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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26-03-09

초기 인류는 수학적 사고를 했다.

 : 할라프 문화의 채색토기에 새겨져 있는 놀라운 문양

(Mathematical Thinking Came Early)

by Dr. Sarah Buckland-Reynolds


   과학자들은 초기 메소포타미아 예술에서 그들이 "선사시대 수학적 사고"라고 부르는 것의 증거를 발견했다.


  고고학적 발견들은 고대 문명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일찍 수학적 사고를 했음을 시사한다.

  진화 인류학(evolutionary anthropology)은 오랫동안 느리고 선형적인 과정을 통해, 인간의 창의성이 초기 수렵채집 사회에서 철기시대를 거쳐 점차 복잡해지는 문명으로 발전해 현대에 나타났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증거들은 초기 사회 중 일부가 진화 인류학자들이 전통적으로 기술해 온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선사시대 예술품에서 발견된 가장 초기의 식물 문양 : 메소포타미아 할라프 문화의 채색토기와 선사시대의 수학적 사고.(Journal of World Prehistory, 2025. 12. 5). 이 논문의 저자들은 초기 문명이 예술적 형태로 표현된 대칭성, 정확한 공간 분할, 기하학적 순서 등과 같은 "복잡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놀라운 증거를 발견했다. 이러한 발견은 메소포타미아 북부 할라프 문화(Halafian culture, BC 6200~5500년경)에서 출토된 채색토기(painted pottery vessels)로부터 얻어졌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상당히 놀랍다"고 표현했지만, 지적설계론과 젊은 지구 창조론에서는 이를 다르게 해석한다. 즉, 인간은 태초부터 지능을 부여받았으며, 상징적 사고, 측정, 예술적 능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할라프 토기(Halafian pottery)는 무지에서 서서히 진화해 온 결과가 아니라, 창조주께서 인류의 시작부터 부여하신 선천적인 창의성과 수학적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초기 문명에서 발견된 수학적 패턴에 대한 예리한 인식 : 할라프 토기의 연구 결과에 대한 추가적 고찰

가르핑켈과 크룰위치(Garfinkel and Krulwich)의 고고학적 발굴 조사에서는 꽃, 관목, 나뭇가지, 나무 등을 묘사한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들이 수학적으로 의미 있는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저자들은 이 문양들이 4개, 8개, 16개, 32개, 64개의 반복되는 배수를 나타내어, "수학적 계열을 형성"한다고 설명하며, 이러한 패턴들이 "정교하게 제작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이러한 예술적 수준에 놀라움을 표하며, 그려진 문양의 수학적 정확성과 명확하게 연결 짓고 있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썼다.

"꽃잎들이 4, 8, 16, 32의 기하학적 배열로 묘사된 것과, 64송이의 꽃이 다른 방식으로 배열된 것은 산술적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세속적인 고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저자들은 할라프 문화에서 발견된 이처럼 정교한 식물 문양들이 BC 7천 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고 있었다. 이는 진화 인류학자들이 문자나 고도의 수학이 등장했다고 추정하는 시기보다 훨씬 앞선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증거는 초기 공동체들이 미적 감수성뿐만 아니라, 수학적 구조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발견은 원시적인 수준에서 시작에서 현대의 복잡성에 이르기까지, 지식이 느리게 점진적으로 축적되었다고 가정하는 진화론적 문화 발전 모델에 도전하는 것이다.


점진주의 가정에 대한 도전은 이번이 첫 번째가 아니다.

가르핑겔과 크룰위치의 연구 결과는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 지식이 점진적으로 축적되었을 것이라는 진화론적 가정을 뒤집어 놓은 여러 고고학적으로 '놀라운 발견'들을 떠올리게 한다. 예를 들어, 근대 초기에 진화인류학은 모세시대(BC 1400년경)에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모세오경이 그 시기에 저술되었을리 없다고 결론지었었다. 그러나 우가릿 텍스트와 원시 시나이 문자(Ugaritic texts and proto-Sinaitic script) 같은 고대 비문의 발견은 알파벳 문자 체계가 모세 이전부터 이미 사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기존의 "원시적 문맹(primitive illiteracy)"이라는 초기 인류에 대한 진화론적 가정이 틀렸음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새롭게 발견된 할라프 문양은 인간 사회에 수학적, 상징적 정교함이 진화론 모델이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각각의 발견은 인간이 계산, 쓰기, 창작 능력을 천천히 배우게 되었던 "원시적 짐승"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능과 창의력을 부여받은 존재였다는 것을 확증해주고 있다.


성경적 연대기와의 유사점

BC 6200년에서 5500년 사이의 일반적인 연대는 성경적 연대기와 일치하지는 않지만, 고대 유물에서 이러한 문양이 발견되는 것은 특히 그 지리적 위치를 고려할 때 성경의 이야기와 잘 부합한다. 메소포타미아는 성경에서 노아의 후손들이 흩어진 후 홍수 이후 인류 문화가 출현한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10장). 더욱이 노아 시대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방주를 짓도록 지시하실 때 정확한 수학적 측정 단위(길이 300규빗, 너비 50규빗, 높이 30규빗)를 사용하셨다는 기록이 있다(창세기 6:14~16). 이는 당시 사람들이 숫자와 표준화된 측정 단위의 의미를 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노아의 사례 외에도 성경은 초기 인류가 뛰어난 측정, 예술, 건축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일관되게 묘사하고 있다. 다음은 이를 뒷받침하는 몇 가지 예이다.

바벨탑 (창세기 11:3-4) : 백성들이 말했다. “자, 우리가 벽돌을 만들어 단단하게 구워서… 자, 우리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 도시를 건설하자.” 이 이야기는 대홍수 이후 불과 몇 세대 만에 건축 계획, 재료공학, 집단적 협력, 공학 및 건설 기술이 모두 발휘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 시대 (BC 2000년경) : 아브라함이 왕들과 교류하고, 조약을 체결하고, 토지 거래를 한 것, 특히 창세기 23:17~18절에 기록된 토지의 공식적인 매입과 측량은 상업, 법적 계약, 그리고 정확한 경계 설정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수학적, 기호적 정교함을 전제로 한다.

초기 공예 기술과 야금술 : 창세기에는 두발가인이 모든 장인들에게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의 스승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초기 단계부터 금속 가공 기술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창세기 4:22).

니므롯 시대의 도시 발전 : 창세기 10:9절에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으로 묘사되어 있는 니므롯은 바벨탑을 비롯한 메소포타미아 초기 도시 건설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조직적인 정착, 통치 및 기반 시설의 발달을 시사한다.

니므롯이 메소포타미아를 건설하기 이전에도, 성경에는 이처럼 뛰어난 장인들, 기술, 건축 능력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정교한 예술과 수학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 넓은 의미 : 문화적 진화에 대한 도전

할라프 문양은 문화 발전의 진화론적 모델에 도전하고 있는 증거의 일부에 불과하다. 고대 문자의 발견이 모세 시대의 문해력에 대한 기존의 가정을 뒤집었듯이, 이러한 식물 문양 또한 수학과 예술의 기원에 대한 기존의 통념에 도전한다. 진화인류학은 흔히 원시적인 것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발전한다고 보고 있지만, 고고학적 발견은 인류의 정교함이 초기부터 갑자기 나타나는 사례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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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발견은 인류의 지능, 예술적 감각, 수학적 능력이 인류의 시작부터 존재했음을 말하고 있는 성경의 기록과 잘 부합한다. 고고학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놀라운 발견"들은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도서 1:9절에서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인간의 창의성은 언제나 하나님 계획의 일부였다.

진화 인류학자들은 초기 문명의 정교함에 대한 증거에 놀라고 있는 반면에,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발견을 성경이 항상 선언해 온 사실,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처음부터 지능, 창의력, 측정 능력, 예술적 표현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확증해주는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할라프 토기는 원시적 실험 도중의 유물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영원한 진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편 19:1). 문명의 가장 초기 시대부터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던 작품들 또한 그러하다.



*관련기사 1 : ‘수학적 사고’가 숫자보다 먼저 등장했다. (2026. 3. 6. 뉴스토마토)

8000년 전 도자기에 숨겨진 기하학. 반복 패턴, 대칭, 균형을 통해 표현

https://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285275

8,000년 전 도자기 문양에 담긴 수학... 문자 이전 인류의 사고력을 보여주는 단서일까?  (2026. 1. 21. ESG코리아뉴스)

https://www.esgkoreanews.com/news/view.php?no=18126


*관련기사 2 : "4만년 전 석기시대 유물에 새겨진 기호들, 문자 기원 가능성" (2026. 2. 24.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60224018200017

4만년 전에도 문자 있었다…점·선·십자로 표기 (2026. 3. 1. 조선비즈)

https://biz.chosun.com/science-chosun/science/2026/02/24/AVJC7AAMINAXPHAIHFH6NY6E3M/

4만 년 전 빙하기 인류, ‘정보’를 새겼다.(2026. 2. 27. 뉴스토마토)

독일 연구팀 구석기 기호 3000여 개 분석. 정보 밀도, 원시 설형문자와 맞먹는 수준

https://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292723

4만년 전 구석기 기호, 초기 문자 수준 정보량 확인…문명 탄생 실마리? (2026. 3. 6. 디지털투데이)

https://www.digital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36675



*참조 : 고대인의 신비 : 거석 기념물, 고도의 토목기술, 사라진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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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들과 현대인 : 고대인의 전지, 계산기, 점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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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시대’ 사람들은 놀랍도록 현대적이었다. : 배를 만들고, 장신구와 화장을 하고, 곡물을 먹고, 구분된 공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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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의 발견으로 당황하고 있는 진화 인류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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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벽화에 암호가 들어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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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생인류의 출현 이전에 만들어진 통나무집? : 50만 년(?) 전의 목조 구조물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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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만 년(?) 전의 인류는 세분화된 거주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 그리고 157만 년(?) 전의 유럽인들은 연장을 만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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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만 년 전(?) 초기 인류는 자원 재활용을 하고 177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는 이쑤시개를 사용했다. 그리고 음악과 언어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공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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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만 년 전 현생인류의 조상이 만든 목조구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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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만 년 전 독일 석탄 광산에서 발견된 8자루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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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에렉투스(150만 년 전)의 발자국은 현대인의 것과 동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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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의 기원은 진화론적 장구한 연대를 부정한다 : 30만 년 전에 출현한 현대 인류가 1만 년 전에 농업을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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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농업은 진화론적 시간 틀로 너무 늦게 시작됐다. 인류는 13,000년 전에 이르러서야 농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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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말타기는 왜 그렇게 늦게 시작됐는가? : 대략 BC 3천 년 경에 시작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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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옥한 초승달 지역이 사라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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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의 언어들 : 언어들의 기원과 지리적 분포는 창세기 기록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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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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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가장 오래된 언어는 단지 4500년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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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은 언어를 설명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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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아와 사람의 어원 : Manu, Man, Maru, Mano, Anu, Marine...단어들의 기원과 대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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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언어는 젊은 지구 모델과 적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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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히브리 문자가 해독됐다 : 성경 기록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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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오래된 초기 히브리어 글자의 발견! : 에발 산의 납 서판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을 기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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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발 산에서 여호수아의 제단과 저주 서판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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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알파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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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들은 얼마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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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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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 전설인가, 역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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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므롯 : 노아 홍수 이후 최초의 폭군이자 제국의 건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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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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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벨탑 사건과 민족 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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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자매별'의 유사성은 진화가 아닌, 바벨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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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인류에 대한 DNA 분석은 바벨탑의 인류 분산을 확증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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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3 조상 가족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유전자 연구는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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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킹 DNA는 바벨탑 이후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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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토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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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진화론의 허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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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 기원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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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생인류의 출현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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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석기시대와 타제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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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시적인 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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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명했던 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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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EH, 2026. 2. 28.

주소 : https://crev.info/2026/02/sbr-mathematical-thinking/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6-02-23

블레셋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Who were the Philistines?)

By Dr Robert Carter


   이집트, 크레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모두 성경에서 블레셋 사람들로 불렸던 민족의 실존을 언급하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Philistines)은 성경에서 문제가 되는 민족 집단이다. 학자들은 그들이 누구였고,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논쟁하고 있다. 회의론자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Canaan)에 도착하기 500년 전부터 가나안에 있었다고 성경이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블레셋 사람들은 가나안에 살았지만, '가나안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은 가나안 지중해 연안에 있는 거주지에서 살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몰아내야 했던 일곱 민족에 포함되지 않았다(신명기 7:1). 고고학적 증거들은 가나안이 아니라, 크레타(Crete, 그레데)를 그들의 원래 고향으로 가리키고 있으며, 2019년 아스글론(Ashkelon)에서 150개가 넘는 무덤들에 대한 DNA 연구는 그들이 에게해 기원(Aegean origin)임을 확인했다.[1]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성경이 그들에 대해 틀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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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반트(Levant,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의 왕국들. <commons.wikimedia.org, Dlv999>


블레셋 사람들은 창세기 10장의 민족들 명단에 처음 언급된다. 그들은 노아의 아들 함(Ham)의 후손으로, 그의 아들 미스라임(Mizraim)을 통해 나왔다.[2] 함족은 지중해 지역, 아라비아,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현재의 튀르키예), 이집트, 리비아, 수단 등지에 널리 퍼져 정착했다. 그러나 이 민족들 중 상당수는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예를 들어, 미스라임에서 나온 민족들은 다음과 같다. (영어표준역(ESV) 성경에서는 Egypt(이집트)로 번역됨. 이 이름들 목록에서 단어 끝의 복수형 -im에 주목하라) .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갑도림을 낳았더라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창세기 10:13–14)

Egypt fathered Ludim, Anamim, Lehabim, Naphtuhim, Pathrusim, Casluhim (from whom the Philistines came), and Caphtorim.” (ESV, Genesis 10:13–14)

적어도 '갑돌(Capthor, 캅토르)'은 크레타 섬(island of Crete)의 고대 이름이다. 다른 족속들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는 없다. 따라서 블레셋 사람들의 모태가 된 가슬루힘이 어디에 정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가나안 족속들을 연구하다 보면, 가나안 사람(Canaanite), 아모리 사람(Amorite), 여부스 사람(Jebusite)처럼 접미사 -ite를 접하게 된다. 이는 특정 조상이나 장소와 관련된 민족 집단임을 나타낸다.[3]


블레셋 사람들이 다음으로 언급된 곳은 아브라함 시대이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남부, 브엘세바 근방에 살고 있었다. 그 지역은 물이 귀했기에(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수원을 장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당연히 아브라함의 사람들(당시 약 1,00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 창세기 14:14 참조)과 서쪽에 살던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창세기 21:32)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창세기 21:34)

아비멜렉(Abimelech)은 이름이기도 하지만, 칭호이기도 하다. 히브리어 단어 아브(אב)는 아버지를, 멜렉(מלך)은 '왕'을 의미하므로,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로 번역된다. 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도자가 어디에 살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살았고, 적어도 서쪽에 있는 그랄(Gerar)이라는 마을을 방문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또한 블레셋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추가적인 지리적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창세기 26:1)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은 칭호로도 쓰일 수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알던 사람과 반드시 동일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아비멜렉이 그랄(Gerar)에 살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라. 그랄은 브엘세바 북서쪽, 같은 하천계 내의 다른 지류에 위치한 도시였다.

이는 아브라함의 집 사람들이 물 관리 문제로 겪었던, 많은 갈등과 조약이 필요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아브라함의 사람들은 인근 그랄 계곡의 블레셋 사람들과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있었다.

창세기 26장에는 아비멜렉이 리브가를 빼앗은 유명한 이야기(창세기 20장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야기와 마찬가지),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의 많은 가족과 많은 양 떼를 질투하여 그의 우물을 막은 이야기, 그리고 이삭이 우물을 다시 파는 이야기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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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출애굽기 23, 24, 33장에서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야 할 민족들을 나열하실 때, 블레셋 사람들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대신, 헷 사람, 브리스 사람, 가나안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이 언급되고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출애굽 할 때, 블레셋 사람들을 거쳐 나가는 짧은 길을 택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게 될 때까지,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듣지 못한다 :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출애굽기 13:17). 나중에 "블레셋 바다까지"(즉, 지중해)는 약속의 땅의 경계를 말씀하실 때 사용되었다(출애굽기 23:31). 이상하게도 출애굽기 23, 24, 33장에서 가나안 땅에서 쫓아낼 민족들을 나열하실 때, 블레셋 사람들은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그 민족들은 헷 족속, 브리스 족속, 가나안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목록과 매우 유사하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창세기 15:18–21)

다시 한번, '블레셋'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점에 주목하라.


혼란스러운 족속과 민족들의 목록

'가나안 사람들(Canaanites)'이라는 용어는 가나안 땅에 살았던 여러 족속과 집단들을 포괄적으로 묘사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Philistines)'이라는 용어 또한 가나안에 살았던 다양한 민족 집단들을 지칭한다. 두 용어를 구분하는 것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며, 하위 집단들(예: 아래에서 논의되는 블렛 사람들(Pelethites)) 중 어느 집단에 속하는지도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첫째, 그 지역에는 가나안족이 아닌 민족들이 많았는데, 그중 다수가 셈족(Semitic)이었다.

▶  북동쪽에는 셈의 아들 아람(Aram)의 이름을 딴 아람족(Aramaeans)이 살았다. 그들의 본거지는 다마스쿠스(Damascus)였다.

▶  아브라함이 처음 이스라엘로 이주했을 때, 조카 롯(Lot)이 그와 동행했다. 롯의 아들들은 모압과 암몬(Moab and Ammon)이었다. 모압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은 요단강 동쪽에 살았다.

▶  아브라함에게도 여러 아들이 있었다. 그의 첫째 아들 이스마엘(Ishmael)은 요단강 동쪽에 살았던 12개 주요 지파로 구성된 이스마엘 족(Ishmaelites, 창세기 17:20)의 조상이었다.

▶  아브라함의 둘째 아들 이삭(Isaac)에게는 야곱과 에서(Jacob and Esau)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에돔(Edom)은 에서의 다른 이름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에돔 사람들(Edomites)도 요단강 동쪽에 살았다.

▶  아브라함은 나중에 (그두라를 통해) 더 많은 아들들을 낳았는데, 그중 하나가 미디안(Midian)이었다. 요셉의 형들이 그를 노예로 팔았을 때, 형들은 요셉을 미디안 사람들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다고 성경의 한 구절에서 같이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37:28). 이스마엘은 미디안의 형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지역에 살았고, 이 초기부터 그들의 이름은 섞이기 시작했다.

▶  함(Ham)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주장하는 다른 족속들도 있었지만(예로 삽드가(Sabteca)), 이러한 아라비아 족속들은 이 이야기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음은 많은 가나안 민족들과 족속들이 있었다. 가나안의 아들 중 이름이 언급된 것은 두 명으로 시돈(Sidon)과 헷(Heth)뿐이다. 다른 족속들도 '가나안' 족속이지만, 그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  하맛(Hamath)은 이스라엘 북동쪽,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도시였다. 하맛 사람들의 영토는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에 포함되었으며, 이후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통치했다.

▶  북서쪽에는 페니키아의 도시 티레(Tyre)와 시돈(Sidon)이 있었다. 이 도시들은 쫓아냈던 족속들 가운데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시돈은 가나안의 아들이었다.

▶  헷 족속(Hittites, 히타이트족)은 또 다른 가나안 족속이었다. 그들의 활동 중심지는 이스라엘 북부였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Uriah)는 헷 족속이었다. 아나톨리아(Anatolia)를 중심으로 한 고대 히타이트 제국(Hittite empire)이 이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  '아모리 족속(Amorite)'이라는 용어는 고대 역사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넓은 지역에 분포했다. 성경은 그들이 가나안 출신이라고 말한다. 성경에는 그들이 요단강 양쪽에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산왕 옥(Og, king of Bashan)과 헤스본 왕 시혼( Sihon, king of Heshbon)은 요단강 동쪽에 살았던 아모리 족속의 지도자였으며, 전투에서 패배했다(민수기 21:21-35). 또한 이스라엘의 경로가 여리고에서 요단강 서쪽의 아모리 족속의 영토로 이어졌기 때문에,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의 초기 정복에서 중요한 족속이었다(예: 여호수아 10:5).

▶  여부스 족속(Jebusites)은 미래의 예루살렘 도시와 그 주변에 살았다. 또한 그들은 아모리족과 관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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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과 그 주변에 살았던 족속들의 가계도. 이름이 적힌 사람들은 파란색 사각형 안에 있다. 후손 족속 중 다수는 단순히 "아라비아인"으로 나열되어 있지만, 여기에는 현대 요르단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예: 에돔, 모압, 암몬 등)도 포함되므로,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적용된다. 이 글에서 논의되는 많은 족속(예: 블렛족)은 족장들과 직접적인 계보적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나열되지 않았다. 블레셋 족속(Philistines, 빨간색 타원)은 함(Ham)에게서 나왔고, 그의 아들 미스라임(Mizraim)을 거쳐, 가슬루힘(Casluhites)으로부터 나왔다.<© CMI>


그 지역에는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키가 컸는데, 특히 르바임 족속(Rephaim, 신명기 3:11)과 아낙 자손(Anakim, 민수기 13:28, 이들은 "네피림"이 아니었다)이다.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였는가?’를 참조하라. 여기를 클릭). 르바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암몬 족속에 의해서 요단강 동쪽 지역에서 쫓겨났다(신명기 2:20-21). 예루살렘에서 해안 평야로 이어지는 르바임 골짜기(여호수아 18:16)는 그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을 수 있다. 아빔(Avvim)과 그술(Geshurites) 족속들은 또 다른 수수께끼의 족속이었지만, 그들은 헤르몬 산과 갈릴리 바다 사이에 살았다. 다윗의 두 자녀(압살롬과 다말)의 어머니는 그술 왕 달매(Talmai)의 딸 마아가(Maacah)였다(사무엘하 3:3, 13:1).

마지막으로 블레셋 사람들이 있었다. 여호수아서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의 다섯 도시인 가사(Gaza), 아스돗(Ashdod), 아스글론(Ashkelon), 가드(Gath), 에그론(Ekron)을 정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여호수아 13:2-3). 그 지역은 사사시대 내내 블레셋 사람들이 지배했다.(사사기 3:3 참조). 예를 들어, 삼갈(Shamgar)은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인 것으로 유명하며(사사기 3:31), 삼손(Samson)은 그들과 여러 차례 거래를 했다(사사기 14-16장). 사무엘상과 사무엘하 전체에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많은 언급이 있다(예: 골리앗은 가드 사람이라고 불렸는데, 즉 그는 가드(Gath) 도시 출신의 블레셋 사람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또한 예언서(예: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아모스, 오바댜, 스바냐)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아모스 9:7)

여기서 BC 8세기에 살았던 아모스(Amos)가 블레셋 사람들을 갑돌(Capthor, 크레타)에서 왔다고 말한 점에 주목하라. 아모스보다 약 100년 후에 예레미야서를 기록한(BC 7세기 말에서 6세기 초) 예레미야는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확증하고 있다.

“이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 (예레미야 47:4)


그러나 창세기로부터 초기 기록은 블레셋 사람들이 갑돌로부터 왔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비록 갑도림은 그들의 친척이었지만). 그리고 약 1,500년 후, 성경은 그들이 갑돌 출신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초기 블레셋 사람들이 누구였는지에 대해 약간의 혼란이 있다. 만약 그들이 갑돌 출신이었다면, 언제부터였을까? 그리고 만약 그들이 아브라함 시대 이전에 왔다면, 1500년 이상이 지난 후에 그 사실이 왜 중요할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그리고 가나안 침략 40년 전 그 땅을 정탐했던 정탐꾼들 역시 블레셋 사람들을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민수기 13:29)

여기에 살았던 초기 사람들이 원래 블레셋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있을까? 그 이름이 같은 위치로 이주한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용되었을 수 있으므로, 조상이나 민족과 거의 관련이 없을 수 있을까? 크레타에서 온 가슬루힘(Casluhim)의 한 분파가 '블레셋' 영토로 이주했다면, 이전 문화의 요소를 쉽게 받아들였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반대도 사실일 수 있다. 즉, 그 용어는 나중에 블레셋이라고 불리는 곳에 살았던 초기 사람들에게 소급 적용되었을 수 있다. 성경에는 이름이 특정 위치에 소급하여(retroactively) 적용되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여러 번 글을 썼다. 예를 들어, 키튼 핼리(Keaton Halley)는 다음과 같이 썼다 :

예를 들어, 창세기 14:14절은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기 위해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단 성(city of Dan)은 아브라함 시대나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 시대에는 아직 '단'으로 불려지지 않았다. 이 성읍은 이전에 라이스(Laish)라고 불렸고, 성경에서 말하듯이 사사기 시대(사사기 18:29)가 되어서야 단 지파에 의해 개명되었다. 따라서 창세기 14:14절에 나오는 이 성읍의 이름은 모세 시대 이후에 수정된(updated) 것이었다.[4]

코스너와 카터(Cosner and Carter)는 다음과 같이 썼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모세오경을) 모세가 썼다는 것을 알고 있다(예: 출애굽기 24:4, 민수기 33:2). 하지만 그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썼을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모세가 썼다고 여겨지는 책들은 편집자(editor)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편집자의 코멘트(예: "오늘(날)까지(to this day)")가 성경에 섞여 있고, 이는 아마도 여러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단지 이집트 도시의 이름을 바꾸어 기록을 읽는 사람들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은 사소한 일이었을 것이다.[5]


블레셋 사람들이라는 수수께끼에 답하다.

이 많은 수수께끼들에 대한 해답은 성경에 '블레셋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두 개의 다른 민족 집단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후대의 블레셋 사람들은 실제로 크레타 출신이었지만, 아브라함이 알고 있던 블레셋 사람들과는 달랐을 수 있다. 실제로 성경은 바로 이 지역에서 인구 이동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갑돌에서 나온 갑돌 사람이 가사까지 각 촌에 거주하는 아위 사람을 멸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거기에 거주하였느니라” (신명기 2:23)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침략하기 직전(BC ~1406년경)에 기록되었다. 따라서 이 새로운 사람들은 1)갑돌(크레타)에서 나왔고, 2)이삭 시대와 모세 시대 사이, 약 300년 동안 이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블레셋 사람들이 살았다고 말해지는 지역에 아위(Avvim, Avvites, 아빔) 사람이라 불리는 집단이 살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다윗 시대의 이 후대의 블레셋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역사 기록에 따르면, 수수께끼 같은 바다 민족이 람세스 3세(Rameses III, 이집트 제19왕조, BC 1186~1155년경) 통치 기간에 이집트를 침략하려고 시도했다. 이것은 출애굽 이후 약 300년이 지난 시기로, 사사시대였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하나의 국가로 확립되어왔다. 그들의 실패한 침략은 유명한 람세스 3세의 장례 신전(Medinet Habu, 메디넷 하부 신전)의 벽에 묘사되어 있지만, 그림에는 동물과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바다 민족은 단순히 공격만 한 것이 아니라, 이주하고 있었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우리는 지중해 지역에서 히타이트(Hittite), 미케네(Mycenaean), 미탄니(Mitanni) 제국의 멸망을 목격한다. 이 모든 격변의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6], 원인과 결과를 분리할 수 없다(예: 바다 민족이 약탈자였는지, 아니면 다른 공격자 집단을 피하려고 했는지?). 이집트의 기록에 따르면, 람세스는 생존자들을 강제로 가나안 남서쪽에 정착시켰는데, 그곳은 아브라함 시대에 '블레셋' 도시들이 있던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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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넷 하부(Medinet Habu) 신전의 북동쪽 외벽. <commons.wikimedia.org, public domain>


크레타에서 해안가 레반트 지역으로 대규모 인구 이주(migration)가 이루어진 것은 유전학적으로, 그리고 고고학적 그림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연대표를 보면 람세스 3세 시기의 바다 민족을 모세 시대의 블레셋 사람들과 동일시하기 어렵다(예: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출애굽기 13:17)).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출애굽은 람세스 2세의 통치 기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몇 세기 전(BC ~1446년경)에 일어났다. 따라서 람세스 3세 시기는 너무 늦고, 모세 시기는 너무 이르다.[7]


이집트인들은 수 세기 동안 여러 '바다 민족(sea peoples)' 집단과 싸워왔고, 그들에게 여러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중 하나가 펠레셋(Peleset, 펠레세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블레셋"이라는 이름의 유래라고 믿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성경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바다 민족인 펠레셋 계통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가나안에 거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특히 문제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성공적으로 침략한 후, 성경은 아직 정복당하지 않은 많은 민족들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 그술(Geshurites) 족속, 아위(Avvim) 족속 등이 그 예이다.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모든 지역과 그술 족속의 모든 지역 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쪽 에그론 경계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통치자들의 땅 곧 가사 족속과 아스돗 족속과 아스글론 족속과 가드 족속과 에그론 족속과 또 남쪽 아위 족속의 땅과 또 가나안 족속의 모든 땅과 시돈 사람에게 속한 므아라와 아모리 족속의 경계 아벡까지와 또 그발 족속의 땅과 해 뜨는 곳의 온 레바논 곧 헤르몬 산 아래 바알갓에서부터 하맛에 들어가는 곳까지와 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 산지의 모든 주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내가 명령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여호수아 13:1~6)


다윗 시대에는 그 땅에 여러 이방 족속들이 살고 있었는데, 누가 먼저 그곳에 왔고, 누가 나중에 왔는지 다소 혼란스럽다. 이러한 족속 중 일부는 블레셋 사람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는데, 예를 들어 그술 족속(Geshurites)이 그렇다.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모든 지역과 그술 족속의 모든 지역“ (여호수아 13:2)

블레셋 사람들과 관련되어 "그렛(Cherethites) 사람"이라는 족속에 대한 언급도 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블레셋 사람 위에 손을 펴서 그렛 사람을 끊으며 해변에 남은 자를 진멸하되”(에스겔 25:16) (또한 스바냐 2:5절도 보라)

우리는 또한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의 부하들과 여러 차례 함께 싸우는 것을 본다(사무엘하 8:18; 20:7, 23). 또한 그들이 다윗을 섬기는 모습도 본다(열왕기상 1:38-44, 역대상 18:17).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그와 함께 올라갔다. 그들 중 대부분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들 중 외국인들은 예외였다.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사무엘하 15:18)

다윗은 가드 사람(Gittite) 잇대(Ittai)가 따라오는 것을 만류했지만, 그는 유명한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사무엘하 15:19, 21)

그리고 우리는 이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가족을 데리고 이스라엘로 따라왔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사무엘하 15:22)

이는 현대 유대인의 유전적 배경에 대한 즉각적인 의문을 제기하지만(여기를 클릭), 이것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골리앗, '블레셋 사람'

골리앗(Goliath)은 엄청난 체구로 유명하다. 아스글론(Ashkelon) 묘지에서 발굴된 블레셋 사람의 유골들은 비정상적으로 큰 크기가 아니었다. 이는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적어도 정상적인 키였음을 알려준다. 골리앗은 블레셋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마지막으로 남은 르바임(Rephaim) 중 하나였을까? 어쩌면 그는 그 지역, 또는 다른 지역에 살았던 블레셋 사람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을지도 모른다(사무엘하 21:15-22). 이 구절에서 사용된 단어, 어떤 성경에서는 '거인(giant)' 다른 성경에서는 '거인들(giants)'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단어 '르바임(רְפָאִים)'이라는 점에 유의하라.

그리스어로 된 칠십인역(Septuagint) 성경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을 지칭하는 데 두 다른 단어가 사용된다. 창세기부터 여호수아서까지는 Φυλιστιιμ(Philistiim, Philistines, 블레셋 사람들, 팔레스타인)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사사기부터는 ἀλλοφύλων(allophilon, foreigners, 외국인)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따라서 BC 3세기 칠십인역 번역팀은 오늘날 흔히 놓치고 있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두 개의 뚜렷한 집단이 있었으며, 후자는 그 땅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이는 다양한 랍비 자료들의 견해에 의해서 뒷받침된다.[8]


크레타를 점령했던 고대 미노스인(Minoans)들이 바다 민족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카메레스(Kameres)라고 불리는 그들의 도자기는 레반트(Levant, 지중해 동부 해안 지역), 특히 아스켈론(Ashkelon)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그들의 도자기가 블레셋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브라함이 교류했던 사람들이 그 지역의 초기 식민지 개척자들이었을 가능성이 있을까?

후기 도자기는 그리스 스타일을 따랐는데, 그리스인들이 BC 14세기에 크레타를 정복하고 결국 레반트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사실, 후기 청동기시대(예: 모세의 세계)와 초기 철기시대(예: 사무엘과 사울의 세계) 사이에 문화에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필리스티아 바이크롬 도자기(Philistine bichrome ware, 블레셋 2색 도자기)라고 불리는 새로운 도자기 스타일이 초기 철기시대에 이 지역에 갑자기 나타났다. 이것은 BC 12세기경, 람세스 3세와 거의 동시대였다. 이것은 필리스티아 단색 도자기(Philistine monochrome ware)라고 불리는 것과 유사하지만, 비슷한 바이크롬 도자기들을 키프로스와 그리스 미케네 문화와 관련된 다른 장소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양, 색상 및 패턴(예: 새와 물고기)이 모두 매우 유사하다. 이 재료 중 일부는 수입되었지만, 대부분은 현지에서 만들어졌다. 도자기의 연대측정은 매우 복잡한 작업이며, 이와 관련하여 많은 불확실성이 있다(예: 탄소연대측정은 정확한가 참조). 하지만 이러한 스타일의 도자기는 당시의 블레셋 문화를 그리스 섬과 분명히 연결해준다.

이는 아스글론의 고대 묘지에 묻혀있는 사람들의 DNA에서 발견된 중요한 변화와 일치한다. 초기 철기시대 사람들은 청동기시대 조상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상당량의 유럽 DNA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럽인의 기여는 후기 철기시대에 사라졌다.[9] 자료에 따르면, 남동부 유럽에서 유입된 DNA가 이 지역으로 유입되었다. 그 DNA를 가진 사람들은 멸종했거나, 더 가능성이 높은 것은 더 큰 규모의 지역 주민과 결혼하면서 DNA가 희석되었을 것이다.


결론

성경은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 시대부터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시대까지 가나안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크레타 섬과 관련된 토기와 DNA가 대량 유입되기 전, 즉 블레셋 사람들이 그 땅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이 성경이 초기 블레셋 사람들에 대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경의 역사에 충실한 몇 가지 가능한 해결책이 있다.

▶  초기 사람들은 동시대 사람들에 의해 블레셋 사람이라고 불렸고, 후기 사람들은 블레셋 영토에 살았기 때문에, 그 이름이 붙었을 수 있다.

▶  초기 사람들은 나중에 실제 블레셋 사람들이 지배하게 된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소급적으로 '블레셋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받았을 수도 있다.

▶  초기와 후기 블레셋 사람들은 사촌이거나 언어나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로 이주한 사람들은 단순히 비슷한 문화권으로 이주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둘 다 본래 '블레셋 사람들'이었지만, 이주 시기를 통해 구분될 수 있다.



References and Notes

1. Feldman, M. et al., Ancient DNA sheds light on the genetic origins of early Iron Age Philistines, Sci. Adv. 5:eaax0061, 2019.

2. Yet, this is true for the Y chromosome only. After the Flood, the family of Noah stayed together. It was not until the Tower of Babel event (some five generations after the Flood) that people spread out. All people on earth, therefore, should be able to claim all three sons of Noah and each of their wives as ancestors. Also, due to migration, trade, slavery, etc., we would not expect any specific people group to maintain a perfect separation of their male lines. Thus, when we say, “the Philistines came from Ham”, what we mean is that the men in leadership carried his Y chromosome. This does not mean that Ham had anything special about his DNA that is only found in, for example, Africa.

3. A demonym is the technical term for a word that describes people who live in a certain place, e.g., the Canaanites. The ending varies depending on historical language roots, so we can speak of a Netherlander, a Kosovar, a Pakistani, or a Moroccan. We also talk about Chinese, French, and Swedish people. In the Bible, patriarchal ancestry was frequently used to name groups of people, but that same term was also frequently applied to the location in which they lived. Thus, Canaan was the location in which the Canaanites lived, Edom was the place where the Edomites lived, etc.

4. Halley, K., Exodus evidence revisited, creation.com, 18 June 2022.

5. Carter, R. and Sanders, L., How long were the Israelites in Egypt? Using their own family tree to resolve a debate, creation.com, 21 Sep 2021.

6. There was a massive volcanic explosion in the middle of the Aegean Sea in ancient times. Prior to 1,600 BC (using carbon dating) or sometime around 1,500 BC (using secular archaeologic dating), the island of Thera (modern Santorini) exploded. This had a profound effect on the ancient Aegeans, especially upon the great Minoan civilization on Crete, and would have negatively affected the Levant as well (possibly explaining the drought during the time of Abraham or Joseph). Yet, the Sea Peoples are associated with a cultural upheaval called the Late Bronze Age Collapse (c.a. 1,200–1,150 BC).

7. Rameses III (Dynasty 20) was not the son of Rameses II (Dynasty 19). There were at least six pharaohs who ruled between them.

8. Eames, C., Are ‘Philistines’ during Abraham’s time evidence against Bible historicity? armstronginstitute.org, 24 Feb 2022.

9. Feldman, M. et al., Ancient DNA sheds light on the genetic origins of early Iron Age Philistines, Sci. Adv. 5:eaax006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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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Published CMI, 12 Nov, 2023, Updated 21 Nov, 2023

주소 : https://creation.com/en/articles/who-were-the-philistine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5-11-09

사울, 다윗, 솔로몬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 - 2

고고학은 이스라엘 통일왕국에 대한 성경 기록을 뒷받침한다.

(Evidence for Saul, David, and Solomon

Archaeology supports the biblical record of Israel’s united monarchy)

By Keaton Halley


고고학적 발견들은 다윗 왕, 솔로몬 왕, 그리고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확증해 준다.


솔로몬의 건설 프로젝트

성경은 솔로몬 왕이 아버지 다윗보다 훨씬 더 많은 건축 사업에 관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열왕기상 9:1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이러하니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이곳들 모두에서 BC 10세기에 인상적인 건축 활동이 있었다는 증거들은 이 성경 구절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더욱이 이 도시들에 성벽, 성문, 그리고 공공건물들이 건설된 것이 솔로몬의 업적이라면, 그가 이스라엘 전체를 통치했음을 시사한다. 이 도시들은 북쪽에서 남쪽까지 이스라엘의 지파별 할당지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증거들은 실제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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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예루살렘 모형도.

 

예루살렘에서 다윗 성과 성전산 사이의 지형적 '안장(saddle)'은 오벨(Ophel)이라 불려진다(느헤미야 3:26~27). 1800년대에 찰스 워렌(Charles Warren)은 오벨을 탐험하던 중 엄청나게 튀어나온 탑(tower, 망루)과 그에 붙어 있는 작은 두 번째 탑을 발견했다. 대부분은 지하에 묻혀있었지만, 워렌은 수직 갱도와 측면 터널을 파내서 더 큰 탑의 너비가 24m, 높이가 20m라는 것을 알아냈다. 1986년과 2009년에 같은 지역을 발굴한 에일랏 마자르는 이 탑에 연결된 70m 길이의 고대 예루살렘 성벽을 발견했다. 또한 그녀는 거대한 튀어나온 탑 위에 있는 방이 있는 문지기실(gatehouse)을 발굴했다.[22] 탑과 문지기실은 모두 제1성전 시대의 성문 단지(gate complex)의 일부였다. 규모를 보면 예루살렘의 강력한 왕이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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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오벨 문(Ophel Gate), 예루살렘.

 

이 성문(city gate)은 정확히 언제 건설되었을까? 마자르는 바닥 아래에 채움재에 있던 토기를 평가한 결과, BC 10세기에 솔로몬이 건설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주장했다. 이 성문의 크기가 위에서 언급한 세 도시, 즉 하솔(Hazor), 므깃도(Megiddo), 게셀(Gezer)에서 발견된 다른 성문들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그녀의 추측은 더욱 뒷받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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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 오벨 문(Ophel gate)과 지지 망루(supporting towers)를 예술가가 복원한 그림.

 

고고학자들은 이 세 도시에서 각각 유사한 설계와 크기로 지어진 ‘6방 성문(six-chambered gates)’을 발견했다. 이러한 유사성은 우연히 일치될 수 없어 보이며, 아마도 같은 시기에 같은 정부에 의해 공통된 설계도에 따라 건설됐을 것임을 시사한다. 예루살렘 성문(Jerusalem gate) 또한 다른 성문들과 매우 유사하여, 지역적 환경에 대응할 수 있었다. 네 개의 방이 명확하게 보존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6방 성문이었다는 증거도 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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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6. 솔로몬의 주요 도시들(하솔, 므깃도, 게셀, 예루살렘)의 성문들.

 

이가엘 야딘(Yigael Yadin)은 1957년에서 1970년 사이에 하솔, 므깃도(메기도), 게셀의 6방 성문들을 발굴했다. 야딘은 연대측정, 유사성, 그리고 열왕기상 9:15절을 근거로 이 성문들을 모두 솔로몬의 것으로 추정했다. 다른 학자들은 이러한 추정에 이의를 제기했는데, 특히 므깃도의 경우 성문 지역의 지층이 복잡하고, 발굴자들이 저연대(low chronology) 이론에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자기 유물과 C-14 연대측정 결과, 하솔과 게셀의 성문은 BC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매우 확실하게 나타났다. 종합적인 증거들을 종합해 보면, 적어도 이 두 성문은 솔로몬 시대의 성문이며, 므깃도 성문도 이례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

게셀과 므깃도에서 발견된 파괴층은 이 문들이 솔로몬의 문이라는 것과도 일치한다. 왜냐하면 파괴층은 문들이 지어졌던 시간과 연계되어 연대를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게셀은 여러 차례의 파괴를 보여준다. 한 번은 솔로몬의 문이 지어지기 직전이고, 또 한 번은 지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괴되었다. 이 증거들은 성경의 기록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성경은 이 시기에 게셀을 공격했던 두 파라오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공격은 열왕기상 9:16~17절에 설명되어 있다.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읍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솔로몬은 게셀을 재건했다.

두 번째 공격은 앞에서 언급한 셰숑크 1세(Shoshenq I, 시삭)에 의한 것이었는데, 그는 솔로몬이 죽은 지 몇 년 만에 이스라엘과 유다를 침략하여 수십 개의 도시와 마을들을 파괴했다.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열왕기상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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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 17. 므깃도의 솔로몬 문(Solomonic gate at Megiddo)

 

므깃도 역시 6방 성문이 건설된 직후 파괴되었다는 흔적을 보여준다. 셰숑크 1세(시삭)는 자신이 공격자였음을 나타내는 여러 기념물을 남겼다. 그는 므깃도에 카르투슈(cartouche, 왕이나 신의 이름을 상형문자로 기록해 둔 타원형 또는 장방형의 장식)와 함께 승전비(victory stele)를 남겼고, 그의 부바스티트 문(Bubastite Portal)에 므깃도를 정복 도시로 기재했다. 성경과 므깃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 사이에는 일치성이 있다. 이 문양은 솔로몬이 6방 성문을 건설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솔로몬이 이 도시들에 세운 것은 성문과 성벽뿐만이 아니었다. 하솔, 므깃도, 게셀은 왕궁과 다른 공공건물들이 성문과 같은 지층에서 발견되는 것을 통해, 왕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성경에서 솔로몬을 위대한 건축가로 묘사했던 것이 정확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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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8. 므깃도에서 발견된 셰숑크 1세의 승전비 조각(Fragment from a victory stele of Shoshenq I ).

 

예루살렘 성전

고고학자들은 한때 솔로몬 성전(Solomon’s Temple)이 있었던 성전산 지역(Temple Mount)을 직접 발굴할 수는 없지만, 성경에 나오는 성전에 대한 자세한 설명 기록들을, 당시 다른 성전들과 비교하여, 알려진 건축 방식 및 설계와 일관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다른 성전들은 물론이고, 작은 가정용 사당(shrines)에서도 솔로몬 성전과 매우 유사한 구조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성경은 솔로몬 성전이 세 부분으로 나뉜 긴 방 구조였으며, 앞쪽 현관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었고, 가장 끝에는 '지성소(holy of holies)'가 있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BC 2번째 천 년 기에 시리아(Syria)에서 매우 흔한 신전의 설계 형태였다. 이러한 배치는 그 후 BC 천 년기에 이스라엘로 전파되었고, 솔로몬이 BC 10세기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었을 때 선례가 되고 있었다.

솔로몬 성전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알려진 것은 시리아의 아인 다라(Ain Dara)에 있는 신히타이트 사원(Neo-Hittite temple)이다. 이 사원은 BC 1300년경에 지어졌으며, 솔로몬 시대를 훨씬 넘어 지속되었다. 이 사원의 발견은 실제로 성경에서 성전에 대한 설명에서 모호한 세부 사항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창틀 있는 붙박이 창문을 내고"(열왕기상 6:4)와 “...벽에 연접하여 돌아가며 다락들을 건축하되 다락마다 돌아가며 골방들을 만들었으니...중층 골방의 문은 성전 오른쪽에 있는데 나사 모양 층계로 말미암아 하층에서 중층에 오르고 중층에서 셋째 층에 오르게 하였더라”(열왕기상 6:5~10)가 있다. 예루살렘에서 매우 가까운 텔 모차(Tel Motza)에 BC 900년경에 지어진 사원에도 그러한 복도가 있었고, 다른 면에서도 솔로몬 성전과 매우 유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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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9. 솔로몬 성전과 많은 세부 사항이 일치하는 아인 다라의 사원(Ain Dara temple) . <Bertramz, CC BY-SA 3.0>

 

2012년 케이야파에서 발견된 작은 석회암 사당(limestone shrine)은 성전 건축의 세부 사항을 더욱 자세히 보여준다. 케이야파에 거주했던 시기가 사울과 다윗 시대로 추정되므로, 이 소형 사당은 솔로몬 성전 건축 직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케이야파 사당의 출입구 위쪽에는 세 개씩 튀어나온 직사각형이 있는데, 이는 지붕을 지탱하는 나무 들보의 끝부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열왕기상 6:5절, 15절, 7:3절, 에스겔 41:6절과 같은 구절에서 성경은 세 개씩 사용된 이러한 지붕 널빤지를 묘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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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0. 케이야파에서 발굴된 이동식 석조 사당(portable stone shrine).

 

또한 번역가들이 제1성전 출입구에 대한 성경적 묘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케이야파 사당은 고대 근동의 다른 많은 사원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인 여러 개의 움푹 들어간 출입구를 묘사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당은 지성소로 들어가는 출입구에 대해 “그 문인방과 문설주는 벽의 오분의 일이요”라고 명시한 열왕기상 6:31절과 같은 구절을 더 잘 이해하는 데 시각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흥미롭게도 솔로몬이 지은 출입구의 움푹 들어간 매립형 틀(recessed frames)의 수는 다양했다. 솔로몬의 궁전 입구는 세 개를 갖고 있었지만(열왕기상 7:5), 성전 입구에는 네 개가 있었다(열왕기상 6:33). 내부 성소 쪽으로 움푹 들어간 곳이 늘어나는 것은(다섯 개) 공간의 신성함이 증가함을 표시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성전의 설계에 대해서는 나무와 금으로 된 패널, 장식 요소, 가구 등을 포함하여 훨씬 더 많은 세부 사항들을 언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세부 사항들을 비교하는 이유는 성전의 세부 사항에 대한 성경의 묘사가 BC 10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알려진 건축적 특징들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솔로몬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전을 건축했다고 믿는 것이 타당하다.

 

솔로몬의 부와 장거리 무역

성경은 솔로몬의 막대한 부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역사적으로 타당할까? 솔로몬이 오빌(Ophir)이나 시바(Sheba, 스바)처럼 멀리 떨어진 지역과 무역을 했을 가능성이 있을까? 두 경우 모두 답은 '예'이다!

케네스 키친(Kenneth Kitchen)은 솔로몬의 재정에 대한 많은 성경적 주장을 다른 고대 경제 거래 기록 및 다양한 부의 지표들과 비교해보았다. 각각의 경우 성경의 수치는 비교 가능했으며, 겉보기에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열왕기상 10:14~15절은 솔로몬이 일부 소액 수입원을 제외하고, 세입금의 무게가 금 666달란트 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키친은 이러한 수치들을 분석하여, 솔로몬의 전체 통치기간 동안의 순자산을 추정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 그의 총 금 비축량은 … 모두 합쳐 약 500톤 정도였을 것이다. 솔직히 이 금액은 알렉산더 대왕이 수사(Susa)에서 약탈한 1,180톤의 금, 정복당한 페르시아 제국 전체에서 훔쳐낸 7,000톤의 엄청난 금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량이다. 솔로몬은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이것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24]

 

솔로몬의 무역망에 대한 기록도 마찬가지로 신뢰할 만하다. 열왕기상 9:26~28절에 따르면, 솔로몬의 종들과 두로(Tyre, 티레) 왕 히람(Hiram)의 종들은 금을 가져오기 위해 함께 오빌(Ophir)로 항해했다. “솔로몬 왕이 에돔 땅 홍해 물 가의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 히람이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그들이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이십 달란트를 얻고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

 

BC 8세기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오스트라콘(ostracon)에는 "벧호론을 위한 오빌의 금(Gold of Ophir for Beth-Horon)"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오빌은 신화의 땅이 아니었다. 오빌은 아라비아 반도의 마흐드 아드 다합(Mahd adh Dhahab)과 동일시될 가능성이 있다. 이곳은 수 세기 동안 금광이 있어서 금이 채굴되어 왔으며, 4,000년 동안 이용되어 온 이스라엘과의 무역로에 위치해 있다.

유명한 “스바(시바)의 여왕(Queen of Sheba)”(열왕기상 10:1~10)은 고대 예멘의 남쪽에 위치한 사바(시바)(Saba/Sabaea/Sheba) 왕국 출신이었다. 프랑스의 비문학자(epigrapher)인 앙드레 르메르(André Lemaire)는 다음과 같이 썼다.

… 고고학자들은 남부 레반트(Levant, 지중해 동부 연안)와 남부 아라비아 간의 국제 무역이 BC 2천 년기 말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해왔다.[25]

두 개의 중요한 비문(inscriptions)은 이스라엘과 시바 왕국 사이의 무역을 구체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BC 600년경으로 추정되는 시바어(Sabaean, 사바어)로 쓰인 비문이 발견되었다. 시바 왕의 사절이 쓴 이 비문은 "유다 성읍들"로의 무역 원정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었다.[26]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솔로몬 시대에 시바와 예루살렘 사이에 향신료 무역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무역 관계가 솔로몬 시대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다.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오스트라콘(ostracon, 글이 새겨진 도자기 조각)의 최근 해독 결과는 이에 대한 흥미로운 증거를 제시한다. 오펠 피토스 비문(Ophel pithos inscription)으로 알려진 이 도자기 조각은 2012년 오벨(Ophel, 오펠)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도자기 조각과 비문(구워지기 전에 표면에 새겨진) 모두 BC 10세기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한동안 학자들은 이 비문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 실제 내용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2023년, 비문학자 다니엘 바인스텁(Daniel Vainstub)은 이 미스터리를 해결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27] 그는 어떤 독특한 글자 형태는 이 비문이 독특한 고대 남아라비아 문자로 쓰여졌음을 가리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비문은 남아라비아 반도에 자생하는 관목에서 얻어진, 끈적끈적한 갈색의 수지인 랍다넘(labdanum, 랍다늄)이라 불리는 일종의 향이 나는 수지(resin)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랍다넘은 아마도 성경에서 성막에서 사용된 거룩한 향을 내는 네 가지 재료 중 하나로 언급된 '나감향(onycha)'일 것이다(출애굽기 30:34~38).[28] 동일한 향이 솔로몬 성전에서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이 도자기 조각이 성전산 바로 남쪽에서 발견된 것은 적절하다. 글자들에 대한 고문서학(paleography)은 BC 10세기의 연대를 확인시켜 주고 있으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솔로몬 시대에 시바와 예루살렘 사이에 향신료 무역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웃 국가들

현재 확인 가능한 것들에 따르면, 통일왕국시대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에 대한 묘사 역시 성경 기록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다윗과 솔로몬은 북쪽에 있는 두 왕국인 그술(Geshur, 게슈르)과 베니게(Phoenicia, 페니키아)와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고고학은 BC 10세기에 그술의 수도를 포함하여 여러 도시들이 존재했음을 확인해준다. 다윗은 그술의 공주와 결혼했고, 이 결혼으로 압살롬이 태어났는데(역대상 3:2), 그는 나중에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그술로 도망쳤다.(사무엘하 13:3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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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게서 피신했던 그술 왕국의 수도에 있는 문(gate at the capital city of the kingdom of Geshur). 이 문은 다윗 시대 이후의 것이지만, BC 10세기에 만들어진 문도 이곳에서 발굴되었다.

 

더욱이 이스라엘과 두로(Tyre), 시돈(Sidon) 같은 페니키아의 도시들과도 무역이 존재했다. 고고학적 증거에서 알 수 있듯이, 페니키아 목재, 도자기, 그리고 예술품은 이스라엘에 널리 퍼져 있었다. 성경은 다윗과 솔로몬이 두로 왕 히람(Hiram)과 협력하여 왕궁과 성전을 건축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BC 10세기에 만들어진 '아히람(Ahiram)' 왕의 화려한 석관(sarcophagus)이 비블로스(Byblos, 고대 페니키아의 도시)에서 발견된 것을 보면, 히람의 흔적도 발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성경 속 히람이 두로뿐만 아니라, 비블로스도 통치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이는 당시 페니키아 통치자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성경은 다윗이 요르단 강 동쪽에서 암몬(Ammonites), 모압(Moabites), 에돔(Edomites)을 정복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민족들은 당시 확고한 왕국을 형성했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세속 학자들은 이 시기에 이 부족들이 왕이 다스리는 국가로 조직되었다는 데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증거들은 적어도 에돔과 관련하여 그들의 회의론을 반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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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2. 에돔의 딤나 골짜기(Timna Valley, 팀나 계곡). <Eliran T, CC BY-SA 4.0>

 

에서(Esau, 에돔족의 조상)의 족보에 대하여 창세기 36:31절은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의미심장하게도, 2012년 이후에야 초기 에돔 왕국의 증거가 밝혀졌다. 이는 에돔 영토, 딤나 골짜기(Timna Valley, 팀나 계곡)과 와디 파이난(Wadi Faynan)에 흩어져 있는 고대 구리 광산 유적지에서 고고학적 발굴이 재개되면서 밝혀졌다.[29] 고고학자들은 이집트가 후기 청동기시대에 이 유적지를 지배했지만, BC 1300년경에 포기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굴 작업은 계속되었는데, 이는 그 지역 에돔인들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은 효율성 높은 새로운 제련 기술을 사용하여 수 세기에 걸쳐 더 많은 구리를 채굴하는 능력을 발전시켰다. 두 광산은 동시에 발전했기 때문에 기술 발전을 공유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외딴 지역에서 산업이 발달하고 정교한 기술이 보급된 것을 보면, 에돔은 BC 11세기, 어쩌면 그보다 더 일찍 국가를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30]

더욱이 BC 1000년경에 광산들은 이스라엘의 영향으로 인해 또 다른 문화적 변화를 보여주었다. 철기시대 이스라엘 전역에서 사용되었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새로운 가옥들이 등장했다. 또한, 이스라엘과 지중해에서 유래한 이국적인 음식과 값비싼 직물이 발견되었다. 제련 공정의 발전으로 이 시기에 광산 운영은 절정에 달했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중요한 이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요새(앞서 언급한 네게브 요새(Negev forts))가 건설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에돔 사람들을 자신의 종으로 삼았던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사무엘하 8:13~14절의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라는 구절과 잘 일치한다. 다윗과 솔로몬은 에돔의 구리 산업을 장악하여 에돔 경제의 부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의 사후, 이집트의 셰숑크 1세(Shoshenq I)가 이 지역을 점령했고, 그 후 상당수가 버려졌다. 셰숑크의 지배 하에 있던 나머지 시설들은 이집트 기술을 이용하여 더욱 확장되고 개선되었다. 결론적으로, 통일왕국시대에 이 에돔 광산에서 일어난 일련의 변화는 성경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현재 BC 10세기 암몬과 모압 왕국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은 제한적으로만 발견되었다. 하지만 최근 에돔에 대한 발굴이 그랬듯이, 향후 발굴을 통해 이 왕국들에 대한 기존의 세속적 가정에 쉽게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스라엘 왕국은 유프라테스 강까지 확장되었는가?

성경은 다윗과 솔로몬이 북쪽에 다른 강력한 이웃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이웃들은 아람인들의 소바(Zobah) 왕국 (벧르홉(Beth-Rehob)을 포함하여), 다메섹(Damascus, 다마스쿠스), 마아가(Maacah), 돕(Tob), 하맛(Hamath)의 신히타이트(Neo-Hittite) 왕국이다.[31] 성경은 다윗이 소바와 다메섹의 아람 왕들을 물리치고 복종시켰지만, 하맛과는 평화를 이루었다고 말한다(사무엘하 8:3~12). 그러나 솔로몬은 나중에 하맛과 싸워 물리쳤고(역대하 8:3~4), 유프라테스 강까지 뻗어 있는 영토를 지배했다고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다(열왕기상 4:21~25, 8:65). 일부 세속 학자들은 다윗과 솔로몬이 이 시리아 국가들을 합병하여 유프라테스(Euphrates, 유브라데) 강까지의 속국을 지배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일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할 만한 강력한 이유는 없다.

지금까지 고고학은 BC 10세기의 아람(Aram) 왕국에 대한 매우 적은 정보만을 제공했다.[32, 33] 이러한 자료 부족은 성경 기록을 확인해주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의 기자들은 적어도 당시의 아람 왕국을 독립적인 도시국가들로 정확하게 묘사했다. 이것은 BC 732년 앗수르 제국이 아람-다마스쿠스를 정복하고, 그 지역을 세 개의 속주로 나눈 이후로는 더 이상 도시국가들이 아니었다.[34] 이집트와 앗수르 제국은 BC 10세기에 비교적 약했고, 한때 시리아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히타이트 제국은 BC 1180년경에 붕괴되었다.[35] 이 영토에 대한 통제력 부족으로 여러 개의 신히타이트와 아람의 소규모 왕국들이 생겨날 수 있었다.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에 군주제가 일어나, 그 지역에서 세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여지를 만들었을 수 있었다. 다윗과 솔로몬이 이 지역을 정복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하고 성급했던 주장이었던 것이다.

또한, 다윗이 물리쳤던 소바 왕 하닷에셀(Hadadezer)과 그의 라이벌이었던 하맛 왕 도이(Toi)에 대한(사무엘하 8:3, 8:9) 잠재적 증거가 있다. 앗수르 왕 살만에셀 3세(Shalmaneser III)의 비문에는 아슈르-라비 2세(Assur-rabi II, 다윗과 동시대 인물)의 초기 통치기간에 "아람의 왕"이(이름이 기재되지 않음) 유프라테스 강 근처의 두 도시를 정복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왕은 유프라테스 강에서 한때 영토를 지배했다고 전해지는 성경의 하닷에셀을 언급한 것일 수 있다(사무엘하 8:3).[36] 반면, 살만에셀이 언급한 아람은 남부 시리아가 아니라, 상부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37] 증거들은 결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둘째, 일부 사람들은 하맛 왕 도이가 BC 1000년경 팔리스틴(Palastin)의 후기 히타이트(Late Hittite) 왕국을 통치했던 타이타 왕(King Taita)과 동일 인물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38] 타이타 왕의 초상과 그에 대한 비문(inscription)이 알레포(Aleppo)에 있는 루위족 폭풍신(Luwian storm god)에게 바쳐진 한 사원에 남아 있다. 그러나 타이타와 도이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은 논란 중이며,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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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3. 알레포(Aleppo)에 있는 한 사원에 묘사되어있는 타이타 왕(King Taita, 오른쪽)과 폭풍의 신(storm god, 왼쪽). <Orf3us, CC BY 3.0>

 

전반적으로 다윗과 솔로몬이 유프라테스 강까지 뻗쳐 있는 북쪽 왕국들을 일시적이라도 정복했다는 것은 고고학적으로 확실하게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들은 성경 기록과 모순되지 않는다.

 

셰숑크의 공격

이미 언급했듯이, 셰숑크 1세(Shoshenq I, 성경의 시삭, Shishak)는 솔로몬이 사망한 직후인 BC 925년경 이스라엘과 유다의 여러 도시들을 공격했다. 그의 원정은 통일왕국이 붕괴된 직후에 이루어졌지만, BC 925년 이전에 강력한 왕국이 존재했었다는 증거를 여전히 제공한다. 아미하이 마자르(Amihai Mazar)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가나안을 공격했던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군사 원정과는 달리, 셰숑크의 목록에는 벧호론(Beth Horon)과 기브온(Gibeon)처럼 예루살렘 북쪽의 장소들이 언급되어 있다. 이에 대한 유일한 타당한 설명은 이집트인들의 눈에 이례적인 원정 경로를 정당화할 만큼, 중부 구릉지대에 중요한 정치 세력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세력의 유력한 후보는 솔로몬 왕국뿐이다.[40]

더욱이, 셰숑크에 대한 세부적인 성경 기록은 이집트와 다른 성경 외 기록에서 알려진 것과 일치한다. 예를 들어, 셰숑크 1세는 전임자로부터 왕좌를 물려받은 토착 이집트 파라오가 아니었다. 그는 이집트를 정복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 리비아인이었다. 이것은 솔로몬이 이전 파라오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심지어 그의 딸과 결혼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열왕기상 9:16). 그러나 리비아인 파라오 셰숑크 1세는 솔로몬의 적 여로보암(Jeroboam)을 보호해준 적이 있었고(열왕기상 11:40), 솔로몬이 죽은 후 성전을 약탈했다(열왕기상 14:25~26).

 

결론

앞서 언급한 모든 것들 외에도, 사울, 다윗, 솔로몬에 대한 다른 증거들을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이 썼던 시편과 잠언은 당시 성서 외 문헌들과 문체적으로 동일했음(stylistic equivalents)을 보여준다. 이 성경 속 왕들의 역사성에 대한 모든 구체적인 의문들을 이 글에서 모두 다루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개괄은 성경 기록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여러 타당한 이유들을 제시해준다. 사울, 다윗, 솔로몬에 대한 증거들은 풍부하며, 고고학적 발견들이 현재의 추세대로 계속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증거들이 나타날 것이다.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통일왕국시대가 대부분 전설적이거나 과장되었다는 세속적 학자들의 주장에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에 대한 신뢰할 만한 길잡이로 언제나 입증되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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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e History—‘out with David and Solomon!’

 

*Who is… Solomon and what is his significance? (ChristianAnswers.net)

https://christiananswers.net/dictionary/solomon.html

*Who is… Saul (ChristianAnswers.net)

https://christiananswers.net/dictionary/saul.html

*Biblical archaeology (Creation Wi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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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blePlaces Blog에서 David 관련 자료

https://www.bibleplaces.com/?s=david&apbct__email_id__search_form=

BiblePlaces Blog에서 Solomon 관련 자료

https://www.bibleplaces.com/?s=solomon&apbct__email_id__search_form=

*Archaeological evidence of David

https://christiananswers.net/dictionary/david.html#archaeologyanddavid

 

*Video :

Archaeology Confirms Old Testament Kings Really Existed

https://creation.com/en/podcasts/archaeology-confirms-old-testament-kings-really-existed

King David—Top 10 archeological discoveries

https://youtu.be/n1SA1hicOxg

Top Ten Discoveries in 2024 in Biblical Archaeology

https://youtu.be/tooupyMw1iU

Top Ten Discoveries in 2023 in Biblical Archaeology

https://youtu.be/NHEE8Z34DDs

Top 10 Bible Archaeology Discoveries of 2022

https://www.youtube.com/watch?v=Xai4iRKL57M

Top Ten Discoveries in 2021 in Biblical Archaeology

https://youtu.be/PdDUv407hSM

Top 10 Bible Archaeology Discoveries That Prove the Scriptures!

https://www.youtube.com/shorts/5O7MQB0NWCo

  

References and Notes

1. Finkelstein, I., and Silberman, N.A., David and Solomon, Free Press, New York, NY, 2006, p. 21.

2. New high-resolution photography of this monument has renewed scholarly debate on the subject. See Lemaire, A. and Delorme, J., Mesha’s stele and the house of David, Biblical Archaeology Review 48(4): 34–41, 2022. See also Richelle, M. and Burlingame, A., Set in stone? Another look at the Mesha Stele, Biblical Archaeology Review 49(1):54–57, 2023.

3. For more information, see Cox, G., Strengthening the Shishak/Shoshenq synchrony, J. Creation 36(2):40–49, 2022; creation.com/strengthening-the-shishak-shoshenq-synchrony.

4.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 93, 2006.

5. Dever, W., Beyond the Texts, SBL Press, Atlanta, GA, pp. 289–291, 324, 2017.

6. Mazar, A., Archaeology of the Land of the Bible, Doubleday, New York, NY, pp. 390–396, 1990.

7. For example, Dever, W.G., Solomon, Scripture, and science: the rise of the Judahite state in the 10th century BCE, Jerusalem Journal of Archaeology 1:102–125. Also,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2006.

8. One need not adopt even more radical revisions to the chronology of this era either, such as proposals by David Down and David Rohl that put the United Monarchy in different parts of the Late Bronze Age. These revisionists destroy the excellent harmony between the biblical description of the 11th and 10th centuries BC and the Iron Age archaeological finds.

9. Dever, W., Beyond the Texts, SBL Press, Atlanta, GA, p. 363, 2017.

10. Garfinkel, Y., et al., In the Footsteps of King David, Thames & Hudson, London, UK, pp. 167–170, 2018.

11. Mazar, A., Archaeology of the Land of the Bible, Doubleday, New York, NY, 1990, pp. 371–374.

12. Garfinkel, Y., et al., In the Footsteps of King David, Thames & Hudson, London, UK, pp. 106, 178, 2018.

13. See 2 Samuel 2:8–15; 3:7–15; 4:5–12.

14. Garfinkel, Y., et al., In the Footsteps of King David, Thames & Hudson, London, UK, p. 126, 2018.

15. Borschel-Dan, A., Colossal ancient structures found at Gath may explain origin of story of Goliath, timesofisrael.com, 26 July 2019.

16. The Philistine champion, Goliath, was from Gath (1 Samuel 17:4). David sought refuge in Gath more than once when fleeing from King Saul (1 Samuel 21:10; 27:2–4). King Achish of Gath was part of a coalition of Philistine lords who set out to attack Saul (1 Samuel 29). He controlled much territory, and even bequeathed the town of Ziklag to David (1 Samuel 27:6).

17.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2, 2002.

18. Finkelstein, I. and Silberman, N.A., David and Solomon, Free Press, p. 39, 2006.

19.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2, 2002.

20. Chadwick, J.R., Discovering Hebron,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1(5):24–33, 70, 2005.

21. Finkelstein, I., The Forgotten Kingdom: The Archaeology and History of Northern Israel, SBL Press, Atlanta, GA, p. 43, 2013.

22. Mazar, E., Discovering the Solomonic Wall in Jerusalem, Shoham Academic, p. 85, 2011.

23. Eames, C., A study into King Solomon’s FOUR monumental gates, Let the Stones Speak 1(6):10–19, November–December 2022.

24.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 134, 2006.

25. Lemaire, A., Solomon & Sheba, Inc.,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6(1):55–56, 2010.

26. Lemaire, A., Solomon & Sheba, Inc.,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6(1):55–56, 2010.

27. Vainstub, D., Incense from Sheba for the Jerusalem Temple, Jerusalem Journal of Archaeology 4:42–68, 2023.

28. Carter, R., Egyptian mummies and Hebrew perfume, creation.com/egyptian-mummies-hebrew-perfume, 7 March 2023.

29. Ben-Yosef, E. and Greener, A., Edom’s copper mines in Timna: their significance in the 10th century, thetorah.com, 12 August 2018.

30. Nagtegaal, B., Archaeology confirms biblical account of Edomite statehood, armstronginstitute.org, 12 November 2019.

31.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0, 2002.

32.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3, 2002.

33.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 90, 2006.

34.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2, 2002.

35.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p. 88–90, 98–99, 2006.

36.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 94, 2006.

37. Pitard, W.T., Ancient Damascus, Eisenbrauns, Winona Lake, IN, pp. 90–92, 1987.

38. Janeway, B., Old Testament king discovered?, biblearchaeology.org, 11 February 2011. See also University of Haifa press release, The history of King David, newswire.com, 15 December 2014. Some have also proposed there may have been more than one Taita ruling in succession.

39. Na’aman, N., Memories of monarchical Israel in the narratives of Davidʼs wars with Israelʼs neighbours, Hebrew Bible and Ancient Israel 6:323–324, 2017. Also, Thomas, Z., Reckoning with David in scholarship and media, asor.org/blog, 5 June 2015.

40. Mazar, A., The search for David and Solomon: an archaeological perspective, in Schmidt, B.B., ed., The Quest for the Historical Israel, Leiden: Brill, p. 124, 2007.

 

 

*참조 : 사울, 다윗, 솔로몬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 - 1 : 고고학은 이스라엘 통일왕국에 대한 성경 기록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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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에서 노아와 대홍수를 찾아서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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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의 성벽 : 고고학적 확인에 의하면 여리고성의 벽은 정말로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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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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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MI, 2023. 7. 9. Updated 2023. 8. 3.

주소 : https://creation.com/en/articles/david-and-solomon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5-11-07

사울, 다윗, 솔로몬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 - 1

: 고고학은 이스라엘 통일왕국에 대한 성경 기록을 뒷받침한다.

(Evidence for Saul, David, and Solomon

Archaeology supports the biblical record of Israel’s united monarchy)

By Keaton Halley


  고고학적 발견들은 다윗 왕, 솔로몬 왕, 그리고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확증해 준다.


    초기 이스라엘 왕국(Israelite kingdom)의 역사성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몇몇 영향력 있는 고고학자들은 사울, 다윗, 솔로몬이 다스렸던 왕정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거부하며, 물리적 증거들은 성경 기록과 모순된다고 주장해왔다. 이 왕들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통치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어떤 학자들은 성경이 그들의 권력, 부, 영향력, 그리고 업적을 과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학자들은 더 나아가 다윗과 솔로몬이 BC 10세기에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열두 지파 전체를 다스리지 못했으며, 지역적으로 소규모 부족장들에 불과했다고 주장한다. 핀켈슈타인과 실버먼(Finkelstein and Silberman)은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성경에 나오는 다윗과 솔로몬 이야기의 유명한 에피소드 중 상당수는 허구이며, 역사적으로 의심스럽거나 매우 과장되어 있다. …성경에서 묘사하는 방식으로 이스라엘에 통일왕국이 존재했던 적이 없다.[1]

이러한 주장은 마치 의심의 여지 없이 합리적으로 입증된 것처럼, 대중들에게 자주 반복적으로 선전되고 있다. 하지만 사실들에 대한 매우 논란의 여지가 있는 해석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사울, 다윗, 솔로몬 왕에 대한 성경의 상세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이 점점 더 많이 발굴됨에 따라, 초기 이스라엘 왕국에 대한 회의론은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약화되어 왔다. 다음은 그러한 고고학적 증거들 중 일부이다.


적국의 왕들이 언급한 다윗과 그의 왕조

1993년 이전에 '최소주의자(minimalists, 성경의 역사성을 조금만 인정하는 학자들)'라고 불리는 급진적 회의론자들은 다윗 왕국의 증거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고 주장했고, 그들은 다윗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해에 고대의 텔 단(Tel Dan) 유적지의 한 벽에 묻혀있던 조각난 석비(stele, 비문이 새겨진 석조 기념물)이 발견되었다. 지금은 텔 단 석비(Tel Dan Stele)라고 불리는 이 비석은 열왕기하 8~9장에 묘사되어 있는 것처럼, 이스라엘 왕 요람(Joram)과 싸워 그에게 부상을 입혔던, 아람 왕 하사엘(Hazael)이 쓴 것이었다. BC 840년경(다윗 왕 이후 약 130년)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석비에서, 하사엘은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Ahaziah)를 죽였다고 자랑하고 있었다. 그러나 성경 본문에 따르면, 두 사람을 모두 죽인 사람은 예후(Jehu)이다. 놀랍게도 비문에는 아하시야가 "다윗의 집(the house of David, 다윗 가문)"에 속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는 유다 왕국과 다윗이 세운 왕조를 가리킨다. 이 구절은 당시 아시리아 비문에 사용된 "오므리의 집(the house of Omri, 오므리 가문)" 출신 이스라엘 왕들을 언급하는 문구와 유사하다. 이 발견은 다윗의 존재를 확인해줄 뿐만 아니라, 그가 단순한 지역 족장이 아니었음을 시사한다. 그는 유다 왕조를 세운, 널리 알려진 왕으로, 다윗에게 영원한 왕조를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언약적 약속(사무엘하 7:4~17)에 따라 통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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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텔 단 석비(The Tel Dan Stele) <Keaton Halley>


텔 단 석비가 발견된 이후, 학자들은 다른 두 개의 고대 비문들도 다윗을 언급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 흥미롭게도, 이 비문들도 성경에 언급된 외국 왕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 첫째, 메사 석비(Mesha Stele)에서 모압(Moab) 왕 메사(Mesha, 열왕기하 3장)는 이스라엘 왕 오므리,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 그리고 아마도 "다윗의 집(house of David)"을 언급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중요한 문구의 핵심 글자 몇 개가 손상되어 일부 학자들은 이 해석에 이의를 제기한다. 그러나 글자 간격과 맥락을 고려할 때, 이 석비가 다윗을 두 번째로 언급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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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메사 석비(Mesha Stele) <Mbzt, CC BY-SA 4.0>


세 번째 언급은 한 이집트 사원의 벽에서 발견될 수 있는데, 그곳은 룩소르(Luxor)의 카르나크 사원(Karnak Temple, 카르낙 신전)에 있는 파라오 셰숑크 1세(Shoshenq I, 시삭)의 부바스티스 대문(Bubastite Portal)이다. 성경은 파라오인 시삭(Shishak, 전통적으로 셰숑크 1세로 알려져 있으며, 이집트 제22왕조의 리비아인 파라오)이 솔로몬이 죽은 지 몇 년 후에 유다를 침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열왕기상 14:25~27, 역대하 12:1~12). 우리는 셰숑크가 북이스라엘 왕국도 원정을 떠나 공격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의 사원 벽에는 그가 정복했다고 주장하는 이스라엘과 유다의 유적지 목록이 많이 있으며, 이러한 장소들 중 많은 곳에서 셰숑크의 목록을 뒷받침하는 파괴의 증거들이 있기 때문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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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이집트 룩소르 카르나크 사원의 셰숑크 1세 부바스티트 문(Bubastite Portal of Shoshenq I, Karnak Temple, Luxor, Egypt)에 있는 105번과 106번 링의 이름에서 다윗을 언급했을 가능성이 있다(현재는 침식되었지만 명확성을 위해 스케치되어 있음).


이집트학자이자 복음주의 학자인 케네스 키친(Kenneth Kitchen)은 셰숑크가 네게브(Negev, 유다 남부의 사막 지역)에서 패배시켰다고 주장하는 유적지 중 하나를 "다윗의 언덕(heights of David)"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했다.[4] 이것이 맞다면, 그 유적지(정확한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음)는 다윗 왕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을 수 있다. 성경은 그가 사울에게서 숨어 있을 때, 북부 네게브 근처에서 시간을 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사무엘상 27장, 30장). 또는 "다윗의 언덕"이라고 불리는 유적지는 BC 10세기에 지어진 중부 네게브 고원의 50개 이상의 작은 요새들 중 하나를 가리킬 수 있다. 시기를 보면 이 중 일부 또는 전부가 다윗에 의해 지어졌고, 나중에 셰숑크에 의해 파괴되었을 수 있다.[5, 6] 이 네게브 요새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곧 다루겠다.


'저연대' 이론의 도전

다윗에 대한 이러한 직접적인 언급은 BC 10세기에 그가 실존했다는 강력한 증거들을 제공했고, 그의 유산에 대한 성경적 주장에 신빙성을 부여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이스라엘 핀켈슈타인(Israel Finkelstein)이 이끄는 새로운 학자 그룹은 다윗 왕국에 대한 다른 많은 명백한 증거들을 훼손하는, 기존 연대 틀에 대한 급진적인 수정을 제안했다. 핀켈슈타인의 소위 '저연대(low chronology)' 이론은 이전에 BC 10세기(다윗과 솔로몬 시대)로 간주된 지층이 실제로는 BC 9세기로 연대가 매겨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수정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 일부 도자기들 비교와 C-14 연대측정에 근거한 것이었다. 만약 그들의 주장이 맞다면, 아래에서 논의할 강력하고 잘 연결된 도시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은 다윗과 솔로몬이 아니라, 오므리와 그의 아들 아합과 같은 BC 9세기의 후대 왕들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저연대 이론에서는, 이전에 사사시대에 속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철기시대 I(Iron Age I)의 작은 마을들도 다윗과 솔로몬 시대로 추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다윗과 솔로몬 왕들이 성경에 묘사된 것만큼 강력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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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연대기 이론들의 비교 연대표(timeline).


그러나 핀켈스타인을 비롯한 저연대 이론 주장자들이 학술지에 자신들의 주장을 계속 제시하고, 다윗과 솔로몬의 증거들에 대한 대중적 논의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주장은 다른 많은 주요 고고학자들의 엄중한 비판을 받아왔다.[7] 이러한 반응은 저연대 이론의 관점이 통일왕국에 대한 많은 증거들을 뒤집을 위험이 있는 반면에, 저연대 이론 자체도 그에 반대되는 강력한 증거들로 인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었다. 고고학적 자료들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여전히 부유하고 강력했던 BC 10세기 이스라엘 왕국을 뒷받침하고 있다.[8]


도시들의 증가

이스라엘 전역의 여러 유적지에서 발굴된 유물들은 BC 1000년경, 즉 성경에서 이스라엘이 사사시대에서 왕정으로 전환되었다고 기록된 시기에, 상당한 문화적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준다. 고고학자들이 철기시대 I(Iron Age I) 라고 부르는 사사시대에는 작은 마을 정착지들이 많았다. 그러나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와 관련이 있는 철기시대 IIA( Iron Age IIA)에는 새로운 도시들이 기존 마을에 그리고 새로운 지역에 건설되었다. 새로운 성벽과 요새들도 건설되었다. 이러한 도시들은 또한 중앙 계획에 의해 건설되었다는 증거들을 보여주며, 건설 과정은 종종 외부 지역의 노동력이나 자금이 조달되었음을 시사한다. 이는 필요한 감독과 자원을 공급할 수 있는 중앙 정부의 등장을 시사한다. 고고학자 윌리엄 데버(William Dever)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정착 유형과 패턴의 변화만으로도 널리 채택된 기준에 따라 BC 10세기, 즉 철기시대 2A 기를 왕정 시대로 정의하는 것은 타당하다.[9]

따라서 군주제(monarchy)가 존재했으며, 증거는 이스라엘과 유다 전역에서 군주제가 운영되었음을 시사한다. 첨부된 지도는(그림 5) BC 10세기에 건설되거나 개축된 이러한 이스라엘 유적지들이 얼마나 널리 퍼져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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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BC 10세기 이스라엘 유적지 지도. 


키르벳 케이야파 - 인상적인 이스라엘 국경 요새

유다 왕국 외곽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 계획과 기념비적 건축의 매우 인상적인 사례는 키르벳 케이야파(Khirbet Qeiyafa)라는 유적지이다. 케이야파 발굴과 유적 연대측정 결과, 사울과 다윗 시대에만 건설되어 거주하다가, 불가사의하게 파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건축 양식, 토기, 돼지 뼈의 부재, 그리고 기타 여러 요인들로 미루어 보아, 이곳은 분명 이스라엘 도시였음이 분명하다.[10] 그러나 건축 양식으로 보아 지역 주민들의 능력 밖이었고, 책임 소재가 불분명하다. 케이야파는 중앙집권 왕국의 명령으로 건설되었을 것이다. 구체적인 증거로는 둘레에 평행한 이중 벽으로 이루어진 ‘포곽벽(casemate wall, 요새를 보호하는 이중 성벽)’이 있으며, 내부에서 접근할 수 있는 방들로 나뉘어져 있다. 이 도시에는 두 개의 문이 있었는데 이는 특이한 특징이며, 이것을 위치와 결합해보면, 케이야파는 히브리어로 '이중 문(double gates)'을 뜻하는 성경의 장소인 사아라임(Shaaraim, שַׁעֲרַיִם)으로 거의 확실하게 추정된다. 포곽방의 입구는 항상 문에서 가장 먼 모서리에 위치했는데, 이는 벽과 문이 사전에 계획되어 함께 건설되었음을 시사한다. 정상부에는 인상적인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거대한 궁전도 있었다. 두꺼운 벽은 여러 층으로 이루어진 공공건물이었음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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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엘라 골짜기를 내려다보고 있는 키르벳 케이야파의 포곽벽(Casemate wall at Khirbet Qeiyafa, overlooking the Valley of Elah)


케이야파(Qeiyafa, Shaaraim, 사아라임)는 다윗이 골리앗과 싸웠던 엘라 골짜기(Elah Valley)를 내려다보고 있다. 실제로 사아라임은 사무엘상 17:52절의 전투 기록에 언급되어 있으며, 전투가 일어난 근처인 소고(Socoh)와 아세가(Azekah) 사이에 위치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사무엘상 17:1~3). 사실, 일부 사람들은 사아라임이 바로 사울과 그의 군대가 주둔했던 산이라고 제안했다. 사무엘상 17:20절에서 사용된 '진영(encampment)'이라는 용어는 한 원형 성벽(circular rampart)을 나타낸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케이야파 언덕 위의 타원형 요새를 정확하게 묘사한 것으로 보인다. 사아라임은 사울 왕(King Saul)이 건설했을 수 있는데, 왜냐하면 다윗이 왕이 되기 전부터 이미 그 장소에 존재했기 때문이다.(역대상 4:31). 이는 케이야파의 고고학적 연대측정과 일치한다.

어쨌든, 가드 근처에 있는 이 요새는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유다 국경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된 것으로 보인다. 유다 내륙 지역에 거대한 돌담, 성문, 공공건물들이 건설되었다는 것은, 이 사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외부 인력을 공급할 수 있는 통치 행정부가 존재했음을 시사한다. 만약 이처럼 인상적인 건설이 이스라엘 변방에서 이루어졌다면, 수도에서도 유사한 건설 활동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사울의 수도 기브아(Gibeah)에도 이와 같은 시기에 건설된 요새가 있었다는 증거가 있다.[11]


키르벳 케이야파의 주목할만한 도자기

키르벳 케이야파에서 발견된 몇몇 소규모 유물들은 초기 군주제에 대한 성경적 주장의 정확성을 뒷받침한다. 첫째, 발굴된 토기 대부분은 대량 생산되었으며, 항아리 손잡이에 손가락 자국(finger impressions)이 남아 있었다. 이는 이스라엘 토기의 특징일 뿐만 아니라, 발굴자들은 지역 주민들이 이 항아리에 농산물을 채워 정부에 반납해야 했던 과세 제도를 시사한다고 생각하고 있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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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키르벳 케이야파에서 발굴된 한 저장 항아리(a storage jar)에 새겨진 “베다의 아들 에스바알(Eshbaal, son of Beda)” 


둘째, 2012년에 발견된 한 특별한 저장 항아리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의 이름이 새겨진 비문이 있었다. 바로 "베다의 아들 에스바알(Eshbaal, son of Beda)"이었다. 이 인물의 삶에 대한 성경 기록은 없지만, 사울의 아들 중 한 명의 이름도 에스바알이었다(역대상 8:33, 9:39). 흥미로운 것은 성경 기자들이 바알(Baal, 가나안의 폭풍의 신)을 찬양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이스보셋(Ish-bosheth)'으로 바꾸었다. 즉, '바알의 사람(Man of Baal)'이라는 의미가 '수치의 사람(Man of Shame)'으로 바뀐 것이다.[13]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비문에 따르면, '~ 바알'로 끝나는 신의 이름을 붙인 이름이 BC 10세기에는 흔했지만, 이후 몇 세기 동안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패턴은 성경 속 이름에서도 발견된다. 따라서 성경은 어떤 명명 관습이 어떤 시대에 속하는지에 대해서도 역사적으로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에스바알이라는 이름의 발생을 추적하면서, 가핑클(Garfinkel et al.) 등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

… '에스바알'이라는 이름은 BC 9~6세기 사이로 알려진 고대 이스라엘의 수백 개의 비문이나, 1천 개가 넘는 인장(seals) 및 인장 자국(seal impressions)들에서 발견된, 2,000개가 넘는 이름들 어디에도 발견되지 않았다. 성경적 전통과 고대 비문에 나타난 사람들의 이름과 연대에 따른 분포 사이의 상관관계는 성경 본문이 다윗 왕의 시대와 관련된 진정한 전통을 보존하고 있음을 시사한다.[14]


*참조 : 사울 왕의 아들 ‘에스바알(이스보셋)’의 이름이 새겨진 3,000년 전 도자기가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84&bmode=view


셋째, 케이야파에서 발견된 오스트라콘(ostracon, 문양이 새겨진 도자기 조각)에는 고대 히브리 문자로 쓰여진 글자가 뚜렷하게 드러나 있었다. 아직 완전히 해독되지는 않았지만, "왕(king)", "제사장(judge)", "노예(slave)", "하지 말라(thou shalt not)" 등 일부 단어와 구절은 알아볼 수 있었다. 이 글은 모세 율법을 연상시키는 정의와 도덕의 문제를 다룬 것으로 보인다. 언급된 왕은 초기 이스라엘 왕일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주제는 이스라엘 민족이 사사들의 통치에서 벗어나 왕국으로 거듭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 성경적 시기에 분명히 잘 어울린다.

여기에는 또 다른 중요한 점이 있다. 이처럼 시골 지역에서 이러한 문자로 된 기록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BC 10세기에 문해력(literacy,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널리 퍼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또한 이는 이 시기에 이미 이스라엘 왕국이 건국되었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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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왕(king)"을 언급하고 있는 히브리어 비문이 새겨져 있는 케이야파에서 발굴된 오스트라콘(Qeiyafa ostracon, 도자기 조각).


가드의 두드러짐


성경 저자들은 BC 10세기의 사건들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접근할 수 있었음을 고고학은 보여주었다.


세속적 학자들은 성경 사무엘상하에 기록되어 있는 사울과 다윗에 대한 사건들이 수 세기가 지난, 아마도 BC 8세기 또는 그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이라고 일반적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사무엘서의 기자가 다윗의 이야기를 BC 8세기의 배경에 두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책의 기자는 BC 10세기부터 어떤 도시가 점령되었고, 어떤 도시가 가장 유명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접근했음을 고고학은 보여준다. 성경 기록과 BC 10세기 현실 사이의 밀접한 일치는 사무엘서가 사건들이 발생한 후 수 세기가 지난 후에 작성되었다는 세속적 이론에 의문을 제기한다. 블레셋의 도시인 가드(Gath)가 가장 분명한 예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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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골리앗의 고향, 가드(Gath).


고고학자들은 최근 사울과 다윗 시대의 가드(Gath)에서 유물들을 발굴했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인상적이고 강력한 도시가 드러났다.[15] 그들은 한 거대한 성문(city gate, 아마도 다윗이 미친 체하고 그적거리던 대문짝)과 다른 대형 건물들, 그리고 요새를 발견했다.

가드는 블레셋의 5대 도시 중 하나였으며, 다른 도시들로는 가사(Gaza), 아스돗(Ashdod), 아스글론(Ashkelon), 에그론(Ekron)이 있다. 성경 기록에서 가드는 사울과 다윗 시대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성경 이야기에도 여러 번 등장한다.[16] 나다브 나아만(Nadav Na’aman)은 이렇게 설명한다 :

다윗이 권좌에 오르는 이야기에서, …가드는 블레셋의 다섯 왕국 중 주도적인 세력으로 묘사되고 있고, 그 왕은 다른 블레셋의 통치자들과 관련하여 ‘동등한 사람들 중 첫 번째(primus inter pares)’로 묘사되고 있다.[17]

그러나 BC 830년경 그 장소에 대한 고고학적 기록에 따르면, 가드가 공격을 받아 도시 전체가 파괴되면서, 가드의 위상은 변했다. 핀켈슈타인과 실버먼은 가드가 이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었다.

이전에는 쉐펠라(Shephelah, 유대 산기슭)에서 가드는 가장 중요한 도시였고, 아마도 나라 전체에서 가장 큰 도시였을 것이다. 그러나 가드는 그 후 몇 세기 동안 규모와 중요성이 극적으로 감소했다.[18]

실제로, 후기 앗수르(아시리아) 기록에는 블레셋의 주요 도시가 다섯 개가 아닌, 네 개만 언급되어 있다. 가드는 제외되어서, 아스돗의 작은 위성 도시로 취급되고 있었다.[19]

성경은 가드가 아람 왕 하사엘에 의해 공격받았고(열왕기하 12:17), 도시가 함락된 후에 쇠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블레셋의 다섯 도시들은 모두 가드에 대한 초기 언급에서 함께 나열되고 있다(예: 사무엘상 6:17). 그러나 가드가 파괴된 후에 기록된 성경의 일부에서는 다른 네 개의 블레셋 도시만 언급되고 있고(예레미야 25:20, 스바냐 2:4), 앗수르 비문(Assyrian inscriptions)들도 마찬가지이다. 이것은 다윗의 이야기를 기록한 사람들이 그 시대의 상황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여러 방법들 중 하나이다. 


예루살렘의 다윗 궁전

다윗 왕의 첫 수도는 헤브론(Hebron)이었으며, 그곳과 인근 유적지에서 이루어진 일부 고고학적 발굴만으로도, 이 도시가 철기시대 2기(Iron Age II)로 넘어가는 시기에 요새화되었고, 인구가 증가하며 성장했음을 알 수 있다.[20] 성경에 따르면, 다윗은 여부스족(Jebusites)으로부터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예루살렘 동쪽 언덕의 남쪽 능선에 새로운 궁전을 건설했으며, 이후 이 궁전을 다윗성(City of David)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비판가들은 예루살렘에 다윗 왕국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명확한 흔적이 없다고 주장했다.[21]

예루살렘에서 BC 10세기의 증거를 찾기 위한 발굴에는 몇 가지 어려운 난제에 직면하게 된다. 우선, 현대의 건축물들이 들어서 있고, 사람들이 이 지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지역들이 발굴 금지되어 있다. 이는 성경에서 솔로몬이 제1성전(First Temple)을 건축했다고 기록된 성전산(Temple Mount) 전체에 해당한다. 더욱이 다윗성은 기반암이 지표면에 가깝기 때문에 고대 거주자들이 건축을 할 때, 이전 구조물을 제거하고, 기반암 바로 위에 건물을 세웠다. 이러한 관행으로 인해, 이전 거주에 대한 많은 증거들이 파괴되었다. 마지막으로, 수백 년 동안 예루살렘이 정복당하지 않았다는 점이 증거의 모호성을 더욱 심화시킨다. 예루살렘은 BC 10세기부터 BC 586년 느부갓네살이 도시를 약탈할 때까지 다윗의 후손들이 수 세기 동안 큰 파괴 없이 통치했다. 파괴된 층은 고고학자들이 유물을 발굴하고 명확하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수 세기 동안 상대적으로 평화로웠던 탓에 층들을 구분하고 정확한 연대를 측정하는 것이 더 어려울 수 있다. 이런 이유로 다윗과 솔로몬의 통치 기간에 대한 예루살렘의 증거들은 상황들이 서로 달랐다면, 덜 명확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제약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의 궁전이 발견됐을 가능성이 높다. 1960년대에 고고학자들은 다윗성 동쪽 경사면에서 위풍당당한 석조 구조물을 발굴했다. 이 '계단식 석조 구조물(stepped stone structure, SSS)은 높이가 18m이며, 기반암의 큰 틈을 메웠기 때문에, 정상에 있는 큰 건물을 지탱할 수 있는 성벽으로 건설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이 구조물 아래 채움재에 들어있던 토기에는 BC 1000년경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직전인 철기시대 1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재료가 포함되어 있었다. 따라서 SSS는 다윗 직전에 여부스 사람들이 건설했거나, 다윗 자신이 건설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SSS는 정상부에서 무엇을 지탱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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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0. 예루살렘의 계단식 석조 구조물(Stepped stone structure, Jerusalem). 


2005년에 에일랏 마자르(Eilat Mazar)는 SSS 바로 위 지역을 발굴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팀은 동서 방향으로 길이 30m, 너비 3m의 벽이 있는 기념비적인 건물을 발견했다. 또 다른 남북 벽 부분은 너비가 6m였다! 마자르는 이것을 ‘대형 석조 구조물(Large Stone Structure)’, 또는 LSS라고 명명했다. 계단식 석조 구조물(SSS)과 마찬가지로 LSS 아래의 재료는 철기시대 I 의 것이었고, 이 거대한 건물은 SSS와 맞물려 있는 것으로 보이므로, 대략 BC 1000년경에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다. 다윗의 시대와 잘 들어맞는다. 다윗이 궁전을 지었을 지역에서 다윗 시대의 거대한 벽이 있는 이렇게 큰 건물을 발견한 것은 매우 중요하다. 결정적인 것은 아니지만, 현재 증거들은 이 건물이 다윗의 궁전일 수 있음을 지지하고 있다.

다윗은 성경에서 이 근처에 궁전을 지었다고 기록된 유일한 유대인의 왕이다. 솔로몬은 거룩한 언약궤가 그곳에 있었던 것을 고려하여, 자신과 아내들이 다윗의 궁전에 머물지 않기로 결정했다(역대하 8:11). 그래서 솔로몬은 성전을 더 북쪽에 건축하면서, 성전 근처에 자신과 아내들을 위한 새로운 왕궁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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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일부 고고학자들이 다윗 왕의 궁전(palace of King David)이라고 믿고 있는 기념비적 건물의 기초. 


만약 대형 석조 구조물(LSS)이 다윗의 궁전이라면, 그 위치와 다른 모든 세부 사항들에 대한 성경의 묘사와 일치한다. 가파른 기드론 계곡 위로 우뚝 솟은 모습은 다윗이 어떻게 밧세바(Bathsheba)를 내려다볼 수 있었는지를 설명해준다. 또한 다윗이 시골의 단순한 부족 지도자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성경에서 다윗에게 부여하는 권력과 부는 그가 그토록 거대한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했다면 적절한 것으로 보인다. SSS와 LSS는 철기시대 유다 전역에 걸쳐 존재했던 거대한 건축물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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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예루살렘 다윗성(City of David)의 대형 석조 구조물(Large Stone Structure)에서 유래되었을 수 있는 기둥 머리(Column capital). 


추가 발견들도 대형 석조 구조물(LSS)이 다윗의 궁전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데 도움이 된다. 첫째, 계단식 석조 구조물(SSS)의 바닥에서 야자나무 모양(palmette-shaped)의 기둥 머리(column capital)가 발견되었다. 이것은 위의 LSS에서 떨어진 것으로 생각된다. 기둥 머리는 철기시대 이스라엘 전역의 왕실 건축에서 사용된 다른 야자나무 머리와 매우 유사하다. 이 스타일은 페니키아 해안(Phoenician coast)에서 유래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는 두로의 히람(Hiram of Tyre)이 다윗의 궁전 설계를 도왔다는 성경의 기록과 일치한다(사무엘하 5:11). 둘째, 상아 도구(ivory utensils)들과 이국적 음식의 잔해와 같은 값비싼 품목이 LSS 내부에서 발견되었는데, 둘 다 왕족 거주자를 암시한다. 셋째, 왕실 관리와 왕자의 이름이 포함된 수십 개의 봉인(bullae, 점토 인장 자국)들이 LSS 안팎에서 발견되었다. 이들 중 일부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로서, 그마랴(Gemariah, 예레미야 36:12), 그다랴(Gedaliah)와 유갈(Jehucal, 여후갈, 예레미야 38:1), 나단멜렉(Nathan-Melech, 열왕기하 23:11) 등의 봉인이었다. 성경에서 다윗의 궁전이 유대 왕국 역사 전반에 걸쳐 왕실 건물로 기능했음을 시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발견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음에 계속됩니다>


References and Notes

1. Finkelstein, I., and Silberman, N.A., David and Solomon, Free Press, New York, NY, 2006, p. 21.

2. New high-resolution photography of this monument has renewed scholarly debate on the subject. See Lemaire, A. and Delorme, J., Mesha’s stele and the house of David, Biblical Archaeology Review 48(4): 34–41, 2022. See also Richelle, M. and Burlingame, A., Set in stone? Another look at the Mesha Stele, Biblical Archaeology Review 49(1):54–57, 2023.

3. For more information, see Cox, G., Strengthening the Shishak/Shoshenq synchrony, J. Creation 36(2):40–49, 2022; creation.com/strengthening-the-shishak-shoshenq-synchrony.

4.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 93, 2006.

5. Dever, W., Beyond the Texts, SBL Press, Atlanta, GA, pp. 289–291, 324, 2017.

6. Mazar, A., Archaeology of the Land of the Bible, Doubleday, New York, NY, pp. 390–396, 1990.

7. For example, Dever, W.G., Solomon, Scripture, and science: the rise of the Judahite state in the 10th century BCE, Jerusalem Journal of Archaeology 1:102–125. Also,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2006.

8. One need not adopt even more radical revisions to the chronology of this era either, such as proposals by David Down and David Rohl that put the United Monarchy in different parts of the Late Bronze Age. These revisionists destroy the excellent harmony between the biblical description of the 11th and 10th centuries BC and the Iron Age archaeological finds.

9. Dever, W., Beyond the Texts, SBL Press, Atlanta, GA, p. 363, 2017.

10. Garfinkel, Y., et al., In the Footsteps of King David, Thames & Hudson, London, UK, pp. 167–170, 2018.

11. Mazar, A., Archaeology of the Land of the Bible, Doubleday, New York, NY, 1990, pp. 371–374.

12. Garfinkel, Y., et al., In the Footsteps of King David, Thames & Hudson, London, UK, pp. 106, 178, 2018.

13. See 2 Samuel 2:8–15; 3:7–15; 4:5–12.

14. Garfinkel, Y., et al., In the Footsteps of King David, Thames & Hudson, London, UK, p. 126, 2018.

15. Borschel-Dan, A., Colossal ancient structures found at Gath may explain origin of story of Goliath, timesofisrael.com, 26 July 2019.

16. The Philistine champion, Goliath, was from Gath (1 Samuel 17:4). David sought refuge in Gath more than once when fleeing from King Saul (1 Samuel 21:10; 27:2–4). King Achish of Gath was part of a coalition of Philistine lords who set out to attack Saul (1 Samuel 29). He controlled much territory, and even bequeathed the town of Ziklag to David (1 Samuel 27:6).

17.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2, 2002.

18. Finkelstein, I. and Silberman, N.A., David and Solomon, Free Press, p. 39, 2006.

19.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2, 2002.

20. Chadwick, J.R., Discovering Hebron,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1(5):24–33, 70, 2005.

21. Finkelstein, I., The Forgotten Kingdom: The Archaeology and History of Northern Israel, SBL Press, Atlanta, GA, p. 43, 2013.

22. Mazar, E., Discovering the Solomonic Wall in Jerusalem, Shoham Academic, p. 85, 2011.

23. Eames, C., A study into King Solomon’s FOUR monumental gates, Let the Stones Speak 1(6):10–19, November–December 2022.

24.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 134, 2006.

25. Lemaire, A., Solomon & Sheba, Inc.,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6(1):55–56, 2010.

26. Lemaire, A., Solomon & Sheba, Inc.,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6(1):55–56, 2010.

27. Vainstub, D., Incense from Sheba for the Jerusalem Temple, Jerusalem Journal of Archaeology 4:42–68,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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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0, 2002.

32.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3, 2002.

33.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 90, 2006.

34.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2, 2002.

35.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p. 88–90, 98–99, 2006.

36.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 94,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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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Na’aman, N., Memories of monarchical Israel in the narratives of Davidʼs wars with Israelʼs neighbours, Hebrew Bible and Ancient Israel 6:323–324, 2017. Also, Thomas, Z., Reckoning with David in scholarship and media, asor.org/blog, 5 June 2015.

40. Mazar, A., The search for David and Solomon: an archaeological perspective, in Schmidt, B.B., ed., The Quest for the Historical Israel, Leiden: Brill, p. 124,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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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의 최근 고고학적 발견은 성경을 확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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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역사를 확증해주고 있는 고대 앗수르 유물. 대영박물관에 있는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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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선지자의 인장이 발견되었다 : 히스기야 왕의 인장에 이은 놀라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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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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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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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로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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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MI, 2023. 7. 9. Updated 2023. 8. 3.

주소 : https://creation.com/en/articles/david-and-solomon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5-10-29

히스기야 왕을 하나님이 구원하셨을 때 - 3부

고고학은 예루살렘의 구원과 산헤립의 종말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다.

(When God rescued King Hezekiah, part 3

Archaeology confirms the biblical account—Jerusalem’s deliverance and Sennacherib’s end)

by Keaton Halley


   이 시리즈의 1부와 2부 글에서는 열왕기하 18~19장에 기록된 BC 701년 앗수르의 유다 침공과 일치하는 많은 고고학적 발견들을 다루었다. 이 마지막 글에서는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성을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셨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증거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또한 앗수르의 왕 산헤립(Sennacherib, 센나케립)이 초래한 파괴 이후, 유다 백성이 어떻게 인내하고 회복해 나갔는지도 살펴보겠다.

 

예루살렘은 기적적으로 살아남았다. 


산헤립은 이렇게 주장할 수밖에 없었다 : “나는 그[히스기야]를 마치 새장 속의 새처럼, 그의 왕도인 예루살렘 성안에 가두었다.”


산헤립(Sennacherib, 센나케립)이 유다 원정에서 많은 목표를 달성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이집트와 구스의 연합군을 물리쳤고, 유다의 여러 도시들을 황폐화시켰으며, 앗수르에 우호적인 여러 속국 왕들에게 권력을 돌려주었다. 그는 히스기야에게서 막대한 조공을 받았다. 그러나 히스기야와 그의 수도 예루살렘은 이사야가 예언했던 대로 전투를 치르지 않고 살아남았다. 산헤립은 자신의 연대기에서 히스기야를 예루살렘 안에 가두었다고 자랑했지만, 그 도시를 파괴했다나 정복했다는 말은 전혀 하지 않았다. 사실, 일부 오래된 앗수르 문헌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산헤립은 그 도시를 포위 공격조차 하지 않았다. 오히려 산헤립이 사용한 용어는 단지 봉쇄를 의미할 뿐이었다.[1] 산헤립은 "나는 그[히스기야]를 새장 속의 새처럼, 그의 왕도인 예루살렘 성안에 가두었다"라고만 주장할 수 있었다.[2]

성경은 예루살렘이 함락되지 않은 이유를 더 자세히 보여준다. 산헤립이 나머지 이야기를 공개하고 싶어하지 않았던 이유는 분명하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앗수르 왕 산헤립이 떠나 돌아가서 니느웨에 거주하더니” (열왕기하 19:35-36)

 앗수르의 기록에는 이 기적적인 패배가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산헤립이 예루살렘에 대한 완전한 승리에 대한 어떤 수사적 표현도 포함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이 성경에 기록된 기적의 진실성을 암묵적으로 입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일부 역사가들은 이것이 과장된 표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들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점령할 의도가 전혀 없었고, 단지 질서를 회복하고자 했으며, 히스기야의 복종과 조공 지불에 만족했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앨런 밀러드(Alan R. Millard)는 산헤립이 히스기야를 폐위시키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썼다.

반역자들은 반드시 처벌받아야 했다. 그것이 바로 산헤립의 원정의 목적이었다... 대다수에게는 치욕, 포로 생활, 혹은 죽음이 뒤따랐다... 저항을 시도하면 그들의 도시는 포위되고 함락되고 약탈당했다... 전리품은 니느웨로 옮겨졌다.[3]

밀러드는 앗수르 왕들이 자비를 베풀었던 몇몇 예외가 있었다고 언급하지만, 히스기야의 경우는 여전히 여러 면에서 일반적인 관행에 위배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밀러드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망루들을 가지고 포위했지만[ref.], 포위 공격은 감행하지 않았다. 이는 유다의 다른 성읍들에 대한 그의 행동과 대조적이다...

예루살렘은 그런 운명을 겪지 않았다. 그러나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아꼈다는 사실은 그의 원정 기록에 나타나 있지 않는다... “유다 사람 히스기야가 예루살렘에서 나와 그의 딸들을 데리고 와서 그의 아들과 함께 나의 종으로 굴복을 했다. 나는 그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의 왕위를 계승시켰다. 내가 그에게 부과한 조공은 이전보다 더 무거운 것이었다”라는 발표는 없었다. 앗수르인들이 예루살렘에 진입했다는 암시는 전혀 없다...

조공은 라기스나 립나, 또는 예루살렘 외곽에서 산헤립에게 바쳐진 것이 아니었다. 조공은 나중에 "나 뒤에서(after me, 이후에)“ 바쳐졌다고 산헤립은 말한다. "그는 나의 왕도 니느웨로 사람을 보냈다"라고 말했다. 반역한 통치자는... 온전한 도시에 왕좌에 남겨져서, 조공만 바치면 되었다. 히스기야는 많은 왕들에 비해 하찮게 취급을 받았다...

더욱이 앗수르 원정 보고서가 보통 끝맺고 있는 승리의 메모가 이 책에는 없다. 히스기야의 조공 목록에는 성공의 기색이 담겨 있지만, 산헤립이 자신의 업적을 선포하는 다른 모든 원정 보고서의 마무리에 비하면, 그 기색은 미미하다...

어떤 이유에서인지 라기스의 부조(reliefs of Lachish)가 조각되었지만, 수도 예루살렘의 항복이나 왕 히스기야의 조공을 묘사하는 부조보다는, 오히려 방에서 자신들이 눈에 띄도록 배치해 놓았다는 사실이다.[4]

결론적으로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강조하지 않고 있었다던 것은, 성경 기록이 사실이라면 완벽하게 타당하다. 그가 히스기야에 대한 추가 조치를 취했는지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가 가진 증거들은 성경 기록과 일치한다. 유다는 큰 손실을 입었지만,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구원하셨다. 히스기야는 왕위에 남았고, 산헤립은 니느웨로 돌아갔다.

 

산헤립의 죽음

얼마 후, 성경은 산헤립이 자신의 아들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경배할 때에 아드람멜렉과 사레셀이 그를 칼로 쳐죽이고 아라랏 땅으로 그들이 도망하매 그 아들 에살핫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열왕기하 19:37)

여러 고대 문서들은 산헤립이 적어도 한 명의 아들에게 살해당했음을 확증하고 있다. 예를 들어, 나보니두스의 이스탄불 석비(Istanbul Stele of Nabonidus, 그림 3.1)는 "수바르투(Subartu, 앗수르)의 왕이... 그의 아들, 그의 마음의 자식이 그를 죽였다"고 증언하고 있다.[5] 마찬가지로, 나보나사르의 바빌로니아 연대기(Babylonian Chronicle of Nabonassar, 그림 3.2)는 "테베투(Tebêtu) 달 20일에 앗수르 왕 산헤립이 반란으로 아들에게 살해되었다"고 언급하고 있다.[6] 가장 중요한 것은 앗수르 문서인 "음모에 관해 산헤립에 보낸 편지"(Letter to Sennacherib Concerning Conspiracy, 그림 3.3)는 산헤립에게 그의 아들이 그를 살해하려는 계획을 경고했다는 사실을 기술하며, 그 아들의 이름을 아르다-물리수(Arda-Mulissi)라고 명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성경에서 아드람멜렉(Adrammelech)으로 번역된 앗수르어 표현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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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1 : 산헤립이 그의 아들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는 나보니두스(Nabonidus)의 이스탄불 석비(Istanbul Stele). <Osama Shukir Muhammed Amin, CC BY-NC-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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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2 : 산헤립이 그의 아들에 의해 살해되었음을 언급하고 있는 나보나사르(Nabonassar)의 바빌로니아 연대기(Babylonian Chronicle). <British Museum 92502, CC BY-NC-SA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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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3 : 산헤립의 아들 아르다-물리수(Arda-Mulissi, Adrammelech, 아드람멜렉)가 시도했던 쿠데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음모에 관해 산헤립에 보낸 편지(Letter to Sennacherib Concerning Conspiracy). <British Museum 1880,0719.28, CC BY-NC-SA 4.0>

 

이 음모의 이유는 산헤립이 후계자를 임명한 것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산헤립이 왕세자로 지명한 에살핫돈(Esarhaddon, 에사르하돈)은 그의 막내아들이었기 때문에, 형들은 자신이 왕위에서 밀려난 것에 분노했을 것이다. 에살핫돈이 왕위에 오른 후 만든 프리즘(prism, 각기둥, 그림 3.4)에서 그는 형들이 자신에게 어떻게 반대했고, 자신이 어떻게 승리했는지를 묘사하고 있다.

그 후로 나의 형제들은 제정신이 아니어서, 신들과 사람들에게 불쾌한 모든 일을 저질렀고, 악한 일을 꾸미고 무기를 차고, 신들이 없는 니느웨에서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아이들처럼 서로 부딪쳤다. …

더욱이 반란과 반역을 일으킨 그 반역자들은 나의 원정 소식을 듣고 의지하던 군대를 버리고, 알려지지 않은 땅으로 도망쳤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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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4 : 에살핫돈 프리즘(Esarhaddon Prism). <British Museum 121005, CC BY-NC-SA 4.0>.

 

에살핫돈은 아버지 산헤립의 살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형제들의 격렬한 적대감과 반군 지도자들이 먼 나라로 도망간 사건은 성경 본문과 잘 부합한다. 따라서 이 모든 세부 사항에서 성경의 기록은 현존하는 역사적 증거들에 의해 뒷받침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예루살렘의 남은 자들

 

재건은 BC 7세기에 시작되었으며,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에게 계속 충실하셨다.


산헤립은 자신의 정복과 군사적 업적을 자랑스러워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이사야를 통해 산헤립에게 그가 주권자이신 주님의 손에 있는 도구일 뿐이라고 말씀하셨다.

“네가 듣지 못하였느냐 이 일은 내가 태초부터 행하였고 옛날부터 정한 바라 이제 내가 이루어 너로 견고한 성들을 멸하여 무너진 돌무더기가 되게 함이니라” (열왕기하 19:25)

바로 이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에 남은 자들을 보존하고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사야는 백성들이 3년 안에 스스로 농사를 지어 수확할 것이며, 그동안 씨를 뿌릴 필요 없이 스스로 먹을 양식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다(열왕기하 19:29). 그 이후에 남은 자들은 번성하기 시작할 것이었다.

“또 네게 보일 징조가 이러하니 너희가 금년에는 스스로 자라난 것을 먹고 내년에는 그것에서 난 것을 먹되 제삼년에는 심고 거두며 포도원을 심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열왕기하 19:29)

“유다 족속 중에서 피하고 남은 자는 다시 아래로 뿌리를 내리고 위로 열매를 맺을지라 남은 자는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이요 피하는 자는 시온 산에서부터 나오리니 여호와의 열심이 이 일을 이루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열왕기하 19:30~31)

고고학 역시 이러한 주장을 광범위하게 뒷받침한다. 산헤립이 초래한 파괴 이후, 유다는 이전의 영광을 되찾지는 못했다. 나라는 확실히 축소되었고, 예루살렘으로 피난처를 찾은 많은 사람들을 포함하여 소수의 사람들만 살아남았다. 그러나 BC 7세기에 재건이 시작되었고,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에게 신실하셨으며, 그들이 인내하도록 하셨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히스기야가 구원을 위해 기도하며 간구했을 때, 그분의 말씀이 진리였음을 계속해서 보여주셨다.

“그 앞에서 히스기야가 기도하여 이르되 그룹들 위에 계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천하 만국에 홀로 하나님이시라 주께서 천지를 만드셨나이다 여호와여 귀를 기울여 들으소서 여호와여 눈을 떠서 보시옵소서 산헤립이 살아 계신 하나님을 비방하러 보낸 말을 들으시옵소서 여호와여 앗수르 여러 왕이 과연 여러 민족과 그들의 땅을 황폐하게 하고 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니 이는 그들이 신이 아니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 곧 나무와 돌 뿐이므로 멸하였나이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우리를 그의 손에서 구원하옵소서 그리하시면 천하 만국이 주 여호와가 홀로 하나님이신 줄 알리이다 하니라“ (열왕기하 19:15~19)

 

결론

이 사건 이후 2,7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는 점을 고려하면, 고고학적 유물들이 성경을 그토록 확증하고 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히스기야처럼 오늘날에도 주님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놀라운 일이 아닐 것이다. 많은 현대 학자들이 '성경 고고학'에 대해 강한 반감을 표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오랫동안 고고학자들을 진리로 인도해 왔으며, 꾸준히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그 사실을 뒷받침해 왔다. 사실, 성경은 비판자들의 주장을 뒤집는 발견들을 통해 무죄임을 입증하는 유쾌한 습관을 가지고 있다. 겉보기에 모순이나 의문이 남아 있는 부분이 있더라도, 성경 역사의 많은 부분들이 이미 명확하게 확증되고 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얻을 수 있다. 히스기야와 산헤립 사이의 사건이 보여주듯이, 성경의 기록을 신뢰할 수 있는 본문으로 믿고 있는 우리의 신뢰는 타당한 것이다. 결국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Word of God),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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앗수르 군대는 설치류가 전파한 전염병으로 몰살되었는가?

 

현대에 산헤립의 예루살렘 패배는 종종 쥐가 앗수르 진영에 급속도로 퍼뜨린 전염병과 관련되어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2018년 (이스라엘의 대표적 신문사) 하레츠(Haaretz)의 기사는 "2,700년 전 쥐가 어떻게 예루살렘을 무서운 앗수르인들로부터 구했을까?"라는 제목으로 실렸다.[9] 쥐나 페스트 같은 전염병이 성경 속 사건과 관련이 있었을까?

블레셋 사람들이 언약궤를 빼앗은 사건(사무엘상 5~6장)과는 달리, 성경은 이 사건과 관련하여 설치류나 전염병을 명시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성경은 "여호와의 사자"가 하룻밤 사이에 앗수르 군대를 전멸시켰다고 말한다.

“이 밤에 여호와의 사자가 나와서 앗수르 진영에서 군사 십팔만 오천 명을 친지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 송장이 되었더라” (열왕기하 19:35).

쥐와 전염병이 관련되었다는 주장은 성경을 다른 여러 고대 기록들과 조화시키려는 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예를 들어, BC 5세기에 살았던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Herodotus)는 들쥐들이 산헤립 병사들의 화살통, 활, 방패 손잡이를 갉아먹어, 다음 날 전투에 나갈 수 없게 되었고, 많은 병사들이 죽었다고 기록했다.[10] 그러나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이 사건은 예루살렘 근처가 아니라, 이집트의 펠루시움(Pelusium)에서 일어났으며, 전사자들은 잠자는 도중이 아니라, 도망치던 도중에 전사했다. 물론 성경에는 앗수르인들이 어디에서 학살당했는지 명확하게 나와 있지는 않지만, 헤로도토스와 성경이 같은 사건을 언급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남는다.

또 다른 증인은 AD 1세기에 저술한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이다. 요세푸스는 그의 저서 『유대 고대사(Antiquities of the Jews)』 에서 펠루시움에서 앗수르의 무기를 쥐들이 갉아먹었다는 헤로도토스의 기록을 언급하고 있지만, 사실 이 기록은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일과는 구별되는 것이었다.[11] 그는 쥐들이 먼저 앗수르 군대가 이집트에서 후퇴하도록 만들었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산헤립이 랍사게와 그곳에 남겨두었던 군대를 황폐화시키는 역병을 발견했다고 말한다.

많은 현대 작가들은 이 이야기들이 각각 동일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이 왜곡되어 신학적 해석이 가미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이 이야기의 역사적 핵심은 앗수르 군대에 발생한 쥐 매개 전염병이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추측일 뿐이며, 모든 것에 대해 자연주의적 설명을 요구하는 사고방식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가 쥐나 전염병을 수단으로 사용했을 가능성은 있지만, 이 결론을 뒷받침하는 근거는 미약하다. 이 이야기들의 모든 세부 사항을 일치시킬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이 이야기들이 서로 다른 사건을 언급하고 있거나, 성경 외 기록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일부 사항이 왜곡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우리는 성경을 신뢰할 수 있다. 여호와의 사자가 매개체를 사용했든 아니든, 히스기야는 초자연적인 개입으로 구원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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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 CMI, 16 January 2020

 

References and notes

1. Elayi, J., Sennacherib, King of Assyria, p. 76, SBL Press, Atlanta, GA, 2018.

2. Royal Inscriptions of the Neo-Assyrian Period (RINAP) 3, Sennacherib Chicago/Taylor Prism, 3:27–28.

3. Millard, A.R., Sennacherib’s Attack on Hezekiah, Tyndale Bulletin 36:69, 1985.

4. Millard, A.R., Sennacherib’s Attack on Hezekiah, Tyndale Bulletin 36:70–72, 1985.

5. My composite translation from: Cogan, M., Sennacherib and the Angry Gods of Babylon and Israel, Israel Exploration Journal 59(2):167–168, 2009 and Mitchell, T.C., The Bible in the British Museum, p. 74, Paulist Press, Mahwah, NJ, 2004.

6. ABC 1.iii (From Nabû-Nasir to Šamaš-šuma-ukin), Livius.org. This same document also confirms Sennacherib’s succession by Esarhaddon.

7. Parpola, S., The Murderer of Sennacherib, in Alster, B. (ed.), Death in Mesopotamia, RAI 26, Akademisk, Copenhagen, 1980.

8. RINAP 4, Esarhaddon Nineveh Prism A, 1:40–84.

9. Bohstrom, P., How mice may have saved Jerusalem 2,700 years ago from the terrifying Assyrians, Haaretz, 18 April 2018.

10. Herodotus, Histories 2.141.

11. Josephus, Antiquities of the Jews 10.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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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내산의 위치에 관해 논란이 되고 있는 고고학적 장소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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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삭/셰숑크가 동일 인물임을 강화하는 증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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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 골리앗에 대한 7가지 고고학적 증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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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솔로몬의 역사적 사실성! : 최근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임을 계속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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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왕의 아들 ‘에스바알(이스보셋)’의 이름이 새겨진 3,000년 전 도자기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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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몬 왕이 건설했을 가능성이 있는 성벽이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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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성전 시대의 저수조가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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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사살 : 바빌론의 두 번째 통치자. 고고학은 벨사살 왕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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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이세벨의 고대 인장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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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의 어떤 왕이었을까? : 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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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발견된 이집트 석비는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왕이 실존했음을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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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삼성퇴(싼싱두이)의 청동나무 : 창세기를 묘사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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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복희와 여와, 그리고 묘족의 신화는 노아 홍수가 실제 역사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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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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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벨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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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돔과 고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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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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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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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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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MI, 2020. 1. 16.

주소 : https://creation.com/hezekiah-archaeology-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5-10-24

히스기야 왕을 하나님이 구원하셨을 때 - 2부

: 고고학은 히스기야의 예루살렘 방어 준비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다.

(When God rescued King Hezekiah, part 2

Archaeology confirms the biblical account—Hezekiah’s preparations in Jerusalem)

by Keaton Halley


    이 시리즈 글의 1부에서는 고고학이 BC 701년 앗수르(아시리아)의 왕 산헤립(Sennacherib, 센나케립)이 유다 왕국을 침략한 사건(열왕기하 18~19장)에 대한 성경 기록을 뒷받침하는 풍부한 증거들을 살펴보았다. 특히 산헤립이 라기스(Lachish)를 비롯한 유다의 여러 도시들을 정복했다는 풍부한 물리적 증거들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제 유다왕 히스기야가 수도 예루살렘과 왕국을 보존하기 위해서 취했던 조치들을 살펴보겠다.


히스기야의 예루살렘 요새화

하나님의 은혜로 예루살렘(Jerusalem)은 라기스와 같은 운명을 겪지 않았고, 따라서 수도 예루살렘에서 파괴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 기록의 다른 측면들을 뒷받침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산헤립의 공격 이전에 히스기야는 수도에 몇 가지 전략적인 건축학적 변화를 가했다. 역대기에 기록된 이 사건들에 대한 관련 기록에 따르면, 히스기야는 성벽을 수리하고, 새 성벽을 건설하여, 성벽을 강화했다.

“히스기야가 힘을 내어 무너진 모든 성벽을 보수하되 망대까지 높이 쌓고 또 외성을 쌓고 다윗 성의 밀로를 견고하게 하고 무기와 방패를 많이 만들고” (역대하 32:5)

이 구절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역대기 기자가 히스기야 시대보다 훨씬 후에 기록했고, 열왕기하의 초기 기록에는 이러한 구체적인 건축 활동이 언급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1] 그러나 일부 학자들이 역대기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함에도 불구하고, 이 구절은 고고학적 발굴 결과와 잘 부합된다. 필립 킹과 로렌스 스테이거(Philip King and Lawrence Stager)는 다음과 같이 인정하고 있었다 :

역대기 기자는 자주 신명기 역사가(Deuteronomistic Historian(s))와 선지서와 같은 다른 성경 자료들에 의존했기 때문에, 역대기(Chronicle)는 신뢰할 만한 역사적 자료로서 종종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나흐만 아비가드(Nahman Avigad)가 '넓은 성벽(Broad Wall)'을 발견하고, 그 건축 연대를 BC 8세기 후반으로 추정하면서, 어느 정도 신뢰를 얻었다.”[2]

‘넓은 성벽(Broad Wall)’(그림 2.1)은 느헤미야서(3:8; 12:38)에 두 번 언급되고 있다. '넓다'는 말은 성벽의 건축가(아마도 히스기야)가 적의 공성추(battering rams, 충차)를 견딜 수 있도록 매우 넓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에 아비가드(Avigad)가 발견한 부분은 길이가 40m이고, 두께는 무려 7.5m였다. 이 성벽은 일부 사람들이 솔로몬의 것으로 생각하는 예루살렘 성벽의 다른 이전 부분만큼 단정하게 지어지지는 않았는데, 아마도 히스기야가 앗수르 군대의 침공을 예상했기 때문에, 다소 서둘러 지어졌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흥미롭게도 고고학자들은 이 성벽의 기초를 세우기 위해 여러 채의 새집들이 철거되었다는 것을 발견했다.[3] 이 특이한 발견은 다가오는 위협 때문에 성벽이 세워졌다는 사실과도 일치하며, 이사야 22:10절에서 “또 예루살렘의 가옥을 계수하며 그 가옥을 헐어 성벽을 견고하게도 하며”라고 언급한 것과도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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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 : 두께 7.5m의 ‘넓은 성벽(Broad Wall)’의 단면. <Ian Scott,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북쪽으로 90m도 채 되지 않는 곳에서 아비가드는 현재 '이스라엘 탑(Israelite Tower)'(그림 2.2)이라고 불리고 있는 탑(tower, 망대)을 발굴했는데, 그는 이것이 성문의 일부였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 탑의 발굴된 부분은 높이 8m까지 보존되어 있었다. 이 탑은 넓은 성벽과 같은 종류의 다듬지 않은 돌들로 이루어져 있지만, 어떤 이들은 다른 요새 체계의 일부였으며, 넓은 성벽보다 약간 후에 건설되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4] 이 탑은 히스기야나 그의 아들 므낫세(Manasseh)가 건설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히스기야에 대한 성경 기록을 전반적으로 뒷받침하는 많은 고고학적 증거들이 발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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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2 : 아비가드가 발견한 이스라엘 탑(Israelite Tower). <Zev Radovan / Bible Land Pictures>


히스기야의 것으로 추정되는 또 다른 성벽 구간이 1999년에 발견되었는데, 이곳은 다윗 성(City of David)이라고 불리는 능선 동쪽에 위치해 있다. 이 성벽은 히스기야가 기존 내벽에 증축한 외벽이었다. 내벽은 외벽이 건설된 곳의 서쪽, 언덕에서 약 36m 더 올라간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이 외벽은 이스라엘 탑처럼 넓은 성벽과 유사한 석조 구조를 보이고 있다. 게다가 성벽의 나머지 부분에서 약 2m 정도 돌출된 직사각형 모양의 돌출부가 있는데, 일부 학자들은 이 성벽 역시 히스기야의 탑(망대) 중 하나였을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한다.[5]


더 많은 준비 - 예루살렘의 수로 건설

히스기야가 한 일은 도시를 요새화하여 강화하는 것뿐만이 아니었다. 성경은 그가 예루살렘의 물 공급(water supplies)을 어떻게 재편했는지, 적어도 부분적으로는 산헤립의 영향 때문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다음 구절들이 이를 증명한다.[6]

“히스기야가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치러 온 것을 보고 그의 방백들과 용사들과 더불어 의논하고 성 밖의 모든 물 근원을 막고자 하매 그들이 돕더라 이에 백성이 많이 모여 모든 물 근원과 땅으로 흘러가는 시내를 막고 이르되 어찌 앗수르 왕들이 와서 많은 물을 얻게 하리요 하고” (역대하 32:2-4).

“이 히스기야가 또 기혼의 윗샘물을 막아 그 아래로부터 다윗 성 서쪽으로 곧게 끌어들였으니...” (역대하 32:30)

“히스기야의 남은 사적과 그의 모든 업적과 저수지와 수도를 만들어 물을 성 안으로 끌어들인 일은 유다 왕 역대지략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느냐” (열왕기하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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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3: 히스기야 터널(Hezekiah’s Tunnel). <Ian Scott, Wikimedia Commons CC BY-SA 2.0>.


고고학도 이러한 성경 기록들을 뒷받침한다. 도시의 동쪽에 위치한 기혼 샘(Gihon Spring)은 예루살렘 물의 주요 공급원이었다. 히스기야는 이전에 여러 인공 터널과 수로들을 통해, 물이 분산되었던 여러 곳을 막고, 물을 도시의 서쪽으로 돌렸다.[7, 8] 오늘날 예루살렘에서는 바로 이 목적을 위해 다윗 성 아래에서 파낸 히스기야 터널(Hezekiah’s Tunnel)(그림 2.3)을 걸어서 통과할 수 있다. 터널은 단단한 바위를 통과하여 지하 533m를 구불구불하게 지나, 북동쪽의 기혼 샘과 언덕 남서쪽의 저수지를 연결하고 있다(그림 2.4). 놀랍게도 그 거리에 걸쳐 바닥의 경사는 단지 약 30cm만 낮아진다. 원래 저수지와 근처 성벽의 정확한 위치는 확실히 알려져있지 않지만, 일부 학자들은 연못이 두 성벽 사이에 있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히스기야는 산헤립으로부터 도시의 물 공급원을 보호하기 위해 특별히 이 터널을 만들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빠르게 확장되고 있었던 도시의 서쪽으로 물을 다른 경로로 보내기 위해 만들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둘 다를 위해 만들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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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4: 히스기야 시대의 예루살렘 지도 <Keaton Halley>


히스기야 터널 남쪽 끝 근처에서 터널의 구조를 설명하는 고대 비문(inscription)이 발견되었다. 고문서학적으로 히스기야 시대로 추정되는 이 실로암 비문(Siloam Inscription, 그림 2.5)에는 터널 굴착 작업이 양쪽 끝에서 시작되었고, 작업자들은 가운데에서 만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터널 작업자들이 도시 아래를 어떻게 뚫었는지를 고려하면 놀라운 업적이다. 그들이 어떻게 이러한 작업을 수행했는지, 그리고 왜 이런 방식으로 굴착했는지는 아직 풀리지 않은 수수께끼이다.

남쪽 출구에서 물은 실로암 못(Pool of Siloam)으로 흘러들었다. 수 세기에 걸쳐 이 못은 여러 차례 재건되었다. 예수님 시대의 실로암 못은 2004년에 발견되었지만, 고고학자들은 아직 그보다 앞서 건설된 히스기야가 건설한 실로암 못을 발견하지 못했다. 이스라엘 핀켈슈타인(Israel Finkelstein)은 이 못이 로마시대 못 바로 아래에 있을 가능성을 제기했으며, 따라서 향후 발굴 작업을 통해 그 실체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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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5 : 히스기야 터널의 건설 과정을 설명하는 실로암 비문(Siloam Inscription)의 복제품.


앗수르의 관리들

다음으로 고고학은 히스기야와 맞선 앗수르의 관리들에 대한 성경에 기록된 용어들이 타당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산헤립은 라기스에서 자신의 고위 관리와 군대장관을 예루살렘으로 파견했다. 그들은 히스기야에게 위협적인 메시지를 전달했다. 성경에 언급된 앗수르의 고위 관리 세 명은 "다르단, 랍사리스, 랍사게"였다.(열왕기하 18:17).


고고학은 히스기야와 맞섰던 앗수르 관리들을 지칭하는데 사용됐던 성경에 기록된 용어들이 타당했음을 입증해주고 있다.


1800년대 초, 이러한 칭호는 성경 주석가들에게 모호하고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그 이후로 세 용어 모두 고대 앗수르 기록에서 발견되었다. 예를 들어 아시리아 에포님 명부(Assyrian Eponym List, 그림 2.6)에는 왕 다음가는 고위 군사 지휘관인 다르단(Tartan)이 언급되어 있다.[10] 또한 약간 낮은 계급인 랍사게(Rabshakeh)가 언급되어 있는데, 이는 '군주들의 우두머리'를 의미한다. 왕의 최측근 관리 중 한 명(아마도 환관장)인 랍사리스(Rab-saris)는 한 작은 계약 문서에 언급되어 있다.[11] 이러한 고위 관리들이 수행했던 정확한 임무에 대해서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성경에 그들의 칭호가 보존되어 있다는 것은 역사적 기억에서 사라졌다가 고고학적 발견을 통해 성경의 세부 사항이 입증된 많은 사례들 중 하나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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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6 : 다르단과 랍사게가 언급되어 있는 앗수르 에포님(칭호) 목록(Assyrian Eponym List). <British Museum 1882,0522.526, CC BY-NC-SA 4.0>


성경 기록에서 랍사게는 주요 대변인이었다. 그는 예루살렘 주민들에게 호소하면서, 히스기야는 물론이고, 심지어 하나님까지 비난하며 험담을 한다.

“랍사게가 드디어 일어서서 유다 말로 크게 소리 질러 불러 이르되 너희는 대왕 앗수르 왕의 말씀을 들으라 왕의 말씀이 너희는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라 그가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내지 못하리라 또한 히스기야가 너희에게 여호와를 의뢰하라 함을 듣지 말라 그가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반드시 우리를 건지실지라 이 성읍이 앗수르 왕의 손에 함락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할지라도 너희는 히스기야의 말을 듣지 말라... 히스기야가 너희를 설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건지시리라 하여도 히스기야에게 듣지 말라 민족의 신들 중에 어느 한 신이 그의 땅을 앗수르 왕의 손에서 건진 자가 있느냐“ (열왕기하 18:28~33)

그러나 주님은 예루살렘을 앗수르의 손에서 구원하셨다. 앗수르인들이 저지른 가장 큰 오산은 “그들이 예루살렘의 하나님을 비방하기를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세상 사람의 신들을 비방하듯 하였더라”(역대하 32:19)는 것이었다. 


유다의 관리들

히스기야는 앗수르 고위 관리들과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세 명의 중재자를 보내 협상을 벌였다.

“그들이 왕을 부르매 힐기야의 아들로서 왕궁의 책임자인 엘리야김(Eliakim)과 서기관 셉나(Shebnah)와 아삽의 아들 사관 요아(Joah)가 그에게 나가니” (열왕기하 18:18 )

이 관리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유물이 발견되었을까? 아마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 첫째, 히스기야의 서기관 셉나(Shebnah)가 이사야 22장에서 징계를 받는 셉나와 동일 인물일 가능성이 있다.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가서 그 국고를 맡고 왕궁 맡은 자 셉나를 보고 이르기를 네가 여기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 여기에 누가 있기에 여기서 너를 위하여 묘실을 팠느냐... 나 여호와가 너를 단단히 결박하고 장사 같이 세게 던지되” (이사야 22:15-17)

이사야서의 이 장은 히스기야가 예루살렘에서 재건 공사를 한 후(8~11절)에 기록된 것으로 보이지만, 열왕기하 18장에서 앗수르의 관리들과 마주치기 전에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이사야 22장이 언급하고 있는 당시에 셉나가 "국고를 맡고 왕궁 맡은 자 셉나"(15절)라고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직책을 그에게서 빼앗아 엘리아김(Eliakim)에게 넘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다(이사야 22:19~21절). 이러한 직책의 이전은 랍사게와 왕이 만났을 때쯤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열왕기하 18:18절에서 엘리아김이 이제 "왕궁"의 책임자를 맡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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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7 : 라기스에서 발견된 작은 병(Juglet). 이 병에는 많은 점토 인장 자국(bullae)들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왕의 시종, 셉나(Shebna)"의 것이었다. <A.D. Riddle/BiblePlaces.com>


어쨌든 히스기야 시대의 셉나라는 고위 관리에 대한 언급이 있는 비문이 여러 개 발견되었다.[12] BC 8세기의 것으로 발견된 두 개의 봉인(bullae, 점토 인장 자국)은 "왕의 시종 셉나"의 것이었다. 첫 번째는 라기스에서 회수되었고(그림 2.7) 두 번째는 출처를 알 수 없었다. 또한 고고학자들은 기드론 계곡(Kidron Valley)이 내려다보이는 절벽에 파여진 고대 무덤을 발견했는데, 입구 위의 상인방(lintel)에 비문이 있었다. 손상되었지만 텍스트는 거기에 묻힌 고위 관리의 이름의 끝부분을 기록하고 있었다(그림 2.8). 첫 번째 부분은 없었지만, 셉나(Shebna)라는 이름의 형태로 재구성될 수 있었으며, 구체적으로 그가 "집(왕궁)을 맡았다"고 말한다. 이사야 22:15 절에 따르면, 이는 셉나가 한때 맡았던 직위이다. 이 글은 대략 히스기야 시대의 것으로 추정될 수 있다. 그러므로 이사야서에 언급된 무덤도 발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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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8 : 히스기야의 시종이었던 유다의 고위 관리, 아마도 셉나의 무덤에서 발견된 상인방 비문(lintel inscription). <Mustafaa,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셉나의 자리를 이어받은 힐기야(Hilkiah)의 아들 엘리아김(Eliakim)은 어떠했을까? 고고학자들은 엘리아김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찾지 못했지만, 히스기야의 신하 중 한 명이었던 그의 형제를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 이 형제에 대한 증거는 그 출처가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겉보기에는 진본인 봉인(bulla, 그림 2.9)에서 나왔다. 봉인에는 "히스기야의 신하, 힐기야의 아들 여호사라의 것(Belonging to Yehozarah, the son of Hilkiah, servant of Hezekiah)"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13] [2024년 1월 업데이트: 히스기야 시대의 두 인장(seals)이 라기스에서 발견되었는데, 인장에는 ‘여호사라(의 아들) 엘리아김(Eliakim (son of) Yehozarah)’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따라서 모든 증거들을 종합해 볼 때, 이 인장들은 성경 속 엘리아김의 것이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힐기야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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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9 : 히스기야의 시종 여호사라(Yehozarah)의 봉인(bulla, 점토 인장 자국). <A.D. Riddle/BiblePlaces.com>


선지자 이사야

협상이 결렬된 후에, 히스기야는 세 명의 신하를 선지자 이사야에게 보내 기도를 요청했다(열왕기하 19:2~4). 성경은 이사야가 히스기야에게 앗수르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고 여러 차례 안심시킨 것을 기록하고 있다. 이사야는 산헤립이 예루살렘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고국으로 돌아가 죽음을 당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앗수르 왕을 가리켜 이르시기를 그가 이 성에 이르지 못하며 이리로 화살을 쏘지 못하며 방패를 성을 향하여 세우지 못하며 치려고 토성을 쌓지도 못하고 오던 길로 돌아가고 이 성에 이르지 못하리라 하셨으니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시라” (열왕기하 19:32-33)

2017년 고고학자 에일랏 마자르(Eilat Mazar, 1956–2021)는 선지자 이사야의 봉인(bulla)일 수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림 2.10).[14] 그녀의 팀은 2009년 예루살렘에서 히스기야의 봉인이 발견된 곳에서 불과 3m 떨어진 곳에서 그것을 발굴했다. 인장 자국에는 의심할 여지 없이 이사야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으며, 그를 "선지자"라고 지칭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봉인의 가장자리가 마모되어 최종 히브리어 단어가 불확실하므로, 결론이 보장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사야와 히스기야는 개인적인 교류가 있었던 동시대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 봉인에 찍힌 인장이 이사야 선지자의 것일 가능성이 높다. 이 봉인은 확실히 적절한 시간과 장소에 속하며, 글자들은 그것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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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0 : 이사야 선지자의 인장 자국으로 추정되는 봉인(bulla). <Biblical Archaeology Society>


이집트와 구스의 지원군

히스기야가 이사야에게 도움을 구하며 하나님께 기도드리고 있을 때, 산헤립은 그에게 또 다른 위협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집트인들이 유다를 도울 수 없을 것이라는 그의 호안장담(열왕기하 18:21)은 다소 성급한 것이었다.

“앗수르 왕은 구스 왕 디르하가가 당신과 싸우고자 나왔다 함을 듣고...”(열왕기하 19:9).

구스(Cush)는 이집트 남쪽, 누비아(Nubia, 나일강 유역) 지역, 즉 오늘날 수단에 있던 민족이었다. 당시 구스족은 이집트를, 또는 적어도 일부를 장악하여 제25왕조의 파라오가 되었다. 결국 디르하가(Tirhakah, 티르하카)가 파라오가 되었다. 그의 스핑크스(그림 2.11)에서 볼 수 있듯이, 디르하가의 왕관에는 두 마리의 코브라가 있었는데, 이는 이집트와 구스라는 두 민족을 모두 다스렸던 그의 통치를 상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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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11 : 이집트와 구스의 왕 디르하가(Tirhakah, 티르하카)의 스핑크스. <Jon Bodsworth, Wikimedia Commons>


산헤립은 그의 연대기에서 이 군사 작전(세 번째)에서 이집트와 구스의 연합군과 싸웠다고 언급하고 있다. 그는 히스기야와 동맹을 맺은, 블레셋 도시 에그론(Ekron)의 주민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주장하고 있었다 :

…이집트의 왕과 궁수들, 전차들, 멜루하(Meluḫḫa, Cush, 구스) 땅의 말들과 연합하여 무수한 군대를 거느리고 그들을 도우러왔다.

엘테케(Eltekeh, 엘드게) 성 평야에서 그들은 내 앞에 전열을 갖추며 무기를 갈았다. 나는 나의 주 아슈르(Aššur) 신의 도움으로 그들과 싸워 이겼다. 격전의 와중에 나는 이집트의 전차병들과 왕자들, 그리고 그 땅의 왕 멜루하의 전차병들을 사로잡았다.[15]


산헤립의 기록과 성경 기록 사이에 표면적으로 일치하는 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학자들은 디르하가에 대한 성경의 언급을 비판하며, 그것이 여러 연대기적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첫째, 산헤립의 세 번째 원정에 대한 가장 그럴듯한 재구성은 그가 라기스를 공격한 후가 아니라, 유다를 침공하기 전에 엘테케에서 이집트와 구스 군대를 격파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둘째, 일부 학자들은 디르하가가 산헤립 원정 당시 아직 왕이 아닌 장군에 불과했으며, 통치하던 파라오는 디르하가의 나이 많은 친척 샤바카(Shabaka)였다고 주장한다.[16] 셋째, 디르하가가 BC 701년에 불과 9살이었다는 주장도 있다. 군대를 지휘하기에는 너무 어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첫 번째 문제에 대해, 엘테케 전투가 라기스 전투보다 먼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지만, 디르하가는 단순히 남은 병력을 모아 산헤립을 두 번째로 공격했을 가능성이 있다. 케네스 키친(Kenneth Kitchen)이 지적했듯이, 산헤립의 병력이 립나와 예루살렘으로 나뉘어지면서 새로운 취약점이 드러났다.[17]

두 번째 문제에 대해서는 몇 가지 가능한 해결책이 있다. 첫째, 성경은 디르하가가 묘사된 사건 당시 아직 왕이 아니었더라도, 그는 왕으로 불려질 수 있었다. 그가 나중에 왕이 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에,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그가 왕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높다. 또 다른 가능성은 제25왕조 시대에 흔히 있었던 것처럼, 이집트와 구스의 여러 지역을 동시에 통치하는 여러 왕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성경은 디르하가를 이집트의 왕 또는 파라오라고 부르지 않고, 오직 구스의 왕이라고만 부른다. 따라서 샤바카가 파라오로 통치하는 동안에도 그는 이미 구스의 왕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롭 앤드류 영(Robb Andrew Young)은 구스의 동시대 문서에서 디르하가가 그의 전임자보다 강조된다고 말한다. 샤바카는 "누비아 기록에는 거의 없지만, 에티오피아 왕 목록에는 중요한 문제의 해에 디르하가가 통치자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이다.[18]

세 번째 문제에 대해서, 디르하가가 당시 어린아이였다는 주장은 단순한 오류이다. 키친과 다른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그러한 주장은 카와 석비 4호(Kawa stela IV)를 잘못 해석한 데서 비롯되었다.[19] 당시 디르하가의 실제 나이는 20세에 가까웠으며, 이는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나이였다.[20]

해석상의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에 이집트와 구스가 참전했다는 성경의 기록은 다른 고대 자료들의 증언과 일치한다.


결론

이용 가능한 증거들에는 항상 모호함이 존재하고, 학자들은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계속해서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히스기야의 통치와 앗수르와의 전쟁에 대한 성경적 배경을 뒷받침하는 많은 고고학적 퍼즐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집트와 구스가 결국 히스기야를 구하지 못했다면, 예루살렘은 어떻게 함락을 면할 수 있었을까? 고고학은 성경 기록의 나머지 부분도 마찬가지로 뒷받침할까? 이러한 질문은 3부에서 다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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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C 8세기 예루살렘의 성장


넓은 성벽(본문 참조)이 발견되기 전, 학자들은 제1성전 시대(First Temple period)의 예루살렘이 다윗 성과 성전산(Temple Mount, 모리아 산, Mt Moriah)만 있는 비교적 작은 지역이었는지, 아니면 서쪽 언덕(시온 산, Mt Zion)까지 뻗어 있는 더 큰 지역이었는지에 대해 논쟁을 벌여왔다. 넓은 성벽의 발견은 히스기야 시대 이후로 예루살렘 서쪽 지역에도 인구가 많았고, 요새가 튼튼했음을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논쟁을 종식시켰다.

이것은 다른 증거들과 함께 많은 학자들에게 BC 8세기에 예루살렘의 인구가 극적으로 증가했다는 것을 시사했다. 이스라엘 핀켈슈타인(Israel Finkelstein)은 이것이 수십 년 만에 빠르게 일어났다는 견해를 옹호하는 사람 중 한 명이며, 그러한 성장은 경제적 번영과 일반적인 이주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21] 핀켈슈타인은 급속한 성장이 주로 BC 722년에 산헤립의 삼촌인 샬마네세르(살만에셀) 5세(Shalmaneser V)와 아버지인 사르곤 2세(Sargon II)가 북이스라엘을 정복한 후 북이스라엘에서 남유다로 이주한 수천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 때문이라고 믿고 있다. 또한 핀켈슈타인은 산헤립의 침략이 또 하나의 요인이었으며, 다른 지역에서 쫓겨난 난민들이 예루살렘으로 두 번째 물결로 피난해왔다고 말한다.[22]

다른 학자들은 특히 나다브 나아만(Nadav Na’aman)은 BC 8세기에 예루살렘의 성장은 점진적이고 자연스럽게 일어난 것이었으며, 북이스라엘에서 난민이 홍수처럼 밀려온 것은 신화라고 믿고 있다.[23] 나아만은 북이스라엘 이민자들이 영구적으로 정착한 것이 아니라, 예루살렘의 인구가 갑자기 증가한 것처럼 나타나는 주된 이유는 산헤립이 유다를 공격한 것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산헤립을 피해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유입됨으로 일시적으로 팽창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위협이 사라진 후 수십 년 동안 예루살렘은 어느 정도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나아만에 따르면, 이러한 일시적인 팽창은 예루살렘 바로 외곽의 농촌 인구가 보호를 위해 도시로 이동했고, 산헤립이 도시를 파괴하거나 블레셋 사람들에게 넘긴 후, 유다 전역의 난민들이 피난처를 찾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학자들이 예루살렘 인구 증가의 원인과 속도에 대해 계속 논쟁을 벌이고 있지만, 히스기야는 앗수르의 두 위기, 즉 사르곤 2세의 북이스라엘 합병과 산헤립의 남유다 원정의 영향을 분명히 받았다. 또한, 이 논쟁의 양측 모두 산헤립의 침략이 일시적이든 영구적이든, 예루살렘 인구 폭발에 한몫을 했다는 데 동의하고 있다. 따라서 BC 8세기에 예루살렘이 성장한 것은 히스기야 통치기간 동안 일어난 사건들에 대한 성경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는 또 하나의 퍼즐 조각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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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CMI, 9 January 2020


References and notes

1. While not as specific, a possible reference to these same repairs does occur in Isaiah 22:9–10. 

2. King, P.J., and Stager, L.E., Life in Biblical Israel, p. 219, Westminster John Knox Press, Louisville, KY, 2001. 

3. Rosovsky, N., A Thousand Years of History in Jerusalem’s Jewish Quarter,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8(3), May/June 1992. 

4. Na’aman, N., Dismissing the Myth of a Flood of Israelite Refugees in the Late Eighth Century BCE, ZAW 126(1):12, 2014. 

5. Shanks, H., 2,700-Year-Old Tower Found? Biblical Archaeology Review 26(5):39–41, September/October 2000. 

6. See also Isaiah 22:9–11. 

7. Shanks, H., Everything you ever knew about Jerusalem is wrong (well, almost), Biblical Archaeology Review 25(6):20–29, November/December 1999. 

8. Although the 8th century date of the tunnel has recently been disputed by archaeologists Reich and Shukron, many scholars still reasonably attribute the tunnel to Hezekiah. See Shanks, H., Will King Hezekiah Be Dislodged from His Tunnel?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9(5):52–61, September/October 2013. 

9. Shanks, H., The Pool of Siloam Has Been Found, but Where Is the Pool of Siloam? Biblical Archaeology Review 43(1):50–55, January/February 2017.

10. Cheyne, T.K., and Black, J.S. (eds.), Encyclopaedia Biblica, p. 4903, Norwood Press, Norwood, MA, 1903. 

11. Mitchell, T.C., The Bible in the British Museum, p. 77, Paulist Press, Mahwah, NJ, 2004.

12. Deutsch, R., Tracking Down Shebnayahu, Servant of the King,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5(3):45–49, May/June 2009. 

13. ‘Signature’ of King Hezekiah’s Servant Recovered,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4):19, 32, December 1975. 

14. Mazar, E., Is This the Prophet Isaiah’s Signature? Biblical Archaeology Review 44(2):64–73, 92, March 2018. See also Robinson, P., The prophet Isaiah’s signature? 26 April 2018, creation.com/isaiah-signature.

15. Royal Inscriptions of the Neo-Assyrian Period (RINAP) 3, Sennacherib Chicago/Taylor Prism, 2:78–3:6. 

16. One example is Redford, D.B., Egypt, Canaan, and Israel in Ancient Times, pp. 258, 353, Princeton University Press, NJ, 1992.

17. Kitchen, K.A.,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p. 41, Wm. B. Eerdmans Publishing Co., Grand Rapids, MI, 2003. Alternatively, perhaps Taharqa was not truly advancing at all, and Sennacherib had received misinformation. The biblical text may be understood to mean that it was nothing more than a false “rumor” (2 Kings 19:7), which distracted Sennacherib from engaging Hezekiah. 

18. Young, R.A., Hezekiah in History and Tradition, p. 75, Brill, Leiden, The Netherlands, 2012. 

19. Kitchen, K.A., Ancient Orient and the Old Testament, pp. 83–84, InterVarsity Press, Downers Grove, IL, 1966. 

20. Hoffmeier, J.K., Egypt’s role in the events of 701 BC in Jerusalem, in Vaughn, A.G., and Killebrew, A.E. (ed.), Jerusalem in Bible and Archaeology: The First Temple Period, pp. 230–232,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Boston, MA, 2003. 

21. Finkelstein, I., Migration of Israelites into Judah after 720 BCE: An answer and an update, ZAW 127(2):197–204, 2015. 

22. Finkelstein, I., The two kingdoms: Israel and Judah, in Finkelstein, I., and Mazar, A., The Quest for the Historical Israel, p. 154, Brill, Leiden, Netherlands, 2007. 

23. Na’aman, N., When and How Did Jerusalem Become a Great City? The Rise of Jerusalem as Judah’s Premier City in the Eighth–Seventh Centuries B.C.E., BASOR 341:40,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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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MI, 2020. 1. 9.

주소 : https://creation.com/hezekiah-archaeology-2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5-10-22

히스기야 왕을 하나님이 구원하셨을 때 - 1부

: 고고학은 앗수르의 유다 침공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다.

(When God rescued King Hezekiah, part 1

Archaeology confirms the biblical account of Judah’s deliverance from Assyrian invaders)

by Keaton Halley


    성경에서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가장 주목할만한 예중 하나는 BC 8세기 말에 유다 왕 히스기야(Hezekiah)와 앗수르 왕 산헤립(Sennacherib)과의 만남이다. 이스라엘 관점에서의 자세한 설명은 열왕기하 18~19장에서 찾아볼 수 있다.[1] 최근에 성경 기록의 많은 세부 사항들을 확증해줄 수 있는 풍부한 고고학적 증거들이 발견됐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더욱 흥미로워졌다. 고고학 분야는 시간이 지나며 낡아져 가고 있는 물리적 증거들에 의존해야만 한다. 고고학자들이 성경의 역사적 세부 사항들을 모두 확인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경우와 같이, 발굴된 증거들이 성경 기록을 완전히 뒷받침하는 경우도 많이 있다. 3부로 구성된 이 일련의 글들은 산헤립과 히스기야 사이의 대결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는 많은 중요한 발견들을 소개하겠다.


히스기야 왕의 인장

다윗 왕의 후손인 히스기야는 BC 722년 북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Assyria, 아시리아)에 함락되었을 때, 남유다의 왕이었다(열왕기하 18:9~10). 그 연대는 고고학에 의해서 알려진 것이지만, 기간은 성경 기록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1990년대에는 히스기야 왕의 공식 인장이 찍혀있는 봉인(bullae, 단수는 bulla, 파피루스 문서 등을 인봉하는 점토에 찍혀있는 인장 자국)으로 불리는 여러 점토 인장 자국들이 골동품 시장에 나타났다. 발견 장소가 문서화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들은 진품으로 간주되고 있었다.[2] 다행스럽게도 2009년에 또 다른 발견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예루살렘에서 공식 발굴 중에 발견되었다(그림 1.1).[3] 거기에는 "유다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의 소유(Belonging to Hezekiah, (son of) Ahaz, King of Judah)"라고 적혀 있었다. 이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히스기야 왕의 인장(royal seals)에는 날개 달린 태양(winged sun, 또는 때로는 신성시되는 풍뎅이(scarab))와 '생명'을 뜻하는 상형문자의 상징인 앙크(ankh)를 포함한, 여러 이집트 문자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고고학에 의하면, 히스기야 시대와 그 이후에 히브리 인장과 그 밖의 비문에 이집트식 도상(iconography, 상징)이 나타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4] 더욱이 성경 기록은 히스기야가 앗수르(아시리아)의 산헤립(그림 1.2)에 의해 압박을 받자, 이집트(애굽)의 바로에 의지하여 병거와 기병을 요청했기 때문에(열왕기하 18:21-24), 이 당시 이집트가 유다를 지원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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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 :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히스기야 왕의 봉인(bulla, 불라, 점토에 나있는 인장 자국(seal impression)). 새겨진 글에는 "유다의 왕 아하스(의 아들), 히스기야의 소유"라고 적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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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2 : 라기스 부조(Lachish Reliefs)에 등장하는 앗수르의 산헤립 왕(King Sennacherib of Assyria).


산헤립의 연대기에 기록되어 있는 침략

산헤립(Sennacherib, 센나케립)이 왕위에 올랐을 때, 역사가들은 히스기야가 앗수르의 굴레를 벗어날 기회로 생각했다고 믿고 있다. 히스기야의 불복종의 결과, “히스기야 왕 제십사년에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올라와서 유다 모든 견고한 성읍들을 쳐서 점령하매”(열왕기하 18:13)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고고학자들은 산헤립의 여러 군대 출정들을 묘사해놓은 많은 앗수르의 비문들을 그들의 고국에서 회수했다. 앗수르 왕의 업적에 대한 이러한 공식 기록은 ‘산헤립의 연대기(Sennacherib’s Annals, 센나케립의 연대기)‘라고 불린다. 후기 판에는 BC 701년 그의 생애 중 세 번째 군사 작전 중에 일어난 유다 침공이 포함되어 있다. 육각형 프리즘(hexagonal prisms, 육각 기둥)에 새겨진 거의 동일한 연대기의 최종 사본 3개가 발견되었다. 시카고 프리즘(Chicago Prism)은 시카고 오리엔탈 박물관에, 테일러 프리즘(Taylor Prism)은 대영박물관에, 예루살렘 프리즘(Jerusalem Prism)은 이스라엘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이 기록들에서 산헤립은 성경의 기록대로 자신이 실제로 유다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가했다고 주장했다. 시카고 프리즘(그림 1.3)을 인용하자면, 산헤립은 다음과 같이 자랑하고 있었다.

더욱이 내 멍에(yoke)에 복종하지 않은 유다 땅의 히스기야에 대해서, 나는 그의 요새화된 도시와 요새들, 그 주변에 있는 작은 정착지 46개를 포위하고 정복했는데, 그 정착지들은 셀 수 없이 많았고,...[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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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3 : 산헤립의 연대기가 포함되어 있는 시카고 프리즘.<Keaton Halley>


유다 도시들의 멸망

성경은 요새화된 어떤 도시들이 점령되었는지는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 않지만, 산헤립이 공격했던 두 도시, 즉 예루살렘 남서쪽에 있는 라기스(Lachish)와 립나(Libnah)를 언급하고 있다.(열왕기하 19:8).(그림 1.4).[6] 산헤립의 연대기는 또한 예루살렘 서쪽에 위치하고 삼손(Sampson)이 블레셋 여인과 결혼한 곳으로 유명한 국경 마을 딤나(Timnah)와 함께(사사기 14장) 블레셋의 여러 도시들을 패배시킨 것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7] 딤나는 역사상 여러 시기에 블레셋 사람들의 지배를 받았지만, 현장에서 나온 증거들에 따르면, 산헤립이 도시를 정복하기 직전에 딤나는 유다에 속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8]

이 도시들과 다른 유다 도시들을 발굴했을 때, 산헤립에 의해 공격당했거나 심지어 파괴되었다는 증거들이 포함되어 있을까? 많은 경우에 그렇지만,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다. 산헤립은 아마도 많은 도시들을 파괴시키지 않고 정복했을 것이며, 현대 고고학자들이 알아낼 수 있는 흔적을 남기지 않았을 것이다. 예를 들어, 립나는 잠정적으로 텔 부르나(Tel Burna)와 동일시되었으며, 해당 장소는 파괴의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반면에 라기스(Lachish, Tell ed-Duweir, 텔 에드-두웨이르)와 딤나(Timnah, Tel Batash, 텔 바타쉬)에는 그들이 폭력적으로 점령당했다는 분명한 징후가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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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4 : 히스기야 시대의 유다 지도. 빨간색은 산헤립에 의해 파괴되었다는 물리적 증거들이 있는 유다 도시들이다. 


고고학자들은 유다의 다른 많은 도시들을 조사하고 발굴했으며, 큰 그림은 의심할 여지 없이 앗수르의 주요 침략과 일치한다. 라기스와 딤나 외에도 다음 유적지가 발굴되어 북쪽에서 남쪽으로 이 시기의 파괴 증거를 보여준다 : 벧세메스(Beth-shemesh), 라못 라헬(Ramat Rachel), 텔 에즈 유데이데(Tell ej-Judeideh), 텔 에라니(Tel Erani), 텔 이튼(Tel Eton), 텔 베이트 미르심(Tell Beit Mirsim), 키르벳 라부드(Khirbet Rabud(Debir, 드빌)), 텔 할리프(Tel Halif), 아라드(Arad, 아랏), 텔 셰바(Tel Sheva(Beersheba), 브엘세바), 텔 이라(Tel Ira).[9, 10]. 더욱이 전투의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텔 엔-나스베(Tell en-Nasbeh, Mizpah. 미스바)와 기브온(Gibeon)에는 BC 701년 이후 다양한 구조물들이 버려진 것과 같은 침략에 대한 간접적인 증거들이 포함되어 있다.[11]


대대적 추방

산헤립의 연대기는 그가 유다 도시의 주민 중 20만 명 이상을 제국의 다른 곳으로 추방했다고 말한다(열왕기하 18:31~32 참조).[12] 이 주장에 동의하여, 예후다 다간(Yehuda Dagan)이 실시한 쉐펠라(Shephelah, 정복된 많은 도시들이 위치한 유다의 서쪽 구릉지대)에 대한 조사는 이 지역이 그 세기의 전환기에 거주지의 극적인 변화를 겪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BC 8세기에 인구 밀도가 높았던 289개의 식별 가능한 정착지들에서 알 수 있듯이, 산헤립에 의해 사람들이 이주된 후, 이 수치는 줄어들어 85개 장소로 감소되었으며, 이전 면적의 3분의 1에 불과했다.[13]


화친을 위한 조공

성경에 의하면, 히스기야는 처음에 곤경에서 벗어날 방법을 시도했다.

“유다의 왕 히스기야가 라기스로 사람을 보내어 앗수르 왕에게 이르되 내가 범죄하였나이다 나를 떠나 돌아가소서 왕이 내게 지우시는 것을 내가 당하리이다 하였더니 앗수르 왕이 곧 은 삼백 달란트와 금 삼십 달란트를 정하여 유다 왕 히스기야에게 내게 한지라 히스기야가 이에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 곳간에 있는 은을 다 주었고” (열왕기하 18:14~15)

히스기야는 조공을 바치기 위해서 성전과 왕궁 곳간에서 보물들을 빼내어서 주었다. 놀랍게도 산헤립은 그의 연대기에서 바로 이러한 공물(및 그 이상)을 받았다고 인정하고 있었다. 그는 성경에서 히스기야가 지불했다고 말하는 것과 같은 양의 금을 명시했지만, 은의 양에는 차이가 있었다.[14] 산헤립은 기뻐했다 :

히스기야는 나의 위엄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압도했고, 나의 (출발 후에) 그는... 은 팔백 달란트, 금 삼십 달란트, 선발된 안티몬... 상아 침대, 상아 안락의자, 코끼리 가죽, 코끼리 상아, 흑단, 회양목, 온갖 종류의 귀중한 보물, 그리고 그의 딸들, 궁궐 여인들, 남자 노래하는 자들, (그리고) 여자 노래하는 자들을 나의 성읍인 니느웨로 보내왔다.[15]

성경 기록의 세부 사항에 따르면, 산헤립은 히스기야가 이 조공을 바친 후에도 유다를 계속 공격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가 왜 그렇게 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물론 산헤립의 말에 따르면, 그는 자신이 징발한 재물과 같은 자신의 성공에만 초점을 맞췄다. 하지만 성경은 다른 이유들을 기록하고 있는데, 히스기야가 산헤립에게 그렇게 아첨하지 않았으며, 산헤립이 결국 히스기야에게 요구했던 것을 포기한 이유를 설명해주고 있다. 이 문제는 3부에서 다룰 것이다.


라기스의 중요성

산헤립이 유다 원정을 하는 동안 가장 큰 승리는 라기스 성을 점령한 것이었다(그림 1.5). 대영박물관(The British Museum)에는 도시의 포위와 정복을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앗수르의 정교한 부조(reliefs) 세트가 있다(아래 참조). 성경은 산헤립이 그의 "대군(great army)"과 함께 포위 공격을 감독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참전했다고 말한다(열왕기하 18:17; 역대하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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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5 : 히스기야 시대의 라기스(Lachish). <Wellcome Collection. CC BY-SA 4.0, colorized by Keaton Halley>


고고학자들은 1932년부터 라기스를 발굴해 왔다. 그들은 산헤립의 군대에 의해 파괴된 성벽과 건물을 식별할 수 있었다. 히스기야 시대에 라기스는 유다에서 예루살렘 다음으로 두 번째로 중요한 도시였다. 그것은 경사면 중간쯤에 있는 외부 옹벽(revetment wall)과 약 6m 두께의 정상의 내부 성벽(inner wall)을 포함하여, 가파른 언덕에 위치하여, 강력한 요새로 둘러싸여 있었으며, 많은 망루(towers)들이 통합되어 있었다. 내벽으로 둘러싸인 도시의 크기는 18에이커가 넘었다.

라기스에 들어가려면, 남서쪽 모퉁이에서 외곽 문루(outer gatehouse)까지 경사진 길을 올라가서 통과하여, 우회전 한 다음, 탁 트인 안뜰(courtyard)을 가로질러, 도시로 접근을 지키는 거대한(24 × 24 m) 6개의 방들이 있는 내측 관문(inner gateway, 그림 1.6)에 도달해야 한다. 대체적으로 라기스는 적들로부터 잘 보호된 요새였다. 그러나 이러한 방어는 산헤립의 분노와 우월한 앗수르의 공성 장비들에 의해 전복되는 것을 막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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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6 : 고고학자들이 발굴하고 복원한 라기스 성의 문들. 경사진 입구는 사진의 좌측 상단에 있으며, 외곽 문루(outer gatehouse)에 접근하여 안뜰(courtyard)로 이어지며, 그 뒤에는 도시로 접근할 수 있는 24 × 24m 크기의 6개의 방들이 있는 내측 관문이 있다. <Guy Fitoussi, Courtesy of the Israel Antiquities Authority>


히스기야의 개혁

흥미롭게도, 최근 라기스에서 발견된 것들 중 일부는 성경에서 히스기야 왕을 경건한 지도자이자, 영적 개혁자로 묘사한 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성경 기록은 히스기야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히스기야가 그의 조상 다윗의 모든 행위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하게 행하여 그가 여러 산당들을 제거하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열왕기하 18:3-4). 

또한 그는 성전 예배를 회복하고, 오랫동안 소홀히 되었던 유월절을 예루살렘에서 다시 시행했다(역대하 29~30장). 재미있는 것은, 앗수르인들은 히스기야가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과 산당들을 파괴했다고 주장함으로써, 히스기야의 개혁적 노력을 그를 반대하는 데에 이용하려고 하고 있었다(열왕기하 18:22). 히스기야는 실제로 이스라엘의 참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었으며, 모세의 율법에서 그분의 백성에게 종교의식을 어떻게 거행해야 하는지에 대해 계시하셨던 지시를 따르고 있었다.


라기스에서 최근 발견된 사실은 성경이 히스기야 왕을 경건한 지도자이자, 영적 개혁자로 묘사한 것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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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7 : 라기스에 있는 신전 문(gate-shrine)의 제단(altar). 뿔은 의도적으로 부러졌다.


특히 2016년에 고고학자들은 라기스의 6개의 방이 있는 관문 안에 있는 울타리 중 하나에서 혼합주의 또는 이교도 예배에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제단과 도자기들을 발견했다. 그러나 제단의 뿔은 의도적으로 잘려나갔고(그림 1.7) 인접한 벽에 박혀 있었다. 또한 발굴자들은 우상의 신전을 모독하고 더 이상의 사용을 금지하는 수단으로, 변소(돌 화장실, stone toilet, 그림 1.8)가 그곳에 설치되었다고 믿고 있었다(열왕기하 10:27 참조).[16] 발견자들은 이러한 신전 모독을 우상숭배에 반대했던 히스기야의 개혁 운동과 연관시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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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8 : 라기스의 신전 문(gate-shrine)에서 발견된 돌 변기(stone toil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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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9 : 브엘세바(Beersheba)에서 복원된 네 뿔 제단(four-horned altar). <Tamarah,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히스기야의 종교 개혁(religious reforms)과 관련이 있다고 주장되는 추가적 증거들이 유다의 다른 여러 지역에서도 발견되었지만, 그 증거들은 결정적이지 않았으며, 학자들의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17] 히스기야와의 가능한 연관성으로는 현대 고고학자들에 의해 재조립된 브엘세바에서 발견된 해체되고 버려진 제단(그림 1.9), 아라드(Arad, 아랏)에 묻혀있는 신전, 조각상과 향로가 의도적으로 손상된 채로 재 아래에 묻혀있는, 텔 모차(Tel Motza)의 이전 신전 건물 등이 있다.[18]


라기스에서의 전투

앗수르 공격의 세부 사항을 드러내는 풍부한 증거들도 라기스에서 발견되었다. 첫째, 오늘날까지도 라기스를 방문하면 도시의 남서쪽 모퉁이에 쌓아놓은 커다란 돌더미(piled stones)를 볼 수 있다. 앗수르인들은 공성 경사로(siege ramp)를 만들기 위해서 주변 들판에서 돌들을 모아서 그곳에 쌓았다(그림 1.10). 그들은 이 돌의 표면을 회반죽(mortar)으로 덮어, 경사로가 고대 아시리아의 탱크에 해당하는, 공성추(battering ram, 충차)가 장착된 바퀴 달린 공성 기계를 지탱할 수 있도록 했다. 앗수르인들은 이 공성추의 날카로운 끝을 남서쪽 요새로 몰아넣었고, 그곳은 지형적으로 안부(saddle)로 이 지점은 공격하기에 가장 취약한 장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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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0 : 라기스의 남서쪽 모퉁이에, 들판의 돌들을 쌓아 만들어놓은 앗수르인들의 공성을 위한 경사로(siege ramp). <Wilson44691, Wikimedia Commons CC BY-SA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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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1: 앗수르의 공성 경사로와 반공성 경사로(counter-siege ramp)를 보여주는 라기스의 남서쪽 모퉁이의 지도.


산헤립의 연대기(Sennacherib’s Annals)에는 그가 유다의 요새화된 도시에 접근하기 위해 사용했던 다양한 전략 중에는 이러한 전술이 언급되어 있었다 : "경사로를 평탄하게 하고, 공성추를 끌고 가서, 공성 공격, 약화, 돌파, 보병의 공격으로" 그들의 방어를 극복했다고 그는 말했다.[19] 대영박물관(아래)의 부조는 이 상황을 상당히 자세하게 묘사해놓고 있었다. 또한 라기스의 고고학적 발견은 앗수르인들이 결국 남서쪽 모퉁이를 돌파하고 상부 성벽을 공격하기 위해 공성 경사로를 더 확장했음을 밝혀냈다.

성벽을 따라 남서쪽 모퉁이에만 거의 1,000여개의 화살촉(arrowheads, 그림 1.12)들과 투석용 많은 둥근 물맷돌(sling stones, 그림 1.13), 아시리아 갑옷 비늘(armour scales, 그림 1.14), 유다 사람들이 공성추에 대응하기 위해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는 여러 도구들을 포함하여, 전투에서 사용되었던 많은 무기들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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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2 : 라기스에서 발굴된 화살촉. <Keaton H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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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3: 라기스에서 발견된 투석용 둥근 물맷돌(sling stones).<Keaton H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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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4: 라기스에서 발견된 아시리아 철과 청동 갑옷 비늘. <A.D.. Riddle/BiblePlaces.com>


한편, 도시 내부의 발굴 조사에 따르면, 라기스 주민들은 고지를 유지하고, 상부 성벽을 지지하기 위해서 반공성 경사로(counter-siege ramp)를 만들었다.(그림 1.11). 이것은 일시적인 안도감을 제공했지만, 슬프게도 앗수르인들이 결국 성벽을 뚫고, 라기스의 수비군을 물리쳤다.

결국 산헤립의 군대는 도시에 불을 질렀고, 이 불탄 파괴의 증거는 도시 전역에서 발견되었다(그림 1.15). 1973년부터 1994년까지 라기스의 발굴 책임자였던 데이비드 우시슈킨(David Ussishkin)에 따르면,

굴착기가 땅을 파면, 그들은 어느 곳에서든 즉시 벽돌, 불에 탄 나무, 재층, 부서진 그릇, 엄청난 열기로 변형된 그릇 등 잔해더미들 높이 쌓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벽돌로 된 벽들 중 일부는 무너져있었고, 벽돌 자체는 불에 타 붉어져 있었다. 나는 이스라엘 땅에서 그토록 대규모의 황폐화를 볼 수 있는 다른 고대 유적지를 기억하지 못한다.[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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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5 : 라기스의 한 방(room)은 재로 뒤덮인 바닥과 화재로 인해 붉어지고 무너진 진흙 벽돌로 덮여있었다.<Courtesy of David Ussishkin>


산헤립의 군대는 라기스에 불을 질렀고, 이 불에 의해 파괴된 증거가 도시 전역에서 발견되었다.


니느웨의 궁전 그림 - 라기스 부조

니느웨(Nineveh, 니네베)로 돌아온 산헤립은 라기스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여 커다란 석조 벽화(stone-carved mural)를 제작했다. 이 전투는 그가 "무적의 궁전(Palace Without Rival)"이라고 불렀던 그의 궁전 내부의 눈에 띄는 방에 있는 일련의 벽면 패널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다.[21] '라기스의 부조(Lachish Reliefs)'라 불리는 이 패널들은 1845년에서 1847년 사이 산헤립의 남서쪽 궁전을 발굴하던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Austen Henry Layard)에 의해 발견되었다. 안타깝게도 레이어드가 니느웨에 남겨놓았던 부조의 일부는 이후 유실되었다. 그러나 그가 영국으로 가져온 12개의 패널은 오늘날에도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그림 1.16).

라기스 부조는 예술적 양식이 돋보이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 부조가 전투의 중요한 측면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세부 묘사를 보면, 아마도 남서쪽에서 바라본 라기스의 성벽과 성문이 표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앗수르의 보병대는 양쪽에 궁수와 투석병을 배치하여 유다 수비군과 싸우고 있다. 성벽에는 여러 개의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어 성벽을 오를 수 있었다. 앗수르의 창병과 다른 병사들은 도보로 공성 경사로를 오르고 있다. 경사로에는 공성추를 장착한 인력 공성기 7대가 보인다. 유다 병사들은 돌과 횃불, 심지어 불타는 전차까지 앗수르군에게 던지고 있다. 동시에 앗수르 병사들은 공성 장비에 물을 뿌려 불길로부터 보호하고 있었다.

유다 포로들의 행렬이 성문에서 나와 앗수르 진영을 향해 오른쪽으로 가고 있다. 포로들 중 일부, 아마도 성의 지도자들의 시신은 말뚝(stakes)에 꿰뚫려 있다. 다른 포로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고문을 당하거나 살해당하고 있다. 남은 포로들은 압수된 전리품과 함께 산헤립에게 끌려가는데, 그곳에는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었다. "우주의 왕, 앗수르의 왕 산헤립이  라기스의 전리품을 앞세우고 가마에 앉아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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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6 : 라기스 부조(Lachish Reliefs).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a)공격받는 성문, (b)앗수르 투석병, (c)꿰뚫려진 유다 포로들, (d)공성추에 물을 떠서 붓는 앗수르 병사, (e)앗수르 진영, (f)산헤립. <(a,b,c) Photograph by Mike Peel (www.mikepeel.net), (d) Osama Shukir Muhammed Amin FRCP(Glasg),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f) Knerdler, Wikimedia Commons CC BY-SA 4.0>


결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고고학적 발견은 이 사건에 대한 성경 기록을 훌륭하게 뒷받침하고 있다. 그렇다면 히스기야와 유다 민족은 어떻게 이 침략에서 살아남았을까? 2부에서는 예루살렘을 지키기 위한 히스기야의 준비 과정과 앗수르인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벌어진 언쟁을 살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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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의 LMLK 저장 항아리


본문에서 다룬 것 외에도, 고고학적으로 히스기야와 관련되어 흥미롭고 많은 논의가 이루어진 것은 LMLK(L'Melekh) 항아리(jars)이다. 이 항아리는 어깨 부분에 네 개의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달걀 모양의 저장용 항아리이다(그림 1.17). 굽기 전에 손잡이 일부에는 날개 달린 태양이나 풍뎅이가 그려진 인장 자국이 찍혀 있었는데, 이는 히스기야의 왕실 인장에 새겨진 문양과 다소 유사하다(본문 참조). 이 손잡이의 인장 자국에는 "LMLK "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히브리어로 "왕의 소유"를 의미한다(그림 1.18). 또한, 비문에는 일반적으로 헤브론(Hebron), 맘샤트(Mamshat), 소코(Socoh), 지프(Zif) 중 하나의 이름이 포함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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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7 : LMLK 항아리. <Keaton Ha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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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8 : 라기스의 LMLK 항아리 손잡이에는 두 개의 날개가 달린 태양 원반과 "왕의 것, 헤브론(Belonging to the King; Hebron)"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Keaton Halley>


이 항아리들을 둘러싼 많은 미스터리들이 존재한다. 이 항아리들의 기능은 정확히 무엇이었을까? 유다의 부차적인 도시였던 네 곳의 위치는 어떤 의미를 지녔을까? 이 중 세 곳은 알려진 도시들을 가리키지만, 학자들은 맘샤트의 위치에 대해서는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맘샤트는 어디에 있었을까? 일부 항아리에는 대량 생산된 LMLK 인장 자국(stamp) 외에도 개인 인장 자국이 포함되어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항아리를 구운 후 손잡이에 새겨진 동심원 고리(concentric rings)의 의미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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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19 : LMLK 항아리 조각들이 발견된 위치 지도. <Keaton Halley, redrawn based on lmlk.com/research/lmlk_geo.htm>


항아리들은 히스기야 통치 기간 내의 짧은 기간에 만들어진 것이 분명하다. 항아리 조각의 대부분은 산헤립이 만든 파괴 층에서 발견되었다. 이 항아리들은 유다 땅 전역의 유적지에 집중되어 있으며, 다른 곳에서도 그보다는 적게 발견된다(그림 1.19). 이러한 인장 자국이 찍힌 손잡이가 있는 항아리들 500개 이상과 여러 완전한 항아리들이 라기스에서 회수되었고, 왕국 전체에서 4,000개 이상의 손잡이가 있는 항아리들이 발견되었다. 또한 LMLK 항아리는 블레셋 도시인 가드(Gath), 아스돗(Ashdod), 아세가(Azekah), 에그론(Ekron)에서도 발견되었는데, 이는 앗수르의 침략 이전에 히스기야가 블레셋을 침략한 것과 일치한다(열왕기하 18:8). 이들은 모두 같은 종류의 점토로 만들어졌고, 지역적으로 대량 생산되었는데, 아마도 쉐펠라(Shephelah, 유다 구릉지)의 한 공급지에서 생산되었을 것이다. 이 항아리에 모든 인상(impressions)들을 새기는 데 사용된 인장 자국(stamps)의 종류는 불과 22개 정도였다.

많은 학자들은 LMLK 항아리들은 히스기야가 산헤립의 공격에 대비하여 준비한 것과 관련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이 항아리들은 히스기야의 병사들을 위한 식량을 보관했던 보급 용기의 일부였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정확한 용도가 무엇이든, LMLK 항아리는 현대 고고학자들에게 확실히 유용한 유물이 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이 항아리들을 연대측정의 표지자(marker)로 여기며, 이 항아리들이 묻혀있는 층은 히스기야 왕 시대로 추정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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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ublished: CMI, 10 December 2019.


References and notes

1. See also 2 Kings 20:20, 2 Chronicles 32 and Isaiah 36–37. 

2. Deutsch, R., Lasting Impressions: New bullae reveal Egyptian-style emblems on Judah’s royal seals, Biblical Archaeology Review 28(4), July/August 2002. 

3. The Hebrew University of Jerusalem, Impression of King Hezekiah’s royal seal discovered in excavations in Jerusalem, ScienceDaily.com, 2 December 2015. 

4. Ref. 2. See also Lubetski, M., King Hezekiah’s Seal Revisited, Biblical Archaeology Review 27(4), July/August 2001. 

5. Royal Inscriptions of the Neo-Assyrian Period (RINAP) 3, Sennacherib Chicago/Taylor Prism, 3:18–21. 

6. Micah 1 and Isaiah 22 also refer to disaster befalling various cities of Judah around this time, possibly alluding to Sennacherib’s invasion. 

7. Luckenbill, D.D., The Annals of Sennacherib, p. 32,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IL, 1924.

8. Kelm, G.L., and Mazar, A, Timnah: A Biblical City in the Sorek Valley, pp. 119–120, 135, Eisenbrauns, Winona Lake, IN, 1995. 

9. Young, R.A., Hezekiah in History and Tradition, pp. 62–65, Brill, Leiden, The Netherlands, 2012. Young points out that there is some dispute about Beersheba. 

10. Ussishkin, D., Sennacherib’s Campaign to Judah: The archaeological perspective with an emphasis on Lachish and Jerusalem, in Kalimi, I., and Richardson, S. (eds.), Sennacherib at the Gates of Jerusalem, pp. 99–100, Leiden, The Netherlands, Brill, 2014. 

11. Halpern, B., From Gods to God: The Dynamics of Iron Age Cosmologies, p. 366, Mohr Siebeck, Tübingen, Germany, 2009. 

12. Luckenbill, D.D., The Annals of Sennacherib, p. 33,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IL, 1924.

13. Dagan, Y., Results of the Survey: Settlement Patterns in the Lachish Region, in Ussishkin, D. (ed.), Renewed Archaeological Excavations at Lachish, Vol. 5, p. 2683, 2004. 

14. Some possible explanations for the discrepancy are given by Kitchen, K.A.,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p. 42, Wm. B. Eerdmans Publishing Co., Grand Rapids, MI, 2003. Other possibilities are offered by Evans, P.S., The Invasion of Sennacherib in the Book of Kings, p. 144, note 16, Brill, Leiden, The Netherlands, 2009.

15. RINAP 3, Sennacherib Chicago/Taylor Prism, 3:37–47.

16. Ganor, S. and Kreimerman, I., Going to the Bathroom at Lachish, Biblical Archaeology Review 43(6), November/December 2017. 

17. For a critical assessment, see Na’aman, N., The Debated Historicity of Hezekiah’s Reform in the Light of Historical and Archaeological Research, Zeitschrift Für Die Alttestamentliche Wissenschaft, 107(2):179–195, 1995. For a favorable assessment, see Finkelstein, I., and Silberman, N.A., Temple and Dynasty: Hezekiah, the remaking of Judah and the rise of the pan-Israelite ideology, Journal for the Study of the Old Testament 30(3):269–275, 2006. 

18. Moulis, D.R., Hezekiah’s religious reform—in the Bible and archaeology, Bible History Daily, 9 June 2018, biblicalarchaeology.org.

19. RINAP 3, Sennacherib Chicago/Taylor Prism, 3:21–23. 

20. Ussishkin, D., Biblical Lachish, p. 219, Israel Exploration Society and Biblical Archaeology Society, Jerusalem, 2014.

21. Elayi, J., Sennacherib, King of Assyria, p. 174, SBL Press, Atlanta, GA,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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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MI, 2019. 12. 10.

주소 : https://creation.com/hezekiah-archaeology-1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5-10-18

벨사살 : 바빌론의 두 번째 통치자.

고고학은 벨사살 왕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다.

(Belshazzar: The second most powerful man in Babylon

How archaeology vindicated the Bible’s curious claims about King Belshazzar)

By Keaton Halley


          회의론자들은 한때 다니엘 5장에 나오는 벨사살 왕의 존재를 부인했지만, 고고학은 성경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증해주었다.


  바빌론 왕 벨사살(Belshazzar, King of Babylon)이 귀족 천 명을 불러 큰 잔치를 베풀고 술을 마실 때에, 부친(선왕)이었던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한다. 벨사살과 귀족들은 불경스럽게도 거룩한 그릇에 술을 부어 마시고는,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다니엘 5:4).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 왕이 크게 소리 질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말하되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라” (다니엘 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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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사살에 대한 의구심

이 이야기는 단지 전설에 불과할까? 아니면 정확한 역사를 성경이 보존하고 있는 것일까? 여러 해 전, 일부 회의론자들은 벨사살이라는 바빌론 왕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그의 이름과 이야기는 바빌로니아의 실제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1]


일련의 고고학적 발견은 벨사살이 결국 실존했음을 보여주었으며, 성경에 기록된 벨사살에 대한 세부 사항들도 매우 정확했음을 입증해주었다.


비판가들의 소굴이 됐던 다니엘서[2]

다니엘서에 나오는 놀라운 예언들의 성취 때문에, 비판가들은 오랫동안 그 예언의 역사적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려고 노력해 왔다.[3] 다니엘은 BC 6세기에 살았지만, 비판가들은 다니엘서를 4세기 후인 마카베오(Maccabees, BC 2세기)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를 통해, 그들은 다니엘서의 예언이 실제로는 '예언'했던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따라서 비판가들이 일반적으로 다니엘서에 벨사살에 대한 주장을 포함하여, 중대한 역사적 오류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제국의 종말

성경은 유명한 '벽에 쓰여진 글씨' 사건이 바빌로니아의 수도인 바빌론 성이 고레스 대왕(King Cyrus the Great)의 메디아-페르시아 제국(Medo-Persian empire)에 함락된 바로 그 날에 일어났다고 알려 준다. 실제로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다니엘 5:26),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28절)라고 해석했다. 성경은 벨사살이 "그 날 밤에"(30절) 죽임을 당했으며, 그의 죽음과 함께 바빌로니아 왕국은 이제 메디아-페르시아 제국이 지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4]

그러나 다른 모든 알려진 역사적 기록들은 한때 이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헤로도토스(Herodotus), 메가스테네스(Megasthenes), 베로수스(Berossus), 알렉산더 폴리히스터(Alexander Polyhistor)와 같은 고대 역사가들과, 방대한 수의 설형문자 문서들은 하나같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Nabonidus)라고 주장했다.[5] 벨사살은 다니엘서와 그로부터 파생된 문헌 말고는 어디에도 언급되어있지 않았다.[6]


다니엘서가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는 사실은 그 기록이 일어났던 시기 근처에 기록되었음을 가리킨다.


파묻혀있던 보물

그러나 모든 증거들이 성경에 반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 일련의 고고학적 발견들은 벨사살이 결국 실존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성경에 기록된 그에 대한 세부 사항들은 매우 정확했음이 밝혀졌다.

먼저, 1854년에 동일한 비문(inscriptions)이 새겨져있는 4개의 점토 원통(clay cylinders)들이 우르(Ur)에서 발굴되었다.[7] 이들 나보니두스 원통(Nabonidus Cylinders)에는 나보니두스가 달의 신에게 "나의 후손, 장자인 벨사살"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8] 따라서 벨사살의 존재가 확인되었는데, 나보니두스의 맏아들이자, 왕위 계승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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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르(Ur)에서 발굴된 나보니두스 원통(Nabonidus Cylinder). <© Marie-Lan Nguyen / Wikimedia Commons>


그러다가 1882년에 또 다른 고대 설형 문자 텍스트인 「나보니두스 연대기(Nabonidus Chronicle)」에 대한 번역이 이루어졌다. 이 문서에 따르면, 나보니두스는 대부분 부재한 왕이었으며, 17년 통치 중 10년을 아라비아 테마(Tema, 바빌론에서 725km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 왕은 본문에서 "왕세자(the crown prince)"라고 부르는 벨사살을 떠나, 그 기간 동안 바빌론의 일을 처리했다.[9] 또한 연대기는 바빌론이 함락되었을 때, 나보니두스는 바빌론을 떠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틀 전에 페르시아인들이 시파르(Sippar)에서 나보니두스를 물리쳤을 때, 그는 페르시아인들로부터 도망쳤기 때문에, 바빌론이 점령되었을 때 벨사살은 바빌론의 최고 권위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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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니두스 연대기(Nabonidus Chronicle) 점토판. <ChrisO / Wikimedia Commons>


다음으로, 1924년에 보고된 「나보니두스의 페르시아 구절 기록(Persian Verse Account of Nabonidus)」에 의하면, 나보니두스가 "긴 여행을 떠났을 때" "그의 맏아들에게 왕권을 맡겼다"고 기술되어 있었다.[10] 그러므로 벨사살은 아버지가 없는 동안 여러 해 동안 왕의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더욱이, 1900년대 초에 벨사살을 언급하고 있는 여러 고대 설형문자 문헌들이 발견되었으며, 여기에는 에렉(Erech)에서 발굴된 한 점토판(tablet)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에는 그와 그의 아버지 나보니두스가 공동으로 맹세(oath 선서)를 하고 있어서, 이는 둘 다 왕권을 가졌음을 시사한다.[11]


왕의 호칭 

당연히 비판가들은 이러한 발견을 경시하려고 노력하며, 벨사살이 바빌로니아 문서에서 공식적으로 왕으로 밝혀진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가 바빌로니아 기준으로 엄밀히 말하면 왕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다니엘이 그를 그렇게 불렀던 것은 완전히 이해가 된다. 고대인들이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 헤로데 안티파스, 헤롯 대왕의 아들)의 경우처럼, 최고의 통치자는 아니지만, 왕으로 묘사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는데, 그는 단지 분봉왕이었다(마태복음 14:1, 9 참조).[12] 게다가 벨사살은 공식 직함과 상관없이, 아버지가 없는 동안 모든 실질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바빌론의 왕이었다.

놀랍게도, 이 말은 또한 다니엘서의 작은 사항까지도 사실이었음을 확인해주는데, 벨사살 왕은 벽에 쓰여진 글자를 읽고 해석하는 자에게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고 말한 부분이다. 나보니두스는 살아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벨사살이 아버지와 동시에 통치하는 공동 섭정에 가까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보니두스는 '첫째' 위치에 있었고, 벨사살은 실제로 둘째 위치에 있었다. 이것은 벨사살이 다니엘에게 나라의 두 번째 자리를 제안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셋째 통치자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였다!


패배시킬 수 없는 책

이제 다니엘서가 이 사건들이 있은 지 수백 년이 지나서 기록되었다는 비판가들의 말이 옳다면, 저자는 벨사살에 대해 또는 그가 두 번째 통치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서가 역사적으로 정확했다는, 그리고 작은 세부 사항까지도 정확했다는 사실은 그 기록이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기 근처에 기록되었음을 가리킨다. 고고학적 사실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다니엘서는 정확했다. 다니엘은 비판가들보다 벨사살과 신바빌로니아 제국에서 그의 역할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God’s Word)이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진실이며, 부정될 수 없다. 새로운 발견들이 있게 되면, 비판가들의 이론은 자주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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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사살의 부친 느부갓네살 - 성경의 실수?


다니엘 5장에는 느부갓네살을 벨사살의 부친으로 다섯 번 언급하고 있으며(2, 11, 11, 13, 18절), 한 번은 벨사살을 느부갓네살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다(22절). 그러나 다른 자료들은 벨사살이 나보니두스의 아들이었고(본문 참조), 나보니두스는 느부갓네살의 혈육이 아니라, 왕위 찬탈자였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이러한 명백한 불일치를 성경적 오류로 지적하고 있지만, 몇 가지 조화가 가능하다. 첫째,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일부 사람들은 나보니두스가 느부갓네살의 딸 중 한 명과 결혼하여 벨사살을 손자로 낳았을 것이라고 제안했다.[1] 성경적 용법에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용어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our father"(눅 3:8, NIV, KJV)라고 부르거나, 예수를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마 1:1, NIV, KJV)이라고 부를 때와 같이 일반적으로 조상/후손을 지칭할 수 있다.

하지만 더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이 그러한 용어를 훨씬 더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아버지(father)'와 '아들(son)'은 문자 그대로의 혈연 관계는 없더라도, 같은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엘리사(Elisha)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사밧(Shaphat)이다.(열왕기상 19:16) 그러나 엘리사는 엘리야(Elijah)를 "my father, my father(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열왕기하 2:12)라고 부르고 있고, 예언자 직분을 맡은 사람들을 "sons of the prophets(선지자의 제자들)"(열왕기하 2:15, KJV)이라고 부르고 있었다.[2] 따라서 벨사살은 단순히 느부갓네살의 왕위 계승자라는 의미에서 느부갓네살의 아들이라 불려질 수 있었다.


1. Wiseman, D.J., Nebuchadrezzar and Babylon, pp. 11–12, Oxford University Press, 1985.

2. This meaning may also be present in Genesis 4:20–21, in which individuals are described as the father of all who participate in the craft or trade which they develop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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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적 위에 재건된 고대 도시 바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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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In particular, German commentators Caesar von Lengerke, Das Buch Daniel, p. 204, Bornträger, Königsberg, 1835 and Ferdinand Hitzig, Das Buch Daniel, p. 75, Weidmann, Leipzig, 1850.

2. Title borrowed from the books by Josh McDowell and Sir Robert Anderson.

3. Attacks began as early as Porphyry in the 3rd century ad. Jerome quotes Porphyry as claiming, “Daniel did not predict so much future events as he narrated past ones.” en.wikipedia.org/wiki/Porphyry_(philosopher).

4. Cyrus’ general Gubaru (or Gobryas) led the army, and Cyrus rewarded him with the governorship of Babylon, so Gubaru may be “Darius the Mede” (Daniel 5:31). See Whitcomb, J.C., Jr., Darius the Mede, Baker, Grand Rapids, MI, 1963.

5. Dougherty, R.P., Nabonidus and Belshazzar: A Study of the Closing Events of the Neo-Babylonian Empire, pp. 7–12, Yale University Press, 1929.

6. E.g., Baruch 1:11–12 and Josephus’ Antiquities 10.11.

7. Additional copies were uncovered in the 1960s.

8. The Nabonidus Cylinder from Ur, translation by Paul-Alain Beaulieu; livius.org/na-nd/nabonidus/cylinder-ur.html.

9. Pritchard, J.B. (ed.),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with Supplement, p. 306,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9.

10. Ref. 9, p. 313.

11. McDowell, J., Daniel in the Critics’ Den, p. 64, Campus Crusade for Christ, San Bernardino, CA, 1979.

12. See also Millard, A.R., Daniel in Babylon: An Accurate Record? in Hoffmeier, J.K. and Magary, D.R. (eds.), Do Historical Matters Matter to Faith?, pp. 270–271, Crossway, Wheaton, IL,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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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MI, Creation 37(3), Published 01 Aug, 2016, Updated 28 Nov, 2016

주소 : https://creation.com/en/articles/archaeology-belshazza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5-10-13

거인 골리앗에 대한 7가지 고고학적 증거들

(Goliath—the BHG

Seven supporting archaeological evidences for the biblical giant)

By Gavin Cox


  가드 사람 거인 골리앗에 대한 7가지 고고학적 증거들은 성경적 역사를 뒷받침한다.  


   동화 작가 로알드 달(Roald Dahl)을 아는 사람이라면 ‘내 친구 꼬마 거인(BFG, Big Friendly Giant)에 대해 들어보았을 것이다. 이 글은 또 다른 거인에 대한 것이지만, 결코 우호적이지는 않은, 바로 BHG(big hostile giant)에 관한 글이다. 많은 사람들이 거인 골리앗(Goliath)의 이름을 들어보았을 것이다. 베헤모스와 리워야단(욥기 40~41장)처럼, 골리앗은 크기 면에서 거대함을 상징한다. 주일학교에서 유명한 골리앗은 어린 소년 다윗의 물맷돌과 칼로 거침없이 죽임을 당했다(사무엘상 17장). 다윗은 나중에 이스라엘에서 가장 유명한 왕이 되었고, 예수 그리스도(메시아)의 중요한 조상이 되었다(마태복음 1:1,6,16).

하지만 이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저 '과장된 이야기'에 불과할까? 아니면 실제로 일어난 일일까? 안타깝게도 많은 사람들이 너무나 친숙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성경의 다른 부분들과 마찬가지로 우화로 치부해버린다. 그렇다면 증거들은 무엇을 가리킬까? 고고학은 성경에서 잘 알려진 이 이야기의 등장인물과 사건에 대해 어떤 정보를 제공할 수 있을까? 이 글은 최근 몇 년 동안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놀라운 증거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러한 증거들은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죽인 사건이 고고학적 기록과 일치함을 의심할 여지 없이 보여준다.

다음의 7가지 증거들은 골리앗의 존재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적 설명과 일치하므로,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에 대한 귀중한 문화적 배경을 제공한다.


증거 1 : 골리앗의 도시—거대한 크기의 돌들로 이루어진 고대 도시 가드

성경은 골리앗이 가드(Gath, 히브리어로 'ḡaṯ' 라고 발음)에 살았다고 말한다.(사무엘상 17:4). 이 도시는 성경에 33회나 언급되어있다.[1] 이 도시는 블레셋 사람들의 다섯 가나안 도시국가 중 하나였으며(여호수아 13:2~3), 여호수아 11:22절에 처음 언급되고 있다. 가사(Gaza, 가자)와 아스돗(Ashdod)과 함께, 가드는 아낙(Anakim[2], 아낙자손)과 아마도 '일반' 가나안 사람들의 피난처였는데, 이들은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기간 동안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3]

약 200년 후, 시리아(아람)의 왕 하사엘(Hazael, BC 842~796년 재위)이 가드를 정복했다(열왕기하 12:17~18). 그는 예루살렘에 관심을 돌렸지만, 유다 왕 요아스는 성물과 왕궁에 있는 금을 그에게 보내며, 도시를 정복하지 말아달라고 설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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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텔 에스 사피(Tell-es-Safi). 가드(Gath)의 공인된 고고학적 유적지.


고고학자들은 텔 에스 사피(Tell es-Safi, 그림 1, 사진은 여기를 클릭)라고 불리는 고분(mound), 또는 텔(tell)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유물들을 통해 하사엘이 가드를 정복했다는 사실을 확고히 확립했다. 이곳은 1899년부터 탐사되었지만, 1996년 이후 아론 메이어(Aaron Maeir, 미국 태생의 이스라엘 고고학자이자 바르일란 대학 교수)가 이끄는 텔 에스 사피/가드 고고학 프로젝트(Tell es-Safi/Gath Archaeological Project)에 의해 발굴되었다. 예루살렘과 아슈켈론(Ashkelon)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텔 에스 사피는 집중적이고 기술적으로 진보된 고고학 탐사의 대상이 되어왔다.[4] 그러나 하사엘이 파괴했던 층 아래에서 발견된 것들은 상당한 고고학적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예를 들어, Times of Israel 지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다 :

“[2019년에] 고고학자들은 좀 더 깊이 파고들면서 하사엘이 BC 830년에 파괴했던 정착지보다 앞선 인상적인 유적을 발견했다…”고 말하고 있다 : 초대형 크기의 “거대한” 건축물과 요새의 유적…”[5]

이 기사에 따르면, 텔 에스 사피에서 이전에 발굴됐던 지역 대부분은 BC 10세기와 9세기로 추정되었으며, 요새의 흔적은 거의 발견되지 않았었다. 그러나 새롭게 발굴된 그 아래의 층은 BC 11세기로, 거대한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상부층과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이는 사무엘상 17장에 나오는 다윗 왕이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성경 이야기와 정확한 같은 시기이다.[4] 메이어 교수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다윗이 역사적 인물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는 학자들에게(나도 그중 한 명이다) BC 11세기 후반에서 10세기 초는 도시 가드의 초기 시대로 다윗이 살았던 시대이다. 이곳 가드에서 인상적인 유적이 방금 발견되었다... 만약 다윗이 실제로 골리앗으로 추정되는 상대와 일대일 결투를 벌였다면, 이는 가드 도시의 초기 철기시대와 거의 일치할 것이다... [발견된 고고학적 유적에서] 건물과 요새는 매우 컸으며, 당시 레반트(Levant,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에서 발견된 거의 모든 것들보다 훨씬 큰 돌들로 지어졌음을 보여준다... 그곳의 후기 층에서는 고대 건축가들이 0.5m 길이의 돌들을 사용했다. '골리앗 층'에서 발견된 돌들은 1~2m 크기였다.”[4, 6]

이러한 고고학적 증거는 이 도시가 거인 아낙자손(Anachim)의 피난처였다는 사실과 놀랍도록 일치한다. 그러나 마이어 교수는 그러한 생각을 받아드리려 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발견된 모든 블레셋 사람의 유골들은 그들이 일반 크기의 사람들보다 크거나 달랐다는 증거를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역사적 핵심(kernel)이 있는지 없는지, 그리고 실제로 핵심이 있다면, 그 핵심이 무엇이었는지 말하기 어렵다.”[4]

메이어에게 있어 전설적인 자이언트는 바로 거대한 건축물이었다.

“새로운 발견에 비추어 볼 때... 가드의 거인들에 대한 다양한 성경적 전승(골리앗은 단지 한 예일 뿐)은 블레셋 사람들의 기념비적 건물의 크기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이 있다.”[4]

그러나 메이어가 골리앗에 대한 성경 기록을 일축하는 것은 시기상조였다. 이는 우리가 살펴볼 더 많은 증거들을 통해 알 수 있다.


증거 2 : 가드의 문들 - 거대한 크기의 입구

고고학자들은 고대 도시 가드에 거대한 요새와 성벽과 함께 거대한 성문(gates)들이 있었음을 발견했다. 2015년에는 마이어 교수가 이끄는 같은 팀이 도시로 들어가는 거대한 성문을 발굴했다. 당시 온라인 기사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었다.

“이스라엘에서 발굴된 거대한 문은 성경 속 도시의 입구였을 수 있으며, 그 도시는 전성기에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큰 대도시였다.”

“… [고고학자들은] 지난 몇 십년 전까지 철기시대 유물들이 실제로 얼마나 육중했는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발굴팀은 기념비적인 성문 근처에서 철제 작업장과 블레셋 사원을 발견했으며, 블레셋 문화와 일반적으로 관련된 도자기와 기타 유물들도 발견했다.”[7]

가드의 모든 것들은 실제보다 더 컸던 것으로 보인다.


증거 3 : "골리앗 오스트라콘" - 거인의 이름?

2005년에 메이어 교수의 발굴팀이 텔 에스-사피에서 글자가 새겨진 도자기 조각(오스트라콘(ostracon, 고대의 도자기나 돌의 파편 유물)을 발견했는데, 그들은 이 조각의 연대를 BC 10세기에서 9세기 초로 추정했다. 도자기에는 두 개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는데, "AWLT 와 WLT"이었다.(그림 2). 메이어에 따르면, 이 이름은 유명한 성경의 거인 이름인 골리앗(Goliath, 히브리어로는 golyāṯ로 발음)과 철자가 매우 비슷하다는 것이다. 이 도자기는 텔 에스사피와 이 시기의 다른 유적지에서 발견된 다른 도자기들과 유사했다.[8] 오스트라콘 글자와 관련하여 메이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이 비문은 셈어 문자(Semitic letters)로 기록되어 해독된 가장 오래된 블레셋 비문(Philistine inscription)이다... 또한 연대가 정확하고 명확한 고고학적 맥락을 지닌 가장 초기의 원시 셈어 비문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이 비문은 BC 10/9세기경 블레셋의 가드에서 골리앗과 매우 유사한 이름들이 사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다윗/골리앗 이야기에 대한 일부 문화적 배경을 제공한다...”[9]

이 도자기 조각은 골리앗이 다윗의 손에 죽임을 당한지 100년 후에, 골리앗을 기념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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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텔 에스 사피의 "골리앗 오스트라콘(Goliath ostracon)".


증거 4 : 크파르 모나쉬의 보물  - 거대한 크기의 창  

1962년 봄, 크파르 모나쉬(Kfar Monash)에서 한 이스라엘 농부가 밭을 갈던 도중, 구리 도구들과 무기(copper tools and weapons)들이 무더기로 발견되었다.(사진은 여기를 클릭). 몇몇 은기(silver plate)와 구슬(beads)도 발견되었지만, 구리 도구의 나무 손잡이는 오래전에 썩어 없어져 있었다. 도끼날은 텔 에스 사피(가드)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구리 창촉(copper spear heads, 창날)이었다(그림 3). 고고학 보고서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

“이것은 모나쉬 유물들 중 가장 주목할만한 것들이다. 네 개의 창촉은 강력한 무기로, 아름다운 비율과 뛰어난 솜씨를 자랑한다. 네 개 모두 모양은 동일했지만, 크기는 달랐다. 가장 짧은 창촉은 길이(나무 자루에 고정되는 날의 홈)를 포함하여 33.3cm이고, 무게는 0.35kg이다. 가장 긴 창촉은 길이 66cm이고 무게는 2.05kg이다. … 창촉은 거대하다. 칼날 근처에서는 단면이 둥글지만, 갈고리 모양의 끝부분 근처에서는 사각형이 된다(가장 큰 창촉인 [A] 제외). 표면에는 강한 망치질 흔적이 있었다. 창촉에는 사용 흔적이 있었는데, 특히 가장 무거운 창촉은 한 부분이 구부러져 있었고, 가장자리를 따라 여러 군데가 마모되어 있었다. 이 무거운 창촉은 길고 균형 잡힌 자루가 필요했을 것이다. 창촉과 자루를 함께 결합시킨 창은 매우 긴 무기가 되었을 것이며, 아마도 사람의 키보다 더 길었을 것이다.”[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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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모나쉬에서 발굴된 구리 창촉(copper spear heads). 가장 큰 것(D)은 길이가 66cm이고, 무게는 2.05kg이다. (credit: Hestrin). <commons.wikimedia.org, Gary Todd>


보고서는 초대형 무기를 고대 근동(ANE)의 다른 무기들과 비교하였다(이 시기의 평균 창촉 길이는 약 6~7cm일 수 있다[13]). 그런 다음 아래와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모나쉬 창의 경우, 그 특이한 크기와 무게는 그것을 들고 다니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장애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9]

물론, 이 말은 평균적인 키와 힘을 가진 사람을 가정한 것이다. 거인일 가능성은 배제한 채, 보고서는 창의 용도가 무기가 아니라, 큰 텐트(tent)의 기둥이었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었다.

“크기 때문에 강력한 창은 텐트 기둥으로 사용하기에 적합했다. 무게를 지탱할 만큼 무거울 뿐만 아니라, 소유자의 위력과 힘을 상징하기도 했을 것이다.”[9]

각주에는 또 다른 이론이 언급되어 있는데, 바로 공성추(battering ram, 주로 성문을 부술 때 사용되었던 병기)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수수께끼에 대한 간단한 해답은(칼날의 손상을 고려하면) 거대한 인간이 전투에서 그 거대한 창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성경 기록에서 골리앗 이야기에 나오는 세부 사항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준다. 골리앗은 다음과 같았다.

“... 어깨 사이에는 놋 단창을 메었으니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창 날은 철 육백 세겔이며 방패 든 자가 앞서 행하더라” (사무엘상 17:6~7)

모나쉬에서 발견된 가장 큰 창의 무게는 2.05kg이었다. 철 1세겔은 12.9g에 해당한다. [14] 따라서 모나쉬에서 발굴된 가장 큰 창촉은 약 160세겔이다. 이는 골리앗의 거대한 600세겔의 창촉(7.57kg)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다![15]


골리앗의 창 자루가 '베틀 채(weaver’s beam, 사진은 여기를 클릭) 같고'라는 구절도 매우 도움이 된다. 고대 이스라엘에서 직물을 짜는 데 사용된 베틀의 예들이 알려져 있다. 베틀의 채(들보)는 두께가 최대 6cm이고 길이가 152cm가 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골리앗의 창 연구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

“성경에서 베틀의 채(beam, 들보)에 대한 언급은 길이보다는 자루의 특이한 두께와 강도와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베틀의 채는 평균적인 체격의 사람이 다루는 일반적인 작고 얇은 창과 대조된다. 성경에는 베틀의 채와 같은 창을 언급한 구절이 4개나 있는데, 그중 2개는 골리앗의 창을 가리킨다. 한 구절은 골리앗과 몸체가 비슷했을 가능성이 높은 골리앗의 형제의 창을 가리킨다. 네 번째 구절은 당시 키가 약 2.2m가 넘는 거인 이집트인을 가리킨다(사무엘상 17:7, 사무엘하 21:19, 역대상 11:23, 20:5)…”[16]

*참조 : 베틀 채를 언급하고 있는 네 군데의 성경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사무엘상 17:7) 

“...가드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그 자의 창 자루는 베틀 채 같았더라”(사무엘하 21:19)

“또 키가 큰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 그 사람의 키가 다섯 규빗이요 그 손에 든 창이 베틀채 같으나...” (역대상 11:23)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 라흐미를 죽였는데 이 사람의 창자루는 베틀채 같았더라” (역대상 20:5)


골리앗의 갑옷

모나쉬에서 발굴된 유물들 중에서 또 다른 "주목할 만한" 것은[9] 약 800개의 구리 비늘(copper scales, 그림 4는 한 작은 표본)이었다.[17] 이와 유사한 비늘이 가드(Gath)에서도 발견되었으며, 갑옷 비늘(scales of armour)로 확인되었다. 모나쉬의 비늘 갑옷과 가드의 비늘 갑옷이 고대 근동(ANE)의 북동부에서 발굴된 다른 비늘 갑옷과 다른 유일한 차이점은 중앙에 구멍이 있는 대신에, 가장자리에 주름(ridges)이 있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 주름은 가죽 속옷에 꿰매어 부착하는 데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있으며, 추가적인 보호를 위해 겹쳐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고고학자들에게 미스터리는 한 곳에 상당히 많은 갑옷 비늘들이 있었다는 것이었다.

"발견된 수많은 비늘들은 모나쉬 유물에 여러 개의 (나중에 네 개의 비늘로 추정) 금속 비늘의 사슬 갑옷(coats-of-mail)이 숨겨져 있었음을 시사한다. 모나쉬 비늘과 유사한 유일한 비늘은 텔 '가드'에서 발견되었는데, 그곳에서도 동일한 구리 비늘들이 하나의 묶음을 이루며 도시 성벽 근처에서 발견되었다... 발굴자들은 이 유물의 연대를 초기 청동기시대 I 지층으로 추정했다."[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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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주름이 있는 구리 판들(ridged copper plates). 갑옷 비늘(armour scales)로 확인되었다. <commons.wikimedia.org, Gary Todd>


이는 다시 한번 성경의 기록을 떠올리게 한다. 골리앗은 "... 몸에는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사무엘상 17:5). 대안으로 이 비늘 갑옷은 여러 개의 갑옷들이 아니라, 한 명의 거구가 입었던 하나의 갑옷을 나타낼 수도 있다.

더욱이 고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상당히 중요한데, 성경적 역사와 일관되게 모나쉬 유물과 텔 에스 사피 표본들은 갑옷 개발의 (세속적) 연대를 대략 3천 년 전으로 끌어내리고 있었다.[9]

보고서는 모나쉬 보물이 아마도 네 명의 벌목꾼에 의해 의도적으로 숨겨졌다는 것이 밝혀졌지만, 그 목적이 무엇인지는 결코 알 수 없었다. 보고서는 대부분의 무기들이 고대 근동(ANE)의 다른 유물들로부터, 특히 이집트에서 발견된 것으로부터 알려졌다고 결론짓고 있지만, 다음과 같이 말했다 :

“한 가지 가능한 예외를 제외하면, 우리 것과 같은 유사한 창촉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초기 청동기 I 시대, 또는 초기 청동기 II 시대의 시작, 즉 BC 3200년~2750년경에 해당한다.”[9]

성경 기록에 나와 있는 크기와 무게는 모나쉬 보물이 골리앗의 것이라는 주장을 배제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인이 있었다는 증거와 일치한다. 보고서가 명백한 사실을 인정하기를 꺼려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여기서 발견한 것은 거인의 무기와 갑옷이다. 이 두 가지 모두 가드를 가리키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북쪽으로 80km 떨어진 곳에 숨겨졌고 발견되었다. 구리 보물은 현재 예루살렘의 이스라엘 박물관(Israel Museum)에 전시되어 있으며, 온라인에서 볼 수 있다.[18] 골리앗의 창과 갑옷일까? 아마도 아닐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레셋 전사 중 거인의 존재와 일치한다.


증거 5 : 손가락과 발가락이 여섯 개인 거인들

손가락이 여섯 개인 사람은 다지증(polydactylism, 사진은 여기를 클릭)이라는 알려진 유전적 이상(돌연변이)을 갖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19] 이러한 돌연변이는 동물에서도 관찰된다.[20] 성경은 가드 사람 골리앗의 다섯 아들에 대한 흥미로운 세부 사항을 제공하고 있는데, 그중 한 아들은 손가락과 발가락이 스물네 개(각각 여섯 개씩, 역대상 20:6-8, 사무엘하 21:20 참조)였다는 것이다.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 큰 자 하나는 손과 발에 가락이 여섯씩 모두 스물넷이 있는데 그도 키가 큰 자의 소생이라” (역대상 20:6)

“또 가드에서 전쟁할 때에 그 곳에 키가 큰 자 하나는 손가락과 발가락이 각기 여섯 개씩 모두 스물 네 개가 있는데 그도 거인족의 소생이라” (사무엘하 21:20)

고고학은 골리앗 시대 무렵의 고대근동 지역에서 다지증에 대해 뭔가를 말해줄 수 있을까? 흥미롭게도 그렇다 이다. 다지증에 대해 출판된 기사에서,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BC 13세기의 다지증에 관한 두 사례가 가자(Gaza) 인근 데이르알발라(Deir el-Balah)에서 발굴된 이집트 양식의 흙으로 만든 석관(clay sarcophagi)에서 발견되었다. 하나는 이전에 모세 다얀의 소장품이었다가, 현재 이스라엘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는데, 왼손에 손가락이 여섯 개 달린 남성의 모습이다. 트루드 도탄(Trude Dothan)이 발굴한 다른 하나는 세부 묘사가 불분명하지만, 다지증 환자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된다.[21]

고대 근동지역의 다른 사례가 인용되었는데, 이를 통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

초기 사례들은 다지증이 거인이나, 초능력, 혹은 엄청난 힘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었음을 시사하는 듯하다. 이와 관련하여,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여섯 개 이상임을 묘사해놓은 것도 발견된다.[17]

의학은 대부분의 돌연변이가 '다면발현'(pleiotropic, 단일 유전자에 의해 두 가지 이상의 표현형이나 형질에 영향을 미치는 현상)을 보인다는 것을 밝히고 있다. 인간에게 거인증(giantism, 사진은 여기를 클릭)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는 손가락과 발가락 수를 증가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상 현상은 단점으로 작용하는 경향이 있으며, 상향 진화의 사례는 아니다.

다시 한번, 성경의 기록은 그 사소한 세부 사항에서도 이 시기와 장소에 대한 고고학적 기록에서 알려진 내용과 일관성이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증거 6 : 다윗 – 거인을 쓰러트린 자

텔 단 석비(Tel Dan Stele, 텔 단 스텔레, 그림 5)은 1993년 텔 단(이스라엘 북부)에서 발견되었다. 이 석비의 조각들은 최근까지 남아 있는 고대 석벽에 사용됐던 석조물(masonry) 사이에서 발견되었다. 이 석비에는 고대 아람어 13줄이 들어있다. 9째 줄에는 bytdwd(house of David, 다윗의 집)이라는 단어(흰색으로 강조 표시됨)가 새겨져 있다. 이 비석의 저자로 가장 유력한 후보는 (문맥상) 시리아(아람)의 왕 하사엘(Hazael, 이미 앞에서 논의됨)이다.[22] 이스라엘의 적이 "다윗의 집"을 언급한 것은 다윗 왕이 역사적 실존 인물이었음을 입증하는 증거이다. 그는 붉은 홍조를 띠는 젊은 나이에 이스라엘의 또 다른 적, 거인 골리앗을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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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텔 단 석비(Tel Dan Stele, KAI 310). <commons.wikimedia.org, Oren Rozen>


증거 7 : 물맷돌에 맞아 죽은 골리앗

어린 주일학교 시절, "다윗의 작은 손에 작은 물맷돌"을 부르던 기억이 난다. 적절한 순간에 의자에서 뛰어내리며 반 친구들과 함께 "작은 돌 하나가 위로, 위로, 위로 날아가더니 거인이 쓰러졌네!"를 불렀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얼마나 현실적일까? '일개 양치기 소년'이 갑옷을 입고 노련한 블레셋 전사를 물맷돌 하나만으로 쓰러뜨릴 수 있었을까? 그것도 그의 치명적인 창이 닿지 않는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렇게 정확하게 쓰러뜨릴 수 있었을까? 고고학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할까?

첫째, 고대 세계의 물매(slings, 무릿매)는 장난감이 아니라, 파괴적인 전쟁 무기였다! 성경에 나오는 가장 오래된 물매는 투탕카멘 왕의 무덤(King Tutankhamun’s tomb, BC 1320년경)에서 발견되었는데, 그의 무덤에는 그의 부장품과 함께 물매가 묻혀 있었다. 마디나트 하부(Medinet Habu, 고대 이집트의 람세스 3세의 장례 사원)에 있는 이집트 부조(그림 6)에는 배의 '돛대 위의 망루(crow’s nest)‘에서 이집트 물매꾼들이 물매로 돌을 발사하여 '해양 민족'(블레셋인)과 전투를 벌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대 세계에는 전쟁에서 사용된 물매의 다른 많은 예들이 알려져 있다.[23] (물매 사진들은 여기를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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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마디나트 하부(Medinet Habu)에 묘사되어 있는 이집트의 물매꾼(slinger, 물매로 돌을 던지는 병사). BC 1180년경.


구약성경에서 물매는 전쟁 무기로서 언급되고 있다. 가장 이른 시기는 사사기 시대로 정확성이 매우 뛰어난 왼손잡이 베냐민 사람 칠백 명이 기록되어 있다.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더라”(사사기 20:16). 

열왕기하 3장에는 모압 사람들을 물리치는 데 도움을 준 이스라엘 물매꾼들이 언급되어 있다. 

“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열왕기하 3:25). 

구약학 교수인 보이드 시버스(Boyd Seevers)는 물매가 전쟁 무기로서 효과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백병전에 필요한 고가의 갑옷과 무기에 비해 목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선호하는 하급 무기로 여겨졌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엘리트주의적 태도는 고대 그리스에서 잘 알려져 있었으며, 골리앗이 다윗을 경멸한 것도 비슷한 계급적 편견을 반영했을 가능성이 있다.[23] 

“그 블레셋 사람이 둘러보다가 다윗을 보고 업신여기니 이는 그가 젊고 붉고 용모가 아름다움이라 블레셋 사람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나를 개로 여기고 막대기를 가지고 내게 나아왔느냐 하고 그의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하고”(사무엘상 17:42~43).

물매꾼은 물맷돌을 발사하기 위해, 고정한 줄의 한쪽 끝을 풀어 원심력을 이용하는 능력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서는 뛰어난 기술과 협응력, 그리고 강하고 유연한 팔이 필요했다.

다윗이 선택한 투사체인 매끄러운 강 자갈은 고대부터 일종의 미사일로 사용되어 왔으며, 고고학 발굴에서 수많은 사례들이 발견되었다. 매끄럽고 둥근 투사체는 비행 중 공기 저항이 가장 적으며 최대 시속 182km의 속도로 발사될 수 있었다. 고고학 기록에는 테니스공만 한 크기의 물맷돌(그림 7)이 많이 발견되었는데, 이것은 치명적인 타격을 가할 수 있었다.[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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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물맷돌(sling stones)은 고고학 기록에서 흔히 발견되는데, 예를 들어 텔 라기스(Tel Lachish)에서 발견된 이 물맷돌은 BC 7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commons.wikimedia.org, Deroravi avi>


마지막으로, 다윗이 골리앗을 사정거리 밖에 두고 물맷돌을 발사하여 쓰러뜨릴 수 있었을까? 이러한 의문은 이용 가능한 고고학적 증거와 신중한 실험을 통해 도출되었다. 답은 확실히 '그렇다' 였다. 엘라(Elah) 시냇가에서 가져온 테니스공 크기 정도의 매끄러운 돌멩이를 골리앗으로부터 40m 이내에서 던져 골리앗을 쓰러뜨렸을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골리앗의 투창 사정거리는 20~30m였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는 다윗이 저급 무기로 골리앗보다 더 먼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매꾼의 치명적인 속성은 고대부터 잘 알려져 있었으며, 정확도를 포함하여 대부분의 궁수보다 더 먼 거리에서 공격할 수 있었다.[24, 25]

시버스는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다윗의 물매는 적의 무기 사정거리 밖에 있으면서도, 약 40m 떨어진 곳에서 골리앗의 노출된 이마를 강타하여, 그의 두개골을 부숴버릴 만큼 강한 타격을 가했고, 그를 죽이고, 이스라엘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위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했다.[23]

그러나 곰과 사자를 혼자서 죽였던 다윗(사무엘상 17:34~38)은 필요하다면 훨씬 더 가까이 다가갈 만큼 민첩하고 용감했을 것이라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결론

여기서 논의된 골리앗에 대한 일곱 가지 고고학적 증거들은 성경을 믿고 있는 모든 크리스천들에게 용기를 줄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흥미로운 기록 중 하나인 다윗-골리앗 이야기는 알려진 고고학적 사실들과 전혀 모순되지 않고 있었다. 따라서 성경의 역사적 정확성을 받아들이는 데, 커다란 믿음의 도약이 필요하지 않다! 오히려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죽인 기록은 다윗 시대 이스라엘의 고고학적 증거들과 완전히 일치하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성경에 대한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대답을 자신 있게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베드로전서 3:15).


References and Notes

1. Joshua 11:2; 1 Samuel 5:8; 6:17; 7:14; 17:4, 23, 52; 21:10, 12; 27:2–4, 11; II Samuel 1:20; 15:18; 21:20, 22; 1 Kings 2:39–41; 2 Kings 12:17; 1 Chronicles 7:21; 8:13; 18:1; 20:6, 8; 2 Chronicles 11:8; 26:6; Psalm 56:1; Amos 6:2; Micah 1:10.

2. In Hebrew Anakim means “long-necked people” or “neck-chain people”.

3. In Joshua 12:4, the giant Og’s cities were Ashtoroth and Edrei which are named in a Bronze Age Ugarit cuneiform tablet KTU 1.108.

4. Interested readers should see: National Geographic, Tell es-Safi/Gath Excavations, nationalgeographic.org; accessed 3 October 2022.

5. Borschel-Dan, A., Colossal ancient structures found at Gath may explain origin of story of Goliath, timesofisrael.com, 26 July 2019.

6. Assuming rectangular blocks of granite, the Hazael era blocks (1.6 x 0.8 x 0.8 ft) weighed approx. 14 lbs (6.4 kg), compared to the biggest ‘Goliath’ era blocks (6.5 x 3.25x 3.25 ft) weighing 944 lbs (428 kg).

7. Ghose, T., Goliath Gates: Entrance to Famous Biblical Metropolis Uncovered, livescience.com, 4 Aug 2015.

8. Maeir, A. and Demsky, A., A Late Iron Age I/Early Iron Age II Old Canaanite inscription from Tell es-’Iafi/Gath, Israel: Palaeography, dating, and historical cultural significance, BASOR 351:1–33, 2008.

9. Maeir A., Comment on the news item in BAR on the ‘Goliath Inscription’, gath.wordpress.com, 16 Feb 2006.

10. As discussed in: Strata: New finds Gath inscription evidences Philistine assimilation,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2(2), 2006; baslibrary.org.

11. Kfar Monash is around 55 miles (90km) north of Tell es-Safi.

12. Hestrin, R. & Tadmor, M., A hoard of tools and weapons from Kfar Monash, Israel Exploration Journal 13(4): 265–288 (p. 279), 1963.

13. For an excellent YouTube presentation on the Kfar Monash copper hoard see: Expedition Bible, Joel Kramer, Archaeological Evidence for Giants in the Bible? youtu.be/dlUJxNFyRBM, 10 Jun 2022. Kramer compares the average size of spear heads to the largest Monash examples.

14. How much does a shekel of iron weigh? goliathsspear.com/shekel; accessed 5 Aug 2022.

15. How big was Goliath’s spear? goliathsspear.com/spear-size; accessed 5 Aug 2022.

16. What is a weaver’s beam? goliathsspear.com/weavers-beam; accessed 5 Aug 2022.

17. Although English Bibles describe Goliath’s armour as being made of ‘bronze’ (an alloy of copper and c. 12% tin) the Hebrew is nechosheth, which refers to both copper and bronze.

18. See: Hoard of copper objects, Kfar Monash, Early Bronze Age, 2950–2650 BCE, www.imj.org.il/en/collections/394185-0; accessed 4 Aug 2022.

19. Seven fingers on each hand plus seven toes on each foot are the record (28 digits) see: Most fingers and toes (polydactylism) on a living person, guinnessworldrecords.com; accessed 5 Aug 2022.

20. Rosejul, N., Curious congenital anomalies: Polydactyl and syndactyl humans and cats”, youmemindbody.com, 20 July 2018.

21. Barnett, R.D., Polydactylism in the ancient world, Bulletin of the Anglo-Israel Archaeological Society 6:1986–1987.

22. Lemaire, A., The Tel Dan Stela as a piece of royal historiography, JSOT 81:3–14, 1998.

23. As discussed in: Seevers, B. and Dennis, V., Slinging in the biblical world: and what we can learn about David defeating Goliath, NEASB 63:1–13, 2018.

24. Seevers mentions 8th century BC Greek Homer’s Iliad, 4th century AD Roman military author Vegetius (Epitoma 2.23), Roman historian Livy (1st century BC/AD) (History 38.29), Celcus, Roman medical author (first century BC/AD).

25. For interested readers, Dr Boyd Seevers is interviewed by Henry Smith Jr. of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Taking down Goliath: digging for truth, youtu.be/7p0jtMy4iwY, 25 Apr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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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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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MI, 14 Aug, 2022,  Updated 29 Sep, 2022

주소 : https://creation.com/en/articles/giant-goliath-evidence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5-04-10

시삭/셰숑크가 동일 인물임을 강화하는 증거들

(Strengthening the Shishak/Shoshenq synchrony)

by Gavin Cox


개요

이 글은 셰숑크 1세(Shoshenq I)가 성경에서 시삭(Shishak)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여러 증거들을 소개한다. 이를 통해 이집트 연대기와 성경 연대기를 조화롭게 연결하고, 솔로몬 성전 약탈 및 보물들의 이동에 대한 설명을 제공한다. 이 연구는 성경의 기록과 고고학적 증거들의 상호 보완적 관계를 보여준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주요 증거 및 논의


1. 시삭과 셰숑크 1세 이름의 일치

●    셰숑크(Shoshenq)의 이름은 성경의 시삭(Shishak)과 유사하며, 이는 철자 변형으로 설명된다. 이집트 기록에서도 'n'이 생략된 형태가 나타난다.

●    셰숑크라는 이름은 성경 히브리어 표현으로 쉽게 번역 가능하며, '공물(tribute)을 갈망하는 자'라는 의미는 셰숑크 1세의 약탈 행위와 일치한다.


2. 성경과 고대 이집트 연대기의 일치

●    성경 열왕기상 14:25–26절에서 시삭이 유다 왕국을 침략하고 예루살렘 성전을 약탈했다는 내용은 셰숑크 1세의 군사 원정과 시기적으로 일치한다.

●    이집트의 기록에 따르면, 셰숑크 1세는 이스라엘과 유다 지역에서 대규모 군사 작전을 펼쳤으며, 정복했던 약 187개 도시 이름들이 부바스티스 대문(Bubastite Portal)에 기록되어 있다.

●    이들 도시 중 일부는 성경에서 언급된 유다와 이스라엘의 주요 도시들과 동일하다.


3. 부바스티스 대문 명판에 기록된 유다의 조공

●    셰숑크 1세의 부바스티스 대문에 기록된 제29번 명판은 '유다의 조공'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높다.

●    이는 셰숑크 1세가 예루살렘을 직접 정복하지 않고, 대신 조공을 통해 부를 획득했다는 점과 부합한다.


4. 솔로몬 성전 보물의 이집트로 이동

●    셰숑크 1세의 사망 직후, 그의 아들 오소르콘 1세(Osorkon 1)는 이집트 신전에 383톤 이상의 금과 은을 기증했다.

●    이러한 기증은 성경에서 시삭이 약탈한 솔로몬 성전의 보물이 이집트로 옮겨졌다는 기록과 일치한다.

●    이는 성경과 고대 이집트 경제 간의 상호작용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이다.


5. 셰숑크 1세의 리비아 출신과 군사 활동

●    셰숑크 1세는 리비아 출신으로, 성경에서 시삭이 언급한 대규모 리비아 군대를 동원했다는 기록과 부합한다.

●    리비아 군대는 셰숑크 1세의 정복 활동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이는 그의 리비아 혈통이 통치에 미친 영향을 보여준다.


6. 고고학적 증거 : 므깃도에서의 독립적 확인

●    므깃도(Megiddo)에서 발견된 승전 비문 조각은 셰숑크 1세의 군사 활동을 독립적으로 입증한다.

●    이 비문은 성경과 이집트 기록 모두에서 언급된 사건을 고고학적으로 확인시켜 준다.

●    또한, 부바스티스 대문 외에도 셰숑크 1세의 이름이 새겨진 다양한 유적들이 그의 군사 원정을 입증하고 있다.


결론

셰숑크 1세와 성경에 등장하는 시삭의 동일 인물이라는 것은 이집트와 성경 연대기의 조화를 돕는 중요한 연구이다. 이 연구는 셰숑크 1세의 군사 활동과 솔로몬 성전 약탈 기록을 상호 보완하며, 성경 연대기의 신뢰성을 강화시켜준다.

특히 부바스티스 대문 명판과 므깃도 비문은 성경 기록과 고고학적 증거들이 일치함을 입증해주며, 성경의 역사적 신뢰성을 강화하고 있다. 리비아 군대와 솔로몬 성전의 보물 이동은 성경과 고대 이집트 간의 연관성을 강화하며, 오늘날 성경 고고학과 신학 연구에 중요한 기여를 제공한다.

이 연구는 성경과 과학의 조화 가능성을 보여주며, 고대 역사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성경 기록의 역사적 정확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자세한 내용과 그림은 원문을 참조하세요.

https://creation.com/strengthening-the-shishak-shoshenq-synchrony


*참조 : Shunning the Shishak/Shoshenq synchrony?

https://creation.com/shunning-shishak-shoshenq-synchrony

Will the Real Shishak Please Stand Up?

https://answersingenesis.org/archaeology/ancient-egypt/will-the-real-shishak-please-stand-up/

Was Pharaoh Shoshenq—the plunderer of Jerusalem?

https://creation.com/shoshenq-jerusalem

Shishak's 187 name rings of conquered cities in Israel.

https://www.bible.ca/archeology/bible-archeology-sheshonq-I-shoshenq-shishak-shishaq-bubastite-karnak-conquest-campaign-canaan-battle-relief-topographical-list-187-cities-conquered-name-rings-926bc.htm

Three Egyptian Inscriptions About Israel

https://biblearchaeologyreport.com/2019/03/08/three-egyptian-inscriptions-about-israel/

Thutmose III was not the Shishak of 1 Kings 14:25–26

https://creation.com/images/pdfs/tj/j26_1/j26_1_40-41.pdf

Was Jerusalem the Kadesh of Thutmose III’s 1st Asiatic campaign?—topographic and petrographic evidence

https://creation.com/images/pdfs/tj/j25_3/j25_3_48-55.pdf

Was Thutmose III the biblical Shishak?—Claims for the ‘Jerusalem’ bas-relief at Karnak investigated

https://creation.com/images/pdfs/tj/j25_1/j25_1_48-56.pdf

What evidence has been found of the Egyptian king, Shishak?

https://christiananswers.net/q-abr/abr-a017.html

Egyptian chronology and the Bible—framing the issues

https://creation.com/ko/articles/egypt-chronology

Resolving alleged conflicts between the Bible and other accounts of Egyptian history

https://creation.com/egyptian-chronologies

Did the Exodus lead to the Hyksos Invasion?

https://creation.com/exodus-hyksos-invasion

노아의 16명의 손자 : 고대의 지명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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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에서 노아와 대홍수를 찾아서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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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는 신격화된 함이다 : 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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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므롯 : 노아 홍수 이후 최초의 폭군이자 제국의 건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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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과 임호텝은 동일 인물이었을까?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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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를 찾아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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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역사와 성경 기록 : 완벽한 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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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연대기와 성경 : 현장 고고학자 데이비드와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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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의 역사성을 확증하고 있는 영화, “출애굽의 증거들”이 개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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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의 성벽 : 고고학적 확인에 의하면 여리고성의 벽은 정말로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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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아이성에 대한 새로운 고고학적 발굴 : 또 다시 확인된 성경 기록의 정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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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발 산에서 여호수아의 제단과 저주 서판의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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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발견된 이집트 석비는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왕이 실존했음을 증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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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의 하솔 - 성경이 옳았다! : 성경에 보존된 고대 도시의 흔치않은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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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과 솔로몬의 역사적 사실성! : 최근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임을 계속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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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울 왕의 아들 ‘에스바알(이스보셋)’의 이름이 새겨진 3,000년 전 도자기가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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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이름의 인장이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 느헤미야에 기록된 데마의 인장은 성경의 고고학적 정확성을 입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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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선지자의 인장이 발견되었다 : 히스기야 왕의 인장에 이은 놀라운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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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비 이세벨의 고대 인장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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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기야 왕의 기념비 비문이 발견되었다! : 히스기야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정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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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의 어떤 왕이었을까? : 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1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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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성전 시대의 저수조가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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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헤미야의 성벽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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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암 못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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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 ‘황디’는 누구였을까? : 중국인들은 어디서 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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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복희와 여와, 그리고 묘족의 신화는 노아 홍수가 실제 역사임을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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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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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Clarke, P., The Stele of Merneptah—assessment of the final ‘Israel’ strophe and its implications for chronology, J. Creation 27(1):57–64, 2013. I disagree with Clarke’s chronology, or that Ramesses II was Shishak. 

2. Zwickel, W. and Veen, P., v.d., The earliest reference to Israel and its possible archaeological and historical background, Vetus Testamentum 67:129–140, 2017. 

3. Thutmose III as candidate for Shishak is discussed and dispensed with; see: Clarke, P., Was Thutmose III the biblical Shishak?—claims for the ‘Jerusalem’ bas-relief at Karnak investigated, J. Creation 25(1):48–56, 2011. Clarke cites Velikovsky, I., Ages in Chaos, in which this synchrony was first promoted. 

4. Kitchen, K.A., The Third Intermediate Period in Egypt (1100–650 BC), Aris & Phillips Ltd, Warminster, Wiltshire, UK, p. 85, 1973.

5. The Bubastite Portal, Reliefs and Inscriptions at Karnak, vol. III, the Epigraphic Survey,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Chicago, IL, plate 10, 1954. 

6. See discussion in Sagrillo, T., Shoshenq I and biblical Šîšaq: A philological defence of their traditional equation; in: James, P.J. and van der Veen, P.G. (Eds.), Solomon and Shishak: Current perspectives from archaeology, epigraphy, history and chronology, Oxford, Archaeopress, pp. 68–70, 2015; Listed in their entirety in: Jordan, B., Demotisches Namenbuch: Suchliste, Bad Vilbel, p. 185, 2017. 

7. Caminos, R.A., Gebel Es-Silsilah no. 100, J. Egyptian Archaeology 38:46–61, pls. X–XIII, 1952. 

8. Both official spellings of Shoshenq’s name (sh-sh-nq, sh-sh-q) appear together on the monument. 

9. As discussed in Sagrillo, ref. 6, p. 69. 

10. See excellent linguistic analysis in Sagrillo, ref. 6, pp. 63–68, contra Rohl, who wants Shishak to be Ramesses II. Sagrillo also replies to the CoD revision, which equates Shishak with Ramesses III. 

11. Loprieno, A., Ancient Egyptian, a Linguistic Introduction, Cambridge University Press, Melbourne, pp. 28, 34, 245, 1995. 

12. See Veen, P., v.d., The name Shishaq: Šošenq or Šyšu/q? Responding to the critics and assessing the evidence, pp. 82–97, presented at the Third BICANE Colloquium held at Sidney Sussex College, Cambridge, 2011. Attempts at making Shishak = Ramesses (Sesu) are highly contrived, which also implies the biblical writers/copyists made spelling ‘mistakes’ in which the original waw was written like the later qoph in paleo-Hebrew.

13. Levin, Y., Did Pharaoh Sheshonq attack Jerusalem? Biblical Archaeology Review, pp. 43–67, July/Aug 2012. 

14. Howard, D.M. Jr. and Grisanti, M.A., Giving the Sense: Understanding and Using Old Testament Historical Texts, Kregel, MI, p. 193, 2003. 15. van der Veen argues the rare hypocoristicon of Ramesses II ‘Ssi’ became Shishak in the Hebrew Bible which is to be understood as a Hebrew pun; specifically, a verb meaning “to rush at/upon”, thereby equating Ramesses II as Shishak. This argument is linguistically unconvincing. Veen, P., v.d., The Name Shishak—Peter van der Veen replies to Carl Jansen-Winkeln, JACF 8:22–25, 2005. 

16. Greenberg recognizes the root ‘ŠQQ’ is at the basis of both emotion (yearning) and vocal terms (crying, groaning). Greenberg, M., Noisy and yearning: the semantics of ŠQQ and its congeners; in: Texts, Temples, and Traditions, pp. 339–344, Eisenbrauns, IN, 1996. 

17. Making Shishak = Amenhotep II tortures all linguistic evidence. Habermehl, A., Chronology and the Gezer connection—Solomon, Thutmose III, Shishak and Hatshepsut, J. Creation 32(2):83–90, 2018. 

18. Jones, A.G., The Proper Names of the Old Testament Scriptures Expounded and Illustrated, Samuel Bagster and Sons, London, p. 325, 1856. 

19. Garciel, M. and Hacket, P. (trans.), Biblical Names: A literary study of midrashic derivations and puns, Graphset, Jerusalem, 1991. 

20. Khan, G. (Ed.), Encyclopaedia of Hebrew Language and Linguistics, vol. 3, P–Z, Brill, Leiden, pp. 24, 26–27, 2013. 

21. Garciel, ref. 19, p. 44. 

22. Garciel, ref. 19, p. 48, and listed in van der Veen, in JACF 8 and 10. 

23. van der Veen, ref. 12, attempts an unconvincing pun on ששק meaning ‘to rush upon’, p. 92. 

24. Hoch, J.E., Semitic Words in Egyptian Texts of the New Kingdom and Third Intermediate Period, Princeton University Press, NJ, p. 57, 1994. 

25. Olaf Tausch, upload.wikimedia.org/wikipedia/commons/e/eb/Karnak_Tempel_19.jpg. 

26. See discussion in: James, P., Thorpe, I.J., Kokkinos, N., Morkot, R., and Frankish, J., Centuries of darkness: a reply to critics, Cambridge Archaeological J. 2(1):127–144, 1992. Also New Chronology popularist Rohl, D.M., Pharaohs and Kings: A biblical quest, Crown Publishers, CA, 1995.

27. Currid, J.D., Ancient Egypt and the Old Testament, Baker Books, Grand Rapids, MI, p. 184, 1997. 

28. Currid, ref. 27, p. 186. Currid covers the Shoshenq list and history extremely thoroughly in pp. 172–202. 

29. Shoshenq’s itinerary, discussed in Kitchen, K.A., The Shoshenqs of Egypt and Palestine, JSOT 93:3–12, 2001. 

30. Currid, ref. 27, p. 185. 

31. Gardiner, A., Egyptian grammar, Griffith Institute, Oxford, 1957.

32. Currid, ref. 27, states, without analysis, “The inscription literally means ‘hand of the king’; yd may also mean ‘Monument’”, p. 193. 

33. Hoch, ref. 24, p. 144. 

34. Olaussen, V.K., How convincing are the arguments for a new Egyptian chronology? J. Creation 23(1):58, 2009, prefers ‘Yadha(m)melek’ as an unknown locality. 

35. E.g. no. 34 Gati Padalla, no. 26 Aijalon, no. 53 Penuel. 

36. Hoch, ref. 24, p. 105.

37. Hoch, ref. 24, p. 104. 

38. Gasse, A., Données nouvelles administratives et sacerdotales sur l’organisation du domaine d’Amon, XXe-XXIe dynasties: Traductions, commentaires, transcriptions, vol. 1; vol. 104, part 1, IFAO, Cairo, pp. 47, 108, 2002. 

39. Allen, J.P., Middle Egyptian: An introduction to the language and culture of hieroglyphs, Cambridge University Press, Cambridge, p. 36, 2014. 

40. Bimson, J.J., Shoshenk and Shishak: A case of mistaken identity? JACF 6:19–32, 1992/93. 

41. Atwood, P.L., ḤQ/GR-based toponyms on the Shoshenq-inscription of Karnak’s Bubastite Portal: some phonological, semantic, and anthropological reflections, JEOL 47:3–18, 2018–2019. 

42. Atwood, ref. 41, p. 15. 

43. For example, Steven Rudd has placed all the name rings on a map of Israel, which demonstrates there is no particular order that can be linked to an itinerary; see: www.bible.ca/maps/maps-bible-archeology-sheshonq-I-shoshenq-shishak-shishaq-bubastite-karnak-conquest-campaign-canaan-battle-relief-topographical-list-187-cities-conquered-name-rings-926 BC.jpg. 

44. Borrell, C. and Cashinella, B., Crime in Britain today, Routledge & Kegan Paul, London, pp. 98–99, 1975.

45. Naville, E., Bubastis (1887–1889), The Egypt Exploration Fund, London, 1891. 

46. Ritner, R.K., The Libyan Anarchy: Inscriptions from Egypt’s Third Intermediate Period, Society of Biblical Literature, Atlanta, GA, pp. 252–255, 2009. 

47. Ritner, ref. 46, p. 252.

48. Ritner, ref. 46, p. 249. 

49. Kitchen, K.A., Where did Solomon’s gold go? Bible and Spade 7(4):108, 1994. 

50. Walton, J.H., Matthews, V.H., and Chavalas, M.W., The IVP Bible Background Commentary: Old Testament, IVP Academic, IL, p. 417, 2000. 

51. Kitchen, K.A.,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rdmans, Cambridge, pp. 133–134, 2003. 

52. Kitchen, ref. 4, pp. 75–76, 303. 

53. As discussed in Green, A.R., Israelite Influence at Shishak’s Court? 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no. 233, pp. 59–62, 1979. 

54. Meffre, R., Un nouveau nom d’Horus d’or de Sheshonq Ier sur le bloc Caire JE 39410, BIFAO 110:222–233, (231–232), 2010.

55. Wevers, J.W., Redford, D.B., (Eds.), Studies on the Ancient Palestinian World, University of Toronto Press, Toronto, p. 154, 1972. 

56. Wevers, ref. 55, p. 154. 

57. Hansen, D.G., Megiddo, the place of battles,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2014. 

58. Fisher, C.S., The Excavation of Armageddon,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IL, pp. 12–13, 1929. 

59. Currid, ref. 27, p. 186. 

60. Chapman, R., Putting Sheshonq I in his place, Palestine Exploration Quarterly 141(1):4–17, 2009. 

61. Kitchen, ref. 51, pp. 10, 32, 34, 111, 617. 

62. Spalinger, A.J., War in Ancient Egypt, the New Kingdom, Blackwell, Malden, pp. 238, 257, 2005. 

63. Kitchen, ref. 4, p. 72. 

64. Bates, G., Was Pharaoh Shoshenq the plunderer of Jerusalem? creation.com/shoshenq-jerusalem, 28 April 2020. 


출처 : Journal of Creation,36(2):40–49,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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