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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2005-07-14

고대문명들과 현대인 

: 고대인의 전지, 계산기, 점화전 

(Ancient civilizations and modern man)

David Criswell 


     고대 문명들은 많은 진화론자들이 믿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발달되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Ancient Egypt)는 최초 문명들 중 하나로 여겨지나, 그 업적들의 정교함은 오랫동안 과학자들을 혼란하게 해왔다. 피라미드의 건설에 나타난 그들의 수학적 정확함이 그러한 하나의 예이다. 이집트인들은 그러한 건축을 가능하게 할 정도의 발달된 수학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고 오랫동안 믿어져 왔었다. 그러나 피라미드의 수수께끼도 다른 고고학적 발견들과 비교된다면 그 가치가 무색해진다. 

컬럼비아 대학 전기화학과의 콜린 핑크(Colin Fink) 박사에 따르면, 고대 이집트의 구리로 도금된(copper-coated) 많은 공예품(artefacts)들은 전기화학용품(electro-chemical exchange)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1] 이것은 화학 원소들의 혼합물을 포함하고 있는데, 한 물체가 여기에 담가지면 전기화학적 전하가 물체의 표면에 입혀진 구리를 통해 흐른다는 것이다.   


.2,000년 된 파르티아(Parthian) 시에서 발굴된 꽃병과 같은(vase-like) 공예품. 독일의 고고학자 빌헬름 쾨닉(Wilheilm Konig) 등의 과학자들은 그것이 일종의 전지(battery)였다고 생각하고 있다.

‘사이언티픽 아메리카(Scientific American)’ 지의 한 기사는 이 기술에 관하여 ‘이후에 소실되어 지난 세기에 패러데이(Faraday)에 의해서 재발명 될 때까지 묻혀있던 비밀’ 이라고 언급하고 있다.[2] 클레오파트라 시대까지 페르시아인들도 이 원시 형태의 전지(electric battery)를 개발했었다.[3] 전지는 10cm (4 inch) 크기의 작은 원통형으로 얇은 구리를 이용하였고 금판(gold-plate) 세공을 하였다. 사이언스 다이제스트(Science Digest) 지는 이 전지를 ‘인류 최초의 전기의 산업적 이용’이라고 언급하였다.[4]

더욱 최근의 발견은 몇몇 사람들이 2000년 된 고대 이집트인의 무덤에서 모형 글라이더(model glider)를 발굴한 것이다.[5] 이전 NASA에서 일하던 윌리암 코리스(William Corliss)는 이것은 ‘매우 진보된 형태의 푸시형-글라이더(push-glider)’의 축소 모형이라고 하였다.[6] 코리스는 이 ‘비행기’가 지금의 글라이더처럼 공기 위에 미끄러져 다녔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 모델을 연구한 과학자들은 그 균형 잡힌 설계비율이나 디자인이 정말로 비행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것은 모형 글라이더인가? 일부 사람들은 그렇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이것은 2000년 된 이집트인의 무덤에서 발굴되었다.

한편 인근 그리스에서는, 그리스 사람들이 심지어 행성 운동(planetary motions)들을 계산할 수 있었던 극도로 정교한 계산 장비를 가지고 있었다. 일부 과학자는 그것을 초기 ‘컴퓨터’ 라고 불렀으나, 다른 이들은 그것을 시계(clock)의 한 형태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시대를 훨씬 앞선 공학적 기술을 나타내는 물건들이었다.[7]


.이것은 정교한 계산 장치(calulating device)의 복제품으로 예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침몰한 그리스 배에서 출토되었다.

성경은 이같은 발달된 고대문명들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는가? 회의론자와 많은 세속적인 과학자들은 성경의 역사적 확실성에 오랫동안 반대의견을 제시해왔었다. 이러한 상황 하에서, 많은 기독교도인들은 바벨(Babel)이 문명의 시작이었고, 홍수 이전의 노아와 그 가족들은 단순히 원시적인 부족 사회에 의해서 지배되는 한 지역에 살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견해는 성경과 조화될 수 없다. 방주와 같은 거대한 배를 건조하는 데에 기술적 복잡성이 문제인 것 같으나, 더 큰 문제는 어떻게 노아가 당시 제한된 자원을 가진 사회에서 36개의 테니스 코트의 갑판크기를 갖는 거대한 방주를 제조할 수 있었느냐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더 크고 발달된 문명이 필요했을 것이다.


전 세계의 문명 흐름

사도 베드로는 분명히 홍수가 전 세계를 뒤덮었음을 믿고 있었다 (베드로후서 3:5-7). 더욱이, 인구 성장률에 대한 조사에 의하면, 지구는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대략 1,700년 동안에 적어도 10억 명의 인구가 있었을 것으로 나타내고 있다.[8] 이것은 확실히 전 세계적으로 문명들이 분포했음을 제시하고 있다.

과학자들이 홍수 이전 시대의 문명들에 대한 직접적인 증거들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 아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전체 고대 세계가 대홍수로 파괴되었다고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심지어 이 파괴를 지구가 불로 파괴될 때와 비교하기도 한다. (베드로후서 3:5-7). 대홍수는 사실상 고대 인류의 모든 흔적들을 완전히 파괴하였다. 만약 있다면 아주 빈약한 흔적들만이 발견될 수 있다. 그러나 이들도 중요하지 않은 이례적인 것으로 치부되고 무시되어 버렸다.      

그러나 이들 이례적인 발견들은 고대 문명들이 몇몇 이후의 문명들보다 훨씬 더 발달되었을 수도 있음을 가리키고 있다.

플로리다에서는, 근로자들이 도라호(Lake Dora)와 유스티스호(Lake Eustis) 사이에서 운하를 파는 동안에 고대 도시의 흔적들을 발굴하였다. 이 도시는 해수면보다 훨씬 아래의 낮은 곳에 존재했다고 사이언티픽 아메리카(Scientific American) 지는 보고하였다.[9]

또 다른 예는 북극 해안(Arctic coast)에 묻혀있던 거대한 도시의 유적들이 발견되었다.[10] 오늘날 이 지역은 추운 생활환경으로 인하여 여기 저기 흩어져 살고 있는 에스키모들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람들이 살고 있지 않다. 그러나 고고학자들은 이 도시의 인구가 최소 4,000명 이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11] 이러한 도시의 크기는 현대의 조사자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12]    

많은 다른 예들이 있다. 정말로, 많은 발굴들이 이들과 유사한 ‘비정상’ 적인 발견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다. 대부분의 진화론자는 그들의 진화론적 시간 척도를 위협하는 어떠한 것도 무시해왔으나, 증거를 무시하는 것은 단순히 진실을 무시하는 또 다른 방법일 뿐이다.

이러한 문명들은 정말로 존재했으며, 고고학자들은 고도의 과학적인 성과를 가리키는 많은 기묘한 인공유물(artefacts)들을 발견했다. 아마 이들 중 가장 독특한 것은 수 세기 전 발굴된 것으로 암석에 박혀있는 기묘한 실린더형의 물체일 것이다. 많은 연구들에 의해 밝혀진 바에 의하면, 이 실린더는 코일이 감겨진 구리에 의해서 증거되는 것처럼, 전기를 일으키는 기계적 장치인 것으로 밝혀졌다. 몇몇 연구자들은 그것은 다른 목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지만, 오늘날의 점화전(spark plug)과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13]


화석들이 엉겨붙어있는 암석 안에서 발견된 실린더(cylinder). 몇몇 연구자들은 그것은 현대의 점화전(spark plug)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한 증거들은 성경 비판자들이 원하는 것처럼 숨겨질 수가 없었다. 인류는 발달된 문명을 형성하기위해 그들의 지능이 진화하기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이미 발달되어 있었던 것이다.


축적될 수 없었던 기술

창세기 11:6-9에는 하나님이 바벨에서 인류의 언어를 혼잡케 하시면서,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이것은 사람들이 문명과 문화 사이의 교류가 마침내 정점에 도달한 것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술은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노아의 세대는 꽤 발달되어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수 없었다.

베드로 사도는 초대 교회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3:5-­7). 

고대 인류(우리의 조상들)의 명예를 훼손하기보다는, 우리는 스스로를 겸손히 여기고, 땅 속에 희미한 유물들로 남아있는 문명 이전의 역사로부터 하나의 교훈을 배워야 한다. 우리들이 구축하는 것들은 먼지처럼 사라질 것이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시는 왕국은 영원히 계속될 것이라는 것이다.

 


*David Criswell, B.A., has written for Bible-Science Newsletter and other publications, and has been working as a professor's assistant at a college in Texas, USA. He is currently completing his Master of Divinity degree.


Web links
Q&A: History

 

REFERENCES AND FOOTNOTES

1. William Corliss, Ancient Man: A Handbook of Puzzling Artifacts, The Sourcebook Project, Glen Arm (Maryland), 1978, p. 443.
2. ibid.
3. Harry M. Schwalb, 'Electric Batteries of 2,000 Years Ago', Science Digest, Vol.41 No.4, April 1957, pp. 17­~19. See also Creation magazine, Vol.16 No.2, March­May 1994, pp. 10­~13.
4. Ibid, p. 18.
5. Ref. 1, pp. 454­~455.
6. Ibid.
7. Derek J. de Solla Price, 'Unworldly Mechanics', Natural History, Vol.71 No.3, March 1962, pp. 8­17.
8. John Whitcomb and Henry Morris, The Genesis Flood, Presbyterian and Reformed, Phillipsburg, New Jersey, 1961, pp. 25­~27. At the time of the Flood there could have been more than three billion people around the globe, assuming a population growth of only 1.3% per year. The current average is 1.8 per cent. Population studies are a big problem for old-Earth advocates. There are simply not enough catastrophes in history to keep man's population growth low enough to allow for 100,000 years or more.
9. Ref. 1, pp. 83­~84.
10. Froelich G. Rainey, 'Mystery People Of The Arctic', Natural History, Vol.47 No.3, March 1941, pp. 148­~155.
11. Ibid.
12. Ibid, p. 148.
13. A.L. Rawson, Transactions Of the New York Academy Of Science, Vol.11, pp. 26~­29, as cited by J.R. Jochmans, Strange Relics From The Depths Of The Earth, Forgotten Ages Research Society. Reprinted with permission from the Bible-Science Association, Minneapolis, 1979, p. 17.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ancient-civilizations-and-modern-man

출처 - Creation 17(2):40~43, March 1995.


미디어위원회
2005-07-13

인류 역사의 회고 3 

: 유럽, 영국, 아프리카, 아메리카, 미국, 멕시코, 페루, 남아메리카

유종호


유럽 대륙

유럽 본토에 있어 BC 3,000-1,000년 기간에는 발달된 문명이 나타나지 않는다. 러시아와 유럽의 다른 지역에서 정착민의 증거가 포착되기는 하지만, 북부 지역의 유목민들은 숲과 초원에서 좋은 사냥 여건과 식량 확보가 손쉬웠기 때문에 이 지역들은 조기에 발달되지 않았다. 이 사람들은 유럽인들이 들어오기 전에 인디언들과 함께 북미주로 이동했다. 진화론자들은 수십만 년이나 수백만 년 동안 동굴과 엉성하게 지은 거처에서 살면서 진화해왔다고 가정되는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들에게 미련을 가지고 있다. 오히려 이들은 유랑했던 관계로 소집단을 이루고 근친혼을 하면서 살았다. 그들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 퇴보하며 조상들의 많은 능력과 노하우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남아메리카의 남단에 살던 원주민들이 그랬던 것처럼 찰스 다윈이 그들을 보았을 때 인간인지를 의심할 정도로 퇴보해 버렸다.

사실은 네안데르탈인과 크로마뇽인들은 육체적으로 현대인들과 동일한 사람들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찰스 버릿은 그의 저서 '잃어버린 세계로부터의 신비들' 이라는 책에서 '대부분의 인류학자들에 의하면, 원래의 크로마뇽인은, 뇌 용적이 현대인보다 크다.”고 했다. 이들은 유럽을 방황하던 바벨탑 후손임이 확실하다.

인류의 초기에 유럽의 대부분 특히 북부에는 거의 도시나 화폐나 정부나 문자가 없는 부족들이 살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생계는 사냥, 수렵, 채집 등에 의하거나 곡식, 채소, 목축 등의 간단한 농사를 지어서 꾸려갔다. 장인(匠人)들은 항아리를 굽고 청동 기물을 만들었다. 어떤 지역에서는 직조(織造), 피혁 작업, 도자기, 자수(刺繡) 등의 작업이 행해졌다

진화론자들은 인간이 원숭이에서 진화하는 과정에서 동굴에서 거주했다는 주장을 선호한다. 그러나 동굴과 바위 은신처는 매우 단기간 동안에 문명인들이 사용했다. 마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콜로라도의 남서부나 다른 남서부 주들에서 그렇게 한 것처럼 그들은 대부분의 기간 동안 개방된 곳이나 동굴 입구 인근에서 살았다. 그들은 유랑하는 동안 영국의 전설적인 로빈 후드나 아메리카 인디언처럼 천막 등과 같은 이동식 거처를 가지고 다녔다.

어떤 동굴에서는 들소, 순록, 말 등의 그림들이 발견된다. 프랑스의 루싹 근처의 동굴에는 모자를 쓰고 핸드백을 들고 현대식 옷을 입은 젊은 숙녀의 스케치가  있다. 원시인으로 추정되는 사람들의 대열에서 발견된 모습이다. 선사 시대 역사 작가인 로버트 실버버그는 소위 석기시대 그림일 가능성을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동굴 벽화들은, 원숭이보다 조금 작은 제4기 인간이라고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있다. 그들은 위대한 솜씨를 가지고 있었음을 시사할 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멋진 차림의 신사숙녀들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즉 원시인은 연속성과 종교와 미술을 가진 조직된 사회를 소유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서유럽의 최초 거민들이 기독교 시대까지는 다시는 이루지 못할 만큼 예술적 성취를 높였음을 우리가 알게 되면 당황하게 된다. 그것은 인간이 야만으로부터 발흥하여 꾸준하게 발전되어 왔다는 이론을 반박한다.”


영국

영국과 북프랑스에서 소위 원시인들이 이룩했다는 믿을 수 없는 많은 위업들을 발견한다. 그 위업들은 진화론자들을 심히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거석(巨石)들 또는 일반적인 영어로 영국과 프랑스의 거대한 바위들이 있다.

내셔날 지오그래픽이 펴낸 '고대 세계의 신비들' 이라는 책은 이 바위들 중에 가장 오래된 것은 BC 4,500년경의 것이고, 가장 최근의 것은 그로부터 약 3,000년 후의 것이라고 주장 한다. BC 4,500년경은 그 거석들이 대홍수 이전 사람들에 의해 세워졌고 노아홍수의 퇴적암이 그것들을 덮지 않았다고 해야만 가능한 일이다. 이 바위들은 선돌이라 칭하는 낱개로부터 거석주군(巨石柱群)이라 부르는 거대한 돌무더기 집단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태를 이루고 있다. 한 곳에 가장 많은 숫자의 선돌이 있는 곳은 프랑스의 브리타니에 있는 카르낙 근처에 있다. 3,000개 이상의 바위들이 2.5마일에 걸쳐 11-12 줄로 나란히 늘어서 있다. 그랜드 멘허라고 하는 한 선돌은 무게가 380톤이고 벼락을 맞아서 다섯 조각으로 부서지기 전에는 그 높이가 약 69피트(21m)였다. 여기서 다시 한 번 묻거니와 어떤 원시인이 어떤 기계의 도움도 없이 이렇게 거대한 바위를 움직이고 세울 수가 있겠는가? 이것들이 우리들이 오늘날 의아하게 여기는 소위 원시적(?)인 조상들의 놀라운 위업들이다.


아프리카

아프리카에는 이집트 이외에는 홍수 후에 발달된 문명이 없지만 항상 지속적으로 수렵, 사냥, 과일과 다른 식량의 채집을 하기 위해 이동해 다녔던 아프리카 유랑 족들이 있었다. 거대한 사하라 사막 때문에 남쪽으로 이주해 와서 문명을 형성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리키와 다른 진화론적 인류학자들이 찾아내고 있는 원숭이와 다른 동물들과 인간들의 뼈들은 분명히 가공스럽고 어마어마하고 진흙투성이이고 거칠었던 노아 때의 홍수 속에 묻혔던 동물들과 인간의 화석들이다. 이런 화석들은 어떤 계기로 특히 동부 아프리카의 리프트 계곡에서 노출되었다. 그곳에서는 콜로라도 강 유역에서처럼 홍수 퇴적암의 양쪽 벽이 드러났다. 아프리카가 농업과 산업분야에서 발달된 것은 유럽인들의 활동으로 인하여 겨우 최근의 1,000년 내외에 일어난 일이다.


아메리카

여러 가지 정황으로 미루어 볼 때 바벨탑 사건 후의 어느 때에 인간들이 2개의 루트를 따라 유럽과 아시아로부터 아메리카로 이주하였을 것으로 여겨진다. 가장 확실한 것은 베링해를 수 마일 가로지르는 루트였다. 그 길은 오늘날에도 에스키모들이 어렵지 않게 건너다닐 수 있다. 그곳으로부터 남녀의 사람들이 보다 따뜻한 미국과 중앙아메리카로 단기간 동안에 남진하였을 것이다. 그들은 남아메리카를 통과하여 계속 유랑하다가 길을 따라서 문화를 형성하였을 것이다. 몇몇 사람들에 의해서 10,000년 이상이나 묵은 야영지의 유적들이 남아메리카의 남쪽 끝에서 발견되었다.

그들은 이 대륙에서 놀라운 속도로  번창할 수 있었다. 원숭이 화석에 대해서는 어떤 증거도 없다.

이집트나 수메르 기타 지역에서 분명히 드러난 것처럼 홍수 이후 사람들이 고도로 발달한 후, 미노아나 페니키아인들과 같이 쉽게 보트를 만들어서 콜럼버스보다 수백 년 전에 태평양을 횡단했다. 배를 타지 않았을지라도 태평양의 조류를 타고라도 북대서양 해류를 따라서 유럽으로부터 상당히 쉽게 여행이 가능했을 것이고, 흔하게 불던 바람을 타고 남아메리카의 북동 해안에 도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서인도 제도를 지나서 칼리브해 지역에 도착했고, 도중에 걸프만 국가들, 중앙아메리카, 북부 남아메리카에 상륙하기도 했을 것이다. 이것이 로마의 동전 저장굴이 어떻게 베네수엘라에서 발견되었고, 수백 건의 고대 페니키아 문헌들이 브라질에서 발견되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다. 1986년 10월 31일에 북 미네소타 주 소재 하부 레드호수 인근에서 자갈을 채취하던 노동자들은 인간의 뼈들을 발견했다. 주의 한 고고학자는 그 뼈들이 약 4,000년 전에 매장된 인디언의 것이라고 말했다. 대홍수 이전은 물론, 바벨탑사건 이후에 곧바로 사람들이 북아메리카에서 쉽게 살 수가 있었을 것이다.


미국

미국에 대해서 말하자면, 1492년에 콜럼버스가 최초로 미국을 발견한 것이 아니고, AD 1,000년경의 라이프 에릭슨이 발견했었다. 최초로 유럽으로부터 미국으로 횡단해 와서 상륙한 자들은 프랑스와 영국과 기타 유럽대륙에서 그렇게도 큰 바위들을 세웠던 사람들의 일부였을 것이다. 뉴헴프셔주 북 살렘에 있는 신비의 언덕이라고 부르는 선사 유적지에는 200피트(60m) 높이의 언덕이 있고, 그 정상에 영국과 프랑스에 있는 것과 거의 같이 배열된 22개의 큰 바위들이 있다. 유사한 대형 바위들의 나열들이 중앙아메리카에서도 발견된다. 이 바위 중에 어떤 것들은 조각이 되어 있고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의 아스텍이나 마야나 톨텍의 문명보다도 더 오래 된 것 같다. 그와 같이 거대한 바위들은 페루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멕시코

멕시코의 테후아카 계곡에는 수천 개의 동물 뼈들, 인공적 가공물, 70구의 사람 뼈, 많은 식물들 특히 초기 옥수수의 잔해가 발견되고 있는데, 그 연대는 대략 BC 5,200-3,400년 사이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시기의 멕시코 사람들은 일종의 그림문자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의 책이나 문헌들 일부가 아직 남아 있으나 그들의 그림문자는 거의 해독되지 못하고 있다.

멕시코의 다른 지역과 미국의 서남부, 중남미 등에서 발견되는 문명의 증거들은 멕시코의 아스텍, 과테말라와 유카탄 반도의 정글에 있는 마야, 그리고 안데스 페루의 잉카 등 3곳이 아주 뛰어나다. 이들 지역의 문명의 성취도는 이집트나 수메르 문명과 비견된다. 마야인들은 뉴욕에 최초의 마천루가 건설되기 이전까지는 미주에서 가장 고층 건물이었던 사원을 과테말라의 티칼에 세웠었다. 이 가파른 탑 구조의 사원이 발견되기 이전에는 수백 년 동안 숲 속에 은폐된 채 숲으로 덮여 있었다. 그것은 200피트(60m) 이상이나 높이 솟아 있다. 이 사람들의 사원들은 벽화와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말로 표현되는 언어체계를 발전시켰으나, 아직껏 아무도 그것을 해독할 수가 없다. 그들의 수학 작품들은 해석이 되는데, 그들의 종합적인 필기체계는 그림의 형태로 되어 있다. 그들의 책들은 나무껍질을 두들겨서 만든 종이에 씌어졌다. 1562년 스페인 사람들이 점령한 후 유카탄의 대주교는 그들의 책을 악마의 작품이라고 해서 파괴시켜 버렸다. 미국의 인디언들과 함께 이들 중에는 자기들의 조상들이 동쪽에서 바다로 "거대한 카누를 타고 수 주 동안 떠내려 왔다”는 확신과 전설이 널리 퍼져 있다. 이것은 유럽과 아조레스제도와 칼리브제도 사이에서 섬의 융기 현상이 일어났었다는 확신과 일치하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의 이 모든 사람들은 여러 종류의 채소들을 재배했는데, 그들이 가장 꾸준하게 재배했던 곡식은 시간이 지나갈수록 더욱 생산성이 다양해지는 방향으로 발전된 옥수수였다. 이들은 또한 당시 유럽에서 사용되던 것보다도 정교한 달력도 발명했다. 그리고 달과 행성들과 별들에 대한 지식에도 정통하였다.


페루의 잉카 문명

아메리카 원주민 문명 중에 가장 놀라운 것은 페루 안데스 산 지역의 잉카 문명이다. 이들은 대 도시들과 관개(灌漑) 시설과 고속도로와 놀라운 구조물과 모든 종류의 예술 작품들이다. 그러나 그 위대한 예술 작품들은 잉카문명 이전 사람들에 의해서 만들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페루와 볼리비아에는 잉카시대 이전에 사원들과 요새들과 궁전들이 50-300톤짜리 바윗돌로 건축되었다. 이 바윗돌 중 어떤 것은 직사각형이고 어떤 것은 10-20각의 평면을 이루고 있는데, 바윗돌과 바윗돌은 서로 정교하게 연결되어 있다. 어떤 기계 기술자의 가장 엷은 측정 게이지도 돌덩이들 틈에 끼워 넣을 수 없을 정도로 돌덩이들은 치밀하게 조립되어 있다. 그리고 이 모든 돌덩이들은 시멘트를 사용치 않고 쌓아졌다. 이런 돌덩이들이 어떻게 절단되고 산위로 운반되어 완벽하게 쌓아 맞춰졌을까 하는 것은 큰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이 바윗돌들을 정확하게 장착하기 위해서는 틀림없이 벽에다 몇 번이고 붙였다 떼었다 했을 것이다. 이 모든 바윗덩이들은 정밀하게 맞물려 있는데, 따라서 이 모든 체계는 거의 불가능한 작업이었을 것으로 생각될 정도이다. 잉카문명 이전의 요새들 중의 하나가 페루의 오일란타이탐보(Oilantaitambo)에 있다. 150톤이 넘는 돌덩이들은 약 7마일 떨어진 산에서 켜가지고 운반해온 매우 단단한 안데사이트(安山巖)로 만들어졌다. 어떤 경우에는 1,000피트(300m)의 고도에서 이 돌덩이를 켜서 산 밑으로 내리고 1,000피트 높이의 절벽이 있는 캐년을 건너 운반되고 또다시 1,000피트의 산정으로 끌어 올려서 요새를 구축했던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야말로 인간으로서는 불가능하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분명히 이 사람들은 현재의 우리가 전혀 알 수 없는 기술과 작업방법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아담과 하와,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의 지혜와 지식과 능력들에 대하여 나중에 계속 듣게 될 것이다.

안데스산맥 지대에는 오늘날 우리들을 당황케 할뿐인 그와 같은 요새들과 복합 구조물들이 더 있다. 포장도로와 산맥을 횡단하는 도로망, 산맥을 관통하는 터널들, 성채들(citadels), 지하 공간들, 대형 수조(水槽) 등등을 열거할 수 있다. 그들은 운반에 필요한 모든 장구를 가지고 있었지만, 필수적인 것 한 가지 즉 손수레, 짐마차 또는 전차에 필요한 바퀴는 없었던 것 같다. 아직까지도 운반용 바퀴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나 바퀴가 있기는 했다. 왜냐하면 어린이용 멕시코 장난감에는 바퀴 달린 것이 있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만일 이 사람들이 외견상으로는 불가능한 듯한 건축물들을 세우고 어린이들을 위한 장난감들에 바퀴를 달았다면, 그들은 발달된 수송 장치들에도 바퀴를 달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학자들이 대홍수의 위력과 그 결과들을 더 깊이 연구해 보면, 바퀴들과 기술이 깃든 수많은 인공품들을 수천 피트 깊이의 석회암 지층 바닥에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1967년 4월 10일자 신문들은 콜로라도주 로키포인트 광산 지하 120m(400피트)에서 은 광맥에 끼어 있는 인간의 뼈와 구리로 만든 4인치짜리 화살촉을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이런 많은 것들과 화석들이 지표의 수백 수천 피트 아래에서 발견되어 오고 있다. 이 사람들이 얼마나 발달되었고 지혜가 있었는지를 보여주는 페루의 잉카문명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물건들이 백금으로 만들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기술의 발달된 단계를 보여 주는데, 그 이유는 백금을 녹이는 데에는 섭씨 1,750도의 고온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그렇게 엄청나게 높은 온도를 요하는 고도의 제련 지식을 필요로 했다.

리마의 250마일 남쪽에는 페루의 나스카 계곡이 있다. 계곡 전체는 거대한 동물 형체들로 뒤덮여 있다. 즉 거미들, 새들, 원숭이들, 거북이들, 뱀들, 물고기들, 심지어는 고래와 인간의 거대한 형상들이 있다. 삼각형 사각형의 기하학적 형태와 도로들을 닮은 짧은 선들도 있다. 비행장과 같이 보이는 띠들도 있다. 이런 선들과 형체들은 관찰자가 바로 그들과 일직선상에 서있지(standing directly in line with them) 않으면 지상에서는 거의 식별할 수 없다. 몇 피트만 옮겨가도 선들은 나머지 사막의 바닥으로 사라져 버린다. 이 선들은 지상에서는 쉽사리 보이지 않으나, 비행기에서는 분명히 보인다. 실제로 그들은 지상 270마일 궤도를 비행하는 스카이 렙 위성에서는 잘 보인다.

페루 파라카스 인근의 탑과 같은 절벽 위에 안데스산맥의 칸델라브라 라고 불리는 800피트(240m) 길이의 조각을 태평양 밖 멀리서 볼 수가 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처음으로 그것을 보았을 때 그들은 그것을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온 사인이라고 생각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그림은 나스카에 있는 항아리 조각에서 발견되었다. 그것은 하나는 노랑으로, 하나는 하얗게, 하나는 검게, 하나는 갈색으로, 그리고 하나는 붉은 색으로 된 다섯 소녀들의 얼굴을 나타내고 있다. 이것은 이 고대 인류들이 이 지상에 존재하는 여러 종족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페루에 있는 이 모든 고고학과 건축술은 진화의 이야기같이 들리지만 적어도 이것들은 과학적으로 참인 사실들이다.

페루의 잉카문명과 다른 아메리카의 문화들은 건축과 미술과 또한 농업기술의 분야에서 매우 발달되었지만 자기들이 사용하는 언어로 표기하는 체계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잉카문명이 그들의 생각들을 기록함에 있어 가장 근사했던 것은 결승문자의 사용이었는데, 결승문자는 길이와 색깔과 가늘기가 각각 다른 일연의 끈들로 매듭들이 맺어져 있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로 다양한 조합으로 된 끈들과 매듭들은 여러 가지 종류의 정보를 기록하기 위해서 사용되었다. 그들을 통해서 구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했던 것 같다.


남아메리카의 최남단

남아메리카의 최남단으로 내려가서 수천 년을 계속 거슬러 올라가 보면 찰스 다윈이 세계 일주 항해 중에 만났던 인간의 한 종족을 만나게 된다. 다윈이 원시인 바로 다음 단계라고 여겼던 이 사람들은 인간의 문화적 유산이 후대로 가면서 퇴보된다는 주장에 대한 좋은 사례이다. 그들의 퇴보는 그가 세계일주 항해를 한 후에 그의 마음속에서 발전되었던 진화 사상을 확실하게 논박하고 있다. 이 진화론은 나중에 진화론자들 중에서 소위 인간은 원숭이 같은 동물에서 발달된 것이라는 이론으로 발전하였다. 이 사람들과 다른 많은 원시적이고 미개한 사람들의 문화유산들이 진화되었다는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 그러나 모든 진보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퇴보는 최근 수십 년 사이 사물의 속도가 증가하는 가운데서 일어났다. 의료분야에서 행해진 진보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아직도 옛날부터 늘 그래왔던 것처럼 죽는다.

 

*참조 : A possible post-Flood human migration route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9_1/j19_1_65-72.pdf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미디어위원회
2005-07-11

인류 역사의 회고 2 

: 요단강계곡, 인도, 중국, 소아시아, 크레데, 그리스

유종호


요단강계곡의 여리고

나는 세계 문명 발상지에 대해 나중 기회에 계속 언급하려고 한다. 그것은 세상의 기원 중의 하나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여리고는 예루살렘 동북부 약 15마일 지점 요단강 근처를 중심으로 한 고대문명 지대이다. 이 사람들의 조상은 BC 6,800-5,800경(?)에 형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누루버겐(Rene Noorbergen)은 “잃어버린 종족의 비밀(1977)”이라는 저서에서 “[이 연대]는 과학적인 비평에 노출되면 약간 모호해진다. 왜냐하면 지금까지는 명료한 연대측정방법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는 여리고의 초기 연대는 세계의 다른 주된 고대문명, 즉 수메르나 이집트 문명의 연대와 비교하는 것이 최선책이라고 말한다.

수메르와 이집트인들이 큰 강 유역을 따라 번창 발전해 갔으나, 요단계곡 지역의 여리고는 1분간에 1천 갤런의 물을 품어내는 용출천(湧出泉)으로부터 풍부한 물을 공급받는 오아시스 인근에서 발전했다. 이 오아시스 주변은 물론이고 근처에 있는 요단강 계곡에서 초기에 정착한 자들은 소, 양, 염소 등을 사육함과 함께 밀, 보리, 편두(扁豆), 무화과, 다른 식량 및 과일 등을 재배했다. 그들은 여기에서 약 2,500-3,000명의 인구를 가진 8에이커 넓이의 도시를 건설했다. 호전적 침입자들로부터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하여 일련의 대규모 석조 성벽과 최소한 1개소 이상의 대형 탑을 건설했다. 그 탑의 규모는 직경 30피트(9m), 높이 20피트(6m) 이상이었다. 이것들이 BC 1,250년 경 여호수아의 양각나팔로 허물어질 수 있었던 성들이다. 가옥들에는 여러 개의 문들이 달린 큰 방이 있었다. 담장들은 흙벽돌로 쌓았고 마루는 고도로 연마한 회반죽(plaster)의 고운 바닥이었다.


인도의 인더스 계곡의 사람들

BC 3,000경에 발흥했던 찬란한 고대문명 가운데 하나는 메소포타미아의 동쪽에 위치한 서북 인도의 인더스 계곡에 있었다. 이 문명을 드라비다 문명이라고 한다. 그들은 하나의 공용어를 사용하였으나, 지금까지도 그들이 무엇을 기록했는지 아무도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이 언어는 분명코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혼잡케 된 후에 생긴 새로운 언어 가운데 하나였을 것이다. 이 문명은 1920년에야 알려지게 되었는데, 그때 여러 개의 길게 매몰된 도시 중에 하라파와 모헨조다로라는 두개의 도시가 우연하게도 발굴되었던 것이다. 하라판이라고 부르는 이 문명의 문화는 아라비아 해로부터 히말라야에 이르렀고, 동쪽 이란에서 갠지스 강 유역까지 미쳤다. 인더스 강 유역의 문명은 최대 규모의 초기 무명 중의 하나이다. 지금까지 발굴된 것 중 최대의 도시는 모헨조다로였다. 그 도시에는 직사각형 도시구획을 가진 넓은 도로들이 있었다. 집들은 정원과 욕실이 있는 1층과 2층 구조였다. 그들은 많은 현대 도시와 유사한 잘 설계된 하수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위생설비들도 가지고 있었고, 하수도는 관리를 위한 출입구용 맨홀을 구비하였으며, 구운 벽돌을 일렬로 쌓았다. 그들은 구리, 청동, 금, 은 등을 사용했고, 자녀들을 위하여 아름다운 인형도 만들었다. 그들의 예술 작품들은 어떤 문화권에서는 높이 평가받았다. 그들은 욕실, 청동과 구리로 만든 가정용품, 도자기 그리고 보석들도 가지고 있었다. 이 사람들이 서쪽의 수메르인들과 무역거래를 했다는 증거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이 지상에 출현하자마자 그들의 문화는 소멸해버린 것 같다. 서쪽과 서북쪽에서 온 아리아인들이 접수해버린 것 같다. 아리안 족은 오늘날 힌두의 조상이다. 드라비다족은 남쪽으로 이동했는데, 요즘도 인도에서 더러 볼 수 있다. 한편 아리안 족은 꽉 막힌 도시에 적응하지 못하고 개방된 공간을 선호했다. 우리는 여기에서 문명이 진화하는 대신 파멸로 퇴화하고 멸실되는 예를 본다.


중국

동양에는 BC 4,000-3,000년경 초 자체 언어를 가지고, 사냥도 하며, 채집 생활하는 유랑 족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그들은 동남아 쪽으로 올라와서 북향하다가 마침내 중국에 이르게 되었는데, 거기 양자강, 황하 및 다른 강들의 유역에서 그들은 자체 언어를 가지고 진보된 문명생활을 누리고 있는 또 다른 민족을 만나게 되었다. 중국인들은 BC 2,850-2,250년경 역사를 개시하면서 정착했다. 최초 3인의 통치를 삼 황제 시대라 하고, 다음 5인의 통치시대를 오 황제 시대라고 한다. 이 통치자들이 믿기 어려울 만큼 오랫동안 지배했다. 그러나 “불가능한” 이 나이들은 대홍수 전후의 성경에 언급되고 있는 사람들의 나이에 비추어 보면 결코 불가능한 것만도 아니다. 이 문제는 나중에 계속 논의하겠다. 역사가들은 이들이 어디에서 왔을까하고 질문한다. 중국어는 그 역사가 겨우 1-2천 년 정도로 짧아서 대부분 지금까지도 잔존하고 있지만, 초기의 이런 중국어는 매우 복합적인 표의문자 체계로 발전하였다. 한자는 수천 개의 글자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배우기가 매우 어렵다.

그들은 유럽인들보다도 훨씬 앞서서 움직일 수 있는 활자와 화약을 발달시켰다. 역사학자들은 그들이 그것들을 어디에서 취했을까 하고 질문한다. 그들은 청동의 기구와 항아리들을 주조하는 기술에 능숙해졌다. 그들은 누에를 쳐서 아름다운 비단을 짰고 도자기와 옥 세공품을 만들었고 건축물을 지었다. 일본인들과 한국인들은 중국의 문물을 많이 배웠다.


소아시아

중동으로 되돌아가 보면 소아시아에 있는 팔레스타인의 북쪽에 발달된 또 다른 고대문명이 있었음을 발견한다. 카탈 휴(Catal Huyaek)과 엘바 등 두 지역이 어느 정도 발굴되었다. 카탈 휴옉은 팔레스타인의 여리고 이전에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믿어진다. 카탈 휴옉은 타우루스 산맥의 산록에 있는 동부 소아시아에 위치해 있는데, 그들은 BC 6,200-5,400년 사이에 매우 번창했었다고 믿어진다. 그 인근에 있는 화산에서 진하고 단단하며 광택이 있는 암석인 흑요석(黑曜石)이 채취되었는데, 그 속에 여러 가지 인공적 가공품들, 도검류, 거울들, 창날들, 그리고 피혁과 뼈와 목재를 가공하기 위한 도구들이 들어 있었다. 그들은 벽 전체에다 야생 동물들과 야외 생활 모습을 그렸다. 화가들과 조각가들 이외에도 가정용 주방용품과 석 공예품을 만드는 도공(陶工)들도 있었다. 그들은 또한 정밀한 공구들과 도끼나 망치와 같은 가정용품, 단도나 창끝 등의 무기도 제조했다. 그들에게는 고운 천을 짜는 직공(織工), 양동이 제작자, 금속공(金屬工), 그리고 목공들도 있었다.

엘바 지역의 또 다른 문명은 시리아 북부에 있었다. 1964년에 로마대학교의 책임 하에 이 토루(土壘)의 발굴 작업이 개시되었다. 엘바는 BC 2,400년경 이집트와 동시에 융성했던 제국의 수장(首長)이었고, 수메르는 전성기에 있었다. 엘바는 상업과 미술과 선진 문명으로 인접 국가들에게 영향력을 행사했다. 엘바는 이집트나 바벨론인들의 몇몇 문헌에도 언급되고 있다. 엘바에서 왕궁과 대형 사원이 발굴되었다. 수메르 문자와 유사한 상형문자(Cuneiform or wedge shaped writing)가 발견되었다. 발굴자들은 14,000개 이상의 음각 토판을 발견했으나, 상형문자로 된 문헌들은 수메르나 기타 어떤 유사한 언어도 아니었다. 그것은 또 하나의 다른 언어였는데, 바로 1, 2백 년 전에 발생했던 바벨탑 사건에 의한 언어의 혼잡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 후 100개의 토판사전이 발견되었는데, 그 사전에 엘바어로 된 약 3,000 단어가 수메르어로 번역되어 있었다. 

BC 3,000-2,000년 사이의 1, 2백 년 동안에는 엘바는 근동에서 가장 강국 중의 하나였다. 그들은 다른 나라들과 무역을 했다. 수천 명에 달하는 금속 노동자, 직조 노동자들은 널리 알려져 있었고, 그들 중에 숙련공들은 금도금을 한 아름다운 목제 가구들을 수출하기도 했다. 그들의 몇몇 토판에 성경의 소돔과 고모라에 관하여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볼 때, 그들이 타 지역 사람들과 교류했음이 분명하다.


크레데 섬

소아시아 서쪽에 BC 3,000-2000년 동안에 고도로 발달된 초기 문명이 존재했던 크레데 섬과 그리스가 있다. BC 3,000년경에 고도한 문명이 크레데 섬에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의 위대한 왕 미노스(Minos)를 본따서 미노아 문화라고 부른다. 그들은 크노쏘스 등의 아름다운 도시를 건설했고, BC 2,200년경 여기에 세워진 한 궁전이 발굴되었는데, 그 면적이 5에이커에 달하고 5층 높이의 규모였다. 궁전은 아름다운 회랑들, 홀들, 어전회의실, 거실, 보물창고, 기타 많은 방들이 있었다. 가장 감탄할만한 것은 19세기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어느 것보다도 우수한 물이 흐르는 욕실, 수세식 화장실, 배수시설 등이 있었다는 것이다. 도관을 통해 물이 흐르고 점검과 보수를 위한 멘 홀들도 있었다. 배수관은 아주 현대적이다.

궁전 벽들 위의 프레스코 화법의 그림들은 그 문화를 만끽하는 귀족들과 귀부인들의 현란한 생활 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 그림들 속에는 춤추는 여인들, 뛰어오르는 돌고래, 그리고 아름다운 전원 풍경들이 그려져 있다. 미술가들과 숙련공들은 돌과 귀금속에 새긴 조각, 세련된 설계로 금과 도자기를 달걀껍질만큼 엷게 입혀 만든 보물 등 위대한 예술의 걸작품들을 만들었다. 긴 곱슬머리로 재미있게 장식을 한 남녀 귀족들이 생기발랄하게 몇몇씩 모여 서 있기도 하고, 춤을 추기도 하고, 앉아 있기도 하고, 담소도 나누는 그림이 있다. 또한 베일을 쓴 여인들, 곡식 단을 한 아름 안고 나르면서 즐거운 수확의 축제를 벌이는 농부들의 그림들이 있다. 글씨로 가득 찬 토판들이 발견되었다. 이 토판들은 크레데 인들이 작품 체계를 음절로 발전시켰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아직까지 아무도 그들의 작품을 해독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님이 탄생하기 직전에 한 로마 사가는 그 당시에 크레데인들은 자기네 선조들이 알파벳을 고안했고 페니키아인들만이 그 알파벳을 항해를 통해 더 잘 알려지게 만들었다고 언급했다.

각 가정마다 각자의 직조기를 갖추고 있었는데, 이는 분명히 옷감을 자급자족했음을 뜻한다. 여성들의 옷은 신중하게 몸매에 맞추고 꼼꼼하게 바느질하고 아름답게 자수를 달아서 정교했다.

그들은 현대인들이 보기에는 모양새가 이상한, 구멍 뚫린 국자, 거르는 체, 그 외에 많은 장치들을 비롯한 수많은 종류의 주방기구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훌륭한 항해사와 무역상들이었고 자기들의 상품과 미술품과 문명들을 지중해 동부의 전 지역에 전파했다. 여타의 많은 고대 문명과 마찬가지로 그 문명도 BC 1,500년경에 소멸되고 말았다. 혹자는 “그들의 기원은 불분명하고 그들의 언어는 알 수가 없고 그들의 운명은 모호하다.”라고 썼다. 그러나 성경을 알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단순하고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다.


고대 그리스

BC 3,000년경 미노아 문명이 그리스 쪽으로 북향했는데, 고린도 인근의 미케네에서 중심을 이루었기 때문에 미케네 문명, 또는 그리스 문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리스인들은 알파벳과 조어법을 발전시켰는데, 이는 오늘날 전문적인 영어에 사용하는 수많은 단어의 기초를 이루고 있다. 헬라어를 모르면 일반 미국인들에게 많은 영어 단어들은 생소한 단어가 될 수밖에 없다. 한 시사 해설자는 최근에 수세기 전까지만 해도 라틴어와 헬라어가 그랬던 것처럼 영어는 세계의 공용어가 되고 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특히 전문 분야에서 많은 영어 단어들이 헬라어와 라틴어적 배경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사전을 찾아보지 않고는 잘 이해하지 못한다. 진화론자들은 자기들이 학식이 있고 전문적이며 과학적인 배경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헬라어나 라틴어 어원들의 이런 단어들을 쓰기를 선호한다.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미디어위원회
2005-07-09

인류 역사의 회고 1

 : 이집트인, 수메르인, 바벨론인들 


       초기 인류의 역사를 상고해보면 우리는 인간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른 설명을 발견하게 된다. 실제로 인간에 대하여 씌어진 기록들은 겨우 BC 3,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뿐이다. 그리고 BC 3,500에서 BC 2,300년 사이에 존재했던 애굽(이집트)의 첫 번째 왕조 중에서 재위했던 왕들의 목록이 어느 정도 과장됐을 가능성을 감안하면 그보다 짧을 수도 있다. 만일 인류의 역사가 수백만 년이라고 하면 왜 BC 3,500년 이전의 역사기록이 없는 것인가? 그리고 어째서 이 무렵부터의 기록들이 전 세계에 걸쳐 여러 곳에서 여러 가지 많은 언어로 동시에 나타나는가? 기록은 BC 4,000-3,000년에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와 인더스 계곡과 기타 지역에서 동시에 시작되었다. 이런 기록들은 인간이 그때에 이미 고도로 발달되고 문명화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초기 이집트인과 다른 지역 사람들의 많은 성취(문명도)들은 오늘날보다도 결코 열등하지 않다. 이렇게 고도로 발달된 사람들이 그 이전의 어떤 곳의 어떤 문명으로부터의 전수도 없이 한꺼번에 갑자기 도약했다는 말인가? 그것은 도대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성경 말고는 BC 3,000년 이전의 문명 기록은 없다.


이집트인들

역사를 되돌아보면서 이와 같은 몇몇 문명들이 푸른 하늘에서 갑자기 역사에 나타났다고 생각해 보자. 갑자기 나타났던 문명 중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문명은 고대 이집트 문명이다. 나는 인간이 수백만 년에 걸쳐 매우 느리게 발달했다는 진화론적 가정을 무시하는 바이며, 거의 믿을 수 없을 만큼 갑자기 온 지구상에 문명이 출현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1975년 6월호 86쪽에 케네드 클라크가 방송에서 행한 '태초에: 고대 이집트의 미스터리” 라는 다음의 글을 실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문명에 대한 정확한 정의를 내림에 있어 꼭 필요할 것으로 여겨지는데, BC 3,000년과 B.C 2,800년 사이에 떠오르는 태양과 함께 나일강 계곡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 같다. 그것은 마치 어떤 사람이 50만년 동안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 빠져 있다가 200년에 걸쳐서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자신과 주위를 완전히 알아보는 것과 같다. 과학은 수많은 다른 지역에 있었던 문명한 생활에 대해 흥미로운 증거의 단편들을 밝혀내었다. 이집트는 첫 번째의 위대한 문명의 본산이다.”

케네스 클라크가 문명이 이집트와 기타 지역에서 돌연히 출현하였다고 말했지만, 그것보다 앞섰다고 추정되는 수백만 년의 진화 기간에서 '50만년 후”를 떼어낼 수는 없다.

진화론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작가들도 유사한 주장을 한 바 있다. 나는 리오넬 카슨이 기고한 1965년도 판 타임-라이프지 51쪽에서 한 번 더 인용코자 한다.

"그리스도가 탄생하기 약 7-8,000년 전에 근동의 이곳저곳에서 문명이 일어나고 있었다. 인간들은 사냥꾼에서 정착민으로 되어갔다. 이제는 쫓아다니면서 먹을 것을 구하지 않고 그 대신 가축을 기르거나 농사를 지어서 먹고 살게 되었다. 그러다가 BC 3,200년에서 3,000년 기간의 일이백년 동안에 갑자기 그동안 나일강 유역에 흩어져 살던 부족들이 공식적인 정부를 지배하던 한 강력한 지도자 밑에 통합되었다.”

그러고 나서 그는 계속해서 경이로운 이집트 문명에 관하여 쓰고 있다. 이집트 문명들 즉 여러 왕들, 왕조들, 피라미드, 고도로 발달된 건축술, 스핑크스, 오늘날도 따를 수 없을 정도의 공학적 업적들, 도구들, 기술들, 예술, 과학, 의학, 행정조직 기타 등이 마치 지구의 다른 지역에서 수입해 들여온 것처럼 갑자기 나타났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일이다. 더욱 가소로운 것은 그 모든 문명들이 먼 혹성이나 외계에서 왔다고 추정하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차차로 설명하는 바와 같이 그 문명들은 바벨탑 사건 때 흩어졌던 고도로 문명된 노아의 후손들에게서 수입되었거나 이입해 온 것들이었다. 그러나 많은 문명들은 대략 BC 1,900년 이후에 시간이 지나면서 이집트 자체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에게, 암흑시대의 유럽에서, 중남미의 초기 사람들 등에게서 일어났던 바와 같이 퇴보했다는 것은 매우 슬픈 역사적 사실이다. 발달된 문명은 이집트에서 진화된 것이 아니라, 다만 발생했을 뿐이라고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은 미개인들이나 원시인들의 어떤 유물도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집트의 역사는 BC 3,400년경에서 3,200년경에 시작된다. BC 250년경에 살았던 이집트의 승려 매니토(Manetho)의 기록에 따르면, 이집트의 첫 번째 왕은 BC 3,000년경 하부 이집트와 상부 이집트를 하나로 통일한 메네스왕일 것으로 믿어진다. 독일의 사학자들은 메네스의 통치 년대가 BC 5,702~3,623년 기간의 어느 시점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본다. 우리는 이집트 초기 역사 때의 것인 저술과 보존된 기록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세계 최초로 파피루스 갈대로 종이를 만들고 그것에 쓸 잉크를 발명했다. 그들은 표준 자(尺)와 저울로 거리와 무게를 재고, 시간을 계산하고, 땅을 측량하고, 세금을 산정할 수 있었다.


그들은 운하를 건설하고, 관개사업을 일으켜서 나일강 홍수를 인간의 편의를 위하여 활용했다. 기가 막히도록 갑자기 이 사람들은 금, 은, 동, 놋, 터키석, 청금석과 같은 귀금속, 금 세공품, 희귀목 조각품, 상아와 보석, 타조의 깃털장식, 희귀 동물의 가죽, 몰약과 향신료 등을 사용했음이 밝혀졌다. 의약품은 그들의 역사 초기부터 사용했었다.


메소포타미아의 수메르 사람들은 햇볕에 말린 벽돌을 사용했으나, 이집트인들은 놀라우리만큼 갑작스럽게 머나먼 나일강 상류에서 화강암을 켜서 운반해 오기도 했다. 그들의 건축술은 후기의 어느 시대나 다른 지역의 어느 것보다 가장 고상하며 예술적이고 웅장한 왕의 묘와, 피라미드와 기념비석들을 세웠다. 어떤 것들은 비록 선사시대의 구조물들이거나 역사 기록이 보존되기 이전의 것이긴 하지만, 그들의 예술, 미술, 건축물, 예술적인 기념주들과 스핑크스 등은 고대 그리스의 미술가나 조각가들보다 수세기나 앞섰다.


초기시대의 조각가들은 미국 남다코타 주의 블랙 힐스에 있는 대통령들의 얼굴들과 비견될 만큼 거대하게 자기들의 왕의 두상을 바위에다 새겼다. 자기들의 중요한 건축물에는 화려하게 채색하기도 했다. 이들은 그들의 조상들을 통하지 않고 순식간에 역사에 출현한 기술적이고 지능적인 사람들이다.


그들의 도구들도 고도로 발달된 것들이었다. 많은 역사 기록들을 보면 이 사람들이 거의 맨손으로 화강암과 다른 돌들로 피라미드와 구조물들을 건축했다는 인상을 준다. 그들은 분명코 매우 놀랍도록 발달된 도구들을 사용했다. 이집트인들은 존재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그들이 켜 온 돌들을 자르기 위해 코란덤(鋼玉)이나 젬스톤(貴石)을 이빨처럼 고정시켜서 톱이나 관상(管狀)의 크라운 드릴을 제작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들의 기술은 오늘날의 가장 숙련된 사람들 정도로 발달된 것이었다. 오늘날의 사람들을 위하여 많은 지식이 축적되어 왔음이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들보다 우수하거나 정교하다고 감히 주장할 수가 없다. 1913년 스미소니언 연구소가 발표한 '공구 발달의 역사”라는 보고서 566쪽에 따르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진화가 일어난 것이 아니라, 과학 지식의 퇴보 내지 일실이 생겼다 것이다. 많은 경우에 수백 년이 지나면 발달된 노하우나 지식은 완전히 망각 또는 소멸되어 버리고 만다. 석영석을 자르던 지식과 기술은 20세기에 들어 터널 구축물이 발달될 때까지 망각되어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의 경이로운 능력들은 우리가 그들이 축조한 거대한 파라미드를  바라보았을 때 아주 분명히 드러났다. 그것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수천 년 동안 많은 학자들을 당혹케 했다. 나폴레옹과 그의 군대들조차도 맨 처음 그것들을 목격하는 순간 그 앞에 선채로 두려움에 떨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도대체 어떻게 피라미드를 지었단 말인가? 모든 시대의 수학자들은 피타고라스가 생존하기 수천 년 전에 이집트인들이 피타고라스의 기하학의 모든 요소들을 이미 사용하였다는데 대하여 경탄했다.


기자에 있는 대형 피라미드는 바닥 면적이 13에이커나 되는데, 이는 도시에서 3블록에 해당되는 면적이다. 그 정점은 지상에서 481피트(145m) 높이 또는 40층의 건물 높이에 해당한다. 그것은 한 개의 무게가 2-70톤짜리 석회암이나 화강암 2백만 개를 사용하여 201층의 계단을 쌓은 구조로 마무리 되어 있다. 그것은 예수님 당시 이래 영국에 건설된 모든 사원과 교회와 예배당에 들어간 석재보다도 더 많은 양이다. 나폴레옹은 기자에 있는 대형 피라미드 3기는 프랑스의 국경을 따라 높이 10피트(3m) 폭 3피트(0.9m)의 성을 쌓기에 충분하고 만일 일렬로 쌓을 경우에는 미국 대륙을 한번 반 횡단할 수 있는 분량이라고 계산했다. 20년 이내에 2백만 개 이상의 돌덩어리를 켜서 500마일 이상 운반해오고 다듬어서 있어야할 자리에 올려놓았다고 한다면, 매주 7일 매일 12시간씩 하루에 315덩어리씩, 시간당으로는 26덩어리씩을 480피트까지 쌓은 셈이 된다. 이것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작업량이며 작업 능률이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최첨단 건설 장비를 갖춘 10만 명의 건설인력을 가지고도 같은 기간 동안에 이런 위업을 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이들은 진화론자들의 말대로 한다면 소위 선사시대로부터 어떠한 기술의 전수도 없이 갑자기 역사의 무대에 나타난 사람들이 아닌가?


돌덩어리의 양과 작업의 양도 놀라울 뿐만 아니라, 그들의 비범한 건축기술 능력의 정밀성도 경이로움 그 자체이다. 그 돌덩어리들이 어찌나 정밀하게 절단되고 연마되었는지 돌 틈에 종이 한 장도 끼울 수 없을 정도이다. 더더욱 놀라운 것은 4면이 정상(頂上)을 향하여 일정한 경사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작업이 처음 시작되었을 때에는 기준점이 없기 때문에 작업이 진행되어감에 따른 이 각도를 실측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만일 피라미드의 한쪽 면이 조금만 더 경사져도 다른 면은 어긋나 버릴 것이다. 그 솜씨를 어디에서 점검해 봐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정밀하다. 이 이집트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짧은 기간에 그렇게도 정확하게 거대한 돌덩어리들을 자르고 연마해서 쌓았을까? 어떤 연구원들은 그레이트 피라미드는 컴퓨터를 사용하거나 돌을 자를 때는 레이저 광선을 사용하고 돌을 쌓아올릴 때에는 반-중력 장치(anti-gravity devices)를 사용하는 외계에서 온 초능력자의 도움을 받음으로써만 건축이 가능할 정도라고 아주 신중하게 추정하기도 한다. 1986년 12월 4일자 미니애폴리스 트리뷴지는 '전문가들, 지능을 측정하는 새로운 방법을 행사하다”라는 한 사설을 실었다. 그 사설의 첫째 번 질문은 '누가 그 피라미드들을 건축했는가? ― 고대 이집트인들인가? 아니면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인가?” 설령 지구상의 다른 생명체들이 존재한다 해도 만일 그들이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가 아니라면, 왜 현재의 우리 인간들보다 더 명석(明晳)해야만 하는가? 그러나 그것은 진화론에 부합되지는 않는다.


그레이트 피라미드 건축의 또 하나의 놀라운 위업은 그 구조의 설계와 건설공정의 감독과 필요한 노동력의 공급이다. 모든 노동자의 숙식문제, 부상자와 질병자의 치료 등은 지금까지 생존했던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능력 있는 기획자의 능력과 생각을 총동원해야만 가능했을 것이다. 피라미드와 관련된 또 다른 위업은 고인의 사체를 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사용된 방부(防腐)기술이다. 이들의 것을 능가할 수 있는 기술은 아직까지는 없다.


종합적으로 정리해 보자면, 위와 같은 모든 탁월한 위업들과 위대한 성취들을 이룩한 초기 이집트인들이 '원시적인(?)” 조상들의 후예들이라고는 볼 수 없다. 나는 이들이, 우리가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게 될, 바벨탑 사건 때의 고도로 발달된 사람들 중에서 흩어진 조상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임을 확신한다. 여기에 한 가지 관찰이 더 있어야만 한다. 즉 만일 인간이 진화되었다면 이보다 십만 년 전에 일만 명의 인간들에 의해서 만들어진 빌딩이나 구조물이 어디에 있는가? 최소한 이집트에 몇 채의 선재(先在) 빌딩들이 있어야만 할 것이 아닌가?


수메르인과 바벨론인들

우리가 고려해보아야 할 다음 차례의 현저한 문명은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 계곡(유역)의 수메르 문명이다. 그들의 역사는 이집트의 역사와 거의 같은 시기에 시작되었다. 리더스 다이제스트(1977년 9월호, 131쪽)는 다음과 같이 썼다.

'왕들의 명단을 살펴보면 제1대 왕조는 대홍수 후에 출범했다.......우울리(영국의 고고학자)는 고도로 발달된 어떤 문명이 제1대 왕조 이전에 이미 존재했음이 틀림없다고 믿었다. 홍수 전 왕조에 대해서 언급된 왕들의 명단 이외에는, 수메르 인들은 마치 비가 온 후에 싹이 돋아나오는 씨앗과 같이 사막에서 갑자기 툭 튀어나오지는 않았다는 것을 시사하는 물리적 증거가 없다.”

'얼마나 아름답게 표현되었는가? 마치 이집트인들이 했던 것과 같이! 수메르인들도 약 BC 3,500년경에 발흥했다. 그들의 문명이 혈거인 또는 적어도 원숭이로부터 점진적으로 진화되었다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이 사람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이 문명의 시작은 홍수가 난지 수백 년 후에 있었던 바벨탑 사건 후의 어느 때에 발생했음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들 수메르 인들은 메소포타미아평원(강들 사이라는 의미)에 있는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서 현란한 문명을 발전시키며 갑자기 출현했다. 그들은 수많은 수로들을 갖춘 관개(灌漑) 체계를 발전시켰고, 수많은 종류의 채소류, 과일류, 곡식류, 대추야자 등을 재배했다. 그들은 당나귀, 염소, 양들과 같은 가축들을 사육했다.


그들은 상인들, 그리고 도시와 도시 사이를 다니거나 타 지방까지 왕래하는 무역상들, 군인들, 승려들, 통치자들, 자유민과 노예들로 구성된 복합사회를 발전시켰다. 그들은 바벨탑 사건으로 언어가 혼잡케 된 직후인 BC 3,000년 전에 이미 언어를 문자로 기록할 수 있었다. 수천 개의 토판과 비문들이 발견되었는데, 여기에서는 그들의 상거래 내역, 행정, 법률 그리고 종교 등을 다루고 있다. 이 토판들은 그들이 의학, 수학 및 천문학의 지식을 소유하고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들은 태양의 운행에 기초한 달력을 창안했다. 그들은 원을 360도로 분할하는 방법도 고안했는데, 오늘날 우리가 그것을 원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신화, 서사시, 설화시(說話, narrative poem), 자기들의 신과 영웅에 대한 찬양 등을 포함한 수천 가지의 문학작품들을 저술했다. 그들은 또한 수많은 주제로 잠언, 우화, 수필 등도 썼다. 그들의 작품 중 흥미있는 것 하나는 길가메쉬 서사시인데, 성경에도 기술되어 있고 세계 수많은 민족들이 그런 것처럼 대홍수에 관해서 읊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창조주로부터, 관련된 지식과 기술을 부여받지 않고는 이런 모든 일들을 몇 년 이내에 이룰 수는 없다. 대영박물관과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박물관이 우르의 폐허에서 1919년부터 1929년 사이에 생 땅(virgin soil)까지 파내려가며 3개의 다른 문명대(文明帶)를 발굴해 보았는데, 우르의 초기 역사로부터 우르의 전 역사를 관류(貫流)하여 사람들은 고도의 문화, 재능, 능력, 그리고 문명을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장인(匠人)들은 금, 은, 동, 청동, 그리고 석재를 가지고 제품을 만들어내는 데 능숙했다. 그들은 금은과 보석들을 가지고 믿어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예술작품들을 만들어 냈다. 그들은 구리와 주석을 가지고 어떻게 청동을 만드는지를 알았는데, 청동은 그들에게 더욱 강인한 금속재료가 되었다. 그들은 청동으로 컵, 항아리, 칼, 헬멧, 전쟁용 도끼, 검, 창, 방패, 전차, 여러 장식물, 주방용품 및 가재도구, 악기 등을 만들었다. 그들은 또한 토기장이가 진흙으로 그릇을 만들기 위해 사용하는 물레바퀴를 고안했다. 그들은 큰 물건을 이동하기 위해 수레바퀴를 사용했고, 전차에 바퀴를 달아 사용했다. 그들은 섬세한 옷감을 짰고, 석영모래로 유리를 만들었다. 고고학자들은 4,000년 이상이나 오래된 유약을 바른 석 공예품을 발굴해 내었다.


수메르인들과 그들의 후손인 바벨론인들은 그 다음 세대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천문학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증거들이 많이 있다. 이 사람들의 초기 문명을 연구해 온 사람들은 바벨론인들이 행성들에 대하여 어떤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경악했다. 이 학자들은 바벨론 인들이 4개의 목성(Jupiter) 위성들과 7개의 토성(Saturn) 위성들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는 강력한 증거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는 그들이 망원경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알지 못하나, 만일 어떤 종류의 확대경이 없이는 이런 위성들을 알아내지 못하였을 것이다.


수메르 인들이 번영의 정점에 있을 때에는 그들의 사회는 부유하고 강력하고 복합적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최대 작품은 신전이라 부르는 거대한 사원이었다. 그것은 정 사각 기둥과 열주(列柱)들로 장식되었다. 그 사원의 전면은 적, 흑, 백색의 기하학적 모형으로 된 모자이크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이 신전은 여러 층으로 되어있고 500,000평방피트의 넓이를 차지하고 있다. 이것은 폭 600피트(180m) 장 800피트(240m)의 넓이로서 도시에서 3블록 넓이에 해당하거나 미국 국회의사당만큼의 면적이다. 이것은 워싱턴 DC에 있는 아름답고 잘 건축되고 가장 큰 정부 건물 중의 하나만큼 크고 놀라운 걸작품 건물이다.


이 주인공들이 BC 4,000-3,000년 전에 원숭이 나라에서 별안간 인류의 역사의 무대로 튀어나왔고, 구석기-중석기-신석기 시대를 거치면서도 아무런 기록된 역사도 남기지 않고, 1-2백년의 짧은 기간에 기적 같은 창조물들을 만들어내고, 기록된 언어를 발전시키지도 않은 채 거대한 건축물들을 지었다고, 진화론자들이 그들의 역사책을 통해 우리의 자녀들에게 가르치는 대로 믿는 것은 전적으로 비논리적이고 불합리하고 비역사적이다. 만약에 진화론적 추정처럼 수십만 년 또는 수백만 년이라는 연대가 사실이라면, 이 사람들은 그 전의 수만 년 동안에 문학, 수학, 과학, 그리고 발명품들의 발달 없이 1-2백년 사이에 갑자기 이런 성취를 이룰 수는 결단코 없다. 10,000년 20,000년 30,000년 혹은 50,000년 전에 이들이 살았던 어떤 증거가 반드시 있어야만 한다. 그래서 (그 증거를 확보하려고) 리키(Leakeys) 일당과 인간의 화석 사냥꾼들이 아프리카와 세계 도처에서 수백만 년 전에 살았다고 추정되는 인간의 화석을 찾아 땅 속을 뒤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오직 사냥꾼이나 이삭꾼들과 같이 지구의 여러 곳에 흩어져서 찾아내는 것들은 노아 홍수 때의 석회암으로 덮여 있는 원숭이와 다른 짐승들과 사람들의 화석들뿐이다.


일반적으로 역사책은 지구의 4대 문명이 각기 다른 4곳의 지구 온난 기후대 지역에서 BC 4,000-3,000 경에 발생했다고 말한다. 이 4대 문명발상지는 식량과 쉼터가 쉽게 확보되는 강 유역의 계곡이었다. 즉 이집트의 나일 강 유역, 메소포타미아유역인 티그리스 유프라테스 강 계곡, 서북부 인도(메소포타미아의 동쪽)의 인더스 강 유역, 그리고 중국 북부에 위치한 황하유역 등이다. 괄목할만한 또 다른 지역으로는 팔레스타인 평원의 요단강 유역이 거론된다.

 

*참조 : The antediluvian patriarchs and the Sumerian King List
http://creationontheweb.com/content/view/1853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 유종호 

유종호
2005-07-09

만물의 기원에 관련하여 주고 받아 온 질문과 답변들


1. 제기되어온 질문들

인간은 어떻게 기원하게 되었는가? 왜 인간은 모든 다른 생물들보다 우월한가? 세상에 있는 모든 동물과 식물과 채소들은 어디에서 왔는가? 태양과 기타 별들은 어떻게 해서 생기게 되었는가? 지구, 태양, 행성들의 기원은 무엇인가? 우주와 모든 원소들과 물질들, 에너지 그리고 초대형 시계를 방불케 하는 정밀한 자연계는 어디에서 유래하는가? 왜, 그리고 어떻게 세상에서 죽음과 부패와 모든 퇴화(엔트로피)가 일어나고 있는가? 만물의 궁극적인 운명은 어떻게 되는가? 이와 같은 것들은 우리가 당면하고 있는 많은 질문들 중의 일부에 불과하다. 4,000에서 6,000년 동안의 인류의 기록된 역사상 가장 선각적 지성들은 이런 질문들의 해답을 찾으려고 부심해 왔다.


2. 교과서는 무어라고 가르치는가?

(나는 이 책 내내 진화론자들과 무신론자들이 믿고 가르치는 것들과 관련하여 그들 스스로의 말을 존중하는 뜻에서 수많은 주장들을 인용하겠다.)

나는 우리 아이들이 과거로부터 학교에서 사용해 왔고 지금도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고대사 책에 씌어 있는 인간의 기원이라는 주제로부터 논의를 시작하려고 한다. 세계대백과사전(2권12쪽)은 지구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지구의 나이는 몇 살일까? 지질학자들은 지구의 나이가 45억년이라고 말한다. 인류의 역사에 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장 이른 기록이 겨우 5,000년에 불과하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 지구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를 더 잘 이해하게 될 것이다.”

더구나 이 기록 중에서 처음 천년 동안은 분명하게 알려져 있지도 않다. 내가 인용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The Story of Man's Early Progress (1920, by W. West)'는 3쪽에서 다음과 같이 시작하고 있다.

“최초의 인간들은 현대의 가장 미개인보다도 더 무력하고 야만스러웠다. 그들의 유일한 의복은 그들의 몸을 가려줬던 거친 털이 전부였다. 그들은 손 그리고 원숭이의 것과 같은 무서운 이빨과 손에 들린 몽둥이와 돌멩이 외에는 불이나 칼도 없었고 어떤 도구 또는 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최초의 주목할 만한 것들은 몇몇 미개인들에 의한 다음과 같은 발견이었다.

즉 그 미개인들이 평평한 돌을 다른 돌과 마주쳐 작은 조각들을 떨어내서 날카로운 날이나 뾰족한 끝 그리고 손으로 잡기에 편리한 모양이 되게 하는 방법을 알아냈다는 것이다. 이런 발명으로 인하여 인간들은 구석기 시대로 도약하게 되었다. 유럽에서는 석기시대가 적어도 십만 년 전에 시작되었다.”

그러고 나서 저자는 몇 쪽 뒤에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략 1만 년 전쯤에 어떤 창의적인 야만인(미개인)이 돌을 특수한 다른 돌로 갈아서 돌칼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발견하게 되었고 돌끼리 서로 단순하게 마주 쳐서 만든 것보다 더 날카로운 날과 예리한 끝을 만들 수 있게 되었는데, 이 발명으로 새로운 시대가 왔다. 구석기 시대(타제석기 시대)가 신석기 시대(마제석기 시대)로 전환되었던 것이다.”

어느 창의적인 원시인이 돌을 자르고 깎아서 마침내 더 좋은 돌연장을 만드는데 9만 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는 정말 놀랍다. 그 원시인은 정말로 그 정도로 지능박약아란 말인가? 게으름과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고 하는데, 발명의 어머니는 분명코 그들에게 그 보다는 훨씬 더 일찍이 다가왔을 것이다.


알렌 콘슬라와 테리 스마트가 공동으로 저술한 최근의 한 역사 책 'People and Our World-A Study of World History (1977-1984)'에는 다음과 같은 서문이 있다.

“사람들은 지구 최초의 거주자들에 대해서 늘 궁금해 했다. 선사시대의 사람들은 글을 쓸 줄 몰랐고 기록을 남길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들에 관해서 많은 것을 알기는 어렵다. 이 시대를 선사시대 즉 기록된 역사 이전의 시대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은 구석기시대, 중석기시대, 신석기시대 등 3개 기간으로 구성된 석기시대에 관해서 기술한다. 저자들은 이런 시대의 사람들은 동물들을 사냥하고 야생의 식물이나 열매를 따먹고 살았던 유목민 또는 방랑자들이었다고 생각한다. 저자들은 소위 아주 옛날의 인간화석이라고 불리는 고고학적 발굴물들에 대해서도 쓰고 있다. 이 화석들은 루이스와 메리 리키 부부, 그리고 그 아들 리처드가 아프리카에서 발견하였고, 다른 사람들도 아프리카나 지구의 여타 지역에서 발견했는데, 그 연대를 175만년에서 375만년으로 추정하고 있다. 아나톨 마조와 존 피플(Anatole Mazour and John People)이 쓴 또 다른 역사책 'A World History (1975)' 5쪽에는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최근에 발견된 뼈들은 인간으로 추정되는 생물체가 50만년 내지 175만년 전에 아프리카에 생존하였다는 사실을 과학자들로 하여금 믿도록 유도하고 있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이 생물체가 현대 인간들과 직접적인 유사점은 거의 없지만, 그들은 직립 보행하였고 인간들과 같은 신체적 특성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돌과 나무 조각들을 연장이나 무기로 사용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우리는 수십만 년 동안에 인간들이 어떻게 발달해 왔는지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한다. 그들의 생활방식은 동물들과 매우 흡사했을 것이다. 그들은 육식동물들처럼 사냥을 했을 것이고 여타의 많은 동물들처럼 식용의 열매나 뿌리들을 모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3가지의 특성들이 인간을 동물과 구분 짓고 발달할 수 있게 했을 것이다. 첫째, 직립 자세는 사냥을 하고 적으로부터 방어하기 위해 손으로 무기를 잡을 수 있게 했다. 둘째, 말을 할 수가 있어서 언어를 구사하여 정보를 교환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셋째, 큰 두뇌를 가지고 있어서 정보를 활용하고 더 많은 정보를 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진화론이 참되다고 해도 한 생물체가 현대 인간으로 발전하는데 수십만 년에서 100만 년 이상씩이나 걸렸겠는가? 그렇지 않으면 6,000년 전인가? 인간이 6,000년에서 8,000년 전에 돌연히 인류역사의 장으로 나타날 수 있게 한 것은 무엇인가? 어떤 동물도 말을 못하는데 무엇이 유독 인간만이 말을 할 수 있게 했는가? 무엇이 인간으로 하여금 다른 생물체보다 큰 두뇌와 분석력을 갖게 했는가?


1961년도에 발행된 라이프(Life)지 8쪽에는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려 있다.

“인간의 진화 역사는.......1,500만 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띄엄띄엄 씌어진 기록 중 5,000년의 역사가 인류의 알려진 역사이고, 나머지의 역사들은 석기시대의 사냥꾼 세계의 발자취들을 포함한 채 침묵하고 있다. 인간이 진화하는데 걸린 1,500만 년 중 우리의 육체와 두뇌가 엄청나게 변했다는 사실 이외의 것에 대하여는 우리는 오늘날 겨우 한두 움큼의 이빨 부스러기, 심하게 손상된 한두 조각의 두개골, 죽은 사냥꾼들의 마법의 조각품과 그림들, 우리가 캄캄한 정글에서 위로 기어오르던 방법에 관한 이야기를 말하여줄 소수의 조잡한 연장들만을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 사람들이 불과 연장을 쓰는 법을 배우는데 수백만 년이 걸렸다는 말인가?



출처 - 앨버트 시퍼트의 [진화론의 비과학성 : 그 32가지 이유들] 번역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738

참고 :

미디어위원회
2005-05-23

한자에 숨겨져 있는 창세기

Ethel R. Nelson 


  • 미국 병리학자 Ethel R. Nelson 박사는 한자의 기원에 창세기의 내용이 담겨져 있는 것을 발견, 연구 시작.

  • 한자의 발생 기원은 B.C.2500 경으로 알려져 있고, 4500 년 동안 변함없이 보존되어오고 있음.

  • 유교와 도교가 중국에 성행한 시기는 B.C. 5세기,

  • 불교가 중국에 소개된 것은 B.C. 1세기경 (67년) 임.

  • 공자, 노자, 석가의 가르침이 있기 전인 B.C. 500년 이전의 종교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음.

  • 고대 중국인들은 미신보다 유일신인 하나님을 섬겼다는 증거들이 도처에서 발견되며,

  • 하나님을 '하늘 위에 계신 통치자 = 상제(上帝, 샹다이, Shangdai)' 라고 부르고 모심.

  • 이것은 창 17:1)과 시 91:1)의 전능하신 하나님(샤다이, Shaddai)과 원어상의 발음이 비슷.

  • 중국에도 구전으로 내려오는 대홍수 이야기가 있는데, 자신들은 이를 극복한 '누아'의 자손으로 믿고 있음 (노아와 발음이 비슷).

  • 몽고, 중국, 극동 아시아 쪽으로 이동해온 인종은 메소포타미아 근처에서 이동해온 인종임.

  • 이들 중 일부는 황하 유역에 정착하여 한족의 조상이 되었고, 일부는 만주와 한반도까지 들어왔음.

  • 이들은 한자를 만들 때, 자신들의 섬겼던 상제와 조상들의 이야기를 담았을 것이 분명함.

  • 아담은 므두셀라때까지 살아 있었으며, 므두셀라는 셈의 때까지, 셈은 바벨탑 사건 이후 400년을 더 살았기 때문에, 사실상 천지창조, 노아의 홍수사건, 바벨탑 사건까지 거의 전부를 후손들에게 구전으로 전해줄 수 있었을 것임.    

  • 다음의 한자들에 담겨져 있는 창세기의 내용이 우연의 일치라고 보기는 어렵다.

 

1. 船 (배 선) : 인류 최초의 거대한 배(舟)인 노아의 방주에는 8명(八)의 사람(口)이 탔음.

 2. 造 (지을 조) : 흙(土)에 생기( ' )를 불어넣으니 사람(口)이 되어 걸어다님(造). (창 2 :7).  

 3. 田 (밭 전) : 네개의 강(+)이 흐르는 동산(口). 에덴동산 (창 2 :10~14).

 4. 男 (사내 남) : 에덴동산(田)에서 쫒겨나 힘쓰고 수고해야(力) 되는 사람.

 5. 女 (계집 여) : 첫 번째(一) 사람(人)의 갈비뼈 하나를 빼내서( ' ) 만든 사람.(창 2:21~22).

 6. 兄 (형 형) : 말하는(口) 사람(人). 가족을 대변하여 하나님께 말하는(예배드리는) 자. 장자권자.

 7. 兇 (흉악할 흉) : 형(兄)인 가인이 저주를 받아 표(×)를 받게 됨. 터진 입이 되어 가족의 대변자의 위치를 상실함을 의미.

 8. 鬼 (귀신 귀) : 에덴동산(田)에서 사람(人)에게 은밀히 활동하는 것.

 9. 魔 (마귀 마) : 생명나무와 선악과나무(林) 사이에서 뱀으로 위장되어 있는 귀신(鬼).

 10. 生 (날 생) : 수평의 3 획은 하늘, 땅, 바다를 상징. 八은 생기를 뜻함.

 11. 品 (물품 품) : 세 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어진 것.

 12. 替 (대신 체) : 성부와 성자의 두분(夫, 夫)을 대신하여 말하시는(曰) 분(요 14:16,17). 그분은 성령님.

 13. 示 (보일 시) : 제물을 차려놓는 제단을 본뜬 모양. 하나님은 본래 보이시지 않는 분이나, 사람에게 나타나시길 원하시는 분임. 하늘 위에서는 한 분, 하늘 아래에서는 세 분을 나타냄. 하나님을 나타내는 부수가 됨.

 14. 禁 (금할 금) : 하나님(示)께서 두 나무(林)에 대해 명하신 것.

 15. 婪  (탐할 람) : 두 나무(林)를 바라보는 여자(女)의 마음.

 16. 神 (하나님 신) : 示(하나님, 계시하다) + 申(펴다, 말하다). 말씀으로 세계를 창조하신 분.

 17. 祝 (빌 축) : 형(兄)이 하나님(示)께 부탁하는 것.

 18. 祈 (기도할 기) : 하나님(示)앞에서 두 손을 도끼날처럼 모아들고(斤) 하는 행위.    

 19. 祭 (제사할 제) : 제단(示)위에 고기(祭 = 肉)를 손(手)으로 잡아드리는 것.

 20. 祥 (상서로울 상, 복 상)) : 하나님(示)에게 양(羊)을 드리는 것.

 21. 祀 (제사 사) : 오전 9~11시(사시, 巳時)에 하나님(示)을 뵙는 행사.

 22. 祖 (조상 조) : 하나님(示)과 같은 모습(且, 같을 차)이었던 사람.

 23. 福 (복 복) : 하나님(示)과 첫(一) 사람(口)이 에덴동산(田)에서 사는 상태.

 24. 先 (먼저 선) : 흙(土)에 생기(八)를 불어넣어 된 처음 사람(人).

 25. 火 (불 화) : 사람(人) 주변에서 나던 영광스런 광채(火).

 26. 榮 (영화 영) : 빛을 발하는 두 사람(火火)이 선악과나무(木)와 격리되어(冥) 있을 때의 상태.

 27. 仁 (어질 인) :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 두(二) 사람(人)의 성품.

 28. 西 (서녁 서) : 최초의(一) 사람(人)이 살던 동산(口)있던 방향. 에덴동산은 중국 사람들에게는 서쪽이었음.

 29. 要 (요긴할 요) : 최초의(一) 사람(人)이 있던 동산(口)에서의 여자(女).  

 30. 肉 (몸 육) : 아담의 몸(同)에 손을 넣으셔서(入) 한 사람(人)을 만듬.

 31. 元 (시작 원) : 아담과 하와 두(二) 사람(人)으로 부터 인류는 시작됨.

 32. 僉 (모두 첨) : 지구상의 인구는 모두 합쳐(僉) 두 명(口口, 人人)이었음.

 33. 完 (완전 완) : 두(二) 사람(人)을 만들어 가정(집, 完)을 이루게 하심으로 모든 창조 행위를 마치심.

 34. 裸 (벗을 라) : 금단의 열매(果)를 따먹고 벗은 줄을 알게되어 옷(衣)을 입게됨.

 35. 始 (비로서 시) : 여자(女)가 남모르게 먹음으로(口) (죄, 비극이) 시작됨.

 36. 初 (처음 초) :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 옷(衣)을 입히기위해 양에게 칼(刀)을 댐. 이는 우리의 죄를 위해 피를 흘려야하는 예수님을 예표하는 첫 사건.   

 37. 園 (동산 원) : 흙(土)으로 만들어진 두(人人) 사람(口)이 있던 울타리(口).

 38. 來 (올 래) : 선악과를 따먹은 후 나무(木)사이에 숨어있던 두 사람(人人)이 나옴.

 39. 衣 (옷 의) : 범죄한 두 사람(人人)을 덮어주는 것.

 40. 義 (옳을 의) : 손(手)으로 양(羊)를 쳐서(戈) 드림. 나(我)의 죄를 위해 양(羊)을 드리는 것.

 41. 犧 (희생 희) : 흠 없는(秀) 소(牛)와 양(羊)을 찌르는(戈) 것.

 42. 水 (물 수) : 수평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하늘로부터 수직으로 떨어짐을 묘사. 대홍수 사실이 내포됨.

 43. 洪 (홍수 홍) : 노아의 8식구(八)가 함께 손잡고(共) 치뤄낸 물난리.

 44. 沿 (물따라 내려갈 연) : 여덟(八) 사람(人)이 물(沿)위에 떠있는 것.

 45. 穴 (굴 혈) : 여덟(八) 사람에게 지붕(穴)을 삼고 거쳐했던 곳.

 46. 空 (빌 공) : 동굴(穴)에 있는 사람들이 일하러(工) 나갔을 때의 상태.

 47. 舌 (혀 설) : 바벨탑 사건 후 천(千)가지 소리(口)를 내게 됨.

 48. 合 (합할 합) : 모든 사람(人)들이 한(一) 언어(口)를 사용.  

 49. 塔 (탑 탑) : 사람들(人)의 언어(口)가 하나(一)일 때, 흙(土)으로 쌓은 것으로, 후에 잡초(草)만 남게 됨. 바벨탑의 건설과 저주를 의미.

 50. 遷 (옮길 천) : 서쪽(西, 바벨탑이 있던 시날 땅)에 큰(大) 분산(印)이 있어서 이동하게(運) 됨.

 51. 血 (피 혈) : 그릇(皿)에 담겨 하나님께 드리는 생명( ' ).

 52. 楚 (쓰라릴 초) : 하나님이 금하신 나무(林)의 열매를 따먹음(疋,조각)으로 시작된 것.

 


* 참조 :  1. 중국의 ‘알려지지 않은’ 신에 대한 기원 : 고대 상형문자인 한자 속에 나타나있는 성경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09&bmode=view

2.  The Lamb of God hidden in the ancient Chinese characters

http://www.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tjv13n1chinese_lamb.pdf

3. Noah’s Ark hidden in the ancient Chinese characters
http://creationontheweb.com/images/pdfs/tj/j19_2/j19_2_96-108.pdf

 

 *관련기사 : '성경으로 보는 한자의 세계’ 한문 강좌 열어 (2012. 9. 22. 시사코리아저널)
http://www.koreaj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8477

한문보존협회, ‘성경으로 보는 한자의 세계’ 강좌 실시 (2012. 9. 22. 광주타임뉴스)

https://www.timenews.co.kr/web/news/article/176813

한자어에 담긴 성경 이야기 (2010. 7. 21. 아이굿뉴스)

https://www.igoodnews.net/news/articleView.html?idxno=28507

성경 배우면서 한자도 익힌다-한자 속에 숨겨진 성경말씀의 비밀 (2014. 7. 31. 고신뉴스)

http://www.kosi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857

구약성경과 한자 • 찬송가와 한자 강좌  (2021. 10. 16. KMC News)

http://www.kmcnews.kr/news/articleView.html?idxno=13023


출처 - 창조지

미디어위원회
2005-05-20

고대 이집트의 치약 

(A Tale of Ancient - Toothpaste)

David Catchpoole 


오스트리아 비엔나 국립 도서관에 있는 파피루스 문서 모음집에서, 서기 4세기경 이집트의 치약 제조법이 발견되었다. 그것은 그을음, 아라비아고무, 물을 섞어 만든 검정색 잉크로 기록한 (1500년이 지난 지금은 바래진) 어떤 고대 이집트인이 ”희고 완벽한 이를 위하여” 라는 제목으로 기록해놓은 처방전이다. 이것은 지구상에서 알려져 있는 가장 오래된 치약 제조법이다.

최근 치의학회에서 나온 발표에 따르면, 이 처방엔 민트, 소금, 약간의 후추가 포함되어 있고 주원료는 붓꽃(dried iris flower)이었다. 이 고대의 처방전은 학회에 모인 의사들 가운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 이유는 최근 치과 연구자들이 단지 최근에 붓꽃이 잇몸질병을 치료하는데 매우 효과적이기 때문에 상업적인 개발 가치가 있음을 발견해냈기 때문이다.

 이 고대 이집트의 치약은 ”시간을 거슬러 앞선” 것으로 묘사될 수 있다. 콜게이트사에서 첫번째로 상업적 수단의 치약을 발매하기전인 1873년까지도, 사람들은 그리 효과적이지 못한 비누와 소금물을 섞어 만든 물질을 치약으로 쓰고 있었다.

치의학 학회에 참석했던 한 치과의사는 실제로 자신이 그 매운 치약을 써보고 ”그것은 불쾌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중엔 입이 신선해짐과 깨끗해짐을 느꼈다”고 말했다.

4세기의 이 치약 처방전은 고대 이집트 도시인 크로코딜로폴리스(Crocodilopolis) 외곽의 쓰레기 더미에서 발견된 뒤, 1878년 구매되어진 파피루스 기록 뭉치 속에 있었다.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의 파피루스 수집물 분야의 책임자이자, 그 오래된 치약 제조법을 찾아낸 허만 하라우어(Hermann Harrauer) 박사는 덧붙여 설명하기를, ”파피루스는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에 수시로 재사용되었고, 이 치약 처방전에는 아마도 수도원들 사이에서 주고받은 서신 내용이 뒷쪽에 적혀 있었고, 그것을 쓴 사람은 아마도 이 처방과 관련이 있음을 의미한다” 고 말했다. 

하라우어 박사는 계속 이어 말했다. ”그것을 기록한 사람은 수도사(monk)였을 것이다. 서기 4세기에 이집트는 크리스천화 되었고, 대부분의 크리스천 수도사들은 의사들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일치한다.” 

기록된 시기는 위대한 크리스천 신학자였으며(그리고 창조론자 였던) 케사르의 대주교였던 바실(Basil the Great)이 살던 시기와 일치한다.  그는 당시의 최신 의학과 건강관리가 수도원 사회 내에서 이루어지도록 강조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라우어 박사는 또 말하기를 ”그 치약 제조법은 당대 의학지식을 매우 많이 가지고 있었던 어떤 사람이 그것을 요약하여 적은 것”이라고 했다.

고대인들을 '원시인'으로 여기는 진화론적 사고에 익숙해 있는 사람들에게는, 옛 문화에서 선진화된 과학 기술을 발견한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수 없다. 고대 치약의 제조법이 밝혀진 그 치의학회에 참석한 한 치과의사는 그것이 밝혀진 것에 대해 이렇게 논평을 했다. ”치과 전문인 중에 어느 누구도 그런 발전된 치약 제조법이 고대 사회에 이미 있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나 다른 고대 사람들이 오늘날의 사람들이 발명한 것들을 이미 가지고 있었다는 보고들은 크리스천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성경은 창조 주간의 여섯째 날에 인간은 완전한 상태로 창조되었고, 그후 겨우 6000여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대인들의 놀라운 발명은 창조론자들에게는 기쁨이 되지만, 진화론자들에게는 놀라움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Viegas, J., Oldest Toothpaste Formula Used Iris, Discovery Channel, , 11 February 2003.
  2. Zoech, I., The ancient Egyptian recipe for toothpaste, The Telegraph (UK), , 4 August 2003.
  3. The formula was written in Greek, the official language of Egypt for about 1,000 years until the last temples closed in the sixth century AD. Ref. 2.
  4. The recipe was discovered among part of the largest collection of ancient Egyptian documents in the world—180,000 items up to 3,500 years old, including stone and clay tablets—gathered by the Hapsburgs, the rulers of the Austro-Hungarian empire. Ref. 2.
  5. Some accuse creationists of taking an excessively literal view of Genesis, and assert that this is a recent phenomenon, i.e. that Christians in the early church took an allegorical view of Genesis. The writings of Basil show otherwise. See Batten, D., Genesis means what it says: Basil (AD 329–379), first published in Creation 16(4):23, 1994.
  6. The obvious implication is that man was highly intelligent from the start, and developed technology as time progressed. The Bible tells us that even before the first man and woman had finished having children, their older children were growing crops and raising livestock (Genesis 4:2, 25). Early man had music, musical instruments, and could forge ‘all kinds of tools out of bronze and iron’ (Genesis 4:21–22).


번역 - 미디어위원회

주소 - https://creation.com/a-tale-of-ancient-toothpaste

출처 - Creation 26(3):32–33, June 2004.

미디어위원회
2005-04-02

성경 창조 기록의 독특성

(The Uniqueness of the Biblical Creation Record)

Wayne Jackson 


      인류가 가지고 있는 우스꽝스러운 창조 우화(creation fables)들은 기원에 대한 창세기의 설명이 진실함을 드러내는 데에 도움이 된다.

조지 바톤(George A. Barton) 박사는 펜실베이니아 대학에서 셈족 언어(Semitic languages)를 가르쳤던 교수이다. 한때 그는 예루살렘에 있는 미국인 동양학 연구학교(American Schools of Oriental Research)의 이사이기도 하였다. 그는 성서 고고학의 전문가로서 인정받았었다. 1916에 처음 출판된 그의 방대한 책 ‘고고학과 성경(Archaeology And The Bible)’에서, 바톤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성경의 창조 이야기와 바빌로니아의 창조 이야기들을 나란히 놓고 비교하여볼 때, 성경적 설명이 시사하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은 없었다.” (pp. 297-298).  

1853년 12월에 고고학자인 호르므쯔 라삼(Hormuzd Rassam)은 고대 니느웨(Nineveh)의 한 장소를 발굴하고 있었다. 발굴 도중에, 그는 19세기의 가장 중요한 고고학적 발견을 하게 된다. 그는 앗시리아(Assyria) 제국의 마지막 위대한 통치자인 앗수르바니팔 (Assurbanipal, 669-626 B.C)의 궁궐을 발견하였다. 앗수르바니팔 왕은 방대한 점토판(clay tablets)들을 모아둔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그가 발견한 기록들을 번역하고 복사하기 위해서 앗시리아와 바빌로니아 전역의 필사가들에게 보냈다. 그리고 수만장의 점토판들을 모았는데, 거기에는 역사적, 과학적, 종교적 문헌들과, 공적인 문서나 기록들, 사적인 문서나 편지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Finegan, p.181).

이들 서판의 많은 부분은 런던에 있는 대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1872년 12월, 박물관 관리자인 조지 아담 스미스(George Adam Smith)는 이 서판들 중에서 창조와 홍수를 같이 기록하고 있는 바빌로니아인의 이야기를 발견했다고 발표하였다.


창조에 관한 서사시는 일곱 장의 점토판에 대략 1,000행 정도가 기록되어 있었다. 그것은 ‘에누마 엘리슈(Enuma elish)’ 라 불려지는데, ‘When above’을 의미하며, 텍스트의 첫 단어들인 ”Time was when above heaven was not named . . .”로부터 취해졌다. 같은 서사시의 다른 점토판들은 아수르(Ashur), 키시(Kish), 우룩(Uruk)에서 발견되었다. 학자들은 이 창조 이야기가 아마도 함무라비(Hammurabi, 1728-1686 B.C.) 시대까지 확장되었을 것으로 믿고 있다.


바빌로니아의 창조 이야기들 사이에는 일부 유사한 면들이 발견된다. 하지만 모세에 의해서 쓰여진 창세기에 기록된 창조 이야기는 에누마 엘리시의 기록에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우수하다. 바빌로니아 서사시들은 다신론적 신화와 미신들이 난잡하게 섞여있는 완전히 불합리한 것이 특징이다. 


바빌로니아의 창조 이야기 개요

바빌로니아의 창조 기록은 2 명의 고대 신들의 이야기로부터 시작한다. 남성 신의 이름은 압수(Apsu) 이고, 여성 신의 이름은 티아마트(Tiamat)이다. 이들 두 신은 많은 신들을 낳았다. 이들이 낳은 후손 신들은 매우 거칠어서, 평온하고 조용한 날이 없었다. 압수는 이들을 모두 쓸어버리기로 결정하였다. 신들 중에 에아(Ea) 라는 이름의 신 하나가 그의 아버지의 계획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를 암살하였다. 그리고 나서 에아는 바빌론의 도시를 지배하는 신인 마르두크(Marduk)라는 이름의 신을 만나게 된다.


한편 과부가 된 티아마트는 몸이 피 대신 독으로 채워진 여러 무서운 괴물들을 창조하였다. 그녀는 압수의 죽음을 복수하기 위해서 이 괴물들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녀는 그녀의 후손 중에 하나인 킹우(Kingu)를 지명하여 복수할 수 있는 힘을 부여했다. 그러나 복수의 대상이 된 신들은 티아마트의 의도를 알아 차렸다. 그리고 그녀와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서 마르두크를 선택하였다.


마르두크는 활과, 화살, 곤봉을 들고 티아마트에 대항하기 위해 나아갔다. 그는 그녀를 그물로 사로잡았다. 티아마트가 마르두크를 삼키기 위해서 그녀의 입을 벌렸을 때, 그는 그녀 안으로 강한 바람을 불어 넣었고, 그녀의 몸은 팽창되어졌다. 마르두크는 그녀에게 화살을 쏘았다. 화살은 그녀의 배를 찢었고, 그녀의 심장을 조각내었다. 마침내 그녀는 죽었다. 마르두크는 승리를 뽐내며 그녀의 시체를 밟고 섰다. 그는 그녀의 몸을 두 조각으로 잘랐다. 이것으로부터 하늘(heavens)과 땅(earth)이 만들어졌다. 결국에는 킹우도 죽임을 당했다. 피가 그의 몸 밖으로 흘러 나왔다. 그리고 마르두크는 에아에게 그 피(blood)로부터 인류(mankind)을 만드는 것을 위임했다.


결론

합리적인 사람이면 누구라도 이 고대 바빌론 서사시의 이상야릇한 이야기와 모세의 기록 사이에 보여지는 분명한 대조를 식별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도 모세의 장엄한 이야기처럼 기품 있는 것은 없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In the beginning God created the heavens and the earth)”. 성경의 말씀은 얼마나 멋있는가! 성경을 비판하는 공격이 있을 때마다, 성경의 기원은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감동임이 드러나고 있다.


* 노트 : 에누마 엘리슈(Enuma elish)에 대한 더 많은 정보는 Enuma Elish : A Babylonian 'Creation' Account를 보라.


SOURCES

.Barton, George A. (1946 7th edition), Archaeology And The Bible (Philadelphia: American Sunday - School Union).

.Finegan, Jack (1946), Light From The Ancient Past (Princeton: University Pres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링크 - https://christiancourier.com/articles/uniqueness-of-the-biblical-creation-record-the

출처 - Christian Courier: Archives

미디어위원회
2005-03-31

바벨탑 : 전설인가, 역사인가? 

(The Tower of Babel : Legend or History?)

Wayne Jackson 


      창세기(The book of Genesis)는 그 문서의 제목이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기원(beginnings)’들을 다루고 있는 책이다. 창세기에 있는 기원들 중의 하나에는 사람들이 어떻게 다른 언어(different languages)들로 말하기 시작했는지에 관한 기록이 있다.


성경에 의하면, 원래는 ”온 땅의 언어가 하나였다”(창세기 11:1). 야심에 찬 인류는 시날(Shinar, 바빌론) 평지에 모여서, 높이가 하늘에 닿는 위대한 탑을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만드는 의도는 스스로의 이름을 내는 것과, 온 지역에 흩어짐을 면하기 위해서였다. 이것은 땅에 충만(fill) 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창세기 1:28, 9:1)에 대한 직접적인 불복종이었다. 그들은 그 일을 시작하였다. 하나님은 사악한 계획을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리고 선포하셨다.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창 11:7). 그 신성한 명령은 이루어졌고, 사람의 언어(languages)들이 태어났고, 사람들은 온 지면에 흩어지게 되었다. (창 11:8)


이 사건은 실제의 역사에 기초한 것인가? 이에 대해 회의론자들은 부정적으로 대답한다. 그리고 그 이야기에 대해 공공연하게 조롱한다. 한 불신자는 이 이야기를 터무니없는 전설(nonsensical legend)로써 분류한다. 그는 더 나아가 다음과 같이 선언하고 있다. 

     ”전 지구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이 한 때 오직 한 언어만을 말했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것 같지 않은 이야기이다.” (Allen, pp. 43,44).

종교적 모더니즘의 시도도 더 나아 보이지 않는다. 보위(Bowie)는 이것을 상징적 표현으로 특성 되어지는 애들 같은(child-like) 동화적 대답으로 간주하면서, 사람의 언어들이 서로 다른 것을 설명하기 위한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보인다고 하였다. (pp. 562-565).

그러나 사실은 성경 이야기의 신뢰성을 의심할만한 아무런 유효한 이유들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언어학 (Philology)

첫째로, 많은 학자들이 실시한 언어 연구에 의하면, 다양한 인간의 언어들은 궁극적으로 공통 어원(common source)으로 모아지고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되었다. 세계적인 비교 언어학자인 막스 말러(Max F. Maller, 1823-1900)는 고대의 언어들을 연구하여 그것들의 유사점과 상이점을 관찰하였다. 그는 옥스포드 대학에서 가르쳤다. 그의 책 '언어과학(Science of Language)'에서 이렇게 쓰고 있었다.

    ”우리들은 언어가 취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형식들을 검사했다. 그리고 우리들은 이 세 분명한 형식(어근, 어미, 어형변화)들을 인간 언어의 한 공통의 기원과 조화시킬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나는 확실히 '예' 라고 답할 것이다.” (quoted by Free, pp. 46-47).

산스크리트어(Sanskrit)는 인도의 고대 언어이며, 고전적인 언어이다. 윌리암 존스 경(Sir William Jones)은 이 언어에 대한 깊은 연구를 하였다. 그는 1786년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산스크리트어는 비록 오래 되었지만 놀라운 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 언어는 그리스어(Greek)보다 더 완벽하고, 라틴어(Latin)보다 더 풍부하고, 두 언어들보다 더 우아하고 세련되어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둘 다 강한 유사성을 가졌고, 둘 다 문법의 형식과 동사의 뿌리가 같다. 그래서 어떠한 언어학자도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어떤 공통의 어원으로부터 이 언어들이 발생했다는 믿음 없이 세 언어 모두를 조사할 수 없다.” (quoted by Robertson, p. 10).

존은 또한 고트어(Gothic), 켈트어(Celtic), 페르시아어(Persian)가 모두 같은 언어 계통에 속한다고 제의했다. 이들은 오늘날 인도-유럽어족으로 알려져 있다.

창세기에 관한 두 권의 연구 업적으로 존경받고 있는 네덜란드의 학자인 알더스(G. Ch. Aalders)는 이와 같은 말을 했다.

    ”한 유명한 아시리아어 학자는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그리고 여러 섬들에 사는 원주민들이 사용하는 언어들과 고대 수메르어(알려진 가장 오래된 언어)와 이집트어 사이에는 명백한 관련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이전에 창세기 11:1-9의 이야기를 하나의 신화로 여겼던 이 학자는, 결국 성경의 이야기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신뢰할만한 이야기라는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p. 254).

헤롤드 스티거(Dr. Harold Stigers) 박사는 이 문제에 대해 흥미로운 결론을 내리고 있다.

    ”무수한 언어와 방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림잡아 3000여 개의 언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모체 언어(parent language)로부터의 종국적인 파생(derivation)은 주요 언어계보의 경계들에 대한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다. 충분히 유사하고, 다르지 않은 구문(syntax)과 어휘(vocabulary)의 공통적인 모습들은 공통 조상 언어가 있었음에 틀림없음을 가리키고 있다.” (p. 130).

흥미롭게도 최근에 통속적인 저널리스트들이 컴퓨터를 사용하여 언어들을 비교한 어떤 언어학자의 연구에 대해서 토론을 하였는데, 그들은 정말로 ‘원시 세계(proto-World)’라 부르고 있는, 한 모체 언어(mother tongue)가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숙고하기 시작하였다. 한 저자는 심지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아마도 성경이 맞는 것 같다. 그리고 정말로 바벨탑이 있었던 것 같다. 아니면, 저주를 받아 언어의 혼란이 있기 전 적어도 한 때에는 사람들이 정말로 단일 언어를 사용했었던 것 같다.” (Dyer).

그렇다. 단지 오늘날 성경비평가들만이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 (History)

언어들의 기원(origin of languages)에 관한 창세기의 기록을 지지하는 역사적인 증거들이 있다. 이 사건과 관련된 여러 고대의 전설(traditions)들이 있다. 유세비우스(Eusebius)의 인용에 의하면, 아비데누스 (Abydenus, 기원전 4세기 중반의 그리스 역사가)는 파괴된 바벨론의 거대한 탑에 대해 말했었다. 그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져 있었다.

    ”....이 시기까지 모든 사람들은 한 언어를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제 여러 많은 언어들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게 되었다.” (quoted by Rawlinson, p. 28).

크게 혼돈된 설명 속에서, 분명한 것은 어떤 고대의 사건에 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플라톤은 그의 작품 중 하나에서, 사람들이 같은 언어를 썼던 황금의 시대에 대해 말하고 있다. 그러나 신의 행동은 그들 언어의 혼동을 야기했다고 말하고 있다. (see M’Clintock & Strong, p. 590).

유대인 역사가인 요셉푸스(Josephus)는 고대의 자료들을 인용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모든 인류가 한 언어를 사용했을 때, 그들 중 일부는 탑 하나를 건설하였다. 마치 그들은 그것으로 하늘까지 오르려고 했던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신은 폭풍바람을 보내어 그 탑을 무너뜨렸다. 그리고 모두에게 각각의 특별한 언어를 주셨다. 이런 이유 때문에 그 도시는 바벨론(Babylon)이라 불려졌다.” (Antiquities 1.4.3).

그러한 참고자료가 아니라도, 창세기 11장의 상세한 기록은 역사적 전망과 놀랍도록 정확하게 일치한다. 다음을 숙고해 보라.

시날(Shinar) 지역에 바벨론(Babylon)이 있었다는 것은 가장 초기의 시대에 분명히 알려져 있었다 (cf. Gen. 10:10; Dan. 1:2).  


바벨론에 한 '탑(tower)'이 있었다는 암시는 지구라트(ziggurats)라 불리는 탑들이 고대의 그 지역에 존재했었다는 사실과 확실히 일치한다. 이들 탑들은 하나의 단 위에 다른 단을 건설하는 식으로 여러 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꼭대기로 갈수록 점점 작아진다. 이것은 어떤 특별한 신성을 나타낼 때 봉헌되어지는 하나의 작은 사원으로 여겨진다.

‘벽돌(brick)’과 ‘역청(bitumen, KJV 에서는 slime)’이라는 단어의 사용은 진실성을 더해주고 있다. 바빌론 지방에는 건축 시에 흔히 사용되는 돌들이 나지 않는다. 이것은 팔레스타인 지역의 특성이다. 그 지역에서는 불에 구워진 벽돌(fired bricks)들이 수 세기 동안 사용되어 왔다.

 

 바벨탑에 대한 창세기 설명의 역사성이 의심받을 만한 (반기독교인들의 편협한 주장을 제외하곤) 아무런 이유가 없다. 런던 대학의 아시리아학(Assyriology) 교수인 도날드 와이즈만(Donald J. Wiseman)은 자신 있게 말하고 있다. 

"창세기 11장의 기록은....신뢰할 수 있는 역사적 설명에 대한 모든 흔적들을 가지고 있다.... (p. 157).”

심지어 한 자유주의 작가도 ”여기에서 개략적으로 그려지고 있는 배경은 기대 이상으로 근거가 있는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Speiser, p.75)” 라고 시인하고 있다.

        

고고학 (Archaeology)

고대 바벨탑(Tower of Babel)의 정확한 위치는 가능성이 있는 지역에 여러 파괴된 유적들이 남아있기 때문에 불확실하다. 유대와 아랍의 전승들을 조사했던 많은 작가들은 보시파(Borsippa, 'Tongue Tower”)에 바벨탑의 잔해가 있다고 하였다. 그곳은 북부 바빌론에서 남서쪽으로 11마일 지점(이전에는 시의 근교지역) 이다. 다른 사람들은 탑이 있는 장소를 에트멘안키 (Etemen-an-ki, 하늘과 땅의 기초가 되는 사원)로 확인하고 있다. 이곳은 유프라테스강 오른쪽 강둑 근처에 있는 도시의 남쪽 구역에 위치한다. 이들 폐허들의 한 곳 또는 다른 곳은 최초 바벨탑에서 고고학적으로 유래된 것(descendant)일 수 있다.    


바빌론의 홍수 이야기를 번역했던 영국 박물관의 조지 스미스(George Smith)는 그의 책 ‘칼데아인의 창세기 이야기(Chaldean Account of Genesis, 1880)’에서, 확실하게 모세의 기록을 생각나게 하는 칼데아인(바빌로니아 지배의 기초를 쌓은 고대 셈족)이 쓴 한 단편(fragment)을 보고하고 있다. 비문(inscription)은 고대의 지구라트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이 사원의 건축은 신들을 화나게 했다. 한 밤에 신들은 지어진 것을 무너뜨려 버렸다. 신들은 그들은 멀리로 흩어버렸고, 그들의 말을 이상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들의 진보로 저지되었다.” (Caiger, p. 29).


결론 (Conclusion)

한때 높이가 3피트, 폭이 4피트인 울타리를 만들었던 아일랜드 사람의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상한 울타리 모양에 대해 이유를 묻는 사람들에게,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누군가가 이 울타리를 넘어뜨릴 때, 그것은 이전보다 더 높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 성경이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믿지 않는 비판론자들이 성경을 무너뜨리기 위해 수많은 공격을 퍼붓고 있지만, 성경은 여전히 손상되지 않고 남아있는 것이다. 성경(The Bible)은 신뢰할 수 있는(trustworthy) 책이다.



SOURCES 

.Aalders, G. Ch. (1981), Genesis (Grand Rapids: Zondervan), Vol. I.

.Allen, Steve (1990), Steve Allen on the Bible, Religion, & Morality (Buffalo, NY: Prometheus).

.Bowie, Walter Russell (1952), 'The Book of Genesis,” The Interpreter’s Bible (New York: Abingdon), Vol. 1.

.Caiger, Stephen L. (1946), Bible and Spade – An Introduction to Biblical Archaeology (London: Oxford University).

.Dyer, Gwynne (1990), 'Seeking the Mother Tongue,” New Zealand Herald, September 17.

.Free, Joseph P. (1950), Archaeology and Bible History (Wheaten, IL: Van Kampen Press).

.Josephus, Flavius (1957), The Life and Works of Josephus, William Whiston, Translator (Philadelphia: John C. Winston Co.).

.M‘Clintock, John & Strong, James (1895), Cyclopedia of Biblical, Theological, and Ecclesiastical Literature (Grand Rapids: Baker, 1968), Vol. I.

.Rawlinson, George (1873), Historical Illustrations of the Old Testament (Boston: Henry A. Young & Co.).

.Robertson, A, T. (1919), A Grammar of the Greek New Testament In The Light of Historical Research (London: Hodder & Stoughton).

.Speiser, E.A. (1964), The Anchor Bible – Genesis (Garden City, NY: Doubleday & Co.).

.Stigers, Harold G. (1976), A Commentary on Genesis (Grand Rapids: Zoadervan).

.Wiseman, Donald J. (1980), 'Babel,” The Illustrated Bible Dictionary, J. D. Douglas, Ed. (Wheaton, EL: Tyndale House), Vol. 1.


. Babel    http://www.answersingenesis.org/creation/v24/i3/babel.asp

. The tower with many flaws    http://www.answersingenesis.org/tj/v14/i2/tower.asp

 . Answers, April – June 2008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3/n2


번역 - 한동대학교 창조과학연구소

링크 - http://www.christiancourier.com/archives/babel.htm 

출처 - Christian Courier : Archives


한국창조과학회
2005-01-13

민족과 언어의 기원 

- 창세기의 과학적 이해


- 자료는 '창세기의 과학적 이해'의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


창세기 10장

(창10:32)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

우리는 이 장에서 오랫동안 머물지 않을 것이다. 이 장의 주요 관심사는 고고학과 고대 역사학의 전문가에게 해당되는 것들이다.

그러나 그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우리에게 유용한 교훈을 포함하고 있으리라 믿는다. 그것들 중 몇 가지를 살펴 보자


<1> 이 구절은 인류가 한 종족이라고 말해주고 있다.

 이 사실은 생물학적 사실에 의해 증명된다. 이 지구상의 어떤 남자도 그와 다른 지역의 여자와 결혼하여 자녀를 낳을 수 있으며, 그 또한 자녀나 손자들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호모 사피엔스’라는 한 종족인 것이다.


<2> 이 사실은 진화론자들에게는 하나의 수수께끼이다. 그들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은 수 백만년 전 그 조상이 인간과 원숭이의 공통 조상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그러나 어찌하여 이런 일이 한 곳으로부터가 아니고 오십여 군데의 각각 다른 곳에서 우연히 일어날 수 업었을까? 빅토리아 시대의 어떤 과학자들은 복수진화가 일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오스트레일리아의 원주민과 그와 유사한 ‘원시인’들은 독립적으로 진화하였고, 그래서 현재 현대인들은 높은 지성과 문화에까지는 아직 도달하지 못한 상태에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최근의 연구는 이 생각이 극히 부조리한 것임을 증명하였다. 사실에 맞는 유일한 설명은 한 중심점으로부터 세계 전역으로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가 퍼져 나갔다는 것이다. 진화론자들조차도 모계로만 전달되는 생체 내의 세포 소기관인 미토콘드리아 연구를 통하여, 인류는 아프리카의 한 여인으로부터 퍼져 나갔다고 주장하며, 이를 인류의 조상격인 ‘이브’ 라고 주장하는 연구진도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진화론이든 창조론이든 인류의 조상은 하나의 조상으로부터 전파되었다는 데에 의견을 같이하고 있는 것이다.


<3> 세계 전역에 걸쳐 인간들은 그의 이웃에 대한 자신의 우월성을 나타내는 이야기를 꾸며왔다. 히틀러는 세계를 지배하기 위해서, 또한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진화론의 생존경쟁과 적자생존의 원리를 도입하여, 존재하지도 않는 순수혈통의 아리안 족속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성경은 그러한 환상극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성경은 모든 나라에 퍼져 있는 모두가 노아의 후손들이라고 주장한다.


<4> 그것은 또한 인류가 아직까지도 세 부류 - 백인종(대부분의 유럽인), 황인종(한국, 중국, 인도, 중동 등의 아시아인) 그리고 흑인종(대부분의 아프리카인)으로 구분된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분류를 셈, 함, 야벳족으로 거슬러 올라가 적용시킬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지만 대략 흑인종은 함족, 백인종을 야벳 등으로, 또한 황인종을 셈과 같이 그 분류를 세 가지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놀라운 일치를 보이고 있다. 대략 지금의 현재 중동 지역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마도 가장 노아의 식구들과 가까운 모습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이곳에서부터 시작하여 계속 동쪽으로 이주하여 셈족인 아시아 인종이 되었을 것이며, 그들은 종교성이 대단히 강한 민족이다. 세계의 거의 모든 종교, 즉 기독교, 유대교, 회교, 불교, 유교, 힌두교 등이 이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다. 물론 기독교의 신교는 종교 개혁 후 유럽인인 야벳 족속에 의해 창대하게 되었다. 진실로 야벳이 창대하게 되어 셈의 장막에 거하지 않는가? (창9:27). 예수님을 백인종으로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나, 이는 서양의 영향을 받은 텔레비전 및 그리스도의 수난(Passion of Christ)과 같은 영화의 영향이고, 그는 우리와 같이 검은 머리에 갈색 눈동자를 가진 지금의 중동사람과 매우 비슷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진화와 언어

 전 장에서 우리는 장기를 두는 능력 혹은 음악성과 같은 인간지력의 경이에 대해 약간 생각해 보았다. 지금 우리가 바벨탑에서 일어난 일들을 토의하기 전에 ‘언어’에 대해 고려해 보는 것이 큰 도움이 될 것이다. ‘현대과학’은 그 주제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1> 다윈이 1864년 진화론을 주창한 이래 과학자들은 사람의 조상에 대해 적은 증거들이라도 힘을 다하여 찾아왔다. 수백 가지의 실험이 침팬지의 새끼부터 어미까지를 대상으로 행해졌으나 아직까지 그 어느 누구도 ‘말하는 침팬지’를 만들어 내지는 못했다. 고작 으르렁거리는 것과 우리가 타잔의 치타라는 침팬지를 통해 익숙한 ‘후-후-’ 라는 어휘가 그들의 한계이다.


<2> 다윈 이후 약 50년 동안 진화론을 지지하는 과학자들은 인간의 언어가 어떻게 동물들의 으르렁 소리, 부르는 소리 등으로부터 진화되어 왔는지에 대한 그들의 이론에 매우 자신만만 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원시’ 언어에 대한 연구가 증가됨에 따라 이 이론들은 조용히 물러갔다. 현대학자들은 이 주제에 대해 완전히 언급을 회피하거나, 그들이 실제로 이것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고 자백하는 양자택일의 경우에 놓여 있다. ‘아마도 우리는 언제 언어가 시작되었는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초기 언어가 어떠한지에 대해 유용한 고찰을 하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창조적 언어의 능력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라고 쓰고 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언어능력이 완전하게 형성되지는 않았을지라도 다른 형질과 같이 점진적으로 진화하였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라고 주장한다.


<3> 1950년대와 60년대에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번역하는 기계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한 실험이 이루어졌다. 그 실험은 필요한 모든 정보를 수용하려면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용량의 컴퓨터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포기되었다. 그러나 2개 국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1400CC의 머릿속에 모든 정보를 수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10개 언어 이상을 구사할 수도 있다.


창세기 11장

(창11: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시날은 정확히 말하면 아라랏의 남남동편의 바빌로니아(지금의 이라크)이다. 그러나 아마도 성서의 기자는 그 자신의 위치, 즉 이스라엘부터 본 방향을 지칭하고 있는 것 같다. 티그리스와 유프라테스강에 의해 수원이 연결된 평야들은 고대 시대의 그 비옥함으로 널리 알려졌다.


(창11: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Q : 어떻게 몇 가족이 성을 쌓아 그 꼭대기의 탑이 하늘에 닿게 할 수 있었을 것인가?

A : 많은 학자들이 벨렉(그의 이름은 ‘나뉘었음’을 의미함)이 언어의 혼돈시대에 태어났다고 믿는다.

 이는 노아 홍수 후 100여년이 지난 때이다. 이상적인 조건 - 전쟁, 질병, 사고가 없는 상태 -을 생각할 때 방주에서 나온 3쌍의 사람들이 매 8년마다 그들의 수를 2배로 늘렸다고 생각지 못할 이유는 하나도 없다. (성경 기록에 의하면 노아는 세 아들 부부를 통해 손자만 16명을 두었다.). 이 증가는 한 세기를 지날 때 20,000명 이상을 더한 수일 것이다. 적어도 그 당시까지 노아의 후손들은 수천 명에 이르렀을 것이 확실하다.


(창11: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사실들이 이 놀라운 기적과 일치하는가?


<1> 오래 전에 기록된 언어일수록 더 어렵고 복잡하다. 고대 중국어는 현대 중국어보다 더 어렵고, 고대 헬라어는 현대 헬라어보다 더 어렵다. 가장 어려운 언어 중의 하나는 산스크리트어미여, B. C 15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각 동사는 500여 가지의 변화를 가지고 있다.(영어와 비교해 보면, 겨우 5가지로 do-does-did-done-doing이다) 중국기록은 B. C 2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6000여 기본자(한글은 24자)를 가지고 있었다.


<2> 원시인들이 썼던 언어들은 문명인의 언어들보다 매우 복잡하다. 에스키모인들은 현재 시제만도 63가지 형이 있으며, 눈의 흰색에 관한 표현도 10가지가 넘으며, 단순한 명사 하나만도 252 가지의 변화(단어 끝의 변화로서 예를 들면 he-his-him 등인데, 영어에는 명사의 변화란 없고 대명사의 변화뿐이다)를 갖는다.


<3> 세계 그 어떤 곳에서도 고도로 발달하고 매우 복잡하여 정확하게 표현 가능한 언어를 갖고 있지 않은 인간 집단은 없었으며, 실제 석기시대의 도구들을 사용할지라도 언어는 매우 발달했다.


<4> 세계에 약 50여 종의 분명한 어족이 있으며, 각각의 언어들은 서로 아무런 연관성도 없는 것 같다. 그것들 중 몇 종류들이 보다 큰 분류체계로 분류된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포르투갈어, 스페인어 등은 모두 라틴어에 귀속되고, 우리는 일본, 몽고, 헝가리, 핀란드 등과 같이 우랄알타이 어족에 포함된다). 오직 피레네인들에 의해 말해지는 바스크어는 어떤 조상어나 자손어를 갖고 있지 않다. 가장 최근의 이 주제에 대한 연구서는 조오지 스타이너가 쓴 ‘바벨탑 이후’이다.(O.U.P. 1975) 그는 ‘원래의 언어를 재조립하려는 모든 시도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인류학자들은 아직까지도 모든 인류는 한 민족으로부터 유래하였다는데 동의한다.


<5> 모든 인류는 어떤 언어든지 배울 수 있다. 그러나 입술, 혀, 입, 이 등의 사용에 있어서는 놀랄만한 다양성이 있다. 어떤 언어들은 터지거나 폭발하는 것 같고, 어떤 것들은 쉿소리를 내는 것 같고, 어떤 것들은 우르르 울리는 소리를 내고, 어떤 것들은 휘파람 소리를 낸다. 동양의 언어 중 많은 것들이 음조를 갖고 있어서, 그것들을 말할 때는 정확한 단어뿐만 아니라 정확한 음조까지도 유의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른 의미를 가질 수도 있게 된다.


<6> 어떤 언어는 극히 복잡하다. 우리의 국어대사전은 23만이 넘는 단어를 수록하고 있다. 각 단어는 뿐만 아니라 하나의 뜻 혹은 여러 가지의 뜻을 갖고 있으며 교육받는 사람은 1분에 120여 단어를 조합하여 의미 있는 문장들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없다. 23만여 단어로부터 만들어질 수 있는 수백만, 수십 억의 조합된 문장들을 생각해 볼 때에 한글과 같이 단순한 언어에 있어서까지도 기적에 가까운 사고와 선별의 능력이 필요함을 알 수 있다. 어떤 원숭이나 그 외의 다른 동물 중에서 이제껏 단 한 마리도 이러한 추상적 사고, 단어의 선택 그리고 의미 있는 대화의 능력에 대해 그 모양이라도 흉내낼 수 없었다.

 

결론

1. 위의 모든 사실들이 언어의 진화론 - 소리의 나열에서 문법으로, 단순한 것에서 복잡한 것으로, 원시적인 것으로부터 문명화된 것으로 진화했다고 주장한다 -을 전적으로 반박한다. 우리의 한글은 서서히 진화해온 것이 아니라, 세종대왕께서 창제한 것이다.

2. 위의 모든 사실들은 완전히 성경기록과 일치한다.

 첫째, 언어는 하나님이 인간에게 준 고귀한 선물이다. 이 기능은 본능처럼 우리에게 주어졌고 처음부터 완전했다. (물론 우리는 영어와 같은 ‘젊은’ 언어가 앵글로 색슨어와 프랑스어 등으로부터 나왔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는다.)

 둘째, 바벨에서 하나님은 원래의 한 가지 언어를 나누어 50여 개의 주요 언어들이 되게 하셨으며, 모두가 똑같이 복잡하며 모두가 길고도 어려운 공부 없이는 능숙하게 이해될 수 없게 하셨다.


(창11: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1> 당신은 시베리아, 그린란드, 사하라 사막, 혹은 오스트레일리아 등지에서 사는 원주민들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 중 대부분은 살기는 고사하고 여행을 위해서도 이와 같이 살기 어려운 기후 지대를 택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한 사실은 사람들이 위 지역 모두에 살고 있고 그 곳에서 살기를 택하였다는 점이다.  왜 그런가?  인간은 왜 메소포타미아의 비옥한 평지를 떠나서 거의 지구의 모든 끝으로 흩어지게 되었는가? 인류학자들은 여러 추측을 했다.

 첫째, 어떤 사람들(예, 에스키모인들)은 보다 나은 수렵지를 찾기 위해 북쪽으로 갔다.

 둘째, 어떤 사람들은 이웃과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이주했다.

 셋째, 이라크에 갑작스런 기근이 있었을 것이다.

 넷째, 인구밀도가 너무 높았다 등...

 그러나 이제까지의 가장 합리적인 설명은 언어의 혼란이다. 노아의 후손들은 ‘땅에 충만하라’(창9:1)는 하나님의 명령 순종하기를 거부해 버렸기 때문에 이런 갑작스런 사건에 의해 그들은 흩어져야만 했다. 마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타의에 의해서 전 세계로 흩어지는 디아스포라(diaspora)의 현상이 일어난 것과 같이...


<2> 쓰는 기술이 바벨탑에서 상실되어 버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명석한 부족들은 그들의 새 언어에 적절한 문자를 만들어 냈으며, 수학, 천문학, 공학 등에 굉장한 발전을 이룩하였다.  다른 부족들은 정글에 방치된 채 아마도 문자를 기록하는 법을 한 번도 배우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까지도 그들의 고대 구음을 보유했었으며, 오늘날까지도 보유하고 있다.

 

<3> 따라서 지구 위에 있는 3000 여종이나 되는 언어들의 다양성은 인간의 현명함의 소산이 아니라 인간 범죄의 결과이다.



출처 - 창세기의 과학적 이해

구분 - 3

옛 주소 - http://www.kacr.or.kr/library/itemview.asp?no=2405

참고 : 5153|4996|4557|4543|4499|4400|4382|4281|4237|4228|4119|3938|1395|736|730|2545|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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