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bile background

LIBRARY

KOREA  ASSOCIATION FOR CREATION RESEARCH

성경

미디어위원회
18시간전

<복원> 블레셋 신전을 무너뜨린 삼손 이야기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

(Does archaeology shed any light on the story of Samson 

pulling down a Philistine temple?)

ChristianAnswers.net



    성경에 기록된 삼손(Samson)의 이야기에 보면, 블레셋 신전을 통째로 무너뜨렸다고 한다. 고고학자들은 이런 설명에 관련된 어떤 정보를 밝혀낸 일이 있었는가? 이스라엘이 블레셋(Philistines, 팔레스타인) 사람들과의 전쟁에서 승패를 가른 핵심적인 전환점은 삼손의 죽음이었다. 그는 들릴라(Delilah)의 속임수에 빠져 포로가 되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그의 눈을 빼고, 그들의 주요 도시들 중의 하나인 가사(Gaza, 가자)로 그를 데려갔다. 

 

3a6acd998c428.png


거기에서 그들은 감옥 안에 있는 곡식을 찧는 맷돌을 돌리게 했다. 우리는 고고학적 발굴을 통해 이런 형태의 감옥이 실제로는 ‘방앗간(grinding house)’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고대에 가장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들 중의 하나는 곡식을 빻는 일이었다. 일반 가정에서 이 일은 가사를 맡은 여성들의 몫이었다. 그러나 관료적 귀족정치는 특권층들에게 곡물을 공급하기 위하여 방앗간을 세웠다. 이곳에서 노예와 죄수들은 노역을 하였다. 도구는 단순한 수동식 맷돌(hand grinding stones)들이었다. 삼손은 그의 무릎 위에 올려놓고 앞뒤로 비비는 수동식 절구로 곡식을 빻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f9b6d34bdfb7e.png


어느 날 블레셋의 지도자(방백)들은 그들의 대적을 이긴 승리를 자축하기 위하여, 그들의 신 다곤(Dagon)에게 제사를 드리는 종교 축제를 열었다. 그들은 군중들이 모여 있는 신전으로 삼손을 데려왔다. 삼손은 그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었다. 신전 안에서 삼손은 자기를 군중들에게 데려가는 소년에게 집을 버틴 기둥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그래서 그는 기둥을 의지하고 기댈 수가 있었다. 


“집을 버틴 두 가운데 기둥을 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 껴 의지하고 가로되 블레셋 사람과 함께 죽기를 원하노라 하고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 그 안에 있는 모든 방백과 온 백성에게 덮이니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 (삿 16:29,30). 


단 한 번에 삼손은 블레셋 지도자들을 전멸시켰다. 이것은 이스라엘과 블레셋과의 분쟁에 있어서 하나의 주요한 역전이었고, 전환점이 되었다. 이때부터 이스라엘 사람들은 블레셋에 대하여 우위를 점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났을까? 한 사람이 혼자의 힘으로 신전을 통째로 무너뜨릴 수가 있었을까? 고고학은 우리들에게 놀라운 해답을 제공해 준다.

 

11c42027da11f.png

.이스라엘의 텔 카실(Tel Qasile)에 있는 블레셋 신전의 두 기둥을 지지했던 돌 기초.  


두 개의 블레셋 신전(Philistine temples)들이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굴되었다. 하나는 북부에 있는 텔 카실(Tel Qasile)에서, 다른 하나는 텔아비브 남부 21마일 지점의 고대 에글론(Ekron)이었던 텔 미크네(Tel Miqne)에서였다. 두 신전 모두 하나의 독특한 설계를 가지고 있었는데, 지붕은 두 개의 중심 기둥으로 지지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기둥들은 나무로 만들어져 있었고, 돌로 된 기초들 위에 놓여져 있었다. 그 기둥들은 서로 1.8m(6피트) 간격이었고, 힘센 사람이 나무기둥을 돌 기초로부터 이탈시킨다면 지붕 전체를 내려앉게 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고고학적 발굴들은 성경의 이야기와 완벽하게 들어맞으며, 성경의 기록에 대한 신뢰성을 확증해 주고 있는 것이다.   


1f243fc84b878.png

 

삼손은 비록 결점들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었고, 신약성경에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했던 위인들 중의 하나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히 11:32-34).  


- Author, Bryant G. Wood Ph.D. of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


기둥들 사이 : "삼손과 다곤의 신전" 재조명



    가사에 있던 블레셋 신 다곤의 집에서 삼손이 죽은 성경의 장면은 학자들과 일반 크리스천들 모두에게 익숙하다. 이 장면의 구성 요소는 끌려온 삼손에 환호하는 블레셋 군중들, 적의 죽음을 목격하기 위해 온 블레셋의 방백들, 그리고 성전의 주요 기둥 사이에 서 있는 눈이 멀고 상처 입은 삼손이다. 이 혼란스러운 장면 속에서 삼손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렇게 기도한다 :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마지막 저항이 자신의 목숨을 앗아갈 것임을 잘 알면서도, 삼손은 기둥을 무너뜨려 신전에 있던 모든 이들 위에 무너뜨린다.(사사기 16:23~30).


제기되는 논란


이 영웅적인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성은 오랫동안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되어왔다. 실제로 많은 학자들은 삼손 이야기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해 언급하는데 주저하는 듯하다. 가사에 있던 블레셋 신전의 파괴에 관한 학계 논쟁에서 두 가지 정반대의 관점이 나타났다. 삼손의 기록을 항상 비판하는 존 맥켄지(John L. McKenzie)는 첫 번째 관점을 대표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영웅적 이야기들의 역사적 가치는 항상 낮다. 이것은 삼손의 기록에서 쉽게 볼 수 있다. 두 개의 중앙 기둥이 팔이 닿을 수 있는 간격으로 있고, 지붕 위에 수천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궁전이나 사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삼손이 살았던 세상은 실제이며, 그의 힘이 아니었다고 할지라도 말이다.(1979: 229–30).


다시 말해, 맥켄지는 삼손의 엄청난 힘에 관한 이야기는 매우 과장된 대중적 설화라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스라엘 정착 시기에 블레셋 지배 시기에 전해졌다. 삼손의 힘에 관한 이야기는 이스라엘에 종교적 희망의 원천이 되고, 그들의 쇠퇴하는 민족정신을 북돋우기 위해 지어낸 것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반해,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G. Wood) 박사는 반대 이론을 주장한다. 그는 1972년 발굴 당시 텔 아비브 북쪽의 텔 카실레(Tell Qasile)에서 최초로 한 블레셋 신전이 발견되었다고 지적한다. 이 사원은 전실과 중앙홀(antechamber and main hall)로 구성되어 있었다. 우드에 따르면, "이 홀은 내부 크기가 5.6 × 7.2 m(18.5 × 23.5 ft)였으며, 지붕은 원래 두 개의 나무 기둥이, 잘 만들어진 둥근 돌 받침대 위에 놓여 있었으며, 이 기둥들은 중심축을 따라 배치되어 있었다"고 말한다(1974: 51).


성경의 저자는 이 사실을 자신이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블레셋 신전이 두 개의 기둥에 의해 지탱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사의 다곤 신전(Gaza temple of Dagon)은 현대 도시가 그 위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아직 발굴되지는 않았지만, 가사의 신전은 "텔 카실레의 것과 매우 유사했을 것"이라고 우드는 제안한다. 성경 본문은 가사의 신전 지붕을 받치는 두 기둥이 있었다고 묘사하고 있다(사사기 16:29). 그는 결론짓는다. "성경 저자는 이 사실을 자신이 알고 있었다. 그는 블레셋 신전이 두 기둥으로 지탱되고 있었고, 삼손이 그렇게 신전을 무너뜨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이 기록은 직접 목격자의 것으로, 성경이 세계에서 가장 정확한 역사 교과서임을 다시 한 번 입증해주고 있다"(1974: 54).


전반적으로 가사의 다곤 신전에서 일어난 일과 삼손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논쟁은 매우 다양한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저명한 학자들은 역사적 사실성 문제에 대해 양쪽 입장으로 나뉜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히브리어 본문에 담긴 언어학적 증거를 살펴보고, 이 기록이 논쟁의 어느 쪽을 정당화하는지 판단하고자 한다. 즉, 우리는 다곤 신전의 기둥 사이에서, 삼손의 이야기가 후대 성경 저자들의 의도를 만족시키기 위해 쓴 역사적 사건의 과장된 반영인지, 아니면 이 본문이 블레셋인에 맞선 삼손의 최후 저항을 실제로 기록한 것인지 판단하려는 것이다.


언어학적 증거


히브리어 본문은 삼손의 행위를 매우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본문에는 삼손이 성전의 집을 지탱하는 두 개의 가운데 기둥을 'ehād kîmînô we'ehād biśmō'lô(하나는 왼손으로 하나는 오른손으로)를 잡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텔 카실레에서 기둥의 기저부는 약 2m(7ft) 간격으로 키가 큰 사람이 닿을 수 있는 거리에 있었다. 따라서 삼손의 죽음에 대한 첫 번째 부분은 발굴된 신전과 일치한다.


본문에는 삼손이 기둥을 떼어내기 위해 "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bent powerfully)"라고 적혀 있다. 히브리어 단어 nātāh(bend)는 흔한 단어이지만, 힘이나 노력에 의해 구부러진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다. 잇사갈은 “어깨를 내려(bends) 짐을 메고(창세기 49:15)... 골짜기의 비탈은...기울어지고(bend or slope)(민수기 21:15)”라고 사용되고 있다.


"굽힘(bend)"이라는 용어와 함께 사용된 단어는 'bekōha'로, 문자 그대로 '힘을 가해(in strength)'를 의미한다. 이 용어의 추정 어원은 khh로, '행하기 위한 능력(the capacity to act)'을 의미한다. 이 용어는 힘(potency, 능력)의 표현으로, 주체가 생산해낼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더불어 일반적인 의도는 신체적 힘을 나타내는 것이다(Oswalt 1980: 436~437).


주목할 점은 사사기에서 ‘khh(힘)’이라는 용어가 8번 등장하며, 그중 7번은 사사기 16장(5, 6, 9, 15, 17, 19, 30절)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 용어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지만, 종종 "하나님에 비해 인간의 힘이 부족하거나 모자란다는 점에 중점을 둔다"는 것이다. 16장의 처음 다섯 번의 등장은 데릴라가 삼손 힘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힘의 근원을 찾아내는 내용이며, 여섯 번째는 그녀가 삼손의 머리를 자른 후 힘을 잃어버리는 장면을 다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마지막 사건은 기둥 사이에서 일어나며, 삼손이 주님께 강하게 해달라고 청한 직후에 일어난다. 여기서 삼손은 자신의 타고난 힘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힘에 의존하고 있다. 이 용어의 사용은 시편에 나오는 내용과 유사해 보인다. 시편에서는 이 용어가 "나약한 인간의 힘으로 인해 애통해하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도움을 요청하며 기도할 때"에 등장한다(시편 22:16; 31:11; 38:11; 71:9, 102:24) (Van der Woude, 1997: 610–11).


이 두 용어의 조합은 강력한 힘이 삼손으로 이동했음을 나타낸다. 이런 힘의 급증은 기둥을 기초에서 떼어내는 데 필요한 노력과 일치하는데, 기둥들은 사원의 무게에 의해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기둥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면, 삼손은 기둥들을 기초로부터 계속 끌어내야 했다.


그리고 우리는 신전이 블레셋 방백들과 구경꾼들 위로 무너져 내렸다는 것을 읽게 된다. 히브리어 용어 nāpal(fall, 무너지다)이 본문에 등장한다. 그 단어는 "일반적인 물리적 행위나 무너짐의 발생 외에도, 폭력적이거나 우발적인 상황을 종종 가리키는데... 피해, 사망, 파괴를 자주 지칭하여 사용된다"(Fisher 1980: 587). 분명히 이 행위는 우연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격렬한 힘의 휩싸임이었다. 이 용어를 더 잘 표현하는 것은 'fall in/collapse'일 것이다. 삼손이 기둥을 기초에서 끌어내면, 지붕이 블레셋 방백들 위로 무너질 것이다. 사원의 본당이 무너지면, 사람들의 무게로 인해 매우 불안정해지고, 주요 지지대를 잃어버린 나머지 구조물도 함께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이 서술은 텔 카실레 사건의 결과와 완전히 일치한다.


몇 명인가?


본문에는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아있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 많았다고 기록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사사기 16:30). 본문에는 사원이 남녀로 가득 차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블레셋 방백들이 참석했고, 약 3,000명이 지붕 위에서 지켜보고 있었다(사사기 16:27). 이 기록의 타당성은 많은 학자들, 특히 맥켄지에 의해 도전받았다. 물론, 텔 카실레 사원은 건물의 너비가 8m, 길이가 14.5m에 불과해 이러한 수치를 입증하지 못한다.


이는 참석자 수에 대한 이해를 재정의해야 함을 시사하는 것으로 보인다. 히브리어 '엘렙(elep)'은 숫자 1,000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 용어에는 여러 특수한 의미가 붙어 있다. 한 가지 의미는 이 용어가 "정치 감독 또는 군사 지도부에서 가장 큰 기본 지도부 단위"를 의미한다는 것이다. 또한 "'elep'이 천 명으로 이루어진 부대를 의미하기 때문에, 병력이 줄어든 군사 부대를 의미할 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Scott 1980: 48). 따라서 본문은 신전을 가득 채운 다곤의 추종자들 외에도 세 개의 서로 다른 집단이 있었음을 언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이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를 정확히 판단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사사기 1:18절부터 19절까지는 단서가 있을 지도 모른다. 블레셋인들은 가나안에 다섯 개의 주요 도시들을(pentapolis, 펜타폴리스) 세웠지만, 본문에는 가자(Gaza), 아스글론(Ashkelon), 에그론(Ekron)의 세 블레셋 도시만 기록되어 있다. 삼손에 대한 기록에 따르면, 이 도시들은 삼손이 블레셋인들과 교역을 했던 바로 그 지역이다. 이는 사사기 1:18절과 삼손 이야기가 가드(Gath)와 아스돗(Ashdod) 도시가 펜타폴리스에 편입되기 전에 기원했음을 시사할 수 있다. 따라서 가자, 아스글론, 에그론의 방백들은 본문이 언급하는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들이었을 것이다(사사기 16:27). 사사기 1장과 삼손 전승 간의 이러한 일치는 삼손 기록의 오래됨을 보여준다. 더불어, 다섯 집단이 아닌 세 집단으로 기록된 점은 삼손의 죽음의 시기가 실제 목격자에서 비롯되었거나, 블레셋의 다섯 이름이 공식화되기 전의 가까운 시기에서 비롯되었음을 시사한다.


결론


이 신전 이슈를 다시 살펴보면, 세 가지 주요 결론을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언어학적 증거들은 브라이언트 우드 박사가 주장하는 것처럼, 신전 장면에 대한 기록을 역사적인 것으로 보는 주장을 뒷받침한다는 점이 분명하다. 맥켄지와 같은 학자들은 삼손 이야기의 역사적 요소를 거부하며, 삼손 이야기가 세속적인 민담에서 기원했다는 전제를 따른다. 더불어, 이야기 속 종교적 요소들은 삼손을 야훼교에서 더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서 덧붙여진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나 텔 카실레와 같은 고고학적 발견들은 이러한 광범위한 전제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둘째로, 가사 신전의 파괴 이야기는 실제 목격자나 사건과 가까운 곳에 살았던 사람에 의해서 서술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주요 행위를 구성하는 히브리어 용어들(‘힘을 다하여 몸을 굽히매’, ‘그 집이 곧 무너져’)는 모두 파괴적인 힘의 함축을 담고 있다. 또한 설명된 행동들은 텔 카실레의 발견과 완전히 일치한다. 발굴된 결과에 따르면, 목재 기둥들은 사원의 무게에 의해 고정되어 있었다. 기둥을 떼어내고 움직이려면, 엄청난 힘의 급증이 필요했다. 신전이 붕괴하는 것을 나타내는 용어는 격렬한 행동으로 인해 피해, 파괴, 사망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어 이 설명을 보완한다. 따라서 이 용어들은 텔 카실레(Tell Qasile)에서 발견된 고고학적 발견에 의해 입증된 상호 보완적인 용어로 간주되어야 한다.


가사 신전의 파괴 이야기는 실제 목격자나 사건과 가까운 곳에 살았던 사람에 의해 서술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셋째, 텔 카실레에서의 발견과 삼손의 마지막 행동을 묘사한 구체적인 단어들은 신전 전통의 역사적 사실성을 입증하며, 삼손 이야기 전체는 아니더라도 그 가치를 입증한다. 텔 카실레 신전의 파괴는 BC 10세기 초로 추정되고 있다. 이러한 연대는 블레셋 세력의 흥망성쇠와 일치하는데, BC 11세기 후반 다윗에게 패배했다. 이 패배 이후 블레셋인들은 이 지역에서 더 이상 강력한 세력이 아니었다. 사사기 시대나 초기 왕조 시대에 살았던 사람만이 블레셋 신전의 구조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블레셋 권력의 시기를 이스라엘의 정착에서부터 초기 왕조(BC 약 1200~1000년)까지의 시대로 정의하는 것도 삼손이 살았던 시기를 정의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신전 기록은 사건을 목격한 목격자가 만들어낸 것으로 보이므로, 삼손 이야기는 이야기꾼이나 후대 성경 저자들의 창작물이 될 수 없다. 따라서 맥켄지의 평가는 잘못되었음을 시사한다. 삼손이 살던 세상은 실제였고, 그의 힘도 실제였다.


Author: John Roskoski Ph.D., ABR Associate

원문 주소 : https://biblearchaeology.org/research-articles/between-the-pillars-revisiting-samson-and-the-house-of-dagon/



More information

.Bryant G. Wood 1974, “Samson and the House of Dagon,” Bible and Spade, pp. 50-54. (available from the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Does archaeology shed any light on the record of Samson pulling down a Philistine temple?

.More about SAMSON (Christian Answers)

.Who are the PHILISTINES? (Christian Answers)



출처 : ChristianAnswers.net

주소 : http://christiananswers.net/q-abr/abr-a006.html

번역 : IT 사역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6-09-28

<복원> 바벨탑 : Answers 지의 바벨탑 특집호 소개

(The Tower of Babel) 

by Pam Sheppard, AiG–U.S.



    당신은 바벨탑(Tower of Babel)에서 일어났던 사건들을 생각할 때, 반역, 심판, 대혼란, 흩어짐, 분리 중에서 어떤 단어들이 떠오르는가? 이 단어들은 정확히 이 사건의 다른 국면들을 기술하고 있지만, 각각의 단어는 역사를 바꾼 이 사건으로부터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값진 교훈들을 내포하고 있다. 


Answers magazine의 2008년 4~6월 호 “바벨 탑” 특집 편은 창세기 11장에 기록된 것과 같은 바벨에 관한 몇 가지 매혹적인 면들을 담고 있다. 당신이 여기서 보게 될 몇몇 기사들을 소개한다. 


► “반역의 세계 (The World in Revolt)” - Answers magazine의 편집장인 마이크 매튜(Mike Matthews)는 창 11:1~9절까지의 한 절 한 절에서 여러 통찰력 있는 점들을 밝혀낸다. 인간의 반역하는 마음은 바벨탑 사건 이후 지난 4,000년 동안 정말로 변했을까? 


► “바벨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What Did the Tower Look Like?)” - 우리는 그 탑의 크기와 형태에 대하여 실제로 얼마나 알고 있는가? 이 짧은 논문은 이러한 많은 제기된 질문들을 논한다.


► “애굽(이집트)과 바벨 : 어느 것이 먼저였나? (Egypt or Babel: Which Came First?)” -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하여, 당신이 성경 연대기의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그리고 피라미드들에 대해서는 어떤가? 그것들은 언제 축조되었는가? 당신은 이러한 질문들과 그 밖의 것들에 대해 답을 찾게 될 것이다.


► “고대 문화의 아버지 (‘Pop’ Cultures of Antiquity)” - 바벨탑 이후 얼마나 빨리 문명들이 형성되었을까? 문명들이 갑자기 발흥하였는가, 아니면 수만 년 동안에 걸쳐서 서서히 나타났는가? AiG의 새 역사 커리큘럼인 고대문명들(Ancient Civilizations)의 저자 다이아나 와링(Diana Waring)은 고고학적 기록에서의 발견들을 제시함으로써 이 질문에 답하고 있다.


► “우르는 바벨을 오늘날과 연결시키고 있다 (Ur Connects Babel to Today)” -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의 설립자요, 전 책임자였던 데이비드 리빙스톤(David Livingston) 박사는 아브라함(Abraham)의 출생지인 우르 시에서의 삶이 어떻게 바벨탑에 관한 단서를 제공하는지를 논한다.



바벨과 오늘날 우리 세계와의 연관성

 

바벨에서 반역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의 영향이 오늘날까지도 감지될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 시기는 오늘날 우리가 보고 있는 국가, 언어, 인간 집단들, 그리고 더 많은 것들을 설명해주고 있다.  다음 기사들은 바벨이 오늘날 우리 세계와의 연관성들을 보여주고 있다 : 


► “하나님 위에 군림했던 한 국가 (One Nation over God)” - Vision Forum Ministries의 설립자 겸 회장인 도우 필립(Doug Phillips)은 바벨이 현대 정부의 역할을 어떻게 설명하는가를 보여준다.


► “다양한 어족들의 기원 (More Than PIE)” - 언어 전문가인 존 올러(John Oller, Jr.) 박사는 원시-인도-유럽어(Proto-Indo-European, PIE) 계통을 포함하여, 왜 그렇게 많은 어족(語族)들이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바벨탑이 어떻게 설명해 주는지를 보여준다.


► “언어들의 혼잡에 관한 이야기(Tongue-Twisting Tales)” - 전 세계적으로 홍수 설화가 있는 것처럼, 전 세계적으로 언어에 관한 설화가 있는가? 먼 곳에 있는 이 이야기들에서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보라. 


► “흑인과 백인은 어떻게? (It’s Not Just Black and White)” - 켄 햄(Ken Ham)은 민족의 발생이 어떻게 바벨탑까지 추적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한 혈통”이라면, “흑인”과 “백인” 쌍둥이와 같은 것이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가? 이 흥미로운 글에서 그것을 찾아보라.



바벨탑 이외의 기사들

 

화석들, 유전학, 지질학, 그리고 제왕나비와 같은 다른 매혹적인 논제들을 더 깊이 살펴본다.


► “루시는 최초로 묻혔는가? (Lucy Was Buried First?)” - 쿠르트 와이즈(Kurt Wise) 박사는 인간들 이전의 화석 층에서 왜 원숭이들이 발견되는지에 대한 질문에 대답한다.  

http://www.answersingenesis.org/articles/am/v3/n2/lucy-buried-first


► “네 명의 여자, 한 척의 배, 그리고 많은 아이들 (Four Women, a Boat, and Lots of Kids)” - 미토콘드리아 이브(Mitochondrial Eve)를 기억하는가? 토드 우드(Todd Wood) 박사는 우리가 어디서 유래했는지에 관해 DNA가 우리에게 말해 주는 것에 관한 새로운 면을 보여준다. 우리의 먼 조상들은 아프리카에서 왔는가, 아니면 바벨에서 왔는가?


► “세상은 하나의 묘지이다 (The World’s a Graveyard)” - 스넬링(Snelling) 박사는 창세기 홍수에 관한 6가지의 주된 지질학적 증거들에 관한 세 번째 글로서, 전 세계적으로 존재하는 화석무덤들에 관한 심층적인 자료들을 제시한다. 

 

► “제왕나비의 경이로움 (The Marvels of the Monarch)” - 야생 생물학자였던 오다니엘(Donna O’Daniel)은 제왕나비의 생애와 가을 동안에 먼 남쪽으로 이주하는 믿을 수 없는 그들의 장거리 여행 능력을 소개한다.


► 공룡 - 바벨 이후 살아있었는가? (Dinosaurs—Alive After Babel?)


► 성경의 권위는 당신의 매일의 삶에 어떻게 영향을 주고 있는가? (How Does ‘Biblical Authority’ Affect Your Everyday Life?)


► 피라미드를 지을 만한 충분한 사람들이 있었는가? (Were There Enough People to Build the Pyramids?)


► 바벨은 우리의 차이점을 설명해 준다. (Babel Explains Our Differences)



아이들을 위한 대답들과 그림


아이들은 화려한 색깔의 접힌 포스터에 아름다운 나비와 털이 많은 쐐기벌레(송충이 등)들을 조합시키는 것을 좋아할 것이다. 그들은 또한 제왕나비의 생애와 몇 가지 다른 흥미로운 사실들에 대해서도 배울 것이다. 그림 도표는 부모님들과 선생님들에게 바벨탑 사건이 우리의 차이점(흑인 백인 등)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좋은 참고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 쟁점들을 다루고 있는 여러 페이지들을 넘겨가며,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바벨탑에서 일어났던 사건은 역사적으로 하나의 단순한 교훈을 넘어선다. 이 페이지들에는 오늘날 우리가 배워야하고 삶에 적용해야하는 교훈들이 담겨져 있다. 당신은 이 지식을 누구와 나누려는가?



출처 : AiG, March 11, 2008

주소 : https://answersingenesis.org/tower-of-babel/answers-magazine-preview-vol3-no2/

번역 : IT 사역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6-09-25

<복원> 여리고의 성벽

: 고고학적 확인에 의하면 성벽은 정말로 무너져 내렸다

(The walls of Jericho : 

Archaeology Confirms: They Really Did Come A-tumblin’ Down)

by Bryant Wood



    ‘여리고(Jericho)’ 라는 지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행진, 나팔소리, 무너지는 성벽을 연상케 한다. 그것은 믿음과 승리의 놀라운 이야기이지만, 그 일이 정말로 일어났을까? 회의론자들은 아니라고 말하며, 단지 여리고의 유적을 설명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지어낸 이야기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부정적인 시각의 주된 이유는 1950년대에 영국의 고고학자 캐슬린 케년(Kathleen Kenyon)이 지휘하여 수행한 현장발굴의 결과 때문이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  


“이스라엘 민족의 공격이 있었음에 틀림없는 후기 청동기 시대(Late Bronze Age)에 도시성벽의 흔적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므로 여리고의 발굴에서 여호수아서에서 그렇게 생생하게 기술되어있는 여리고 성벽의 파괴에 대한 어떠한 단서도 보이지 않는다.” [1]


캐슬린 케년의 발굴 보고서를 편집하고 공동 저술했던 토마스 홀란드(Thomas A. Holland)는 나타난 결과를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군사적 정복설과 후기 청동기 시대의 성벽에 대한 참고자료들을 가지고 캐슬린 케년이 내린 결론은, 청동기 말기(ca. 1400 BC)에 도시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었다는 설을 뒷받침할 만한 어떠한 고고학적 자료도 없다는 것이다” [2]


그러나 금세기 동안 계속 수집되어온 고고학적 증거들을 주의 깊게 조사해보면, 이것과는 매우 다른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요새였던 여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는 그들이 이제 요단강을 건너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 성벽이 하늘에 닿는 큰 성읍들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명기 9:1). 케년의 세심한 조사는 여리고가 정말로 강력하게 요새화되었었고 그것이 불탔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그녀는 그 유적들의 연대를 잘못 추정한 결과, 고고학적 발견과 성경의 기록이 불일치하는 것처럼 보이는 결과를 가져왔던 것이다. 그녀는 청동기 시대의 여리고성은 BC 1550년 경에 이집트에 의하여 파괴되었다고 결론을 내렸던 것이다. 그러나 증거물들을 더 심층 분석해 본 결과, 파괴는 BC 1400년 경에 (후기 청동기 1기 말에) 발생했고, 이것은 성경에서의 정복 연대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이었다.[3]


여리고 성이 있던 구릉(mound or tell)은 아래쪽에 돌로 된 옹벽(retaining wall, 기초성벽)을 가지고 있는 거대한 토벽(earthen rampart)으로 둘러싸여 있었다. 옹벽은 무려 4-5m (12-15 feet)의 높이에 달했다. 이 옹벽 위로 폭 2m, 높이 6-8m의 진흙벽돌로 된 성벽(mudbrick wall, 외벽)이 있었다.[4] 이 진흙벽돌의 제방(둑, embankment) 위로는 유사한 진흙벽돌로 된 성벽(내벽)이 있었는데, 그 내벽의 기저부위는 외벽의 바깥쪽 땅에 비해서 14m나 높았다 (그림 참조). 이것이 바로 이스라엘이 7일 동안 매일 성 주위를 돌면서 행진할 때 그들 위에 아스라이 보였던 것이었다. 인간적으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의 이 굳건한 요새를 통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내벽 안쪽의 도시 면적은 약 6 에이커(환산하면 약 200m˟120m) 정도이지만, 안쪽 도시와 요새화 된 성벽들이 차지하는 면적들을 다 합하면, 전체 면적은 50%가 더 넓어져서 약 9 에이커 정도가 된다. 고고학자들이 추정하는 에이커 당 200명을 기준으로 하면, 상부 도시의 인구는 대략 1,200 명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금세기초 독일 팀의 발굴 결과에 의하면, 사람들이 외벽과 내벽 사이의 제방에서도 살았다. 또한, 성 주변의 마을에 사는 가나안 사람들도 성 안으로 피난을 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이 여리고 성을 공격했을 때 수천 명이 성 안에 있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5e40b7b430c3f.png

.캐슬린 케년의 서쪽 발굴지에 근거한 요새화 된 여리고 성벽의 단면 개념도.


  

무너진 성벽


여리고 성의 거민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포위에 대해 잘 대비하고 있었다. 고대는 물론이었고 현재에도 여리고 성내에는 충분한 물을 공급할 수 있는 샘이 성벽 안쪽에 있다. 공격 시점은 수확이 막 끝난 시기였으므로(여호수아 3:15), 그들은 충분한 식량도 준비하고 있었다. 이것은 1930년대에 존 가스탕(John Garstang)의 발굴 자료와 또한 캐슬린 케년의 발굴에서, 가나안 인들의 집들에서 곡식이 가득 찬 항아리들이 발견된 사실로도 입증이 된다. 풍부한 식량 공급과 충분한 물이 있었으므로, 여리고 백성들은 아마 몇 년 동안을 버틸 수 있었을 것이었다.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7일째에 성 주위를 일곱 번 돌고 난 후에,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fell down flat)“로 기록되어있다 (여호수아 6:20). 여기서 히브리어의 의미는 성벽이 “성벽 아래로 무너졌다 (fell beneath itself)”는 뜻을 가지고 있다.[5] 여리고에 그러한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증거가 있는가? 여리고 성이 종말을 맞았을 때, 흙벽돌 성벽이 무너져 내려서 외벽의 아래 부분에 쌓여졌다는 충분한 증거들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케년의 조사는 가장 상세한 것이었다. 성이 있던 구릉의 서쪽 부분에서 그녀는, 외벽의 거의 꼭대기에 쌓여있었던 붉은 벽돌들이 외벽의 기저부에 떨어져서 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것은 아마도 제방의 정상부 또는 외벽 위쪽의 흙벽돌들이 무너져 내림으로서 쌓이게 된 것으로 추정된다.[6]


바꾸어 말하면, 케년은 성벽이 무너져 내려 쌓인 벽돌더미를 발견한 것이었다! 1997년에 성이 있던 구릉의 남쪽 끝에서 발굴 작업을 한 이탈리아 팀도 정확하게 같은 것을 발견했다. 


성경에 따르면, 라합(Rahab)의 집은 요새화된 성벽의 일부분으로 되어 있었다. (여호수아 2:15). 만일 성벽이 무너졌다면, 라합의 집은 어떻게 남아 있을 수 있었을까? 알다시피 정탐꾼들은 라합에게 그녀의 가족들을 그녀의 집안으로 대피시키면 구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시를 점령했을 때, 약속대로 라합과 그녀의 가족들은 구조되었다 (여호수아 2:12-21, 6:17,22-23). 여리고 성의 둔덕 북쪽 끝에서 고고학자들은 라합에 관련된 것으로 보이는 놀라운 것들을 발견했다. 


6f6ab8f9240e0.png

.1907~1909년의 독일팀의 발굴결과를 근거로 한 고대 여리고 북편 성벽의 추정도. 가옥들이 돌로 된 옹벽 위에 놓여져 있는 진흙벽돌 성벽을 의지하여 지어졌음에 유의하라. 성경은 라합의 집이 성벽을 대하고 지어졌다고 기록하고 있다 (여호수아 2:15). 



1907~1909 년 독일팀의 발굴에서, 북쪽 성벽의 짧은 구간은 다른 부분과는 달리 무너지지 않았음이 발견되었다. 그 진흙벽돌 성벽의 일부분은 아직도 2m 이상의 높이로 서 있었다.[7]  더구나 이 성벽에 잇대어 집들이 지어져 있었다! 이곳에 라합의 집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8] 성벽이 집의 후면 벽을 형성하고 있었으므로 정탐꾼은 쉽게 도주할 수 있었다. 도시의 북쪽인 이 위치로부터 정탐꾼이 3일간 숨어있었던(여호수아 2:16,22) 유대 광야의 산까지는 가까운 거리였다. 위쪽의 내벽과 아래쪽의 외벽 사이의 제방에 위치한 이곳은, 전쟁이 났을 때는 살기에 적당하지 않은 곳이므로, 집값이 쌌을 것이다. 이 지역은 도시 내부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지역으로, 아마도 빈민촌이었을 것이다. 


성벽이 무너지고 난 후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5m 높이의 하부 옹벽을 넘어갈 수 있었을까? 발굴결과에 의하면 무너져 내린 진흙벽돌들이 옹벽 옆에 쌓여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위로 올라갈 수 있는 경사로(ramp)를 형성했던 것을 보여준다.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도시에 들어갔던 방법을 정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아가(즉, 똑바로 위로 넘어서, straight up and over)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여호수아 6:20). 이스라엘 백성은 올라가야만 했고(go up), 그것이 바로 고고학이 밝혀낸 것이다. 그들은 도시로 들어가기 위해서 구릉의 바닥 부분인 지상에서 방어벽 위로 올라가야만 했다.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갈찌니라 (여호수아 6:5절)).


4277689b42727.png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 박사가 1997년에 여리고 성의 남쪽 끝에서 이탈리아 고고학자에 의해 발견된 돌로 된 외벽의 기초부분(옹벽)을 가리키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 6장에 설명된 바와 같이 성을 공격했을 때, 이 외벽 주위를 행진했다. 



화재에 의한 파괴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시와 그 안의 모든 것들을 불태웠다. “무리가 불로 성읍과 그 가운데 있는 모든 것을 사르고...(여호수아 6:24). 다시 한번 고고학적 발견은 이 기록이 사실임을 확인했다.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 파괴된 성의 동편 일부분이 발굴되었다. 고고학자들은 어디에서든 발굴이 일정 깊이에 도달하면 1m (3 feet) 정도 두께의 재와 불에 탄 잔해들이 발견되었다. 케년은 이 철처한 파괴를 다음과 같이 기술했다 : 


“파괴는 철저했다. 벽과 바닥(floors)들은 화재로 인해 검거나 붉게 타 있었고, 방마다 쏟아진 벽돌, 목재들, 가재 집기들로 가득 차 있었다. 대부분의 방에 떨어져있는 파손된 잔해들은 심하게 불탔지만, 동쪽 방들의 벽들은 화재의 영향을 받기 전에 붕괴되었던 것처럼 보인다.”[9]


가스탕과 케년은 둘 다 불에 의해서 파괴된 곡물로 가득한(full of grain) 많은 저장 항아리(storage jars)들을 발견했다. 이것은 고고학적 기록에서 매우 특별한 발견이다. 곡물은 단지 식품의 근원일 뿐만 아니라, 다른 상품으로 교환하기 위한 수단으로서의 가치도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곡물과 같은 귀중품은 정복자에 의해 약탈되는 법이다. 여리고에서는 왜 곡물이 그대로 남겨져 있는가? 그 해답은 성경에 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성읍과 그 안의 모든 것들을 여호와에 바치라고 명령했다 (여호수아 6:17)


여리고에 남아 있어서 현대 고고학자들에 의해 발견된 곡물은 3500 년 전의 이스라엘 백성들의 순종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아간(Achan)만이 순종하지 않았고, 그 결과로 여호수아 7장에 기록된 대로 아이(Ai) 성에서의 참패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런 많은 곡물들을 손대지 않고 남겨둔 것은 성서기록의 또 다른 면의 진실을 조용히 증언하고 있다. 풍부한 식량과 물의 공급이 있고 강력하게 요새화된 성을 정복하는 데에는 통상몇 달, 심지어는 몇 해가 걸릴 것이다. 성경은 여리고가 단지 7일 후에 함락되었다고 말한다. 여리고의 폐허에서 발견된 곡물 항아리들이 가득 차 있음은 성 안의 백성들이 곡물을 거의 소비하지 않았고, 포위기간이 짧았던 것을 나타낸다. 



여리고의 교훈


고고학과 성경 사이의 외견상 불일치 때문에, 여리고는 한때 성경속의 이야기로만 여겨졌었다. 그러나 고고학적인 정확한 해석을 했을 때에는 바로 정반대임이 밝혀지게 된 것이다.  고고학적 증거들은 모든 세부사항에서 성경의 기록과 역사적으로 정확하게 일치한다. 고고학적 발견은 여리고 성에 관한 모든 이야기가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입증하였던 것이다. 


여리고의 성벽이 어떻게 무너졌는가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다. 가스탕과 케년은 둘 다 도시가 종말을 맞았을 때에 지진(earthquake) 활동이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날 하나님의 목적을 달성하시기 위해서 지진을 사용하셨더라도, 지진이 필요한 정확한 시점에 일어났고, 라합의 집을 보호했던 것은 여전히 기적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을 사용하셨든지, 그것은 결국 이스라엘 백성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성벽을 무너뜨리신 것이다. 백성들이 7일 동안 성벽 주위를 행진하고 난 후에, 여리고의 벽은 믿음으로 인해 무너졌던 것이다 (히브리서 11:30). 


여리고는 세속적 학문의 결과가 성경과 일부 일치하지 않더라도 성경의 기록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결정적으로 보여주고 있으며, 오늘날에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놀라운 영적 교훈이 되고 있다. 우리도 때로는 우리 힘으로는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거대한 요새와 같은 성벽에 직면하곤 한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그의 계명을 따른다면, 하나님께서는 크고 비밀한 일(great and mighty things)을 행하셔서(예레미야 33:3)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이다.

 


References and Notes

1. Kathleen M. Kenyon, Digging Up Jericho, London, Ernest Benn, pp. 261–62, 1957.  

2. Thomas A. Holland, Jericho, The Oxford Encyclopedia of Archaeology in the Near East, Vol. 3, pp. 220–24, ed. Eric. M. Myers,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p. 223, 1997.  

3. Bryant G. Wood, Did the Israelites Conquer Jericho?, Biblical Archaeology Review 16(2):44–58, March–April 1990.  

Did the Israelites Conquer Jericho? A New Look at the Archaeological Evidence. 1 May 2008.

4. Ernst Sellin and Carl Watzinger, Jericho die Ergebnisse der Ausgrabungen, Osnabrück, Otto Zeller Verlag, p. 58, 1973 (reprint of the 1913 edition).  

5. The root of the word tahteyha in Joshua 6:5, 20 is tahath, meaning ‘underneath,’ ‘below’ with a reflexive 3rd feminine singular pronominal suffix ha referring back to hômah, ‘wall.’  

6. Kathleen M. Kenyon, Excavations at Jericho, 3:110, London, British School of Archaeology in Jerusalem, 1981.  

7. Ernst Sellin and Carl Watzinger, Jericho die Ergebnisse der Ausgrabungen, Osnabrück, Otto Zeller Verlag, p. 58, 1973 (reprint of the 1913 edition).

8. The Hebrew phrase in Joshua 2:15 is beqîr hahômah. Usually qîr means a small wall, but can also indicate the vertical surface of a wall. Brown, Driver and Briggs’ lexicon suggests this for Joshua 2:15 (p. 885), and in this case the preposition be would mean ‘against’(p. 89). Thus, literally, ‘her house [was built] against [the] vertical surface of the [city] wall.’ Return to text. 

9.  Kenyon, Excavations at Jericho, 3:370.  


*브라이언트 우드(Bryant Wood)는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여리고 고고학의 권위자이다. 그는 이스라엘에서 성경 연구회(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의 책임자이며, 키르벧 엘 마카티르 발굴(Kh. el-Maqatir Excavation) 단장이다. 고고학과 성경에 관하여 더 알고 싶거나 이스라엘에서 우드 박사와 함께 발굴에 참여하고 싶으면 다음 주소로 연락하기 바란다.

The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PO Box 356, Landisville, PA 17538, USA.  ABR Web site를 방문해 보라. 



출처 : Creation 21(2):36–40, March 1999

주소 : http://www.answersingenesis.org/home/area/magazines/docs/v21n2_jericho.asp

번역 : IT 사역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6-03-21

성경 속 거인이 사실일 수 있다는 뉴스 보도

(Biblical Giants in the News)

by Jake Hebert, PH.D. 



    최근 이집트 파피루스 두루마리(Egyptian papyrus scroll)가 과거 거인의 존재를 확인시켜 줄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1, 2] 그리고 언론은 일주일이 넘도록 이 주장을 보도하고 있었다.[3] 물론 성경은 가나안 땅의 거인들을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다(민수기 13:33, 신명기 2:10~11, 2:20~21, 3:11~13, 9:2; 여호수아 13:12, 15:8, 17:15, 18:16, 아모스 2:9). 가장 유명한 인물은 다윗에게 죽임을 당한 블레셋의 골리앗(Goliath)이다(사무엘상 17장).


아나스타시 I(Anastasi I)으로 알려진 이 두루마리는 3,000년이 넘은 것으로 추정되며, 1839년부터 대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었다. 이 편지는 전쟁 중에 쓰여진 다소 풍자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호리(Hori)라는 서기(scribe)가 아메네모페(Amenemope)라는 또 다른 서기에게 보낸 내용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매우 큰 키의 사나운 '샤수'(Shosu or Shasu) 전사들을 묘사하고 있는 구절이다 :

좁은 협곡의 덤불 아래에는 숨어 있는 샤수들이 들끓고 있다; 그들 중 일부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4규빗(cubits) 또는 5규빗 크기이며, 얼굴은 사납고, 마음은 온화하지 않으며, 달래는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1]


번역가는 4규빗이 약 205cm에 해당하고, 5규빗은 255cm에 해당한다고 언급했다.[4] 이는 이집트 서기 호리가 이집트 왕실 규빗을 사용했다는 합리적인 가정에 근거하는데, 이것의 한 규빗은 길이가 약 52.5cm인 반면, 일반적인 규빗은 45.7cm이다.[5] 따라서 이 샤수 거인 중 가장 키가 큰 것은 255cm에 달했음을 가리킨다.[6, 7]


놀랍지 않게도, 일부는 이 주장에 회의적이다. 아나스타시 I의 번역가는 호리가 과장하고 있다고 제안했다.[4] 기독교 변증가 웨스 허프(Wes Huff)는 성경 속 거인들의 실재성을 인정하면서도, 편지의 풍자적 성격 때문에 이러한 주장을 "선정주의(sensationalism)"라고 일축했다.[8] 하지만 이건 좀 이른 이야기일 수 있다. 호리가 아메네모페의 무능함을 조롱하고 있지만, 샤수 전사들에 대한 묘사는 다소 담담하고, 지역 지리에 대한 설명도 마찬가지다. 또한 1911년 아나스타시 I의 번역본은 1852년경부터 일부 학자들이 샤수와 성경 거인 사이에 연관성이 있음을 주목했음을 보여준다.[4, 9] 만약 이것이 선정주의라면, 그것은 매우 오랜 역사를 가진 선정주의일 것이다.


더욱이, 카데시(Kadesh) 근처에서 람세스 2세(Rameses II)가 히타이트와 싸운 전투를 묘사해놓은 조각 중 한 부분에는, 이집트인들이 매우 큰 키로 보이는 두 명의 샤수 스파이를 때리는 장면이 그려져 있다(아래 그림 참조). 성서연구협회(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의 작가 롭 설리번(Rob Sullivan)이 지적했듯이, "이집트 조각에서 파라오를 커다란 크기로 묘사하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적을 그렇게 묘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5]

b41b7068e80a9.png


다윗 왕 시대 무렵으로 연대가 추정되는, 골리앗(Goliath)의 고향인 도시 가드(Gath)의 유적지인 텔 에스 사피(Tell es-Safi)에서, 거인들의 존재를 가리키는 '초대형 돌'과 건축물들이 발굴되었다. 그곳 유적지의 최근 층에 있는 돌들은 길이가 약 45cm이다. 그런데 이른바 '골리앗층'의 돌들은 길이가 90cm에서 195cm 이상 길이에 달한다![10, 11] 게다가 이 층의 성벽은 다른 층의 성벽보다 훨씬 두텁다.[11] 발굴 책임자인 고고학자 아렌 마이에르(Aren Maeir)는 가드의 이 층에 있는 건축물은 당시 이 지역에서 발견된 거의 모든 건축물들보다 크다고 말했다.[11] 그는 그것이 거인들에 의해 만들어졌을 가능성은 진지하게 고려하려 하지는 않았지만, 돌들의 거대한 크기는 성경에 기록된 거인들에 의한 것일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흥미롭게도, 유적지에서 발견된 도자기 조각에는 골리앗과 매우 유사한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10, 11] 이러한 발견들은 여호수아 11:22절을 고려할 때 이해가 된다. “이스라엘 자손의 땅에는 아낙 사람들이 하나도 남지 아니하였고 가사와 가드와 아스돗에만 남았더라”. 이 기록은 가드가 이스라엘 백성으로부터 정복당한 아낙 자손이 피신한 세 도시 중 하나였다고 명시하고 있다. 


아낙(Anakim)은 베를린 박물관에 소장된 저주문(Execration Texts)이 쓰여진 점토 조각에도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원형으로 거석들을 쌓아놓은 길갈 레파임(Gilgal Rephaim, “Wheel of the Giants”)은 고대의 바산(Bashan) 근처인 이스라엘 골란 고원에 위치해 있는데, 성경에 따르면 이 땅은 "거인들의 땅(the land of giants)"이라 불렸다(신명기 3:13). 마찬가지로, 길이 66cm, 무게 2kg의 거대한 구리 창끝(copper spearhead)이 현재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10, 12] 창끝이 너무 커서 매우 큰 사람에게만 실용적일 수 있었을 것이다.


현대 학자들은 거인들이 실제 역사에서 존재했을 가능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지만, 이러한 발견들은 성경 기록이 사실이라면, 예상될 수 있는 것이다.



References

1. Waugh, R. Long-Lost Egyptian Scroll Fuels Debate over Real-Life Biblical Giants. Daily Mail. Posted on dailymail.co.uk February 1, 2026, accessed February 3, 2026. 

2. Buontempo, F. Resurfaced 3,300-Year-Old Egyptian Document Hints at Biblical Giants Being Real. New York Post. Posted at nypost.com February 1, 2026, accessed February 3, 2026.

3. Did Ancient Egypt Record Biblical Giants? A 3,300-Year-Old Text Raises New Questions. The Times of India. Posted on timesofindia.indiatimes.com February 9, 2026, accessed February 9, 2026. 

4. Gardiner, A. H. 1911. Egyptian Hieratic Texts, Series 1: Literary Texts of the New Kingdom: Part I. Leipzig, Germany: J. C. Hinrichs’ Bookshop, 25.

5. Sullivan, R. Egyptian War Correspondents and the Biblical Giants.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Posted on biblearchaeology.org February 27, 2015, accessed February 3, 2026. 

6. The very tallest basketball players in the National Basketball Association (USA) are seven feet, seven inches tall. See Merrell, C. Basketball: The Tallest NBA Players in History – Full List. Olympics. Posted on olympics.com November 4, 2024, accessed February 10, 2026.

7. Some translations suggest that this height is from the nose to the sole of the foot rather than the total head-to-sole height. In that case, the tallest of these Shasu warriors would have been about nine feet tall.

8. Brown, J. Apologist Wes Huff Dismisses Viral Papyrus About Bible Giants: ‘Sensationalism.’ The Christian Post. Posted on christianpost.com February 3, 2026, accessed February 3, 2026.

9. Corbaux, F. 1852. Rephaim and Their Connexion with Egyptian History. London, England: W. Clowes and Sons.

10. Cox, G. Goliath – the BHG. Creation Ministries International. Posted on creation.com September 29, 2022, accessed February 3, 2026.

11. Borschel-Dan, A. Colossal Ancient Structures Found at Gath May Explain Origin of Story of Goliath. The Times of Israel. Posted on timesofisrael.com July 26, 2019, accessed February 6, 2026. 

12. Kramer, J. P. Archaeological Evidence for Giants in the Bible? Posted June 10, 2022, by Expedition Bible. YouTube, 12:58. 

* Dr. Hebert is a research scientist at the Institute for Creation Research and earned his Ph.D. in physics from the University of Texas at Dallas.



*참조 : 거인 골리앗에 대한 7가지 고고학적 증거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189706&bmode=view

블레셋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70139840&bmode=view

사울, 다윗, 솔로몬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 - 1 : 고고학은 이스라엘 통일왕국에 대한 성경 기록을 뒷받침한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511930&bmode=view

사울, 다윗, 솔로몬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 - 2. 고고학은 이스라엘 통일왕국에 대한 성경 기록을 뒷받침한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529047&bmode=view

과거 지구상에 거인들이 있었다 : 120 cm 크기의 사람 대퇴골의 발견

https://creation.kr/Controversy/?idx=1294662&bmode=view

과거 생물들은 거대한 크기였다. 

https://creation.kr/Variation/?idx=16032840&bmode=view

과거 거대한 생물들 : 생물은 퇴화하고 있는 중이다.

https://creation.kr/Mutation/?idx=14608903&bmode=view

과거 화석 생물들의 거대한 몸체 크기에 대한 진화론자와 ICR의 연구

https://creation.kr/Variation/?idx=18386066&bmode=view

Giants in the Bible

https://answersingenesis.org/bible-characters/giants-in-the-bible/

Giant Humans

https://genesispark.com/exhibits/the-early-earth/giant-humans/

Giants, not allowed by Smithsonian Institute, disappeared from history as reported in old news!

https://ancientpatriarchs.wordpress.com/2016/04/19/giants-not-allowed-by-smithsonian-institute-disappeared-from-history-as-reported-in-old-news/

▶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4724&t=board

▶ 과거 거대생물

https://creation.kr/Topic202/?idx=16050559&bmode=view

▶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

https://creation.kr/Topic502/?idx=6828823&bmode=view

▶ 성경적 역사를 지지하는 발견들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791252&t=board


출처 : ICR, 2026. 3. 2.

주소 : https://www.icr.org/article/biblical-giants-new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6-03-09

초기 인류는 수학적 사고를 했다.

 : 할라프 문화의 채색토기에 새겨져 있는 놀라운 문양

(Mathematical Thinking Came Early)

by Dr. Sarah Buckland-Reynolds



   과학자들은 초기 메소포타미아 예술에서 그들이 "선사시대 수학적 사고"라고 부르는 것의 증거를 발견했다.


  고고학적 발견들은 고대 문명이 이전에 생각했던 것보다 더 일찍 수학적 사고를 했음을 시사한다.


  진화 인류학(evolutionary anthropology)은 오랫동안 느리고 선형적인 과정을 통해, 인간의 창의성이 초기 수렵채집 사회에서 철기시대를 거쳐 점차 복잡해지는 문명으로 발전해 현대에 나타났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최근의 증거들은 초기 사회 중 일부가 진화 인류학자들이 전통적으로 기술해 온 것보다 훨씬 더 정교하게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을 갖고 있었음을 시사한다.


선사시대 예술품에서 발견된 가장 초기의 식물 문양 : 메소포타미아 할라프 문화의 채색토기와 선사시대의 수학적 사고.(Journal of World Prehistory, 2025. 12. 5). 이 논문의 저자들은 초기 문명이 예술적 형태로 표현된 대칭성, 정확한 공간 분할, 기하학적 순서 등과 같은 "복잡한" 인식을 갖고 있었다는 놀라운 증거를 발견했다. 이러한 발견은 메소포타미아 북부 할라프 문화(Halafian culture, BC 6200~5500년경)에서 출토된 채색토기(painted pottery vessels)로부터 얻어졌다.


저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를 "상당히 놀랍다"고 표현했지만, 지적설계론과 젊은 지구 창조론에서는 이를 다르게 해석한다. 즉, 인간은 태초부터 지능을 부여받았으며, 상징적 사고, 측정, 예술적 능력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다는 것이다. 할라프 토기(Halafian pottery)는 무지에서 서서히 진화해 온 결과가 아니라, 창조주께서 인류의 시작부터 부여하신 선천적인 창의성과 수학적 능력을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초기 문명에서 발견된 수학적 패턴에 대한 예리한 인식 : 할라프 토기의 연구 결과에 대한 추가적 고찰


가르핑켈과 크룰위치(Garfinkel and Krulwich)의 고고학적 발굴 조사에서는 꽃, 관목, 나뭇가지, 나무 등을 묘사한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들이 수학적으로 의미 있는 순서로 배열되어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저자들은 이 문양들이 4개, 8개, 16개, 32개, 64개의 반복되는 배수를 나타내어, "수학적 계열을 형성"한다고 설명하며, 이러한 패턴들이 "정교하게 제작되었다"고 지적한다. 그들은 이러한 예술적 수준에 놀라움을 표하며, 그려진 문양의 수학적 정확성과 명확하게 연결 짓고 있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이 썼다.

"꽃잎들이 4, 8, 16, 32의 기하학적 배열로 묘사된 것과, 64송이의 꽃이 다른 방식으로 배열된 것은 산술적 지식을 갖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세속적인 고고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저자들은 할라프 문화에서 발견된 이처럼 정교한 식물 문양들이 BC 7천 년경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하고 있었다. 이는 진화 인류학자들이 문자나 고도의 수학이 등장했다고 추정하는 시기보다 훨씬 앞선 시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증거는 초기 공동체들이 미적 감수성뿐만 아니라, 수학적 구조에 대한 명확한 인식을 갖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발견은 원시적인 수준에서 시작에서 현대의 복잡성에 이르기까지, 지식이 느리게 점진적으로 축적되었다고 가정하는 진화론적 문화 발전 모델에 도전하는 것이다.


점진주의 가정에 대한 도전은 이번이 첫 번째가 아니다.


가르핑겔과 크룰위치의 연구 결과는 시간이 흐르면서 인간 지식이 점진적으로 축적되었을 것이라는 진화론적 가정을 뒤집어 놓은 여러 고고학적으로 '놀라운 발견'들을 떠올리게 한다. 예를 들어, 근대 초기에 진화인류학은 모세시대(BC 1400년경)에는 문자가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모세오경이 그 시기에 저술되었을리 없다고 결론지었었다. 그러나 우가릿 텍스트와 원시 시나이 문자(Ugaritic texts and proto-Sinaitic script) 같은 고대 비문의 발견은 알파벳 문자 체계가 모세 이전부터 이미 사용되고 있었음을 보여주었다.


그 결과, 기존의 "원시적 문맹(primitive illiteracy)"이라는 초기 인류에 대한 진화론적 가정이 틀렸음이 밝혀지고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새롭게 발견된 할라프 문양은 인간 사회에 수학적, 상징적 정교함이 진화론 모델이 예측하는 것보다 훨씬 이른 시기에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각각의 발견은 인간이 계산, 쓰기, 창작 능력을 천천히 배우게 되었던 "원시적 짐승"이 아니라, 처음부터 지능과 창의력을 부여받은 존재였다는 것을 확증해주고 있다.


성경적 연대기와의 유사점


BC 6200년에서 5500년 사이의 일반적인 연대는 성경적 연대기와 일치하지는 않지만, 고대 유물에서 이러한 문양이 발견되는 것은 특히 그 지리적 위치를 고려할 때 성경의 이야기와 잘 부합한다. 메소포타미아는 성경에서 노아의 후손들이 흩어진 후 홍수 이후 인류 문화가 출현한 곳으로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10장). 더욱이 노아 시대에는 이미 하나님께서 방주를 짓도록 지시하실 때 정확한 수학적 측정 단위(길이 300규빗, 너비 50규빗, 높이 30규빗)를 사용하셨다는 기록이 있다(창세기 6:14~16). 이는 당시 사람들이 숫자와 표준화된 측정 단위의 의미를 일상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노아의 사례 외에도 성경은 초기 인류가 뛰어난 측정, 예술, 건축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일관되게 묘사하고 있다. 다음은 이를 뒷받침하는 몇 가지 예이다.


바벨탑 (창세기 11:3-4) : 백성들이 말했다. “자, 우리가 벽돌을 만들어 단단하게 구워서… 자, 우리가 하늘에 닿는 탑을 쌓아 도시를 건설하자.” 이 이야기는 대홍수 이후 불과 몇 세대 만에 건축 계획, 재료공학, 집단적 협력, 공학 및 건설 기술이 모두 발휘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브라함 시대 (BC 2000년경) : 아브라함이 왕들과 교류하고, 조약을 체결하고, 토지 거래를 한 것, 특히 창세기 23:17~18절에 기록된 토지의 공식적인 매입과 측량은 상업, 법적 계약, 그리고 정확한 경계 설정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수학적, 기호적 정교함을 전제로 한다.


초기 공예 기술과 야금술 : 창세기에는 두발가인이 모든 장인들에게 “구리와 쇠로 여러 가지 기구를 만드는 자“의 스승으로 묘사되어 있는 것을 보면, 아주 초기 단계부터 금속 가공 기술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다(창세기 4:22).


니므롯 시대의 도시 발전 : 창세기 10:9절에 "여호와 앞에서 용감한 사냥꾼"으로 묘사되어 있는 니므롯은 바벨탑을 비롯한 메소포타미아 초기 도시 건설과 관련이 있으며, 이는 조직적인 정착, 통치 및 기반 시설의 발달을 시사한다.


니므롯이 메소포타미아를 건설하기 이전에도, 성경에는 이처럼 뛰어난 장인들, 기술, 건축 능력이 기록되어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정교한 예술과 수학이 갑자기 나타나는 것은 성경적 관점에서 볼 때 놀라운 일이 아니다!


더 넓은 의미 : 문화적 진화에 대한 도전


할라프 문양은 문화 발전의 진화론적 모델에 도전하고 있는 증거의 일부에 불과하다. 고대 문자의 발견이 모세 시대의 문해력에 대한 기존의 가정을 뒤집었듯이, 이러한 식물 문양 또한 수학과 예술의 기원에 대한 기존의 통념에 도전한다. 진화인류학은 흔히 원시적인 것에서부터 점진적으로 발전한다고 보고 있지만, 고고학적 발견은 인류의 정교함이 초기부터 갑자기 나타나는 사례들을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


이러한 발견은 인류의 지능, 예술적 감각, 수학적 능력이 인류의 시작부터 존재했음을 말하고 있는 성경의 기록과 잘 부합한다. 고고학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놀라운 발견"들은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일이 아니다. 전도서 1:9절에서 “이미 있던 것이 후에 다시 있겠고 이미 한 일을 후에 다시 할지라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인간의 창의성은 언제나 하나님 계획의 일부였다.


진화 인류학자들은 초기 문명의 정교함에 대한 증거에 놀라고 있는 반면에, 창조론자들은 이러한 발견을 성경이 항상 선언해 온 사실, 즉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처음부터 지능, 창의력, 측정 능력, 예술적 표현 능력을 부여받았다는 것을 확증해주는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할라프 토기는 원시적 실험 도중의 유물이 아니라, 성경에 기록된 영원한 진리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편 19:1). 문명의 가장 초기 시대부터 인간의 손으로 만들었던 작품들 또한 그러하다.



*관련기사 1 : ‘수학적 사고’가 숫자보다 먼저 등장했다. (2026. 3. 6. 뉴스토마토)

8000년 전 도자기에 숨겨진 기하학. 반복 패턴, 대칭, 균형을 통해 표현

https://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285275

8,000년 전 도자기 문양에 담긴 수학... 문자 이전 인류의 사고력을 보여주는 단서일까?  (2026. 1. 21. ESG코리아뉴스)

https://www.esgkoreanews.com/news/view.php?no=18126


*관련기사 2 : "4만년 전 석기시대 유물에 새겨진 기호들, 문자 기원 가능성" (2026. 2. 24. 연합뉴스)

https://www.yna.co.kr/view/AKR20260224018200017

4만년 전에도 문자 있었다…점·선·십자로 표기 (2026. 3. 1. 조선비즈)

https://biz.chosun.com/science-chosun/science/2026/02/24/AVJC7AAMINAXPHAIHFH6NY6E3M/

4만 년 전 빙하기 인류, ‘정보’를 새겼다.(2026. 2. 27. 뉴스토마토)

독일 연구팀 구석기 기호 3000여 개 분석. 정보 밀도, 원시 설형문자와 맞먹는 수준

https://www.newstomato.com/ReadNews.aspx?no=1292723

4만년 전 구석기 기호, 초기 문자 수준 정보량 확인…문명 탄생 실마리? (2026. 3. 6. 디지털투데이)

https://www.digital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636675



*참조 : 고대인의 신비 : 거석 기념물, 고도의 토목기술, 사라진 문명...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04&bmode=view

고대문명들과 현대인 : 고대인의 전지, 계산기, 점화전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23&bmode=view

괴베클리 테페는 기하학적으로 건축되었음이 밝혀졌다 : 신석기인들이 만들었다는 진화 이야기는 의심스럽게 되었다.

http://creation.kr/archaeology/?idx=5321913&bmode=view

”야벳, 컴퓨터 끄는 것을 잊지 말거라!” : 2,000 여년 전의 고대 난파선에서 발견된 놀라운 기계 장치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63&bmode=view

경이로운 스톤헨지! : 바벨 후에 건축된 석기시대의 유물?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3670517&bmode=view

석기시대에 삼각함수 전문가가 영국에 있었는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62&bmode=view

아마존에서 고도로 발달했던 옛 도시들이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pes/?idx=19562526&bmode=view

고대의 방직공장? : 34,000년(?) 전의 고대인들이 만든 섬유가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060&bmode=view

치아의 치석으로 확인된 청동기 시대의 국제무역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5600253&bmode=view

기념비적 구조를 만들었던 초기 인류 : 아라비아 사막에서 발견된 사냥을 위한 거대한 구조물들

https://creation.kr/Apes/?idx=12854735&bmode=view

고대 인류의 유물이 섬에서 발견되었다 : 초기 인류는 배를 타고 항해를 했다.

http://creation.kr/Apes/?idx=2613754&bmode=view

인류의 조상들은 배를 타고 항해를 할 수 있었다 : 지중해 크레타 섬에서 석기시대(13만 년 전)의 돌연장들이 발견되었다.

http://creation.kr/Apes/?idx=1852101&bmode=view

‘석기시대’ 사람들은 놀랍도록 현대적이었다. : 배를 만들고, 장신구와 화장을 하고, 곡물을 먹고, 구분된 공간을 가졌다.

http://creation.kr/Apes/?idx=1852106&bmode=view

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동굴벽화의 발견으로 당황하고 있는 진화 인류학자들

https://creation.kr/Human/?idx=1757437&bmode=view

인도네시아에서 발견된 4만5500년 전의 동굴 벽화

https://creation.kr/Apes/?idx=5727504&bmode=view

동굴 벽화에 암호가 들어있을 수 있다.

https://creation.kr/Apes/?idx=14770303&bmode=view

장구한 연대는 왜곡된 설명을 만들어낸다 : 원주민들이 화석으로부터 디키노돈트와 공룡 암각화를 그렸다고?

https://creation.kr/Dinosaur/?idx=119785854&bmode=view

사람 화석과 음식에 대한 의심스러운 오래된 연대 : 11만 년 전에도 호모 에렉투스가 살았다?

http://creation.kr/Apes/?idx=3001583&bmode=view

현생인류의 출현 이전에 만들어진 통나무집? : 50만 년(?) 전의 목조 구조물의 발견

https://creation.kr/Apes/?idx=125579303&bmode=view

80만 년(?) 전의 인류는 세분화된 거주 공간을 가지고 있었다 : 그리고 157만 년(?) 전의 유럽인들은 연장을 만들고 있었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196&bmode=view

130만 년 전(?) 초기 인류는 자원 재활용을 하고 177만 년 전(?) 호모 에렉투스는 이쑤시개를 사용했다. 그리고 음악과 언어에 대한 진화론자들의 공상

https://creation.kr/Apes/?idx=1852169&bmode=view

50만 년 전 현생인류의 조상이 만든 목조구조물?

https://creation.kr/Apes/?idx=17069535&bmode=view

30만 년 전 독일 석탄 광산에서 발견된 8자루의 창

https://creation.kr/Apes/?idx=1852139&bmode=view

호모 에렉투스(150만 년 전)의 발자국은 현대인의 것과 동일했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230&bmode=view

농업의 기원은 진화론적 장구한 연대를 부정한다 : 30만 년 전에 출현한 현대 인류가 1만 년 전에 농업을 시작?

https://creation.kr/Topic402/?idx=13878229&bmode=view

인류의 농업은 진화론적 시간 틀로 너무 늦게 시작됐다. 인류는 13,000년 전에 이르러서야 농업을 시작했다?

https://creation.kr/Apes/?idx=1852177&bmode=view

인간의 말타기는 왜 그렇게 늦게 시작됐는가? : 대략 BC 3천 년 경에 시작되었다고? 

https://creation.kr/Apes/?idx=14651054&bmode=view

비옥한 초승달 지역이 사라지고 있다.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75&bmode=view

바벨의 언어들 : 언어들의 기원과 지리적 분포는 창세기 기록과 일치한다.

https://creation.kr/Genesis/?idx=169899320&bmode=view

언어의 변화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32&bmode=view

인도의 가장 오래된 언어는 단지 4500년 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87&bmode=view

진화론은 언어를 설명할 수 없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42&bmode=view

노아와 사람의 어원 : Manu, Man, Maru, Mano, Anu, Marine...단어들의 기원과 대홍수

https://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383&bmode=view

사람의 언어는 젊은 지구 모델과 적합하다.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71&bmode=view

가장 오래된 히브리 문자가 해독됐다 : 성경 기록의 역사적 사실성에 대한 또 하나의 증거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82&bmode=view

가장 오래된 초기 히브리어 글자의 발견! : 에발 산의 납 서판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을 기각한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8313336&bmode=view

에발 산에서 여호수아의 제단과 저주 서판의 발견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302135&bmode=view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알파벳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5639096&bmode=view

기록들은 얼마나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가?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74877220&bmode=view

바벨탑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49&bmode=view

바벨탑 : 전설인가, 역사인가?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18&bmode=view

니므롯 : 노아 홍수 이후 최초의 폭군이자 제국의 건설자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341006&bmode=view

바벨탑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56&bmode=view

바벨탑 사건과 민족 이동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69&bmode=view

‘일곱자매별'의 유사성은 진화가 아닌, 바벨을 가리킨다.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5628813&bmode=view

고대 인류에 대한 DNA 분석은 바벨탑의 인류 분산을 확증하고 있었다. 

http://creation.kr/Genesis/?idx=1289139&bmode=view

인류는 3 조상 가족으로부터 유래했음을 유전자 연구는 가리킨다.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408&bmode=view

바이킹 DNA는 바벨탑 이후의 유전적 다양성을 보여준다.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5200676&bmode=view

세계 곳곳의 홍수 전설들

https://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396&bmode=view

전 세계의 홍수 전설에는 "8명"의 홍수 생존자들에 대한 공통된 기억이 남아있다.

https://creation.kr/EvidenceofFlood/?idx=49755429&bmode=view

노아의 16명의 손자 : 고대의 지명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남아있다. 

http://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381&bmode=view

▶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들 - 언어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2973&t=board

▶ 바벨탑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4661&t=board

▶ 문자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2960&t=board

▶ 한자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2832&t=board

▶ 점토판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2820&t=board

▶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4724&t=board

▶ 대홍수 후 인류 이동

https://creation.kr/Topic2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600902&t=board

▶ 창세기의 역사성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5522&t=board

▶ 인간진화론의 허구

https://creation.kr/Topic402/?idx=6783783&bmode=view

▶ 아프리카 기원설

https://creation.kr/Topic4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783463&t=board

▶ 현생인류의 출현 시기

https://creation.kr/Topic4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783414&t=board

▶ 구석기시대와 타제석기

https://creation.kr/Topic4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781060&t=board

▶ 원시적인 고대인?

https://creation.kr/Topic4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783775&t=board

▶ 현명했던 고대인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16905&t=board


출처 : CEH, 2026. 2. 28.

주소 : https://crev.info/2026/02/sbr-mathematical-thinking/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6-02-23

블레셋 사람들은 누구였는가?

(Who were the Philistines?)

By Dr Robert Carter



   이집트, 크레타, 이스라엘, 팔레스타인의 역사는 모두 성경에서 블레셋 사람들로 불렸던 민족의 실존을 언급하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Philistines)은 성경에서 문제가 되는 민족 집단이다. 학자들은 그들이 누구였고,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해 논쟁하고 있다. 회의론자들은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Canaan)에 도착하기 500년 전부터 가나안에 있었다고 성경이 주장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블레셋 사람들은 가나안에 살았지만, '가나안 사람'은 아니었다. 그들은 가나안 지중해 연안에 있는 거주지에서 살며 이스라엘 백성들과 싸웠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몰아내야 했던 일곱 민족에 포함되지 않았다(신명기 7:1). 고고학적 증거들은 가나안이 아니라, 크레타(Crete, 그레데)를 그들의 원래 고향으로 가리키고 있으며, 2019년 아스글론(Ashkelon)에서 150개가 넘는 무덤들에 대한 DNA 연구는 그들이 에게해 기원(Aegean origin)임을 확인했다.[1]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성경이 그들에 대해 틀렸을까?

e2c93d47ca9be.png

.레반트(Levant, 동부 지중해 연안) 지역의 왕국들. <commons.wikimedia.org, Dlv999>


블레셋 사람들은 창세기 10장의 민족들 명단에 처음 언급된다. 그들은 노아의 아들 함(Ham)의 후손으로, 그의 아들 미스라임(Mizraim)을 통해 나왔다.[2] 함족은 지중해 지역, 아라비아, 메소포타미아, 아나톨리아(현재의 튀르키예), 이집트, 리비아, 수단 등지에 널리 퍼져 정착했다. 그러나 이 민족들 중 상당수는 수수께끼에 싸여 있다. 예를 들어, 미스라임에서 나온 민족들은 다음과 같다. (영어표준역(ESV) 성경에서는 Egypt(이집트)로 번역됨. 이 이름들 목록에서 단어 끝의 복수형 -im에 주목하라) .

“미스라임은 루딤과 아나밈과 르하빔과 납두힘과 바드루심과 가슬루힘과 갑도림을 낳았더라 (가슬루힘에게서 블레셋이 나왔더라)” (창세기 10:13–14)

“Egypt fathered Ludim, Anamim, Lehabim, Naphtuhim, Pathrusim, Casluhim (from whom the Philistines came), and Caphtorim.” (ESV, Genesis 10:13–14)


적어도 '갑돌(Capthor, 캅토르)'은 크레타 섬(island of Crete)의 고대 이름이다. 다른 족속들에 대한 추가적인 정보는 없다. 따라서 블레셋 사람들의 모태가 된 가슬루힘이 어디에 정착했는지는 알 수 없다. 가나안 족속들을 연구하다 보면, 가나안 사람(Canaanite), 아모리 사람(Amorite), 여부스 사람(Jebusite)처럼 접미사 -ite를 접하게 된다. 이는 특정 조상이나 장소와 관련된 민족 집단임을 나타낸다.[3]


블레셋 사람들이 다음으로 언급된 곳은 아브라함 시대이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남부, 브엘세바 근방에 살고 있었다. 그 지역은 물이 귀했기에(그리고 지금도 그렇다) 수원을 장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당연히 아브라함의 사람들(당시 약 1,000명 정도였을 것으로 추정, 창세기 14:14 참조)과 서쪽에 살던 블레셋 사람들 사이에 갈등이 있었다.

“그들이 브엘세바에서 언약을 세우매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은 떠나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돌아갔고” (창세기 21:32)

“그가 블레셋 사람의 땅에서 여러 날을 지냈더라” (창세기 21:34)


아비멜렉(Abimelech)은 이름이기도 하지만, 칭호이기도 하다. 히브리어 단어 아브(אב)는 아버지를, 멜렉(מלך)은 '왕'을 의미하므로,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은 '나의 아버지는 왕이다'로 번역된다. 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도자가 어디에 살았는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살았고, 적어도 서쪽에 있는 그랄(Gerar)이라는 마을을 방문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 또한 블레셋 사람들과 교류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추가적인 지리적 정보가 제공되고 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창세기 26:1)


아비멜렉이라는 이름은 칭호로도 쓰일 수 있으므로, 아브라함이 알던 사람과 반드시 동일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아비멜렉이 그랄(Gerar)에 살고 있다는 점에 유의하라. 그랄은 브엘세바 북서쪽, 같은 하천계 내의 다른 지류에 위치한 도시였다.


이는 아브라함의 집 사람들이 물 관리 문제로 겪었던, 많은 갈등과 조약이 필요했던 이유를 설명해 준다. 아브라함의 사람들은 인근 그랄 계곡의 블레셋 사람들과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있었다.


창세기 26장에는 아비멜렉이 리브가를 빼앗은 유명한 이야기(창세기 20장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 이야기와 마찬가지), 블레셋 사람들이 이삭의 많은 가족과 많은 양 떼를 질투하여 그의 우물을 막은 이야기, 그리고 이삭이 우물을 다시 파는 이야기가 나온다.

a72bda9629a55.png


이상하게도 출애굽기 23, 24, 33장에서 가나안 땅에서 쫓아내야 할 민족들을 나열하실 때, 블레셋 사람들은 언급되지 않고 있다. 대신, 헷 사람, 브리스 사람, 가나안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이 언급되고 있다.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출애굽 할 때, 블레셋 사람들을 거쳐 나가는 짧은 길을 택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게 될 때까지,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시 듣지 못한다 :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출애굽기 13:17). 나중에 "블레셋 바다까지"(즉, 지중해)는 약속의 땅의 경계를 말씀하실 때 사용되었다(출애굽기 23:31). 이상하게도 출애굽기 23, 24, 33장에서 가나안 땅에서 쫓아낼 민족들을 나열하실 때, 블레셋 사람들은 언급되지 않았다. 대신 그 민족들은 헷 족속, 브리스 족속, 가나안 족속, 히위 족속, 여부스 족속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오래 전에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목록과 매우 유사하다.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과 더불어 언약을 세워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이니라 하셨더라” (창세기 15:18–21)


다시 한번, '블레셋'이라는 단어가 없다는 점에 주목하라.


혼란스러운 족속과 민족들의 목록


'가나안 사람들(Canaanites)'이라는 용어는 가나안 땅에 살았던 여러 족속과 집단들을 포괄적으로 묘사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Philistines)'이라는 용어 또한 가나안에 살았던 다양한 민족 집단들을 지칭한다. 두 용어를 구분하는 것이 항상 쉬운 것은 아니며, 하위 집단들(예: 아래에서 논의되는 블렛 사람들(Pelethites)) 중 어느 집단에 속하는지도 항상 명확한 것은 아니다.


첫째, 그 지역에는 가나안족이 아닌 민족들이 많았는데, 그중 다수가 셈족(Semitic)이었다.

▶  북동쪽에는 셈의 아들 아람(Aram)의 이름을 딴 아람족(Aramaeans)이 살았다. 그들의 본거지는 다마스쿠스(Damascus)였다.

▶  아브라함이 처음 이스라엘로 이주했을 때, 조카 롯(Lot)이 그와 동행했다. 롯의 아들들은 모압과 암몬(Moab and Ammon)이었다. 모압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은 요단강 동쪽에 살았다.

▶  아브라함에게도 여러 아들이 있었다. 그의 첫째 아들 이스마엘(Ishmael)은 요단강 동쪽에 살았던 12개 주요 지파로 구성된 이스마엘 족(Ishmaelites, 창세기 17:20)의 조상이었다.

▶  아브라함의 둘째 아들 이삭(Isaac)에게는 야곱과 에서(Jacob and Esau)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에돔(Edom)은 에서의 다른 이름이었다. 다른 사람들처럼 에돔 사람들(Edomites)도 요단강 동쪽에 살았다.

▶  아브라함은 나중에 (그두라를 통해) 더 많은 아들들을 낳았는데, 그중 하나가 미디안(Midian)이었다. 요셉의 형들이 그를 노예로 팔았을 때, 형들은 요셉을 미디안 사람들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다고 성경의 한 구절에서 같이 기록되어 있다(창세기 37:28). 이스마엘은 미디안의 형이었다. 두 사람은 같은 지역에 살았고, 이 초기부터 그들의 이름은 섞이기 시작했다.

▶  함(Ham)을 자신들의 조상으로 주장하는 다른 족속들도 있었지만(예로 삽드가(Sabteca)), 이러한 아라비아 족속들은 이 이야기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다음은 많은 가나안 민족들과 족속들이 있었다. 가나안의 아들 중 이름이 언급된 것은 두 명으로 시돈(Sidon)과 헷(Heth)뿐이다. 다른 족속들도 '가나안' 족속이지만, 그들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  하맛(Hamath)은 이스라엘 북동쪽, 유프라테스 강변에 위치한 도시였다. 하맛 사람들의 영토는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땅'에 포함되었으며, 이후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통치했다.

▶  북서쪽에는 페니키아의 도시 티레(Tyre)와 시돈(Sidon)이 있었다. 이 도시들은 쫓아냈던 족속들 가운데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시돈은 가나안의 아들이었다.

▶  헷 족속(Hittites, 히타이트족)은 또 다른 가나안 족속이었다. 그들의 활동 중심지는 이스라엘 북부였다.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Uriah)는 헷 족속이었다. 아나톨리아(Anatolia)를 중심으로 한 고대 히타이트 제국(Hittite empire)이 이 사람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  '아모리 족속(Amorite)'이라는 용어는 고대 역사에서 자주 등장한다. 그들은 넓은 지역에 분포했다. 성경은 그들이 가나안 출신이라고 말한다. 성경에는 그들이 요단강 양쪽에 살았다고 기록하고 있다. 바산왕 옥(Og, king of Bashan)과 헤스본 왕 시혼( Sihon, king of Heshbon)은 요단강 동쪽에 살았던 아모리 족속의 지도자였으며, 전투에서 패배했다(민수기 21:21-35). 또한 이스라엘의 경로가 여리고에서 요단강 서쪽의 아모리 족속의 영토로 이어졌기 때문에, 아모리 족속은 가나안의 초기 정복에서 중요한 족속이었다(예: 여호수아 10:5).

▶  여부스 족속(Jebusites)은 미래의 예루살렘 도시와 그 주변에 살았다. 또한 그들은 아모리족과 관련이 있다.

f81cebbba3dc9.png

.가나안과 그 주변에 살았던 족속들의 가계도. 이름이 적힌 사람들은 파란색 사각형 안에 있다. 후손 족속 중 다수는 단순히 "아라비아인"으로 나열되어 있지만, 여기에는 현대 요르단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예: 에돔, 모압, 암몬 등)도 포함되므로,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적용된다. 이 글에서 논의되는 많은 족속(예: 블렛족)은 족장들과 직접적인 계보적 연관성이 없기 때문에 나열되지 않았다. 블레셋 족속(Philistines, 빨간색 타원)은 함(Ham)에게서 나왔고, 그의 아들 미스라임(Mizraim)을 거쳐, 가슬루힘(Casluhites)으로부터 나왔다.<© CMI>


그 지역에는 우리가 거의 알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사람들은 키가 컸는데, 특히 르바임 족속(Rephaim, 신명기 3:11)과 아낙 자손(Anakim, 민수기 13:28, 이들은 "네피림"이 아니었다)이다. (‘창세기 6장의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였는가?’를 참조하라. 여기를 클릭). 르바임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암몬 족속에 의해서 요단강 동쪽 지역에서 쫓겨났다(신명기 2:20-21). 예루살렘에서 해안 평야로 이어지는 르바임 골짜기(여호수아 18:16)는 그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을 수 있다. 아빔(Avvim)과 그술(Geshurites) 족속들은 또 다른 수수께끼의 족속이었지만, 그들은 헤르몬 산과 갈릴리 바다 사이에 살았다. 다윗의 두 자녀(압살롬과 다말)의 어머니는 그술 왕 달매(Talmai)의 딸 마아가(Maacah)였다(사무엘하 3:3, 13:1).

마지막으로 블레셋 사람들이 있었다. 여호수아서에서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블레셋 사람의 다섯 도시인 가사(Gaza), 아스돗(Ashdod), 아스글론(Ashkelon), 가드(Gath), 에그론(Ekron)을 정복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여호수아 13:2-3). 그 지역은 사사시대 내내 블레셋 사람들이 지배했다.(사사기 3:3 참조). 예를 들어, 삼갈(Shamgar)은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600명을 죽인 것으로 유명하며(사사기 3:31), 삼손(Samson)은 그들과 여러 차례 거래를 했다(사사기 14-16장). 사무엘상과 사무엘하 전체에 블레셋 사람들에 대한 많은 언급이 있다(예: 골리앗은 가드 사람이라고 불렸는데, 즉 그는 가드(Gath) 도시 출신의 블레셋 사람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또한 예언서(예: 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아모스, 오바댜, 스바냐)에서도 자주 언급된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내게 구스 족속 같지 아니하냐 내가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서, 블레셋 사람을 갑돌에서, 아람 사람을 기르에서 올라오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아모스 9:7)


여기서 BC 8세기에 살았던 아모스(Amos)가 블레셋 사람들을 갑돌(Capthor, 크레타)에서 왔다고 말한 점에 주목하라. 아모스보다 약 100년 후에 예레미야서를 기록한(BC 7세기 말에서 6세기 초) 예레미야는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확증하고 있다.

“이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 (예레미야 47:4)


그러나 창세기로부터 초기 기록은 블레셋 사람들이 갑돌로부터 왔다고 주장하지 않는다(비록 갑도림은 그들의 친척이었지만). 그리고 약 1,500년 후, 성경은 그들이 갑돌 출신이라고 주장한다. 따라서 이 초기 블레셋 사람들이 누구였는지에 대해 약간의 혼란이 있다. 만약 그들이 갑돌 출신이었다면, 언제부터였을까? 그리고 만약 그들이 아브라함 시대 이전에 왔다면, 1500년 이상이 지난 후에 그 사실이 왜 중요할까?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땅'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언급되지 않은 것은 이상하다. 그리고 가나안 침략 40년 전 그 땅을 정탐했던 정탐꾼들 역시 블레셋 사람들을 언급하지 않고 있었다 :

“아말렉인은 남방 땅에 거주하고 헷인과 여부스인과 아모리인은 산지에 거주하고 가나안인은 해변과 요단 가에 거주하더이다” (민수기 13:29)


여기에 살았던 초기 사람들이 원래 블레셋 사람들이었을 가능성이 있을까? 그 이름이 같은 위치로 이주한 새로운 사람들에게 적용되었을 수 있으므로, 조상이나 민족과 거의 관련이 없을 수 있을까? 크레타에서 온 가슬루힘(Casluhim)의 한 분파가 '블레셋' 영토로 이주했다면, 이전 문화의 요소를 쉽게 받아들였을 수 있다. 그리고 그 반대도 사실일 수 있다. 즉, 그 용어는 나중에 블레셋이라고 불리는 곳에 살았던 초기 사람들에게 소급 적용되었을 수 있다. 성경에는 이름이 특정 위치에 소급하여(retroactively) 적용되는 곳이 여러 군데 있다. 우리는 이에 대해 여러 번 글을 썼다. 예를 들어, 키튼 핼리(Keaton Halley)는 다음과 같이 썼다 :

예를 들어, 창세기 14:14절은 아브라함이 롯을 구하기 위해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단 성(city of Dan)은 아브라함 시대나 창세기를 기록한 모세 시대에는 아직 '단'으로 불려지지 않았다. 이 성읍은 이전에 라이스(Laish)라고 불렸고, 성경에서 말하듯이 사사기 시대(사사기 18:29)가 되어서야 단 지파에 의해 개명되었다. 따라서 창세기 14:14절에 나오는 이 성읍의 이름은 모세 시대 이후에 수정된(updated) 것이었다.[4]


코스너와 카터(Cosner and Carter)는 다음과 같이 썼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모세오경을) 모세가 썼다는 것을 알고 있다(예: 출애굽기 24:4, 민수기 33:2). 하지만 그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썼을 가능성은 없다. 따라서 모세가 썼다고 여겨지는 책들은 편집자(editor)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편집자의 코멘트(예: "오늘(날)까지(to this day)")가 성경에 섞여 있고, 이는 아마도 여러 사람의 손에서 나온 것이었을 것이다. 누군가가 단지 이집트 도시의 이름을 바꾸어 기록을 읽는 사람들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은 사소한 일이었을 것이다.[5]


블레셋 사람들이라는 수수께끼에 답하다.


이 많은 수수께끼들에 대한 해답은 성경에 '블레셋 사람들'이라고 불리는 두 개의 다른 민족 집단이 있었던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후대의 블레셋 사람들은 실제로 크레타 출신이었지만, 아브라함이 알고 있던 블레셋 사람들과는 달랐을 수 있다. 실제로 성경은 바로 이 지역에서 인구 이동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갑돌에서 나온 갑돌 사람이 가사까지 각 촌에 거주하는 아위 사람을 멸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거기에 거주하였느니라” (신명기 2:23)


신명기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침략하기 직전(BC ~1406년경)에 기록되었다. 따라서 이 새로운 사람들은 1)갑돌(크레타)에서 나왔고, 2)이삭 시대와 모세 시대 사이, 약 300년 동안 이 지역으로 이주해 왔다. 그러나 성경은 또한 블레셋 사람들이 살았다고 말해지는 지역에 아위(Avvim, Avvites, 아빔) 사람이라 불리는 집단이 살았다고 언급하고 있다.


하지만 다윗 시대의 이 후대의 블레셋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역사 기록에 따르면, 수수께끼 같은 바다 민족이 람세스 3세(Rameses III, 이집트 제19왕조, BC 1186~1155년경) 통치 기간에 이집트를 침략하려고 시도했다. 이것은 출애굽 이후 약 300년이 지난 시기로, 사사시대였을 것이고, 이스라엘은 오랫동안 하나의 국가로 확립되어왔다. 그들의 실패한 침략은 유명한 람세스 3세의 장례 신전(Medinet Habu, 메디넷 하부 신전)의 벽에 묘사되어 있지만, 그림에는 동물과 여성들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바다 민족은 단순히 공격만 한 것이 아니라, 이주하고 있었다. 이와 거의 같은 시기에 우리는 지중해 지역에서 히타이트(Hittite), 미케네(Mycenaean), 미탄니(Mitanni) 제국의 멸망을 목격한다. 이 모든 격변의 이유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6], 원인과 결과를 분리할 수 없다(예: 바다 민족이 약탈자였는지, 아니면 다른 공격자 집단을 피하려고 했는지?). 이집트의 기록에 따르면, 람세스는 생존자들을 강제로 가나안 남서쪽에 정착시켰는데, 그곳은 아브라함 시대에 '블레셋' 도시들이 있던 곳이었다.

f0149f05c570a.png

.메디넷 하부(Medinet Habu) 신전의 북동쪽 외벽. <commons.wikimedia.org, public domain>


크레타에서 해안가 레반트 지역으로 대규모 인구 이주(migration)가 이루어진 것은 유전학적으로, 그리고 고고학적 그림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그러나 연대표를 보면 람세스 3세 시기의 바다 민족을 모세 시대의 블레셋 사람들과 동일시하기 어렵다(예: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출애굽기 13:17)).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출애굽은 람세스 2세의 통치 기간에 일어난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몇 세기 전(BC ~1446년경)에 일어났다. 따라서 람세스 3세 시기는 너무 늦고, 모세 시기는 너무 이르다.[7]


이집트인들은 수 세기 동안 여러 '바다 민족(sea peoples)' 집단과 싸워왔고, 그들에게 여러 이름을 붙여주었다. 그중 하나가 펠레셋(Peleset, 펠레세트)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이 "블레셋"이라는 이름의 유래라고 믿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성경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바다 민족인 펠레셋 계통이 등장하기 훨씬 이전에 가나안에 거주했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특히 문제가 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성공적으로 침략한 후, 성경은 아직 정복당하지 않은 많은 민족들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블레셋 사람들, 그술(Geshurites) 족속, 아위(Avvim) 족속 등이 그 예이다.

“여호수아가 나이가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가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이 매우 많이 남아 있도다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모든 지역과 그술 족속의 모든 지역 곧 애굽 앞 시홀 시내에서부터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북쪽 에그론 경계까지와 블레셋 사람의 다섯 통치자들의 땅 곧 가사 족속과 아스돗 족속과 아스글론 족속과 가드 족속과 에그론 족속과 또 남쪽 아위 족속의 땅과 또 가나안 족속의 모든 땅과 시돈 사람에게 속한 므아라와 아모리 족속의 경계 아벡까지와 또 그발 족속의 땅과 해 뜨는 곳의 온 레바논 곧 헤르몬 산 아래 바알갓에서부터 하맛에 들어가는 곳까지와 또 레바논에서부터 미스르봇마임까지 산지의 모든 주민 곧 모든 시돈 사람의 땅이라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쫓아내리니 너는 내가 명령한 대로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분배하여 기업이 되게 하되“ (여호수아 13:1~6)


다윗 시대에는 그 땅에 여러 이방 족속들이 살고 있었는데, 누가 먼저 그곳에 왔고, 누가 나중에 왔는지 다소 혼란스럽다. 이러한 족속 중 일부는 블레셋 사람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었는데, 예를 들어 그술 족속(Geshurites)이 그렇다.

”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모든 지역과 그술 족속의 모든 지역“ (여호수아 13:2)


블레셋 사람들과 관련되어 "그렛(Cherethites) 사람"이라는 족속에 대한 언급도 있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내가 블레셋 사람 위에 손을 펴서 그렛 사람을 끊으며 해변에 남은 자를 진멸하되”(에스겔 25:16) (또한 스바냐 2:5절도 보라)


우리는 또한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의 부하들과 여러 차례 함께 싸우는 것을 본다(사무엘하 8:18; 20:7, 23). 또한 그들이 다윗을 섬기는 모습도 본다(열왕기상 1:38-44, 역대상 18:17). 다윗이 압살롬의 반역을 피해 도망쳤을 때,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에서 그와 함께 올라갔다. 그들 중 대부분은 언급되지 않았지만, 그들 중 외국인들은 예외였다.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 (사무엘하 15:18)


다윗은 가드 사람(Gittite) 잇대(Ittai)가 따라오는 것을 만류했지만, 그는 유명한 다음과 같은 대답을 했다.

“그 때에 왕이 가드 사람 잇대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도 우리와 함께 가느냐 너는 쫓겨난 나그네이니 돌아가서 왕과 함께 네 곳에 있으라... 잇대가 왕께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살아 계심과 내 주 왕의 살아 계심으로 맹세하옵나니 진실로 내 주 왕께서 어느 곳에 계시든지 사나 죽으나 종도 그 곳에 있겠나이다 하니” (사무엘하 15:19, 21)


그리고 우리는 이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가족을 데리고 이스라엘로 따라왔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가드 사람 잇대와 그의 수행자들과 그와 함께 한 아이들이 다 건너가고” (사무엘하 15:22)


이는 현대 유대인의 유전적 배경에 대한 즉각적인 의문을 제기하지만(여기를 클릭), 이것은 이 글의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다.


골리앗, '블레셋 사람'


골리앗(Goliath)은 엄청난 체구로 유명하다. 아스글론(Ashkelon) 묘지에서 발굴된 블레셋 사람의 유골들은 비정상적으로 큰 크기가 아니었다. 이는 당시 살았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적어도 정상적인 키였음을 알려준다. 골리앗은 블레셋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마지막으로 남은 르바임(Rephaim) 중 하나였을까? 어쩌면 그는 그 지역, 또는 다른 지역에 살았던 블레셋 사람들과는 전혀 관련이 없었을지도 모른다(사무엘하 21:15-22). 이 구절에서 사용된 단어, 어떤 성경에서는 '거인(giant)' 다른 성경에서는 '거인들(giants)'이라는 단어가, 히브리어 단어 '르바임(רְפָאִים)'이라는 점에 유의하라.


그리스어로 된 칠십인역(Septuagint) 성경에서는 블레셋 사람들을 지칭하는 데 두 다른 단어가 사용된다. 창세기부터 여호수아서까지는 Φυλιστιιμ(Philistiim, Philistines, 블레셋 사람들, 팔레스타인)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사사기부터는 ἀλλοφύλων(allophilon, foreigners, 외국인)라는 단어가 사용된다. 따라서 BC 3세기 칠십인역 번역팀은 오늘날 흔히 놓치고 있는 사실을 이해하고 있었다. 그들은 두 개의 뚜렷한 집단이 있었으며, 후자는 그 땅에 처음 정착한 사람들이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이는 다양한 랍비 자료들의 견해에 의해서 뒷받침된다.[8]


크레타를 점령했던 고대 미노스인(Minoans)들이 바다 민족이었다는 점을 생각해 보라. 카메레스(Kameres)라고 불리는 그들의 도자기는 레반트(Levant, 지중해 동부 해안 지역), 특히 아스켈론(Ashkelon)에서 발견된다. 우리는 그들의 도자기가 블레셋까지 전파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브라함이 교류했던 사람들이 그 지역의 초기 식민지 개척자들이었을 가능성이 있을까?


후기 도자기는 그리스 스타일을 따랐는데, 그리스인들이 BC 14세기에 크레타를 정복하고 결국 레반트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사실, 후기 청동기시대(예: 모세의 세계)와 초기 철기시대(예: 사무엘과 사울의 세계) 사이에 문화에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필리스티아 바이크롬 도자기(Philistine bichrome ware, 블레셋 2색 도자기)라고 불리는 새로운 도자기 스타일이 초기 철기시대에 이 지역에 갑자기 나타났다. 이것은 BC 12세기경, 람세스 3세와 거의 동시대였다. 이것은 필리스티아 단색 도자기(Philistine monochrome ware)라고 불리는 것과 유사하지만, 비슷한 바이크롬 도자기들을 키프로스와 그리스 미케네 문화와 관련된 다른 장소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 모양, 색상 및 패턴(예: 새와 물고기)이 모두 매우 유사하다. 이 재료 중 일부는 수입되었지만, 대부분은 현지에서 만들어졌다. 도자기의 연대측정은 매우 복잡한 작업이며, 이와 관련하여 많은 불확실성이 있다(예: 탄소연대측정은 정확한가 참조). 하지만 이러한 스타일의 도자기는 당시의 블레셋 문화를 그리스 섬과 분명히 연결해준다.


이는 아스글론의 고대 묘지에 묻혀있는 사람들의 DNA에서 발견된 중요한 변화와 일치한다. 초기 철기시대 사람들은 청동기시대 조상들과는 달랐다. 그들은 상당량의 유럽 DNA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럽인의 기여는 후기 철기시대에 사라졌다.[9] 자료에 따르면, 남동부 유럽에서 유입된 DNA가 이 지역으로 유입되었다. 그 DNA를 가진 사람들은 멸종했거나, 더 가능성이 높은 것은 더 큰 규모의 지역 주민과 결혼하면서 DNA가 희석되었을 것이다.


결론


성경은 블레셋 사람들이 아브라함 시대부터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시대까지 가나안에 있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크레타 섬과 관련된 토기와 DNA가 대량 유입되기 전, 즉 블레셋 사람들이 그 땅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것이 성경이 초기 블레셋 사람들에 대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경의 역사에 충실한 몇 가지 가능한 해결책이 있다.


▶  초기 사람들은 동시대 사람들에 의해 블레셋 사람이라고 불렸고, 후기 사람들은 블레셋 영토에 살았기 때문에, 그 이름이 붙었을 수 있다.

▶  초기 사람들은 나중에 실제 블레셋 사람들이 지배하게 된 지역에 살았기 때문에 소급적으로 '블레셋 사람들'이라는 이름을 받았을 수도 있다.

▶  초기와 후기 블레셋 사람들은 사촌이거나 언어나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새로 이주한 사람들은 단순히 비슷한 문화권으로 이주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그들은 둘 다 본래 '블레셋 사람들'이었지만, 이주 시기를 통해 구분될 수 있다.



References and Notes

1. Feldman, M. et al., Ancient DNA sheds light on the genetic origins of early Iron Age Philistines, Sci. Adv. 5:eaax0061, 2019.

2. Yet, this is true for the Y chromosome only. After the Flood, the family of Noah stayed together. It was not until the Tower of Babel event (some five generations after the Flood) that people spread out. All people on earth, therefore, should be able to claim all three sons of Noah and each of their wives as ancestors. Also, due to migration, trade, slavery, etc., we would not expect any specific people group to maintain a perfect separation of their male lines. Thus, when we say, “the Philistines came from Ham”, what we mean is that the men in leadership carried his Y chromosome. This does not mean that Ham had anything special about his DNA that is only found in, for example, Africa.

3. A demonym is the technical term for a word that describes people who live in a certain place, e.g., the Canaanites. The ending varies depending on historical language roots, so we can speak of a Netherlander, a Kosovar, a Pakistani, or a Moroccan. We also talk about Chinese, French, and Swedish people. In the Bible, patriarchal ancestry was frequently used to name groups of people, but that same term was also frequently applied to the location in which they lived. Thus, Canaan was the location in which the Canaanites lived, Edom was the place where the Edomites lived, etc.

4. Halley, K., Exodus evidence revisited, creation.com, 18 June 2022.

5. Carter, R. and Sanders, L., How long were the Israelites in Egypt? Using their own family tree to resolve a debate, creation.com, 21 Sep 2021.

6. There was a massive volcanic explosion in the middle of the Aegean Sea in ancient times. Prior to 1,600 BC (using carbon dating) or sometime around 1,500 BC (using secular archaeologic dating), the island of Thera (modern Santorini) exploded. This had a profound effect on the ancient Aegeans, especially upon the great Minoan civilization on Crete, and would have negatively affected the Levant as well (possibly explaining the drought during the time of Abraham or Joseph). Yet, the Sea Peoples are associated with a cultural upheaval called the Late Bronze Age Collapse (c.a. 1,200–1,150 BC).

7. Rameses III (Dynasty 20) was not the son of Rameses II (Dynasty 19). There were at least six pharaohs who ruled between them.

8. Eames, C., Are ‘Philistines’ during Abraham’s time evidence against Bible historicity? armstronginstitute.org, 24 Feb 2022.

9. Feldman, M. et al., Ancient DNA sheds light on the genetic origins of early Iron Age Philistines, Sci. Adv. 5:eaax0061, 2019.


Related Articles

Is the Septuagint a superior text for the Genesis genealogies?

How long were the Israelites in Egypt?

Egyptian chronology and the Bible—framing the issues

Goliath—the BHG

Evidence for Saul, David, and Solomon



*참조 : 노아의 16명의 손자 : 고대의 지명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남아있다.

https://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381&bmode=view

고대 이집트에서 노아와 대홍수를 찾아서 – 1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5703689&bmode=view

고대 이집트에서 노아와 대홍수를 찾아서 - 2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5850972&bmode=view

고대 이집트에서 노아와 대홍수를 찾아서 – 3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5886160&bmode=view

고대 이집트에서 노아와 대홍수를 찾아서 – 4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097725&bmode=view

중국 삼성퇴(싼싱두이)의 청동나무 : 창세기를 묘사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유물?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35&bmode=view

중국의 복희와 여와, 그리고 묘족의 신화는 노아 홍수가 실제 역사임을 가리킨다!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47670645&bmode=view

황제 ‘황디’는 누구였을까? : 중국인들은 어디서 왔을까!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39180093&bmode=view

묘족에게 전승되어온 창조 이야기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00&bmode=view

전 세계의 홍수 전설에는 "8명"의 홍수 생존자들에 대한 공통된 기억이 남아있다.

https://creation.kr/EvidenceofFlood/?idx=49755429&bmode=view

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는 신격화된 함이다 : 1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5221417&bmode=view

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는 신격화된 함이다 : 2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067923&bmode=view

이집트 역사와 성경 기록 : 완벽한 조화?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4326240&bmode=view

이집트의 임호텝과 요셉은 동일 인물이었는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4404153&bmode=view

요셉과 임호텝은 동일 인물이었을까? 1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7535860&bmode=view

요셉과 임호텝은 동일 인물이었을까? 2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8104674&bmode=view

모세를 찾아서 1, 2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11&bmode=view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12&bmode=view

출애굽의 역사성을 확증하고 있는 영화, “증거의 패턴 : 출애굽”이 개봉되었다.

http://creation.kr/BiblenHistory/?idx=1289000&bmode=view

“증거의 패턴: 홍해의 기적” - 성경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영화

http://creation.kr/archaeology/?idx=3156850&bmode=view

시내산의 위치에 관해 논란이 되고 있는 고고학적 장소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공개한다.

http://creation.kr/archaeology/?idx=2574870&bmode=view

신명기의 마지막 장에는 모세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모세는 그 책의 저자가 될 수 없는 것인가?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79&bmode=view

가장 오래된 초기 히브리어 글자의 발견!: 에발산의 납 서판은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주장을 기각한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8313336&bmode=view

에발 산에서 여호수아의 제단과 저주 서판의 발견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302135&bmode=view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알파벳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5639096&bmode=view

여리고의 성벽 : 고고학적 확인에 의하면 여리고성의 벽은 정말로 무너져 내렸다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33&bmode=view

여호수아의 파괴 이후의 여리고 성 : 성경과 고고학의 일치.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3837349&bmode=view

여호수아의 아이 성에 대한 새로운 고고학적 발굴 : 또 다시 확인된 성경 기록의 정확성.

http://creation.kr/archaeology/?idx=1288782&bmode=view

앗수르의 최근 고고학적 발견은 성경을 확증하고 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326561&bmode=view

성경 역사를 확증해주고 있는 고대 앗수르 유물. 대영박물관에 있는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83&bmode=view

가나안의 하솔 - 성경이 옳았다! : 성경에 보존된 고대 도시의 흔치않은 지식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4048467&bmode=view

이집트 왕 시삭에 대한 어떤 증거가 발견된 적이 있는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958205&bmode=view

시삭/셰숑크가 동일 인물임을 강화하는 증거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1147641&bmode=view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의 어떤 왕이었을까? : 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1세?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257499&bmode=view

새로 발견된 이집트 석비는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왕이 실존했음을 증거한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4268001&bmode=view

사울, 다윗, 솔로몬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 - 1 : 고고학은 이스라엘 통일왕국에 대한 성경 기록을 뒷받침한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511930&bmode=view

사울, 다윗, 솔로몬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 - 2. 고고학은 이스라엘 통일왕국에 대한 성경 기록을 뒷받침한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529047&bmode=view

거인 골리앗에 대한 7가지 고고학적 증거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189706&bmode=view

사울 왕의 아들 ‘에스바알(이스보셋)’의 이름이 새겨진 3,000년 전 도자기가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84&bmode=view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적 사실성! : 최근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임을 계속 입증하고 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30&bmode=view

다윗 왕은 부족장이 아니라, 도시들을 지배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78&bmode=view

솔로몬 왕이 건설했을 가능성이 있는 성벽이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65&bmode=view

솔로몬 왕의 구리광산에 대한 증거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70&bmode=view

솔로몬 시대의 광산이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60&bmode=view

팀나의 구리 광산은 솔로몬 왕국의 부강함을 보여준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86&bmode=view

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견된 유대인의 제례 예식의 증거.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92&bmode=view

벨사살 : 바빌론의 두 번째 통치자. 고고학은 벨사살 왕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245931&bmode=view

왕비 이세벨의 고대 인장이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37&bmode=view

이사야 선지자의 인장이 발견되었다 : 히스기야 왕의 인장에 이은 놀라운 발견!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289007&bmode=view

바빌로니아 점토판에 성경 속 인물이 언급되어 있었다 : 느부갓네살 왕의 환관장 살스김의 이름이 새겨진 점토판의 발견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36&bmode=view

히스기야 왕을 하나님이 구원하셨을 때 - 1부 : 고고학은 앗수르의 유다 침공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290486&bmode=view

히스기야 왕을 하나님이 구원하셨을 때 - 2부 : 고고학은 히스기야의 예루살렘 방어 준비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348140&bmode=view

히스기야 왕을 하나님이 구원하셨을 때 - 3부 : 고고학은 예루살렘의 구원과 산헤립의 종말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404887&bmode=view

히스기야 왕의 기념비 비문이 발견되었다! : 히스기야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정확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8415666&bmode=view

실로암 못이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8415436&bmode=view

제1성전 시대의 저수조가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76&bmode=view

느헤미야의 성벽이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958197&bmode=view

야고보의 유골함은 진품이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75&bmode=view

케네디 박사의 책 ‘성경의 발굴 : 성경에 생명을 불어넣는 101가지 고고학적 발견’에 대한 리뷰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20344485&bmode=view

▶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4724&t=board

▶ 성경의 권위와 무오성

https://creation.kr/Topic502/?idx=6828823&bmode=view

▶ 성경의 오류 논란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8792&t=board

▶ 성경적 역사를 지지하는 발견들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791252&t=board

▶ 인장(이세벨, 이사야, 히스기야)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16934&t=board

▶ 전 세계의 홍수 전설

https://creation.kr/Topic2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600948&t=board


출처 : Published CMI, 12 Nov, 2023, Updated 21 Nov, 2023

주소 : https://creation.com/en/articles/who-were-the-philistines

번역 : 미디어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6-01-05

<복원> 소돔과 고모라가 불과 유황으로 멸망되었다는 어떤 증거가 있는가?

(Is there any evidence for the Biblical story of Sodom and Gomorrah's destruction by fire and brimstone (sulfur)?)

ChristianAnswers.net



   소돔(Sodom)과 고모라(Gomorrah)의 폐허가 사해(Dead Sea)의 동남쪽에서 발견되었다. 현재의 이름은, 소돔이라 여겨지는 곳은 ‘밥 엣드라(Bab edh-Dhra)’이고, 고모라로 여겨지는 곳은 누메이라(Numeira)이다. 두 곳 다 엄청난 규모의 대형화재로 동시에 파괴되었다. 파괴된 잔해의 두께는 90cm(3피트) 정도였다. 무엇이 이 어마어마한 참화를 불러왔는가? 밥 엣드라에 있는 공동묘지에서의 놀라운 발견들이 그 이유를 밝혀주었다. 고고학자들은 시체를 매장하는 데 사용된 건물들이 지붕에서부터 시작된 한 화재에 의해서 불탔다는 것을 발견했다.


62543dc0e7064.png

.오늘날 요르단 령인 사해 동남쪽의 폐허가 된 소돔성(Bab edh-Dhra) 남쪽 벽을 따라 바라본 동쪽 전경.


무엇이 공동묘지 안에 있는 모든 구조들을 이런 식으로 파괴했을까? 이 비밀에 대한 답은 다음의 성경 구절에서 발견된다.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그 성들과 온 들과 성에 거하는 모든 백성과 땅에 난 것을 다 엎어 멸하셨더라” (창 19:24,25). 


고고학적 기록에서 이 독특한 발견에 대해 상상해볼 수 있는 유일한 설명은 불타는 파편들이 공중으로부터 건물 위로 떨어져 내렸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사해 남부 지역에는 아스팔트와 유사한 역청(bitumen)이라고 불리는, 석유가 기초성분인 물질이 지하에 풍부하게 퇴적되어있다는 증거가 있다. 그런 물질은 일반적으로 높은 비율의 유황(sulfur)을 포함한다. 지질학자인 프레드릭 클랩(Frederick Clapp)은 지진 시 발생하는 압력이 역청 광상을 단층선(fault line)을 통해 지표 밖으로 분출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것이 지표 밖으로 분출될 때, 그것은 스파크나 지상의 불에 의해서 점화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그것은 불붙은 불덩어리가 되어 땅으로 떨어질 수 있다. 


소돔과 고모라의 터가 발견된 것은 클랩이 이 이론을 주장했던 바로 직후였다.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장소는 사해 남쪽 평원의 동편을 따라 단층선 상에 정확히 위치하고 있음이 밝혀졌다. 따라서 클랩의 이론은 전적으로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성경 자체로부터도 이 시나리오에 대한 다소간의 증거가 있다. 아브라함은 사해 서쪽에서 폐허를 바라보았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본 것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He looked down toward Sodom and Gomorrah, toward all the land of the plain, and he saw dense smoke rising from the land, like smoke from a furnace)” (창 19:28). 짙은 연기(dense smoke)는 석유 기초성분의 물질들이 타고 있음을 가리킨다. 옹기점 연기(smoke from a furnace) 같이 올라오는 연기는 지하 광상에서 예상되는 것과 같이 땅속 압력 하에서 밖으로 밀려나오는 강제통풍을 가리킨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죄에 대해서 어떻게 심판하시는지를 보여주는 성경의 한 사례가 되었다. 


“네 아우 소돔의 죄악은 이러하니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거만하여 가증한 일을 내 앞에서 행하였음이라 그러므로 내가 보고 곧 그들을 없이하였느니라”(겔 16:49, 50). 



FOR FURTHER READING (available from Associates for Biblical Research):


“The Discovery of the Sin Cities of Sodom and Gomorrah,” by Bryant G. Wood, Bible and Spade, Summer 1999, pp. 67-80.


ALSO SEE:

Sodom 

Gomorrah 

Judgments of God

 


출처 : ChristianAnswers.net

주소 : http://christiananswers.net/q-abr/abr-a007.html

번역 : IT 사역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6-01-05

<복원> 성경 밖의 기록에서 성경 사건들에 대한 어떤 확증이 있는가? 

(Is there any confirmation of Biblical events from written sources outside the Bible?)

Bryant Wood



   성경 사건들 중에서 성경 밖의 기록에서 가장 많이 남아있는 것은 창세기 6~9장에 묘사되어있는 전 지구적 홍수에 관한 기록이다. 똑같은 홍수를 설명하고 있는 많은 바빌론 문서들이 발견되었다. 


 

a6852e2ed3b07.png

.수메르 왕들의 목록을 기록해 놓은 고대의 토판 (More Information)


예컨대, 수메르 왕들의 목록(Sumerian King List)은(위의 그림) 오랜 기간 동안 통치했던 왕들의 명단을 열거해놓고 있다. 그리고 대홍수가 일어났다. 대홍수 이후로 수메르 왕들의 통치 기간은 훨씬 짧아졌다. 이것은 성경에서 발견되는 것과 같은 양상이다. 홍수 이전의 인간 수명은 길었고, 홍수 이후에는 짧아졌다. 길가메시 서사시(Gilgamesh Epic)의 11번째 토판은 방주와, 방주에 탔던 동물들, 홍수 동안에 날려 보낸 새들, 산 위에 도착한 방주, 그리고 방주에서 내려와 드렸던 희생들에 대해 기록하고 있었다.


아다파 설화(Story of Adapa)는 에덴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와 유사하게, 먹는 것을 포함하여 불멸에 관한 한 시험을 소개하고 있다. 

 

수메르 토판들은 바벨탑에 관한(창 11:1-9) 성경의 설명과 같이 언어의 혼잡을 기록하고 있다. 모든 인류가 같은 한 가지 언어만 사용했던 황금시대가 있었다. 그런데 지혜를 관장하는 엔키(Enki) 신에 의해 혼잡하게 되었다. 바빌론 사람들은 신들이 신전의 탑을 부수고 “사람들을 멀리 흩어버렸으며, 그들의 언어를 다르게 만들어 버렸다”는 성경과 유사한 설화를 가지고 있다.



성경 사건들에 대한 성경 밖의 확증들에 대한 몇 가지 사례 :


▶ 애굽(이집트)의 왕(바로)인 시삭(Shishak)이 이스라엘을 침공(왕상 14:25-26)한 사건이 이집트 테베(Thebes)에 있는 아문 신전(Temple of Amun)의 벽 위에 기록되어 있다.


▶ 이스라엘에 대한 모압의 배반(Revolt of Moab) 사건이(왕하 1:1, 3:4-27) 메사 비문(Mesha Inscription)에 기록되어 있다.  


▶ 사마리아가 앗수르(Assyria)의 왕 사르곤 2세(Sargon Ⅱ)에게 함락된 사건이(왕하 17:3-6,24, 18:9-11) 그의 궁전 벽에 기록되어 있다. 


▶ 사르곤 2세에 의한 아스돗(Ashdod)의 점령(사 20:1) 사건이 그의 궁전 벽에 기록되어 있다.


▶ 앗수르 왕 산헤립(Sennacherib)의 유다 침공(왕하 18:13-16)이 테일러 프리즘(Taylor Prism, 니느웨의 폐허에서 발견된 육각형의 구운 점토 프리즘)에 기록되어 있다.


▶ 산헤립 왕에 의해 라기스가 포위된 사건이(왕하 18:14,17) 라기스의 양각(Lachish reliefs)들에 기록되어 있다.


▶ 산헤립 왕이 그의 친 아들들에게 피살된 사건이(왕하 19:37) 그의 아들인 에살핫돈(Esarhaddon)의 사료에 기록되어 있다.


▶ 선지자 나훔과 스바냐가 예언한 니느웨의 함락이(습 2:13-15) 나보폴라살 왕의 토판(Tablet of Nabopolasar)에 기록되어 있다. 


▶ 바빌론 왕 느브갓네살(Nebuchadnezzar)에게 예루살렘이 함락된 사건이(왕하 24:10-14) 바빌론 역대기(Babylonian Chronicles)에 기록되어 있다.


▶ 유대 왕 여호야긴(Jehoiachin)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사건이(왕하 24:15,16) 바빌론 사람들의 배급 장부(Babylonian Ration Records)에 기록되어 있다.  

 

▶ 메대와 파사(Medes and Persians)에게 바빌론이 패망한 사건은(단 5:30,31) 고레스 기둥(Cyrus Cylinder)에 기록되어 있다. (페르샤 제국의 건설자인 고레스는 그가 점령한 수메르의 여러 도시마다 기둥을 세우고 그의 업적을 새겨놓았다).


▶ 바빌론에 포로가 되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레스(Cyrus) 왕에 의해 방면된 사건이(스 1:1-4, 6:3,4) 고레스의 원통 기둥(Cyrus Cylinder)에 기록되어 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실존하심은 요세푸스(Josephus), 수에토니우스(Suetonius), 탈루스(Thallus), 소 플리니우스(Pliny the Younger, 비두니아의 총독), 탈무드(Talmud), 루시안(Lucian) 등에 기록되어 있다.  


▶ 글라우디오(Claudius, AD 41-54)의 통치 기간 중에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강제 퇴거시킨 사건이(행 18:2) 수에토니우스에 의해 기록되어있다.


 

수메르 왕들의 목록에 대한 더 많은 정보


각기 다른 시기, 다른 장소들에서 발견된 수메르 왕들의 명단에 대한 16개 이상의 파편(fragment)들과 거의 완벽한 한 질의 사본이 존재한다. 첫 번째의 파편은 세기가 바뀔 무렵(19세기 말) 이라크의 니푸르(Nippur)에 있는 신전 도서관에서 발견되어 1906년에 출판되었다. 가장 완벽한 사본인 Weld-Blundell prism(수메르 왕들의 목록)은 1차 세계대전 직후에 고물상에게 팔렸고, 지금은 영국 옥스퍼드에 있는 애슈몰린 박물관(Ashmolean Museum)에 소장되어 있다(소장번호: AN1923.444). 수메르 왕들의 목록(Sumerian King List)과 그것의 성경적 의미에 대한 철저한 논의를 위해서는, CEN Technical Journal 12(3) 1998, pp.347-57에서 로페즈(Raul Lopez)가 제시한 “대홍수 이전의 족장들과 수메르 왕들의 목록(The Antediluvian Patriarchs and the Sumerian King List)”을 읽어보라. 



출처 : christiananswers.net 

주소 : https://christiananswers.net/q-abr/abr-a009.html

번역 : IT 사역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6-01-05

<복원> 성경에 언급된 건축물들이 고고학자들에 의하여 발굴된 적이 있는가?

(Have any man-made structures mentioned in the Bible 

been unearthed by archaeologists?)

ChristianAnswers.net



   그렇다. 성경에 언급된 많은 건축물들이 발굴되어져왔다. 가장 흥미로운 것들 중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 에글론(모압 왕)이 에훗(사사기 3:15-30)에 의하여 암살당했던 여리고에 있던 궁전(사사기 3:15-30).


▶ 가알과 스불이 성읍으로 접근하던 아비멜렉의 군대를 보았던 세겜의 동쪽 문(east gate of Shechem) (사사기 9:34-38).


▶ 세겜에 있던 바알/엘브릿 신당(Temple of Baal/El-Berith). 그곳의 자금은 아비멜렉의 왕권을 위해 조달되어졌고, 아비멜렉이 성읍을 공격하였을 때, 세겜의 백성들은 그곳을 피난처로 택했다. (사사기 9:4, 46-49).


▶ 다윗과 이스보셋의 군대가 이스라엘의 왕권을 놓고 다투는 동안 싸웠던 기브온의 못(pool of Gibeon). (사무엘하 2:12-32).


▶ 술람미 여인의 눈 같았던 헤스본의 못(Pool of Heshbon). (아가 7:4). 


▶ 이스라엘 왕들이 살았던 사마리아에 있던 왕궁. (열왕기상 20:43, 21:1,2, 22:39, 열왕기하 1:2, 15:25) 

 

▶ 아합 왕이 죽은 후에 그의 병거에서 흘린 피를 씻어내었던 사마리아의 못(Pool of Samaria). (열왕기상 22:29-38)


▶ 앗수르의 포위공격 동안에 물의 공급을 위해 히스기야 왕에 의해서 파여진 예루살렘 아래에 수로 터널. (열왕기하 20:20, 역대하 32:30)


▶ 벨사살 왕이 연회를 배설하고, 손가락이 나타나서 벽에 쓰여진 글자를 다니엘이 해석했던 바벨론에 있던 왕궁. (다니엘 5장)


▶ 에스더가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Xerxes) 왕의 왕비였을 때 수산(Susa)에 있던 왕궁. (에스더 1:2, 2:3,5,9,16).


▶ 에스더의 사촌인 모르드개가 앉아있었던 수산에 있던 대궐 문. (에스더 2:19,21, 3:2,3, 4:2, 5:9,13, 6:10,12).


▶ 모르드개가 하닥(아하수에로 왕의 내시)을 만났던 수산에 있던 대궐 문 앞 광장. (에스더 4:6).


▶ 예수님께서 귀신들린 사람을 치료하셨던(마가복음 1:21-28), 그리고 생명의 떡에 관한 설교를 하셨던(요한복음 6:25-59) 가버나움에 있던 회당 터.


▶ 예수님이 베드로의 장모와 다른 많은 사람들을 고쳤던 가버나움에 있던 베드로의 집. (마태복음 8:14-16).


▶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던 야곱의 우물(Jacob's well). (요한복음 4장)


▶ 예수님이 38년 된 병자를 고치셨던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못(Pool of Bethesda). (요한복음 5:1-14)

 

▶ 예수님께서 장님의 눈을 고치셨던 예루살렘의 실로암 못(Pool of Siloam). (요한복음 9:1-4).


▶ 바울이 재판을 받았던 고린도에 있던 법정. (사도행전 18:12-17).


▶ 은장색들의 폭동이 일어났었던 터키의 에베소에 있던 극장. (사도행전 19:29). 

 

▶ 바울이 갇혀있던 가이사랴에 있던 헤롯 궁. (사도행전 23:33-35). 



출처 : ChristianAnswers.net

주소 : http://christiananswers.net/q-abr/abr-a005.html

번역 : IT 사역위원회

미디어위원회
2025-11-09

사울, 다윗, 솔로몬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 - 2

고고학은 이스라엘 통일왕국에 대한 성경 기록을 뒷받침한다.

(Evidence for Saul, David, and Solomon

Archaeology supports the biblical record of Israel’s united monarchy)

By Keaton Halley



고고학적 발견들은 다윗 왕, 솔로몬 왕, 그리고 이스라엘의 통일왕국에 대한 성경의 기록을 확증해 준다.


솔로몬의 건설 프로젝트


성경은 솔로몬 왕이 아버지 다윗보다 훨씬 더 많은 건축 사업에 관여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열왕기상 9:1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

“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이러하니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이곳들 모두에서 BC 10세기에 인상적인 건축 활동이 있었다는 증거들은 이 성경 구절에 신빙성을 더해준다. 더욱이 이 도시들에 성벽, 성문, 그리고 공공건물들이 건설된 것이 솔로몬의 업적이라면, 그가 이스라엘 전체를 통치했음을 시사한다. 이 도시들은 북쪽에서 남쪽까지 이스라엘의 지파별 할당지에 걸쳐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증거들은 실제로 발견되었다.

f91e7ac506519.png

그림 13. 예루살렘 모형도.

 

예루살렘에서 다윗 성과 성전산 사이의 지형적 '안장(saddle)'은 오벨(Ophel)이라 불려진다(느헤미야 3:26~27). 1800년대에 찰스 워렌(Charles Warren)은 오벨을 탐험하던 중 엄청나게 튀어나온 탑(tower, 망루)과 그에 붙어 있는 작은 두 번째 탑을 발견했다. 대부분은 지하에 묻혀있었지만, 워렌은 수직 갱도와 측면 터널을 파내서 더 큰 탑의 너비가 24m, 높이가 20m라는 것을 알아냈다. 1986년과 2009년에 같은 지역을 발굴한 에일랏 마자르는 이 탑에 연결된 70m 길이의 고대 예루살렘 성벽을 발견했다. 또한 그녀는 거대한 튀어나온 탑 위에 있는 방이 있는 문지기실(gatehouse)을 발굴했다.[22] 탑과 문지기실은 모두 제1성전 시대의 성문 단지(gate complex)의 일부였다. 규모를 보면 예루살렘의 강력한 왕이 지은 것임을 알 수 있다. 

3d4053d1f3bd6.png

그림 14. 오벨 문(Ophel Gate), 예루살렘.

 

이 성문(city gate)은 정확히 언제 건설되었을까? 마자르는 바닥 아래에 채움재에 있던 토기를 평가한 결과, BC 10세기에 솔로몬이 건설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고 주장했다. 이 성문의 크기가 위에서 언급한 세 도시, 즉 하솔(Hazor), 므깃도(Megiddo), 게셀(Gezer)에서 발견된 다른 성문들과 유사하다는 점에서 그녀의 추측은 더욱 뒷받침된다.

c49935c03cf2d.png

그림 15. 오벨 문(Ophel gate)과 지지 망루(supporting towers)를 예술가가 복원한 그림.

 

고고학자들은 이 세 도시에서 각각 유사한 설계와 크기로 지어진 ‘6방 성문(six-chambered gates)’을 발견했다. 이러한 유사성은 우연히 일치될 수 없어 보이며, 아마도 같은 시기에 같은 정부에 의해 공통된 설계도에 따라 건설됐을 것임을 시사한다. 예루살렘 성문(Jerusalem gate) 또한 다른 성문들과 매우 유사하여, 지역적 환경에 대응할 수 있었다. 네 개의 방이 명확하게 보존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6방 성문이었다는 증거도 있다.[23]

36811b2352f39.png

그림 16. 솔로몬의 주요 도시들(하솔, 므깃도, 게셀, 예루살렘)의 성문들.

 

이가엘 야딘(Yigael Yadin)은 1957년에서 1970년 사이에 하솔, 므깃도(메기도), 게셀의 6방 성문들을 발굴했다. 야딘은 연대측정, 유사성, 그리고 열왕기상 9:15절을 근거로 이 성문들을 모두 솔로몬의 것으로 추정했다. 다른 학자들은 이러한 추정에 이의를 제기했는데, 특히 므깃도의 경우 성문 지역의 지층이 복잡하고, 발굴자들이 저연대(low chronology) 이론에 동의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도자기 유물과 C-14 연대측정 결과, 하솔과 게셀의 성문은 BC 10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매우 확실하게 나타났다. 종합적인 증거들을 종합해 보면, 적어도 이 두 성문은 솔로몬 시대의 성문이며, 므깃도 성문도 이례적인 것으로 보기 어렵다.


게셀과 므깃도에서 발견된 파괴층은 이 문들이 솔로몬의 문이라는 것과도 일치한다. 왜냐하면 파괴층은 문들이 지어졌던 시간과 연계되어 연대를 추정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게셀은 여러 차례의 파괴를 보여준다. 한 번은 솔로몬의 문이 지어지기 직전이고, 또 한 번은 지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파괴되었다. 이 증거들은 성경의 기록과 완벽하게 일치한다. 성경은 이 시기에 게셀을 공격했던 두 파라오에 대해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공격은 열왕기상 9:16~17절에 설명되어 있다. “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읍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솔로몬은 게셀을 재건했다.


두 번째 공격은 앞에서 언급한 셰숑크 1세(Shoshenq I, 시삭)에 의한 것이었는데, 그는 솔로몬이 죽은 지 몇 년 만에 이스라엘과 유다를 침략하여 수십 개의 도시와 마을들을 파괴했다. “르호보암 왕 제오년에 애굽의 왕 시삭이 올라와서 예루살렘을 치고”(열왕기상 14:25).

5b08c923529fb.png

  그림 17. 므깃도의 솔로몬 문(Solomonic gate at Megiddo)

 

므깃도 역시 6방 성문이 건설된 직후 파괴되었다는 흔적을 보여준다. 셰숑크 1세(시삭)는 자신이 공격자였음을 나타내는 여러 기념물을 남겼다. 그는 므깃도에 카르투슈(cartouche, 왕이나 신의 이름을 상형문자로 기록해 둔 타원형 또는 장방형의 장식)와 함께 승전비(victory stele)를 남겼고, 그의 부바스티트 문(Bubastite Portal)에 므깃도를 정복 도시로 기재했다. 성경과 므깃도에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 사이에는 일치성이 있다. 이 문양은 솔로몬이 6방 성문을 건설했음을 입증하고 있다.


솔로몬이 이 도시들에 세운 것은 성문과 성벽뿐만이 아니었다. 하솔, 므깃도, 게셀은 왕궁과 다른 공공건물들이 성문과 같은 지층에서 발견되는 것을 통해, 왕의 행정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 모든 것들은 성경에서 솔로몬을 위대한 건축가로 묘사했던 것이 정확했음을 보여준다.

2c400585587ec.png

그림 18. 므깃도에서 발견된 셰숑크 1세의 승전비 조각(Fragment from a victory stele of Shoshenq I ).

 

예루살렘 성전


고고학자들은 한때 솔로몬 성전(Solomon’s Temple)이 있었던 성전산 지역(Temple Mount)을 직접 발굴할 수는 없지만, 성경에 나오는 성전에 대한 자세한 설명 기록들을, 당시 다른 성전들과 비교하여, 알려진 건축 방식 및 설계와 일관성을 확인할 수 있었다. 놀랍게도 다른 성전들은 물론이고, 작은 가정용 사당(shrines)에서도 솔로몬 성전과 매우 유사한 구조들이 많이 발견되었다.


성경은 솔로몬 성전이 세 부분으로 나뉜 긴 방 구조였으며, 앞쪽 현관에는 두 개의 기둥이 있었고, 가장 끝에는 '지성소(holy of holies)'가 있었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는 BC 2번째 천 년 기에 시리아(Syria)에서 매우 흔한 신전의 설계 형태였다. 이러한 배치는 그 후 BC 천 년기에 이스라엘로 전파되었고, 솔로몬이 BC 10세기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었을 때 선례가 되고 있었다.


솔로몬 성전과 가장 유사한 것으로 알려진 것은 시리아의 아인 다라(Ain Dara)에 있는 신히타이트 사원(Neo-Hittite temple)이다. 이 사원은 BC 1300년경에 지어졌으며, 솔로몬 시대를 훨씬 넘어 지속되었다. 이 사원의 발견은 실제로 성경에서 성전에 대한 설명에서 모호한 세부 사항을 밝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예를 들어 "...창틀 있는 붙박이 창문을 내고"(열왕기상 6:4)와 “...벽에 연접하여 돌아가며 다락들을 건축하되 다락마다 돌아가며 골방들을 만들었으니...중층 골방의 문은 성전 오른쪽에 있는데 나사 모양 층계로 말미암아 하층에서 중층에 오르고 중층에서 셋째 층에 오르게 하였더라”(열왕기상 6:5~10)가 있다. 예루살렘에서 매우 가까운 텔 모차(Tel Motza)에 BC 900년경에 지어진 사원에도 그러한 복도가 있었고, 다른 면에서도 솔로몬 성전과 매우 유사했다.

7cf3593c51b72.png

그림 19. 솔로몬 성전과 많은 세부 사항이 일치하는 아인 다라의 사원(Ain Dara temple) . <Bertramz, CC BY-SA 3.0>

 

2012년 케이야파에서 발견된 작은 석회암 사당(limestone shrine)은 성전 건축의 세부 사항을 더욱 자세히 보여준다. 케이야파에 거주했던 시기가 사울과 다윗 시대로 추정되므로, 이 소형 사당은 솔로몬 성전 건축 직전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케이야파 사당의 출입구 위쪽에는 세 개씩 튀어나온 직사각형이 있는데, 이는 지붕을 지탱하는 나무 들보의 끝부분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진다. 열왕기상 6:5절, 15절, 7:3절, 에스겔 41:6절과 같은 구절에서 성경은 세 개씩 사용된 이러한 지붕 널빤지를 묘사하고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b355af5ee40f5.png

그림 20. 케이야파에서 발굴된 이동식 석조 사당(portable stone shrine).

 

또한 번역가들이 제1성전 출입구에 대한 성경적 묘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지만, 케이야파 사당은 고대 근동의 다른 많은 사원들에서 볼 수 있는 특징인 여러 개의 움푹 들어간 출입구를 묘사하고 있었다. 따라서 사당은 지성소로 들어가는 출입구에 대해 “그 문인방과 문설주는 벽의 오분의 일이요”라고 명시한 열왕기상 6:31절과 같은 구절을 더 잘 이해하는 데 시각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흥미롭게도 솔로몬이 지은 출입구의 움푹 들어간 매립형 틀(recessed frames)의 수는 다양했다. 솔로몬의 궁전 입구는 세 개를 갖고 있었지만(열왕기상 7:5), 성전 입구에는 네 개가 있었다(열왕기상 6:33). 내부 성소 쪽으로 움푹 들어간 곳이 늘어나는 것은(다섯 개) 공간의 신성함이 증가함을 표시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


성전의 설계에 대해서는 나무와 금으로 된 패널, 장식 요소, 가구 등을 포함하여 훨씬 더 많은 세부 사항들을 언급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세부 사항들을 비교하는 이유는 성전의 세부 사항에 대한 성경의 묘사가 BC 10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알려진 건축적 특징들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솔로몬이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전을 건축했다고 믿는 것이 타당하다.

 

솔로몬의 부와 장거리 무역


성경은 솔로몬의 막대한 부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역사적으로 타당할까? 솔로몬이 오빌(Ophir)이나 시바(Sheba, 스바)처럼 멀리 떨어진 지역과 무역을 했을 가능성이 있을까? 두 경우 모두 답은 '예'이다!


케네스 키친(Kenneth Kitchen)은 솔로몬의 재정에 대한 많은 성경적 주장을 다른 고대 경제 거래 기록 및 다양한 부의 지표들과 비교해보았다. 각각의 경우 성경의 수치는 비교 가능했으며, 겉보기에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예를 들어, 열왕기상 10:14~15절은 솔로몬이 일부 소액 수입원을 제외하고, 세입금의 무게가 금 666달란트 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키친은 이러한 수치들을 분석하여, 솔로몬의 전체 통치기간 동안의 순자산을 추정하고,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 그의 총 금 비축량은 … 모두 합쳐 약 500톤 정도였을 것이다. 솔직히 이 금액은 알렉산더 대왕이 수사(Susa)에서 약탈한 1,180톤의 금, 정복당한 페르시아 제국 전체에서 훔쳐낸 7,000톤의 엄청난 금에 비하면 상당히 적은 량이다. 솔로몬은 그 정도 수준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맥락에서 이것은 단순한 공상이 아니다.[24]

 

솔로몬의 무역망에 대한 기록도 마찬가지로 신뢰할 만하다. 열왕기상 9:26~28절에 따르면, 솔로몬의 종들과 두로(Tyre, 티레) 왕 히람(Hiram)의 종들은 금을 가져오기 위해 함께 오빌(Ophir)로 항해했다. “솔로몬 왕이 에돔 땅 홍해 물 가의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 히람이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그들이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이십 달란트를 얻고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

 

BC 8세기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오스트라콘(ostracon)에는 "벧호론을 위한 오빌의 금(Gold of Ophir for Beth-Horon)"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오빌은 신화의 땅이 아니었다. 오빌은 아라비아 반도의 마흐드 아드 다합(Mahd adh Dhahab)과 동일시될 가능성이 있다. 이곳은 수 세기 동안 금광이 있어서 금이 채굴되어 왔으며, 4,000년 동안 이용되어 온 이스라엘과의 무역로에 위치해 있다.


유명한 “스바(시바)의 여왕(Queen of Sheba)”(열왕기상 10:1~10)은 고대 예멘의 남쪽에 위치한 사바(시바)(Saba/Sabaea/Sheba) 왕국 출신이었다. 프랑스의 비문학자(epigrapher)인 앙드레 르메르(André Lemaire)는 다음과 같이 썼다.

… 고고학자들은 남부 레반트(Levant, 지중해 동부 연안)와 남부 아라비아 간의 국제 무역이 BC 2천 년기 말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설득력 있게 주장해왔다.[25]


두 개의 중요한 비문(inscriptions)은 이스라엘과 시바 왕국 사이의 무역을 구체적으로 암시하고 있다. BC 600년경으로 추정되는 시바어(Sabaean, 사바어)로 쓰인 비문이 발견되었다. 시바 왕의 사절이 쓴 이 비문은 "유다 성읍들"로의 무역 원정을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었다.[26]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솔로몬 시대에 시바와 예루살렘 사이에 향신료 무역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무역 관계가 솔로몬 시대보다 훨씬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는 점이다. 예루살렘에서 발견된 오스트라콘(ostracon, 글이 새겨진 도자기 조각)의 최근 해독 결과는 이에 대한 흥미로운 증거를 제시한다. 오펠 피토스 비문(Ophel pithos inscription)으로 알려진 이 도자기 조각은 2012년 오벨(Ophel, 오펠) 지역에서 발견되었다. 도자기 조각과 비문(구워지기 전에 표면에 새겨진) 모두 BC 10세기의 것으로 추정되었다. 한동안 학자들은 이 비문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 실제 내용을 두고 논쟁을 벌였다. 그러나 2023년, 비문학자 다니엘 바인스텁(Daniel Vainstub)은 이 미스터리를 해결했다고 주장하는 논문을 발표했다.[27] 그는 어떤 독특한 글자 형태는 이 비문이 독특한 고대 남아라비아 문자로 쓰여졌음을 가리킨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 비문은 남아라비아 반도에 자생하는 관목에서 얻어진, 끈적끈적한 갈색의 수지인 랍다넘(labdanum, 랍다늄)이라 불리는 일종의 향이 나는 수지(resin)로 쓰여졌다는 것이다. 랍다넘은 아마도 성경에서 성막에서 사용된 거룩한 향을 내는 네 가지 재료 중 하나로 언급된 '나감향(onycha)'일 것이다(출애굽기 30:34~38).[28] 동일한 향이 솔로몬 성전에서도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므로, 이 도자기 조각이 성전산 바로 남쪽에서 발견된 것은 적절하다. 글자들에 대한 고문서학(paleography)은 BC 10세기의 연대를 확인시켜 주고 있으므로, 성경에서 말하는 것처럼 솔로몬 시대에 시바와 예루살렘 사이에 향신료 무역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웃 국가들


현재 확인 가능한 것들에 따르면, 통일왕국시대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에 대한 묘사 역시 성경 기록에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다. 예를 들어, 다윗과 솔로몬은 북쪽에 있는 두 왕국인 그술(Geshur, 게슈르)과 베니게(Phoenicia, 페니키아)와 우호 관계를 유지했다. 고고학은 BC 10세기에 그술의 수도를 포함하여 여러 도시들이 존재했음을 확인해준다. 다윗은 그술의 공주와 결혼했고, 이 결혼으로 압살롬이 태어났는데(역대상 3:2), 그는 나중에 아버지에게 반기를 들고 그술로 도망쳤다.(사무엘하 13:37~38)

0dc7149bddd96.png

그림 21. 압살롬이 아버지 다윗에게서 피신했던 그술 왕국의 수도에 있는 문(gate at the capital city of the kingdom of Geshur). 이 문은 다윗 시대 이후의 것이지만, BC 10세기에 만들어진 문도 이곳에서 발굴되었다.

 

더욱이 이스라엘과 두로(Tyre), 시돈(Sidon) 같은 페니키아의 도시들과도 무역이 존재했다. 고고학적 증거에서 알 수 있듯이, 페니키아 목재, 도자기, 그리고 예술품은 이스라엘에 널리 퍼져 있었다. 성경은 다윗과 솔로몬이 두로 왕 히람(Hiram)과 협력하여 왕궁과 성전을 건축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BC 10세기에 만들어진 '아히람(Ahiram)' 왕의 화려한 석관(sarcophagus)이 비블로스(Byblos, 고대 페니키아의 도시)에서 발견된 것을 보면, 히람의 흔적도 발견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성경 속 히람이 두로뿐만 아니라, 비블로스도 통치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으며, 이는 당시 페니키아 통치자들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명칭이었을 가능성이 있다.

 

성경은 다윗이 요르단 강 동쪽에서 암몬(Ammonites), 모압(Moabites), 에돔(Edomites)을 정복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이 민족들은 당시 확고한 왕국을 형성했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세속 학자들은 이 시기에 이 부족들이 왕이 다스리는 국가로 조직되었다는 데에 의문을 제기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의 증거들은 적어도 에돔과 관련하여 그들의 회의론을 반박하고 있다.

754bf9799c324.png

그림 22. 에돔의 딤나 골짜기(Timna Valley, 팀나 계곡). <Eliran T, CC BY-SA 4.0>

 

에서(Esau, 에돔족의 조상)의 족보에 대하여 창세기 36:31절은 “이스라엘 자손을 다스리는 왕이 있기 전에 에돔 땅을 다스리던 왕들은 이러하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의미심장하게도, 2012년 이후에야 초기 에돔 왕국의 증거가 밝혀졌다. 이는 에돔 영토, 딤나 골짜기(Timna Valley, 팀나 계곡)과 와디 파이난(Wadi Faynan)에 흩어져 있는 고대 구리 광산 유적지에서 고고학적 발굴이 재개되면서 밝혀졌다.[29] 고고학자들은 이집트가 후기 청동기시대에 이 유적지를 지배했지만, BC 1300년경에 포기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채굴 작업은 계속되었는데, 이는 그 지역 에돔인들에 의한 것이었다. 그들은 효율성 높은 새로운 제련 기술을 사용하여 수 세기에 걸쳐 더 많은 구리를 채굴하는 능력을 발전시켰다. 두 광산은 동시에 발전했기 때문에 기술 발전을 공유하고 있었음이 분명하다. 이처럼 외딴 지역에서 산업이 발달하고 정교한 기술이 보급된 것을 보면, 에돔은 BC 11세기, 어쩌면 그보다 더 일찍 국가를 형성했음을 알 수 있다.[30]


더욱이 BC 1000년경에 광산들은 이스라엘의 영향으로 인해 또 다른 문화적 변화를 보여주었다. 철기시대 이스라엘 전역에서 사용되었던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새로운 가옥들이 등장했다. 또한, 이스라엘과 지중해에서 유래한 이국적인 음식과 값비싼 직물이 발견되었다. 제련 공정의 발전으로 이 시기에 광산 운영은 절정에 달했다. 그 결과, 경제적으로 중요한 이 유적지를 보호하기 위해 새로운 요새(앞서 언급한 네게브 요새(Negev forts))가 건설되었다.


이러한 변화는 에돔 사람들을 자신의 종으로 삼았던 사건을 묘사하고 있는 사무엘하 8:13~14절의 “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라는 구절과 잘 일치한다. 다윗과 솔로몬은 에돔의 구리 산업을 장악하여 에돔 경제의 부에 기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솔로몬의 사후, 이집트의 셰숑크 1세(Shoshenq I)가 이 지역을 점령했고, 그 후 상당수가 버려졌다. 셰숑크의 지배 하에 있던 나머지 시설들은 이집트 기술을 이용하여 더욱 확장되고 개선되었다. 결론적으로, 통일왕국시대에 이 에돔 광산에서 일어난 일련의 변화는 성경 기록과 정확히 일치한다.


현재 BC 10세기 암몬과 모압 왕국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은 제한적으로만 발견되었다. 하지만 최근 에돔에 대한 발굴이 그랬듯이, 향후 발굴을 통해 이 왕국들에 대한 기존의 세속적 가정에 쉽게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스라엘 왕국은 유프라테스 강까지 확장되었는가?


성경은 다윗과 솔로몬이 북쪽에 다른 강력한 이웃들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 이웃들은 아람인들의 소바(Zobah) 왕국 (벧르홉(Beth-Rehob)을 포함하여), 다메섹(Damascus, 다마스쿠스), 마아가(Maacah), 돕(Tob), 하맛(Hamath)의 신히타이트(Neo-Hittite) 왕국이다.[31] 성경은 다윗이 소바와 다메섹의 아람 왕들을 물리치고 복종시켰지만, 하맛과는 평화를 이루었다고 말한다(사무엘하 8:3~12). 그러나 솔로몬은 나중에 하맛과 싸워 물리쳤고(역대하 8:3~4), 유프라테스 강까지 뻗어 있는 영토를 지배했다고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다(열왕기상 4:21~25, 8:65). 일부 세속 학자들은 다윗과 솔로몬이 이 시리아 국가들을 합병하여 유프라테스(Euphrates, 유브라데) 강까지의 속국을 지배할 수 있었다는 생각을 일축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할 만한 강력한 이유는 없다.


지금까지 고고학은 BC 10세기의 아람(Aram) 왕국에 대한 매우 적은 정보만을 제공했다.[32, 33] 이러한 자료 부족은 성경 기록을 확인해주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의 기자들은 적어도 당시의 아람 왕국을 독립적인 도시국가들로 정확하게 묘사했다. 이것은 BC 732년 앗수르 제국이 아람-다마스쿠스를 정복하고, 그 지역을 세 개의 속주로 나눈 이후로는 더 이상 도시국가들이 아니었다.[34] 이집트와 앗수르 제국은 BC 10세기에 비교적 약했고, 한때 시리아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히타이트 제국은 BC 1180년경에 붕괴되었다.[35] 이 영토에 대한 통제력 부족으로 여러 개의 신히타이트와 아람의 소규모 왕국들이 생겨날 수 있었다. 이것은 또한 이스라엘에 군주제가 일어나, 그 지역에서 세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하는 여지를 만들었을 수 있었다. 다윗과 솔로몬이 이 지역을 정복할 수 없었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하고 성급했던 주장이었던 것이다.


또한, 다윗이 물리쳤던 소바 왕 하닷에셀(Hadadezer)과 그의 라이벌이었던 하맛 왕 도이(Toi)에 대한(사무엘하 8:3, 8:9) 잠재적 증거가 있다. 앗수르 왕 살만에셀 3세(Shalmaneser III)의 비문에는 아슈르-라비 2세(Assur-rabi II, 다윗과 동시대 인물)의 초기 통치기간에 "아람의 왕"이(이름이 기재되지 않음) 유프라테스 강 근처의 두 도시를 정복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이 왕은 유프라테스 강에서 한때 영토를 지배했다고 전해지는 성경의 하닷에셀을 언급한 것일 수 있다(사무엘하 8:3).[36] 반면, 살만에셀이 언급한 아람은 남부 시리아가 아니라, 상부 메소포타미아에 위치했을 가능성이 더 높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37] 증거들은 결정적이지 않은 것 같다. 둘째, 일부 사람들은 하맛 왕 도이가 BC 1000년경 팔리스틴(Palastin)의 후기 히타이트(Late Hittite) 왕국을 통치했던 타이타 왕(King Taita)과 동일 인물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38] 타이타 왕의 초상과 그에 대한 비문(inscription)이 알레포(Aleppo)에 있는 루위족 폭풍신(Luwian storm god)에게 바쳐진 한 사원에 남아 있다. 그러나 타이타와 도이가 동일인물이라는 것은 논란 중이며, 아직 입증되지 않았다.[39]

766c5f601eb52.png

그림 23. 알레포(Aleppo)에 있는 한 사원에 묘사되어있는 타이타 왕(King Taita, 오른쪽)과 폭풍의 신(storm god, 왼쪽). <Orf3us, CC BY 3.0>

 

전반적으로 다윗과 솔로몬이 유프라테스 강까지 뻗쳐 있는 북쪽 왕국들을 일시적이라도 정복했다는 것은 고고학적으로 확실하게 증명되지는 않았지만,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들은 성경 기록과 모순되지 않는다.

 

셰숑크의 공격


이미 언급했듯이, 셰숑크 1세(Shoshenq I, 성경의 시삭, Shishak)는 솔로몬이 사망한 직후인 BC 925년경 이스라엘과 유다의 여러 도시들을 공격했다. 그의 원정은 통일왕국이 붕괴된 직후에 이루어졌지만, BC 925년 이전에 강력한 왕국이 존재했었다는 증거를 여전히 제공한다. 아미하이 마자르(Amihai Mazar)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

가나안을 공격했던 이집트 신왕국 시대의 군사 원정과는 달리, 셰숑크의 목록에는 벧호론(Beth Horon)과 기브온(Gibeon)처럼 예루살렘 북쪽의 장소들이 언급되어 있다. 이에 대한 유일한 타당한 설명은 이집트인들의 눈에 이례적인 원정 경로를 정당화할 만큼, 중부 구릉지대에 중요한 정치 세력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러한 세력의 유력한 후보는 솔로몬 왕국뿐이다.[40]


더욱이, 셰숑크에 대한 세부적인 성경 기록은 이집트와 다른 성경 외 기록에서 알려진 것과 일치한다. 예를 들어, 셰숑크 1세는 전임자로부터 왕좌를 물려받은 토착 이집트 파라오가 아니었다. 그는 이집트를 정복하고 새로운 왕조를 세운 리비아인이었다. 이것은 솔로몬이 이전 파라오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심지어 그의 딸과 결혼했던 이유를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된다(열왕기상 9:16). 그러나 리비아인 파라오 셰숑크 1세는 솔로몬의 적 여로보암(Jeroboam)을 보호해준 적이 있었고(열왕기상 11:40), 솔로몬이 죽은 후 성전을 약탈했다(열왕기상 14:25~26).

 

결론


앞서 언급한 모든 것들 외에도, 사울, 다윗, 솔로몬에 대한 다른 증거들을 제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들이 썼던 시편과 잠언은 당시 성서 외 문헌들과 문체적으로 동일했음(stylistic equivalents)을 보여준다. 이 성경 속 왕들의 역사성에 대한 모든 구체적인 의문들을 이 글에서 모두 다루지는 못했지만, 이러한 개괄은 성경 기록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여러 타당한 이유들을 제시해준다. 사울, 다윗, 솔로몬에 대한 증거들은 풍부하며, 고고학적 발견들이 현재의 추세대로 계속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증거들이 나타날 것이다. 성경을 믿는 사람들은 통일왕국시대가 대부분 전설적이거나 과장되었다는 세속적 학자들의 주장에 초조해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말씀은 과거에 대한 신뢰할 만한 길잡이로 언제나 입증되어왔다.

 

 

Related Articles

Archaeological find affirms Old Testament historicity

Discovered—monumental inscriptions of King Hezekiah!

Egyptian mummies and Hebrew perfume

Belshazzar: The second most powerful man in Babylon

Goliath—the BHG

Monuments from Ancient Assyria confirm biblical history

Canaanite Hazor—the Bible got it right

Strengthening the Shishak/Shoshenq synchrony

False History—‘out with David and Solomon!’

 

*Who is… Solomon and what is his significance? (ChristianAnswers.net)

https://christiananswers.net/dictionary/solomon.html

*Who is… Saul (ChristianAnswers.net)

https://christiananswers.net/dictionary/saul.html

*Biblical archaeology (Creation Wiki)

https://creationwiki.org/Biblical_archaeology#King_David.27s_Palace

*BiblePlaces Blog에서 David 관련 자료

https://www.bibleplaces.com/?s=david&apbct__email_id__search_form=

BiblePlaces Blog에서 Solomon 관련 자료

https://www.bibleplaces.com/?s=solomon&apbct__email_id__search_form=

*Archaeological evidence of David

https://christiananswers.net/dictionary/david.html#archaeologyanddavid

 

*Video :

Archaeology Confirms Old Testament Kings Really Existed

https://creation.com/en/podcasts/archaeology-confirms-old-testament-kings-really-existed

King David—Top 10 archeological discoveries

https://youtu.be/n1SA1hicOxg

Top Ten Discoveries in 2024 in Biblical Archaeology

https://youtu.be/tooupyMw1iU

Top Ten Discoveries in 2023 in Biblical Archaeology

https://youtu.be/NHEE8Z34DDs

Top 10 Bible Archaeology Discoveries of 2022

https://www.youtube.com/watch?v=Xai4iRKL57M

Top Ten Discoveries in 2021 in Biblical Archaeology

https://youtu.be/PdDUv407hSM

Top 10 Bible Archaeology Discoveries That Prove the Scriptures!

https://www.youtube.com/shorts/5O7MQB0NWCo

  

References and Notes

1. Finkelstein, I., and Silberman, N.A., David and Solomon, Free Press, New York, NY, 2006, p. 21.

2. New high-resolution photography of this monument has renewed scholarly debate on the subject. See Lemaire, A. and Delorme, J., Mesha’s stele and the house of David, Biblical Archaeology Review 48(4): 34–41, 2022. See also Richelle, M. and Burlingame, A., Set in stone? Another look at the Mesha Stele, Biblical Archaeology Review 49(1):54–57, 2023.

3. For more information, see Cox, G., Strengthening the Shishak/Shoshenq synchrony, J. Creation 36(2):40–49, 2022; creation.com/strengthening-the-shishak-shoshenq-synchrony.

4.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 93, 2006.

5. Dever, W., Beyond the Texts, SBL Press, Atlanta, GA, pp. 289–291, 324, 2017.

6. Mazar, A., Archaeology of the Land of the Bible, Doubleday, New York, NY, pp. 390–396, 1990.

7. For example, Dever, W.G., Solomon, Scripture, and science: the rise of the Judahite state in the 10th century BCE, Jerusalem Journal of Archaeology 1:102–125. Also,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2006.

8. One need not adopt even more radical revisions to the chronology of this era either, such as proposals by David Down and David Rohl that put the United Monarchy in different parts of the Late Bronze Age. These revisionists destroy the excellent harmony between the biblical description of the 11th and 10th centuries BC and the Iron Age archaeological finds.

9. Dever, W., Beyond the Texts, SBL Press, Atlanta, GA, p. 363, 2017.

10. Garfinkel, Y., et al., In the Footsteps of King David, Thames & Hudson, London, UK, pp. 167–170, 2018.

11. Mazar, A., Archaeology of the Land of the Bible, Doubleday, New York, NY, 1990, pp. 371–374.

12. Garfinkel, Y., et al., In the Footsteps of King David, Thames & Hudson, London, UK, pp. 106, 178, 2018.

13. See 2 Samuel 2:8–15; 3:7–15; 4:5–12.

14. Garfinkel, Y., et al., In the Footsteps of King David, Thames & Hudson, London, UK, p. 126, 2018.

15. Borschel-Dan, A., Colossal ancient structures found at Gath may explain origin of story of Goliath, timesofisrael.com, 26 July 2019.

16. The Philistine champion, Goliath, was from Gath (1 Samuel 17:4). David sought refuge in Gath more than once when fleeing from King Saul (1 Samuel 21:10; 27:2–4). King Achish of Gath was part of a coalition of Philistine lords who set out to attack Saul (1 Samuel 29). He controlled much territory, and even bequeathed the town of Ziklag to David (1 Samuel 27:6).

17.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2, 2002.

18. Finkelstein, I. and Silberman, N.A., David and Solomon, Free Press, p. 39, 2006.

19.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2, 2002.

20. Chadwick, J.R., Discovering Hebron,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1(5):24–33, 70, 2005.

21. Finkelstein, I., The Forgotten Kingdom: The Archaeology and History of Northern Israel, SBL Press, Atlanta, GA, p. 43, 2013.

22. Mazar, E., Discovering the Solomonic Wall in Jerusalem, Shoham Academic, p. 85, 2011.

23. Eames, C., A study into King Solomon’s FOUR monumental gates, Let the Stones Speak 1(6):10–19, November–December 2022.

24.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 134, 2006.

25. Lemaire, A., Solomon & Sheba, Inc.,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6(1):55–56, 2010.

26. Lemaire, A., Solomon & Sheba, Inc., Biblical Archaeology Review 36(1):55–56, 2010.

27. Vainstub, D., Incense from Sheba for the Jerusalem Temple, Jerusalem Journal of Archaeology 4:42–68, 2023.

28. Carter, R., Egyptian mummies and Hebrew perfume, creation.com/egyptian-mummies-hebrew-perfume, 7 March 2023.

29. Ben-Yosef, E. and Greener, A., Edom’s copper mines in Timna: their significance in the 10th century, thetorah.com, 12 August 2018.

30. Nagtegaal, B., Archaeology confirms biblical account of Edomite statehood, armstronginstitute.org, 12 November 2019.

31.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0, 2002.

32.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3, 2002.

33.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 90, 2006.

34. Na’aman, N., In search of reality behind the account of David’s wars with Israel’s neighbours, Israel Exploration Journal 52(2):202, 2002.

35.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p. 88–90, 98–99, 2006.

36. Kitchen, K., On the Reliability of the Old Testament, Eerdmans, Grand Rapids, MI, p. 94, 2006.

37. Pitard, W.T., Ancient Damascus, Eisenbrauns, Winona Lake, IN, pp. 90–92, 1987.

38. Janeway, B., Old Testament king discovered?, biblearchaeology.org, 11 February 2011. See also University of Haifa press release, The history of King David, newswire.com, 15 December 2014. Some have also proposed there may have been more than one Taita ruling in succession.

39. Na’aman, N., Memories of monarchical Israel in the narratives of Davidʼs wars with Israelʼs neighbours, Hebrew Bible and Ancient Israel 6:323–324, 2017. Also, Thomas, Z., Reckoning with David in scholarship and media, asor.org/blog, 5 June 2015.

40. Mazar, A., The search for David and Solomon: an archaeological perspective, in Schmidt, B.B., ed., The Quest for the Historical Israel, Leiden: Brill, p. 124, 2007.

 

 

*참조 : 사울, 다윗, 솔로몬에 대한 고고학적 증거들 - 1 : 고고학은 이스라엘 통일왕국에 대한 성경 기록을 뒷받침한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511930&bmode=view

 다윗과 솔로몬의 역사적 사실성! : 최근 고고학적 발견들은 성경의 기록이 사실임을 계속 입증하고 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30&bmode=view

다윗 왕은 부족장이 아니라, 도시들을 지배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78&bmode=view

거인 골리앗에 대한 7가지 고고학적 증거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189706&bmode=view

사울 왕의 아들 ‘에스바알(이스보셋)’의 이름이 새겨진 3,000년 전 도자기가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84&bmode=view

솔로몬 왕이 건설했을 가능성이 있는 성벽이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65&bmode=view

솔로몬 왕의 구리광산에 대한 증거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70&bmode=view

솔로몬 시대의 광산이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60&bmode=view

팀나의 구리 광산은 솔로몬 왕국의 부강함을 보여준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86&bmode=view

키르벳 퀘야파에서 발견된 유대인의 제례 예식의 증거.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92&bmode=view

시삭/셰숑크가 동일 인물임을 강화하는 증거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1147641&bmode=view

제1성전 시대의 저수조가 예루살렘에서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76&bmode=view

벨사살 : 바빌론의 두 번째 통치자. 고고학은 벨사살 왕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245931&bmode=view

왕비 이세벨의 고대 인장이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37&bmode=view

에스더서의 아하수에로는 페르시아의 어떤 왕이었을까? : 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1세?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257499&bmode=view

새로 발견된 이집트 석비는 예레미야서에 기록된 왕이 실존했음을 증거한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4268001&bmode=view

히스기야 왕을 하나님이 구원하셨을 때 - 1부 : 고고학은 앗수르의 유다 침공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290486&bmode=view

히스기야 왕을 하나님이 구원하셨을 때 - 2부 : 고고학은 히스기야의 예루살렘 방어 준비에 대한 성경 기록을 확증해주고 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8348140&bmode=view

히스기야 왕의 기념비 비문이 발견되었다! : 히스기야에 대한 성경의 기록은 정확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8415666&bmode=view

실로암 못이 발견되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8415436&bmode=view

앗수르의 최근 고고학적 발견은 성경을 확증하고 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326561&bmode=view

성경 역사를 확증해주고 있는 고대 앗수르 유물. 대영박물관에 있는 성경의 고고학적 증거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83&bmode=view

이사야 선지자의 인장이 발견되었다 : 히스기야 왕의 인장에 이은 놀라운 발견!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289007&bmode=view

노아의 16명의 손자 : 고대의 지명과 민족들의 이름 속에 남아있다.

https://creation.kr/EvidenceofFlood/?idx=1288381&bmode=view

전 세계의 홍수 전설에는 "8명"의 홍수 생존자들에 대한 공통된 기억이 남아있다.

https://creation.kr/EvidenceofFlood/?idx=49755429&bmode=view

전 지구적 홍수를 가리키는 성경적, 과학적 증거들과 전 세계의 홍수 설화, 그리고 에누마 엘리쉬

https://creation.kr/Genesis/?idx=2851501&bmode=view

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는 신격화된 함이다 : 1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5221417&bmode=view

이집트의 태양신 호루스는 신격화된 함이다 : 2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067923&bmode=view

고대 이집트에서 노아와 대홍수를 찾아서 – 1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5703689&bmode=view

고대 이집트에서 노아와 대홍수를 찾아서 - 2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5850972&bmode=view

고대 이집트에서 노아와 대홍수를 찾아서 – 3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5886160&bmode=view

고대 이집트에서 노아와 대홍수를 찾아서 – 4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097725&bmode=view

니므롯 : 노아 홍수 이후 최초의 폭군이자 제국의 건설자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341006&bmode=view

바벨탑 : 전설인가, 역사인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18&bmode=view

이집트의 임호텝과 요셉은 동일 인물이었는가?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4404153&bmode=view

요셉과 임호텝은 동일 인물이었을까? 1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7535860&bmode=view

요셉과 임호텝은 동일 인물이었을까? 2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8104674&bmode=view

여리고의 성벽 : 고고학적 확인에 의하면 여리고성의 벽은 정말로 무너져 내렸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33&bmode=view

여호수아의 파괴 이후의 여리고 성 : 성경과 고고학의 일치.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3837349&bmode=view

여호수아의 아이성에 대한 새로운 고고학적 발굴 : 또 다시 확인된 성경 기록의 정확성.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82&bmode=view

에발 산에서 여호수아의 제단과 저주 서판의 발견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6302135&bmode=view

모압 석비가 입증하고 있는 성경 기록의 역사적 사실성 : 모압 왕 메사의 자랑은 창세기를 확인해주고 있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2759771&bmode=view

가나안의 하솔 - 성경이 옳았다! : 성경에 보존된 고대 도시의 흔치않은 지식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4048467&bmode=view

이집트 역사와 성경 기록 : 완벽한 조화?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4326240&bmode=view

이집트 연대기와 성경 : 현장 고고학자 데이비드와의 대화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29&bmode=view

출애굽의 역사성을 확증하고 있는 영화, “증거의 패턴 : 출애굽”이 개봉되었다.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289000&bmode=view

모세를 찾아서 1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11&bmode=view

모세를 찾아서 2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288912&bmode=view

시내산의 위치에 관해 논란이 되고 있는 고고학적 장소를 사우디아라비아 정부가 공개한다.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2574870&bmode=view

중국 삼성퇴(싼싱두이)의 청동나무 : 창세기를 묘사하고 있는 가장 오래된 유물?

https://creation.kr/archaeology/?idx=1288735&bmode=view

황제 ‘황디’는 누구였을까? : 중국인들은 어디서 왔을까!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39180093&bmode=view

중국의 복희와 여와, 그리고 묘족의 신화는 노아 홍수가 실제 역사임을 가리킨다!

https://creation.kr/BiblenHistory/?idx=147670645&bmode=view

▶ 성경을 지지하는 고고학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4724&t=board

▶ 다윗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22769&t=board

▶ 솔로몬

https://creation.kr/Topic502/?q=YToxOntzOjEyOiJrZXl3b3JkX3R5cGUiO3M6MzoiYWxsIjt9&bmode=view&idx=6817352&t=board


출처 : CMI, 2023. 7. 9. Updated 2023. 8. 3.

주소 : https://creation.com/en/articles/david-and-solomon

번역 : 미디어위원회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3

대표전화 02-419-6465  /  팩스 02-451-0130  /  desk@creation.kr

고유번호 : 219-82-00916             Copyright ⓒ 한국창조과학회

상호명 : (주)창조과학미디어  /  대표자 : 오경숙

사업자번호 : 120-87-70892

통신판매업신고 : 제 2021-서울종로-1605 호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26길 28-5

대표전화 : 02-419-6484

개인정보책임자 : 김광