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사살 : 바빌론의 두 번째 통치자.
고고학은 벨사살 왕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다.
(Belshazzar: The second most powerful man in Babylon
How archaeology vindicated the Bible’s curious claims about King Belshazzar)
By Keaton Halley
회의론자들은 한때 다니엘 5장에 나오는 벨사살 왕의 존재를 부인했지만, 고고학은 성경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증해주었다.
바빌론 왕 벨사살(Belshazzar, King of Babylon)이 귀족 천 명을 불러 큰 잔치를 베풀고 술을 마실 때에, 부친(선왕)이었던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한다. 벨사살과 귀족들은 불경스럽게도 거룩한 그릇에 술을 부어 마시고는,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다니엘 5:4).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 왕이 크게 소리 질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말하되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라” (다니엘 5:5~7).

벨사살에 대한 의구심
이 이야기는 단지 전설에 불과할까? 아니면 정확한 역사를 성경이 보존하고 있는 것일까? 여러 해 전, 일부 회의론자들은 벨사살이라는 바빌론 왕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그의 이름과 이야기는 바빌로니아의 실제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1]
일련의 고고학적 발견은 벨사살이 결국 실존했음을 보여주었으며, 성경에 기록된 벨사살에 대한 세부 사항들도 매우 정확했음을 입증해주었다.
비판가들의 소굴이 됐던 다니엘서[2]
다니엘서에 나오는 놀라운 예언들의 성취 때문에, 비판가들은 오랫동안 그 예언의 역사적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려고 노력해 왔다.[3] 다니엘은 BC 6세기에 살았지만, 비판가들은 다니엘서를 4세기 후인 마카베오(Maccabees, BC 2세기)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를 통해, 그들은 다니엘서의 예언이 실제로는 '예언'했던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따라서 비판가들이 일반적으로 다니엘서에 벨사살에 대한 주장을 포함하여, 중대한 역사적 오류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제국의 종말
성경은 유명한 '벽에 쓰여진 글씨' 사건이 바빌로니아의 수도인 바빌론 성이 고레스 대왕(King Cyrus the Great)의 메디아-페르시아 제국(Medo-Persian empire)에 함락된 바로 그 날에 일어났다고 알려 준다. 실제로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다니엘 5:26),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28절)라고 해석했다. 성경은 벨사살이 "그 날 밤에"(30절) 죽임을 당했으며, 그의 죽음과 함께 바빌로니아 왕국은 이제 메디아-페르시아 제국이 지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4]
그러나 다른 모든 알려진 역사적 기록들은 한때 이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헤로도토스(Herodotus), 메가스테네스(Megasthenes), 베로수스(Berossus), 알렉산더 폴리히스터(Alexander Polyhistor)와 같은 고대 역사가들과, 방대한 수의 설형문자 문서들은 하나같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Nabonidus)라고 주장했다.[5] 벨사살은 다니엘서와 그로부터 파생된 문헌 말고는 어디에도 언급되어있지 않았다.[6]
다니엘서가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는 사실은 그 기록이 일어났던 시기 근처에 기록되었음을 가리킨다.
파묻혀있던 보물
그러나 모든 증거들이 성경에 반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 일련의 고고학적 발견들은 벨사살이 결국 실존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성경에 기록된 그에 대한 세부 사항들은 매우 정확했음이 밝혀졌다.
먼저, 1854년에 동일한 비문(inscriptions)이 새겨져있는 4개의 점토 원통(clay cylinders)들이 우르(Ur)에서 발굴되었다.[7] 이들 나보니두스 원통(Nabonidus Cylinders)에는 나보니두스가 달의 신에게 "나의 후손, 장자인 벨사살"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8] 따라서 벨사살의 존재가 확인되었는데, 나보니두스의 맏아들이자, 왕위 계승자였다.

.우르(Ur)에서 발굴된 나보니두스 원통(Nabonidus Cylinder). <© Marie-Lan Nguyen / Wikimedia Commons>
그러다가 1882년에 또 다른 고대 설형 문자 텍스트인 「나보니두스 연대기(Nabonidus Chronicle)」에 대한 번역이 이루어졌다. 이 문서에 따르면, 나보니두스는 대부분 부재한 왕이었으며, 17년 통치 중 10년을 아라비아 테마(Tema, 바빌론에서 725km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 왕은 본문에서 "왕세자(the crown prince)"라고 부르는 벨사살을 떠나, 그 기간 동안 바빌론의 일을 처리했다.[9] 또한 연대기는 바빌론이 함락되었을 때, 나보니두스는 바빌론을 떠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틀 전에 페르시아인들이 시파르(Sippar)에서 나보니두스를 물리쳤을 때, 그는 페르시아인들로부터 도망쳤기 때문에, 바빌론이 점령되었을 때 벨사살은 바빌론의 최고 권위자였다.

.나보니두스 연대기(Nabonidus Chronicle) 점토판. <ChrisO / Wikimedia Commons>
다음으로, 1924년에 보고된 「나보니두스의 페르시아 구절 기록(Persian Verse Account of Nabonidus)」에 의하면, 나보니두스가 "긴 여행을 떠났을 때" "그의 맏아들에게 왕권을 맡겼다"고 기술되어 있었다.[10] 그러므로 벨사살은 아버지가 없는 동안 여러 해 동안 왕의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더욱이, 1900년대 초에 벨사살을 언급하고 있는 여러 고대 설형문자 문헌들이 발견되었으며, 여기에는 에렉(Erech)에서 발굴된 한 점토판(tablet)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에는 그와 그의 아버지 나보니두스가 공동으로 맹세(oath 선서)를 하고 있어서, 이는 둘 다 왕권을 가졌음을 시사한다.[11]
왕의 호칭
당연히 비판가들은 이러한 발견을 경시하려고 노력하며, 벨사살이 바빌로니아 문서에서 공식적으로 왕으로 밝혀진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가 바빌로니아 기준으로 엄밀히 말하면 왕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다니엘이 그를 그렇게 불렀던 것은 완전히 이해가 된다. 고대인들이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 헤로데 안티파스, 헤롯 대왕의 아들)의 경우처럼, 최고의 통치자는 아니지만, 왕으로 묘사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는데, 그는 단지 분봉왕이었다(마태복음 14:1, 9 참조).[12] 게다가 벨사살은 공식 직함과 상관없이, 아버지가 없는 동안 모든 실질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바빌론의 왕이었다.
놀랍게도, 이 말은 또한 다니엘서의 작은 사항까지도 사실이었음을 확인해주는데, 벨사살 왕은 벽에 쓰여진 글자를 읽고 해석하는 자에게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고 말한 부분이다. 나보니두스는 살아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벨사살이 아버지와 동시에 통치하는 공동 섭정에 가까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보니두스는 '첫째' 위치에 있었고, 벨사살은 실제로 둘째 위치에 있었다. 이것은 벨사살이 다니엘에게 나라의 두 번째 자리를 제안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셋째 통치자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였다!
패배시킬 수 없는 책
이제 다니엘서가 이 사건들이 있은 지 수백 년이 지나서 기록되었다는 비판가들의 말이 옳다면, 저자는 벨사살에 대해 또는 그가 두 번째 통치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서가 역사적으로 정확했다는, 그리고 작은 세부 사항까지도 정확했다는 사실은 그 기록이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기 근처에 기록되었음을 가리킨다. 고고학적 사실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다니엘서는 정확했다. 다니엘은 비판가들보다 벨사살과 신바빌로니아 제국에서 그의 역할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God’s Word)이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진실이며, 부정될 수 없다. 새로운 발견들이 있게 되면, 비판가들의 이론은 자주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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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사살의 부친 느부갓네살 - 성경의 실수?
다니엘 5장에는 느부갓네살을 벨사살의 부친으로 다섯 번 언급하고 있으며(2, 11, 11, 13, 18절), 한 번은 벨사살을 느부갓네살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다(22절). 그러나 다른 자료들은 벨사살이 나보니두스의 아들이었고(본문 참조), 나보니두스는 느부갓네살의 혈육이 아니라, 왕위 찬탈자였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이러한 명백한 불일치를 성경적 오류로 지적하고 있지만, 몇 가지 조화가 가능하다. 첫째,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일부 사람들은 나보니두스가 느부갓네살의 딸 중 한 명과 결혼하여 벨사살을 손자로 낳았을 것이라고 제안했다.[1] 성경적 용법에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용어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our father"(눅 3:8, NIV, KJV)라고 부르거나, 예수를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마 1:1, NIV, KJV)이라고 부를 때와 같이 일반적으로 조상/후손을 지칭할 수 있다.
하지만 더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이 그러한 용어를 훨씬 더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아버지(father)'와 '아들(son)'은 문자 그대로의 혈연 관계는 없더라도, 같은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엘리사(Elisha)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사밧(Shaphat)이다.(열왕기상 19:16) 그러나 엘리사는 엘리야(Elijah)를 "my father, my father(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열왕기하 2:12)라고 부르고 있고, 예언자 직분을 맡은 사람들을 "sons of the prophets(선지자의 제자들)"(열왕기하 2:15, KJV)이라고 부르고 있었다.[2] 따라서 벨사살은 단순히 느부갓네살의 왕위 계승자라는 의미에서 느부갓네살의 아들이라 불려질 수 있었다.
1. Wiseman, D.J., Nebuchadrezzar and Babylon, pp. 11–12, Oxford University Press, 1985.
2. This meaning may also be present in Genesis 4:20–21, in which individuals are described as the father of all who participate in the craft or trade which they developed.

.유적 위에 재건된 고대 도시 바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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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In particular, German commentators Caesar von Lengerke, Das Buch Daniel, p. 204, Bornträger, Königsberg, 1835 and Ferdinand Hitzig, Das Buch Daniel, p. 75, Weidmann, Leipzig, 1850.
2. Title borrowed from the books by Josh McDowell and Sir Robert Anderson.
3. Attacks began as early as Porphyry in the 3rd century ad. Jerome quotes Porphyry as claiming, “Daniel did not predict so much future events as he narrated past ones.” en.wikipedia.org/wiki/Porphyry_(philosopher).
4. Cyrus’ general Gubaru (or Gobryas) led the army, and Cyrus rewarded him with the governorship of Babylon, so Gubaru may be “Darius the Mede” (Daniel 5:31). See Whitcomb, J.C., Jr., Darius the Mede, Baker, Grand Rapids, MI, 1963.
5. Dougherty, R.P., Nabonidus and Belshazzar: A Study of the Closing Events of the Neo-Babylonian Empire, pp. 7–12, Yale University Press, 1929.
6. E.g., Baruch 1:11–12 and Josephus’ Antiquities 10.11.
7. Additional copies were uncovered in the 1960s.
8. The Nabonidus Cylinder from Ur, translation by Paul-Alain Beaulieu; livius.org/na-nd/nabonidus/cylinder-ur.html.
9. Pritchard, J.B. (ed.),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with Supplement, p. 306,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9.
10. Ref. 9, p. 313.
11. McDowell, J., Daniel in the Critics’ Den, p. 64, Campus Crusade for Christ, San Bernardino, CA, 1979.
12. See also Millard, A.R., Daniel in Babylon: An Accurate Record? in Hoffmeier, J.K. and Magary, D.R. (eds.), Do Historical Matters Matter to Faith?, pp. 270–271, Crossway, Wheaton, IL,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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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MI, Creation 37(3), Published 01 Aug, 2016, Updated 28 Nov, 2016
주소 : https://creation.com/en/articles/archaeology-belshazzar
번역 : 미디어위원회
벨사살 : 바빌론의 두 번째 통치자.
고고학은 벨사살 왕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다.
(Belshazzar: The second most powerful man in Babylon
How archaeology vindicated the Bible’s curious claims about King Belshazzar)
By Keaton Halley
회의론자들은 한때 다니엘 5장에 나오는 벨사살 왕의 존재를 부인했지만, 고고학은 성경의 주장이 사실임을 확증해주었다.
바빌론 왕 벨사살(Belshazzar, King of Babylon)이 귀족 천 명을 불러 큰 잔치를 베풀고 술을 마실 때에, 부친(선왕)이었던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탈취하여 온 금 은 그릇을 가져오라고 명한다. 벨사살과 귀족들은 불경스럽게도 거룩한 그릇에 술을 부어 마시고는, “금, 은, 구리, 쇠, 나무,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니라”(다니엘 5:4). 그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 때에 사람의 손가락들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석회벽에 글자를 쓰는데 왕이 그 글자 쓰는 손가락을 본지라 이에 왕의 즐기던 얼굴 빛이 변하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넓적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고 그의 무릎이 서로 부딪친지라 왕이 크게 소리 질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쟁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의 지혜자들에게 말하되 누구를 막론하고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색 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그의 목에 걸어 주리니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 하니라” (다니엘 5:5~7).
벨사살에 대한 의구심
이 이야기는 단지 전설에 불과할까? 아니면 정확한 역사를 성경이 보존하고 있는 것일까? 여러 해 전, 일부 회의론자들은 벨사살이라는 바빌론 왕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하면서, 그의 이름과 이야기는 바빌로니아의 실제 역사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지어낸 것이라고 주장했다.[1]
일련의 고고학적 발견은 벨사살이 결국 실존했음을 보여주었으며, 성경에 기록된 벨사살에 대한 세부 사항들도 매우 정확했음을 입증해주었다.
비판가들의 소굴이 됐던 다니엘서[2]
다니엘서에 나오는 놀라운 예언들의 성취 때문에, 비판가들은 오랫동안 그 예언의 역사적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려고 노력해 왔다.[3] 다니엘은 BC 6세기에 살았지만, 비판가들은 다니엘서를 4세기 후인 마카베오(Maccabees, BC 2세기)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를 통해, 그들은 다니엘서의 예언이 실제로는 '예언'했던 사건이 일어난 이후에 기록되었다고 말할 수 있었다. 따라서 비판가들이 일반적으로 다니엘서에 벨사살에 대한 주장을 포함하여, 중대한 역사적 오류가 있다고 가정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제국의 종말
성경은 유명한 '벽에 쓰여진 글씨' 사건이 바빌로니아의 수도인 바빌론 성이 고레스 대왕(King Cyrus the Great)의 메디아-페르시아 제국(Medo-Persian empire)에 함락된 바로 그 날에 일어났다고 알려 준다. 실제로 다니엘은 벨사살 왕에게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다니엘 5:26),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28절)라고 해석했다. 성경은 벨사살이 "그 날 밤에"(30절) 죽임을 당했으며, 그의 죽음과 함께 바빌로니아 왕국은 이제 메디아-페르시아 제국이 지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4]
그러나 다른 모든 알려진 역사적 기록들은 한때 이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헤로도토스(Herodotus), 메가스테네스(Megasthenes), 베로수스(Berossus), 알렉산더 폴리히스터(Alexander Polyhistor)와 같은 고대 역사가들과, 방대한 수의 설형문자 문서들은 하나같이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Nabonidus)라고 주장했다.[5] 벨사살은 다니엘서와 그로부터 파생된 문헌 말고는 어디에도 언급되어있지 않았다.[6]
다니엘서가 역사적으로 정확하다는 사실은 그 기록이 일어났던 시기 근처에 기록되었음을 가리킨다.
파묻혀있던 보물
그러나 모든 증거들이 성경에 반하는 것처럼 보였을 때, 일련의 고고학적 발견들은 벨사살이 결국 실존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성경에 기록된 그에 대한 세부 사항들은 매우 정확했음이 밝혀졌다.
먼저, 1854년에 동일한 비문(inscriptions)이 새겨져있는 4개의 점토 원통(clay cylinders)들이 우르(Ur)에서 발굴되었다.[7] 이들 나보니두스 원통(Nabonidus Cylinders)에는 나보니두스가 달의 신에게 "나의 후손, 장자인 벨사살"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8] 따라서 벨사살의 존재가 확인되었는데, 나보니두스의 맏아들이자, 왕위 계승자였다.
.우르(Ur)에서 발굴된 나보니두스 원통(Nabonidus Cylinder). <© Marie-Lan Nguyen / Wikimedia Commons>
그러다가 1882년에 또 다른 고대 설형 문자 텍스트인 「나보니두스 연대기(Nabonidus Chronicle)」에 대한 번역이 이루어졌다. 이 문서에 따르면, 나보니두스는 대부분 부재한 왕이었으며, 17년 통치 중 10년을 아라비아 테마(Tema, 바빌론에서 725km 떨어진 곳)에서 살았다. 왕은 본문에서 "왕세자(the crown prince)"라고 부르는 벨사살을 떠나, 그 기간 동안 바빌론의 일을 처리했다.[9] 또한 연대기는 바빌론이 함락되었을 때, 나보니두스는 바빌론을 떠나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틀 전에 페르시아인들이 시파르(Sippar)에서 나보니두스를 물리쳤을 때, 그는 페르시아인들로부터 도망쳤기 때문에, 바빌론이 점령되었을 때 벨사살은 바빌론의 최고 권위자였다.
.나보니두스 연대기(Nabonidus Chronicle) 점토판. <ChrisO / Wikimedia Commons>
다음으로, 1924년에 보고된 「나보니두스의 페르시아 구절 기록(Persian Verse Account of Nabonidus)」에 의하면, 나보니두스가 "긴 여행을 떠났을 때" "그의 맏아들에게 왕권을 맡겼다"고 기술되어 있었다.[10] 그러므로 벨사살은 아버지가 없는 동안 여러 해 동안 왕의 역할을 했음이 분명하다.
더욱이, 1900년대 초에 벨사살을 언급하고 있는 여러 고대 설형문자 문헌들이 발견되었으며, 여기에는 에렉(Erech)에서 발굴된 한 점토판(tablet)이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것에는 그와 그의 아버지 나보니두스가 공동으로 맹세(oath 선서)를 하고 있어서, 이는 둘 다 왕권을 가졌음을 시사한다.[11]
왕의 호칭
당연히 비판가들은 이러한 발견을 경시하려고 노력하며, 벨사살이 바빌로니아 문서에서 공식적으로 왕으로 밝혀진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지만 그가 바빌로니아 기준으로 엄밀히 말하면 왕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다니엘이 그를 그렇게 불렀던 것은 완전히 이해가 된다. 고대인들이 헤롯 안디바(Herod Antipas, 헤로데 안티파스, 헤롯 대왕의 아들)의 경우처럼, 최고의 통치자는 아니지만, 왕으로 묘사하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었는데, 그는 단지 분봉왕이었다(마태복음 14:1, 9 참조).[12] 게다가 벨사살은 공식 직함과 상관없이, 아버지가 없는 동안 모든 실질적인 일들을 처리하는 바빌론의 왕이었다.
놀랍게도, 이 말은 또한 다니엘서의 작은 사항까지도 사실이었음을 확인해주는데, 벨사살 왕은 벽에 쓰여진 글자를 읽고 해석하는 자에게 그를 나라의 셋째 통치자로 삼으리라고 말한 부분이다. 나보니두스는 살아있었기 때문에, 이것은 벨사살이 아버지와 동시에 통치하는 공동 섭정에 가까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보니두스는 '첫째' 위치에 있었고, 벨사살은 실제로 둘째 위치에 있었다. 이것은 벨사살이 다니엘에게 나라의 두 번째 자리를 제안할 수 없었던 이유를 설명한다. 셋째 통치자는 자신이 줄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였다!
패배시킬 수 없는 책
이제 다니엘서가 이 사건들이 있은 지 수백 년이 지나서 기록되었다는 비판가들의 말이 옳다면, 저자는 벨사살에 대해 또는 그가 두 번째 통치자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서가 역사적으로 정확했다는, 그리고 작은 세부 사항까지도 정확했다는 사실은 그 기록이 사건들이 일어났던 시기 근처에 기록되었음을 가리킨다. 고고학적 사실들이 말하고 있는 것처럼, 다니엘서는 정확했다. 다니엘은 비판가들보다 벨사살과 신바빌로니아 제국에서 그의 역할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God’s Word)이다. 그리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진실이며, 부정될 수 없다. 새로운 발견들이 있게 되면, 비판가들의 이론은 자주 산산조각이 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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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사살의 부친 느부갓네살 - 성경의 실수?
다니엘 5장에는 느부갓네살을 벨사살의 부친으로 다섯 번 언급하고 있으며(2, 11, 11, 13, 18절), 한 번은 벨사살을 느부갓네살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다(22절). 그러나 다른 자료들은 벨사살이 나보니두스의 아들이었고(본문 참조), 나보니두스는 느부갓네살의 혈육이 아니라, 왕위 찬탈자였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있다.
비평가들은 이러한 명백한 불일치를 성경적 오류로 지적하고 있지만, 몇 가지 조화가 가능하다. 첫째,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일부 사람들은 나보니두스가 느부갓네살의 딸 중 한 명과 결혼하여 벨사살을 손자로 낳았을 것이라고 제안했다.[1] 성경적 용법에서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용어는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을 "our father"(눅 3:8, NIV, KJV)라고 부르거나, 예수를 "the son of David, the son of Abraham"(마 1:1, NIV, KJV)이라고 부를 때와 같이 일반적으로 조상/후손을 지칭할 수 있다.
하지만 더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데, 그것은 성경이 그러한 용어를 훨씬 더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아버지(father)'와 '아들(son)'은 문자 그대로의 혈연 관계는 없더라도, 같은 직책을 맡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엘리사(Elisha)의 생물학적 아버지는 사밧(Shaphat)이다.(열왕기상 19:16) 그러나 엘리사는 엘리야(Elijah)를 "my father, my father(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열왕기하 2:12)라고 부르고 있고, 예언자 직분을 맡은 사람들을 "sons of the prophets(선지자의 제자들)"(열왕기하 2:15, KJV)이라고 부르고 있었다.[2] 따라서 벨사살은 단순히 느부갓네살의 왕위 계승자라는 의미에서 느부갓네살의 아들이라 불려질 수 있었다.
1. Wiseman, D.J., Nebuchadrezzar and Babylon, pp. 11–12, Oxford University Press, 1985.
2. This meaning may also be present in Genesis 4:20–21, in which individuals are described as the father of all who participate in the craft or trade which they developed.
.유적 위에 재건된 고대 도시 바빌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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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In particular, German commentators Caesar von Lengerke, Das Buch Daniel, p. 204, Bornträger, Königsberg, 1835 and Ferdinand Hitzig, Das Buch Daniel, p. 75, Weidmann, Leipzig, 1850.
2. Title borrowed from the books by Josh McDowell and Sir Robert Anderson.
3. Attacks began as early as Porphyry in the 3rd century ad. Jerome quotes Porphyry as claiming, “Daniel did not predict so much future events as he narrated past ones.” en.wikipedia.org/wiki/Porphyry_(philosopher).
4. Cyrus’ general Gubaru (or Gobryas) led the army, and Cyrus rewarded him with the governorship of Babylon, so Gubaru may be “Darius the Mede” (Daniel 5:31). See Whitcomb, J.C., Jr., Darius the Mede, Baker, Grand Rapids, MI, 1963.
5. Dougherty, R.P., Nabonidus and Belshazzar: A Study of the Closing Events of the Neo-Babylonian Empire, pp. 7–12, Yale University Press, 1929.
6. E.g., Baruch 1:11–12 and Josephus’ Antiquities 10.11.
7. Additional copies were uncovered in the 1960s.
8. The Nabonidus Cylinder from Ur, translation by Paul-Alain Beaulieu; livius.org/na-nd/nabonidus/cylinder-ur.html.
9. Pritchard, J.B. (ed.), Ancient Near Eastern Texts Relating to the Old Testament with Supplement, p. 306,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69.
10. Ref. 9, p. 313.
11. McDowell, J., Daniel in the Critics’ Den, p. 64, Campus Crusade for Christ, San Bernardino, CA, 1979.
12. See also Millard, A.R., Daniel in Babylon: An Accurate Record? in Hoffmeier, J.K. and Magary, D.R. (eds.), Do Historical Matters Matter to Faith?, pp. 270–271, Crossway, Wheaton, IL,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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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CMI, Creation 37(3), Published 01 Aug, 2016, Updated 28 Nov,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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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 미디어위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