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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07-12-20

인류와 언어의 기원

이은일 


서론

창세기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심판주이심을 너무도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스스로 계시한 창세기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인류 역사가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창조하신 것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는 인류는 진화의 과정을 통해 하등동물로부터 생겨난 존재라고 주장합니다. 생물학에서 나온 거짓된 진화론은 인류의 기원도 역사의 시작도 진화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생물체도 진화의 중간단계라고 주장할 수 있는 확실한 화석이 없기 때문에, 진화론자들도 화석을 가지고 진화의 증거를 삼지 않습니다. 도리어 왜 화석에 진화의 증거가 없는지를 설명하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원숭이와 사람의 중간단계의 화석이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이런 식의 표현을 가지고 진화론자들은 트집을 잡기도 합니다. 자신들이 주장하는 것은 사람과 원숭이의 공통 조상이지, 원숭이와 사람의 중간단계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과 원숭이의 공통 조상이라는 개념 자체가 진화가 일어났다는 전제하에서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공통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근거는 사람의 모양과 원숭이의 모양 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원숭이가 사람으로 진화되었다는 말이나, 공통조상을 갖고 있다는 말이나 같은 이야기인데, 마치 진화론자들은 자신들이 대단한 이론을 갖고 있는 것처럼 스스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진정한 인류의 기원과 언어의 기원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1. 인류의 시작에 대한 두 가지 상반된 이론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 1:26). 즉, 사람은 처음부터 지혜롭게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이 얼마나 지혜롭고, 권위가 있는지는 창세기 2장 20절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사람이 이처럼 지혜롭고 권위가 있는 것은 다른 동물들처럼 흙으로만 창조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기가 들어가 창조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창 2:7).  

진화론을 믿으면 사람이 다른 동물들과 차이가 있는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단지 다른 동물들보다 좀 나은 존재일 뿐이며, 만약 인간보다 더 나은 다른 존재가 출현한다면,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다를 바 없는 존재가 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진화론은 인간의 지혜가 도구 때문에 발전되어 생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우연히 도구를 발견하면서 차츰 지혜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지혜가 있어서 도구를 만든 것이 아니라, 도구 때문에 지혜롭게 되었다는 어처구니없는 해석을 합니다. 진화론자들은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른 동물들이 도구를 사용하여 먹이 사냥을 하는 예를 보여줍니다. 원숭이가 풀줄기를 개미집 구멍에 넣고 개미들이 달려 나오는 것을 먹는 것 등을 통해 바로 인간도 원숭이처럼 도구를 우연히 사용하게 되면서 지혜롭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물이 그런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야말로 도구에 의해 지혜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지혜가 도구를 사용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동물조차도 처음부터 지혜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데, 진화론자들은 진화론을 주장하기 위해 동물의 도구와 사람의 도구를 진화의 발전처럼 설명합니다.

반면에 창조론은 처음부터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독특한 존재라는 것을 성경을 통해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과학자의 엄밀한 평가가 없어도 사람과 동물이 얼마나 다른지는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인간만이 직립하여 생활하고 있고, 정보를 축적하여 전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행동할 수 있는 유일한 영적인 존재입니다. 누가 봐도 분명한 것을 진화론자들은 진화의 틀 내에서 모든 것을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에 엉뚱한 주장을 계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2. 인류의 출현 지역은 어디일까?

진화론은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 주장의 근거는 아프리카에서 발견한 '오스트랄로피테쿠스”라는 원숭이 뼈 때문입니다. 이미 화석에 대한 글에서 인류의 조상이라고 주장하는 뼈들은 가짜거나, 원숭이 뼈에 불과한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인류가 여러 군데서 출현하였다고 과거에 주장했었습니다. 자바인 등의 화석을 근거로 여러 종류의 인류가 여러 곳에서 출현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이라고 주장되었던 것들이 거짓으로 밝혀지거나, 원숭이 뼈 또는 다른 동물의 뼈에 불과하다는 것이 밝혀짐으로서, 이제는 인류가 아프리카 한 곳에서 출현하였다는 설을 진화론자들도 대부분 믿게 되었습니다.  

인류의 살았던 흔적들을 살펴보면 인류가 중동지방, 지금 이스라엘이 있는 지역에서 출현하였다는 것은 고고학적으로 분명합니다. 인류의 문명이 이곳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이 문명이 전파되어 이집트, 인도, 중국의 황하문명을 만든다는 것은 일반 역사책에도 분명히 나와 있습니다. 인류가 중동지방으로부터 시작되어 전 세계로 퍼졌다는 것은 성경의 기록과도 일치합니다. 노아 홍수 이후 인류는 중동지방에서 번성하다, 바벨지역에서부터 갑작스럽게 흩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인류는 서서히 이동한 것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이동하여 여러 지역에서 문명의 자취를 남겼습니다. 이런 고고학적 증거들은 성경의 기록과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화론자들은 이런 증거들에 자신들의 가정을 집어넣어 인류가 아프리카에서 출현하여, 그 후 중동지방을 거쳐 전 세계로 퍼졌다고 주장합니다. 원숭이 뼈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집착을 제외하면, 모든 과학적, 역사적, 고고학적 증거들은 성경과 같이 인류의 시작이 중동지방부터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사람들은 처음 어떻게 살았을까?

성경은 사람들이 처음부터 농사도 짓고, 가축도 키우며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의 일이기는 하지만, 아담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개간해야했고 (창 3:17-19), 아담의 아들인 가인도 농사를 지었습니다. 아벨은 양을 키웠습니다. 진화론자들은 이런 성경의 기록을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처음 인간은 동물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농사나 가축을 키울 수 없을 것이고, 동물들처럼 다른 동물을 잡아먹거나, 나무의 열매를 먹는 생활을 먼저 하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다가 우연히 싹이 트는 식물을 발견하고, 도구를 발견하면서 농사를 짓게 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고고학적 자료들은 수렵생활과 농경생활이 지역마다 차이가 있을 뿐 같은 시대에 동시적으로 시작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삭의 아들 야곱과 에서의 경우에서도 농경생활 중심의 사람과 수렵 생활 중심의 사람 모습이 함께 나타나듯이, 인류의 문명은 처음부터 지혜로운 인간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진화론자들은 또한 사람들이 처음은 모계 중심의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동물들처럼 부부관계를 형성하지 않고 성관계를 갖기 때문에 누가 아버지인줄 모르기 때문에 어머니 중심의 삶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동물에 대한 이해도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동물들도 새끼를 낳을 때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처음 사람들은 동물보다 못한 문란한 성 관계를 하였다고 진화론자들은 믿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마조네스와 같은 '여성 중심”의 사회를 발견하면 자신들이 주장하는 원시 모계사회의 원형을 발견했다고 엉뚱한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가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문란한 성관계 때문에 누가 아버지인줄 몰라 형성된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주장을 쉽게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진화론의 영향 때문에 과거는 지금보다 못한 사회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밋이나 그리스 로마의 문명들을 보면서 사람들이 감탄하는 것은 '옛날에 어떻게 이런 문명이 가능한가?”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입니다. 진화론적 역사관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문명과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라고 주장해왔기 때문입니다. 고고학적인 자료들을 보면 지금보다 과거 사람들이 훨씬 지혜로웠고, 더 발전된 문명을 가졌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4대 문명 자체도 현대 과학문명이 이룰 수 없는 놀라운 건축물들을 만들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4대문명 이전에도 발전된 문명의 자취들이 발견됩니다. 이런 문명의 자취들은 진화론적 역사관으로는 해석될 수 없기 때문에, 엉뚱하게 외계인에 의한 문명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성경은 인류의 초기 역사에 매우 발전된 문명을 이루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4장 20-22절은 가인의 후예들이 육축을 시작하고, 음악을 만들고, 청동기 문명을 건설하는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또한 가인 스스로가 거대한 성을 건축하여 가인의 후예들이 사는 도시를 만들었고 (창 4:17), 홍수 이후에는 하늘에 닿는 높은 대를 가진 성을 건축하는 모습이 등장 합니다 (창 11:4). 이집트 문명 등 4대 문명이 발생되기 이전에 놀라운 문명들이 있었고, 이런 문명들이 있었기 때문에 4대 문명이 건설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진화론에 의하면 350만년의 진화를 거쳐 사람다워진 인류가 4대 문명을 건설하였다고 보기 때문에, 4대 문명 이전에 건설된 것으로 밝혀진 문명들은 역사책에 기록되지 못하고 신비로만 남아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창세로부터 사건들을 제대로 기록한 유일한 책이기 때문에, 이런 문명의 자취들을 설명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가인은 누구를 두려워했고, 누구와 결혼하였나?

성경의 기록을 역사적 사실로 믿기 시작하면,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던 많은 거짓들이 드러나고, 과학적 증거들이 성경의 기록과 일치됨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성경이 기록된 그대로 믿기에는 여러 가지 의문들이 생겨나기도 합니다. 대표적인 예 중의 하나가 창세기 4장 14절에 가인이 아벨을 죽인 후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라는 고백입니다. 성경대로라면 아담의 아들들이 가인과 아벨뿐인데, 도대체 가인은 누구를 두려워했다는 것인가라는 의문이 생깁니다. 아담이 있었겠지만 만약 가인이 아담을 두려워했다면 이런 표현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아담은 당시 사람들을 대표하는 사람일 뿐이며, 아담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기 때문에 그 당시 아담의 후손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고 있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얼핏 생각하면 이런 주장이 모든 의문을 풀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해석은 심각한 문제를 낳게 됩니다. 만약 아담과 그 후손 이외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면, 아담의 범죄로 인해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로마서 5장 19절을 통해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하신 말씀처럼 아담 한사람을 통해 모든 인류가 죄인이 되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 한 사람을 통해 모든 인류가 구원받는 것처럼, 아담 한 사람이 모든 인류의 조상이며 죄인들의 조상이 된 것은 성경적으로 분명해 보입니다.

성경의 기록처럼 한 쌍의 부부로부터 모든 인류가 나온 것은 과학적으로도 상당한 근거를 갖고 있습니다. 하와이 대학의 칸 박사 등이 전 세계 147명의 여아에서 추출한 미토콘드리아 DNA를 조사한 결과 이들 모두가 한 여성으로부터 나왔다는 주장을 하였습니다. 이 주장은 진화론적 가정을 믿고 있는 기존 과학자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을 일으켰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기록을 봐서도 그렇고, 논리적으로 생각해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지구 역사에서 어떤 순간 한 쌍의 남녀로부터 인류가 출현한 것은 어떤 방법으로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진화에 의해 한 쌍의 남녀가 출현할 가능성이 없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 밖에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아담 이외 다른 사람도 창조하셨는데 성경에는 대표적으로 아담밖에 나오지 않는 것인가?”라는 질문은 성경적으로도 과학적으로도 맞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유전자 조사에서도, 성경 기록에서도 한 쌍의 부부로부터 모든 인류가 출현하였음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가인은 누구를 두려워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에 답을 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들이 아담의 후손임을 말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선 여성들의 이름은 거의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창세기 5장에 기록된 아담 자손의 계보에 여성의 이름은 나타나고 있지 않습니다. 남성의 경우도 장자 중심으로 기록되어 있지, 모든 아들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지는 않습니다.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때 아담의 자녀들이 몇 명이나 있었는지에 대하여는 알 수 없습니다. 장성한 딸들이 있었을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가인이 결혼하여 자녀를 낳은 것을 보면 더욱 그렇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셋은 죽은 아벨을 대신하여 낳은 아들이고, 아담 후손의 계보에 셋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을 보면 가인이 아벨을 죽였을 당시에 다른 아들이 있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그 후 아담이 자녀를 낳았다는 기록을 통해 셋의 남자 동생들은 많이 생겼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인은 아벨을 죽였을 당시 자신들의 장성한 누이들을 두려워했다는 것인가요? 그럴 수도 있겠지만 성경 말씀을 통해 가인이 두려한 사람은 미래에 만날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4장 14절에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 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 유리방황할 때 누군가 자신을 만나면 자신이 살인자이기 때문에 죽일 것이라고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가인이 살았던 시대와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그 때 당시 모든 사람들이 한 부모로부터 나온 가족들이라는 것입니다. 지금처럼 가족도 있고, 가족이 아닌 사람들도 있을 경우에는 가까운 사람, 먼 사람, 모르는 사람 등의 개념이 있을 수 있지만, 그때 당시 모든 사람들이 한 가족인 상황에서 특별히 가까운 사람, 먼 사람이라는 개념 자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친 동생인 아벨을 가인이 질투 때문에 죽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도 질투와 시기에 의해 사람을 죽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지금도 가족 중에 그런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고 비윤리적인 사건으로 취급될 것입니다. 그때 당시는 모두가 가족이기 때문에 '가까운 사람인데 어떻게 죽일 수 있나?”라는 개념은 없었을 것입니다. 가인의 살인이 엄청난 것은 동생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라 인류 최초의 살인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살인자 가인도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아담을 아버지로 하는 모든 후손들은 살인자 가인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가인은 자신을 만날 자신의 가족들이 - 부모, 형제, 자매, 심지어 앞으로 태어날 형제, 자매들까지도- 살인자를 그만 두지 않을 것이라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가인이 누구와 결혼하였는지도 분명해졌습니다. 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누이들 중 한 사람이 분명합니다. '어떻게 누이와 결혼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은 여러 가족, 민족들과 살고 있는 우리의 개념이고, 그때 당시는 모두가 한 형제 자매였기 때문에 그중에서 서로 사랑하고 결혼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또한 그때 당시는 지금처럼 유전자의 불완전한 부분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 1000살 가까이 살 수 있었던 시대였으므로 - 형제 자매끼리의 결혼이 유전적으로도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담 이후 첫 세대는 형제-자매끼리의 결혼이었지만, 그 다음 세대는 사촌끼리 결혼이 되었을 것이고, 그 다음 세대, 그 다음 세대 등으로 가면서 차츰 결혼 할 수 있는 대상들이 다양해졌을 것입니다.


5. 언어의 기원

아담으로부터 나온 자손들은 크게 셋의 후예들과 가인의 후예들로 나누어졌습니다. 그러나 이들의 언어는 하나였을 것이 분명합니다. 노아 홍수 이후 노아의 후손들도 바벨에서 언어가 갈라지기 전까지 분명히 하나의 언어를 사용하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1장 1절에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이었어라.”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언어는 어디서 왔을까요?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것은 '말씀”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에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언어는 바로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목적은 바로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들과 사랑의 관계를 갖기 위함이셨습니다. 따라서 언어는 처음부터 인간이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도록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반면에 진화론자들은 언어의 기원을 조사하기 위해 동물들의 언어를 연구합니다. 동물들의 언어에서 인류 언어의 초기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진화론을 믿기 때문에 언어도 동물들의 언어가 발전해서 인간의 언어가 되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뒷받침할 과학적 근거는 전혀 없습니다. 단지 진화론적 가정에 의한 해석만이 있을 뿐입니다.

진화론자들 중에도 인류의 언어는 처음에 하나였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류가 한 장소에서 출현하였다고 진화론자들도 믿기 때문이다. 성경을 믿는 우리들도 당연히 성경에 근거하여 인류의 언어가 처음에 하나였다고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하여 정통 언어학자들은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언어의 구조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입니다. 비록 일부 단어들이 여러 언어에서 비슷한 흔적들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말이 속해있는 우랄알타이어 계통의 언어와 영미 언어의 구조는 너무나 다릅니다. 언어의 구조가 다른 것은 방언이 다른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제주도 방언은 너무 달라 같은 우리나라 사람들끼리도 잘 알아듣지 못합니다. 그러나 몇 가지 요령만 있으면 금방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언어의 구조가 다른 것은 단지 단어가 다른 것 뿐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를 배우기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가 단순히 단어만 다른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방식이 다르고, 표현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통 언어학자들은 과거 언어가 하나였다는 주장에 대하여 회의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언어의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과거 언어가 하나였다는 주장은 과학적으로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류가 한 부부로부터 출발하였다는 것은 성경과 과학자료 모두에서 증거하고 있으니 과거 언어는 하나여야만 합니다. 두 가지 과학적인 자료들이 서로 상반된 증거를 보이고 있습니다. 언어의 구조를 봐서는 하나였을 수 없고, 인류가 한 조상으로부터 출발했으니 하나여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 모순은 성경을 통해서만 해결됩니다. 바로 창세기 11장 9절의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라는 말씀입니다. 언어는 처음에 하나였지만, 하나님께서 언어를 다르게 하셨기 때문에 지금 언어의 구조가 그렇게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언어의 구조가 달라진 것은 저절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개입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결론

거짓된 진화론은 사람을 동물의 수준으로 낮추고 있고, 마치 화석을 통해 인류 조상(원인)이 존재하였다는 증거가 있는 것처럼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화석을 통해 진화의 증거가 없다는 것을 진화론자들도 인정하듯이, 이런 원인의 화석이란 멸종된 원숭이 뼈에 불과합니다. 인류의 시작, 언어의 시작, 심지어 언어의 갈라짐까지 모두 하나님이 개입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모든 것을 설명하려는 진화론적 해석은 실제로 나타나는 과학적 증거들이 모순투성이라는 것만을 보여줍니다. 도리어 모든 과학적 증거들은 성경에 기록된 역사적 사실들과 잘 부합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상식으로 갖고 있는 내용 중에 많은 부분들이 진화론적 지식에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성경의 기록이 믿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한 우리들이 창세기 11장까지 나타나 있는 상황과 환경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성경의 기록이 잘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죄가 없던 세상과 죄가 들어온 세상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우리의 지식과 지혜로는 알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나 에덴동산에서 추방된 이후의 세상에 대하여는 우리는 생각보다 많은 것을 화석이나 역사적 자료들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과학적 자료들을 통해 인류의 시작, 언어의 시작, 노아 시대의 홍수, 바벨에서의 흩어짐에 대한 흔적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런 과학적 자료들을 통해 성경의 기록들이 더욱 생생하게 우리에게 다가서게 됩니다. 물론 과학적인 증거가 없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고 따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과학적 증거들을 통해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고, 성경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믿음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참조 : The origins of language: an investigation of various theorie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8_3/j18_3_24-27.pdf

The origin of language and communication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7_3/j17_3_93-101.pdf

The development of languages is nothing like biological evolution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638

미디어위원회
2007-12-04

느헤미야의 성벽이 발견되었다. 

(Nehemiah’s Wall Found)

by David F. Coppedge


      2007년 11월 초, 고고학자 에일랏 마자르(Eilat Mazar)가 발견했던 고대 다윗성(city of David)에 있는 한 오래된 성벽의 잔해는 BC 445년 느헤미야(Nehemiah)에 의해서 지어진 성벽의 잔해였다고(상세한 내용에 대해서는 느헤미야 3-6장을 보라) 그녀는 믿고 있다. 이 내용은 Bible Places 블로그에 보고되었고, 소식은 전하고 있는 The Trumpet(2007. 11. 9)을 링크하여 놓았다.


이제 주류 언론들도 이 이야기를 보도하고 있다. MSNBC(2007. 11. 29)과 다른 뉴스들도 Regan Doherty’s Associated Press의 보도를 전하고 있으며, 토드 보렌(Todd Bolen)은 Bible Places에서 실제 성벽의 근접 사진을 포함하여 부가적인 사진들을 제공하고 있다. Jerusalem Post지(2007. 11. 28)에서는 성벽의 크기를 알 수 있도록 그 벽에 서있는 한 사람의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느헤미야의 성벽이라는 확인은 바빌론 포로기 이후(post-exilic period)로 연대가 평가된 도자기 파편(pottery shards)들에 기초하고 있다. 

구약의 역사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요르단의 아락 엘에미르(Arak el-Emir)에 있는 한 비문(inscription)에 특별히 도비야(Tobiah)가 언급되어 있다는 사실에 매우 흥미를 가질 수 있다. 이 사람은 느헤미야 4장에 기록된 성벽 재건을 방해했던 ”암몬 사람 도비야(Tobiah the Ammonite)”와 동일 인물일지도 모른다. 비문에 대한 사진과 설명은 Bible Places Jordan CD에서 볼 수 있다.   


구약 시대의 고고학과 관련된 최근의 다른 빅 뉴스는 예루살렘 제일사원(First Temple)의 유물들이 성전산(Temple Mount) 위에서 참호를 파고 있던 이슬람교도들에 의해서 발견되었다는 것이다(2007. 10. 23). 이 내용은 역사적 성전산에 대한 세계적 권위를 가진 리트마이어(Dr. Leen Ritmeyer) 박사의 블로그에 게재되어 있다. 토드 보렌은 Bible Places에서 이 이야기에 대한 업데이트 된 내용과 부가적인 링크들을 제공하고 있다. 그는 또한 그 사이트에서 1930년 대에 이슬람 가이드들이 솔로몬 성전(Solomon’s temple)의 존재를 인정했었다는 것을 입증하는 문서들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here)을 클릭하여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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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기념비적인 고고학적 발견들로 인해 흥분되는 시기이다. 그러나 현재 예루살렘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평화 회담에 저당잡혀 있다. 이스라엘 정부는 이들 발견들을 아름다운 고고학적 공원에서 대중들에게 공개하고 있다. 그러나 그 장소가 전적으로 이슬람의 영향아래 들어갔었다면, 팔레스타인이 호의적일 수 있었을까? 그랬다면 성전산, 가자 지구, 헤브론에 대한 그들의 취급이 나빠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평화의 종교(Religion of Peace) 회원들이 오늘날 수단(Sudan)에서 요구하고 있는 것을 당신은 들어보았는가?

이스라엘에 있어서 불안정한 역사는 고고학적 탐사 기회들이 쉽게 날아갈 수도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주요한 발견들이 수십 년 동안 접근이 거부되었던 장소들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있다. 리트마이어는 이것을 직접 경험하였다. 그는 지난 30년 이상 동안 운 좋은 발굴 기회들로부터 수집된 흥미로운 조각난 정보들을 함께 모아 붙이는 작업을 해왔다. 만약 이들 역사적 장소들이 자유롭게 공개되고 공정한 탐사가 이루어진다면, 얼마나 많은 고고학적 발견들이 이루어질 것인지 궁금하다. 이것이 예루살렘과 이라크에, 그리고 고고학적 보물들이 숨겨져 있는 다른 나라들에 평화가 정착되기를 기도하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참조 : Jerusalem Wall from the Time of Nehemiah Discovered (2008. May-June, The Lampstand)

https://thelampstand.com.au/jerusalem-wall-from-the-time-of-nehemiah-discovered/

Discovered : Nehemiah’s Wall (2019. 10. 31. Armstrong Institute of Biblical Archaeology)

https://armstronginstitute.org/204-discovered-nehemiahs-wall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v.info/2007/11/nehemiah146s_wall_found/

출처 - CEH, 2007.11. 30.

미디어위원회
2007-11-12

왕비 이세벨의 고대 인장이 발견되었다.

(Ancient Seal Belonged To Queen Jezebel)

AiG News 


      한 구약 학자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1964 년에 발견되었던 한 고대의 인장(seal)은 악명 높은 왕비 이세벨(Queen Jezebel)의 것으로 확인되었다고, ScienceDaily (2007. 10. 29)가 보도하였다. 

네덜란드 유트레히트 대학(Utrecht University)의 구약(Old Testament) 전문가인 마르조 코펠(Marjo Korpel)은 최근 BC 9세기의 한 인장에 대한 연구를 수행했는데, 그 인장은 아합왕(King Ahab)의 페니키아인 부인 이세벨의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 결과는 Journal for Semitics 지에 게재되었다.

고대 히브리어로 새겨진 ‘yzbl’ 이라는 이름을 포함하고 있는 그 인장은 1964년 나흐만 아비가드(Nahman Avigad)에 의해서 이스라엘에서 발굴되었다. 발견 초기에 그 인장은 이세벨 왕비의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연구자들은 이세벨이라는 같은 이름을 가진 다른 여성의 것일 가능성을 검토하였다.  

코펠은 인장에 새겨져 있는 상징(symbols)들을 분석하였다. 그 표시는 여성의 것일 뿐만이 아니라, 특별히 '왕실 여성 소유자”임을 가리키고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또한 평민들의 인장들과는 같지 않은 이례적으로 커다란 인장의 크기는 왕비 이세벨의 것일 가능성을 지지한다는 것이다.   

코펠은 또한 유사한 도장과의 비교를 통하여, 인장의 깨어져 나간 윗부분 조각에 ”이세벨이 소유주임을 가리키는 이세벨의 정확한 이름 철자를 가리키는” 두 글자가 포함되어져 있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성경은 특별히 이세벨이 편지를 위조하기 위해서 그녀 남편의 인장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을 남기고 있다 :

”그 아내 이세벨이 저에게 이르되 왕이 이제 이스라엘 나라를 다스리시나이까 일어나 식사를 하시고 마음을 즐겁게 하소서 내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리이다 하고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쳐서 그 성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인들에게 보내니” (열왕기상 21:7-8).

ScienceDaily 기사는 이것을 인정하고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이제 그녀 자신의 인장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은 그녀가 아합왕으로부터 독립적으로 일들을 처리할 수 있었음을 가리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성경 열왕기상의 기록과 그 논문에서 묘사하고 있는 그녀의 성격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다.

이것과 같은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의 신뢰성을 결코 부정하지 않으며, 성경의 내용과 독립적으로 확인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것들은 성경이 하늘의 일을 말할 때에도 정확할 뿐만 아니라, 땅의 일들을 말할 때에도 정확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상기시켜주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웹사이트를 참조하세요.

Fit for a Queen : Jezebel’s Royal Seal (Bible History Daily. 2008. 3. 1.) 

https://www.biblicalarchaeology.org/daily/biblical-artifacts/inscriptions/fit-for-a-queen-jezebels-royal-seal/

Dutch scholar traces ancient seal to Bible's Jezebel (2007. 10. 24. Reuters)

https://www.reuters.com/article/us-israel-jezebel-idUSL2317518720071023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2007/11/03/news-to-note-11032007

출처 - AiG News, 2007. 11. 3.

미디어위원회
2007-06-18

FOXP2와 인간 언어의 비진화 

(FOXP2 and the non-evolution of human language)

David A. DeWitt, Ph.D. 


       한 사람의 창조과학자로서 나는 다윈이 옳았다는 새로운 증거들의 발견에 대한 언론 매체들의 과대선전들을 자주 듣게 된다. 가끔 나는 창조론자의 시각으로 이들 발견된 증거들에 대한 조사와 글을 써줄 것을 부탁받는다. 새로운 증거라는 것에 대한 원문 보고서 또는 논문을 읽고 난 후에, 나는 항상 언론매체들의 과대선전과 진실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한 적절한 예로, 돌연변이가 일어났을 때, 말하기와 언어 손상과 관련되어 있는 FOXP2 유전자에 대한 최근의 The New York Times 기사를[1] 들 수 있겠다 :

”만일 언어(language)가 완전히 전례가 없던 일단의 유전자들로 이루어졌다면, 다윈(그리고 그의 후계자들)은 그에 대한 많은 설명들을 해야만 한다. 새로운 수천의 유전자들에 의존하는 언어시스템(linguistic system)이 진화론적으로 수십만 년 내에 생겨나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진화(evolution)는 새로운 부분을 만들어내는 공학적 과정이 아니라, 오래된 부분을 어설프게 수선하는 무작위적 과정(random processes)들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관련된 대부분의 유전자들은 다른 생물 종들에서 어떤 면에서 서로 가깝고 고대의 대응되는 부분(counterpart)을 가지고 있다. 적절한 예로서, 옥스퍼드 대학의 유전학자인 피셔(Simon Fisher)와 모나코(Anthony Monaco)에 의해 발견된 FOXP2 유전자는 명확히 언어와 관련되어있는 최초의 유전자로 간주되어진다.”

”FOXP2 유전자는 인간의 언어 획득이 진화 과정에서 조금씩 모아져서 출현했다기보다는, 그것이 완벽한 위치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도록 진화시키기 위해, 수억년 동안 진화되어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 기사는 마치 과학자들이 인간 언어에 관여하는 한 중요한 유전자(다른 생물체들에도 존재하는 유전자이지만, 인간의 언어 진화를 위해 약간 개조될 필요만 있었던 유전자)를 발견한 것처럼 보인다.


침팬지, 고릴라, 오랑우탄, 생쥐, 새들, 심지어 열대어(zebrafish) 등을 포함한  많은 동물들이 FOXP2 유전자를 가지고 있고, FOXP2 유전자의 돌연변이는 다른 생물체들에서 발성(vocalization) 손상을 일으킨다. 그런데 여기에는 더 많은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DNA에 결합되는 인간 FOXP2의 부분적인 구조.[7] 화살표가 가리키고 있는 것은 DNA 이중 나선 분자들. FOXP2와 같은 전사 인자(transcription factors)들은 전형적으로 유전자들의 켰다 껐다(on-off)를 조절하기 위해서, 특수한 짧은 DNA 염기서열에 결합한다. 한 전사인자의 돌연변이나 소실은 단백질의 잘못된 조절을 유발한다. 그러한 단백질은 만들어지는 다른 단백질들의 종류와 양에 영향을 미친다.


무엇보다도 FOXP2 단백질은 하나의 전사인자이다.[2] 이것은 그것이 DNA와 결합하는 단백질이라는 것과, 다른 유전자 생성물들의 생산을 조절하는 스위치로서의 역할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FOXP2는 언어에 직접 관련되어 있지 않다. 대신, 그것은 언어와 관련 있는 신경발달을 촉진하는 다른 전사인자들을 포함하는 다른 유전자들의 발현을 조절하는 마스터 스위치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마스터 조절 유전자(master control genes)들은 퓨즈 박스에서 회로 차단기(circuit breakers)와 비교될 수 있다. 스위치를 끄게 될 때, 그들은 몇 개의 전기 콘센트와 전등 스위치에 전기가 흐르는 것을 차단한다. 비록 회로 차단기가 빛 그 자체를 생산하는 데에 충분하지 않지만, 회로 차단기 없이 어떠한 빛도 생겨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FOXP2에서 변화는 다른 많은 물질들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비록 FOXP2가 통제하는 정확한 표적 유전자(target genes)들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과학자들은 그 단백질이 어떤 신경과 다른 조직 발달의 상류 조절자(upstream regulator)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만약 그 신경들이 적절하게 발달하지 않는다면, 영구적인 행동장애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에 행동장애는 언어능력의 손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FOXP2는 하나의 전사인자이기 때문에, 그 자체만으로 언어를 통제할 수 없다. 분명히, 그 과정과 관련된 많은 다른 단백질들이 있다. 정말로, FOXP2의 돌연변이는 구강안면 움직임의 손상을 초래하고, 이것은 적절한 단어를 소리내도록 하는 것을 방해한다.

또한 발성장애로 시달리는 개인은 약간의 문법적 결함을 보인다. 비록 그 유전자가 언어 생성과 분명히 연결되어 있지만, 그것을 ”언어 유전자(language gene)”로서 지정할 수는 없다. 그것은 돌연변이가 일어나면 근위축증(muscular dystrophy, 그리고 보행 장애)을 초래하는 유전자를 ”보행 유전자(walking gene)”라고 부를 수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다.


연구자들은 종(species)을 뛰어넘어 많은 생물체들이 사실상 동일한 FOXP2 서열을 가지고 있는 것에 분명히 놀랐다. 정말로 FOXP2는 침팬지(chimpanzees), 고릴라(gorillas), 짧은 꼬리 원숭이(macaques)에서 동일하다. 그리고 영장류와 생쥐(mice) 사이에는, 이들이 1억3천만년 전에 진화로 분리되었다고 추정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미노산 서열에서 단지 1개만이 다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인간(humans)과 침팬지 사이에는 단지 2개의 아미노산만이 차이가 난다.[3] 따라서 인간과 생쥐 사이에는 700개의 아미노산들 중에서 단지 3개만이 다르다.(99.57%가 동일). 이와 같이 높은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인간과 생쥐 사이에서 언어 사용에 명백한 차이가 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아미노산 서열의 작은 차이가 있지만, 이들 차이가 인간의 언어 능력에 대한 책임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FOXP2 돌연변이에 의해 동반된 손상에 의해 증명되었던 것처럼, 우리는 FOXP2가 사람의 적절한 언어 사용에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FOXP2가 언어 능력을 갖는 데에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FOXP2를 유전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쥐나 침팬지도 인간의 언어 같은 것을 사용할 것이 기대될 것이다. 단지 이 1개의 유전자보다, 인간의 언어에 관여하는 훨씬 더 많은 유전자들이 관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인간의 언어는 다면적(multi-faceted)이고, 뇌의 많은 다른 특별한 영역들과 연관되어있다. 최근 언어와 관련되어있는 한 확인된 뇌 영역은 좌측 후두골측두골 피질(left occipitotemporal cortex)이다.[4] 놀랍게도, 뇌의 이 부분은 시각적인 단어 형태들을 인지한다. 그것은 쓰여진 단어(written word)의 형체들을 처리한다. 이 발견에 앞서, 시각적 단어형태 영역(Visual Word Form Area, VWFA)은 과거부터 논란이 되어오고 있었다. 왜냐하면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단지 수천년 전(사람이 진화로 태어나고 오랜 기간 후)이기 때문이다. 진화론적 패러다임에서, 사람 VWFA의 자연선택은 문자가 발명되기 오래 전에 이루어졌어야만 한다. 따라서 그러한 신경 시스템이 (문자도 없던 시기에) 자연선택을 통하여 어떻게 진화될 수 있었는지는 매우 어려운 수수께끼가 되어버리는 것이다.


문맥(context)은 언어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측면을 가진다. 그리고 이 문맥은 우리가 FOXP2 단백질을 이해하는 것을 도와줄 수 있다. 이 단백질은 다른 생물체들에서 거의 동일한 아미노산 서열을 가질 수 있고, 유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유사성이 언어가 진화했다는 것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면, 과학자들은 이들 발달한 전사인자들을 한 생물체에서 다른 생물체로 옮길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생쥐로부터의 유사한 마스터 통제 유전자를 사용하여, 파리에서 눈의 발달을 유발할 수 있었다![6] 기대했던 것처럼, 생쥐의 마스터 조절 유전자는 파리에서 전형적인 파리의 눈을(생쥐의 눈이 아닌) 발달시켰던 것이다. 이것은 대체된 유전자가 파리의 문맥 안에 아직도 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FOXP2가 다른 생물체들 내에서 유사한 서열과 유사한 기능을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은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는 문맥 안에서 하나의 독특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 Dr. DeWitt earned his Ph.D. in Neurosciences from 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 He is an associate professor in the department of biology & chemistry as well as the Director of the Center for Creation Studies at Liberty University. In addition, he is a guest speaker and writer for Answers in Genesis.

 

References and notes

  1. Marcus, Gary, From Squeak to Syntax: Language’s Incremental Evolution. The New York Times, April 11, 2006.
  2. Enard, W., Przeworski, M., Fisher, S.E., Lai, C.S.L., Wiebe, V., Kitano, T., Monaco, A.P., Paabo, S., Molecular evolution of FOXP2, a gene involved in speech and language. Nature 418:869–872, 2002.
  3. The two differences in amino acid sequence between humans and apes are especially intriguing. One of the differences is that apes have threonine instead of asparagine at position 303, while humans have serine instead of asparagine at position 325. The reason this is significant is that both of these are potential phosphorylation sites and thus could be ways that the protein is switched on and off.
  4. Gaillard, R., Naccache, L., Pinel, P., Clemenceau, S., Volle, E., Hasboun, D., Dupont, S., Baulac, M., Dehaene, S., Adam, C., and Cohen, L., Direct intracranial fMRI and lesion evidence for the causal role of left inferotemporal cortex in reading, Neuron 50:191–204, 2006.
  5. A transcription factor responsible for controlling the development of neuronal populations involved in production of sounds.
  6. Halder, G., Callaerts, P., Gehring, W.J., Induction of ectopic eyes by targeted expression of the eyeless gene in Drosophila. Science 267:1788–92, 1995. 
  7. Chen, J., Anderson, J.B., DeWeese-Scott, C., Fedorova, N.D., Geer, L.Y., He, S., Hurwitz, D.I., Jackson, J.D., Jacobs, A.R., Lanczycki, C.J., Liebert, C.A., Liu, C., Madej, T., Marchler-Bauer, A., Marchler, G.H., Mazumder, R., Nikolskaya, A.N., Rao, B.S., Panchenko, A.R., Shoemaker, B.A., Simonyan, V., Song, J.S., Thiessen, P.A., Vasudevan, S., Wang, Y., Yamashita, R.A., Yin, J.J., Bryant, S.H., MMDB: Entrez’s 3D-structure database, Nucleic Acids Res. 31(1):474–7, January 2003.

  8. Stroud, J.C., Wu, Y., Bates, D.L., Han, A., Nowick, K., Paabo, S., Tong, H., Chen, L., Structure of the forkhead domain of FOXP2 bound to DNA, Structure14(1):159–166, January 2006.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docs2006/0503human-language.asp 

출처 - AiG, May 3, 2006.

미디어위원회
2007-04-20

여리고의 성벽 

: 고고학적 확인에 의하면 여리고성의 벽은 정말로 무너져 내렸다.

(The walls of Jericho)

Dr. Bryant Wood


      여리고(Jericho)’ 라는 지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진, 나팔소리, 무너지는 성벽을 연상케 한다. 그것은 믿음과 승리의 놀라운 이야기이지만,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을까? 회의론자들은 아니라고 말하며, 단지 여리고의 유적을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의 주된 이유는 1950년대에 영국의 고고학자 캐슬린 케년(Kathleen Kenyon)이 지휘하여 수행한 현장발굴의 결과 때문이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 

”이스라엘 민족의 공격이 있었음에 틀림없는 후기 청동기 시대(Late Bronze Age)에 도시성벽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여리고의 발굴에서 여호수아서에서 그렇게 생생하게 기술되어있는 여리고 성벽의 파괴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보이지 않는다.” [1]

캐슬린 케년의 발굴 보고서를 편집하고 공동 저술했던 토마스 홀란드(Thomas A. Holland)는 나타난 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군사적 정복설과 후기 청동기 시대의 성벽에 대한 참고자료들을 가지고 캐슬린 케년이 내린 결론은, 청동기 말기(ca. 1400 BC)에 도시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는 설을 뒷받침할 만한 어떠한 고고학적 자료도 없다는 것이다” [2]

그러나 금세기 동안 계속 수집되어온 고고학적 증거들을 주의 깊게 조사해보면, 이것과는 매우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 박사가 1997년 여리고성 남쪽 끝에 있는, 이탈리아 고고학자들에 의해서 발견된 옹벽의 바닥에 서 있다. 여호수아 6장에 기술된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을 공격할 때, 이 성벽 주위를 행진하였다.


요새였던 여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는 그들이 이제 요단강을 건너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성벽이 하늘에 닿는 큰 성읍들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명기 9:1). 케년의 세심한 조사는 여리고가 정말로 강력하게 요새화되었고 그것이 불탔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는 그 유적들의 연대를 잘못 추정한 결과, 고고학적 발견과 성경의 기록이 불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녀는 청동기 시대의 여리고성은 BC 1550년 경에 이집트에 의하여 파괴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증거물들을 더 심층 분석해 본 결과, 파괴는 BC 1400년 경에 (후기 청동기 1기 말에) 발생했고, 이것은 성경에서의 정복 연대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3]


여리고 성이 있던 구릉(mound or tell)은 아래쪽에 돌로 된 옹벽(retaining wall, 기초성벽)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토벽(earthen rampart)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옹벽은 무려 4-5m (12-15 feet)의 높이에 달했다. 이 옹벽 위로 폭 2m, 높이 6-8m의 진흙벽돌로 된 성벽(mudbrick wall, 외벽)이 있었다.[4] 이 진흙벽돌의 제방(둑, embankment) 위로는 유사한 진흙벽돌로 된 성벽(내벽)이 있었는데, 그 내벽의 기저부위는 외벽의 바깥쪽 땅에 비해서 14m나 높았다 (그림 참조).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7일 동안 매일 성 주위를 돌면서 행진할 때 그들 위에 아스라이 보였던 것이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의 이 굳건한 요새를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벽 안쪽의 도시 면적은 약 6 에이커(환산하면 약 200m x 120m) 정도이지만, 안쪽 도시와 요새화 된 성벽들이 차지하는 면적들을 다 합하면, 전체 면적은 50%가 더 넓어져서 약 9 에이커 정도가 된다. 고고학자들이 추정하는 에이커 당 200명을 기준으로 하면, 상부 도시의 인구는 대략 1,200명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금세기초 독일 팀의 발굴 결과에 의하면, 사람들이 외벽과 내벽 사이의 제방에서도 살았다. 또한, 성 주변의 마을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도 성 안으로 피난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공격했을 때 수천 명이 성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캐슬린 케년의 서쪽 발굴지에 근거한 요새화 된 여리고 성벽의 단면 개념도.


무너진 성벽

여리고 성의 거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위에 대해 잘 대비하고 있었다. 고대는 물론이었고 현재에도 여리고 성내에는 충분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샘이 성벽 안쪽에 있다. 공격 시점은 수확이 막 끝난 시기였으므로(여호수아 3:15), 그들은 충분한 식량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것은 1930년대에 존 가스탕(John Garstang)의 발굴 자료와 또한 캐슬린 케년의 발굴에서, 가나안 인들의 집들에서 곡식이 가득 찬 항아리들이 발견된 사실로도 입증이 된다. 풍부한 식량 공급과 충분한 물이 있었으므로, 여리고 백성들은 아마 몇 년 동안을 버틸 수 있었을 것이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7일째에 성 주위를 일곱 번 돌고 난 후에,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fell down flat)”로 기록되어있다 (여호수아 6:20). 여기서 히브리어의 의미는 성벽이 ”성벽 아래로 무너졌다 (fell beneath itself)”는 뜻을 가지고 있다.[5] 여리고에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증거가 있는가? 여리고 성이 종말을 맞았을 때, 진흙벽돌 성벽이 무너져 내려서 외벽의 아래 부분에 쌓여졌다는 충분한 증거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케년의 조사는 가장 상세한 것이었다. 성이 있던 구릉의 서쪽 부분에서 그녀는, 외벽의 거의 꼭대기에 쌓여있었던 붉은 진흙벽돌들이 외벽의 기저부에 떨어져서 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아마도 제방의 정상부 또는 외벽 위쪽의 진흙벽돌들이 무너져 내림으로서 쌓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6]


바꾸어 말하면, 케년은 성벽이 무너져 내려 쌓인 벽돌더미를 발견한 것이었다! 1997년에 성이 있던 구릉의 남쪽 끝에서 발굴 작업을 한 이탈리아 팀도 정확하게 같은 것을 발견했다.

성경에 따르면, 라합(Rahab)의 집은 요새화된 성벽의 일부분으로 되어 있었다. (여호수아 2:15). 만일 성벽이 무너졌다면, 라합의 집은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알다시피 정탐꾼들은 라합에게 그녀의 가족들을 그녀의 집안으로 대피시키면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시를 점령했을 때, 약속대로 라합과 그녀의 가족들은 구조되었다 (여호수아 2:12-21, 6:17,22-23). 여리고 성의 둔덕 북쪽 끝에서 고고학자들은 라합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놀라운 것들을 발견했다.

.1907-1909년의 독일팀의 발굴결과를 근거로 한 고대 여리고 북편 성벽의 추정도. 가옥들이 돌로 된 옹벽 위에 놓여져 있는 진흙벽돌 성벽을 의지하여 지어졌음에 유의하라. 성경은 라합의 집이 성벽 위에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호수아 2:15).


1907~1909 년 독일팀의 발굴에서, 북쪽 성벽의 짧은 구간은 다른 부분과는 달리 무너지지 않았음이 발견되었다. 그 진흙벽돌 성벽의 일부분은 아직도 2m 이상의 높이로 서 있었다.[4]  더구나 이 성벽에 잇대어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이곳에 라합의 집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7] 성벽이 집의 후면 벽을 형성하고 있었으므로 정탐꾼은 쉽게 도주할 수 있었다. 도시의 북쪽인 이 위치로부터 정탐꾼이 3일간 숨어있었던(여호수아 2:16,22) 유대 광야의 산까지는 가까운 거리였다. 위쪽의 내벽과 아래쪽의 외벽 사이의 제방에 위치한 이곳은, 전쟁이 났을 때는 살기에 적당하지 않은 곳이므로, 집값이 쌌을 것이다. 이 지역은 도시 내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지역으로, 아마도 빈민촌이었을 것이다.


성벽이 무너지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5m 높이의 하부 옹벽을 넘어갈 수 있었을까? 발굴결과에 의하면 무너져 내린 외벽의 진흙벽돌들이 옹벽 옆에 쌓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ramp)를 형성했던 것을 보여준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도시에 들어갔던 방법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즉, 똑바로 위로 넘어서, straight up and over)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여호수아 6:20). 이스라엘 백성은 올라가야만 했고(go up), 그것이 바로 고고학이 밝혀낸 것이다. 그들은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서 구릉의 바닥 부분인 지상에서 방어벽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찌니라”(여호수아 6:5절)).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 박사가 1997년에 여리고 성의 남쪽 끝에서 이탈리아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된 돌로 된 외벽의 기초부분(옹벽)을 가리키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 6장에 설명된 바와 같이 성을 공격했을 때 이 외벽 주위를 행진했다.


화재에 의한 파괴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시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을 불태웠다.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여호수아 6:24). 다시 한번 고고학적 발견은 이 기록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파괴된 성의 동편 일부분이 발굴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어디에서든 발굴이 일정 깊이에 도달하면 1m (3 feet) 정도 두께의 재와 불에 탄 잔해들이 발견되었다. 케년은 이 철처한 파괴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

”파괴는 철저했다. 벽과 바닥(floors)들은 화재로 인해 검거나 붉게 타 있었고, 방마다 쏟아진 벽돌, 목재들, 가재 집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의 방에 떨어져있는 파손된 잔해들은 심하게 불탔지만 동쪽 방들의 벽들은 화재의 영향을 받기 전에 붕괴되었던 것처럼 보인다.”[8]

가스탕과 케년은 둘 다 불에 의해서 파괴된 곡물로 가득한(full of grain) 많은 저장 항아리(storage jars)들을 발견했다. 이것은 고고학적 기록에서 매우 특별한 발견이다. 곡물은 단지 식품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으로 교환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치도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곡물과 같은 귀중품은 정복자에 의해 약탈되는 법이다. 여리고에서는 왜 곡물이 그대로 남겨져 있는가? 그 해답은 성경에 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읍과 그 안의 모든 것들을 여호와에 바치라고 명령했다 (여호수아 6:17)

.현재 리버풀 박물관(Liverpool Museum)에 전시되어 있는 여리고성에서 발굴한 탄화된 보리와 대추야자.


여리고에 남아 있어서 현대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곡물은 3500년 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아간(Achan)만이 순종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여호수아 7장에 기록된 대로 아이(Ai) 성에서의 참패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런 많은 곡물들을 손대지 않고 남겨둔 것은 성경 기록의 또 다른 면의 진실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풍부한 식량과 물의 공급이 있고 강력하게 요새화된 성을 정복하는 데에는, 통상 몇 달 심지어는 몇 해가 걸릴 것이다. 성경은 여리고가 단지 7일 후에 함락되었다고 말한다. 여리고의 폐허에서 발견된 곡물 항아리들이 가득 차 있음은 성 안의 백성들이 곡물을 거의 소비하지 않았고, 포위 기간이 짧았음을 나타낸다.


여리고의 교훈

고고학과 성경 사이의 외견상 불일치 때문에, 여리고는 한때 성경속의 이야기로만 여겨졌었다. 그러나 고고학적인 정확한 해석을 했을 때에는 바로 정반대임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들은 모든 세부사항에서 성경의 기록과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일치한다. 고고학적 발견은 여리고 성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입증하였던 것이다.


여리고의 성벽이 어떻게 무너졌는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다. 가스탕과 케년은 둘 다 도시가 종말을 맞았을 때에 지진(earthquake) 활동이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날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서 지진을 사용하셨더라도, 지진이 필요한 정확한 시점에 일어났고, 라합의 집을 보호했던 것은 여전히 기적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든지, 그것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벽을 무너뜨리신 것이다. 백성들이 7일 동안 성벽 주위를 행진하고 난 후에, 여리고의 벽은 믿음으로 인해 무너졌던 것이다 (히브리서 11:30).


여리고는 세속적 학문의 결과가 성경과 일부 일치하지 않더라도 성경의 기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놀라운 영적 교훈이 되고 있다. 우리도 때로는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요새와 같은 성벽에 직면하곤 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의 계명을 따른다면, 하나님께서는 크고 비밀한 일(great and mighty things)을 행하셔서(예레미야 33:3)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Kathleen M. Kenyon, Digging Up Jericho, London, Ernest Benn, pp. 261–62, 1957.  
2. Thomas A. Holland, Jericho, The Oxford Encyclopedia of Archaeology in the Near East, Vol. 3, pp. 220–24, ed. Eric. M. Myer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 223, 1997.
3. Bryant G. Wood, Did the Israelites Conquer Jericho?,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6(2):44–58, March–April 1990.
4. Ernst Sellin and Carl Watzinger, Jericho die Ergebnisse der Ausgrabungen, Osnabrück, Otto Zeller Verlag, p. 58, 1973 (reprint of the 1913 edition).
5. The root of the word tahteyha in Joshua 6:5, 20 is tahath, meaning ‘underneath,’ ‘below’ with a reflexive 3rd feminine singular pronominal suffix ha referring back to hômah, ‘wall.’
6. Kathleen M. Kenyon, Excavations at Jericho, 3:110, London, British School of Archaeology in Jerusalem, 1981.
7. The Hebrew phrase in Joshua 2:15 is beqîr hahômah. Usually qîr means a small wall, but can also indicate the vertical surface of a wall. Brown, Driver and Briggs’ lexicon suggests this for Joshua 2:15 (p. 885), and in this case the preposition be would mean ‘against’(p. 89). Thus, literally, ‘her house [was built] against [the] vertical surface of the [city] wall.’ Return to text.
8.  Kenyon, Excavations at Jericho, 3:370.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여리고 고고학의 권위자이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성경 연구회(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의 책임자이며, 키르벧 엘 마카티르 발굴(Kh. el-Maqatir Excavation) 단장이다. 고고학과 성경에 관하여 더 알고 싶거나 이스라엘에서 우드 박사와 함께 발굴에 참여하고 싶으면 다음 주소로 연락하기 바란다. The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PO Box 356, Landisville, PA 17538, USA.  

 

*참조 : The story of Jericho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5402

Is the Bible accurate concerning the destruction of the walls of Jericho?

http://www.christiananswers.net/q-abr/abr-a011.html

고고학으로 증명된 성경의 기적 - 여리고 (동영상)

https://www.youtube.com/watch?v=wJPSqG7kgRw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the-walls-of-jericho

출처 - Creation 21(2):36–40, March 1999.

미디어위원회
2006-07-17

언어의 변화 

(Towering Change)

by Carl Wieland


     오늘날의 수천 개 언어가 모두 따로따로 만들어졌는가? 그렇지 않으면 언어들이 진화되었는가? 다른 문제들과 마찬가지로, 그 답은 창세기에 있다.

위랜드(Wieland) 박사가 싱가포르에 있는 교회에서 창조과학세미나를 하는 도중 쉬는 시간에 세 명의 젊은 기독교인이 찾아와 물었다. ”우리는 모두 훈련된 언어학자입니다. 우리는 미얀마(버마)에 선교를 가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혹시 성경이 언어의 기원에 관하여 말해주는 것이 있습니까?”

그 질문에 대한 당황함에서 회복된 후 대답했다. "예, 분명히 그렇습니다.” 그들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전 세계에 걸친 격변적인 대홍수가 끝난 후 (모두가 노아 가족의 후손인) 살아남은 사람들은, 흩어져 땅을 채우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반항했다. 그들은 시날(Shinar)(수메르어/바빌로니아) 평원에 바벨이라는 도시를 건설하고,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을’ 정도의 탑을 쌓기 시작했다. 그때는 대홍수 이후 약 100 여년밖에 지나지 않았고, 모두가 같은 사회의 구성원이었으며, 같은 언어를 말하고 있었다.

그들의 반역에 대한 벌로 하나님은 그들의 언어를 혼란시켰으며, 따라서 그들은 서로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게 되었으며, 지구의 곳곳으로 흩어지게 되었다. 이와 같이, 다른 언어의 생성은 갑작스럽고 놀라운 사건이었다.

나는 그들의 얼굴에서 당황하고도 곤혹스러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디에 그렇게 쓰여 있는지 우리에게 보여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나는 창세기를 열어서 관련된 구절을 읽어주었다. 그랬더니 그들의 문화로 인한 타고난 정중함을 타나내기는 했지만, 오히려 의구심이 더 깊어지는 것 같았다.

그들이 성경적 역사에 대해 지식이 빈약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서 선교지로 갈 준비가 거의 다 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백한 의문은 제쳐두고라도, 그들이 선교지에서 헌신하기로 맹세한 대상인 바로 그 주님의 말씀이 어째서 그렇게 깜짝 놀라게 했단 말인가?

그때 나는 알게 되었다. 보통의 언어학자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언어가 항상 변화하고 있는 방식을 알고 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오늘날에는 서로 간에 상당히 다른 것처럼 보이는 언어들 사이의 역사적 연결고리에 관한 증거를 배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의 지역에서 현재 사용하고 있는 모든 언어, 즉 그들 가족들이 사용하는 호키엔 중국어(Hokkien Chinese), 그들의 이웃인 인도인이 사용하는 타밀어(Tamil), 미얀마의 카렌(Karen) 부족이 사용하는 언어 등 모두가 동시에, 기적적인 방법으로 생겨났음을 외견상으로 의미하는 창세기의 구절이 있다.

그러나 물론 창세기에서는, 파푸아 뉴기니의 800개 이상의 언어(및 다른 많은 방언들)가 중동에서 순간적으로 생겨났다는 것 이상은 가르쳐 주지 않는다. 우선은, 언어와 그 변화라는 전체 주제를 주목하자.


언어의 변화

언어가 변화한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시인 제프리 초서(Geoffrey Chaucer)가 쓴 '캔터베리 이야기(The Canterbury Tales)'를 600년 전의 영어로 읽어보아야 한다. 예를 들면, ” … the yonge sonne hath in the ram his half cours yronne, and small fowls maken melodye, that slepen all the night with open yë ….”  심지어 요즘의 킹제임스 성경(1769년 판)도 현대 영어가 아닌데도, 최초의 1611년판 하고는 상당히 달라서,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일반 대중이 이해하려면 수만 군데를 고칠 필요가 있다.

특히 활자의 인쇄와 같은 기록의 보급이 변화의 속도를 낮추었을 것이다. 이것은 글자를 갖지 못한 문화에서는 극적인 것이다. 이것은 특히 일부 무리가 다른 부류와 잠시 동안 접촉이 끊어졌을 때 더욱 그러하다. 만약 파푸아의 두 개의 마을이 황야의 산지 지형으로 서로 격리되어 있다면, 수세대 전에는 그 주민들이 같은 언어를 사용했을지라도, 요즈음 그들을 같이 모아놓으면 서로 간에 전혀 의사소통을 할 수 없을 것이다. (아래쪽 ‘시간에 따른 언어의 변화’ 기사를 보라.)

그런데 언어가 갖는 연관성에 대해 아주 재미있는 증거가 있다. 나는 독일어와 영어를 읽을 수 있지만, 네덜란드어를 하나도 알아듣지 못하는데도 어떤 네덜란드어 문장은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있다. 마치 네덜란드어가 다른 두 언어의 사이에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English

Dutch

German

water

water

Wasser

dog(hound)

hond

Hund

clock

klok

Uhr

한편, 말레이 반도(Malay peninsula)의 멜라카(Melaka [Malacca])에 있는, 500년 된 네덜란드 선원 묘지를 방문했을 때, 묘비에 있는 비문이 현대의 네덜란드어보다 더욱 이해하기 쉽다는 것을 발견했다. 분명히, 이들 언어들이 과거에는 더 근접했을 것이다. 그것들은 서로로부터 ‘갈라졌으며’, 시간이 감에 따라 점점 멀어지기 시작했다.

독일어와 네덜란드어와 영어 사이에 연계성이 있다는 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것으로 생각되며, 또한 이탈리아어와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즉, 소위 말하는 로망스어의 일부) 및 고대 라틴어 사이에도 연계성이 있다. 그러나 이들 두 그룹 내부에서 뿐 아니라, 그룹들 사이에서의 연계성 또한 역력히 분명하다. 예를 들어, 앞서의 예에서, 시계에 대한 독일어 단어 ‘uhr’는 영어의 ‘hour’와 발음이 비슷하며, 또한 이것은 (시각에 대한) 라틴어 ‘hora’와 비슷하다.

사실상, 이들 언어뿐 아니라, 그리스어, 러시아어, 심지어 고대 산스크리트어를 포함한 많은 수의 소위 말하는 ‘인도-유럽’ 언어들이 모두 이런 식으로 연계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만약, 인도-유럽 언어들이 서로 연계되어 있음을 부인한다면, 앞장의 도표에 동일한 사물에 대해서는 비슷하게 발음되는 이름이 붙어있는데, 이것이 그저 환상적으로 일치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가장 오른쪽 줄에 있는) 헝가리어를 제외한 이들 모든 언어들이 동일한 ‘조상 언어’를 갖고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언어학자들은 그것을 ‘원(原) 인도-유럽(proto-Indo-European)’ 언어라고 하며, 심지어는 그들 몇몇 단어들이 원래는 어떠했을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추론하기도 했다.

EnglishGermanDanishLatinSpanishItalianFrenchGreek(mod)RussianHungarian
OneEinsEnUnusUnoUnoUnEnaOdyinEggy
TwoZweiToDuoDosDueDeuxDhyoDvaKettő
ThreeDreiTreTresTresTreTroisTriaTriHárom
FourVierFireQuattuorCuatroQuattroQuatreTesseraChyetiryeNégy
FiveFünfFemQuinqueCincoCinqueCinqPentePyat'Öt
MotherMutterMorMaterMadreMadreMèreMeteraMat'Anya
FatherVaterFarPaterPadrePadrePèrePaterasOtyetzApa
IIchJegEgoYoIoJeEgoYaÉn
YouDuDuTuTuTuTuEsyTiÖn
HouseHausHusDomusCasaCasaMaisonSpitiDomHáz
DogHundHundCanisPerroCaneChienSkylosSobakaKutya
CatKatzeKatFelesCatoGattoChatGataKoshkaMacska
LionLöweLøveLeoLeónLeoneLionLeontariLyevOroszlán
MonkeyAffeAbeSimiusMonoScimmiaSingeMaimoudaObiez'yanaMajom
BearBärBjørnUrsusOsoOrsoOursArkoudhaMyedvyed'Medve
SnakeSchlangeSlangeSerpensSerpienteSerpenteSerpentFidhiZmyeyaKigyó
HorsePferdHestEquusCaballoCavalloChevalAlogoLoshad
CowKuhKoVaccaVacaVaccaVacheVodiKorovaTehén

여러 가지의 같은 사물에 대한 단어를 비교해 보면 다양한 언어들 사이의 ‘연관성’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이탈리아어와 스페인어와 프랑스어는 독일어와 영어와 덴마크어보다도 그들 서로 간에 (그리고 고대의 라틴어와) 확실히 근접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몇 가지 예만 보더라도 서로 다른 색깔군의 언어들끼리도 상호-연관성을 보여주고 있다. 즉 이들 모두는 인도-유럽어족이다. (주: 그리스어와 러시아어는 다른 알파벳을 가지고 있어서, 이들을 그에 근사한 영어로 대치시켰다.) 흥미롭게도, 음영이 없는 칸에서 보듯이, 헝가리어는 유럽 대륙에 있는 나라의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인도-유럽 언어가 아니다. 오늘날 스페인에 사는 한 종족의 언어인 바스크어는 전혀 다른 어족으로부터 왔다. 각 언어는 자기 그룹 외의 언어와는 전혀 연관이 없다. 이것은, 각 그룹의 모든 언어들은 바벨의 ‘줄기(stem)’ 언어 중의 하나로부터 나왔다는 개념과 일치한다 (본문을 보라).


그래서 언어는 진화했는가?

분명히 언어가 변화하기도 하고, 하나의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갈라져서 하나 이상의 언어가 생길 수도 있지만, 대규모의 생물학적 진화와 유사한 개념은 거기서 끝난다.

사실상 나는 ‘언어의 진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언어의 변화는 주로 인간성의 독창성과 타고난 창조성 및 융통성에서 오는 것이지, 선택에 의해 여과된 임의의 유전학적 돌연변이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오늘날 변화의 과정에 있다고 연구된 언어들은 더욱 복잡해지는 것이 아니라 더 간단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가장 ‘원시적’이라는 일부 종족들이 문법은 상당히 복잡한 언어를 말하고 있다. 차라리 언어의 ‘퇴화’라고 말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바벨은 어떠한가?

창세기 10:32은 가계(家系)가 확장됨에 따라 지구의 여러 곳으로 사람들이 분산되었음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창세기 11장에서는 그런 분산의 메커니즘에 의하여 새로운 언어들이 갑작스레 만들어졌으며, 그로 인하여 사람들이 서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한 극심한 ‘의사소통의 단절’로 사람들은 화가 나, 서로를 맹렬히 의심하게 되었을 것이며, 적개심이 생겨서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무리들을 급속히 배척했을 것이다. 그러나 앞 절이 나타내듯이, 각각의 확장되는 가계 또는 ‘친족’이 서로 밀착되어 있기 위해서는 모두가 하나의 언어를 공유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대홍수 이후 시간이 조금밖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은 친족이 수백 개씩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각 친족이 자기들만의 언어를 갖게 하고, 또 하나님의 목적을 신속히 이루기 위해서 언어가 몇 십 개로만 분리되어도 되었을 것이다.

궁극적으로, 세대가 거듭됨에 따라 각 친족들은 더욱 더 멀리 이주했으므로, 어떤 그룹들은 친족이 서로 갈라졌을 것이다. 이렇게 해서, 원래의 ‘바벨 언어’의 일부 혹은 모두가 변화했으며 여러 개의 새로운 언어로 갈라졌는데, 이들 모두는 연계된 징후가 보인다.

비교적 짧은 시간 간격에 걸쳐 변화가 누적되어 방언들이 생겨났다(예를 들면, 스코틀랜드 사투리, 리버풀, 오스트레일리아 영어; 미국에서는 북부와 남부). 궁극적으로는 이들이 매우 다르게 되어 한쪽 지방의 말을 다른 쪽 지방에서는 전혀 알아들을 수 없게 되어서, 결국에는 그들을 서로 다른 언어라고 분류하는 기준이 되고 말았다.

따라서 나는 인도-유럽 ‘어족’(語族)은 모두 바벨에서의 하나의 ‘줄기’ 언어로부터 유래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몇 개의 분리된 언어로부터 수백 개의 언어 그룹이 생겨난 것은 그 사건 이후 수천 년이 지난 후이다.

이러한 추론에 근거하여, 오늘날의 세계에 존재하는 많은 수의 언어들을 인도-유럽 어족과 같이 몇 그룹의 ‘어족’으로 묶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의 ‘어족’과 다른 어족 사이에는 연계성이 없다. 이 해석 모델에 따르면, 그것은 각각의 어족이 그 앞의 조상 언어에서 변화된 것이 아니라, 원래의 바벨의 ‘줄기 언어’에서 파생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우리가 관찰한 것과 실제로 일치한다. 예를 들면, 중국어와 일본어와 한국어를 포함하는 중국-아시아 어족은 인도-유럽 어족이나 기타 다른 어족에 속하는 언어와 ‘공통의 조상’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증거가 전혀 없다.

언어들은 점차 사멸하는데, 언어학자들이 연구한 적이 없는 언어가 많다. 따라서, 서로 다른 ‘어족’의 수를 추산하기도 힘들고 사람마다 다르게 나온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8에서 20까지이다(보통 12 또는 13). 그것은 창세기의 설명과 아주 잘 들어맞는다.

진화론자들은 여러 어족을 겨우 겨우 ‘연결시켜’ 가며 그것들이 결국에는 공통의 조상에 이르도록 시도했다. 즉, 원래의 인도-유럽 어족과 중국-아시아 어족이 어떤 이전의 언어로부터 나온 것임을 보이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의 노력은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드러난 증거를 보면, 바벨에서 분리된 몇 개의 언어들이 다양하게 변화되어 오늘날에는 많은 수의 언어가 생겨났다는 것과 기가 막히게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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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에 따른 언어의 변화 - 세 가지 개념

(A) 진화의 나무
언어에 관한 진화론적 신념 - 동물의 꿀꿀거리는 소리로부터 진화된 초기의 한 가지 원시언어로부터 모든 언어가 유래되었을 것이다.

(B) 언어의 잔디
창세기에 관한 공통적 개념(오해). 오늘날의 모든 언어는 바벨에서 각각 생겨났다.


(C) 창세기 과수원

대홍수 직후에는(대홍수 전 언어의 변화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다) 노아의 가족이 사용하던 단 하나의 언어밖에 없었다. 바벨에서 갑자기 초자연적으로 가족단위로 언어가 나뉘어졌다. 이렇게 생긴 각 언어들이 또 각각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 각 그룹은 ‘공통의 조상’ 언어를 가지고 있다.

   

이들 세 가지 도표는 생명체의 변화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음을 주목하라. 진화론적 신념(A)은 모든 종(species)이 하나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생겨났다는 것이다. 오해의 개념(B)은 세상의 모든 종(species)이 별개로 창조된 후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성경적 실제(C)는 각각의 종류대로 창조되었고, 같은 종류 내에서 변화와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이며(새로운 정보가 없으므로 진화도 없다) 대홍수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따라서 이리와 들개와 코요테 등은 방주에 탔던 하나의 ‘개 종류’의 선조로부터 모두 생겨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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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ferences and notes

1. The Hebrew here can be taken in several ways. It can mean that the tower was going to reach into the heavens, a figure of speech meaning it would be impressively high (like we talk of ‘sky-scrapers,’ or Wolkenkratzer ‘cloud-scrapers’ in German). It may also mean that its top would be, like some of the ziggurats in ancient Babylon (Babel), open to the heavens as a giant astrological observatory for the false worship of those times.
2. The original KJV published in 1611 used spellings like Iesus, Iehovah, vnto, euill and beleeueth. It also contained the Apocrypha, cross-referenced to it from the canonical books, and listed verses from the Apocrypha in its Scripture reading schedule. The 1611 original also had over 8,000 marginal notes suggesting alternative translations and uncertainty about some words in the original languages.
3. Television, with its ‘homogenizing’ influence on language, also slows divergence, and may even be responsible for some convergence, e.g. between Australian and U.S. English.
4. By analysing common features, linguists can determine that the Romance languages diverged from a common tongue later than that tongue diverged from the common ancestor of the Germanic languages (English, Dutch, German, etc).
5. Linton, R., The Tree of Culture, Alfred A. Knopf, New York, 1955, p. 9.
6. Sometimes the criterion of mutual unintelligibility to determine separate languages takes second place to political divisions—e.g. Norwegian, Danish and Swedish. Note also that each individual speaks a little differently from everyone else—these are called personal idiolects.

* NB: Not Felis, as commonly thought. Return to table.


번역 - 이종헌

주소 - https://creation.com/towering-change

출처 - Creation 22(1):22–26, December 1999.

미디어위원회
2006-05-12

창조주에 대한 마오리 족의 기억. 

: 뉴질랜드의 원주민들은 하나님을 기억하고 있었다. 

(Maori memories of the Creator)

Peter Dennis


      뉴질랜드의 마오리(Maori) 족은 풍부한 유산을 가지고 있다. 그들의 문화 안에는 하나님의 본성에 대한 성서적 설명을 증거하는 하나의 믿음을 가지고 있다. 마오리 족은 대략 1,000년 전에 폴리네시아(Polynesia)로부터 항해로 건너와 뉴질랜드(New Zealand)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마오리 족과 다른 폴리네시아인들은 원래 아시아에서 왔다는 많은 증거들이 있다. 예를 들면, 언어가 매우 비슷하고(특히 말레이지아어, 인도네시아어와 유사함), 도자기, 도구, 음식, 신앙 등이 유사하다.


유럽인들이 아오테아로아(Aotearoa. 뉴질랜드에 대한 마오리족의 호칭. ‘긴 흰 구름의 땅(Land of the Long White Cloud)’을 의미)에 왔을 때, 그들은 생각지도 않게 질병들과 새로운 문화를 가지고 왔다. 이것은 마오리족에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수십 년이 지나, 마오리 족의 인구는 급감하였고, 자긍심도 잃어버렸고, 그들의 많은 습관들과 전통들은 사라져갔다. 세기의 전환기에, 독학한 인류학자인 엘스돈 베스트(Elsdon Best)는 마오리 족의 전통이 사라지는 것에 대하여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그는 뉴질랜드 북섬(North Island)의 동해안 종족들 속에 들어가 살기로 결정했다. 그는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 그리고 그들의 전통, 신앙, 관습들을 기록했다.


마오리 족들은 많은 아시아 종족들처럼 지식(knowledge)을 엄청나게 숭상했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하면 기록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지식을 너무도 신성한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이었다. 이 지식은 극도로 타부(tapu, 대단히 신성하거나, 제한되는 것)시 되었다. 그것은 변경되지 않고 세대를 통하여 구두로(verbally) 전해져 내려왔다. 마오리 족은 엄청난 양의 지식을 기억할 수 있었다. 그것은 부족의 추장이 땅의 위임(Land Commission)을 요구하였던 지난 세기에 입증되었다. 그는 그의 가계를 34 대를 거슬러 올라가며 조상들의 직업, 타종족과의 결혼 등을 포함한 상세한 것들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의 가계(genealogy)에는 1,400명 이상의 이름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엘스돈 베스트는 종족의 사제(priests)들에 의해서 소중하게 전해져오고 있던 구두 전승(oral traditions)에 대해서 놀랐다. 그는 마오리 족이 하와(Eve)와 뱀(serpent), 그리고 최초의 사람은 흙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가장 놀랄만한 전통은 초월자(Supreme Being)의 지식에 관한 것이었다. 이 지식은 너무도 타부(tapu)시 되어 가장 높은 등급의 사제와 종족의 추장 정도만 그것을 배우는 것이 허락될 정도였다.


이 지식은 유럽인들에게는 원래 숨겨졌다. 왜냐하면 신의 이름이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저주의 말로 사용되어짐으로서 간혹 불경스럽게 말해질까봐 염려했기 때문이다. 마오리족의 사제들은 그들의 신이 선교사들이 말하는 하나님과 같은 분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여, 초기 선교사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사제들은 ‘에오아(Io, Ee—or)’ 라는 이름으로 불려지는 초월자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에오아는 각 속성을 나타내는 12 개 이상의 호칭을 가지고 있었다.


에오아 누이 (Io nui) - 지극히 높으신 에오아. 다른 모든 신들보다 위대하시다.
에오아 로아 (Io roa) - 영원하신 에오아. 그의 존재는 영원하시며, 결코 죽지 않으신다.
에오아 마투아 (Io matua) - 아버지이고 어머니이신 에오아. 그는 천국, 세계, 구름, 동물, 우주 등을 만들어내신 부모이시다. 그는 모든 것 너머에 계시고, 사람을 포함하여 만물의 아버지이며 어머니이시다.
에오아 마투아 테 코레(Io matua te kore) - 처음부터 계시는 에오아. 그는 부모가 없으시며, 형제나 자매 등이 없으시다.
에오아 타케 타케 (Io take take) - 근본이신 에오아. 에오와는 영원하시며 영속하신다.
에오아 마탕가로(Io matangaro) - 보이지 않으시는 에오아. 그는 그의 창조물에 의해서 어디에서도 보여지지 않는다.
에오아 마타누이 (Io matanui) - 많은 눈으로 살피시는 에오아. 그는 모든 것을 보실 수 있고, 관찰하실 수 있다.
에오아 테 토이 옹가 랑기 (Io te toi o nga rangi) - 천국의 왕관이신 에오아. 그는 12 하늘 중에서 가장 높으시고, 그를 넘어서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에오아 테 와낭가 (Io te wananga) - 지식의 근원이신 에오아.
에오아 테 푸켕가 (Io te pukenga) - 모든 생각의 근원이신 에오아.
에오아 마타호 (Io mataaho) - 빛이신 에오아.
에오아 테 휘휘아 (Io te whiwhia) - 모든 것의 공급자이신 에오아.


비록 마오리족의 많은 사람들이 에오아가 성경의 하나님과 같다는 것을 아직까지 인정하고 있지는 않지만, 오늘날 마오리족 사이에 에오아는 널리 알려져 있다. 일부 종족들은 시간이 흘러가면서 그들의 전통들을 잃어버리고 있다. 그러나 마오리족과 같은 종족들은 그들의 문화 안에 또는 어떤 다른 형태로 그들의 전통을 보존해오고 있었다. 사실, 전 세계적으로 수백여 민족들의 기억과 전설들 속에는 창조, 대홍수, 언어의 분산을 가져온 바벨탑 사건 등과 같은 창세기와 관련된 사건들이 명백히 남아있다.[1]


사도 바울이 루스드라(Lystra) 사람들에게 ”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행 14:16-17) 라고 했던 말은 그래서 적절했다.


* Peter Dennis is a secondary school teacher, specializing in Mathematics, Chemistry and Physics. Peter has given creation presentations in his church and on his local radio.


Note

1. This is exactly what one would expect, since all are descended from people who knew of these events. However, things which happened later in the Bible, like the story of Moses crossing the Red Sea, for example, would not be expected to feature among the stories of scattered peoples across the globe, since the common cultural link was no longer there after Babel. 


*참조 : A Witness at the “ends of the earth” : Maori Creator Io
http://creation.com/maori-creator-io

How do creation and global flood legends from different cultures compare to the biblical account?
http://creation.com/noahs-flood-questions-and-answers#legend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18/i4/maori.asp 

출처 - Creation 18(4):22–23, September 1996.

미디어위원회
2006-04-13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적 사실성! 

: 최근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임을 계속 입증하고 있다.

(False History—'out with David and Solomon!')

David Down 


세속적 고고학은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를 거부하려고 한다. 

이것은 고고학계에서의 최근 추세이다. 그리고 세속적 세상은 이들 성경 속 인물들의 역사적 실제성을 거부하기에 바쁘다. 심지어 호주의 ‘화이낸셜 리뷰(The Financial Review)’ 지는[1] 강령과 다르게, ‘틀린 성경(False Testament)’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고고학이 어떻게 성경의 역사성을 해체시켰는지를 설명한 다니엘 라자르(Daniel Lazare)의 글을 여러 페이지에 걸쳐서 싣고 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통상적으로 확립된 고고학적 연대를 받아들인다면, 논쟁은 매우 강하게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


성경 기록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비판은 두 개의 중요한 주장을 포함하고 있다. 첫째, 다윗(David)과 솔로몬(Solomon)의 이야기를 지지할만한 고고학적 기록이 없다는 것이며, 둘째 고고학적 지층들이 명백히 성서의 기록과 모순된다는 것이다. 첫번째 주장이 비록 정당하다 하더라도, 이것은 단순히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는 주장이다. 고고학에서 자주 말하는 것처럼, ”증거의 결여는 부재의 증거가 아니다.” 성경적 역사의 많은 부분들이 ”고고학적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꾸며낸 이야기로 폄하시켰는데, 증거들이 나중에 발견되고 나서 망신들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다윗 왕의 실존을 지지하는 비문의 증거가 있다. (아래 박스글을 보라).


그러나 두 번째 주장은 더 설득력이 있다. 고고학이 어떻게 작동되는지 설명해 보자.

성서적 시대의 사람들은 대부분 구릉지(hills)에서 살기를 선호했다. 예수님은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5:14). 주거지의 잔해들이 쌓여감에 따라 조금씩 조금씩 이 구릉지의 높이는 올라만 갔다. 폭풍, 지진, 침략 등은 이들 도시들을 파괴했고, 뒤이은 점유자들은 단순히 그 지역을 평평하게 하고, 그 위에 건축물들을 쌓았다.


고고학자들은 이제 30 m 아래로 또는 구릉지(hill, 소위 ‘tel’이라고 불려지는)의 원래 높이 보다 약간 위까지 주거지 잔해(debris)들을 파고 들어가게 되었다. 그들은 이 잔해들을 잘라 들어가면서, 연속적인 주거층들에 포함되어 있는 도기(pottery)들의 형태를 확인함으로서 지층들을 구별할 수 있었다. 이들 층들은 초기 청동기(Early Bronze), 중기 청동기(Middle Bronze), 후기 청동기(Late Bronze), 철기 시대(Iron Age)라고 불려져 내려왔다. 비록 어느 누구도 이 구분에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지만, 이 연속된 지층들에 부여되어진 연대들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성서적 정보를 무시하면서, 이 유식한 고고학자들은 19페이지 표에서 제시된 것과 같은 대략적인 연대기를 결정해왔다. 이 연대기에 따르면, 다윗과 솔로몬은 제2기 철기시대(Iron Age II)의 초기에 생존했어야 한다. 그러나 뒤에서 보게 되겠지만, 그것은 문제가 있다.


성경에 반대되는 사실들?

솔로몬의 건축사역에 관해서 열왕기상 9:17-19절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있다.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또 바알랏과 그 땅의 들에 있는 다드몰과 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 또한 성경은 솔로몬의 재력을 다음과 같이 부러울만한 것으로 묘사한다. ”왕이 예루살렘에서 은금을 돌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같이 많게 하였더라” (역대하 1:15). 그러나 제1기 철기시대와 제2기 철기시대 초기에서 발견되는 건축물 잔해를 살펴보면, 이 시기는 극도의 가난, 적은 인구, 빈약한 건축 활동으로 점철된 시기임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비평가 라자르(Lazare)가 ”그러한 왕국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가리키는 하나의 술잔(goblet), 하나의 벽돌(brick)도 남아있지 않다”라고 말하며 인정하지 않았던 이유이다 [2].


그래서 만일 일반적인 고고학적 연대기가 정확하다면,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역사들에 대한 신뢰감을 버려야만 한다는 현실에 직면하게 된다. 우연히도 이 모든 연대들은 대략 6천년 전의 이 세계의 창조와 노아 대홍수의 연대와 관련되어 있다 [3]. 대홍수의 성경적 연대는 BC 2300년 경이지만, 초기 청동기(Early Bronze Period)는 대게 BC 3100년 경에서 시작한다.


또 다른 면을 보라.

약간의 근본적인 사고가 요구되지만, 다행히도 이 어둠을 통과할 수 있는 빛이 있다. 실제로 고고학적 연대기가 옳게 맞추어질 때, 성경이 증거하는 역사는 깜짝 놀랄만하게 들어맞는다. 그러나 그것은 전통적인 고고학적 연대기를 600년을 깎아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성경적 역사는 확고한 고고학적 증거가 제시되어야만 하는 4개의 뚜렷한 시대로 나눠진다.


첫번째로, 출애굽(Exodus)와 가나안(팔레스타인) 땅의 군사적 점령은 사사(Judges) 시대에 앞서서 일어났다. 따라서 반드시 (가나안 문명의) 파괴와 화재의 증거가 있어야만 하고, 무엇보다 새로운 도기(pottery)형태, 상이한 장례의식과 제조기술을 가진 새로운 민족(이스라엘 사람들)의 등장이 있어야한다 (출애굽기 35:30-35).


이것은 바로 우리가 정확히 초기 청동기시대(Early Bronze Age) 말과 제1기 중기 청동기(Middle Bronze I Period) 시대 초기에서 발견한 것이다. 여리고를 발굴했던 캐서린 캐년(Kathleen Kenyon)은 그녀의 책에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초기 청동기 문명의 마지막 끝은 완전한 격변적 사건에 의해 이루어졌다. 초기 청동기시대 말에 건축된 여리고 성벽(walls of Jericho)의 마무리 공사는 낡고 부서진 벽돌로 서둘러서 급하게 진행되었으며, 화재로 파괴될 당시에도 아마도 완성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성벽 안쪽의 도시는 뒤이은 삭박(denudation)에 의해 거의 모두 사라졌는데, 이는 모든 출토물들이 연대기 상에서 완전히 소실되었고, 새로운 민족이 초기 거주민의 자리를 차지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조사된 모든 팔레스타인의 도시들은 동일한 연대적 소실을 보여준다. 새로운 거주자들은 도시생활에 흥미가 없는 유목민들이었고, 이들은 이미 유약해지고 쇠퇴한 그전의 거주자들을 완전히 내쫓았거나 흡수해서, 초기 청동기 문명의 모든 흔적은 사라져 버렸다” [4].


”완전한 소실... 새로운 민족... 가나안의 모든 도시들... 새 사람들은 유목민이었다... 그 이전 사람들을 완전히 내쫓았거나 흡수했다...” [4]. 도시생활에 애당초 흥미가 없었던 사막의 유목민이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의 침입을 보여주는 이러한 표현보다 더 적절한 표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여리고의 초기 청동기 시대(Early Bronze period) 말기 지층에서 나온 검은 재의 두꺼운 층.

.텔 도단(Tel Dothan). 구약성경 도시들의 폐허들을 포함하고 있는 전형적인 구릉지.


아직도 더 많은 관련성

그 다음(두 번째)에는 이스라엘 왕들의 치하에 의한 풍요와 권력의 시대가 있었다. 제2-B 중기 청동기(Middle Bronze II B) 시기와 관련해서 저명한 이스라엘의 고고학자인 마자르(Amihai Mazar) 박사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중기 청동기의 건축물들은 대부분 혁신적이고 독창적이다. 이 시기의 대규모 요새화와 함께 이것은 바로 번영하는, 그리고 부유한 도시 문화를 입증하고 있다. 궁전과 사원의 규모는 이 시기의 전제정치(autocracy)와 신권정치(theocracy)에 의한 부와 권력이 집중되어 있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5]


뒤이어(세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앗시리아(Assyria)와 바벨론(Babylon)에 포로로 끌려갔던 국외추방이 있었다. 앗시리아의 이스라엘 정복이 있은 직후,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너희 땅은 황무하였고 너희 성읍들은 불에 탔고 너희 토지는 너희 목전에 이방인에게 삼키웠으며 이방인에게 파괴됨같이 황무하였고” (이사야 1:7). 따라서 우리는 그 다음 지층인 후기 청동기(Late Bronze Age) 지층에서 인구감소의 증거를 찾아야만 했고, 결국 찾게 된다.


이스라엘의 고고학자인 핑클스타인(Finklestein)은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제 2-B 중기 청동기 시기에 전 국가는 번창하였고... 요새화된 도시들, 마을들, 개인 농가들이 전 지역에 건설되었다... 제2 중기 청동기의 엄청난 번영과는 대조적으로, 후기 청동기 시대는 정착하는데 심한 위기가 있었음을 특징적으로 보여준다... 게다가 거주가 지속되었던 장소들의 크기가 자주 줄어들었다.” [6]


네번째는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추방지로부터 그들의 원 거주지로 이동하는 귀환의 시대가 있었다. ”온 회중(돌아온 자)의 합계가 사만 이천삼백육십 명이요” (에스라 2:64). 핑클스타인은 ”제 1기 철기시대(Iron I period)는 다시 한번 구릉에 자리한 국가의 극적인 인구변화를 목격케 하는데, 이번에는 정반대 방향으로의 변화이다.” 라고 말한다 [7]. 그리고는 고고학자들의 틀린 연대기 때문에 직면하게 되는 딜레마를 강조하고 있다. ”... 제2기 중기 청동기, 후기 청동기, 제1기 철기시대... 에는 만족할만한 답변을 요구하는 두 개의 심각한 질문이 제기된다. 왜, 그리고 어느 곳으로 제2기 중기 청동기 시대의 인구들, 즉 사실상 구릉 지대의 모든 주민들이 ‘사라졌는가’? 제1기 철기시대에는 수백 개의 장소에 자리 잡은 사람들이 어디로부터 ‘나타나게’ 된 것인가?”[7] 만일 핑클스타인이 그의 연대기를 바꾸었다면, 곧 그 답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그것은 위험과 고난의 시기였다. 건축 활동은 느렸다. ”성을 건축하는 자와 담부하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느헤미아 4:17). 그런데 이 시기는 라자르가 가난의 시기라고 주장하던, 그래서 솔로몬의 왕국과는 적합하지 않다고 그토록 크게 나팔을 불어대던 초기 철기시대였다. 라자르씨, 어떤 면에서 당신의 말은 맞는다. 그것은 솔로몬의 통치 시기와 일치하지 않지만, 만약 당신의 연대기를 정확히 조정한다면, 포로생활로부터의 귀환한 시기와 정확히 맞게 되는 것이다.


바르게 이해하기

물론 하나님의 절대 실수가 없으신 말씀에 맞추어 인간들의 부정확한 견해를 변경해야 하는 것은 타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연대기의 개정(revision)은 이와는 독립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고, 어떤 임의적인 ‘속임수’ 같은 도전에 대한 답변이 될 수 있다. 다음의 세 가지 관점을 고려해 보라.

1. 개정된 연대기는 분산된 많은 지역들에서의 성경적 기록과 현저하게 일관성을 보여주는데, 이로써 개정의 타당성을 더 한층 확인해 준다. ‘해결하는 방법’이란 이름의 아래 박스 글을 보라.

2. 고고학적 지층들에 관한 ‘표준’ 연대기는 지층들 자체로부터의 정보가 아니라, 단순히 이집트 왕조(dynasties of Egypt)와의 대비를 통해 결정되었다.

3. 일부 학자들은 이제 이 연대기에 도전하고 있다.


피터 제임스(Peter James)가 쓴 책 ‘어둠의 세기(Centuries of Darkness)’라는 책의 서언에서, 저명한 케임브리지 교수인 콜린 렌푸르(Colin Renfrew)는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인류 역사상 중요한 국면에 대한 기존의 연대기들은 수 세기동안 오류투성이 였다. 따라서 역사는 다시 재기술 되어야만 할 것이다. 나는 이 책에서 혁명적인 제안을 하고자 한다... 나는 그것에 대한 결정적인 분석이 옳으며, 현재 연대기의 혁명이 진행되고 있는 중임을 느끼고 있다.”[8]


그렇다면 고고학의 역사는 다시 쓰여져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성경의 기록을 지지하는 훌륭한 역할을 할 것이다. 다윗과 솔로몬은 실제 존재하였고, 팔레스타인과 주변 지역을 지배했던 한 위대한 국가의 성공한 건축자들이었다.


*데이비드 다운(David Down)은 이스라엘 고대유물 당국과 함께 이스라엘에서 정기적으로 발굴작업에 참여하고 있는 고고학자이다. 그는 9개의 다른 지역을 발굴했고, 현재 ‘발굴(Diggings)’이란 학술지와 ‘고고학적 발굴(Archaeological Diggings)’이란 잡지의 편집인이자 발행인이다.



References

1. Lazare, D., The Financial Review, 28 March–1 April 2002, pp. 1–2, 8.
2. Ref. 1, p. 8.
3. Pierce, L., The forgotten Archbishop, Creation 20(2):42–43, 1998; In the days of Peleg, Creation 22(1):46–49, 1999.
4. Kenyon, K., Archaeology in the Holy Land, Ernest Benn Limited, London, p. 134, 1965.
5. Mazar, A., Archaeology of the Land of the Bible, Double Day, New York, p. 213, 1990.
6. Finklestein, I., The Archaeology of the Israelite Settlement, Israel Exploration Society, Jerusalem, pp. 339–341, 1988.
7. Ref. 6, p. 341.
8. James, P., Centuries of Darkness, Pimlico, London, pp. XIV, XVI, 1992..


다윗왕에 대한 유물

아브라함 비란(Avraham Biran)은 27년 동안 북 이스라엘의 고대 댄(Dan) 지역에서 발굴을 했던, 경험이 풍부하고 인정된 이스라엘의 고고학자이다. 그는 1994년에 쓴 그의 책 ‘성서의 댄(Biblical Dan)’에서, 아람어로 쓰여진 부서진 석비(stela, 비문 따위가 있는 돌기둥)를 발견했다고 보고했다. 이 석비의 연대는 BC 8세기의 3/4이 지난 시점으로 추정되며, 벽의 충전물로 단순히 사용되었는데, 필적 형태로 보아 원래 글씨는 BC 9세기에 새겨진 것으로 제안되었다.

이 비문에는 ‘다윗의 집(House of David)’으로 해석될 수 있는 ‘BTH DWD’ 란 표현이 있었다. [1] 이것은 다윗과 그의 집(가족)이 BC 9세기에 존재했다는 상세한 성서적 역사기록을 명백하게 확증하는 것이었다. 비평가들은 당황하게 되었다. 처음에 그들은 그것이 벧세메스(Bethshemesh, House of the Sun) 또는 베들레헴(Bethlehem, House of Bread)과 같은 단순히 장소의 명칭이라고 말했었다. 이 제안에서 유일하게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벧세메스와 베들레헴은 알려진 장소이지만, 벧스데이비드(Bethdavid) 라고 불리는 도시는 없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필사적으로 성경을 불신하기 위해서, 일부 비평가들은 비란이 석비를 위조했다고 비난했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을 지지하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


Reference

1. Biran, A., Biblical Dan, Israel Exploration Society, Jerusalem, pp. 275–278, 1994. 



해결하는 방법

성경은 상세한 연대기를 포함하고 있는 하나의 역사적 문서(historical document)이다. 그러한 하나의 문서가 다른 출처의 (예를 들어 4개의 분리된 지역(사건)에서의) 연대기 정보와  ‘시기가 동일하지 않을(out of synch)’ 때, 한 부분(사건)의 연대를 다른 연대기에 맞추어 조정한다면 이들 네 부분이 모두 동시에 잘 조화되고 들어맞는다면, 이것은 조정의 타당성을 지지하는 강력한 증거가 된다.

사건 1(Event 1)을 상황 1(Circumstance 1)에 맞추기 위해서는, 연대기 2(Chronology 2)를 ‘x’ 년 만큼 앞당길 필요가 있다  (아래 그림 참조).

3개의 추가적인 사건들의 맞추기가 이루어지고 더 이상의 불일치가 없으므로, 이것은 개정의 필요성을 확증하는 강력한 독립적인 증거가 되는 것이다.


Related Articles


Further Reading


*참조 :

Did I Find King David’s Palace? (Mazar, Eilat. Biblical Archaeology Review, Jan/Feb 2006)

https://www.biblicalarchaeology.org/daily/biblical-topics/hebrew-bible/did-i-find-king-davids-palace/

Egyptian history and the biblical record: a perfect match?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857

The problems of traditional chronology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21_2/j21_2_44-47.pdf

Evidentialism–the Bible and Assyrian chronology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02

이스라엘 학자 '다윗왕 궁전터 발견”주장 (2013. 7. 22.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130722001500009

이스라엘 고고학계, 다윗왕 궁전 터 발견 주장 (2013. 7. 23. 기독일보) 

https://www.christiandaily.co.kr/news/13355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false-history-out-with-david-and-solomon

출처 - Creation 24(4):16–19, September 2002.

David Catchpoole
2005-12-31

잉카문명의 매듭 암호 키푸가 해독되다. 

(Unravelling the knotty khipu code)


      창조론의 선구자 아더 윌더스미스(Arthur Wilder-Smith, 1915–1995) 교수가 DNA에 저장되어있는 정보를 설명하기 위해서, 어떤 암호(예를 들면 모르스 부호)에 따라 끈(rope)에 나있는 매듭(knots)의 예를 제시하는 것을 처음 들었을 때[1], 나는 그것을 하나의 어색한 비유라고 생각했었다. 어느 누가 매듭지어져 있는 끈이 암호화된 정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우연히 한 백과사전[2]을 보게 되었고, 누군가가 이미 그것을 생각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생각을 실행에 옮겼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누구였을까? 그들은 남아메리카의 잉카(Incas) 문명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키푸(khipu) (또는 매듭(knot)을 의미하는 퀘추아(Quechua)족 단어인 ‘quipu’)로서 알려져 있는 정교한 매듭지어진 끈(knotted strings)의 형태로서 정보를 저장하고 있었다. 과학사가(science historian) 였던 르랜드 로크(Leland Locke)는 1920년대에 키푸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라는 것을 연구하였다. 그는 그것들이 일종의 직물 주판(textile abacus)으로서, 그 매듭들은 계산(calculations)을 저장하는 데에 사용되었음을 보여주었다.[3, 4]

그러나 로크의 새로운 발견도 스페인의 정복으로부터 남게 되었던 600여 개의 키푸 모두를 해독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최근 몇 십년 동안 많은 키푸들이 ‘명백하게 비 숫자적(clearly nonnumerical)’이었다는 증거들이 꾸준히 증가하게 되었다. 몇몇 연구자들은 잉카의 매듭지어진 끈들은 하나의 기록된 언어(a written language, 결승문자)일 수 있다고 제시하고 있다. [4,5]  


그리고 이제 하버드 대학의 게리 어톤(Gary Urton)은, 잉카 사람들은 현대 컴퓨터가 발견되기 500년 이상 전에 복잡한 2진 코드(binary code)를 사용하여 키푸에 정보를 저장했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6개의 2진 코드를 선택하는 방법에는 매듭의 방향(앞쪽 또는 뒤쪽), 끈의 회전과 가닥, 끈의 종류(무명실 또는 양모) 등이다. 24개의 끈 색깔도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에, 각 매듭은  1,536개 (즉, 24 x 26)의 가능한 ‘정보 단위(information units)’ 중의 하나로 암호화 될 수 있었다. 이것은 평가되고 있는 1000-1500 개의 수메르인의 설형문자(Sumerian cuneiform symbols)들보다 더 많은 것이고, 이집트의 상형문자(Egyptian hieroglyphic signs)들의 수보다 두 배는 더 많은 것이다.


그러나 현 단계에서도 어톤은 아직도 키푸 암호를 완전히 해독하지는 못했다. 완전한 해독을 위해서는 키푸와 일치되는 알려진 언어로 된 문서의 발견을 필요로 한다. 즉 이집트의 상형문자를 해독 가능하게 했던 ‘로제타 석(Rosetta stone)’과 유사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4, 6] 한편, 그는 키푸 암호 안에 저장되어있는 많은 정보들을 해독하기 위해서, 21세기 컴퓨터 기술을 사용해서 매듭지어진 끈에서의 공통적인 패턴(common patterns)들을 조사하였다. 어턴이 정보의 부분을 공유하고 있는 3개의 키푸를 발견했을 때, 그는 그것을 ”이것은 키푸가 한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나타내는 꽤 강력한 증거입니다” 라고 설명했다. 이와는 반대로, 거기에는 공유되는 코드(shared code)가 있었다. [5]


잉카 사람들이 이러한 정교하고 수학적인 복잡한 암호코드를 공유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초기의 인류가 원시적이고 세련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신, 잉카 사람들은 고도로 통합적이고 기능적인 문명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정교한 키푸가 증거하고 있는 것처럼, 매우 지적이었고, 창의력이 풍부한 사람들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사실, 실과 같은 가닥에 어떠한 암호로서 복잡한 정보를 저장하는 방법은 잉카 사람들이 키푸를 발명하기 오래 전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들 자신의 유전자 안에 들어있는 DNA 나선이다. 여기에는 사람 몸체 전부를 만들 수 있도록 하는 정보가 들어가 있고, 최초의 남자와 여자가 창조된 이후 수많은 세대와 세대를 지나도록 성공적으로 전달되고 있는 것이다.[7] 그래서 하나님이 그것을 첫번째로 생각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글을 읽고 있는 누군가가 만약 하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다면, 이것을 생각해 보라. 암호 체계는 오직 지성(intelligence)으로부터만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물질들이 우연히 저절로 암호를 만드는 일은 결단코 결단코 일어날 수 없다!!! 키푸 암호가 그 발명자의 지성을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DNA 암호(키푸보다 극도로 복잡하고 풍부한 정보)도 그 발명자의 지성을 가리키고 있는 지표(indicator)인 것이다. DNA는 물질들로부터 결단코 우연히 만들어질 수 없다. DNA에 간직되어 있는 정보는 어떤 곳(somewhere)에서부터 와야만 했다.[8]


태초에, 정보(information)가 있어야만 했다. 태초에 지성(intelligence)이 있어야만 했다.

      ”태초에 하나님이......”



References and notes

1. See also Wilder-Smith, A.E., The scientific alternative to neo-Darwinian evolutionary theory, TWFT Publishers, California, USA, pp. 74–75, 1987, which mentions the Inca code.
2. Funk & Wagnalls Standard Dictionary of the English Language, International Edition, Funk & Wagnalls, Vol. II, p. 1036, New York, USA, 1968.
3. What is a khipu? <www.anthropology.wisc.edu/chaysimire/titulo2/khipus/what.htm>, 28 August 2003.
4. Mann, C.C., Cracking the Khipu Code, Science 300(5626):1650–1651, 2003.
5. Lorenzi, R., Inca written language hidden in code? Discovery Channel, <http://dsc.discovery.com/news/briefs/20030630/inca_print.html>, 29 July 2003.
6. The Rosetta stone contained Greek (in demotic and ordinary scripts) as well as Egyptian hieroglyphics—this allowed J.F. Champollion to decipher the latter in 1822.
7. See Sarfati, J., DNA: marvellous message or mostly mess? Creation 25(2):26–31, 2003.
8. Gitt, W., In the Beginning was InformationCLV—Christliche Literatur-Verbreitung e.V., Bielefeld, Germany, 1997.


*참조 : 고대 잉카 매듭은 회계 보고서 : 하버드 연구진, 결승문자 세계최초 해독
http://www.busannews.com/news2000/asp/news.asp?gbn=v&code=0420&key=20050813.22014215136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7/i3/khipu.asp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4437/

출처 - Creation 27(3):40–41, June 2005

구분 - 4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3053

참고 : 8|9|591|2520|2533|601|732|1902|1903|164|2040|1424|2660|1612|328|1981|1905|1635|1926|354|585|589|3765

유종호
2005-07-14

진화론적 가설과 고고학적 사실의 비교


      지금까지 인간의 기원과 관련하여 진화론적 신념 또는 신조에 대한 가설을 소개하였다. 그리고 인간의 기록들과 역사와 고고학적 발굴에 의해 밝혀진 그들의 발달된 문명의 유적에 나타난 증거들과 사실들을 대조하여 제공하였다.


짐승인 원숭이 세계로부터의 인간이 진화되었다는 이론과 전 세계적인 규모로 갑자기 나타나는 문명의 역사적 사실을 비교하여 볼 때, 그리고 진화론적 신념에 입각한 인류학(인류의 기원 연구)을 전 세계에 걸쳐 동시다발적으로 갑자기 나타나는 고도로 문명화된 인간들을 보여주는 고고학과 비교해 볼 때 전혀 상관관계가 없다. 고고학적 사실들은 진화론자들의 추정과 가정을 반박하고 있다.


만일 리키의 가족과 다른 진화론자들이 홍수 전에 아프리카 평원을 유랑했던 사람들의 화석을 찾아다니는 대신, 인간의 기원에 대한 그들의 연구(인류학)를 고고학 연구에 돌렸더라면 그들은 자기들이 찾고 있는 우리의 조상들을 찾아내었을 것이다. 그들이 이집트, 수메르, 바벨론, 인더스계곡, 중앙아메리카와 페루 등지에서 초기 고대인들의 생활과 문화를 연구해 보고 도시들과 각종 유물들과 가공품들을 발굴해 보았더라면, 그들은 우리의 조상들이 원숭이와 같은 동물에서 유래된 것이 아니라, 오늘날의 우리들도 경탄해 마지않는 피라미드와 하늘에 닿을 듯한 탑들과 기타 구조물과 건축물들을 건설했고, 고도로 지능적이고 발달했던 인간들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을 것이다.


고고학은 창세기의 첫 열한 장이 진술한 것과 일치하고, 또 고고학이 말하는 인류의 기원은 성경에 기록된 초기 역사에서 다루어진 것과 일치하고 있다. 진화론이나 창조론은 둘 다 실제로 관찰하고 실사하고 증명된 실험에 의해서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성경은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며, 고고학과 다른 역사적 기록으로 검증되고 있다. 성경이 제시하는 역사는 고고학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쓴 모든 것이 A. M. 레윙클 교수 저 (홍수)라는 책에 매우 아름답게 표현되어 있다. 나는 그 책에서 다음 내용을 인용해야겠다. 42쪽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성경은 대부분의 고대 역사적 사건들에 대한 신빙성이 있고 정확한 기록임을 자체가 증거하고 있다. 사실상 고대사의 많은 부분들에 대하여, 우리가 보유하고 있는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다.”

고고학과 유물발굴과 정직한 역사 연구는 성경이야말로 절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근거의 책이라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그런데 현대 역사가들이 교과서들을 집필할 때, 이런 근거자료들을 전적으로 무시하고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취급한다. 그러나 이런 태도는 비과학적이고, 비학자적이며, 지적인 부정직 그 자체이다. 여러 갈래의 인종들이 동굴에서 살았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인간 종족의 큰 부분이 야만인 수준으로 퇴보했다는 사실도 물을 필요가 없다.


그러나 이 사실로부터 전 인류가 동굴 인종에서 유래되었다거나, 미개인에게서 진화되었다거나, 미개인 이하의 존재에서 왔다고 결론짓는 것은 근거 없는 결론인 것이다. 이 얼마나 훌륭한 이야기인가!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49

참고 : 3148|3233|1412|1413|2323|2525|512|1805|3974|3945|3872|3372|303|3249|4148|4071|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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