 같은 높이에서 추가되었지만, 결국 서로 겹쳐 쌓으면서, 마침내 매끄러운 석회암으로 표면 처리된 계단식 피라미드 구조가 생겼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네체르케트는 그의 총리를 따라 바로 조세르(요셉의 파라오)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집트인과 그리스인들은 그(임호텝)를 신격화하려고 했다. 사원들은 임호텝의 이름으로 지어졌고, 요셉(임호텝)이 죽은 후 1,000년이 넘도록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순례자들은 치유되기를 바라면서, 그의 무덤에 미라화된 동물을 바치곤 했던 것이다.
*요셉과 임호텝은 동일 인물이었을까? 2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8104674&bmode=view
*참조 : 이집트의 임호텝과 요셉은 동일 인물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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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역사와 성경 기록 : 완벽한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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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를 찾아서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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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12&bmode=view
출처 : gospelclips , November 13, 2015.
주소 : https://josephandisraelinegypt.wordpress.com/
번역 : 장경태
요셉과 임호텝은 동일 인물이었을까? 1
(Could Joseph and Imhotep have been the same person?)
by gospelclips
곡물저장고는 요셉임을 확증하는 홀마크(Hall mark)이다.
요셉이 4000년 전에 이집트에 살았었다면, 예상되는 증거는 이집트의 주요 도시들에서 지하에 건설된 곡물저장고(grain silos)들일 것이다.
곡물저장고는 이집트 제3왕조로 거슬러 올라가, 임호텝이 설계했던 조세르 복합단지(Djoser Complex)에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었다. 사실 계단식 피라미드(Step Pyramid)는 원래 곡물을 저장하는데 사용되었던 통로 위쪽으로 만들어졌다. 이 단지는 곡물저장 및 유통센터인 것으로 보인다. 이집트의 바로 조세르(Djoser, Netjerikhet 네체리케트)가 죽었을 때, 그는 이 곡물저장고에 묻혔고, 일련의 마스타바(Mastabas)가 위쪽으로 세워져서 계단식 피라미드가 되었다. (*마스타바(Mastabas) : 고대 이집트에서 사용됐던 왕과 귀족의 직사각형 형태의 분묘)
‘기근 석비(Famine Stele)’는 조세르와 네체리케트가 동일인이라는 것을 확인해줄 뿐만 아니라, 조세르가 세습 군주였으며, 그 땅을 제사장들에게 맡겼음을 확인해준다. 기근 석비는 임호텝이 18세에 조세르 앞에 나와서 그의 꿈을 해석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임호텝이 7년 간의 기근에서 어떻게 이집트를 구했는지를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고고학적 발견과 역사적 기록은 요셉과 임호텝이 동일 인물이었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만약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에 430년 동안 있었고, 출애굽이 제13왕조 때에 일어났다면, 이집트 표준 연대기와의 불일치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무덤으로 개조된 원래의 곡물저장고 위에 지어졌다.
조세르의 계단식 피라미드 단지(Step Pyramid complex)에는 12개의 통로(shafts)가 있는데, 구덩이 바닥으로 연결된 터널들을 통해 접근할 수 있고, 중앙의 열린 계단 통로와 연결되어있는 곡물저장소(grain storage bins)인 것으로 보인다. 흥미롭게도 계단식 피라미드의 중심에는 아래에 내려가는 비슷한 치수의 수직 통로가 있다. 그 통로는 분명히 피라미드보다 앞서 있었다. 수직통로에 대한 접근은 바닥 주변의 터널로 연결된 폐쇄된 계단 통로를 통해 이루어진다. 이것은 원래 곡물저장고였던 것처럼 보인다. 환기가 문제가 되었을 것이고, 환기가 더 잘 되는 저장고가 가동되면서, 일반 저장고로 버려졌을 가능성이 크다. 버려진 저장고는 기근 5년 째에 사망했던 바로의 매장실로 사용되었다. 그 속에 바로의 석관이 놓여진 후, 화려한 석회암으로 둘러쌓았고, 화강암 석판으로 봉인되었다. 마스타바(Mastaba)는 단단한 석회암 블록들을 사용하여 그 위에 지어졌다. 바로의 3명의 아내와 11명의 딸을 묻기 위해 연속적으로 마스타바가 추가되었다. 그 결과 계단식 피라미드가 탄생했다.
이집트에서 가장 출중했던 총리(Visier)가 다름 아닌 성경의 요셉이라는 사실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요셉(야곱의 아들)은 구약성경의 핵심 인물로서, 이집트 바로의 총리(vizier, sage/viceroy, 현자/총독)가 되었으며, 이 시기 동안 7년 간의 기근으로부터 고대 이집트를 구하는 책임을 맡았다. 요셉은 기근의 기간 동안 저장해 놓았던 곡식을 팔아 이집트의 모든 땅(제사장들의 땅 제외)을 얻을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요셉은 바로를 엄청난 부자로 만들어주었다. 요셉이 총리가 되었을 때, 겨우 30세의 나이였고, 이집트를 구하고 모든 땅을 샀을 때는 44세였다. 그는 110세까지 살았고, 이집트 왕실 묘역에 매장되는 것을 허가받았다. 성경은 요셉이 기근으로부터 그의 형제 가족들이 살아남을 수 있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요셉의 일가가 이집트에 입국한 지 430년 후에 일어난)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민족이 2백만 명 이상으로 성장하도록 보호할 수 있었다고 말하지만, 그의 생애의 마지막 66년 동안의 일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요셉의 지위와 업적을 감안할 때, 성경 밖의 이집트 기록과 고고학적 발굴에서도 그의 존재에 대한 증거들이 발견될 것이 예상된다.(See Evidence for the Israelite Sojourn in Egypt). 이집트 역사에서 요셉의 정체성은 논쟁의 여지가 있지만, 일부 학자들은 그를 이집트 제3왕조의 네체리케트(Netjerikhet, 조세르(Djoser)로도 불려짐) 때의 총리였던 임호텝과 동일시하고 있다.
임호텝은 아마도 이집트 역사상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총리로, 최초의 피라미드 즉, 조세르 피라미드 또는 계단식 피라미드(Step Pyramid)를 설계했던 사람이다. 이 피라미드는 아래로 내려가는 하나의 커다란 수직 통로가 있고, 그 단지(complex)에는 곡물을 저장하는 데 사용됐던 것으로 보이는 많은 유사한 구조들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이유로 요셉과 연관지을 수 있다. 또한 임호텝은 7년의 기근에서 이집트를 구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see Famine Stele). 임호텝은 기둥들이 있는 최초의 건축물을 설계했고, 많은 문학 작품을 썼으며, 보존 기술을 개발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가 죽은 지 수백 년 후에, 그의 전설은 너무나 커져서, 특히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에는 신으로 숭배되었다. 순례자들은 치유되기를 바라며, 그의 무덤에 미라로 만들어진 동물들을 가져왔다.
이집트의 가장 뛰어났던 총리가 다름 아닌 성경의 요셉이라는 사실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 아니겠는가? 요셉이 이집트 전체를 구하고, 이집트의 모든 땅을 사들였다면, 매우 뛰어난 총리로 기록되어있을 것이 예상된다. 임호텝은 곡물저장고를 건설하여 7년간의 기근으로부터 이집트를 구했고, 그의 바로인 조세르(네체리케트)는 세습되는 왕국의 군주로 등극했다.
이집트 제3왕조의 수레 수수께끼가 쉽게 설명된다.
성경은 요셉이 애굽 온 땅을 순찰하기 전에 수레(chariot, 전차)를 수여받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요셉과 임호텝이 동일인이었다면, 이것은 이집트 제3왕조와 같은 초기부터 이집트에 수레가 존재했음을 의미한다. 제3왕조에서는 바로와 그의 총리(vizier)와 같은 고위관리만이 여행을 위한 수레를 제공받았다. 제3왕조의 수레는 말이 끌지 않았으며, 일단의 하인들에 의해서 운반되었다.
성경에 수레로 번역된 히브리어 '메르카바(merkabah)'는 '전차' 또는 '타는 자리(riding seat, 승석)'로 번역될 수 있다. 말이 끄는 전차와 사람이 운반하는 수레는 구분되지 않았다. 요셉의 시대인 제3왕조에는 바퀴가 달리고 말이 끄는 전차가 없었기 때문에, 이 단어는 '승석'으로 번역되는 것이 더 적절했을 것이다.
말이 끄는 바퀴가 달린 전차는 군사 목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제12왕조 후반 ~ 제13왕조까지 도입되지 않았다. 제12왕조와 제13왕조의 전차 대부분은 출애굽 당시 홍해에서 유실되었다. 물론 1978년 와이어트가 홍해 바닥에서 발견한 전차 바퀴가 제12왕조와 제13왕조 시대의 것이라는 것은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힉소스(제15 왕조) 이전에는 말이 끄는 전차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피라미드 시대는 요셉으로 시작되어 모세로 끝났다.
이집트의 피라미드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어떻게 거대한 단단한 석회암 블록을 잘라내고, 바퀴가 발명되기 전에 어떻게 그 돌들을 운반하고, 제자리로 들어 올릴 수 있었던가는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건설된 첫 번째 피라미드는 곡물 저장 및 유통 센터로 보이는, 이집트 사카라(Saqqara) 단지의 일부인, 조세르(네체리케트)의 계단식 피라미드였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자체가 원래 곡물저장고(grain silo)로 사용되었던 통로 위에, 바로의 무덤으로 개조되어 건축된 것이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단단한 석회암 블록으로 만들어진, 겹겹이 쌓아 올려진 일련의 마스타바(Mastaba)이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네체르케트의 3명의 아내와 11명의 딸을 묻기 위해 사용되었으며, 네체르케트의 석관은 계단식 피라미드 수직통로 아래에 있는 연단에 놓여졌다.
계단식 피라미드는 성경의 요셉인 것으로 보이는 임호텝에 의해 설계되었다. 요셉과 입호텝은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지만, 그들이 생존 시기에 대한 추정 연대 사이의 불일치로 인해서 동일 인물로 간주되지 않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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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단식 피라미드는 이후 왕조에서 바로를 매장하는 표준이 되었다. 요셉이 이집트 제3왕조의 임호텝이었다면, 의심할 여지없이 한 명 이상의 바로를 섬겼을 것이며, 제4왕조까지 살았을 것이다.
기자(Giza)의 거대한 피라미드들은 사카라의 첫 번째 피라미드의 크기를 훨씬 능가하며, 거기에는 그 당시의 기술로 어떻게 거대한 돌들을 제자리에 올릴 수 있었는지 전문가들이 여전히 궁금해하고 있다.
제12왕조는 테베(Thebes)에 기반을 둔 제11왕조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이는데, 제11왕조는 멤피스(Memphis)에 기반을 둔 제6왕조와 동시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이집트 고왕국(Old Kingdom)을 바로 뒤이어 중왕국(Middle Kingdom)이 이어졌다. 제1중간기(First Intermediate Period) 같은 것은 없었다.
제12왕조의 피라미드는 짚(straw)을 보강재로 포함하는 진흙벽돌(mudbricks)들로 만들어졌다. 각 피라미드에는 크기가 약 60cm×30cm×15cm인 수백만 개의 진흙 벽돌들이 있다. 따라서 제12왕조의 피라미드는 중심부는 진흙벽돌로 만들어졌고, 외벽부는 석회암으로 만들어졌는데, 제12왕조에 이르러 채석된 돌들의 공급 부족에 기인한 것이다. 오랜 세월 후에 외벽 석회암들이 떨어져나갔고, 내부의 진흙벽돌이 노출되었다.
역설적으로, 최초로 건설된 피라미드인 제3왕조와 제4왕조의 피라미드(고왕국 피라미드)는 제12왕조(중왕국 피라미드)의 피라미드보다 세월의 시험을 더 잘 견뎌냈다. 이것은 고왕국 피라미드는 단단한 석회암 블록으로 완전히 만들어졌고, 중왕국 피라미드는 외벽부만 석회암으로 만들어졌고, 내부는 주로 진흙벽돌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제12왕조의 바로는 자신들의 피라미드를 위한 진흙벽돌을 만들기 위해서 대규모 노예들의 노동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Exodus) 당시 약 200만 명에 이르렀다. 제12왕조의 7개 피라미드들은 200여년에 걸쳐 지어졌다. 플린더스 페트리(Flinders Petrie)는 제13왕조 시기에 카훈(Kahun) 마을에서 노예들이 갑작스럽게 대규모로 탈출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카훈 마을은 제12왕조 때에 피라미드 건축 노동자들이 살았던 셈족 노동자의 마을이었다.
이스라엘 백성의 출애굽이 제13왕조에 일어났다면, 이스라엘 백성은 제12대 왕조 때 노예로 있었을 것이고, 피라미드 건설을 위한 진흙벽돌을 만드는 임무도 맡았을 것이다. 제13왕조의 출애굽 이후에 더 이상 피라미드는 건설되지 않았다.
첫 번째 피라미드가 이스라엘인 요셉(임호텝)에 의해 설계되었고, 이스라엘 백성이 제12왕조의 마지막 피라미드가 지어질 때까지 이집트에서 노예로 있었다면, 피라미드 시대(Pyramid age)는 이스라엘인의 이집트 체류와 일치할 것이다! 따라서 피라미드 시대는 BC 1900년부터 BC 1500년까지 400년에 걸쳐 있었다.
이스라엘인이 이집트에 체류했다는 증거(Evidence for the Israelite Sojourn in Egypt)를 참조하라.
.이스라엘 백성들의 체류 기간(430년)과 이집트 왕조와의 관계.
.이집트 왕조와 이스라엘 역사와의 관계.
요셉은 수종 드는 의원에게 지시를 했다. 그는 방부처리 기술을 개발했고, 그의 명칭 중 하나는 프타의 아들(Son of Ptah)이었다.
"그 수종 드는 의원에게 명하여 아버지의 몸을 향으로 처리하게 하매 의원이 이스라엘에게 그대로 하되" (창세기 50:2)
임호텝(요셉)은 많은 의학 저술을 남겼고, 현대 의학의 아버지로 여겨졌다. 그리스인들은 그를 치유의 신으로 여겼다. 프톨레마이오스 왕조(Ptolemaic dynasty)의 순례자들은 그의 죽음 이후 1000년이 넘도록, 치유되기를 희망하면서 임호텝에게 제물(미라화 된 동물)을 가져오곤 했다. 임호텝의 무덤과 연결된 화랑(Ibis Galleries)의 항아리에서 수천 개의 미라화된 따오기(ibis)가 발견되었다. 무덤에는 북쪽을 향해 놓여있는 빈 석관(empty sarcophagus)이 놓여있었다. 이 석관은 북쪽을 향해 있었는데, 이것은 임호텝이 태양신 '라(Ra)'가 아니라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인 야훼를 숭배했음을 가리킨다. 출애굽 당시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를 떠날 때, 그의 뼈를 가져갔기 때문에, 그의 석관은 비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오기 화랑(Ibis Galleries)에서 석관과 함께 발견된 조세르의 각인이 새겨져 있는 항아리들. 임호텝의 이름과 명칭이 새겨져있는 조세르의 것으로 추정되는 동상. 무덤에서 발견된 빈 석관.
요셉은 이집트 역사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다. 네체리케트는 제18왕조 때까지 그의 총리를 따라 바로 조세르(Pharaoh Djoser), 요셉의 바로(Pharaoh of Joseph, or Zozer in Greek)로 알려졌다.
요셉은 7년의 기근에서 이집트를 구하고, 바로를 위해 이집트의 온 땅을 사들였다. 그는 이집트 역사에서 매우 유명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성경은 요셉이 그의 생애 마지막 66년 동안의 일에 대해 침묵하고 있지만, 그가 110세의 나이로 죽었을 때, 애굽 왕실의 장례를 받았다고 말한다.
요셉은 이집트 제3왕조의 바로 네체리케트의 총리이자, 사카라에 있는 계단식 피라미드(곡물 저장 및 유통 센터)의 설계자였던 임호텝일 가능성이 크다. 그는 7년의 기근에서 이집트를 구한 후에도, 제3왕조와 제4왕조의 바로들을 계속 섬겼고, 따라서 라(Ra) 땅의 가장 좋은 지역(고센)에 정착하여 그 수가 급증하고 있었던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지위에 있었다.
요셉(임호텝)은 네체리케트가 기근 5년차에 죽었을 때, 바로를 장례하는 책임자였다. 요셉(임호텝)은 자신이 만든 첫 번째 곡물저장고에 네체리케트를 묻기로 결정했다. (그 저장고는 환기 문제로 곡물저장고로 계속 사용하기가 어려웠다). 곡물저장고는 네체르케트의 석관을 놓을 훌륭한 무덤으로 만들어졌다. 요셉(임호텝)은 저장고 바닥에 연단(platform)을 만들고, 저장고를 화려한 석회암으로 장식하고, 석관을 내려놓아야 했다. 이미 많이 있던 연결 터널은 네체리케트의 장례 그릇과 보물들을 놓아두는 화랑으로 확장될 수 있었다. 요셉(임호텝)은 화강암 석판으로 무덤을 봉인한 다음, 그 위를 단단한 석회암으로 마스타바를 만들었다. 이전의 마스타바는 이보다 훨씬 작았고, 바로가 묻혀 있는 곳에 작은 통로들이 있는, 진흙벽돌로 만들어진 구조물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요셉은 네체르케트의 3명의 아내와 11명의 딸들을 묻기 위해 단단한 석회암으로 만들어진 마스타바를 네체르케트의 마스타바에 더 많이 추가했다. 마스타바는 처음에는 같은 높이에서 추가되었지만, 결국 서로 겹쳐 쌓으면서, 마침내 매끄러운 석회암으로 표면 처리된 계단식 피라미드 구조가 생겼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네체르케트는 그의 총리를 따라 바로 조세르(요셉의 파라오)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집트인과 그리스인들은 그(임호텝)를 신격화하려고 했다. 사원들은 임호텝의 이름으로 지어졌고, 요셉(임호텝)이 죽은 후 1,000년이 넘도록 프톨레마이오스 시대의 순례자들은 치유되기를 바라면서, 그의 무덤에 미라화된 동물을 바치곤 했던 것이다.
*요셉과 임호텝은 동일 인물이었을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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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 이집트의 임호텝과 요셉은 동일 인물이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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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역사와 성경 기록 : 완벽한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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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연대기와 성경 : 현장 고고학자 데이비드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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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의 역사성을 확증하고 있는 영화, “출애굽의 증거들”이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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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의 패턴: 홍해의 기적” - 성경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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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굽의 열 가지 재앙 : 기적인가, 자연현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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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의 위치에 관해 논란이 되고 있는 고고학적 장소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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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를 찾아서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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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gospelclips , November 13, 2015.
주소 : https://josephandisraelinegypt.wordpress.com/
번역 : 장경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