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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20-04-13

경이로운 스톤헨지! : 바벨 후에 건축된 석기시대의 유물?

(Stunning Stonehenge! : ‘Stone Age’ relic of post-Babel construction?)

by Gavin Cox


       거대한 돌들로 이루어진 스톤헨지(Stonehenge)는 시간의 안개 속에, 오랫동안 잊혀져온 역사의 수호자처럼, 영국의 솔즈베리 평원(Salisbury Plain)에 조용히 우뚝 서 있다. 그것은 영국의 가장 유명한 문화적 상징이며, 불가사의한 거석(巨石) 기념물이다. 가장 오래된 건축물로 알려진 이집트 피라미드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주장과 함께, 스톤헨지를 구성하는 강력한 석재블록들은 오랫동안 연구자들에게 이 돌들이 어떻게 운반되어 세워졌는지, 어떤 목적으로, 누가, 왜 만들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남겨놓고 있다. 


바위가 말하게 하라

지질학자들은 스톤헨지를 구성하고 있는, 화산성의 '블루스톤'(bluestones, 각 2~5톤)들 중 적어도 42개는 250km 떨어진 곳인 웨스트 웨일즈의 펨브로크셔(Pembrokeshire)의 프레셀리 언덕(Preseli hills)에서 운반되어 왔다고 말한다. 또한 2019년 고고학 탐사기간 중에 이 노두에서 고대의 채석 흔적(quarrying marks)이 발견되었다.

스톤헨지의 더 큰 돌(블록)들은 규산질 사암(silicified sandstone, 실리카로 포화된 사암)인 대사암(大砂巖, sarsen stones)으로 불리는 것이며, 그 무게는 평균 23톤이고, 서클 바깥에 홀로 떨어져있는 힐스톤(Heel Stone)은 32톤에 이른다.

또한 대사암들은 영국 남부지역에 흩어져 있는, '표석(erratics)'이라 불리는 고립되어 있는 거력(boulders)으로 발견되고 있다. 가장 가까운 것은 말보로 다운스에서 32km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대사암은 백악(chalk) 위에 형성되었다고 믿어지고 있는데, 이것은 마치 두꺼운 딱지처럼, 사암이 화학적으로 ‘실크리트(silcrete)’로 변성된 것이다. 

대사암은 현장에서 가공되었음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조각난 암석 더미와 돌망치가 그곳에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블록은 장부맞춤(mortise and tenon joints)과 같이 서로 맞물리도록 만들어졌다. 관심 있는 독자를 위해, 가상입체(3D) 둘러보기가 온라인으로 제공되고 있다.[2]

스톤헨지(Stonehenge)라는 이름조차도 미스터리하다. 이것은 고대영어 단어인 ‘stān’(stone, 돌)과 ‘hencg’(hinge, 돌쩌귀, 경첩)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는데[3], 똑바로 서있는 돌 위에 가로로 있는 돌들이 돌쩌귀처럼 보여서였을 것이다. 의미가 무엇이든, 그 돌들의 역사적 해석에 'hinge'란 이름이 많이 나온다.


보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역사

한 세기 동안 집중적인 과학적 탐구를 통해, 스톤헨지의 비밀에 대한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했다. 고고학자들은 스톤헨지가 서있는 장소와, 주변에서 발견된 제례적 경관(景觀)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관측 과학을 이용하여, 사람들은 돌의 크기, 무게, 화학성분뿐만 아니라, 한때 그것을 둘러싼 토목공사의 규모와 관련된 인공유물 등을 대체로 설명할 수 있었다.[5] 그러나 그들의 역사에 대해서, 그 당시 과거의 사람들에 대해서, 아무런 기록도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그럴듯한 전제(前提)와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것을 연구해야 했다.

탄소-14 연대측정 가정에 근거하여[6], 그 장소는 최대 10,000년 전의 것으로 주장됐는데, 이는 창조의 성경적 연대를 초과한다. 따라서 성경을 기록된 그대로 믿는 사람들은 사실을 허구와 분리해야 한다. 스톤헨지에 대한 견해는 서로 다른 세계관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역사는 일반적으로 누구의 관점이 '승리'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된다.


성경에 기반한 진정한 역사

그렇다면 스톤헨지는 세계사에서 어디에 적합한가? 창조와 타락 후, 지구 역사에서 창조 다음으로 가장 큰 사건은 전 지구적 홍수였던 노아 홍수(기원전 2,500년경)였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운이 모든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창세기 6:7a, 13b, 17a).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전 지구를 파괴했던 대홍수는 노아의 방주를 제외하고, 지구에서 인류의 홍수 이전 문명의 모든 흔적과 기억을 지웠을 것이다. 스톤헨지만큼 거대한 거석조차도 강력한 대홍수에 저항했을 가능성이 없다. 노아 홍수는 지구의 전체 표면을 침식하고, 재형성하여, 홍수 이전의 유해들로 가득한 거대한 깊이의 퇴적지층을 쌓아놓았다. 그리고 대사암(sarsen stones)은 퇴적암으로서, 주로 흐르는 물에 의해 쌓여진 모래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은 대홍수 때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압도적이다. 고로, 스톤헨지는 대홍수 이전의 건축물이 될 수 없다.


          스톤헨지를 둘러싼 사실들을 고려해볼 때, 관측되는 과학과 고고학에서 성경의 역사와 모순되는 것은 없다.


성경의 역사적인 다음 이정표는 바벨탑(Tower of Babel) 사건이다. 이곳에서 “온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였던 세계가 벨렉의 시대에 나뉘어졌다(창세기 11:1, 10:25, 기원전 2,250년경). 창세기 11:1~9절은 인간의 창조주에 대한 반란으로 바벨탑이 건설되었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그때까지 인간이 사용했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으며, 이로써 그 땅의 백성들은 나눠지게 되었다.(창 10:32). 분산된 그룹들은 각 그룹의 사람들이 보유했던 여러 기술과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이것은 각 족속 그룹이 다양한 위치에서 특징적인 문명을 '재건설'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놀랍게도 각 족속들이 정착했던 많은 곳에서 거대한 거석구조가 세워져있다.[8] 그들의 목적은 구약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일종의 ‘하나님에 대한 반역의 표시’로서, “일월성신”을 다시 한 번 숭배하는 데에 있었던 것 같다.

스톤헨지는 겨울 동지의 일몰 방향과 여름 동지의 일출 방향과 정렬되어 있다. 고대천문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스톤헨지가 태양, 달, 별과의 정렬을 감지하여, 작물을 심는데 사용되는 천문대나 달력으로 사용됐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곳에서 천체(heavenly body)가 숭배됐을 가능성이 높은데, 사람들의 삶의 모든 측면을 인도하는 제례 장소로서, 그것을 짓고 사용했던 것으로 믿어진다.

스톤헨지의 제례적 중요성에 대한 추가적 증거는 전술한 블루스톤의 음향적 특성이다. 타격을 받으면, 돌은 금속 종 모양의 소리를 낸다. 많은 고대 세계의 문화간 비교연구에 따르면, 그러한 음악적이거나 특이한 사운드 특성을 가진 암석에는 마법의 힘이나 정신이 포함되어 있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이것이 이 돌들을 멀리서 특별하게 가져온 이유일 수 있다.


스톤헨지 : 성경의 역사와 일치한다.

스톤헨지를 둘러싼 사실들을 고려해볼 때, 관측되는 과학과 고고학에서 성경의 역사와 모순되는 것은 없다. 말해지는 모든 것은 스톤헨지가 건축되었을 때 없었던, 이를 관찰하지 못했던, 전문가들의 세계관에 기초한 해석인 것이다. 성경은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록해놓고 있다. 성경은 그분의 이야기(His story)이므로, 과거를 이해하는데 우리의 가이드가 되어야 한다. 인상적인 기념물인 스톤헨지는 처음부터 지적인 존재로 창조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노아 홍수 이후에 지어진 바벨탑의 다른 기념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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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창의력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


현대의 실험은 그 당시 스톤헨지를 건축한 사람들이 이용할 수 있었던 재료만을 사용하여, 돌을 어떻게 움직이고 세우는지를 보여주었다. 영국의 엔지니어 마크 위트비(Mark Whitby)와, 고고학자 줄리안 리차드(Julian Richards)는 130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썰매와 윤활유로 처리된 레일을 사용하여, 1:20 경사(slope) 위로 40톤의 석재를 이동시켰다. 평탄하거나, 내리막길에서는 비슷한 석재를 하루에 10km 정도 수송할 수 있었던 것으로 계산되었다. 논문은 그들이 롤러나 유사한 방법을 사용하여 석재를 운반하는 방법을 포기했던 이유를 밝히고 있었다. 그런 다음에 석재는 스톤헨지에서 발견된 것과 동일한 형태로 구멍 안에 세워졌는데, 석재가 구멍으로 떨어지기 전에, 미끄러지지 않고 70도까지 기울어지도록 설계했다. 경첩(힌지, hinge) 위에서처럼, 석재를 회전되는 구멍의 앞쪽 가장자리에 놓고, A-프레임 레버를 사용하여 수직으로 잡아당겨서 완성했다. 석재 뒤로 비계(scaffold) 경사로를 설치하여, 상인방(lintel, 가로로 놓여진 돌)을 레일 위로 끌어당겼고, 세워진 석재 위에 위치시킴으로, 완성된 3석탑(trilithon, 2개의 돌기둥 위에 1개의 돌을 가로 얹은 유물)을 만들었다.

.똑바로 당기는 것을 돕는 지렛대로 사용된 'A'프레임


.석재 이동에 사용됐던 썰매와 레일의 단면


.석재는 피벗(pivot)에서 회전하여, 받침 구덩이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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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Building Stonehenge, english-heritage.org.uk; accessed 15 Aug 2019. 

2. Stonehenge virtual tour: inside the stones, english-heritage.org.uk; accessed 15 Aug 2019. 

3. Or hen(c)en meaning ‘hang’ or ‘gallows’. 

4. Led by the Stonehenge Hidden Landscape Project, lbi – archpro.org / cs /  stonehenge ; accessed 27 Jul 2019. 

5. Neolithic stone tools, antler picks and ivory jewellery, but later Roman artefacts show it became an important shrine; see english-heritage.org.uk; accessed 27 Jul 2019. 

6. Based on 14C dating of charcoal at the site, interpreted as proving the site “continuously evolved over a period of about 10,000 years … [and Stonehenge was] built between roughly 5,000 and 4,000 years ago”; Jarus, O., Stonehenge: Facts&theories about mysterious monument, 2017, livescience.com, accessed 15 Aug 2019. 

7. Archbishop James Ussher calculated the Babel event at five years after Peleg’s birth. James Ussher, (Pierce, L&M, Eds.) The Annals of the World, Master Books, Green Forest, AR, , p. 22, 2003. 

8. Read about the 1000s of pyramid structures documented at: world – pyramids.com; accessed 27 Jul 2019. 



*참조 : 석기시대에 삼각함수 전문가가 영국에 있었는가?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62&bmode=view

”야벳, 컴퓨터 끄는 것을 잊지 말거라!” : 2,000 여년 전의 고대 난파선에서 발견된 놀라운 기계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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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문명들과 현대인 : 고대인의 전지, 계산기, 점화전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23&bmode=view

바벨탑 : 전설인가, 역사인가?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18&bmode=view

바벨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56&bmode=view

페루 삭사이와만 요새의 미스터리가 밝혀졌다! 조금의 틈도 없는 돌벽은 부드러운 상태의 암석으로 축조되었다!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485&bmode=view


출처 : Creation 42(2):36–38, April 2020

주소 : https://creation.com/stonehenge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0-02-26

“증거의 패턴 : 홍해의 기적” 

- 성경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영화 

(Patterns of Evidence : The Red Sea Miracle 

provides compelling evidence for the Bible)

by Lita Cosner


      무신론자들은 종종 성경의 진실성을 공격한다. 그들은 출애굽과 같은 성경의 기록은 증거를 남겨놓아야 하지만, 이집트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살았다거나, 탈출했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고 주장한다. 팀 마호니(Tim Mahoney)가 제작한 “증거의 패턴” 시리즈는 많은 학자들이 성경적 역사의 증거들을 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잘못된 시대를 살펴보고 있기 때문에, 히브리인들의 거주와 점령의 증거들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출애굽의 증거들에 잘못된 시대를 할당하여, 잘못 해석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 나온 영화 “증거의 패턴: 홍해의 기적(Patterns of Evidence: The Red Sea Miracle)”은 이러한 추세를 계속 이어가고 있다. ("출애굽(Exodus)"과 "모세에 대한 논쟁(The Moses Controversy)” 제목의 영화도 같이 보라) 

이집트에 내린 재앙들, 홍해의 기적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기적적으로 구원하신 사건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국가로서의 정체성과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이해의 기초가 되고 있다.

이집트에 내린 재앙, 홍해의 기적을 포함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노예생활로부터 기적적으로 구원하신 사건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국가로서의 정체성과, 하나님이 누구신지에 대한 이해의 기초가 되고 있다. 또한 이러한 기적들은 가나안 사람들조차도 한 세대 후에도 그것을 기억할 정도로 큰 규모였다.(수 2:10). 그러나 그 사건을 둘러싼 거의 모든 지리적 위치들, 특히 홍해를 건넌 장소를 포함하여 이스라엘 백성의 탈출 경로 등은 논란이 되어왔다.

마호니는 이전 다큐멘터리의 매력적인 형식을 사용하여, 모든 주요 견해들을 갖고 있는 전문가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 영화에서는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의 수, 여행 거리 등을 작은 규모로 보고 있는, 특히 홍해의 기적을 초자연적 사건보다는 작은 규모의 자연적 사건으로 보고 있는 '이집트인의 견해'를 대비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히브리인의 견해’라는 용어를 설명하는데, 이것은 인구 수, 여행 거리, 홍해 기적을 더 큰 규모로 보는 견해이다. 이러한 대비되는 두 견해에 대한 묘사는 단순해 보이지만, 정확한 이해가 부족한 시청자들이 이 논란에 대해 훨씬 이해하기 쉽도록 해주어, 다큐멘터리의 목적을 잘 달성하고 있다.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의 인구 수

성경 본문의 '문자적' 해석에 의하면, 출애굽 시에 이집트를 떠나온 사람들의 수는 장정만 60만 명 가량이었다.(출 12:37). 따라서 여자와 아이들을 합치면 대략 2백만 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집트인의 견해’에 따르면, '천(thousand, 엘프, elef)은 문자적 의미가 아닌, '가족 그룹(family group)'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따라서 그 숫자는 수백만이 아니라, 수천으로 줄어든다는 것이다. 마호니는 특히 구약학 학자인 배리 베이첼(Barry Beitzel)을 포함하여, ‘이집트인의 견해’를 가진 학자들이 그들의 주장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도록 공정하게 시간을 배분했다. 그러나 마호니는 또한 성경을 해석하기 위해서 성경을 사용하는 원리에 기초하여, “천”이 문자적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압도적인 경우들을 잘 제시하고 있었다.


홍해인가, 갈대 바다인가?

마호니는 매우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다양한 견해들을 제시함으로써, 시청자들을 안내하고, 필요한 정보에 입각한 자신의 의견을 신중하게 제시하고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마른 땅처럼 건넜다는, 물의 히브리어는 ‘얌 수프(Yam Suph)’이다. 구약의 그리스어 번역본인 ‘칠십인 역(Septuagint)’에는 그 용어를 ‘홍해(Red Sea)’로 번역해놓았다. 마호니는 그 용어의 실제적 의미는 "갈대 바다(Reed Sea)"라고 설득력 있게 주장한다. 마틴 루터(Martin Luther) 또한 독일어로 “갈대 바다(sea of reeds)”를 의미하는 Schilfmeer를 사용하여, 그러한 이해를 반영했다.

비판적 공격에 대해 미리 설명할 필요가 있는데, 사도행전 7:36과 히브리서 11:29절은 ‘홍해’로 칠십인 역의 그리스어 용어를 사용했다. 히브리어가 "갈대 바다"였다면, 칠십인 역의 번역가들이 그것을 잘못 이해했고, 그렇다면 신약성경도 그 용어를 잘못 사용했던 것일까? ‘얌 수프’가 "갈대 바다"를 의미한다면, 우리는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홍해”라는 용어를 어떻게 방어해야 할까?

간단한 대답은 장소에 대한 지명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경되고, 나중에 지점을 반영하기위해서 업데이트 되는 것이 성경에서 일반적이라는 것이다. ‘얌 수프’는 모세 시대의 정확한 이름이었으며, ‘홍해’는 칠십인 역과 신약시대에 사용되던 그리스어 지명을 반영한 용어라는 것이다. 힉소스(Hyksos)가 이집트를 점령하고 수도로 정한 아바리스(Avaris)에서 이러한 모든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은 람세스(Ramses)로, 심지어 피-람세스(Pi-Ramses)로 지명이 다시 바뀌었고,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성경에서 읽고 있는 지명이다.


횡단 지점은?

홍해 횡단(Red Sea Crossing) 지점에는 3 주요 후보지가 있다.

1. 어떤 사람들은 홍해의 북쪽에, 상대적으로 얕은 수역이 있었다고 주장한다.

2. 전통적인 횡단 지점은 수에즈 만(Gulf of Suez)으로, 대부분의 전통적 기독교 주석가들은 이곳을 지지한다.

3. 인기를 얻고 있는 곳은 아카바 만(Gulf of Aqaba)이다. 특히 주류 고고학계가 아닌 몇몇 탐사자들에 의해서 주장되고 있다. 아카바 만에서 횡단 지점으로 여겨지는 곳으로는 다시 세 장소가 있다.

횡단 지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곳까지 갔던 경로이다. 백성들이 얼마나 빨리 여행할 수 있었는가와 횡단 지점에 대해 특별히 자세히 논의되고 있다.


고품질의 걸작

종종 성경적 논쟁은 그 주제에 대한 새롭게 밝혀진 사실로 인해 이해하기 힘들고 혼란스러울 때가 있다. 그리고 자신의 생각으로 그 문제를 해결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의 견해를 무시하고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마호니는 매우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다양한 견해들을 제시함으로써, 시청자들을 안내하고, 필요한 정보에 입각한 자신의 의견을 신중하게 제시하고 있다. 그 영화는 고품질의 영상과 장면들로 가득하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

마호니에게 이것은 그저 건조한 학문적 토론이 아니다. 그는 이전의 영화 “증거의 패턴: 출애굽”에서, 자신의 믿음을 위해 그러한 질문에 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으며, 이 영화에서 그는 손주들에게 그러한 질문에 답을 주기 원한다고 말한다. 이 영화는 성경의 역사성이 중요함을 다시 한 번 알려주고 있으며, 크리스천들은 모든 도구를 사용하여 성경을 변증할 수 있어야한다는 것을 전하고 있다. 새로운 영화 “증거의 패턴 : 홍해의 기적(Patterns of Evidence: The Red Sea Miracle)”은 성경의 역사성을 지키기 위한 몇 가지 주장을 추가하고 있으며, 성경 기록의 정확성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한 많은 근거들을 보여준다. 하나님이 홍해/갈대바다를 가르신 것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는 사람들은, 이 영화를 보고 하나님의 위대함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란다. 결국 하나님이 이 거대한 우주를 창조하신 분이라면, 왜 지구에 있는 작은 바닷물을 가르시는 것이 어려운 일이겠는가? “증거의 패턴: 홍해의 기적”을 진심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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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urther Reading


*참조 1 : 출애굽의 역사성을 확증하고 있는 영화, “증거의 패턴 : 출애굽”이 개봉되었다.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289000&bmode=view

시내산의 위치에 관해 논란이 되고 있는 고고학적 장소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공개한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2574870&bmode=view

이집트 연대기와 성경 : 현장 고고학자 데이비드와의 대화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29&bmode=view

출애굽의 역사를 입증하는 객관적인 증거 – 패턴 오브 에비던스 1

https://www.fingerofthomas.org/출애굽의-패턴-오브-에비던스-1/

Red Sea Crossing 관련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Red+Sea+Crossing


참조 2 : 출애굽의 역사를 입증하는 객관적인 증거 – 패턴 오브 에비던스 1 – Fingerofthomas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였다는 고고학적 증거들 – 패턴 오브 에비던스 2 – Fingerofthomas

이스라엘 백성의 번성 그리고 노예화의 객관적인 증거 – 패턴 오브 에비던스 3 – Fingerofthomas 

이집트의 재앙을 기록한 이집트인이 쓴 출애굽기 – 패턴 오브 에비던스 4 – Fingerofthomas 

가나안 땅에서 벌어진 정복 전쟁의 증거들 – 패턴 오브 에비던스 5 – Fingerofthomas 

제한적인 인간의 지식 vs 전지한 하나님의 말씀 – 패턴 오브 에비던스 6 – Fingerofthomas 

증거도 없는 출애굽을 왜 믿어야 하나? – Fingerofthomas


출처 : CMI, 2020. 2. 10. (GMT+10)

주소 : https://creation.com/poe-red-sea-review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19-11-24

모압 석비가 입증하고 있는 성경 기록의 역사적 사실성

: 모압 왕 메사의 자랑은 창세기를 확인해주고 있다. 

(Moabite King's Boast Corroborates Genesis)

by James J. S. Johnson, J.D., TH.D.  


     모압 석비(Moabite Stone)은 1868년 디본(Dibon, 현 요르단의 Dhiban)에서 발견되었다.  메사 석비(Mesha Stele)라고도 불리는 이 기념비는 BC 830년경 모압의 메사 왕에 의해서 세워졌다. 이 석비는 고고학이라는 학문이 추론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줄뿐만 아니라, 성경을 변증하는데 있어서 의미를 갖고 있었다.

최근 한 세속적 고고학자는 모압석비(Moabite Stone)의 비문에서 두 글자에 대한 새로운 추측을 주장하고 있었다.[1] 이스라엘 핀켈슈타인(Israel Finkelstein)은 고해상도 사진을 사용하여, 31째 줄의 손상된 부분을 면밀히 조사했다. 그리고 안드레 르메어(André Lemaire)가 이전에 보고했던 BT [D]WD 해석이[2] 틀렸다고 결론지었다. 핀켈슈타인은 B[??]가 옳다고 추론했고, 이것은 BLQ, 즉 Balak(발락, 모압의 한 왕)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1] 

.BC 830년 경, 모압 왕 메사가 기록한 모압석비의 세부 사항.(루브르 박물관, 파리). 


모압 사람들의 관점에서 쓰여진 모압 석비는 구약의 역사를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특히 열왕기하 3장에 기록되어 있는 군사적 충돌이 사실이었음을 확증해준다.[3, 4] 모압 석비는 성경의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보여주면서, 모압 왕 메사의 집이 디본(Dibon)에 있음을(1~2째 줄),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을 야훼(YHWH, 18째 줄)로, 모압의 신을 그모스(Chemosh, 4~5, 9, 12째 줄)로, 북이스라엘의 왕을 오므리(Omri, 4~5, 7째 줄)로 언급하고 있었고, 성경에 기록된 많은 모압 지역의 장소들을 언급하고 있었다 : 아다롯(Ataroth), 메데바(Mehdeba), 벧바알므온(Beth-Baal-Meon), 기랴다임(Kiriathen, Kiriathaim), 느보(Nebo), 야하스(Jahaz), 벧디블라다임(Beth-Diblathain),  벧바못(Beth-Bamoth), 호로나임(Horonaim), 아론 강둑(Arnon riverbed)...등 

그리고 메사는 그가 이스라엘에 매년 많은 양의 털을 공물로 바쳤다는 당혹스러운 사실을 생략하고 있지만(왕하 3:4 참조), “양을 치는 자”로서의 성공을 자랑하고 있었다. 메사는 이스라엘이 “파멸되었다, 영원히 파멸되었다!(destroyed, destroyed forever!)”라고 주장하며, 정치인들의 습관처럼 이스라엘을 멸망시켰다고 과장하고 있었다.(7째 줄) 

또한 모압 석비에서 메사 왕은 아다롯(Ataroth)에서 갓 지파(Gadites)를 물리친 것을 자랑하고 있었다.(10~13째 줄) 그러나 성경은 아다롯과 다른 지명들은 르우벤 지파(Reubenites)의 영토로서 기록하고 있다.[4] 메사 왕은 아다롯을 갓 지파의 땅으로 말하고 있으면서, 르우엔 지파를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왜 르우벤 지파를 무시하고 있었던 것일까? 르우벤 지파의 영토 내에 있는 갓 지파가 정복하는 왕에게 가치 있는 일처럼, 왜 갓 지파를 물리쳤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4]

그 답은 창세기 49:1~4, 19절에 나오는 야곱의 예언과 관련이 있다. 야곱은 르우벤을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하지 못하리니”라고 예언했다.(4절). 모압 왕 메사가 르우벤을 완전히 무시했을 때, 그것은 르우벤에 대한 예언을 확실하게 해준다. 메사는 르우벤 영토의 정복에 대해 자랑하는 것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야곱은 갓에 대해 다르게 예언했다. “갓은 침략자의 공격을 받을 것이나 오히려 그들의 뒤를 공격할 것이다(현대인의 성경). (Gad will be attacked by a band of raiders, but he will attack them at their heels. NIV)”(19절). 갓 지파는 전투 능력이 강한 전사들로 (갓 지파의 미래에서 몇 번의 패배가 있었지만) 공격적인 세력이었다. 그 패배 중 하나가 아다롯에서의 패배였고, 메사는 그것을 10째 줄에 기록해놓았다. 메사가 전사였던 갓 지파를 물리친 것에 대해 자랑할 때, 야곱의 예언을 확증해주고 있었던 것이다.[4]

모압석비는 성경의 역사성을 입증해주는 성경의 외부적 증거가 되고 있다. 31째 줄에 대한 새로운 연구가 정확한 것이라면, 성경의 발람 이야기(민수기 22~24장)에서 언급된 발락 왕(King Balak)에 대한 기록도 사실이었음을 가리킨다. 그러나 이것과 관계없이, 모압석비는 이미 성경의 역사성을 여러 측면에서 입증하고 있으며, 르우벤과 갓에 대한 야곱의 예언을 의도하지 않게 확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Finkelstein, I., N. Na’aman, and T. Römer. 2019. Restoring Line 31 in the Mesha Stele: The ‘House of David’ or Biblical Balak? Tel Aviv: Journal of the Institute of Archaeology of Tel Aviv University. 46 (1): 3-11. “The name on Line 31 [could] be read as Balak, the king of Moab referred to in the Balaam story in Numbers 22–24.”

2. Lemaire, A. 1994. ‘House of David’ Restored in Moabite Inscription. Biblical Archaeology Review. 20 (3): 30-37.

3. Johnson, J. J. S. The Moabite Stone, a New Translation, Analytically Cross-Examined in Light of the Bible and Moabite History, pages 23-28, 103-121. Presented to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conference November 16, 2000, in Nashville, TN.

4. Johnson, J. J. S. 2014. How the Moabite Stone Corroborates a Prophecy in Genesis 49. Bible and Spade. 27 (3): 68-74, with quotations from page 73.

* Dr. Johnson is Associate Professor of Apologetics and Chief Academic Officer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Cite this article: James J. S. Johnson, J.D., Th.D. 2019. Moabite King's Boast Corroborates Genesis. Acts & Facts. 48 (7).


*참조 : What does the Moabite Stone reveal about the Biblical revolt of Mesha?

https://christiananswers.net/q-abr/abr-a019.html

Fulfillment of Genesis 49 Prophecy is Accidently Corroborated by King Mesha’s Bragging on the Moabite Stone

https://pinejay.com/2019/07/03/fulfillment-of-genesis-49-prophecy-is-accidently-corroborated-by-king-meshas-bragging-on-the-moabite-stone/

Moabite Stone [Mesha Stele]

https://www.worldhistory.org/Moabite_Stone_[Mesha_Stele]/

The Moabite Stone

https://bible-history.com/resource/the-moabite-stone


출처 : ICR, 2019. 6. 28.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moabite-kings-boast-corroborates-genesi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19-10-22

시내산의 위치에 관해 논란이 되고 있는 

고고학적 장소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공개한다.
(Saudi Government Opening Up Archaeological Sites)

David F. Coppedge


       금지구역에 대한 출입 허가로 시내산의 위치를 비롯한 모세오경에 관한 논쟁이 해결될 수 있게 되었다.

"시내산(Mount Sinai, 호렙산)“의 실제 위치에 관한 논쟁은 수십 년 동안 격렬히 이루어져왔다. 시내산이 시나이 반도(Sinai Peninsula)에 있는 기존의 무사산(Jebel Musa, 제벨무사)이라는 대다수의 견해는 오랫동안 의심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사실로서 가르쳐져왔었다. 그러나 성경을 신뢰하며 위험을 무릅쓴 여러 탐험가들이 고대 미디안 땅(오늘날 사우디아라비아)에 있는 라오즈산(Jebel el-Lawz) 주변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산은 성경의 묘사와 일치하는 것처럼 보였으며, 출애굽기의 기록과 일치되는 몇 가지 지형을 갖고 있었다 : 즉 엘림(Elim)일 수 있는 오아시스, 물이 흘러나온 것처럼 보이는 갈라진 바위, 불에 타서 그을린 것처럼 보이는 검은 색의 산 정상부 등이다. 이 장소는 론 와이어트(Ron Wyatt, 일부 의심스러운 주장들도 있지만 열정을 가졌던 사람), 밥 코뉴크(Bob Cornuke) 등과 같이 (‘떨기나무’의 저자 김승학 권사를 포함하여) 금지 구역을 몰래 들어가 산을 탐사했던 사람들에 의해 알려졌다. 그들은 또한 아카바만을 가로지르는 얕은 수심의 육지다리에서 산호로 뒤덮인 애굽 군대의 전차 바퀴들을 관측했다고 주장했다. 이 장소는 아폴로 15호의 우주비행사 짐 어윈(Jim Irwin)에 의해서 이전에 조사됐었다.

Illustra Media의 영화 ”밝혀진 출애굽(The Exodus Revealed)“는 (와이어트나 코뉴크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탐사한 레나트 몰러(Lennart Moller)와 다른 사람들의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이 영화는 독단적인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의 시기, 이집트와 고대 이스라엘의 고고학적 증거 및 기타 증거들을 고려하여 퍼즐 조각을 맞추려 하고 있었다. 그들은 홍해 아카바만(Gulf of Aqaba)의 물아래 육지다리에서 애굽 군대의 전차(chariots) 잔해를 찾아서 최초로 동영상 촬영을 했다. 최근에 ‘출애굽의 증거들(Patterns of Evidence)’과 ‘모세에 관한 논쟁(The Moses Controversy)‘을 만든 영화제작자인 팀 마호니(Tim Mahoney)는 홍해를 건넌 장소에 관한 세 번째 다큐멘터리인 ’홍해의 기적(The Red Sea Miracle)‘을 2020년에 상영할 것을 목표로 제작하고 있다.  

시내산이 아라비아에 있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행하기에는 너무 멀리 있고, 육지다리가 있었다 하더라도 어린이들과 노인들이 아카바만을 건너가기에 너무 힘들었을 것이고, 성경에 기록된 지명들이 고고학적 증거로 확인되는지 알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예로 비하히롯(Pi-Hahiroth), 믹돌(Migdol) 등). 비평가들 중에는 유명한 성서 고고학자인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와 제임스 호프마이어(James K. Hoffmeier)도 있다. 그러나 아라랏 산의 노아 방주에 대한 탐사가 좌절됐던 것처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데이터 수집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왔다. 그래서 ‘진정한 시내산(real Mt. Sinai)’의 위치에 관한 논쟁은 원래 장소에 대한 탐사 금지로 해결되지 않고 있었다. 특히 라오즈산(Jebel el-Lawz)은 오랫동안 접근 금지 구역이었으며, 펜스가 쳐져 있었고, 군인들이 순찰하고 있었다.

이제 Fox News(2019. 10. 15) 의 보도에 의하면, 사우디 정부의 마음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이 장소가 보안 위험이 적고, 관광객을 유치하여 재정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바뀌고 있다”고 갈렙 파크(Caleb Parke)는 썼다. 아라비아 시내산의 관광을 지지하는 관광안내인인 조엘 리처드슨(Joel Richardson, 이 주제에 관한 책의 저자)은 이곳과 다른 장소에 대한 여행 허가는 사우디 정부에 축복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사의 한 영상물에서 자신의 계획을 설명하고 있었다.

"이곳은 현대사에서 가장 중요한 새로운 고고학 유적지가 될 것"이라고 리처드슨은 Fox News에서 말했다. "사우디 정부가 풍부한 역사 및 지리적 보물을 볼 수 있도록, 왕국을 개방해주어 매우 기쁘다."…

역사적 장소 외에도, 사우디 정부는 새로운 박물관과 고급 호텔, 심지어 북서부의 네옴 (Neom)이라고 불리는 2025년에 완공되는 스마트 시티까지 둘러보는 국제 관광을 활성화시키기를 희망하고 있다.

여행 웹사이트인 Living Passages는 흥미로운 출애굽기 이야기에 관한 시내산 지역의 관광을 홍보하고 있다. 그들 중 하나가 10월 14일 진행 중이다. 더 많은 관광들이 2020년에 계획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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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소가 공개되어 많은 탐사가 이루어진다면, 이 주제에 대한 논쟁에서 커다란 축복이 될 것이다. 열린 마음을 가진 전문가들이 증거를 수집해야 한다. 사우디 아라비아의 이 장소에 대해서 몇몇 주요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반대해왔다. 일을 명확하게 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투명하게 공개적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시나이반도 남부의 전통적인 시내산(무사산)에는 출애굽 당시의 바로(Paroahs)로 제안되는 시기에 다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렀다는 증거가 없다. 또한 그곳은 애굽 군대가 주둔해있었고 순찰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집트로부터 “출애굽”이 아닌 것이다. 또한 무사산은 그리스도의 시대 이후까지도 시내산으로 여겨지지 않고 있었다. 일부 수도사들이 단지 그곳에 갔고, 성경에 묘사된 산처럼 보였다고 생각했다. 성경은 명확하게 시내산은 아라비아에 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 하갈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 산으로서...”(갈라디아서 4:25). 그리고 구약성경도 시내산은 미디안(Midian) 땅에 있음을 매우 분명히 기록하고 있다.

라오즈산이 시내산이라는 증거들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라오즈산이 시내산 임을 가리키는 증거들이 발견된다면, 아카바만을 건널 때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적은 진정으로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집트 내에 있는 얕은 호수를 자연의 바람을 통해 가르는 것을 상상하는 대신에, 하나님께서는 거대한 홍해 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너게 하신 사건은 진정 경이로운 일이었을 것이다.



*참조 : Red Sea Crossing 관련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results?search_query=Red+Sea+Crossing

‘시내산’, 시나이반도일까, 사우디아라비아일까(1, 2) (2014. 12. 10. 아이굿뉴스)
http://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4179

http://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44226

“시내산은 어디인가” 제8차 세미나에 대한 반론 (2015. 03. 01.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ristiantoday.co.kr/news/278817


출처 : CEH, 2019. 10. 16.
주소 : https://crev.info/2019/10/saudi-government-opening-up-archaeological-site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19-10-21

사울 왕의 아들 ‘에스바알(이스보셋)’의 이름이 새겨진

 3,000년 전 도자기가 발견되었다. 

(Biblical Name Found on Pottery)

David F. Coppedge


      예루살렘 남쪽의 한 요새에서 발견된 도자기에 다윗왕의 시대에 살았던 사울 왕의 후계자의 이름과 같은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키르벳 케이야파(Khirbet Qeiyafa)에서 점점 더 많은 발굴들이 계속되면서, 그곳은 고고학적 보물 장소가 되고 있다. 그곳은 사울 왕, 다윗 왕, 솔로몬 왕의 시기에 중요한 전초 기지였음이 명확해지고 있다. 그리고 그러한 발굴은 유다와 이스라엘의 최초 군주들이 넓은 지역의 왕국을 다스렸다는 구약성경의 기록을 지지해주고 있는 것이다. 몇 년 전만해도, 성경 비판가들은 이들 왕들이 작은 부족을 다스렸던 족장들에 불과하다고 주장했었다.(4/24/2012) 그러나 이제 그러한 주장은 새로운 발굴들로 인하여 기각되고 있다.


이제 최초로, 다윗왕의 경쟁자였던, 사울 왕(King Saul)의 아들과 동일한 이름인 에스바알(Esh-baal, 성경적 이름으로 이스보셋 Ish-bosheth)이 새겨져 있는 도자기 물병(pottery jug)이 발견되었다. 이 발굴은 성서고고학회(Biblical Archaeology Society) 지에 발표되었다 (2015. 6. 16. Daily Mail 참조) (Christian Today, 2015. 7. 28)

고대의 도자기에 성경에 등장하는 이름인 에스바알(Eshbaal)이라는 이름이 새겨져 있는 것이 최초로 발견되었다. 3,000년 된 큰 단지(pithos, 대형 저장 항아리)에 불타기 전 새겨져 있던 명문(inscription)이 이스라엘의 키르벳 케이야파(Khirbet Qeiyafa)에서 발견되었다. 연구자들의 연구는 미국 동양연구소(Bulletin of the 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 BASOR) 저널에 게재되었다.

'Eshba'al Ben Beda' (man of Ba'al son of Beda 라는 의미)’라는 명문은 가나안 알파벳 철자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쓰여졌다. 일반적으로 이스바알(또는 에스바알 = 바알의 사람)로 번역되는 이름인 'šb'l은 성경에서 알려져 있다. 사울의 아들로서, 다윗왕의 경쟁자였던 에스바알은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다. (역대상 8:33, 사무엘하 2~4장, 이 왕은 이스보셋이라 불렸다). 그러나 Beda라는 이름은 유일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나 그 이름이 사울왕의 아들과 관련된 것인지,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사람을 의미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그러나 이 이름은 다윗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왜냐하면 다윗 이후에 바알이라는 단어는 이름에서 선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바알(baal)'이라는 단어가 때때로 '주(lord)'를 의미하고, 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으로 사용되기도 하였지만, 사무엘하의 저자는 가나안 사람들의 신인 바알이 높임 받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초기 이름에 보셋(bosheth, = shame, 수치)을 붙여 교정했을 수 있다. 따라서 이스바알(Ishbaal, 또는 Eshbaal)은 성경 사무엘하에서는 이스보셋(Ishbosheth)으로 바뀌어졌고, 요나단의 아들인 므립바알(Merib-baal, ‘바알의 대변자’라는 뜻)은 므비보셋(Mephibosheth)으로 기록되었다. (see Luke Chandler blog). ‘에스바알’이라는 원래 이름은 역대상에는 남아있다.(대상 8:33, 9:39).  


이 시대의 명문은 매우 드물다. 2008년에 그곳에서 발견된 문자가 새겨진 도자기 파편(ostracon)은 센세이션을 일으켰었다. 그것은 이제까지 이스라엘에서 발견됐던 가장 초기의 철기시대의 명문이었다. 

”이 새로운 명문은 적어도 기원전 10세기에 가나안 지역과 왕국에서 사용됐던 공식적이고 표준화된 페니키아 문자와 800년 동안 사용됐던 문자 체계 사이의 과도기적 단계를 나타내고 있다.”

방사성탄소 연대측정은 대략 BC 1020~980년으로 연대를 평가하였다. 다윗왕은 BC 1010~970년 동안 통치했다. 화재 이전에 커다란 분명한 철자들로 된 문장이 도자기에 새겨져 있었다는 사실은, 그것이 훈련된 조각가에 의한 작품임을 가리킨다. 이것은 초기 유다 왕국의 통치 범위에 대한 또 하나의 단서가 되는 것이다. 키르벳 케이야파는 다윗이 골리앗을 죽였던 엘라 계곡(Elah Valley)에 인접해 있다.


이스라엘 타임스(The Times of Israel, 2015. 6. 16) 지는 이 발견을 ”일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발견”이라고 불렀다. 또한 Israel National News(2015. 6. 16)를 참조하라. Live Science(2015. 6. 16) 지의 기사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

”5년 전까지만 해도, 기원전 10세기 유다 왕국의 명문(inscriptions)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동안 네 개의 명문이 보고되었다. 두 개는 키르벳 케이야파에서, 하나는 예루살렘에서, 하나는 벳세메스(Bet Shemesh)에서 보고되었다.” 가핑클(Garfinkel)과 가노르(Ganor)는 IAA에서 말했다. ”이것은 유다 왕국의 문자 분포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완전히 변경하는 것이고, 저작(writing) 활동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광범위하다는 것이 이제 분명해졌다.”


성경 고고학에 관한 또 다른 뉴스들

오늘날 예루살렘 남쪽 벽 외곽인 다윗성(City of David)에서, 에일랏 마자르(Eilat Mazar)는 발굴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녀는 이제 솔로몬의 궁전 벽(Solomon’s palace wall)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Israel Video Network는 CBN의 한 비디오를 게재했는데, 거기에서 마자르는 페니키아식 문양, 조각된 상아 장식품 및 왕실 물개 등으로 장식되어있는 커다란 벽을 발견했는데, 이것은 솔로몬의 통치를 가리킨다고 믿고 있었다.  

북쪽으로 키르벳 엘 마카티르(Khirbet el-Maqatir)에서 발굴자들은 또 다른 저수조(cistern)를 발견했다. 그 장소는 여호수아에 의해서 점령당했던 성경의 아이 성(fort of Ai)인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스콧 스트리플링(Scott Stripling)의 비디오는 그 발견을 보여주고 있다.

창조 지(Creation Magazine)의 이번 호 이슈에서는 다니엘 서에 언급된 벨사살(Belshazzar) 왕의 정체성과 역할에 관한 혼란을 명확하게 해주고 있었다.

Bible Places Blog는 성서 고고학에 대한 최신의 발견들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웹 사이트이다. 또 다른 뉴스 웹사이트는 Bible History Daily 이다. 페이스북 사용자들도 성경 고고학 그룹(Bible Archaeology group)에 가입하여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



성경은 결국 승리한다. 그렇지 않은가? 1세기 이상 전에 로버트 앤더슨(Robert Anderson)은 ‘비평가들의 굴속의 다니엘(Daniel in the Critics’ Den)‘ 이라는 책을 썼었다.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던 주님이 지금도 비평가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계신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5/06/ishbosheth/ 

출처 - CEH, 2015. 6. 17.

미디어위원회
2019-10-17

여호수아의 아이성에 대한 새로운 고고학적 발굴. 

: 또 다시 확인된 성경 기록의 정확성.

 (Getting Archaeology Right at Ai)

Henry Smith 


      수십 년간 세속적 고고학자들은 여호수아의 아이(Ai) 성 전투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부정해왔다. (아이성이 있던 곳으로 추정되어왔던) 엣 텔(et-Tell)의 지형은 성경 기록과 비슷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그들이 잘못된 장소를 보고 있었다면, 이 논의는 어떻게 될까?


여호수아의 여리고 정복 사건은 구약을 통틀어서 가장 흥미진진한 인기 있는 이야기 중 하나이다.(여호수아 6장). 그 사건 후 몇 주 후에 일어났던 아이성 전투는 그에 비해 덜 알려져 있으며, 종종 간과되어왔다. 하지만 여호수아 7~8장에 나오는 가나안의 요새(혹은 도시)인 아이성 점령 사건은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인도하셨던 역사에서 엄청난 중요성을 가진다.[1]

성경에 등장하는 다른 놀라운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이 사건 역시 역사적 정확성의 측면에서 비판받아왔다. 다행히도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기록은 우리로 하여금 고고학적 증거들을 재평가해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한다.



이스라엘 진영에서의 죄

여리고에서 승리한 이후 아간은 온전히 바쳐야할 물건들 중 일부를 몰래 가져간다.(수 7:1 NIV)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아간의 어리석은 죄 때문에, 이스라엘은 아이왕에게 크게 패하는 영적인 심판을 하나님께 받아야했다.(수 7:2~5) 아간의 죄가 발견되고 처벌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한 번 전투로 내보낸다. 그리고 이번에는 크게 승리한다.

성경은 그 지역에 대해서, 그리고 여호수아가 사용했던 전술에 대해서 몇 가지 흥미로운 사실들을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경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성경을 오류가 없는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이 사건들의 역사성을 거부하며, 증거들을 해석하는 출발점으로 성경 기록을 사용하지 않는다.  

수년 간 고고학자들은 '엣 텔(et-Tell)'이라는 지역을 발굴해왔고, 그곳이 바로 아이성이 있던 곳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 지역의 증거들이 성경과 일치하지 않자, 성경의 기록이 틀렸다고 결론을 내렸다.[2] 다음의 주장은 꽤 보편적인 주장이다 : ”고고학은 여호수아 7~8장에 기록된 아이성의 점령에 대한 기록이 역사적으로 신뢰할 수 없는 것임을 입증했다.”[3]


다른 관점

성경의 기록을 확증하는 고고학적 발견

.여호수아 7~8장에 나오는 고대 도시 아이로 생각되고 있는 마카티르(Maqtir).

.여호수아의 군대가 머물렀던 아이의 북쪽 골짜기가 지금은 제벨 아부 암마르(Jebel Abu Ammar)라 불린다. 앞쪽에 아이의 성문이 있다.

.문에 사용됐던 소켓 돌(socket stones)

(좌) 마카티르에서 발견된 도자기는 여호수아의 시대로 연대가 평가되었다.
(우) 매장용 항아리(burial jar) 속에 들어있는 갓난아이의 유골은 성경의 기록처럼 그 장소에 여자도 있었음을 가리키고 있다.


과학자들이 성경과 모순되는 증거를 발견했다고 주장할 때마다, 당신은 한 가지를 확신해도 된다. 그것은 성경에는 오류가 없다는 것이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는 것이다. 항상 대안적인 해석이 존재한다. 이 경우에도, 그들은 그저 잘못된 장소를 발굴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수년간의 신중한 고고학적, 성경적, 그리고 역사적 조사 끝에 성경연구회(ABR,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는 이들 과학자들이 실제로 엄청난 실수를 저질렀음을 발견했다.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 박사의 지휘아래 ABR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9마일 (14.5km) 떨어진 키르벳 엘-마카티르(Khirbet el-Maqatir)라는 대안적 장소를 발견했다.[4] 그곳의 지리는 성경의 기록과 매우 잘 맞아떨어졌으며, 이에 ABR은 1995년부터 고고학적 발굴을 시작했다.

여호수아 7~8장은 많은 자세한 사항들을 기록해놓고 있었고, ABR은 그것들 중 많은 것들을 입증할 수 있었다. 열 시즌 이상의 발굴 후에[6], 그들은 잃어버린 도시 아이를 발견했다는 설득력 있는 이유들을 제시했다. 그리고 그들은 성경 기록을 확증하는 증거들을 발견했다고 믿었다. 키르벳 엘-마카티르는 성경 본문이 요구하는 모든 사항들에 부합하고 있었다. 다음은 그 이유들이다 :


1. 아이의 언덕 북쪽

여호수아의 군대는 아이 북쪽에 진을 쳤다. ”그와 함께 한 군사가 다 올라가서 그 성읍 앞에 가까이 이르러 아이 북쪽에 진 치니 그와 아이 사이에는 한 골짜기가 있더라 그가 약 오천 명을 택하여 성읍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시키니 이와 같이 성읍 북쪽에는 온 군대가 있고 성읍 서쪽에는 복병이 있었더라 여호수아가 그 밤에 골짜기 가운데로 들어가니” (수 8:11~13). 그 장소 북쪽에는 제벨 아부 암마르(Jebel Abu Ammar)라는 언덕이 있다. 그것은 지역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며, 군사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매우 훌륭한 전술적 위치를 제공한다.


2. 북쪽을 향한 요새의 정문

여호수아가 그의 군대와 함께 아이에 도착했을 때, 그는 아이 앞에, 그 북쪽에 진을 쳤다.(수 8:11). 그 도시의 '앞”은 성문이 있는 벽이었을 것이다. 1995년에 ABR은 도시의 북쪽에서 성문의 흔적을 발견했고, 그것은 이곳이 아이였다는 매우 중요한 요구사항을 충족시켰던 것이다. ABR 팀은 또한 문설주를 이루었던 소켓 돌(socket stones)도 발견했다.


3. 매복부대가 숨을만한 곳

여호수아 7~8장을 잘 읽어보면 하나님이 여호수아에게 군대를 나누라고 하시는 것을 보게 된다.(수 8:2). 여호수아는 이에 순종하여 서쪽에 매복부대를 준비시킨다. ”그들을 보내매 그들이 매복할 곳으로 가서 아이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였고... 그가 약 오천 명을 택하여 성읍 서쪽 벧엘과 아이 사이에 매복시키니”(수 8:9,12). 따라서 아이는 매복하여 공격을 준비하되 눈에 띄지 않을만한 곳을 갖추고 있어야만 한다. 마카티르의 서쪽에는 '와디 쉬반(Wadi Sheban)'이라는 매우 깊은 골짜기가 있다.[7] 그 골짜기는 아이에서 가까울 뿐만 아니라, 여호수아의 매복부대가 쉽게 숨을 수 있을 만큼 깊다.


4. 고고학적 증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15세기 말경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아이는 이미 점령되어 있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비슷한 시기로 추정되는 도자기를 발견하는 것이다. ABR은 여호수아 시대와 같은 시기로 추정되는 저장 항아리, 항아리 가장자리, 물매 돌(sling stones), 그리고 다른 유물들을 발굴했다.[8] 도시의 서쪽 벽은 드러났고, 4m(12 feet) 두께였다. 벽의 규모와 스타일, 그리고 벽 가까이 있던 도자기들은 여호수아 시대와 일치했다.


5. 아이에서의 여자

군사적 요새에 여자들이 사는 것이 정상적이지 않았음에도, 여호수아 8:25절은 여자들이 거기에 살았음을 보여준다. ”그 날에 엎드러진 아이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만 이천 명이라”(수 8:25). 2009년에 우리 팀은 성문 근처에서 갓난아기의 유골을 발견했다. 그 아이는 거의 태어나자마자 죽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그녀는 항아리에 넣어졌는데, 이는 의식적인 매장행위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항아리는 여호수아의 정복 직전의 시대로 연대가 평가되었고, 이것은 아이에 여성들이 있었음을 확인해주는 것이었다.


6. 화재의 증거

여호수아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의 세 도시인 하솔(Hazor), 여리고(Jericho), 아이(Ai)를 불태웠음을 기록하고 있다.[9]  ”...복병이 그들의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으로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본즉 그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은 것이 보이니...”(수 8:19~20). 마카티르에서, 우리는 불에 의한 재 층, 가열된(소성) 암반, 불에 탄 돌, 불에 다시 탄 도자기 등과 같은 화재에 대한 증거를 발견했다. 그 시대의 도자기(pottery)는 일반적으로 가마에서 구워졌다. 도자기가 두 번째로 (도시에 화재가 발생했던 것과 같은) 강한 열에 노출되면, 도자기는 콘크리트처럼 극도로 단단해진다. ABR 팀은 그 장소에서 여호수아 시기의 재가열 된 도자기들을 대량으로 발견했다.


7. 기념비로서 세워진 수도원?

비잔틴(ca. AD 324-640) 사람들은 성경의 사건들이 일어났던 곳으로 자신들이 믿고 있는 장소에 교회와 수도원을 세우는 것으로 유명하다. 마카티르의 언덕 정상에는, 여호수아 7~8장의 중요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해 지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비잔틴 수도원이 있다.[10]


8. 기타 증거들

성경은 아이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들에 대해 기타 여러 가지 요구사항들을 제시하고 있다. 도시는 (1)기브온보다 작았으며(수 10:2), (2)벧아웬 곁에 있었고(수 7:2), (3)벧엘의 동쪽이었고(수 7:2), (4)벧엘 곁이었고(수 12:9), (5)오늘날까지 황폐해있었고(수 8:28), (6)아이의 북쪽에 얕은 골짜기가 있었고, 아이의 왕이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의 이동을 관측할 수 있었다.(수 8:13~14). 이러한 기준들은 기타 아이의 후보가 될 법한 곳들을 심히 제한하는 것으로, 그곳이 강력한 후보지임을 가리킨다.[11]


이런 흥분되는 지리학적, 고고학적 발견들은 신실한 크리스천들이 이미 알고 있던 것, 즉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기록된 모든 것들이 신뢰할만한 것이라는 사실을 확증해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로, 우리로 하여금 고대의 유적들을 발견하게 하시고, 성경의 말씀이 썩지 아니할 하나님의 정확 무오한 계시의 말씀임을 확인하도록 허락하신 것을 찬양한다.

ABR은 주님의 뜻대로 더 많은 증거들을 찾아내기 위해서, 마카티르에서 매년 발굴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봉사자들이 발굴에 참여해준다면, 환영할 것이다. 그리고 어떠한 발굴 경험이 없어도 참여하실 수 있다. 웹사이트 www.Maqatir.com를 방문하셔서 더 자세한 정보를 얻으시고, 이스라엘에서 인생의 한번 뿐인 경험을 누리실 수 있기를 바란다.



Footnotes
1.English Bibles call Ai a 'city.” The English term can be misleading because of our modern usage. The Hebrew term, ‘îr, עִיר has a very wide range of meaning, so 'fortress” is applicable and fits the biblical and archaeological context well.
2.Et-Tell means 'the ruin.” This site was abandoned just before the time of Abraham and was unoccupied at the time of Joshua. It was probably the 'Ai” recorded in Genesis 12:8, so in some ways, the error itself was understandable. The transferring of the name 'Ai” to Khirbet el-Maqatir would not be an unusual scenario, as it is only 6/10 miles west of et-Tell.
3.Joseph A. Callaway, 'Was My Excavation of Ai Worthwhile?”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1 (1985): 68.
4.This Arabic name is pronounced 'Kir-bit” 'El” 'Mah-Kah-Tir.” A 'khirbet” is typically a shallow site where bedrock is reached quickly during excavations. A 'tell” is usually much deeper, with many layers of occupation, such as Tell Jericho.
5.ABR’s extensive research, led by Dr. Bryant Wood, can be found at www.BibleArchaeology.org.
6.ABR dug at Maqatir from 1995–2000 but because of political turmoil in Israel was unable to return again until 2009.
7.A wadi is a dried-up channel or valley where a river or stream once ran.
8.Extensive analysis of the pottery found at Maqatir is found in: Bryant G. Wood, 'The Search for Joshua’s Ai” in Critical Issues in Early Israelite History, eds. Richard S. Hess, Gerald A. Klingbeil, and Paul J. Ray, Jr. (Winona Lake, Indiana: Eisenbrauns, 2008), pp. 205–240.
9.Archaeological excavations at Hazor (Joshua 11:10–11) and Jericho (Joshua 6:21–24) have revealed evidence for massive destructions by fire, both of which can be dated to the time of Joshua. Douglas Petrovich, 'The Dating of Hazor’s Destruction in Joshua 11 via Biblical, Archaeological, and Epigraphical Evidence,” Journal of the Evangelical Theological Society 51.3 (Sept. 2008): 489–512. Bryant G. Wood, 'Did the Israelites Conquer Jericho? A New Look at the Archaeological Evidence,”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6.2 (March/April 1990): 44–58.
10.The monastery may instead commemorate Genesis 12:8, but we cannot be certain. 'From there [Abraham] moved to the hill country on the east of Bethel and pitched his tent, with Bethel on the west and Ai on the east. And there he built an altar to the Lord and called upon the name of the Lord” (ESV). The 'Ai” of Abraham’s day was probably et-Tell, as noted in footnote 2.
11.For extensive details, see http://www.biblearchaeology.org/file.axd?file=The+Search+for+Joshuas+Ai.pdf

*Henry B. Smith Jr. earned his MA degree in theology with an emphasis on apologetics from Trinity Seminary in Indiana. He is the Director of Development for the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and is currently enrolled in the MAR program at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관련기사 : 벧엘과 아이 (2013. 8. 15. 쿠키뉴스)
http://news.kukinews.com/article/view.asp?page=1&gCode=kmi&arcid=0007466532&cp=nv


번역 - 최형원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8/n3/getting-archaeology-right-at-ai 

출처 - Answers, 2013. 6. 16.

미디어위원회
2019-09-16

바빌로니아 점토판에 성경 속 인물이 언급되어 있었다. 

: 느부갓네살 왕의 환관장 살스김의 이름이 새겨진 점토판의 발견 

(Archaeology : Babylonian Clay Tablet Mentions Biblical Name)

David F. Coppedge


      예레미야(Jeremiah)는 환관장 살스김(Nebo-Sarsekim)과 느부갓네살(Nebuchadnezzar)왕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빌로니아의 기자도 그렇게 언급하고 있었다. The Times(2007. 7. 11) 지는 ”대영박물관(British Museum)은 어제 소장하고 있던 한 점토판(clay tablet)에서 성경적 고고학의 커다란 발전을 가져올 한 발견을 하였는데, 이것은 구약 성경의 정확성에 대한 극적인 증거(dramatic proof of the accuracy of the Old Testament)가 되고 있다.”라고 보도하였다. Telegraph(2007. 7. 11) 지는 그것을 ”환상적이며, 세계적인 발견(a fantastic discovery, world-class find)”으로 불렀다. 그리고 사진과 작은 점토판의 전체 번역문을 게재하고 있었다. 


바벨론의 위대한 왕 느부갓네살은 성경 외의 기록에서도 알려져 왔다. 그러나 환관장 살스김은 아직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그는 예레미야 39:3절에서, 바벨론에 의해 BC 586년 예루살렘성이 함락될 때에 느부갓네살의 각료 중 한 사람으로 언급되어져 있었다. 예레미야는 그 사건의 목격자였다. 이제 같은 이름이 시파르(Sippar, 바그다드에서 1.6km 떨어진 장소)에서 발굴된 한 점토판에서 해독되어졌던 것이다. 그곳은 바벨론 사람들의 거대한 태양 사원(sun temple)이 있던 곳이다. 이 점토판은 예루살렘성이 포위되기 10년 전에(BC 595년) 수메르 설형문자(cuneiform script)로 쓰여진 것으로, 느부갓네살 왕의 환관장인 살스김이 바벨론 사원에 금을 기부했다고 기록하고 있었다.

대영박물관은 이 작은 점토판을 1920년에 소장하게 되었지만, 그것은 지금까지 번역되지 못했었다. 설형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학자들 중 한 사람인 오스트리아 비엔나 대학의 미카엘 유르사(Michael Jursa) 박사는 대영박물관을 연구 여행 중에 점토판들을 번역하다가 이러한 발견을 하게 되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 바벨론 사원에 일상적인 기부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정확한 날짜와 함께 기록하고 있는 이러한 점토판을 발견한 것은 매우 놀랄만한 일입니다” 그가 말했다. 대영박물관의 어빙 핀켈(Irving Finkel)은 덧붙였다. ”만약 살스김이 실제로 존재하였다면, 구약성경에 기록된 다른 작은 인물들도 실제로 존재하지 않았겠는가? 구약성경에 가볍게 기록된 세부적인 사항들도 정확한 사실임이 밝혀진 것이다. 나는 이것이 예레미야서 전체 기록에 대한 새로운 종류의 강력한 신뢰성을 부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이야기는 토드 보렌(Todd Bolen)의 Bible Places 블로그에서도 발견된다. 보렌은 성경 외의 출처에서 기록된 성경 인물들에 대한 목록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이제 그는 또 하나의 인물을 추가할 수 있게 되었다.



토드 보렌은 타임지가 ”성경의 이야기는 모두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라는 한 학자의 말을 인용한 것을 불쾌하게 생각하고 있다. 성경의 이야기는 조금도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고 그는 반박했다. 증거가 점점 더 발견되면 될수록, 자유주의적 회의론자들의 비판은 점점 더 근거를 잃어가고 있다. 지금은 예레미야서를 다시 읽어볼 좋은 시점인 것 같다.

구약성경의 이야기는 역사(history)라는 느낌을 주고 있다. 확실히 거기에는 모험, 음모, 관계, 업적, 영웅들, 악인들에 관한 위대한 이야기들이 있다. 그것은 꾸며서 만들어진 이야기들이 아니다. 등장하는 상세한 내용(이름들, 장소들, 날짜들, 사건들...)들의 양은 꾸며낸 이야기에서 예상되는 것보다 훨씬 많고 방대하다. 기록된 세부적 사항들은 실제 일어났던 진정한 사실들을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어, 역대상에 기록된 다윗의 고관들, 제사장들, 관련인물들의 목록을 보라). 어떠한 독자도 이것을 꾸며낸 것으로 보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공식적인 문서로 보이며 그렇게 생각되고 있다.


성경에 기록된 이름들은 이집트, 모압, 바벨론, 이스라엘의 비문(inscriptions)들에서 기록되어 있음이 밝혀져 왔다. 고려해야할 또 하나의 흥미로운 점은 성경은 영웅들의 모든 인간적인 약점들까지도 기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외의 다른 왕국들의 비문들은 대부분 그들의 승리를 과장하고, 그들의 낭패를 지워버리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지 않다. 심지어 다윗과 솔로몬의 범죄와 모든 추함까지도, 그들의 승리와 위대함 바로 다음에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기록의 상세함과 고고학적 증거들을 고려해볼 때, 이것은 고대의 기록에서는 전례가 없는 것이다    

박물관 구석의 먼지 속에 놓여있던 한 점토판에 관한 오늘의 이 뉴스는, 성경이 실제 사람들과 실제 사건들에 대한 실제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증거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어떠한 고대의 경전도 이와 같은 내부적 외부적으로 확인된 증거들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이스라엘과 주변 왕국들은 수없이 약탈되고 파괴되었다. 따라서 증거들은 흩어졌고, 단편적이라는 것을 이해해야만 한다. 사해사본(Dead Sea Scrolls), 시내사본(Codex Sinaiticus), 모압석비(Moabite Stone, 금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되어 유목민들에 의해 거의 파괴됨) 등과 같은 뜻하지 않은 발견들을 생각해보라. 많은 유물들이 먼지 속에 숨겨져 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믿는 정직한 탐구자들에게 이것은 강한 신뢰성을 주기에 충분하다.


성경 고고학에 대한 또 다른 연구인, 알란 밀라드(Alan Millard) 박사의 솔로몬 왕(King Solomon)의 부에 관한 역사적 고고학적 사례에 관한 리뷰 글들을 읽어보라.(02/09/2007, 08/09/2005). 솔로몬은 예레미아 보다 360년 이전에 살았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갈수록, 더 많은 증거의 조각들이 발견되고 있다. 그런데 왜 성경은 우선적인 증거로서 간주되어지지 않는가? 성경의 기록은 시대들과 맞아 떨어지며,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물리적 증거들과도 일치한다. 밀라드는 비판가들의 주장들이 왜 학술적인 것이 아니라, 편견에 의한 것인지 그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성경 고고학에 대해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한 좋은 개관 글은 랜달 프라이스(Randall Price)의 ”돌들이 소리 지르고 있다(The Stones Cry Out1997)”이다. (참조. 누가복음 19:40). 성경을 확증하는 흥미로운 많은 유물들이 지난 10년 동안에 새롭게 발굴되어지고 있다. 고고학적 조각들은 완벽히 맞아 떨어지고 있고, 이제 성경비판가를 긴 침묵에 빠져들고 있다. 아직도 대영박물관의 어두운 선반 위에는 번역되지 않은 130,000 개의 점토판들이 더 많은 발견들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참조 : 예레미야의 인물, 대영박물관 소장품에서 발견 (2007. 7. 13. 크리스천투데이)
http://www.chtoday.co.kr/view.htm?id=186444

Tablet Is 'Proof' for Jeremiah Passage (2007. 7. 12. Christianity Today) 

https://www.christianitytoday.com/ct/2007/julyweb-only/128-41.0.html#other

New archaeological find affirms Old Testament historicity : A clay tablet with details of one of Nebuchadnezzar’s court officials supports the historicity of the book of Jeremiah.  

http://www.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255

Evidentialism–the Bible and Assyrian chronology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02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7/07/archaeology_babylonian_clay_tablet_mentions_biblical_name/

출처 - CEH, 2007. 7. 11.

미디어위원회
2019-09-16

성경 속 이름의 인장이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 느헤미야에 기록된 데마의 인장은 성경의 고고학적 정확성을 입증하였다.

 (Bible Name Found on Jerusalem Artifact)

David F. Coppedge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돌 인장(stone seal)에 구약 성경 속에 언급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것은 성경의 고고학적 정확성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발견이 되고 있다.


예루살렘 포스트(Jerusalem Post, 2008. 1. 17. 클릭하면 인장의 사진을 볼 수 있다) 지에 의하면, 고고학자 에일랏 마자르(Eilat Mazar) 박사가 이끄는 발굴 팀은(그녀는 느헤미야의 성벽 발굴도 이끌었다.), 예루살렘의 성전산(Temple Mount) 남쪽 구시가(Old City)의 오물성문(Dung Gate) 근처 성벽 바로 바깥쪽에서 '데마(Temech)”이라는 이름이 새겨진 검은 색의 돌 인장(2.1×1.8cm)을 발굴하였는데, 그 인장은 BC 538-445 년 사이의 것으로 연대가 평가되었다는 것이다. 데마라는 이름은 특별히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 갔다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제1성전(First Temple, 솔로몬의 성전)의 재건에 참여 했던 가계들 중 하나로서, 구약 성경 느헤미야서(느헤미야 7:55, 에스라 2:53)에 언급되어 있다. 데마의 가계는 BC 586년에 바벨론(바빌로니아)으로 끌려갔고, 느헤미야와 에스라서에 기록된 것과 같이 후에 귀환하게 되었다. 그의 인장은 바벨론에서 구입하여 예루살렘으로 가져왔을 수 있다. 또한 Bible Places(2008. 1. 17)의 블로그에도 이 발견이 언급되어 있다.


그러나 인장에는 바빌로니아 종교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이는 ‘이교적 장면(cultic scene)’이 새겨져 있었다. 인장에는 두 명의 턱수염을 기른 사제들이 향을 피우는 제단 앞에 서서, 바빌로니아의 주요 신인 ‘신(Sin)’의 상징물 초승달(crescent moon, 인장 가장 위쪽에 새겨져 있음)에 경배하고 있는 모습이 새겨져 있었다. '데마(Temech)”라는 이름은 아래쪽에 새겨져 있었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 바빌로니아 종교와 혼합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유대인들이 바빌로니아의 신이 문양으로 새겨져 있는 인장을 자신의 인장으로 사용하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고 마자르는 그 기사에서 말했다. 우리는 에스라와 느헤미야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교도의 문화와 생활습관에서 돌이키도록 여러 번 질책 받았음을 알고 있다.


마자르는 발견의 중요성을 논평하면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데마 가계의 인장은 고고학과 성경 기록 사이에 직접적인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성경에 언급된 가계들이 실제로 존재했었음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들은 고고학적 발견들이 보여주고 있는 것처럼, 성경 기록의 신뢰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고고학적 발견에 뒤이은 발견들은 성경의 역사적 기록들이 정확하며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은 성경 기록이 고고학적 발견들과 모순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단 하나의 발견이 아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이 발견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 있다. 시대마다 그 시대의 유행하는 우상들을 제거해버리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래의 역사학자들이 2008년 교회의 모습들에서 어떠한 혼합된 모습들을 발견할지 궁금하다. 당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물건들에서 우상의 상징물들은 없는가? 팝스타, 해리 포터, 외계인, 다른 비기독교적 상징물들이 당신의 액세서리나 소장품들에 새겨져 있지는 않은가? 이러한 것들이 미래의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발굴된다면, 그들은 무엇이라고 말할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바빌로니아의 초승달 신이 오늘날에는 다윈(Darwin)이라는 것이다.

 


*참조 : 성경 속 인물들의 인장에 관한 이야기들은 다음을 참조하세요.

Seal Controversy: From Temech to Shlomit (2008. 1. 30. Biblical Archaeology Review)

https://www.biblicalarchaeology.org/scholars-study/seal-controversy-from-temech-to-shlomit/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v.info/2008/01/bible_name_found_on_jerusalem_artifact/

          https://answersingenesis.org/archaeology/old-testament-evidence-on-jerusalem-seal/

출처 - CEH, 2008. 1. 17.

미디어위원회
2019-09-16

제1성전 시대의 저수조가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Jerusalem Cistern Found from First Temple Era)

by David F. Coppedge


       예루살렘의 성전 산(Temple Mount) 근처에서 한 거대한 저수조(cistern)가 솔로몬 성전 단지(Solomon’s Temple complex)의 일부로써 발견되었다.

한 발굴팀은 다윗의 도시(City of David)로부터 성전산으로 통과하는 거리(cardo, street)를 발굴하는 동안, 거대한 저수조를 발견하고, 안으로 들어가 탐사할 수 있었다. 이 저수조의 연대는 새겨져 있는 비문과 사용된 석고의 유형에 기초하여 솔로몬 시대로 평가되었다. 그리고 이 사실은 제사장들과 참배객들이 성전에서 필요한 다량의 물을 어디서 얻을 수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이 발견은 Jerusalem Post (2012. 9. 6) 지에서 보도되었다. 짧은 YouTube 동영상은 거대한 물 저장고 내부로 들어가는 탐사자들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Live Science 지와 Bible Places Blog도 그 발견을 보도하고 있었다.


이 발견은 물의 조달 문제를 해결해주었다. 역사가들은 예루살렘의 유일한 물 공급처는 성전으로부터 약 800m 떨어진 곳에 있는 기혼샘(Gihon Spring)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물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많은 수의 당나귀를 이용한 힘든 운반이 요구된다. 비가 올 때 성전에 인접한 티로포에온 골짜기(Tyropoean Valley)에 흐르는 물을 가두어 저장함으로써, 이 저수조는 제사장들이 희생제사를 드릴 때에 사용되는 많은 양의 물과, 그리고 절기에 성전을 방문하는 많은 참배객들이 마시는 물을 공급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한 전쟁에서 포위되었을 동안 도시를 보호해줄 수도 있었다.         


발견자들 중 한 사람은 그 발견에 대해 황홀해했다. ”예루살렘에 이와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우리가 제1성전 시대에 예루살렘에서 한 거대한 저수조와 그 옆에 작은 두 개의 저수조를 만난 것은 처음입니다. 19세기 이후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지역을 발굴해왔지만, 이와 같은 것은 결코 발견한 적이 없었습니다.”



고고학은 일종의 지적설계 과학이다. 발굴자들은 지성(intelligence)의 흔적, 즉 유물, 비문, 또는 의도적인 특징을 갖고 있는 기타 유물들을 찾고 있다. 지적 존재는 어떤 목적을 위해서 자연 물질들을 조직하고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고고학에서 그것을 보고 있다. 우리는 살아있는 세포(living cells)에서 유사한 목적의 흔적을 볼 수 있다. 덧붙여서, 고고학자들은 예리한 관찰자이다. 그들은 단지 컴퓨터로 모델 작업만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꺼내고 발굴하고 살펴보고 조사한다.


또한 이 특별한 발견은 성경의 역사에 대한 '최소주의자(minimalist)'들의 해석과는 다르게, 솔로몬 시대의 사람들은 암석을 깊이 파내어 성전에 필요한 물을 저장할 수 있을 정도로 고도로 지적이었음을 보여준다. 다윗과 솔로몬은 단순한 유목민의 족장이었다는 주장과는 거리가 멀게, 우수한 도시계획가요 건축가였다. 이 저수조와 전체 성전산 단지에 대한 계획은 실제 건축이 시작되기 오래 전에 이루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다윗 왕은 죽기 전에 성전 건축에 필요한 많은 물품들(돌, 철, 놋, 백향목... 등)을 준비했다고 기록하고 있다(역대상 22장). 이 저수조는 그들의 공학적 기술 수준과, 성경 기록의 역사적 정확성을 입증하는 또 하나의 증거판인 것이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 :

The Forgotten Discovery: A First Temple Era Water Cistern near the Temple Mount in Jerusalem (2019. 8. 8. Jerusalem Center for Public Affairs) 

https://jcpa.org/the-forgotten-discovery-a-secret-water-cistern-from-the-first-temple-era-at-the-foot-of-the-temple-mount/

Cistern dated to First Temple period found in Jerusalem (2012. 9. 6. The Times of Israel)

https://www.timesofisrael.com/cistern-dated-to-first-temple-period-discovered-in-jerusalem/

Discovery of the First Temple Cistern (youtube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6xlFWIqXDgQ


*관련기사 : 예루살렘서 3000년 전 ‘고대 저수지’ 발견 (2012. 9. 11. 나우뉴스)
http://nownews.seoul.co.kr/news/newsView.php?id=2012091160100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crev.info/2012/09/jerusalem-cistern-found-from-first-temple-era/ 

출처 - CEH, 2012. 9. 10.

미디어위원회
2018-03-29

인도의 가장 오래된 언어는 단지 4500년 되었다. 

(Oldest Language in India Only 4,500 Years Old)

David F. Coppedge 


     현대 인류가 185,000년 전 아프리카를 떠났다면, 왜 인도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는 그 시간의 97%가 지난 시점인 4500년 전이 되어서야 시작됐는가?

인간의 언어(human language) 중에서 가장 오래된 언어는 얼마의 나이를 갖고 있을까? 그것은 말하기 힘들다. 맥스 플랑크 연구소(Max Planck Institute. 2018. 3. 21)의 과학자들은 언어 분석과 통계 기법을 사용해서, 인도 남부의 드라비다어족(Dravidian family of languages)의 언어가 시작된 연대를 4,500년 전으로 추정했다. Phys.org(2018. 3. 20) 지는 인도아리아족이 인도에 도착하기 1000년 전에, 드라비다인(Dravidians)이 존재했었다고 보고하고 있었다. 고대의 어족(language family)에서 파생된 80개의 지방어(dialects)들은 오늘날에도 인도에서 약 2억2천만 명의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다.

”드라비다어(Dravidian language)에 대한 연구는 유라시아(Eurasia)의 선사시대를 이해하는 데 중요하다. 그 언어는 다른 언어 그룹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맥스 플랑크 인류과학 연구소의 Annemarie Verkerk는 설명한다. 드라비다어의 지리적 기원이나, 정확하게 언제 확산되었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연구 공동체의 합의된 의견은 드라비다인들은 인도 대륙의 원주민이며, 인도에 약 3,500년 전 인도아리아족(Indo-Aryans, 인도-유럽어를 사용)이 도착하기 이전에 이미 존재했다는 것이다. 드라비다어가 서구에 오늘날보다 훨씬 더 널리 퍼졌을 가능성이 있다.

언어의 시작에 대한 평가는 이전의 생각보다 더 내려가고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4500년을 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난다.

연구자들은 발전된 통계적 기법을 사용하여, 약 4,000~4,500년 경의 드라비다어족의 하위 그룹들과 연대를 추정했다. 이 추정은 이전 언어학 연구들이 제안했던 것과 일치하지만, 보다 강력한 결과를 보여준다. 왜냐하면 이 연구에서 시험됐던 진화의 여러 통계적 모델들과 일치되는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연대는 정확하게 이 시기에 북부, 중부, 남부로 갈라졌던 드라비다인의 분산을 추정하는 고고학적 추론과, 고고학적 기록에서 분명히 드러난 문화적 발전의 시작과 잘 일치한다.

Royal Society Open Science(2018. 3. 21) 지에 발표된 이 논문은 6,000~6,500년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드라비다어의 기원에 대한 가장 지지되는 연대는 4,500년 전이라고 결론짓고 있었다. 이 새로운 연대는 이전 추정치인 6,000년, 또는 13,000년 보다 젊다. 어느 경우이든, 이 어족의 시작 연대는 현생인류가 아시아에 존재해왔었다는 진화론적 추정 연대보다 훨씬 젊다.


BBC News(2018. 1. 25)는 우리 종(Homo sapiens)이 생각보다 일찍 아프리카를 떠났다고 지난 1월에 말했었다. 팔랍 고쉬(Pallab Ghosh)는 이렇게 썼었다 :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새로운 화석 연대측정 결과, 우리 종(Homo sapiens)은 이전 증거보다 약 8만 년 더 초기인, 185,000년 전에 아프리카를 떠나 살고 있었다...

텔아비브 대학(Tel Aviv University)의 연구자는 설명했다 : ”우리 자신의 종뿐만 아니라, 그 당시 아프리카 밖에 살았던 다른 모든 종들을 포함해서, 인간 진화론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을 다시 써야한다.”

이 연구에 참여하지 않았던, 런던 자연사박물관의 크리스 스트링거(Chris Stringer) 교수는 ”이 발견은 아프리카 밖에서 현생인류에 대한 오랫동안 확립된 130,000년의 한계를 깨뜨렸다...”고 말했다.

사실 연구자들은 현생인류의 더 오래된 화석도 아시아에서 발견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기사는 인간이 이주한 연대를 25만 년 전, 또는 그 이상으로 끌어내리고 있다. 고쉬는 모로코에서 발견됐던 현생인류 화석은 315,000년 전의 것이었음을 독자들에게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그는 이렇게 끝을 맺고 있었다 :

이 연대는 195,000년 전으로 추정하는 에디오피아의 오모 유골(Omo remains)과 같은 화석과, 유전자 연구에 기초하여, 인간 종의 기원에 대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20만 년보다 훨씬 초기의 연대이다. 그리고 미래의 발견은 이 연대를 더욱 끌어내릴 수도 있다.

분명히 이 사람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했는지는, 발견되는 뼈들을 통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해부학적으로 우리와 동일하며, 동일한 크기의 뇌를 가졌던(네안데르탈인은 현생인류보다 뇌 크기가 더 큰 경우도 있음) 인류가 295,000 년 동안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었다고 가정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처럼 보인다. 특히 그들이 대륙을 넘어 이동할 수 있는 지능을 가지고 있었는데 말이다.

드라비다어족의 시작 연대는 진화론자들의 믿음에 극도의 위기감을 조성하고 있었다. 진화론자들은 우리와 동등한 인류가 30만 년 전에 ”진화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그 후에 유럽과 아시아로 이주했다는 것이다. 또한 현생인류가 거기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네안데르탈인들과 교배하는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가장 오래된 언어 그룹 중 하나가 불과 4,500년 전에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와 동일했던 사람들이 295,000년 동안은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그들은 서로 말을 할 수 없었고,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는가? 왜 그들은 도시를 건설하지 않았는가? 왜 그들은 그 오랜 시간 동굴에서 살았는가? 왜 그렇게도 늦게 첫 번째 문명이 시작되었는가?



드라비다어족의 시작 연대는 진화론적 연대에 의문을 제기한다. 진화론에 의하면, 침팬지에서 사람이 되는 데에 약 6백만 년이 필요하다. CEH가 18년 동안 보고해왔던 것처럼, 진화론자들이 주장해왔던 연대들은 끊임없이 수정되고 번복되어왔다. 새로운 발견이 있을 때마다 인간의 진화 이야기는 모두 다시 써야하는 일들이 발생하곤 했다. 이제 진화론이 잘못됐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가? 오랜 연대가 틀렸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수는 없는가? 수십 년 동안 반복적으로 실패해온 이론을 왜 우리는 계속 들어야만 하는 것인가?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드라비다어족의 연대에 대해서 놀라지 않는다. 그러한 연대는 바벨탑에서의 인류가 분산됐던 추정 연대와 매우 유사하다. 바벨탑 사건 직후에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그룹을 이루어 모든 방향으로 퍼져 나갔다는 생각은 합리적이지 않겠는가? 물론 그랬다. 그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성경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창세기 9~11장과 다음 12장은 성경 밖의 역사적 증거들과 매끄럽게 연결된다). 분명히 어떤 그룹의 사람들이 바벨로부터 인도 대륙으로 이주해 왔다. 그곳에서 그들은 적합한 서식지를 발견하고, 그들의 공통 언어를 사용하면서, 그 지역에서 번성하기 시작했다. 다른 이들은 더 동쪽으로 이동했고, 중국에 도착했고, 세계의 다른 지역들로 퍼져나갔다.


언어는 자연선택이 아닌, 지적설계에 의해서 발전한다. 일단 공통 언어가 부여되면, 사람들은 특정 단어의 뜻을 결정하고, 편의를 위해 수정하거나, 새로운 상황에 맞도록 문법 규칙을 결정할 수 있다. 서식지에서 격리된 그룹들은 지방어를 개발했을 것이며, 지방어는 시간이 갈수록 차이가 벌어졌을 것이다. 그것이 몇 세기 만에 미국의 영어와 영국의 영어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이었다. 오늘날 다양한 드라비다어와 지방어들은 바벨 이후 그 지역에 정착했던 원래의 집단이 있었음을 가리킨다.


물론 이것은 185,000년, 250,000년, 315,000년, 그리고 모이보이들이 추정하는 많은 진화론적 연대들이 모두 공상 소설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한 연대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다. 인류 역사는 단지 수천 년에 불과하다. 창조주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었는지를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다. 증거들은 그것과 일치하는 것이다.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rev.info/2018/03/oldest-language-india-4500-years-old/ 

출처 - CEH, 2018. 3.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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